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던 그는 연인(이라 부를 수나 있나 싶은) 민씨의 마음이 잠시 식었을 때 자신을 보호해줄 듯 이야기하던 새로운 인연 신씨를 만났다. 신씨는 그에게 민씨보다 더한 사랑을 보였고, 자신은 민씨 같은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에게 믿음을 주었다. 그는 민씨로부터 벗어나 신씨에게 마음을 돌렸다.

뒷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관계를 두고 바람 피웠다며, 그렇게 잘한 민씨를 어떻게 그렇게 차갑게 보내버릴 수 있느냐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런 비난은 그와 신씨가 서로 더 의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둘의 관계는 더더욱 돈독해졌다.

그는 비난에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다시 데이트 폭력이 시작되었다. 주변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신씨는 다단계를 시작했고 주변에 사람이 떨어져 나가자 물건 판매를 그에게 강요하기했다. 그는 거부했다. 그와 신씨는 자주 싸우기 시작했고, 종종 보이지 않는 곳으로만 구타 당하기도 했다.

그는 결국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에 신고했으나, 뭐 그런 것 갖고 그러냐고 했다. 심지어 법원에서는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지켜준다며 기각했다. 이런 저런 사건에 직장에서도 그를 내치려 했다. 그가 벗어나려 할 때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와서 행패부리는 신씨를 보고는 가만히 있다가 신씨가 가고 나면 그에게 찾아와서 왜 남에게 피해를 주냐고 따지기 만 했다. 여러 사람들이 그를 헤픈 사람 취급했고, 그에게서 벗어나려 하자 자기만 편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바람 피울 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며 그에게 비난의 화살이 계속 쏟아졌다.

그는 주변으로 눈 돌릴 정신 없이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 우연히 내 진짜 욕망을 깨달았다.

치마를 입고 다닌 지 4개월이 넘었다. 나는 내가 그저 치마를 입고 싶어서 입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내 마음 깊은 곳에 권력욕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가족의 장남이며, 우리 집안의 장손인 내가 가부장제를 싫어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단지 장손인 내게 없는 그 빼앗긴 권력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고 화장까지 하는 것이었다.

평소 유입 로그를 살펴보며 검색어를 그대로 넣어 검색해보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몰랐을 뻔했다. 오늘 그 검색어 살펴보기 덕에 훌륭한(!) 글[각주:1]을 두 개나 읽게 되었다. 『남자가 치마입기?(부제: 유선형은 권력이다.)(http://blog.naver.com/handzfree/220674595980)』를 먼저 보았고, 그 글의 링크를 통해 『구조론 심리학3. 남자들이여, 치마를 입어라! -오세(http://gujoron.com/xe/277606)』라는 글도 접하게 되었다.

앞쪽 링크의 글머리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남녀평등이 점점 구현되고 있는 지구촌에 아직도 남성들에게는 불문율 처럼 금기시되는 사항이 있으니… 바로 치마입기다. 여성들은 이미 남자옷을 다 입고다녀도 괜찮은 세상인데 남자들은 치마를 못입는다. 집안에서 쫓겨나고, 거리에서는 눈총의 대상이 되고…”[각주:2]

그리고 마지막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여하튼 극한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21세기에도 이러한 터부가 남아있는데 고대시대에는 얼마나 큰 터부로 인하여 인간들이 고통을 겪고 살았을지… 남성들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여성들에게 빼앗긴 권리를 찾을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남자들도 부디 유선형 본능을 되찾을 수 있기를…”[각주:3]

난 이렇게 깨달았다. 내 행동은 여성에게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이었다.


- 권력자 남성의 특징

그런데 난 집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안 쫓아내시던데? 거리에서는 그다지 눈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 자기 할 일에 바빠 나 같은 존재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난 이미 권력을 가졌나? 으하하하하 우리 가족 최고 권력자가 나라니, 황당해서 웃음 밖에 안 나온다.

글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여성의 옷은 사회에서 상위 계층이 입을 수 있는 옷의 형태이고, 여성의 머리 또한 상위계층이 누릴 수 있는 형태로 보인다.”[각주:4]


“물론 남성들도 머리를 기르던 조선시대까지는, 상투를 틀거나 등등 작게 만드는 기술을 사용하였으나, 일제시대 단발령이 내려지고 엄청난 남성들의 반발이 있었다. 즉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가 그만큼 낮아진다는 것에 반발했던것…”[각주:5]


“권력자 남성 복장의 치마형태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통털어서 전부다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치마나 긴머리나 모두 우아한 곡선으로 되어있다. 여성의 눈화장도 마찬가지, 마치 유선형의 날씬한 물고기를 보는듯하게 눈화장을 하면, 그것이 사람의 시선을 끈다.”[각주:6]


“치마나 긴머리와 마찬가지로, 화장 또한 고대시대에는 신분의 상징이였을 것이다. 신분이 높은자가 좋은 화장을 하여, 남들이 보기에 낮은 계층과 구분이 된다. 현대사회에서도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남자또한 화장을 하고 출연을 하는것을 보면 이런 추론이 크게 틀린것은 아닐듯 하다.”[각주:7]

난 권력을 가진 자의 상징으로 머리도 기른 것이고, 치마도 입고, 대충이나마 화장을 하는 것이었다! 난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 권력도 별 권력이 다 있다.

황당할 뿐이다. 권력도 별 권력이 다 있다. 어떻게 머리 기르기, 치마 입기, 화장하기가 권력이 될 수 있을까?

조선 시대의 머리 기르기는 유교의 영향이 강했다. 효경에 나오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불감훼상효지시야(不敢毁傷孝之始也)를 보자.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몸뚱이 터럭, 살갗으로 사람의 몸 전체를 이야기한다. 이런 몸뚱이를 수지부모(受之父母), 즉 어버이로부터 물려받았다. 불감훼상(不敢毀傷), 감히 상처입히지 않는 것이, 효지시야(孝之始也), 효의 시작이라는 내용이다.

머리 기르기가 권력? 분명, 권력과 아무 관계 없다고는 못 한다. 머리 기르기보다 유교의 가르침이 권력이었다. 유교의 경전을 공부하며 수백 년을 그게 당연한 듯 살아왔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부정당하니 기분이 어떻겠는가? 나라가 만들어내고 자신도 만들어낸 그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일 것이다. 부모에게 효를 다 해야 하는 세계관이 외부에 의해서 무너지니 한 반발이었지, 머리가 길다고 권력은 아니었다. 머리가 길다고 권력이면 상투를 왜 틀까?

치마 입기가 권력이라는 것은 뒷쪽 링크가 더 가관이다.

“바지는 보통의 남성들이 취하는 삶의 양식을 집약하고 있다. 남성은 기본적으로 잉여다. 김동렬님 말대로 유전적으로 보면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여자의 세력이며 잉여이다. 공동체의 세력을 확장하고 영토를 넓히기 위해 남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차피 단 한 명만 있어도 무방한 잉여이기 때문에  공동체에 의해 마구 소모된다. 주로 전쟁의 형태로 말이다.”[각주:8]

“그들은 마구 소모되니까 옷도 아무렇게 입는다.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데 적합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남성의 옷은 거의 기능 위주이고 실용성이 기준이 된다. 남성 옷은 그야말로 '위하여'의 집합체이다. 멋에 의하여, 아름다움에 의하여. 어울림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농사짓기 위해, 사냥하기 위해, 전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각주:9]

소모되기 위해 실용적인 바지를 입혔다고 한다. 바지보다 더 먼저 등장한 실용적 복장은 짧은 치마다. 바지보다 만들기 쉽고 동작의 제한이 적다. 바지는 실용적이지만, 바지 제작과정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가장 기본적인 패턴과 꿰맬 부분만 보아도 바지가 훨씬 번거롭다. 문화권과 별개로 기술적인 면에서 바지를 입는다는 것은 권력에 더 가깝다. 말을 타지 않는 이상 실용성은 짧은 치마가 훨씬 높다.

또한, 짧은 치마가 패션 일부가 된 것은 불과 백 년도 안 된 20세기의 일이다. 그 전까지 여성은 동작의 제한이 있는 긴 치마만 입어야 했으며, 그 긴 치마를 입고 가사 노동을 해야만 했다. 전쟁 때 생산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여성을 고용했지만, 그것도 대체로 바지보다 치마를 입어야 했고, 바지가 여성의 패션이 된 것은 더 이후의 일이다.

앞쪽 링크로 다시 돌아가 유선형을 권력이라고 끌어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치마나 긴머리나 모두 우아한 곡선으로 되어 있다. 여성의 눈화장도 마찬가지, 마치 유선형의 날씬한 물고기를 보는듯하게 눈화장을 하면, 그것이 사람의 시선을 끈다.”[각주:10]

그 전에 왜 남성은 화장을 안 해도 별말을 듣지 않는지, 왜 현대에도 여성보다 남성들이 덜 꾸미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온갖 미디어를 통해 강요받는다. 여성성과 아름다움이라는 말로 강요받는다. 물론 본인의 선택과 미적 감각 때문에 자신을 꾸미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출근길에 화장하는 여성들은 본인을 위해 꾸미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꾸미는 것일까? 그 꾸미는 행위가 권력이라면 왜 남성들은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꾸미지 않는 것일까?

앞쪽 링크에서 방송을 예로 들기도 한다. 방송 출연을 위해 화장한다? 정확하게는 분장이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의 특성에 맞게 만들기도 하고, 방송에서 카메라가 비출 때 그 사람의 모습을 뚜렷하게 잡기 위해서 꾸미는 것이다. 방송을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 분장이다. 방송에 출연한다고 무슨 권력이 생기는가? 방송을 봐도 돈 더 많이 받는 남성이 분장을 좀 더 적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 여성혐오

두 링크는 여성혐오이다. 여성혐오는 한문 글자 하나 만들듯이 해석해야 한다. 혐오라는 개인의 감정을 끌고 오면 끝이 없어진다. 사전에서 보통 “여성에 대한 혐오”라고 정의하는 데, 그 사전의 편찬자가 내린 정의일 뿐 정확한 뜻이 아니다. 학자들이나 정치권에서 사회문화, 범죄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현상을 논의하며 계속 새롭게 정의한다.[각주:11]

단순하게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야기는 여성혐오라는 현상과는 그렇게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혐오감뿐 아니라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행위, 여성에 대한 편견 등을 모두 포괄하며 남성, 여성 모두에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두 링크는 여성에게 강요했던 여성성을 왜곡하여 설명하고 있다. 머리는 기를 것을 강요받았고, 바지는 못 입게 했으며, 화장은 사회적으로 여성에게만 강요했다. 그것을 특권이라고 하며, 남성이 권리를 빼앗겼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혐오일 뿐이다.

졸지에 허울뿐인 권력자가 되었다.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태그가 유행할 당시, 나는 별로 망설이지 않고 썼다. 나는 항상 성 평등을 바라서 작게나마 항상 행동하고 있었다. 일상이나 취미, 업무에서 “그”와 “그녀” 대신 “그”, “학부모” 대신 “보호자”같이 성별이 들어가는 단어를 성별 중립적인 단어로 사용하고, 좌변기만 있는 화장실에서는 좌변기에 앉아서 소변 누기 같이 개인적인 것부터 조심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곳의 소수자 혐오도 보기 힘들었기에 변화를 바라는 마음에 사용했다. 앰네스티의 편지 쓰기나 서명하기처럼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이 한다면 힘이 생길 것으로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어디의 차별을 지적하며 고치려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이 태그의 유행이 나 자신이든, 세상이든 혹은 또 다른 누구든 긍정적 영향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 서양음악사에서 “여성”음악가

자신 있게 쓸 수 있던 또 다른 이유는 직업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범대 음악교육과 출신의 음악 교사다. 수업과 생활 지도에 대한 고민이 많다. 내가 가진 직업윤리 중 하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차별과 혐오를 내면화시키지 않는 것이다. 옳은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내 문제를 알려고 노력하고 반성할 거리를 항상 고민한다. 지금처럼 직장 없이 공부만 할 때는 더욱더 학생들과의 경험을 계속 복기한다.

나는 수업 준비를 정말 열심히 -삽질하며 오래- 했다. 학생들이 내 수업을 지루하게 여기는 것이 싫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하고 논문도 필요한 만큼 찾는다. 내 수업을 통해 편견을 갖게 하는 것도 싫고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을 피하고, 강의식 수업이라도 생각하며 참여하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그래도 내가 준비했던 수업은 다 부끄럽다.

그중 가장 덜 부끄러운 수업은 <서양음악사에서 “여성”음악가>라는 수업이다. 보통 음악사와 감상은 교육과정에서 문화사로 접근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분량이 많아 교과서는 훑어 보게 하거나 음악가 위주로만 제시되어 있다. 그래서 흥미를 주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주제를 갖고 수업을 만든다. 그중 성차별을 주제로 만든 수업이 <서양음악사에서 “여성”음악가>이다.

이 수업은 학생들도 재미있어했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성 평등에 관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썩 만족스러운 편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평소에 장난치면서 하는 성차별적인 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라는 태그를 자신 있게 쓸 수 있었다.


- 남성의 페미니스트 선언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

그런데,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태그를 사용한 후에 남성이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는 데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봤다. 어떻게 남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이 아닌데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며 좀 더 각을 세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를 페미니스트로 자처하는 데 조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난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그냥 평등주의자? 인권운동가? 그것도 아닌데…

표현할 말을 고민하다 보니 한동안 내 과거의 행동이나 말을 돌아보았다. 어릴 때 나도 모르게 따라 했던 말, 저질렀던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말이나 행동, 이기심에 귀찮아했던 행동 등이 떠올랐다. 선생님 댁에 갔다가 여자 선배와 과일을 같이 깎는데, 나는 예쁘게 깎고, 선배는 별로 안 예쁘게 깎았다. 그때 다른 선배들이 어떻게 여자가 남자보다 예쁘게 못 깎냐고 했던 것도 떠올랐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까다롭고 섬세하냐고 타박하던 것도 떠올랐다.

난 성차별의 덕을 본 남성이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내면화했던 성차별 의식이나 주변의 모습에 괜찮다고 생각하여 누군가를 곤란하게 하기도 했다. 성차별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덕도 보고 가해자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배우면서 조금씩 예전의 행동과 말을 부끄러워하고 하지 않으려 노력하긴 했지만, 난 페미니스트라기에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이후에 반성과 더불어 페미니즘에 관한 공부를 했다. 책과 뉴스, 페미니즘과 관련한 캠페인 영상 등을 통해 조금씩 페미니즘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었다. 또한, 주변의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덕에 더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나의 각성이 때를 맞춘 건 아닌 것 같은데, 유독 작년에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이나 남성성과 여성성에 관한 이야기를 뉴스에서 많이 보았다. 뉴스나 댓글을 보면서 성 평등을 바라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성차별의 형태가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꼬여 있는 사람 역시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나는 치마를 입는다

그러던 중 치마를 입게 되었다. 스타일-이랄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바꾸어보고 싶어 바지 위에 랩스커트를 덧입으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래서 치마를 찾아보던 중 여성복이라고 판매하는 것 중에 예쁜 옷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도 남성 캐주얼이라고 나오는 것보다 저렴하고, 모양도 다양했다. 니트도 사고 싶어서, 뭘 사볼까 찾아보며 고민하던 중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졌다.

그때부터 몇몇 사람에게 말을 꺼내며 상담받았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변태로 보는 것은 아닐까? 트랜스젠더라고 생각할까? 난 내가 남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성전환 생각도 없고, 세상이 여성적이라고 하는 행위는 할 줄도 모르고 할 생각도 없는데. 들은 답은 딱 하나였다. 그냥 입고 싶으면 입으라고. 몇 명은 덧붙여서 이왕 입을 거면 바지 말고 레깅스나 스타킹에 치마를 입으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말들에 용기를 내서 치마를 주문한 후에도 걱정은 여전했다. 내가 크로스 드레서로 살려고 하는 것이었나?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먼저 바지 위에 치마를 입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만나는 사람도 “어차피 남인데” 신경 쓸 필요 있냐고 했다. 성별과 관계없이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싶은 건데, 신경 쓸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지랖과 호기심에 뭐라고 하면 한 마디로 대답할 말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유니섹스? 메트로섹슈얼? 이것도 좀 부족했다. 계속 찾다 보니 젠더 비순응, 젠더 블라인드라는 개념이 나왔다. 순간 유니버설 디자인이 떠올랐다. 그래 난 젠더를 안 보고 싶고, 젠더를 감추고 싶은 쪽에 가까워. 젠더에 관계없이, 몸 형태와 관계없이 뭐든 입을 수 있는 것 아냐?

입다 보니 더욱더 용기가 생기고 편안했다. 그렇게 레깅스에 치마를 입었다. 거기에 용기를 더 내고 무릎 정도 오는 플레어스커트, H라인 미니스커트 등을 사고 편안하게 입었다. 주변 다른 사람들은 잘 어울린다고 하거나 별로 신경을 안 썼다. (아니면 몸매가 되니까 입어도 어울린다는 소리는… 하아)


- 여러 가지가 바뀌었다

그렇게 치마를 즐겨 입게 되다 보니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다. 모두가 아무 말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등에서 “게이세요?”, “그쪽이었어요?”, “여자가 되려고요?”라는 소리가 나왔다. 어떤 데서는 “너무 앞서 나갔다.” 나는 성별과 관계없이 옷을 입으려는 건데, 너무 앞서 나간 건가? 답답했다. 앞서고 싶어서 앞선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앞에 있던 건데…

화장실에서 놀라는 사람도 자주 보게 되었다. 이거야 치마를 안 입어도 머리가 길 때부터 있던 일이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이나 겉모습에 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트랜스젠더는 화장실에서 불편한 시선을 어떻게 할까? 1인 화장실이면 좀 낫지 않을까?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편한 화장실의 비율로 한쪽만 줄을 길게 서는 일도 줄어들 테고, 화장실에서 불편함도 덜할 텐데.

화장실뿐 아니다. 많은 편견이 겉모습으로 생긴다. 젠더 자체를 당장 없앨 수는 없으니 젠더를 감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과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더 억압을 풀지 못하면 젠더를 감추어서 억압에 저항하면 어떨까? 내가 남성이기에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젠더 블라인드라는 말로 표현하면 어떨까?


- 젠더블라인드와 페미니즘

젠더 블라인드라는 말과 치마 입는 남성에 대한 반응을 직접 보고 싶어서 사람도서관 모임을 개설했다. 만남 자리에서 내가 치마 입는 이야기와 젠더 블라인드,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았다. 만남 자리에서 내가 지향하는 부분과 페미니즘 사이에 통하는 부분이 보였다. 내가 하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는 페미니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모임이 끝난 후에 모임에서 했던 이야기를 곱씹어보았다. 그래도 나는 이 사회에서 남성으로서 유리한 부분 때문에 못 보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테니 페미니즘과 관련한 책을 찾기도 하고, 추천받기도 하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오면서 잘못했던 부분을 곱씹어 안 하려고 노력하고,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 것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공부하며 고민하던 중 ‘한남’인 내가 페미니스트 선언에 동참한 이유』를 읽게 되었다. 잊고 있던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태그가 떠올랐다.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다시 생각해보았다. 치마 입는다고, 불편함을 더 알게 되었다고, 공부했다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선언을 통해 내가 자격이 있을지 다시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선언한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자격이 아직 덜 되었다면 갖추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여성이 될 수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나타날 지 모를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분을 피하면서 인차별하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부터 성차별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이렇게 선언을 통해 다시 다짐합니다.

  1. 풉!! 2016.08.12 16:54 신고

    보빨러 추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향을 본 건 개봉한 주 평일 낮이었다. 관객은 반 이상 들어차 있었다. 얼마나 힘들게 개봉했는지 흘러나오던 이야기, 단체 관람을 시켜준 어느 교사 이야기, 소녀상 이야기, 위안부 협정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다른 관객도 나처럼 비슷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앉아 있을 것 같았다. 조명이 꺼지고 비상구 안내가 나왔다.

영화를 보면서 당황했다. 점점 기분이 나빠졌고, 머리도 아파졌다. 아리랑이 나왔을 때 소름이 돋고 구역질이 났다. 그래도 평소처럼 엔딩크레딧 끝까지 화면 보고 있었다. 중간에 울며 나가는 관객이 눈에 들어왔다. 왜 저 사람들은 울면서 나가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는지 얼굴 경련에 구역질이 더 올라오는데.


- 귀향에 대한 찬양뿐, 비평은 실종

나처럼 보러 갔다가 끔찍한 기분으로 나온 사람은 꽤 많았다. 하지만 영화 잡지에서는 그 끔찍함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이동진 평론가의 짧은 평 정도가 세련되게 영화의 문제를 지적한 정도였다. 그 외에는 영화 뒷이야기와 영화에 관한 긍정적인 기사만 있었다. 평론가가 아닌 일반 관객들이나 영화전문 사이트에서 댓글로 싸우고 있을 뿐이었다.

블로그에 글도 쓰고, 내 평에 대한 비난에 반박하면서 계속 기사를 찾아보았다. 몇 년 전 디 워 광풍과 26년에 대한 학습 때문인 건지, 영화를 볼 필요성조차 못 느꼈던 건지 몰라도 영화 자체에 대한 비평가들의 비평은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더 지나 300만이라는 흥행에도 여러 매체에서 비평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여전히 나오는 것은 얼마나 힘들게 영화를 만들었느냐는 감독 인터뷰, 단체 관람 미담, 출연자에 대한 소식뿐. 그러다 발견한 『[손희정의 영화비평] 어떻게 새로운 ‘우리’를 상상할 것인가』는 가뭄의 단비 같았다. 영화적 텍스트 비판에 머물지 말고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논의에 대한 스펙트럼을 줄일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지만, 비판적 논의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데 목을 축일 수는 있었다.


- 귀향을 불편하게 여기는 시선

1. 인간을 물건으로 여기는 모습

귀향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는 성폭력을 전시하는 장면이다. 그중 최악은 카메라가 하늘로 올라가며 쪽방촌 전체에서 벌어지는 강간을 동시에 보여주는 부분이다. 스너프 필름을 모은 전시회에 온 기분이 들었다. 실화를 묘사한다면, 그 묘사하기 위해 연기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상처는 어디 가서 회복해야 할까? 정신치료를 받으면서까지 묘사를 해야 할까? 아픔을 달래기 위해 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아프게 해야만 그 아픔을 달랠 수 있는 것일까?

맥락적인 당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을 후려치며 벗기는 장면, 초경도 하지 않았다고 실실대는 장면 등 단지 잔인함을 쌓아가며 잔인함의 절정을 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잔인함의 절정 후 각자의 이야기를 전시하듯 지나치며, 또 다른 잔악함의 전시만 풀어가듯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사건이 중첩되며 변화도 없이 쌓이기만 한다. 그 사건이 쌓이며 어느 인물도 변화 없이, 사건의 이유를 만들기 위해 소모적으로 이용하기만 한다.


2. 가부장적 민족주의 서사

또 불편한 부분은 가부장적 민족주의 서사이다. 극은 과거와 현재로 나누어 따로 나누어 진행하는데, 과거와 현재를 잇기 위해 공통점을 부여한다.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다. 여기서도 가부장적 차별이 나타난다. 아버지와 다르게 어머니는 “신비의 영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로 전락시켜 버린다. 그나마도 과거의 어머니는 복선의 역할이라도 하며 더 큰 의미를 주지만, 현대의 어머니는 아이를 신당에 두고 가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아버지 역시 장치적 역할에 불과하긴 하다. 하지만, 과거의 “아버지를 더 따르는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외동딸과 침략자에게 빼앗겨도 무력한 아버지”와 현재의 “아버지가 사랑스러운 외동딸이 강간당하는 모습에 분노하여 달려들다 죽는 무력한 아버지”라는 형태를 통해 딸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더 강하게 묶어 버린다. 여기에 목숨을 걸고 소녀들을 구출하는 광복군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등장할 때 아리랑을 내보내면서 “조국의 딸”이라는 가부장적 민족주의를 완성한다.


3. 굿을 통한 타자화

굿 또한 불편하다. 굿은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보다 가부장적 민족주의를 완성하는 장치로 등장한다. 굿을 통해 이어주는 것은 두 성폭력 피해자이다. 신기가 있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위안부라는 성폭력에 당하고 사망한 피해자를 빙의시킨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사죄하고 빙의된 이는 안심시킨다.

그 장면에 앞서 행정 기관에서 “내가 그 미친년이다”라며 생존자가 외치던 장면이 있다. 소리치는 행위를 통해 피해 사실을 숨기고 죄책감에 숨어 지내던 가엾은 이에서 생존하여 사과를 받아낼 주체로서 각성한 그는 이후 미안하다는 사과를 통해 다시 죄인으로 각하된다. 빙의한 이가 괜찮다며 사과를 받아주며 과거와 만나 갈등을 풀지만, 그렇게 성장을 뒤집으며 다시 무력한 개인으로 만든다. 그들의 당당한 주체로 사는 삶을 빼앗아 의존해야 할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 영화 자체를 텍스트로 삼은 비평이 먼저 필요한 이유

이런 불편함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그래서 영화라는 텍스트에 대한 비평이 더 필요하다. 진부한 재현에 대한 비판이라는 이유로 텍스트 비판도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귀향이라는 작품이 수많은 시민의 동참이 있기에 가야 할 지향점이 있더라도 텍스트에 대한 비판과 토론 없이 나아간다는 것은 영화라는 예술을 도구 취급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소재가 소재인 만큼 작품과 표현을 온전히 예술적인 문제로만 다루기 쉽지 않다. 표현 그 자체는 도구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자체를 다양한 시선으로 논하는 행위 없이 분노를 일으키는 정치적 도구로만 사용한다면, 체제 선전 영화와 다를 것이 있을까? 또한, 흥행한다고 우리에게 어떤 힘이 생기는 것일까?

힘들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중요하지 않다. 힘들게 만들지 않은 영화는 없다. 수많은 사람이 온갖 상상을 좋은 목적으로 영화로 만들고자 한다.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은 영화를 보고 이야기할 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관람 못지않게 비평은 중요한 예술적 행위이다. 그 진부한 예술적 행위를 계속하는 것은 창작이라는 예술적 행위의 좋은 밑거름이 된다. 비평가는 관람객을 비평하지 않는다. 작품을 비평한다. 당신이 보는 재미 자체를 공격하지 않는다. 더 좋은 예술을 위해 비평한다.

별로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생각하게 되는 영화가 있다. 2016년 3월 15일 현재[각주:1] 여전히 흥행하고 있는 영화 『귀향』이다. 이 영화의 이름을 접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경로이다. 귀향 흥행 기록 기사와 왓챠에 단 귀향 코멘트에 댓글이 달릴 때마다 오는 알림 때문이다. 특히 귀향 코멘트에 단 댓글을 볼 때 대부분 한숨이 나온다. 어떻게 읽으면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소재의 내용과 유래”에 대한 비난으로 생각한다.

뭐 거기까지는 좋다. 어떤 사람은 팩트가 없다고 하면서 영화를 본 팩트가 없다. 한국 사람을 강조하는 사람은 내 국적을 부정하려 한다. 그것이 정의롭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의 자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정의는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정의가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나마 『디 워』 때의 수준 낮은 논쟁에 비하면, 최근의 여성혐오 이야기와 페미니즘 이야기 덕에 훨씬 나은 수준의 이야기가 오간다. 그때의 막무가내 애국심에 비하면 다행처럼 보인다.

혹시나 나 말고 또 이런 댓글 달리는 사람이 있나 찾아보았다. 왓챠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특히나 비평가들의 이 영화 비판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이동진 평론가의 짧은 평이 세련되게 영화와 소재 둘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이 거의 전부다. 어쩌면 이 영화는 애초에 그렇게 평할 생각도 안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외적 논란이 두렵거나, 볼 가치를 못 느꼈거나.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평가는 어떤 부분을 중심에 두고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외적 의미, 내적 의미, 의도, 표현, 내용, 소재, 주제 등 다양한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중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외적 의미와 의도, 소재 등 작품 밖에서 애써 좋은 의미를 찾는 것이다. 어떤 예술이든 거기에서만 그치면 상업성 말고 남는 것이 없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한다고 안 좋은 것이 좋은 것이 되지 않는다. 애써 좋은 의미를 부여해도 표현 방식에서 혐오가 작용하면 옳지 않다. 문제가 있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 귀향 비난에 대하여 달리는 왓챠 코멘트

왓챠에는 『귀향』에 대한 감상 별점을 0.5점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코멘트를 달았다. 별점만 남으면 나중에 이유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 삼은 것은 군인들에 의해 희생된 사람을 군인들이 구하는 서사, 아리랑을 통해 강조하고 반복하는 민족주의적 시각, 성 착취의 전시였다. 정확하게는 아래와 같이 썼다.


내 예상 별점이 4.0이라니… 난 0점 주고 싶다.

군인들에 의해 희생된 사람을 군인들이 구하는 서사도 역겨웠고, 아리랑을 통해 강조하고 반복하는 민족주의적 시각도 역겨웠다. 굳이 쪽방촌의 성착취를 전체적으로 보여줄 필요도 있었을까? 애써 굿을 하기 위해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고놈의 아리랑이 흘러나와 사람 속을 다 뒤집어 버렸다. 그들의 피해는 민족적인 피해가 아니다. 개인적인 피해이고 사회구조적인 피해이다. 넋을 달래는 것은 그들의 아픔을 달래는 것이다. 그들의 아픔을 전시하는 행위를 통해 민족을 달래려는 그 시도가 굉장히 역겨운 영화였다.


여성으로 추정되는 사람이나 대부분은 “마음에 걸리던 부분”, “공감” 등의 이야기를 하거나 해석에 대한 다양성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한 명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어떻게 일제강점기 시대의 조선인 개개인들의 피해가 민족적인 피해가 아닐 수 있죠?? 시대를 좀 보세요. 위안부야 말로 실은 강점 치하에서 조선인들의 피해와 죽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위안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개인적인 피해인 세월호 사건만 해도 궁극적으로 사회구조적인 문제인데... 해방된지 겨우 70년 됐는데 먼 옛날 얘기고 내 얘기 아니라 이거죠? 결국 남의 얘기로 치부하니까 이따위로 평가 절하하는 것이라 보입니다. 말 그대로 남이사, 남이 죽든 말든 인 거죠. 민족이라는 거창한 말 필요없이 이웃이 끌려가서 당한 이야기입니다. 1988 쌍문동 이웃이 끌려간 이야기라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좀 쉽겠습니까, 야박하고 매정한 현대인들이여?

덧붙여 위안부가 사회구조적인 피해라고는 하셨는데 저는 동시에 민족적인 피해도 맞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 시대에 친일파 말고 어느 조선인이 자유로웠습니까? 독일 나치에 의한 유대인들의 피해가 민족적인 피해가 아니었나요???


저는 이렇게 야박한 현대인이 되었습니다. 성격이 그렇게 유들유들한 편이 아니라 바로 비꼬면서 민족적인 피해라는 말의 문제를 지적했다.


우와… 민족주의자는 별로 안 좋아합니다. 위안부는 민족적인 피해라기보다 기지촌까지 이어지는 여성적인 피해이고 사회시스템적인 피해입니다. 여성을 개인의 완전한 인격체거나 사회적 약자가 아닌 소유물로 치부하니까 민족적인 피해라고 하는 거죠. 여성이 민족의 소유물입니까? 거기에 위안부로 중국인까지 등장하는데 그걸 민족적인 피해로 축소하는 것이야 말로 반인권적이고 몰염치한 관점 아닙니까? 어때요? 나도 이렇게 당신의 말이 남의 이야기라고 주장하면서 매정하고 인간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개개인을 민족의 소유로 여기고 있고, 가족의 소유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곰곰이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다시 그는 본인의 주장을 번복하지 않은 채 반박을 위한 주장을 덧붙였다.


감독이 어느 부분에서 여성을 민족의 소유물로 바라봤습니까? 이 영화는 그야말로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영화입니다. 민족적인 피해로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고요, 아까도 말했듯 사회구조적인 문제임과 동시에 민족적인 피해입니다. 덧붙여 중국인을 등장시키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등장시킨 것이 오히려 탈민족적으로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실제로 네덜란드인 위안부 피해여성도 실존했습니다) 보편적인 일제의 폭력이고 피해의 역사였다고 말하는 게 보이지 않으시나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또 감정적으로 댓글을 달았다.


영화를 보긴 보셨습니까?

1. 한 번 등장한 중국인을 등장시킨 것이 보편적인 피해의 맥락을 이야기한다고 보기에는 무리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나요? 애초에 등장 안 시키면 모르되 한 명, 그것도 대화도 제대로 안되는 상황을 보편으로 승화한다고요? 그 장면이야 말로 중국인을 소모품으로 삼아 민족적인 피해라고 더 강변하는 장면입니다.

2. 칼로 희롱당하던 은경을 보고 은경의 아버지가 강도를 덮치려다 강도에게 살해 당하는 장면과 아버지를 사랑하던 정민이 일본 군인에 의해 납치 당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둘 모두 외동딸입니다. 이런 가부장적 질서의 병렬적인 나열을 통해 민족적 아픔으로 진입을 시도 합니다. 거기다 외동딸이라는 장치를 통해 무엇보다 소중한 아버지의 딸이라는 상징을 만듭니다. 더불어 접신이라는 것을 통해 동일시 하는데, 은경의 몸에 빙의한 것은 정민입니다. 이렇게 두 번째 연결고리를 만들어냅니다. 굿과 광복군의 구출이라는 것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려 합니다. 이렇게 세 번째 고리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에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리랑을 통해 모든 고리를 이어버립니다. 이렇게 다중적 장치를 통해 감독은 보편이 아닌 민족이라고 강변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와 실제 위안부 문제를 섞어서 생각하시다보니 영화의 수준이 낮음을 지적하는 것이 위안부 문제 자체를 피해 간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분리해서 평을 보면 확실히 다르게 느껴지실 겁니다. 그리고 왜 여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평가 점수를 낮게 주는지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며칠 후 뜬금없는 댓글이 하나 달렸다.


실제로 이 증언을 하신 할머니도 미군에 의해 구해진거 아니었나요?


이 글을 읽고 며칠 전에 페이스북에 내 블로그 포스트를 링크한 데에 비슷한 내용의 댓글이 달렸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단 댓글 내용은 생각나지 않아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최대한 영화와 실화를 분리해보았다.


실화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가 실화를 포장하는 방식의 폭력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아픔을 민족과 가족으로 포장해서 피해자의 아픔보다 국가와 민족이 아픈 것이라고 포장해버립니다. 개인에게 사죄하고 보상, 배상해야할 책임은 국가(일본)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사과받아야할 주체는 개인입니다. 국가(대한민국)와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상실감과 죄책감, 무력함으로 표현하면서 개인의 싸움을 돕기보다 분노를 분출하고, 개인을 삭히는 데 집중합니다. 전쟁의 주체 자체가 공포인데, 전쟁의 주체만이 해결할 수 있는 양 표현한 것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후로는 열혈 논쟁가들도 지친 건지 관심이 없어진 것인지 몰라도 문제 삼는 댓글은 더는 달리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페이스북에 달렸던 코멘트가 생각났다.



- 영화 『귀향』은 민족주의 성폭력 영화 포스트 링크를 건 페이스북 포스트에 달린 코멘트


페이스북에는 이전에 쓴 글의 링크를 올려서 포스팅했다. 여기 달린 첫 댓글은 이랬다.


내가 아직 안봐서 정확한 비평을 하기 어렵지만 링크한 이 비평은 필자의 표현대로 역겹군...

서사구조 어쩌고 말하는데, 귀향에 나오는 이야기 대부분이 할머니들 진술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여부에 대한 확인이 글쓰기와 비평의 기본인데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하고 막휘갈겼군.

글쓴이가 역겹고 불편했던 이유는 그것이 민족주의 성폭력 영화라서가 아니라 과거의 슬픈 역사가 부끄러워서 그런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비평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힘겹게 글을 봤는데, 정말 짜증난다. 

사실에 대한 비평(위안부 할머니의 고통이라는 사실과 귀향 영화라는 사실)은 없고 무식해서 불편한 자기 감정 배설 뿐이로군... 에효


솔직히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아직 안봐서 정확한 비평을 하기 어렵지만”으로 시작해서 “사실여부에 대한 확인”과 “사실에 대한 비평”이라는 말을 하며 사실에 대한 예의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과거의 슬픈 역사가 부끄러워서 그런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말과 “무식”하다는 말까지…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아는 사람과 페이스북에서 댓글 논쟁은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좀 방어적으로 이야기했다.


미안합니다… 제 글입니다…

영화를 보셔요. 진술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 진술을 어떻게 감싸느냐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몫이죠. 그래서 진술과 일치하더라도 포장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죠. 그래서 표현에 대해서 이야기 했어요.

고통을 표현할 때, 굳이 포르노그래피나 스너프필름을 보여줄 필요는 없죠. 위안부 할머니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은 이 영화에요. 강간 당하는 소녀의 아버지가 강간을 말리다 칼에 맞아 죽는 현대와 나라 빼앗긴 탓에 무력한 일제강점기의 아버지를 병렬로 나열하지요.

과거만 이야기했다면 훨씬 나았을 거에요. 굳이 현대로 끌어들이면서 아리랑으로 마무리 하지 않았다면… 난 여성을 도구적으로 다룬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에요


확실히 누그러진 투로 이야기하면 상대도 누그러지게 이야기한다. 달린 댓글은 이렇다.


귀향을 현재를 보았다면 더 적절한 토론이 가능했겠지. 할머니들이 당했던 일들에 대한 적절한 포장방법을 나는 모르겠더라. 그들이 겪었던 일들을 절절히 느끼게 할려면 그건 포르노 중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포르노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이외의 방식으로 만드는 경우 아무리 잘 표현해도 그녀들이 느꼈던 고통과 절망의 백만분의 일도 표현하지 못하지...

우린 그녀들의 아픔도 제대로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고 그런 아픔을 제대로 표현하도록 지원하지도 못하고 있지.

글에서 지적했던 것들은 모두 이 두종류 중 하나에 속해 있다. 영화나 영화제작자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사화상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그런 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했고 소화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지.

저예산과 공론화부족(이해부족) 속에 만들어진 영화지. 난 아에 칼리큘라처럼 더욱 명확하게 만드는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거기 나온 배우들 전부 심리치료 받아가면서 영화찍었다. 여배우들은 잠도 못자면서 영화찍었다더군...


저는 귀향을 보면서 그것을 왜 개개인의 아픔을 민족적 아픔으로 포장했어야 했는지 모르겠어요. 군인만 봐도 기겁해야 할 것 같은데, 군인에 의해 구출되는 장면에서 굳이 아리랑이 나와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메시지를 줘야 했을까요? 주인공이 아버지와 함께 노래 부르던 밀양아리랑도 아니고, 중간에 누가 부른 노래도 아니고 왜 하필 아리랑인 걸까요? 왜 아버지가 지켜주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반복한 걸까요? 중국인 위안부도 나왔는데… 왜 여성 개개인의 그 끔찍한 고통이 아니라 하필 민족으로 승화시키는 건가요…

심리치료 받아가면서 잠도 못자면서 영화 찍었다는 것도 끔찍해요. 누군가는 했어야 하는 일이라며 누군가 소모된다는 것이 무서워요.


영화를 보고나서 더 정확한 토론이 되겠지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메시지는 할머니들이 받은 피해가 그녀들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문제라는 점의 표현이다. 민족주의적인 표현일 수 밖에 없는 그 표현이 나온건 할머니들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부끄러운게 아니라 어린 아이들을 지키지는 못한 나라와 권력자들이 부끄러워 해야한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바로 세우셨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은 정확히 말하면 할머니들이 듣고 싶어 하셨던 말이다.

돈이든 대의든 직간접적인 강요해서 소모한 것이라면 매우 끔찍한 것이겠지. 그들은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다. 너역시 예술가이니 알겠지만 그들이 하고싶어서 한 일에 대해서 옆에서 뭐라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드러나지 않은 무의식적 강요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끔찍하다고 회피만 할 수도 없고 나는 끔찍해서 못하지만 타인은 다를 수도 있겠지...


솔직히 더 댓글을 달 자신이 없었다. 전의 포스트는 썩 잘 쓴 글도 아니었다. 분명 감정적인 글이었다. 차라리 왓챠에 달았던 댓글이 더 논리적이었다. 영화에서 여성문제와 사건의 폭력적 전시를 갖고 문제 제기했는데, 그 글에 대해 들은 평은 없고, 오로지 실제 사실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나보고 예술가라고 하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 예술가라고?


예술가, 난 예술에 속하는 학문인 음악에 대한 학위를 갖고 있다. 음악학사 딱 하나뿐이다. 그리고 악기 연주를 하거나 작곡, 편곡을 하기도 한다. 더불어 겉으로 보이는 나의 복장 역시 화려한 편이다. 거기에다 자아가 강해서 어디에 가든 충돌이 잦다. 언제나 끝까지 지지 않으려고 해서 더 충돌이 잦다. 그래서 그런가? 주변에서는 나를 볼 때 예술가로서의 인상이 강한 모양이다.

예술가라는 인간은 대체 어떤 인간일까? 타인의 행동을 모두 이해하는 인간일까? 타인이 하고 싶어서 한 일에 대해서 가만히 두는 인간인 걸까? 대의가 따른다고 뭐든 하는 인간인 걸까? 예술이 사회 안에서 예술 행위로서 기능하려면 창작자, 작품 공연자, 관람자가 있어야 한다. 거기에다 평가하는 행위도 있다. 예술가는 타인의 예술 행위의 장단점을 분석하거나 문제를 제기하여 반면교사 삼을 기회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이해해야 할까, 예술가이기 때문에 문제를 더 제기해야 할까?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문제를 더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직업은 직업윤리라는 것을 갖는다. 모두가 합의한 것이 아니어도 각자 직업윤리라는 잣대를 갖고 있다. 나는 목적을 갖는 예술의 존재를 인정한다. 단 그런 예술의 경우 “어떤 목적을 위한 예술을 한다면서 예술을 위해 목적이 되는 존재를 소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잣대로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그 예술에 외부적 목적이 있다면 중간 목표가 있을 것이고, 목표 달성을 염두에 두고 어떤 과정으로 할 것인지 고민이 있을 것이다. 일단 목적이 옳다면,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목표를 설정하든 상관이 없는 것일까? 그 목표도 옳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정이 어떻든 문제가 없는 것일까? 오랜 시간을 진행하다 보면 목적을 잃고 표류할 수도 있다.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목표 역시 바르게 설정했다면, 그 목표를 위해 어떤 과정을 선택하든 상관이 없는 것일까?

그래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품과 소재를 적절하게 분리하려 노력해야 한다. 소재는 그 자체로 주제가 아니고, 수많은 요소 중 하나다. 소재가 집중적으로 드러나게 되면 주제를 해치게 된다. 혹은 소재 자체가 목적이나 목표가 되면 소재를 전시하는 데서 그치게 된다. 만약 소재가 인간의 어떤 삶일 경우 재현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가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소재의 분리는 굉장히 중요하다.

목표 중 하나가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한 고발일 경우 소재의 전시는 고발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쉬운 방법이 된다. 그래서 예술가는 소재의 전시라는 쉬운 선택의 유혹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소재를 전시하지 않고 고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행위는 정말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미덕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길에 소재가 된 존재 혹은 소재를 다루는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다친다면 그것은 윤리적인 행위일까?



- 내 비판은 당신의 마음을 판단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감상은 작품과 상호작용하는 주체적인 예술 행위이다. 사람에 따라 작품의 목적, 작품의 내용, 작품의 소재, 작품의 제작 과정 등 작품 안에서 관심을 두는 부분이 다르다. 또한, 살아왔던 삶, 신념, 평소 관심사, 계층 모두 다르다. 그래서 개개인이 작품을 감상한 후, 혹은 감상하며 상호작용하는 사이에 파생되어 나타나는 것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작품 자체가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고발이라는 데서 응원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나처럼 작품 자체가 비윤리적 행위를 전시한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민족적인 정서를 자극하여 민족의 치유에 중점을 두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나처럼 민족적인 정서로 개개인의 피해를 덮는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형태의 상호작용이다.

다른 의견이 나온 것은 똑같이 작품에 대한 다른 형태의 상호작용이 나온 것일 뿐이다. 소재가 된 사람이나 소재가 된 내용을 비난하는 행위가 아니다.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대부분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이다. 영화를 본 것은 그 공포에 대하여 전시하는 것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재가 된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기 위해서 본 것이다. 그들은 그 마음에 공감했기 때문에 더 불편해서 비판한 것이다.

나도 비슷하다. 그래서 감독의 표현 방법이 불편했다. 실화라고 해도 극영화라는 예술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내내 영화에 대해서만 지적했다. “영화가 실화를 포장하는 방식이 폭력적”이라고 느꼈고,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아픔을 민족과 가족의 아픔으로 포장”하여 “피해자의 아픔보다 국가와 민족의 아픔”으로 바꾼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 영화가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과 2015년 위안부 문제 협상의 폭력성,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에서 멋대로 합의해서 돈을 받아 탕진한 아버지의 폭력성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두 협상 모두 “개인에게 사죄하고 보상, 배상해야할 책임은 국가(일본)”에게 있고, “사과받고 배상 받아야 할 주체는 개인”인데, “국가(대한민국)와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멋대로 대신 받고 알았다 해서 문제가 된 것이다. 밀양에서 있었던 집단성폭력 사건 역시 친고죄 조항 덕에 합의 종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2차 피해뿐 아니라, 멋대로 합의해서 돈을 받아 가로챈 아버지가 있던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비슷한 모습이다.

그런 협상과 사건들이 있었는데, 아직도 싸우는 분들을 두고 영화는 그 사건을 “상실감과 죄책감, 무력함으로 표현하면서 개인의 싸움을 돕기보다 분노를 분출하고, 개인을 삭히는 데 집중”한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전쟁의 주체 자체가 공포인데, 전쟁의 주체만이 해결할 수 있는 양 표현한 것”을 보고 이후에도 이어지는 여성을 성적 도구화한 기지촌까지 생각나서 다른 방법으로 해석할 수 없었다.

이건 내가 아는 것과 내가 겪은 것, 나의 사고방식에 의한 나의 상호작용이다. 위안부 피해자를 부끄러워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영화 때문에 더 상처받을 사람이 있을까 마음이 더 아팠다. 나는 그들의 아픔을 대리할 수 없다. 작품도 그들의 아픔을 대리할 수 없다. 작품의 관람도 그들의 아픔을 대리할 수 없다. 작품이 알려진다고 해도 그들의 아픔을 대리할 수 없다. 자칫 주체가 바뀌는 일이 생길까 두려운 것이 내 상호작용의 배경이다.

타인의 상호작용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영화를 보고 느낀 마음이 옳다 그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이 영화를 만든 과정을 보고 느낀 마음이 옳다 그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이 느낀 영화의 소재에 대한 아픈 마음이 옳다 그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를 이야기할 때 외적인 요소를 끌어오는 것은 소재가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거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당신의 마음을 옳다 그르다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1. 포스팅한 날짜가 아닙니다. 글을 오래 쓰다보니 글 쓰던 중에 기록한 날짜입니다. [본문으로]
  1. 얌마 2016.08.12 16:56 신고

    니가 그냥 관종인거야.

  2. ㅇㅇ 2018.06.01 12:52 신고

    위안부는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민족의 역사인 것도 사실.
    그것을 어느 방향에서 입각하여 본다 한들 개개인의 아픔이 희석되는 것도 아닌데, 굉장히 자기본위 적인 분석이시네요.
    애초에 다른데서 싸운 걸 댓글까지 퍼와서 이리 올리는 걸 보면 성격에서도 자기중심적인 부분이 엿보이고요.
    "내가 맞아"만을 주구장창 반복하고 있는 건 님도 마찬가지인듯.

    • 당연히 자기 본위적인 분석이지요. 원래 객관이라는 것은 굉장히 권력중심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입니다. 그래서 주관적 분석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주도적이지 않고, 객관적인 척으로만 생각하면 세상에 어떤 새로운 생각이 등장할까요?
      내가 맞다고 주장하기 위해 다양한 근거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 근거를 내세우지 않고 나만 맞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토론에서 문제지, 그게 아니면 뭐가 문제일까요?
      저는 아나키스트입니다. 민족 중심의 역사로 보았을 때, 민족이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각 지역이라는 작은 공동체, 그 시대 특유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시각에서 바라본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방향에서 본들 개개인의 아픔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겠죠. 하지만, 민족주의적 해석이 경계되어야 할 것은 일본군 위안부 이후 미군기지 중심의 기지촌이라는 성매매 집결지를 국가가 묵인과 방관뿐 아니라 장려했던 것, 일본인의 기생관광을 묵인하고 방관했던 현대사까지 생각하면, 민족의 역사는 그들의 희생을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픔의 전시가 완전히 불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전시하는 방식의 폭력성, 그것을 전시하는 배경에서의 민족적 폭력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민족성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대처했었나요? 병자호란 직후에는 환향녀에서 ♪♩♪♪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단어,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알면서도 쉬쉬했던 해방직후,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명목으로 민족의 일꾼이라면서 뒤로는 욕했던 기지촌, 관광산업으로 외화를 벌어들인다며 그대로 두었던 기생관광. 이런 배경이 있는 데도 내셔널리즘을 꼭 강조해야 하는 것일까요?

봄이 왔다. 꽃눈이 생겨나고, 피어나는 것이 보이니 마음은 벌써 따뜻하다. 그런데 아직 꽃샘추위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 추운 날도 있다. 그럴 때 치마 입기 좋은 계절이라고 살랑살랑 얇은 스타킹(그래 봐야 80데니어짜리)을 신고 나갔더니 다리가 좀 시렸다. 150데니어짜리 신었으면 훨씬 나았을 텐데.

그런데, 문득 다리털 걱정이 생겼다. 안 그래도 겨울에 털이 스타킹이나 레깅스 밖으로 삐죽삐죽 나올까 싶어 다리털을 제모했었다. 다리털을 제모할 때 제모 크림, 왁싱 테이프, 족집게, 면도기를 이용했다. 제모 크림은 편했다. 그런데, 피부에 안 좋대서, 왁싱 테이프와 족집게, 면도기를 조금씩 썼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피부에 좋을 리가 없었다.

여하튼… 이제 따뜻해지면 그에 맞춰서 점점 스타킹이 얇아지거나 없어야 한다. 내가 더운 걸 견디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면 잘 비쳐서 다리가 더 잘 보이거나, 맨다리로 다니게 될 것이다. 그러면 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짧으면 삐쭉삐쭉해서 별로 보기 안 좋을 것 같은데… 그럼 잘 뽑고 다녀야 할까?

요즘 수염을 깎는 경우보다 뽑는 경우가 더 많다. 집에서야 일회용 면도기 대신 날 교체형 면도기 쓰니 상처 날 일이 거의 없지만, 상처라도 나면 꼭 염증이 생긴다. 그리고, 면도하고 나면 좀 따가운 것도 싫다. 그래서 요즘에는 수염을 깎기보다 뽑는 경우가 많다. 잘 안 깎이는 부분이나 면도하다 상처 나기 쉬운 부분 위주로 뽑다가 이제는 매일 면도하는 것이 귀찮아서 며칠에 한 번씩 눈에 띄는 것만 뽑고 있다.

점점 따뜻해지니 여러 가지 다 걱정이다. 털이 있으면 보기 안 좋을 것 같은 부분 때문에 걱정이다. 수염이야 항상 관리하는 부분이고 좁은 부분이니 덜 힘들 것이다. 그러면 다리는? 나 다리털을 잘 제모해야 하는 걸까? 가만, 다리털이 있으면 안 되는 걸까?

아아… 다리털 안 보이는 짧은 치마 입은 모습이 더 익숙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다리털과 안 어울리는 것일까? 어렵다. 고민거리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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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를 공부하다 보면 20세기까지 유명한 음악가들은 거의 남성이다. 특히 음악 교과서의 음악가는 클라라 슈만 정도가 로베르트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와 함께 로맨스 정도로 언급되는 정도에 불과하다. 굳이 교과서가 아니라도 클라라 슈만은 남편 로베르트 슈만과 평생 자신만을 짝사랑한 브람스와의 관계 정도만 이야기될 뿐이다. 왜 여성은 음악사에서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일까?


- "여성"음악가에 대한 말

계몽시대 자연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Jaques Rousseau)는 “여성들은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무엇이든지 깨닫고 배우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각주:1]고 했으며,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역시 부정적으로 보고 “여성 전체 중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을 지닌 여자일지라도 예술 분야에서 참으로 위대하고 순수하고 독창적인 업적은 단 한 가지도 이룩하지 못하였다.”[각주:2]라고 했다.

이 두 유명 철학자의 말대로 여성은 타고나지 못한 것일까? 20세기의 심리학자인 칼 시쇼어(Carl E. Seashore)는 『왜 위대한 여성 작곡가는 없는가(Why No Great Women Composers?)』라는 에세이를 통해 ‘위대한 작곡가의 조건으로 음악적 기질, 타고난 재능 등의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는 창의성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창조적 능력은 유전보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각주:3]

지금 음악가들의 성비뿐 아니라 대학 음악과(음악교육과 등 관련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학과를 포함한)의 성비를 생각해 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험에 의하면 남학생들이 존재한다는 생각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시쇼어가 언급한 위대한 여성 작곡가 존재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음악전공자의 수 먼저 살펴보면,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는 여성의 수가 많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여성 작곡가라고 알려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환경의 영향이라면 후천적이라는 이야기인데, 어떤 후천적 영향이 있던 것일까? 능력과 관련한 후천적 영향은 학습과 교육 정도로 볼 수 있을 텐데, 19세기, 아니 가깝게 20세기만 살펴보아도 대졸자 비율은 남성이 훨씬 높다지만, 현재는 여성의 비율이 더 높고, 음악과는 압도적일 정도다.

이제부터 위대한 여성 음악가의 비율이 늘까? 글쎄 난 부정적이다. 능력 때문이 아니다. 아직 사회적 환경은 그렇게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아직 가부장제는 공고하다.


- 가부장제와 "여성"음악가

서양음악사에서 “여성”음악가의 존재가 드러나기 힘들었던 것은 가부장제의 탓이 크다. 가부장제는 집안의 남성 연장자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는 가족제도이다. 가부장제 아래 가족에서 가장 큰 권력자는 가장이라는 이름의 아버지와 장남이다. 가부장제에서는 이들이 가정 안에서 존중받는 모습을 외부에 보이는 것과 외부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가부장제는 대가족이 아닌 핵가족과 유사한 형태에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장남 유고 시 차남 혹은 그 아래 남성의 존재는 가부장제에서 중요한 존재였다. 집안의 명예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집안의 명예에서 남성보다 뛰어나거나 잘난 여성의 존재는 가부장제에 해가 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가부장제 유지를 위해 여성이 성인, 혹은 결혼 가능한 시기가 가까워지면 그들의 재능을 숨기고 “여성”으로서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 유명한 모차르트, 그러니까 18세기 말에 활동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어릴 때 누나인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애칭 나네를)와 함께 남매 신동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성인이 되자 볼프강만 데리고 다닌다. 당시에 여성의 역할이라고 했던 아내로 사는 삶을 위해 신부수업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는 여성이 음악 활동을 하는 것도 환영하지 않았다.

변화의 과도기였던 18세기였기 때문일까? 시간이 흘러 자유로운 인간의 사고를 찬양하던 19세기도 여성의 음악 활동이 제한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들었던 클라라 슈만은 작곡이나 피아니스트로서의 업적이 아니라 극적인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졌다. 남편 로베르트 슈만과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소송전을 통한 결혼, 먼저 죽은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평생 헌신한 삶, 천재 음악가 브람스가 평생 짝사랑했던 이야기. 클라라 슈만은 음악사에서 주체가 아닌 객체로만 남아 있다. 그것도 그나마 그 천재 음악가들 사이의 로맨스가 유명해서 이름이 많이 남은 것이다.

파니 헨젤은 한여름 밤의 꿈 중 결혼행진곡, 무언가, 바흐의 재발굴로 유명한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나이다. 그의 작품은 펠릭스 멘델스존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본인의 이름으로 출판하는 것은 가족의 굉장한 반대가 있었다.[각주:4]

“시작부터 네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단다....나는 출판을 시작했어. 내가 출판하는 것으로 인해 네가 불명예를 당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창작을 위한 자극을 항상 필요로 해왔어.”[각주:5]

위와 같은  편지가 남아 있을 정도였다.

파니 멘델스존의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도 이야기하였다.

“음악은 펠릭스에게는 직업이 될 수 있겠지만, 너에게는 결국 장식에 불과할 뿐이며 너의 존재나 활동의 기반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펠릭스에게는 명예와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야망이 무척 중요한 일이란다. 왜냐하면 그는 음악을 천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너에게는 정숙하게 행동하는 것이 곧 명예로운 일이란다. 가령, 동생에게 쏟아지는 갈채를 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함으로써, 타인으로 하여금 너 또한 존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리라. 여자스러운 것만이 여성의 자랑이 될 수 있으니까.”[각주:6]

그런데 가부장제는 여성에게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일까? 


-성차별의 비극 "카스트라토"

교회에 고음 성악가가 필요했지만, 여성에게 노래를 금지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남성이 가성과 기교를 통해 소리를 내는 카운터테너를 사용하였다. 카운터테너는 가성(falsetto)을 사용한다고 하여 팔세티스트(Falsettist)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이 팔세티스트는 별로 선호되지 않았다. 하지만, 보이소프라노로는 한계가 있는 데다 오페라의 등장과 로마 주변의 여성 성악가 제한으로 팔세티스트가 필요했다.

17~18세기 들어 여성 성악가들을 고용하지 못하는 로마와 그 영향을 받는 지역에도 고음 성악가들의 수요가 많아졌다. 하지만 고음 성악가의 양성이 어려웠다. 소년 단원의 주기적 교체, 팔세티스트의 갈라지는 것 같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평생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는 카스트라토가 주목받았다. 당시 팔세티스트의 목소리는 인공적인 소리로 간주하였지만, 카스트라토의 소리는 ‘자연스러움’, ‘진실함’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카스트라토를 더 선호했다.

카스트라토는 남성 호르몬을 생산하는 고환을 변성기 전에 제거한 거세 성악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카스트라토에 대한 선호 때문에 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해마다 4000여 명의 소년이 거세될 정도였다. 1903년 공식적으로 금지하기 전까지 수많은 소년이 남성성을 제거당했다.[각주:7] 심지어 성공한 카스트라토는 1% 내외에 불과했고, 나머지 카스트라토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카스트라토의 삶을 일부 엿볼 수 있는 영화 『파리넬리』를 보면 파리넬리는 형이 작곡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발판으로 쓰이기 위해 거세당한다. 가부장제와 성차별의 화살이 어린 남성 아동을 향한 것이다.


차별과 배제는 당하는 이가 정당하게 학습한 내용과 재능을 묻어버리는 일뿐 아니라, 다른 형태로 차별과 배제의 주체인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공정함을 원하면 “역차별”이라는 말-이 되는지 알 수 없는 말-을 쓰기보다 내 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권리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 아닐까? 다른 쪽에서 받은 차별을 더 만만한 곳에 쏟아내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각주:8]

  1.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3 재인용 [본문으로]
  2.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1 재인용 [본문으로]
  3. Carl E. Seashore, “Why No Great Women Composers?”. Neels-Bates, Carol(ed). Women in Music : An Anthology of source Readings from the Middle Ages to the Present. Boston: Northeastern University Press, 1996, p.299. 『음악사 다시 생각하기 : 19세기 여성음악가들의 글을 중심으로』, 홍인경,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2008) p.20 재인용 [본문으로]
  4.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27 [본문으로]
  5. Marcia J. Citron. "Fanny Medelsohn Hensel: Musician in Her Brother's Shadow". Women Making Music: The Western Art Tradition, 1150~1950.(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86)p.158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46 재인용 [본문으로]
  6. 에바 리거, 『서양 음악사와 여성』, 김금희 역(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1), p.259,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6 재인용 [본문으로]
  7. 『카스트라토와 카운터테너에 대한 연구』 전영호, 중앙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 성악전공 석사학위 논문(2006) p.26~27 [본문으로]
  8. 이 글은 내가 학교에서 서양음악사 수업을 할 때 한 번씩 하는 수업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내용을 갖고 수업하는 이유는 이 각주가 달린 문단이다. 혹시 수업자료가 필요하신 분은 보내드리겠습니다. 토론이나 질문도 환영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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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마키나(Ex Machina)』가 아카데미에서 각본상 후보에 오르고 시각상을 수상한 기념으로 하는 포스팅입니다. 2015년 1월 24일에 쓴 글을 리뷰 겸 해서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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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마키나』는 상징으로 똘똘 뭉쳐 있다. 제목부터 이름, 내용까지 모두 상징으로 뭉쳐있다. 마지막에는 그 긴장과 상징을 행동을 통해서 전부 풀어준다. 덕분에 다 본 후에도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고, 안에서 풀어낸 이야기에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중간에 언급된 프로메테우스의 불(기억이 확실하지는 않다)이나, 오펜하이머가 해서 유명해진 말 등을 통해 더 많은 힌트를 얻어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Ex Machina


Deus ex machina 에서 신(Deus)을 빼는 것을 통해 기계로부터 온 신이 아닌 극의 갈등 해결자를 암시한다. 더불어 니체의 말 “신은 죽었다”를 대신하여 극 중 신의 죽음과 새로운 가치인 기계 장체로 만든 인격의 등장으로 인한 갈등도 암시한다.


Nathan

이름의 뜻인 “신이 준”과 현재 상황이 문제 될 수 있음을 알려 통제하려는 예언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부여받는다. 동시에 입체적으로 신(Deus)의 지위를 받아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낸다. 네이든은 오펜하이머가 함으로써 유명해진 말인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라는 말을 칼렙의 입을 통해 듣는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하기도 하는 오펜하이머를 통해 프로메테우스가 갖는 신의 지위만 이어받는다.


Caleb

이름의 뜻인 “개”, “신에 대한 헌신”처럼 신이 된 네이든에게 헌신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동시에 입체적으로 신이 아닌 존재를 사랑하는 지위를 부여받는다. 네이든에게 오펜하이머가 함으로써 유명해진 말인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라는 말을 통해, 네이든을 신의 지위로 만듦과 동시에 자신은 프로메테우스가 갖는 신의 지위는 갖지 않고 신이 아닌 존재를 사랑하는 역할만 부여받는다.


Ava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이름의 뜻인 “생명”(신이 인간이 된 덕에 새로운 방식의 생명), 그 이름을 가진 최초의 여자인 “자유의지를 지향하는 인물”로서의 역할만을 부여받는 전형적 인물로 나타난다. 심지어, 연구소는 에이바가 움직이기 위한 원동력인 전력을 무선으로 받을 수 있게 하여, 에덴의 지위까지 얻는다. 단,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탈출하는 인물이다.


이렇게 뜯어보다 보니 A.I.에 관한 과학적인 면이나 여러 가지 소재의 언급보다 이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어쨌든 이렇게 이름을 짓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 그리고 종교의 경전과 신화는 이야기의 보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 영화 『귀향』의 문제

며칠 전 영화 『귀향』을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중간중간 눈을 뜨기 힘든 장면도 있었다. 그래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면서 계속 보았다. 같이 보자고 했던 여자친구는 나한테 미안해하고, 본인도 굉장히 힘들어했다. 내가 한동안 침울한 표정을 지었는지 내내 내 표정을 계속 신경 쓰며 본인을 탓했다. 나도 보려고 했던 영화라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계속 자신을 탓했다. 영화 자체의 문제인 건데…


- 문제1. 성폭력의 전시

영화를 보기 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과는 달리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두 이야기가 병렬로 진행하는 줄 알았다.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가 왜 굿당에 왔는지 이해할 수도 없기도 했고, 초혼을 통해 넋을 위로하기 위한 서사를 만들기 위한 것일 줄 알았다.

그런데, 현대의 소녀와 과거의 소녀가 끔찍한 폭력에 시달리는 장면이 등장했다. 현대에서는 칼로 더듬다 아버지를 찌르는 장면이었다. 일제강점기는 온몸을 후려치고 벗기는 장면, 단체 책임을 물어 강제로 옷을 벗게 만드는 장면, 강제로 섹스를 시도하는 장면, 초경도 않은 열네 살 처녀라고 실실대는 장면 등 끔찍한 장면을 너무 많이 등장시켰다. 최악은 카메라가 하늘로 올라가며 쪽방촌 전체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강간이었다. 스너프 필름을 모아서 동시에 전시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형태의 성폭력 전시는 무슨 의미로 한 것일까? 끔찍한 사건을 끔찍하게 묘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공분할 일이니 잘 보고 제대로 분노하라는 것일까? 왜 저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저런 연기를 해야 했던 것일까? 그 사람들은 정신적 상처를 입지 않을 자신이 있던 것일까? 아니면, 감독은 정신적 상처를 주지 않을 자신이 있던 것일까?


- 문제2. 군인이 끌고 가고 군인이 구출하는 서사

또 하나 끔찍했던 것은 일본 군인을 해치우고 소녀를 죽음으로부터 구출하는 장면이었다. 전투장면이 어찌나 유치하고 어설픈지 끔찍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장면의 끔찍함은 서사 구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본 군인이 납치해 가고 일본 군인이 관리하며, 일본 군인이 계속 이용하다 완전히 없애버리기 직전 구출하기 위해 나타나는 광복군(으로 추정)이라는 서사라는 생각이 든 순간 욕지기가 올라왔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인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서 구출하러 왔다는 대리 만족을 주기 위한 것인가? 그 와중에 소녀를 끝까지 죽이려는 일본군의 잔악함을 전시하며 구출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끔찍하게도 끔찍할 뿐이었다. 군인에게 당해 온 사람이 군인을 다시 만난다는 것 너무 폭력적이다. 이후 미군기지에 비슷한 기지촌을 묵인하고 한국을 부자로 만들자고 했던 군사정권 시절의 한국 정부를 생각하면 이 영화는 피해자를 농락하는 수준이다.


- 문제3. 굿의 과정과 결과

그래도 굿을 하며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내가 왜 마음을 다지는 노력을 하며 봐야 했는지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노력해서라도 피해자를 위한 마음으로 끝까지 보려고 했다.

영화를 보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굿도 우스웠다. 살아 있는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을 생각하면 살아있음 자체도 죄로 만드는 것 아닌가? 왜 하필 성폭력 피해자인 그를 신들리게 하여 성폭력 피해자의 혼을 씌운 것일까? 공통점이 있어서?


- 문제4. 아리랑과 민족주의

공통점을 굳이 따져보자면 강간을 당하다 아버지를 잃은 소녀는 강간당하고 나라 잃은 민족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개개인의 피해를 개개인의 처지로 다독이거나 구조적 문제로 나타나는 성폭력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뜬금없는 아리랑의 등장은 그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영화를 볼 때 들리는 아리랑은 그렇지 않아도 이제까지 듣던 아리랑 중 가장 역겨운 아리랑이었다. 민족주의적으로 그들의 아픔을 다룬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역겨웠다. 『디 워』의 아리랑은 부끄러워 미칠 것 같은 아리랑이었는데, 여기 아리랑은 아리랑과 민족을 역겹게 만드는 『디 워』보다 더 한 최악의 아리랑이었다.


- 성폭력을 다룬 다른 영화는 어떻게?

『귀향』을 본 다음 날, 오스카 이야기를 하다 다시 영화를 보게 되었다. 평소에 배우의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않아서 배우들 이름을 잘 모르는데, 몇몇 영화로 익숙한 마크 러팔로가 나오고 오스카 후보라고 해서 더 보고 싶었다. 마침 개봉했고 상영관이 있었다. 시놉시스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도 성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였다. 그 영화는 『스포트라이트』다.


맥과 아이폰을 사용하다 보니 검색 도구인 스포트라이트를 먼저 생각했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그게 아니라 “보스턴 글로브”라는 언론의 집중 취재팀 이름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이 집중 취재팀이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폭력 스캔들을 취재한 과정을 그린 실화 기반의 영화이다. 

전날 본 『귀향』과 다르게 한결 개운한 기분으로 나올 수 있었다. 찝찝하거나 불편한 구석이 별로 없었다. 피해자의 피해를 전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피해를 이야기할 때 괴로워하는 모습은 보여주되, 아동을 성추행하거나 강간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 않았다. 사건과 가장 직접 관련된 영상이라고 해봐야 경찰서에서 기소하지 않는 장면일 정도로 피해자의 피해장면을 고발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 도구로 쓰지 않았다.


『스포트라이트』는 취재과정을 그렸기 때문에 전시하지 않을 수 있는 충분한 배경이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2013년 작인 『한공주』를 살펴보면, 얼마든지 선정적으로 그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공주』는 성폭력 문제를 피해자를 둘러싼 사람 위주로 다룬다. 강간 장면이 등장하지만, 『귀향』처럼 피해자의 신체를 불필요하게 전시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고통을 보여주어 감정의 당위성을 드러내는 것 역시 얼굴과 흔들림 정도로만 묘사하여 최소한으로 비춘다.

『한공주』라는 영화를 언급하다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이 영화가 영화관에 정식 개봉했던 2014년 밀양시 교육지원청에서는 각 학교 관리자에게 과장되게 밀양을 욕보이는 영화라며 교사들이 보지 않을 수 있도록 협조 요청을 한 적이 있다. 영화에 실제 사건은 더 큰 피해가 있었으나 영화에서는 축소해서 이야기했다는 식의 자막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왔던 나는 실제 사건은 더 굉장했고, 영화제 때는 모르겠지만, 현재 그런 자막은 들어가 있지 않으며 잘못을 인정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관람하자고 하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서 『한공주』와 관련하여 보지 말자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 밀양시 전체에서 그 보지 말자는 말은 거의 무시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 그러면 『귀향』은 성폭력을 어떻게 다루어야 했나?

그러면 『귀향』은 위안소의 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했을까? 별거 없다. 민족주의 빼서 다루면 된다. 더불어 군인이 납치하고 군인이 구출하는 서사가 아니어야 한다. 또, 굿을 할 때 신들리는 이가 성폭력 피해자이며 현장에서 아버지가 죽는 이야기를 없애거나, 충분한 개연성을 줄 필요가 있다. 스너프 필름 전시하는 듯한 쪽방 위안소 전체 묘사를 빼고, 인물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영화 전체가 문제라서 싹 갈아엎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성폭력을 관찰하는 것이 성폭력에 대한 2차 가해라는 것을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찬양이 좀 없어지고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좋겠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 ㅉㅉㅉ 2016.08.12 16:53 신고

    이 생키는 시발 무슨 프로불편러인가

욕설이 가득한 기사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에는 감정적인 댓글이 많이 달린다(단체로 같은 것을 보면서 성토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휘발성이 강한 말소리와는 다르게 여러 사람이 같은 글을 볼 수 있어 감정이 여러 방향으로 뻗는 모습이 보인다. 조롱부터 잘못 이해한 내용까지 감정적으로 싸우는 댓글뿐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보자는 내용의 댓글도 종종 보인다. 칵테일 파티 효과인 모양인지 감정적인 댓글이 더 눈에 띈다.

그런 감정 성토의 장인 기사 댓글난은 대체로 몇 가지 내용으로 두어 가지 베댓이 생기는데, 그런 것 없이 대부분 비슷한 내용으로 대동단결하는 기사가 가끔 있다. 내용과 묘사, 적절한 타이밍이 아닌, 묘사대회에 온 것처럼 묘사의 수준이 베댓을 좌우하기도 한다. 바로 성폭력범의 처벌에 대한 기사이다. 약간의 자비라도 보였다가 온 인류의 자비(를 위한 무자비)를 부정하는 부정한 자로 몰리기도 한다.

보다 보면 세금조차 아까우니 목숨을 빼앗자는 것을 넘어서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을 잘라내라는 내용도 있다. 이런 내용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신체 손상의 수준으로 경쟁하는 것을 보면 온갖 상상이 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성폭력에 대한 개개인의 두려움과 분노가 크다는 방증이겠지만, 엉뚱한 데 화풀이한다는 생각이 든다.



성폭력의 원인은 발기하는 남성기?

발기하는 남성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발기하는 남성기는 단순한 생리 현상일 뿐이다. 그 발기하는 남성기 자체에는 폭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의 광기 속에서 클리토리스의 발기와 쾌감을 악마의 젖꼭지라 부르며 마녀의 증거로 삼던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다. 단순한 신체의 반응을 사회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일의 당연한 원인으로 삼는 것은 모순이다.

성폭력은 강간이 아니다. 강간은 성폭력의 일부다. 물리적인 행위만이 성폭력이 아니다. 그래서 “성적인 행위로 남에게 육체적 손상 및 정신적·심리적 압박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이라는 국립국어원의 정의는 매우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정의가 강제추행이나 강간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많은 사람이 국립국어원의 권위 덕에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단어의 뜻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를 수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반적 인식이나 실제 법 집행과 동떨어진 정의보다는 실제 법령과 더불어 집행하는 기관의 설명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법무부는 생활법령정보에서 성폭력을 “성(性)적인 행위로 남에게 육체적·정신적 손상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으로서 강간이나 강제추행뿐만 아니라 언어적 성희롱, 음란성 메시지 및 몰래카메라 등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포함합니다.”라고 설명한다. 실제 우리가 마주하는 처벌 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에 가장 가까운 설명이다.

법무부의 설명대로라면 성폭력은 물리적 강제력뿐 아니라 성과 관련한 모든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포함한다. 성폭력에서 발기와 성욕 자체가 물리적으로 유의미한 것은 강간과 강제추행에 한정되어 있다. 강제추행은 발기되지 않아도 가능한 행위이고, 성희롱이나 몰래카메라는 성욕이 없어도 가능한 행위이다. 그래서 성기의 발기 여부와 성욕에 집착하는 것은 실제 성폭력의 범위 자체를 축소할 우려가 있다. 그러면 성폭력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성폭력은 성욕의 연장선이 아닌 폭력의 연장선

성폭력은 성욕의 연장선이 아닌, 폭력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모든 성행위에 강제력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폭력 중 성폭력은 성과 관련한 강제력이 들어가지만, 성행위 그 자체에는 강제력이 아니다. 둘이(혹은 그 이상의 사람이) 서로 좋아해서 한 성행위, 혹은 혼자서 하는 성행위(자위) 자체는 문제 되지 않는다. 성욕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자위라는 성행위로 풀 수 있다.

폭력으로 성적 쾌감을 더 느끼는 사람도 있지 않겠느냐고 할 수도 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강제력을 통한 성적인 자극”으로 쾌감을 얻는 성행위가 존재한다. 그것은 SM이다. SM은 둘 사이에 약속된 강제력을 통해 성적인 쾌감을 얻는 역할 놀이이다. 가학과 피학이라는 역할 놀이를 통해 폭력적인 부분을 자연스럽게 성적인 자극으로 바꾸어 낸다. 강제로 성적인 쾌감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한 강제력을 매개로 서로의 쾌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약 약속 없이 강제로 어떤 행위를 시킨다면 그것은 폭력일 뿐 SM이 아니다. 다시 말해 SM은 폭력을 흉내 낸 역할 놀이로 통한 성적인 자극을 얻는 것일 뿐이다. 영화나 게임의 역할과 차이가 없다.



성욕 때문이라고?

만약 남성의 분출할 수 없는 성욕 때문에 성범죄가 나타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여성의 성욕을 부정하고, 남성이 성욕을 독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독점하였기 때문에 또한 성욕을 자극하는 모든 형태에 대해 문제 삼을 권리를 갖게 된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핑계에 여성의 옷차림이나 생김새 등에 원인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가해 남성의 핑계도, 피해자를 비난하는 주장의 근거도 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의 주체성과 성을 부정하는 차별이기 때문이다.

만약 가해자가 성도착증이라면 성욕 때문에 저지른 말을 합리화할 수 있을까? 합리화한다 쳐도 화학적거세, 즉 약물치료를 통해 발기를 억제하면 괜찮을까? 발기 억제하는 기간이 끝나면? 발기 억제 자체가 성욕을 안 불러일으킨다는 보장은? 더 나아가서 진짜 거세한다면 괜찮을까?

조선 시대의 환관은 사춘기가 오기 전 고환을 제거한 사람이었다. 이들은 발기됐고, 성생활을 했다고 한다. (단, 사정이 되지 않는 괴로움에 몸을 깨물어 아내들이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렇게 실제 거세한 이들조차 성욕이 있었고 성행위를 했다. 굳이 환관이 아니더라도 성기 성형까지 한 M2F 역시 성욕이 있고 성행위를 한다. 고환 대신 난소가 있는 여성에게 성욕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발기부전일 경우 치료를 받으려는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굳이 발기가 아니더라도 성욕이 존재한다는 것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관점을 바꾸자

이렇게 성욕과 발기에 대해서 강조한 것은 성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개인의 욕망과 신체 현상을 절제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 여성의 성을 억압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개인의 욕망과 신체현상이 범죄와 연결고리가 크다고 생각할수록 성범죄 자체를 어쩔 수 없다며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불어 여성의 성적 자유를 억압할 핑계가 늘고, 성욕의 위계를 만들어 모든 남성은 당연한 예비 가해자, 모든 여성은 당연한 예비 피해자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만약 재범이 문제라면 처벌 강화와 화학적 거세로 눈을 돌리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교도가 제대로 되는지 그 자체를 먼저 바라보아야 한다. 교도소가 교도와 사회 복귀에 대한 의지 없이 격리 처벌에서 그치면 재범률은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로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 낙인 찍힌 범죄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영원히 잡아둘 수 없다면 그들을 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 없이 화학적 거세를 하자는 것은 교도나 사회안전망의 허점을 회피하기 위한 여론 무마용 장치에 불과하다.

교도를 바꾸고,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남성적이라는 말, 여성적이라는 말을 없애야 한다. 너는 이성 같다는 말, 너는 네 젠더 답지 못 하다는 말 속에 있는 젠더 폭력을 없애야 한다. 남성의 욕망을 당연히 풀어줘야 한다는 인식도 없애 하고, 여성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문제 삼는 것도 없애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젠더 인식을 바꾸어야 이 위계적인 성폭력을 줄일 수 있다.


*덧붙여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 소설 ‘소년의 죄’(http://freshteacher.kim/12)와 다음의 TED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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