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깼다. 몸이 무겁다. 다시 눕고 싶다. 하지만 이제 출근해야 한다. 뻣뻣한 몸을 풀기 위해 몸을 이리 저리 비틀고 당겼다. 쉽게 풀리지 않는다. 잠에서 몇 번 깼기 때문일까? 너무 피곤하다. 그 피곤함을 억지로 풀기 위해 따뜻한 물로 씻기라도 해야지. 그냥은 몸이 너무 힘들다.

보일러의 전원을 켰다. 금방 뎁혀지겠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아까워 화장실로 움직인다. 찌뿌둥한 것을 풀기 위해 얼른 움직였다. 밖에 비가 오나? 우리 집 화장실은 밖에 있기 때문에 비가 오면 괜히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도 다녀와야 더 기운 난다.

변기에 앉았다. 피로 때문인지 원하는 만큼 나오지도 않는다. 비데로 잠깐 씻고 닦으려나 신호가 또 온다. 배도 살살 아프다. 하지만 잠시 뿐이다. 벌써 3분이나 앉아 있었다. 시간 끌지 말고 얼른 출근한 다음 화장실에 가는 수 밖에 없다.

다 씻고 나왔다. 어머니는 내 아침을 차려 주신다. 솔직히 먹을 시간이 없다. 차려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여유가 없다. 최소한 어느 정도 준비한 상태로 출근한 다음 최소 10분 전에는 도착해서 내 자리에 앉고 싶다. 좀 더 일찍 일어났으면 더 나을테지. 이렇게 속으로 생각해도 자는 중간에 몇 번 씩 깨다보니 일어나 출근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아직 7시 20분. 밥을 조금 먹을 여유가 있다. 밥을 반 넘게 덜어내고 밥을 먹었다. 이 정도 먹고 힘 내기는 힘들다. 그래도 굶는 것보다 낫다. 시간을 보면서 적당히 씹어 넘긴다. 밥 먹는 시간은 5분 남짓, 더 넘어가면 챙길 시간이 줄어든다. 전날 저녁에 대충 다 챙기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다시 뒤져봐야 한다. 그리고, 화장도 해야 한다.

그렇다. 나는 화장을 한다. 단골 화장품 가게에서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혹시 연극 배우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연기도 하고, 거의 매일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난 배우가 아니다. 내 무대는 교단이고, 소품은 칠판과 분필, 피아노이며, 무대 장치로 노트북과 프로젝터를 사용한다. 난 매일 출근 때마다 무대 의상을 고르고, 무대를 위한 분장을 한다.

메이크업 베이스 대신 CC크림을 썼다. 그리고 몇 몇 부분에 컨실러를 살짝 찍은 다음 문지른다. 그 다음 쿠션으로 두드린다. 적당히 된 것 같으면 눈썹을 그린다. 눈썹은 적당히 진하게만 그린다. 균형보다 좀 더 진한 인상을 주고 싶어서 눈썹을 그린다. 그 다음 같은 계열 색상의 아이라이너 두 종류를 사용해 하나는 눈 밑에 살살 그린다. 잘 보면 반짝 반짝, 대체로 잘 모른다. 속쌍꺼풀이라 티는 잘 안 나겠지만, 윗쪽 속눈썹에도 진한 색으로 살살 그린다. 그리고 립밤을 바른 다음 티슈로 닦아낸다. 그리고 다시 립밤을 바른다. 가끔은 립밤을 바르고 틴트를 바른 다음 입술을 문지르고 바로 티슈로 닦은 후 립밤을 덧칠한다. 컨투어링은 잠깐 시도 해본 적도 있지만, 내 얼굴이 워낙 입체적이라 쓸모 없는 것 같아 이젠 하지 않는다.

7시 40분이 넘었다. 모자를 쓰고, 가방을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 간다. 걸어가면 3분이지만, 뛰면 1분 남짓. 땀만 안 나면 좋겠다. 버스도 안 놓치고 싶다. 버스가 보인다. 바로 탔다. 앉을 자리가 없다. 우리 학교 학생도 있다. 화장하고 나오길 잘했다. 버스에서 화장하는 게 쉬운일도 아니지만, 솔직히 민망하다. 강한 인상을 보여주는 것은 좋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민망하다. 연습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큼 민망하다.

하루 종일 수업 준비를 하고 수업을 한다. 그외 다른 업무가 있으면 한다. 그러다보니 중간 중간 내 상태가 어떤지 거울 볼 정신이 없다. 수업하면서 준비하고 계산한대로 잘 되고 있는지 신경 쓰다보면 음악실도 내 얼굴도 점점 엉망이 되어 간다. 중간 중간 여학생들 교칙에 맞지 않게 화장한 것을 보면서 한숨도 내쉬어 본다. 특히 틴트를 엉망으로 발라 입술을 이상하게 물들인 것을 볼 때 한숨이 더 크게 나온다. 바를 거면 좀 예쁘게 바르던가. 20~30년 전 심형래 펭귄 분장하며 입술 가운데만 위 아래로 빨갛게 칠한 것보다 못하게 수정테이프 그은 모양은 뭔지.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 얼굴을 바로 닦을까 나갔다올까 고민한다. 하지만, 피곤에 절어 곧 잠들어버린다. 잠깐 잠들고 일어나서는 나갈 의욕을 잃고 놀다가 느즈막하게 화장을 지운다. 반짝이는 눈가를 먼저 지우고, 클렌징 오일이나 클렌징 워터로 얼굴을 지우고 다시 세안을 한다.

이렇게 화장을 지우는 과정은 좀 귀찮다. 실은 화장하는 과정도 귀찮다. 그래도 무대 분장이라는 핑계로 출근 때마다 하고, 퇴근해서 지우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다 주말이 되면 하지말아야지 하다가도 외출하기 전 다시 화장을 한다. 자외선 차단제 대신한다는 핑계로 화장을 한다. 안 하면 못 나가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하고 나간다.

그리고 주말 저녁 마저도 일 하고 온 것 마냥 피곤한지 늘어져 있다.

내일 아침에도 다크써클은 여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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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OTL-숨은 인권 찾기] ‘맥’으로도 보고싶다

한겨레21 독자편집위원회 활동하면서 글을 한 번 기고하고 싶었는데, 딱 한 번 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맥용 한컴 뷰어와 한컴오피스가 출시되었고, 맥용 MS오피스 역시 한국어로 사용할 수 있게끔 현지화되어 있습니다. 많이 좋아졌지만, 공공의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유료 프로그램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썩 좋은 일이 아니지요. 보안이라는 명목 아래 여전히 웹접근성도 문제가 있습니다. 심지어 공공기관에 웹문서 인코딩조차 제대로 설정 않은 곳이 많아 다운로드 받을 때 파일명을 알아보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2008년 10월 3일에 블로그에도 따로 포스팅했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글을 옮길 생각입니다.

아래는 기고한 글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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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는 동생이 여행을 다녀왔다며 여행기를 첨부해서 메일을 보내왔다. 여행이 어땠는지 궁금해 첨부파일을 다운받으려고 보니 확장자가 ‘hwp’, 한/글 문서다. 나처럼 한/글을 구입하지 않은 맥(매킨토시) 사용자는 안 읽어도 상관 없다는 건가? 윈도 말고는 한/글 뷰어도 없는데… 관공서 말고 개인한테까지 시위할 수도 없고 해서 문서 못 연다고 답장을 보냈다. 덕분에 문서 하나로 생긴 일이 생각나 씁쓸했다.
작년 대선 때, 시험 준비 때문에 집에 갈 수 없어 부재자 투표를 신청하려는데 신고일을 몰랐었다. 홍보도 없어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갔는데 공지도 없고 답답했다. 한 일주일 잊고 지내다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신고 마지막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야 하는데 공지일자에 어이없고, 맥에서 깨지는 페이지에 황당하고, 아무 배려 없는 한/글 문서로 된 공문에 화가 났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12월 13일 부재자투표일에 부재자투표소로 갔다. 홍보 시기, 웹 접근성, 한/글 문서의 폐쇄성 문제를 거론하는 내용을 담은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선관위 소속이 아닌 많은 공무원 분들이 “참고하려 한다”며 관심을 보여 보람있었다. 그런데 정작 지역 선관위는 사과와 시정 약속은 커녕 지역선관위 직원의 무단 채증(?)에 타당하면 연락주겠다며 ‘인적사항’ 요구(취조?). 나가서 시위나 계속 하라는 말은 덤이다. 덕분에 화가 이만큼 났는데 어떤 높아 보이는 사람이 와서 “문서가 안 열리면 되는 곳에 가서 열면 되는 것 아니냐”며 훈계를 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공문을 내가 따로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열어야 하는 것이 말이 되냐”는 당연한 반박에 “전화로 민원을 넣어도 되는 것 아니냐”며 한 마디 덤을 주신다.
이정도 일이 있었으니 선관위도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총선 즈음하여도 홍보 외에는 바뀐 것이 없었다. 기가 차서 중앙선관위에 직접 전화를 했더니 민원 게시판을 활용하라고 한다. 들어가보니 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웹브라우저로는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없었다. 쓸 수 있다해도 몇 개월 전에 올라온 광고 글 투성이로 전혀 관리가 안되는 게시판에 쓰나마나 아닌가? 결국 다시 전화하여 홈페이지 문제에 대한 수정할 것과 한/글 문서로 된 공문을 PDF파일로 변환하여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금방 금방 처리해 주었지만,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전산 담당자는 윈도 외의 다른 운영체제와 그 현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항의를 받은 후에야 조취를 취한 것일까? 하긴 웹표준(또는 웹접근성)을 무시하여 익스플로러와 윈도만 생각하여 독점을 방조하는 것도 무죄 판결하는 나란데…
웹표준을 지키고 웹접근성을 조금만 높이면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하며 편하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액티브엑스로 생긴 보안 문제를 줄일 수 있고, 시각장애인 전용 페이지 또는 음성안내 시스템으로 시각장애인의 웹서핑을 방해하는 일도 줄일 수 있지 않은가? 문서도 열린문서캠페인에서 이야기 하는 표준 문서 포맷(TXT, PDF, ODF)을 쓰면 윈도를 안 쓰더라도 누구나 읽거나 쓸 수 있다. 모든 운영체제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오피스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누구나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우리나라는 왜 윈도만 되게 할까?
그나저나 이친구는 내가 문서 못 연다고 답장 보낸지가 언젠데 왜 아직 답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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