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버스에 탔다. 버스 안에 사람이 꽉 들어찼다. 너무 여유있게 줄을 선 탓에 늦게 탔고 정문에서 안으로 더 들어가지 못했다. 나중에 더 탈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안쪽으로 더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안쪽으로 더 들어갈 수 없었다. 몇 정거장이 지나도록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점점 불안해졌다. 뒤에 탈 사람을 생각해서 안으로 좀 더 들어가고 싶어도 안에 있는 사람을 쉽게 밀고 치며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중간에 그렇게 하는 남자가 탔다.

중장년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좀 들어가라며 큰 소리치고 난리였다. 소리치기만 한 게 아니라 팔꿈치로 내 척추뼈를 찔러댔다. 잠시 밀기만 한 것도 아니고 한참 동안 들어가라며 큰 소리치며 내 척추뼈를 찔러댔다. 견디다 못해 아프다며 찌르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무시하고 큰 소리치며 들어가라고만 하며 팔꿈치를 빼지 않았다. 아픔과 화를 못 참고 너도 아파 보라고 팔꿈치로 그 남자의 등을 쳤다.

"어린 놈이 건방지게 뭐야? 왜 쳐?!"

그 남자의 말이 너무 어이 없었다. 찌르지 말라고 했을 때 무시했던 인간이 이런 염치 없는 소리를 하다니. 나도 질 수 없었다. 맞대고 소리쳤다.

"나이 먹으면 나이 먹은 값을 합써(하세요)!"

그랬더니 그 남자 입에서 욕설이 나왔다. 나도 똑같이 욕으로 받아쳤다. 그와중에 같이 탄 웬 중년의 여성이 나보고만 좀 가만히 있으라며 뭐라고 했다.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하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그 남자한테도 잠깐 뭐라고 했다. 가만 보니 둘이 부부인 것 같았다.

내릴 때가 가까워져 내릴 준비를 했다. 그때 그 남자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비아냥댔다.

"남자 새끼가 화장했네."

어떻게 입다물게 할까 잠깐 고민을 했다. 맞받아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치마도 입었다. 이 개새끼야!"

남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때 옆에 있는 중년 여성이 비아냥댔다.

"잘도 예쁜 게 마씀(정말 예쁘십니다)."

슬펐다. 나는 외모 표현만으로도 시비거리가 된다. 게다가 저런 예의 없는 인간도 거들어주고 편들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버스 안에서도 나는 편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서러웠다.


외모 표현만으로 시비거리가 된 건 그게 처음이 아니었다. 출장 갔는데 화장한 내 얼굴을 보고는 "잘도(정말) 예뻐서 여자인 줄 알안(알았어). 장가는 갈 거?"라며 비아냥이 섞인 말로 성희롱한 다른 학교 여교사. 더 전에는 화장했다는 걸 핑계로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라며 성희롱한 남학생. 그들의 해맑은 시비조의 성희롱이 떠오르며 더 서러웠다.

심지어 화장을 하고 다닌다며 학교에서 난리가 났었다. 화장을 하고 다니는 남교사가 있다며 교장에게 민원을 넣은 학부모. 거기에 반응해서 성차별 예방 연수 내용에도 불구하고 전체 모임 때 "남자 교사는 남자답게, 여자 교사는 여자답게 하세요."라고 말한 교감. 맨날 화장한 거 봐 놓고 새삼스레 "선생님 남자인데 왜 남자 답지 않게 머리 기르고 화장을 하세요?"라던 머리 짧은 나이 많은 여교사.

그뿐 아니라 내가 중3때 담임이었던 교부무장인 남교사는 오랜만에 밥 먹자고 불러서는 '동료 교사'임을 강조하며 내 말에 따를 필요는 없지만 "화장 안 하면 안 되겠냐?"며 말을 꺼냈다. 화장 계속 하겠다고 했더니 약속을 하기 전까지 집에 안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모순도 화가 났는데, "화장을 참아보고 정 그렇게 못 견뎌서 화장을 하고 싶으면 사직서를 내라."고 까지 말했다. 동료도, 은사도 아니었다.


가족이라고 다를 것 없었다. 아버지가 정년퇴직해서 그걸 기념하는 식사 자리에 가는 날, "아버지를 위한 자리니까 화장하지 마라."라던 남동생. 화가 나서 안 간다고 했더니 내가 이기적이라던 부모님. 부모님은 명절연휴 때 "남동생 친구들이 세배하러 올 거니까 화장하지 마라."라고도 했다. 못 참고 화장 갖고 뭐라고 하지 말랬더니 아버지는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다른 사람이 오는 자리만 갖고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집에서 저녁 식사 중 티비에서 나오는 사극을 보고 있었다. 남자한테 귀걸이 자국이 있다며 웃는 어머니 말에 "조선시대에는 남성들 귀걸이 흔하게 했다."며 "고증이 잘 됐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 말에 "어디 남자가 귀걸이를 한다는 말이냐? 난 그런 말 들어본 적도 없다."며 크게 화냈다.

가족은 남성성이라는 허상에만 매달릴 뿐 아니라,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를 내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나를 장식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정말 서러웠다. 가족에게 조차 나를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게 너무 서러웠다.


몇 달 전, 서러움을 더이상 참지 못하고 내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나는 성소수자다. 성적 지향은 양성애, 성정체성은 안드로진이다. 나는 이성애 중심주의에서 벗어났고, 성별 이분법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그런 내가 남성으로만 젠더 표현을 해야 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난 내 자아에 맞는, 내 정체성에 맞는 표현을 하고 살겠다는 내용을 SNS에 공개적으로 올렸다. 내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더니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엄청났다. 친구 맺고 있는 수백 명의 내 학생들과 수백 명의 지인들은 지지하거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매일 #오늘의미모 #오늘의치마 라는 태그로 사진을 올리는데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댓글을 단다. 난 그렇게 용기를 얻고 어머니에게도 커밍아웃했다. 어머니는 내 표현을 보고 상처 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상처 받을까 걱정했다.

내 편이 생겼다. 엄청나게 많이 생겼다.

"군대 가서 선임이 비누 주워달라고 하면 비누 줍지 마라."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 낄낄댔다. 나는 거기에 대고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너무 무력했다. 화를 낼 수도 없다. 기억에 대고 화를 낼 수 없는 노릇이니까. 그 뜻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미 몇년이나 지난 일일 뿐 아니라 앞으로 그 선배를 만날 일도 없다. 갑자기 떠올라서 수치스럽고 두렵기만 하다.

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 있는 그를 오래 쳐다보고 싶은데, 오래 쳐다볼 수 없었다. 한참 쳐다보면 그는 내게 왜냐고 물을 것 같다. 그러면 난 할 말이 없다. 자꾸 쳐다보고 싶을 뿐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진다. 내가 남자를 보고 두근 거리는 건 괜찮다. 나는 내가 남자도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문제는 갑자기 비누가 떠올라서 수치스럽고, 들키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두렵다.

다음날부터 그를 볼 일은 없을 거다. 잠깐 눈에 뭐가 씌었던 것처럼 그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분위기만 기억나고 내 두근거림만 기억난다. 두려움이 커졌다. 내가 그를 보고 두근거렸다는 걸 들켰으면 어떻게 할지 두렵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게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만 커졌다.

아무 일 없이 넘어갔다. 그는 눈치도 못 챘을 것이다. 좀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보니 이상한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 그 자체만으로 두려워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내가 사람을 보고 두근거리고 호감을 갖는 건 내 의지로 하는 게 아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반응이 나타나는 건데, 두려워하다니 이상하다.

그 선배의 혐오스런 농담 때문인 것 같다. 그 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났을 때 다른 선배를 예로 들며 그 선배가 굉장히 여성스러워서 게이 같다느니, 서울에서 여장한 걸 봤다느니 하며, 나 보고 꼭 닮았다며 낄낄댔다. 그렇게 수치심을 내게 줘서 수치심이 쌓이고 자기 검열을 한 것 같다.

지금은 눈을 피하지 않는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티를 낸다. 바이섹슈얼이라고 커밍아웃한 이후에는 두렵지 않다. 치마 입고 다닌지 오래 되다 보니 그 선배의 말은 이젠 별로 안 신경 쓰인다. 상처받아서 한동안 움츠러든 것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남자를 보고 두근거리지 않는다. 길거리를 다녀도 예쁘거나 잘생긴 여자는 많은데 잘생긴 남자가 진짜 안 보여서 그렇다. 난 얼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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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랜스젠더(Transgender)란?

트랜스젠더는 젠더(정신적인 성, 사회적·문화적 성)와 지정성별(출생시에 의사가 지정한 성)이 일치하지 않는 성소수자이다. 다르게 말하면 본인이 느끼는 자신의 성과 신체적인 성이 다른 사람이 바로 트랜스젠더다. 이런 트랜스젠더에는 성별 이분법에 따라 트랜스 여성(MTF: Male to Female)과 트랜스 남성(FTM: Female to Male)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non-binary transgender)라고 여성 혹은 남성 외에 제3의 성정체성을 갖는 트랜스 젠더도 있다.

제3의 성별 정체성이라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종류는 굉장히 많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정체성이 하나로 모여 존재하는 안드로진(Androgyne). 여성과 남성의 정체성이 따로 존재하며 변화하는 바이젠더(Bigender). 젠더 정체성이 없는 에이젠더(Agender). 에이젠더 중 하나로 성별 상징할 수 있는 것에 불편감(Dysphoria)을 느겨 제거하고자 하는 뉴트로이스(Neutrois). 성별 자체를 부정하는 젠더리스(Genderless). 성별 정체성이 유동적인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성별 정체성의 강도가 달라지는 젠더플럭스(Genderflux). 세 가지 성 정체성이 따로 존재하며 변화하는 트라이젠더(Trigender). 통합적으로 모든 성별의 성별 정체성을 갖고 있는 팬젠더(Pangender) 등 다양한 성별 정체성이 존재한다.


2. 성별 불쾌감(Gender dyshporia)

트랜스젠더가 본인이 정체화한 젠더와 다른 지정성별에서 느끼는 불쾌감을 젠더 디스포리아(gender dyshporia)라고 한다.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끼는 건 MTF와 FTM뿐 아니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들도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낀다.

성기를 비롯한 생식기관 뿐 아니라 성별의 상징으로 읽힐 수 있는 엉덩이나 가슴까지 다양한 데서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낀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성기뿐 아니라 체형, 목소리까지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낀다. 뉴트로이스의 경우는 성별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에 주로 생식기관과 가슴, 엉덩이 등 체형에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낀다. 안드로진의 경우 양성적인 면 때문에 생식기관보다 주로 가슴과 엉덩이 등 체형에만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낀다.

이런 젠더 디스포리아는 태아일 때 원인이 나타난다고 하며, 호르몬, 시상하부의 차이 등 다양한 학설이 있다.


3. 성전환(Sex Transition)

젠더 디스포리아가 강한 이들은 성전환을 거치고자 한다. 성전환을 한다는 건 의학적 조치 뿐 아니라 패싱이라고 하여 사회에서 외모가 자신이 정체화한 젠더로 통과될 수 있는 상태로 바뀌는 것까지 포함하여 본인이 본인의 성별 표현에 만족하는 상태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가 의학적으로 성전환을 하기 위해서 거치는 단계가 있다. 먼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젠더 디스포리아 진단, 호르몬 대체 요법(HRT: Hormone Replacement Therapy), 성전환 수술(SRS: Sex Reassignment Surgery)이다.

정신과 진단은 유명한 병·의원이 있지만, 임상심리사가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이면 어디든 진단이 가능하다. 임상심리사를 두지 않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진단이 불가능하다. 성전환증 진단을 위해서 종합심리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종합심리검사는 특별하게 트랜스젠더만을 위한 검사는 아니고, 정신건강의학과의 일반적 심리 검사이다. 문장완성 검사, 트라우마 검사, 지능검사, 다면적 인성 검사, 로흐샤르 검사, 그림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시행한다. 여기에 성별과 관련한 수치도 있으며 이 검사 결과에 따라 임상심리사가 종합 의견을 내고, 의사는 이 검사 결과와 임상심리사의 의견을 종합하여 진단을 내리게 된다.

진단 결과에 따라 보통 F64.x의 진단을 받게 된다. F64.x는 성전환과 관련한 진단 코드이다. F64.0은 성전환증 혹은 성별 불쾌감이라는 명칭이며 호르몬 대체 요법 및 성전환 수술이 가능하고 성별 정정을 위해 꼭 필요하다. F64.9는 상세불명의 성주체성 장애로 보통 호르몬 대체 요법까지만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진단은 모두 최종 판단으로만 나오는 것은 아니고 임상적 추정으로 나오기도 한다.

진단 결과에 따라 먼저 호르몬 대체 요법을 하게 된다. 주로 수도권에 있는 산부인과 비뇨기과 병·의원이나 일부 대학병원에서 처방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기존에 하는 곳이 적다보니 트랜스젠더 개인이 찾아가서 요구해서 약을 구해 처방하는 경우도 있다.

호르몬 대체 요법을 시작하기 전 보통 간 기능과 신장 기능 및 호르몬 수치를 검사하고 시작하게 된다. 이 검사는 피를 뽑아 검사하며 개인 의원에서는 10만원 이하의 비용을 요구한다. 여성호르몬 주사의 경우 회당 2만원 남짓 비용이 든다. 그 외에 호르몬 억제제와 호르몬제를 병행한다.

성전환 수술의 경우 생식기 제거 및 외성기 재건 수술, 유방 확대 혹은 축소 수술 등을 하게 된다. 그 외에 MTF의 경우 목소리 수술과 성형수술도 많이 받는 편이다. 뉴트로이스는 생식기관 제거 수술, 지정성별 여성 안드로진의 경우 유방 축소 수술 등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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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매리 제인은 두 가지였다. 스파이더맨의 연인으로 나오는 매리 제인, 그리고 마리화나의 속칭인 매리 제인이다. 전자는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보면서 알게 되었고, 후자는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다 새로운 매리 제인을 알게 된 건 하이힐을 신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힐을 찾다 알게 되었다.

매리 제인은 하나 이상의 끈이 발등을 지나는 구두인데, 여러 가지 변형이 많다. 높은 굽이 있는 매리 제인도 있고, 낮은 굽이 있는 매리 제인도 있다. 가보시가 있는 플랫폼 형태도 있고, 구두 앞이 뾰족한 형태, 둔한 형태 등 다양하게 있다.

처음에는 발 크기가 260mm라 조금 큰 사이즈만 찾아봤다. 모양을 먼저 보기에는 발 크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았다. 그렇게 찾다 보니 몇 종류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펌프스 같이 끈이 없는 건 벗겨질까 두려웠고, 조금 무난하고 안 벗겨질만 한 걸 찾았다. 그게 매리 제인이었다.

4.5cm의 높지 않은 굽으로 주문했다. 260mm에 4.5cm 굽이면 각도 그렇게 높지 않아 크게 불편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신었을 때는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힐이 왜 불편하다는 건지 몰랐다. 그런데 한 두 시간쯤 지나고 보니 발가락부터 시작해 발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적응하고 7월 15일 퀴어퍼레이드 때 7~8cm짜리 힐을 신어보고 싶었는데, 가능할지 두려워졌다. 높지도 않은 신발인데 아팠다. 그나마 매리 제인 슈즈라 발등에 끈이 있어서 발이 덜 움직여 덜 아픈 것 같은데 높은 힐 신으면 내가 과연 몇 시간이나 걸을 수 있을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일단은 적응 중이다. 그나마 발이 붓지 않아 며칠 연속으로 신고 있다. 난 과연 퀴어퍼레이드에서 힐을 신을 수 있을까? 아니, 이 4.5cm 굽의 매리 제인 슈즈라도 제대로 신고 걸을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아이폰이 출시되고, 대한민국에는 아이폰이 출시될 가능성이나 있을지 짐작도 못 하던 그 시절 일이다. 탁현민의 <남자 마음 설명서>가 출간된 지 1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 책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아아, 조금 일찍 알았다면 나도 그 자부심이 가득하고 끈끈한 남성 연대에 낄 수 있었을까?

난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다. 그때 힘들었던 그 일을 몇몇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털어놓았을 때, 한 놈은 "그 여자 나한테 소개시켜줘라."라고 했다. 난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일이 누구에게는 굉장히 부러운 일이었다. 나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인데, 그놈이나 탁현민에게는 부러울 일인 것이다.

그 시절 나는 거의 매일 섹스를 했다. 거의 매일 싸웠고, 거의 매일 자살 소동이 있었다. 그는 집착이 굉장히 심했다. 죽어버리겠다며 위협했고, 내게 항상 큰소리쳤다. 그렇게 매일 같이 소동이 있고 나서 가라앉으면 그의 마음이든 나의 마음이든 달래기 위해 같이 요리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리고, 집에 보낼 수 없었다. 앞에 소동을 벌인 이유가 내가 그에게 이제 집에 가라고 했기 때문이라서 그렇다.

그는 함께 밤을 보내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섹스를 좋아했다. 그런데, 콘돔을 감이 안 좋다고 싫어했다. 하지만 임신에 대한 공포가 심했다. 끊임없이 섹스를 요구하면서도 콘돔을 하지 말자고도 계속 요구했다. 임신 걱정 심하지 않느냐 그러면 피임약이라도 먹으라고 했더니 피임약은 여자 몸에 좋지 않다고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콘돔을 했는데, 자꾸 콘돔을 하지 말자고 했다.

콘돔을 하든 안 하든 달라질 건 없었다. 다음날부터 불안에 떨며 임신 테스터를 사올 것을 요구했다. 두 주 후에 해야 한다고 해도 기어코 당장 확인해야겠다며 사오라고 했다. 참고 섹스를 하지 말고 두 주 기다리고 테스트를 해보자 했지만, 기다리는 것도, 섹스를 하지 않는 것도 모두 싫어했다.

난 섹스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다 못해 점점 두려웠다. 발기 부전이 생겼다. 발기가 안 되면 안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조루가 생겼다. 빨리 끝내면 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지루가 생겼다. 그가 오르가즘을 느낄 정도만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내가 사정하지 않는 것도 싫어했다.

나중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월경전증후군(PMS)이 굉장히 심하고 긴 편이었으며 월경 주기도 굉장히 불규칙했다. 그게 자살 소동의 원인은 아니었지만, 정도가 심한 것과 관계가 있던 것 같다. 그가 그렇게 집착했던 것은 어린 시절 당한 아동학대가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 아동학대의 원인은 어머니의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결혼이었다. 그래서 그 피임 실패로 나타나는 임신이 얼마나 큰 공포인지 알 수 있었다.

굉장히 힘든 경험이었지만, 그 자부심이 가득하고 끈끈한 남성 연대에 끼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 몸과 마음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처음 치마를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두려웠다. 당시에는 내 의도와 상관없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몰라서 굉장히 두려웠다. 그중 "너 혹시 여자가 되려고 하느냐?", "변태냐?" 따위의 이야기를 들을까 가장 두려웠다. 나름 성평등을 위한 운동을 겸해서 치마를 입으려고 했던 것인데, 남의 시선이 굉장히 두려웠다. 남의 시선을 무시하기를 좋아하면서 굉장히 두려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볍게 패션으로 시작해보고 싶었다. 예전에 몇몇 연예인이 했던 것처럼 바지 위에 랩스커트를 덧입는 식으로 시작하려고 했다. 다른 치마는 안 된다. 꼭 랩스커트여야만 했다. 전례가 있어서 꼭 랩스커트를 선택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짧으면, 바리스타 앞치마 같을 것 같기도 했고, 돌아다니기도 부담스럽고 그래서 적당히 무릎길이로 덧입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용기를 얻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나와 만나던 그가 용기를 줬다. 심지어 그는 내가 치마를 고를 때 함께 골라주기도 했다. 그때 그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던 건지, 그가 함께 골라줘서 행복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행복한 모습을 옷가게 점원에게 보여주었었다. 그일 뿐 아니라, 나중에 내가 굉장히 행복한 얼굴이었다는 이야기를 옷가게 점원에게 듣게 되며 어색함이 많이 사라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난 용기를 더 얻고 당당하게 스타킹을 신고 (당시는 겨울이라 안 신을 수는 없었다) 그 위에 치마를 입을 수 있었다.

이후로 데이트할 때 내가 치마를 입는 일도 잦았다.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나를 나로만 봤다. 다른 존재로 보지 않았다. 뭘 입든 그는 내 모습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5월부터 다시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난 치마를 입는 것을 그만두었고, 화장만 하고 다녔다.

생각해보면 화장을 본격적으로 한 것은 치마를 입은 다음이었다. 그 전에는 화장도 제대로 못 했다. 그냥 파운데이션 종류만 펴 바르고, 눈썹이나 조금 그린 정도였다. 그렇게 화장을 하면서 점차 색조 화장의 가짓수도 늘렸다. 나도 모르게 점점 풀메이크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치마 입는 것을 중단하고 화장만 하던 중, 멀리 떨어지게 되며 연인과 헤어졌다. 혼자 지내면서 화장한다고, 핫팬츠 입는다고 학생으로부터 성희롱당하고, 교무부장으로부터는 사직서 이야기에, 교원 모임 때 그 며칠 전 성희롱 예방 연수 내용과 다른 교감의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소리까지. 한동안 머리 아프고 힘든 일투성이였다. 2학기 말에 다른 학교 교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하기까지 하면서 마음이 많이 망가졌다.

시간이 지나 학년이 끝났다. 계약이 끝나고 난 새 직장을 얻지 못했다. 면접 보는 곳마다 머리 길이, 혹은 화장을 언급하며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난 백수가 됐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난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러다 여유가 생겼고, 치마를 다시 입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많이 달라졌다. 처음 치마 입을 때와 굉장히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성장하기도 했다. 많은 것을 공부했고, 더 많은 고민을 했다. 난 나를 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내 취향도 열렸다. 난 내가 선호하는 것을 알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지금 역시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지금 정확하게 내가 입기 원하는 스타일의 치마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어울리는지는 이제 뒤가 되었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우선이 되었다. 겨우 치마 하나일지 모르지만, 그 치마를 입으면서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취향을 발견하게 되었다.

겨우 한 번에 걸치는 한 조각의 옷, 치마 한 장이지만 나의 자아를 찾게 해주었고, 나의 패션 취향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 말고 여러 사람의 변화를 끌어낸 것 같다. 그 덕에 난 삶과 사람을 더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난 이전보다 좀 더 행복한 느낌이 든다. 가끔 힘들긴 하지만.

1. 모노아모리, 모노가미의 세상 삐딱하게 보기

모노아모리(Monoamory): 1대 1로 하는 독점 연애.

모노가미(Monogamy): 일부일처제.


현재 연애 중 많은 수가 모노아모리이다. 모노아모리는 사랑을 한 사람이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데서 독점 연애라고 볼 수 있다. 서로 간의 독점이라는 점에서 평등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 독점은 있을 수 없다. 독점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부르게 되어 집착이나 불평등한 관계가 된다. 한 명하고만 연애하지만 한 명을 독점하려는 마음이 집착을 부르거나 불평등한 관계를 만들게 된다. 쌍방이 협의한 과점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겠지만, 독점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되어야 한다는 등의 집착을 부를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잠시 눈 돌리는 것조차 불만을 부를 수 있다.

모노가미도 비슷하다. 배우자가 생기면 배우자하고만 관계를 맺어야 하고, 이외의 관계는 불륜이라고 보게 된다. 애초에 모노가미에 모노아모리가 아니라면, 열린 마음이기 때문에 불륜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하지만, 독점의 연애든 독점의 결혼이든 한 사람하고 만의 관계만을 정상적이며 윤리적으로 보므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의 정상성 집착이 일어나게 된다.

정상성 집착은 연인의 친구 조건을 한정시켜 버린다. 연인 이외의 관계는 시간 독점을 경쟁하는 상대가 된다. 친구의 조건은 블랙리스트(제외 조건)와 화이트리스트(가능 조건) 형태를 모두 써서 범위를 한정한다. 이 연인의 친구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은 만약 연인의 시간 할애가 연인 이상이 될 경우 질투나 경쟁의 대상이 된다. 연인 외의 기본값은 부동의의 대상이 되고, 연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이 허락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 당연하게 되면, 동의하지 않은 대상은 불륜 내지 비윤리적 연애의 대상이 된다.

모노아모리와 모노가미의 세상은 모노섹슈얼이 독점한 세상이기도 하다. 더 심하게는 이성애 중심주의의 세상이기도 하다. 이성애 중심일 경우 이성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기도 한다. 친구의 조건을 한정시켜 상대를 더 고립시킨다.


2. 폴리아모리가 주는 희망

폴리아모리(Polyamory): 3명 이상이 평등하고 열린 관계로 하는 비독점 연애. 다자간 비독점 연애, 다자간 연애.


소수의 폴리아모리스트(Polyamorist: 다자간 비독점 연애자)가 존재한다. 폴리아모리스트의 사랑은 여러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데서 비독점적이고, 자율적인 사랑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도 독점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독점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평등이 존재하기 힘들다. 하지만, 독점적 연애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비독점이란 역차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처럼 나와 연인의 관계를 불평등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애초에 지배적인 관계에서 평등 관계로의 진입은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다.

폴리아모리는 신뢰 관계와 평등 의식, 비독점적 사고를 기본으로 한다. 서로 간 신뢰가 없으면 통제를 하게 되고, 통제는 곧 평등을 깨는 것이며, 감정을 독점하는 행위이다. 단지 여럿을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폴리아모리를 시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간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합의, 평등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 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감정 소모만 일어날 수도 있는 어려운 일이다.

폴리아모리는 논모노섹슈얼들에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준다. 논모노섹슈얼에게 연애의 대상은 한 성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노아모리스트들이 질투를 하게 된다면 대상이 더 많아진다. 논모노섹슈얼은 애초에 친구의 대상이든 연애의 대상이든 한정 짓는 사람들이 아니다. 논모노섹슈얼이 모노아모리스트이고 모노아모리스트와 만났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독점을 원하게 되면 모두가 질투의 대상이므로 친구를 누구도 사귈 수 없게 된다.

폴리아모리는 어렵지만, 폴리아모리의 요소에는 모노아모리에 없는 희망이 있다. 비독점에 따른 신뢰와 평등,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려는 소통이다. 연인의 모든 시간과 사랑을 내가 가지려 하는 사람은 모든 감정마저 얻어 내고자 한다. 하지만, 사람은 한 사람에게 쏟을 수 있는 감정이 한정되고, 다른 사람을 통해 감정이 충전되기도 한다. 상대방을 놓아주고 감정과 체력을 충천할 시간을 주면, 내게 쏟는 감정의 양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3. 모노섹슈얼의 세상 삐딱하게 보기

모노섹슈얼(Monosexual): 한 가지의 성에게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성적 지향. 단성애.


모노섹슈얼은 성적끌림이 한쪽 성에 한정된다. 나누면 크게 두 가지쯤으로 볼 수 있다. 동성애자(Homosexual)와 이성애자(Heterosexual). 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 중 일부는 동성애자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긴다. 그런 사람은 이성을 바라볼 때 어떻게 성적대상화 하여 바라보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동성애자 중 일부는 양성애자 등의 논모노섹슈얼을 아직 이쪽으로 못 온 사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모노아모리가 대부분인 사회에서 논모노섹슈얼의 연애는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모노섹슈얼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상상력이 제한된다. 성적 끌림을 당연하게 여기고, 성적 끌림이 한쪽으로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떤 이성애자들은 성적 끌림을 강제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상상까지 한다. 한 성만으로 성적 끌림이 존재한다는 편협한 상상력 때문이다.

친구의 범위를 제한하거나 특정 성적 지향을 연애에 있어 안전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이성애자의 경우 이성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동성애자를 바라볼 때 제3의 성 취급을 하며 이성이 아니지만 안전한 존재라고 무성적 존재 취급하기도 한다. 난 홍석천 씨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라는 컨셉이 슬프다.


4. 에이섹슈얼, 논모노섹슈얼이 주는 교훈

에이섹슈얼(Asexual):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성적 지향. 무성애. 연애 지향, 연애 비지향 모두 존재한다.

논모노섹슈얼(Non-monosexual): 두 가지 이상의 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성적 지향. 다성애.


무성애자는 성적 끌림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 이들은 연애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연애를 원할 경우라도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 무성애자와 연애를 할 때 그의 성적 지향을 존중해야 한다. 물론, 연애 상대가 아니더라도 타인의 성적 지향은 존중해야 한다. 그의 모든 것을 독점하려 하지 않는 비독점적 태도가 필요하다.

논모노섹슈얼은 성적 끌림이 나타나는 성이 두 가지 이상이다. 바이섹슈얼 같은 두 성에게 성적 끌림이 나타나는 존재, 팬섹슈얼처럼 성에 관계없이 모두 성적 끌림이 나타나는 존재, 폴리섹슈얼 같이 세 성 이상에게 성적 끌림이 나타나는 존재 등 다양하다. 이들은 단성애자들 보다 성적 끌림의 범위가 넓으므로 이들은 모두와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들은 누구와도 성적 행위 없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모두 취향이 있고, 감정적 끌림이 나타나는 계기가 다르다. 모노섹슈얼이 독점한 세상, 특히 이성애자들이 독점한 세상에서는 이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배제한다. 이들의 존재와 삶의 방식을 상상한다면 좀 더 편안한 연애가 가능하지 않을까?

제주여민회의 <돌, 바람 그리고 페미니스트 아카데미> 7주간의 일정 중 벌써 5주가 지났다. 한 주에 한 주제씩 이야기를 했는데, 흥미로운 주제 덕에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제까지 했던 강의는 이렇다.

1강 LGTB/퀴어,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 한채윤님 <동성애 혐오와 한국 개신교의 상관관계>

2강 넷페미니스트,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님 <대한민국 넷페미史 들여다보기>

3강 여성과 노동,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현미님 <'나'의 노동과 '너'의 노동은 왜 다른가?>

4강 제주 여성, 제주여민회 공동대표 김영순님 <'강인한 제주 여성' 담론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5강 데이트 폭력, 한국여성의전화 전문위원 문채수연님 <나의 연애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1강은 퀴어에 관한 내용인데, '개신교가 왜 동성애에 집착하게 되었는가?'하는 게 주 내용이다 보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용은 좋았지만, 퀴어에 관한 내용이 궁금했던 다른 분들은 조금 당황스러워하기도 했다.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는 교리에 따른다고 보기에는 모순되는 점도 있어서 궁금했는데, 대형 교회를 비롯한 보수 교단의 세력화 중에 필요에 의한 새로운 타깃이 된 것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말씀이 너무 많으셔서 3시간이 부족했다. 의아함과 별도로 강의내용은 흥미진진해서 3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를 정도였다.


2강은 대한민국 넷페미스트들의 이야기 중 90년대 영 페미니스트 이야기였다. 이미 권김현영 선생님의 책 대한민국 넷페미史를 읽은 터라. 아는 내용을 반복해서 듣는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흥미롭게 들은 것 같다.


3강은 여성의 노동에 관한 학술적 이야기였다. 신자유주의가 여성 노동과 사회적 재생산에 끼친 영향을 이야기했다. 강의 끝난 후의 질의 응답이 다른 강의보다 길어서 강의 자체보다는 질의응답이 가장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5강은 데이트 폭력의 명명에 관한 이야기부터 실제 데이트 폭력 피해사례와 통계 자료, 한국 사회의 일방적 정조 관념 등을 제시하며 이야기했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것과 관련한 여성의 정치적 위치에 관한 슬픈 이야기였다.


4강은 솔직히 별 기대하지 않았다. '강인한 제주 여성' 담론을 비판적으로 봐봐야 얼마나 비판적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신화에서부터 강인하고 주체적인 여성이 등장하는 것이 제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부터 현대의 해녀 이야기까지 뒤집어 이야기했고, 제주 여민회가 함께 했던 싸움까지 넓고 깊은 이야기 덕에 이제까지 강의 중 가장 흥미로운 강의였다. 이 강의 내용은 더욱더 여러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1.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강인한 제주 여성

제주를 만든 존재는 여신 설문대 할망이다. 여성이 만든 강인한 여성의 세상이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설문대 할망의 죽음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 중 한 가지를 통해 제주가 가부장제에 물들며 여성이 착취당해가는 모습을 이야기했다. 설문대 할망의 죽음은 물장오리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와 오백장군을 먹일 죽을 끓이다 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중 오백장군 이야기는 500명의 아들을 먹이기 위해 죽을 끓이다 죽은 이야기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내용이다. 아들들은 모두 바깥일, 여성은 살림을 한다. 죽을 떠먹는 것도 500명이 각자 뜨지만, 맏이부터 500째까지 순서대로 뜬다. 500째가 죽에서 뼈를 발견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가부장제의 여성과 위계가 모두 나타난다. 또한, 살림을 하다 거기서 죽는다는 것은 가부장제에서 여성의 희생을 단적으로 상징한다고 했다. 원래의 정확한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제주가 이전과는 달리 여성이 가부장제에 희생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가믄장애기 이야기를 통해 남자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데서 보이는 결혼에서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자청비 이야기를 통해 문 도령이라는 남성에게 지지 않는 여성의 모습과 주체적 연애를 하려는 여성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또한 소를 잡아먹었다고 남편을 쫓아내는 백주또의 모습에서 결혼에 목매달지 않는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강인한 제주 여성상이 얼추 맞아 들어간다. 하지만, 가부장제에 희생되는 여성의 모습이 없는 것도 아니다.


2. 강인함과 융합으로 포장한 제주여성의 희생

아이업게 설화 등으로 알 수 있는 성적인 수탈을 사회 참여로 미화하며, 여군이었던 여정을 화살받이로 썼다는 것을 여성이 주체적으로 수행한 국방의 의무로 미화하였으며, 이재수의 난 때 죽임을 당해야 하는 존재인 적진에 보내는 사신을 여성을 보내 희생시킨 것을 주체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것으로 미화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3. 마을 포제와 굿으로 보는 제주의 양면

포제는 유교와 가부장제가 들어오며 남자들만의 행사로 만들었고, 이후 요리와 관련한 노동력이 필요하자, 피 흘리지 않는 여성은 부정 타지 않는다는 이유로 완경된 여성만을 데려와 일을 시켰다. 반면, 굿당에서 굿은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었고, 몇몇만의 폐쇄적인 의식이 아니라 개방적 의식으로 공동체의 행사였다.


3. 삼다도의 신화에서 우근민의 성추행까지 20세기의 제주 여성 착취.

삼다가 실제 존재했던 시기는 굉장히 짧았다. 제주에서 젊은 여성이 많던 시기는 1947~1954년으로 4.3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남성이 살해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서북청년단의 성 착취, 서북청년단 이후 혼자 사는 여성을 강간하여 작은 각시라는 이름으로 불러 살게 하는 등의 여성 착취가 다양하게 일어났던 시기이다. 이 이후로 제주 여성은 정조의식이 없다며 여성혐오적 소문이 돌았다.

관광지로 개발되며 일본인 기생관광이 있었다. 일본인들이 관광지인 제주에서 성매매를 일삼았으며, 이 역시 제주 여성을 희생자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제주 여성 혐오의 근거가 되어버렸다. 이 당시 국내 관광객들도 들어오면서 제주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세 가지 바리라며 다금바리, 붉바리, 비바리라며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였다.

비바리는 20대 초 전후 나잇대의 여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청소년 여성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앞에서 관광과 관련하여 성적인 의미로 비바리를 비하했는데, 제주 초콜릿을 개발하며 이름을 비바리 초콜릿으로 지었던 문제가 있었다. 제주도민 외에는 잘 이해를 못 했지만, 제주여민회가 문제를 공론화하며 제주도민들의 반발로 안 쓰이게 되었다.

우근민의 성추행 사건은 제주여민회가 크게 공론화했지만, 도내 정치에서 진보 지식인들의 반한나라당 친민주 의식과 선거를 앞두고 정치 공세라는 오해에 한참을 싸웠다고 했다. 이후 선거법 위반으로 중간에 낙마하고, 2006년에 성추행이라고 판결도 받았지만, 2010년 다시 출마하려고 하면서 이 내용을 숨기고 맞서는 바람에 다시 싸워야 했다.


4. '강인한 제주 여성은 제주 해녀' 신화 걷어내기

일부 연구자의 연구와 달리 제주에서 겪은 해녀는 딸에게 대물림시키고 싶지 않은 힘든 직업이며, 자기 대에서 끝내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지리적인 요건으로 봤을 때 제주 해녀가 제주 여성을 대표하기에는 어렵다. 제주 여성의 직업은 해녀 외에도 다양했다. 제주 해녀의 이주 노동을 지우기도 하며, 제주만의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해녀의 눈이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해녀를 대상화하는 것이다.

더불어 해녀들이 바다를 지키고 싶어 한다기보다 바다를 메울 때 가장 먼저 찬성하는 모습에서 볼 때 해녀 일은 숭고하기보다 너무 험하고 노동량이 너무 많은 일일 뿐이다. 또한, 해녀의 노동 강도가 센 이유 중 하나가 가족 부양인데, 가족과 지역사회를 위한 인내와 근면, 강인함은 타자화된 여성의 모습이며 제주 여성을 억압하는 또 하나의 담론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필기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기억나지 않는 것도 많다. 중요한 건, 비판적인 시각을 놓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의 학문적 업적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거기서 그치고 후속 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현장에 사는 사람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의 시각을 내재화하는 것은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일 뿐이다. 이 강의는 나한테 제주를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의식화였다. 프락시스가 뒤따라야겠지만, 기억하지 못하면 의식화마저 무너질까 이렇게 기록한다.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은 성적 끌림의 방향을 이야기한다. 이 성적 끌림의 방향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붙이는데, 이들을 묶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성적 끌림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크게 유성애(Allosexuality)와 무성애(Asexuality)로 분류할 수 있다. 유성애는 또 한 성의 사람만 좋아하는 모노섹슈얼(Monosexual, 단성애자)과 두 성 이상의 사람을 좋아하는 논모노섹슈얼(Non-monosexual, 비단성애자)로 나눌 수 있다.

모노(mono)는 '하나', '한 가지' 라는 뜻이다. 그러니 모노섹슈얼은 한 성에게만 성적 끌림이 존재한다. 이런 모노섹슈얼의 종류에는 이성애자(Heterosexual), 동성애자(Homosexual), 여성동성애자(Lesbian), 남성동성애자(Gay), 여성애자(Gyenphilia), 남성애자(Androphilia) 등이 있다.

논모노(non-mono)는 '하나가 아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논모노섹슈얼은 둘 이상의 성에게 성적 끌림이 존재한다. 멀티섹슈얼(Multisexual)이라고도 한다. 이런 논모노섹슈얼의 종류에는 양성애자(Bisexual), 양성애자보다 더 많은 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다성애자(Polysexual), 모든 성별 혹은 성별 구분 없이 성적 끌림을 느끼는 범성애자(Pansexual) 등이 있다.


1. 연애의 가지 뻗기 - 모노아모리와 폴리아모리

연애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모노아모리(Monoamory)라고 하는 1대 1로 하는 독점적 연애와 폴리아모리(Polyamory)라고 하는 다자간 비독점적 연애가 있다. 다수가 선택하는 연애는 모노아모리이다. 성적지향에 관계없이 대다수가 연애는 1대 1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명에게만 온전히 신경 쓰는 모노아모리를 선택하고, 그 외에 더 많은 연애 관계를 원할 경우 몰래 따로 연애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는 바람을 피운다고 한다.

폴리아모리는 연애의 가지를 늘린다. 비독점적으로 여럿과 연애를 한다. 여럿을 공평하게 사랑하고 그들의 다른 사랑을 인정해줘야 한다. 모노아모리 같은 독점적 연애관을 가진 이에게는 질투로 파국을 맞을 수 있는 형태이다. 그래서 폴리아모리는 상호간 비독점적이라는 원칙을 갖는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난잡할 수도 있지만, 상호 간 평등 관계를 전제하고 있다.

모노섹슈얼이든 논모노섹슈얼이든 대체로 모노아모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논모노섹슈얼들은 연애할 때 한 사람을 선택한 것이 한 성을 선택해서 연애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현재의 모습이나 과거의 연애 경험만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과연 당신은 논모노섹슈얼이 맞는지 의심하기도 한다. 논모노섹슈얼은 필수적으로 폴리아모리를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닌데, 이성애 중심주의를 벗어난 사람들도 단성애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해 끊임없이 모노섹슈얼로 끌어온다.

바이섹슈얼인데 현재 동성과 연애하거나 과거에 동성과 연애했다고 동성애자라고 하거나 현재 이성과 연애하거나 과거에 이성과 연애했다고 이성애자가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바이섹슈얼 같은 논모노섹슈얼이 동성애자들이 성적지향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거치는 과정 정도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런 행위는 논모노섹슈얼을 지우는 것이다.

폴리아모리를 하지 않는 논모노섹슈얼은 모노섹슈얼이 아니다. 논모노섹슈얼의 연애는 길이 여러 개가 있고 거기서 어디로 가지를 뻗느냐일 뿐이다. 논모노섹슈얼과 모노섹슈얼의 차이는 길의 개수 차이이다. 안 간다고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2. 논모노섹슈얼의 성적 끌림

논모노섹슈얼의 성적 끌림은 모두가 일정하지 않다. 모노섹슈얼에게도 취향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논모노섹슈얼에게도 취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모노섹슈얼처럼 성적인 끌림이 한 성에게만 지속해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논모노섹슈얼은 모노섹슈얼화된 것일까?

나는 안드로진이고 바이섹슈얼이다. 그런데, 나는 여성하고만 연애해봤다. 성적인 끌림이나 연애 감정도 대부분 여성에게만 느낀다. 태어나서 성적인 끌림을 느껴본, 혹은 연애 감정을 느껴본 남성은 한 명뿐이다. 그러면 그 한 명만 특이한 것이었고 나는 여성애자인 걸까? 아니다. 나는 분명 바이섹슈얼이다. 과거로 돌아가 남성에게 끌렸던 사건을 없앤다고 해도 나는 바이섹슈얼이다.

논모노섹슈얼이라는 성적 지향은 성적 끌림의 방향이 더 많을 뿐이다. 성적 에너지가 폭발하거나 통계적으로 여러 젠더를 공평하게 사랑하는 성적 지향이 아니다.

단성애자가 자신의 성적 지향과 다른 젠더와 섹스를 해봤다고 해서 단성애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만약 게이라고 하더라도 여성과 섹스를 할 가능성이 있다. 여성 이성애자라고 해도 여성과 섹스를 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본인의 지향이 어떤지 파악할 수도 있다.

논모노섹슈얼에게는 성적 끌림과 성 경험, 연애를 증명해야 할 의무가 없다. 그걸 증명하도록 하는 분위기나 묻는 행위는 논모노섹슈얼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다. 논모노섹슈얼은 존재한다. 현상이 나타나면 과거의 경험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현상은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지 그 현상을 있을 수 없다고 부정하거나 증명하라고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논모노섹슈얼은 존재한다. 내가 논모노섹슈얼이라고, 바이섹슈얼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논모노섹슈얼에서 모노섹슈얼로 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논모노섹슈얼, 바이섹슈얼, 팬섹슈얼, 폴리섹슈얼이라고 하면 그게 맞다. 타인이 의심하거나 의문을 품는 건 옳지 않다. 난 당신이 모노섹슈얼이라고 하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당신이 모노섹슈얼인지 의심하거나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안드로진 이야기를 했을 때도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 내 성적 지향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을까? 성적 지향에 관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젠더 퀴어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깨달은 것은 바이섹슈얼이고, 이 성적 지향은 젠더와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1. 성적 지향의 개념과 종류

성적 지향은 성적 감정이 향하는 방향이다. 한문으로는 性的指向, 영어로는 Sexual orientation 이렇게 쓴다. 모두 성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지 말한다. 이런 성적 지향이 동성을 향할 때는 같다(Homo-)에 성애(-sexual)를 붙여서 동성애(Homosexual)라고 부른다. 성적 지향이 이성을 향할 때 다르다(Hetero-)에 성애를 붙여서 이성애(Heterosexual)라고 한다. 이런 말은 성별 이분법적(Gender binary)인 구분으로 두 개의 성(Sex 혹은 Gender)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나 그 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방식의 구분이다.

두 개의 성, 즉 여성과 남성 외에도 다른 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좀 더 젠더 중립적인 말을 사용한다. 남성애(Androphilia)라는 말이나 여성애(Gynephilia)라는 말이 그것이다. 본인의 젠더를 드러내지 않고 어떤 성에게 성적으로 끌리는지 쓸 때 사용한다.

두 가지 성에게 성적 감정이 향할 때는 양성애(Bisexual)라고 한다. 보통 성별 이분법적 구분에 따라 여성과 남성 두 성 모두에게 성적 감정이 향하는 경우를 이야기한다. 나는 젠더 퀴어이지만, 아직은 직접 만난 사람이 남성과 여성 외에는 없어서 아직 성적으로 끌리는 경우가 여성과 남성뿐이라 양성애자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성적 감정이 누구도 향하지 않을 때 무성애(Asexual)라고 부른다. 젠더적인 구분 없이 사람 그 자체만을 향할 때는 범성애(Pansexual), 성적 감정이 특정 젠더를 구별하면서 셋 이상의 여러 젠더에 끌릴 때는 다성애(polysexuality)라고 한다. 이런 것들을 고민할 때 고민하는 그 상태를 퀘스쳐너리(Questionary)라고 쓴다. 퀘스쳐너리는 젠더에도 쓰인다.


2. 단성애자들 -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한 성에게만 성적 감정이 향한다. 이렇게 하나의 성만을 향한 성적 감정이 향하는 것을 단성애(Monosexuality)라고 한다. 단성애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 성소수자 중 하나인 동성애자를 포함한다.

동성애는 단성애 중 하나이므로 한 성에게만 성적 감정이 향한다. 게이(Gay)는 보통 남성 동성애자를 이야기한다. 남성인 남성애자라고 생각해도 좋다. 레즈비언(Lesbian)은 여성 동성애자를 이야기한다. 여성인 여성애자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성애자도 마찬가지로 단성애중 하나이므로 한 성에게만 성적 감정이 향한다. 남성인 여성애자, 여성인 남성애자를 이성애자라고 한다. 


3. 무성애자들 - 무낭만과 낭만

무성애자는 성적 감정이 어디로 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연애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이들에게는 연애 지향(Romantic orientaion)이라는 말을 따로 사용한다. 크게 무낭만(Aromantic)과 낭만(Romantic)으로 나눈다. 낭만적 감정이 생기지 않거나 연애에 관심이 없는 무낭만적 무성애(Aromantic Asexual)가 있고, 낭만적 감정이 생기며 순수하게 연애 감정만 있고 성적 끌림이 없는 낭만적 무성애(Romantic Asexual)이 있다. 낭만적 무성애는 연애 감정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 로맨틱 앞에 동성, 이성, 양성, 범성 등을 붙이기도 한다.

유성애와 무성애 사이에 정체성이 있는 회색인 사람들도 존재한다.


4. 양성애자

양성애는 보통 남성과 여성 두 성에게 성적 감정이 향한다. 어떤 이는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에 있는 스펙트럼 전체를 양성애자로 보기도 한다. 거의 한 성에게만 끌리고 다른 성에게는 가끔 끌리는 경우도 양성애자라고 하는데, 이를 두 성애 사이에 있는 긴 스펙트럼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성애자나 동성애자와는 다른 별개의 정체성으로 생각한다. 범성애자나 무성애자, 다성애자들을 생각할 때 이들을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의 스펙트럼에 넣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양성애자만 보면 그 안에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한다.


5. 성적 지향 고민과 두려움

나는 성적 지향 때문에 두려웠다. 고민을 한 시기도 있었지만, 고민 자체를 할 시간은 별로 없이 두려움이 훨씬 더 컸다. 내 성적 지향은 어떤 이들에게는 놀림거리이거나 혐오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다. 특히나 역겨웠고 무서웠던 놀림은 군대 가면 비누 줍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군대 가면 비누 줍지 말라는 것은 그 자체로도 강간인 혐오적 농담이기도 했지만 성소수자, 특히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에 대한 혐오가 가득한 농담이었다. 이 상황에서 내 성적 지향이 알려지면 어떤 취급을 받을지 두려웠다. 실제 군대 내 성추행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동성애자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컸는데, 실제로 그중 동성애자는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동성애자들은 군형법 92조 6항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색출 당해 성추행이나 다른 피해를 볼까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여하튼 남의 피해를 비난하거나 어떻게 이야기할 수도 없어 난 침묵해야 했다.

또 하나, 트랜스젠더, 크로스드레서[각주:1], 드랙퀸[각주:2], 게이를 구분 못 하는 선배들이 연락 안 되는 과거 (그들 기준으로) 여성스러웠던 한 선배와 내가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꾸 꺼냈었다. 그러면서 사람을 살살 게이라는 식으로 놀리거나 여장 관련 농담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고민할 틈도 없이 두렵기만 했다.

고민이 끝난 건 우연히 본 한 남성에게 끌림을 느꼈고, 거기에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을 때였다. 그전까지 여성 외에 한눈에 반해본 적 없었는데, 그게 처음이었다. 그때 내 성적 지향에 관한 고민을 완전히 끝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도 두려웠다. 내 마음을 들킬까, 들키면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두려웠다. 지향에 관한 고민은 결국 두려움만 남기고 끝났다.


6. 나는 바이섹슈얼이다.

나는 바이섹슈얼이다. 양성애자다. 나는 양성애자라는 말을 잘 안 쓴다. 솔직히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양성애자라는 말이 어색하기도 하다. 그냥 두 자로 줄여서 '바이'라고만 이야기 하고 싶다. 왜 그런지 몰라도 그러면 정말 편하다.

여성과 남성을 둘 다 좋아하지만, 나는 얼빠다. 예쁜 여자는 흔한데, 잘생기거나 예쁜 남자는 드물다. 그래서 그런가? 낭만적 감정이 생기는 비율이 여성99 대 남성 1에 가까울 정도이다. 그래서 솔직히 양성애자라고 말하면서도 부끄러울 때가 많다. 마음을 먼저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마음을 먼저 보기도 힘든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요즘은 동성애자의 인권 이야기를 먼저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나마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시화되고 그들의 인권이 먼저 챙겨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시화될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내 젠더 정체성인 안드로진은 말만 들어도 생소할 정도이다. 하지만, 바이섹슈얼, 양성애자라고 하면 그나마 알아듣기는 한다. 덜 알려져서 애초에 탄압될 일도 없긴 하지만, 얼른 가시화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다를 거 없다고. 모든 사람에게 연애 감정 갖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열어둔 건, 내 과거의 학생, 내 미래의 학생들을 생각해서 그렇다. 난 교사로서 정체성도 갖고 있다. 내가 가시화되고, 내가 열어두고 있으면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희망 내지, 의지할 곳이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양성애자다. 바이섹슈얼이다.

  1. Cross dresser, 반대 성별의 옷을 입는 사람들을 뜻한다. 남성의 경우 여성복을, 여성의 경우 남성복을 그 성의 방식 그대로 입고 꾸미는 사람들이다. [본문으로]
  2. Drag Queen 크로스드레서와 비슷하지만, 과장되게 꾸미고 쇼를 하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여성이 남성처럼 꾸미고 쇼를 하는 경우 드랙킹.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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