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도 사람을 포기할 수 있다. 난 어릴 때부터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초능력을 가진 영웅 같은 존재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불편함을 고치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고치려고 하는 데 참여하려고 하면"지금은 바꿀 수 없어.""네가 간다고 바꿀 수 있을 것 같냐?""크면 바꿀 수 있어.""네가 힘이 생기면 바꿀 수 있어. 그러니 지금은 참아."그보다 더 어릴 때는 가능성을 그렇게 무한하게 이야기했으면서 중학생 때부터 되어 불합리한 것을 보며 불만을 느끼기 시작하자 어렵다는 이야기만 했다.그래도 나는 내가 참고 견디다 보면 세상을, 사람을 천천히라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갑자기 바뀐 게 아니듯 서서히 젖어 들어가게 바꾸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게 첫째는 치마 입기, 둘째는 화장하기였다. 나를 꾸미기 위한 것만이..
화장실에서 겪은 일 - 젠더 중립 화장실을 바란다. 1. 거기 남자 화장실인데!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이 닫히는 찰나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거기 남자 화장실인데!"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치마를 입고 다닐 때였는데, 짧은 치마 입고 남자 화장실 들어갔을 때 밖에서 한 여성분이 외친 소리 이후 거의 1년만인 것 같다. 치마를 안 입은 지 (아니 못 입은 것에 가깝다) 11달쯤 되었으니 1년쯤 된 게 맞을 거다. 이유는 안다. 예쁜 다리(다리 예쁘다며 부럽다는 이야기 듣는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스키니 진에 파마한 것처럼 보이는 곱슬머리 그것도 어깨를 넘길 정도로 긴 머리의 뒷모습 때문에 여자인 줄 알았던 거다.굳이 문을 열어 해명하는 것도 우스운 것 같아서 그냥 넘기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남자 같지 않아 여자라 생각..
비혼선언 - 나는 존엄하다. 난 비혼이다. 결혼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난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다. 결혼에 관한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식을 어떤 방식으로 해볼까, 결혼하기까지 치러야 할 과정이 어떨까 한참을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미혼이었다. 요 몇 달 동안 몇 번에 걸쳐 집에 비혼을 선언했다. 이제는 미혼이 아니다. 비혼이다.20대 초부터 아버지에게 '장가 빨리 가라.', '손주를 빨리 보고 싶다.' 등의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나이 먹을수록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중간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기도 했고 결혼과 살 곳에 관하여 이야기 나누며 고민하기도 했다. 각자 원하는 삶의 터전과 삶의 방식은 달랐..
나는 장식품이 아니라 인간이니 화장을 하겠다. - 2 평소 심심하면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 설 다음 날, 설 연휴에도 딱히 할 일 없어서 책을 가지고 카페에 갔다. 그것도 외출이라고 나름 꾸민다고 화장을 한다. 그날도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썹을 그렸다. 아이섀도, 마스카라, 립스틱까지 발랐다. 립스틱은 나름대로 발색을 신경 쓴다고 두 종류를 써서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냈다. 겨우 혼자 책 보러 가면서 정성 들여 화장했다.두 시간쯤 책을 읽는데 몸이 너무 아팠다. 전날 저녁부터 몸살기가 좀 있긴 했다. 좀 괜찮아진 것 같아서 나왔는데, 가만히 있으려니 몸이 점점 아파져 왔다. 목욕탕에 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좀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목욕탕을 가려고 나왔다. 다른 건 괜찮은데 마스카라를 어떻게 지워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향했다. 전용 ..
나는 장식품이 아니라 인간이니 화장을 하겠다. - 1 나는 화장하는 사람이다. 기초화장, 피부를 표현하는 화장, 색조화장까지 한다. 화장도 별로 예쁘게 나오지도 않고, 튀게 하지도 못하는 초보이다. 그런데 화장한다는 이유로 간혹 싸워야 한다. 나는 지정 성별이 남성이다. 그리고 시스젠더이다. 요즘에 조금씩 내 성별을 특정해야 한다는 데 의문을 품긴 하지만, 일단은 시스젠더이다.우리 가족은 내가 화장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혐오에 가까운 것 같다. 화장하면 잔소리를 한다. 적당히 하라느니, 얼굴이 너무 하얗게 되었다느니, 애(내게는 조카)가 내 화장 때문에 운다느니 온갖 핑계로 화장하는 것 자체를 갖고 건든다. 그 정도는 좀 참고 지냈다. 그러다 참지 못할 만큼 화나는 일이 생겼다. 아버지 정년퇴임 후에 직원들과 밥 먹는 자리를 마련..
학교에서 겪은 성차별 이야기 7. 가르치지 않는 권리 학교에서 교육 활동 외에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일까? 생활 지도이다. 생활 지도를 통해 인성, 비행, 폭력 등을 다루는 것이 맞을 것 같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외모 통제이다.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외모를 표준화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사회에서 적절한 외모의 조건이 내면화되며, 표준화된 외모 취향을 만든다.기간제교사 면접을 보러 갈 때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이 외모이다. 면접 보는 본인 말고도 주변에서 평범하게 하라고 강조할 정도이다. 면접에서 특징적인 부분이 있으면 학생들이 본받을 것이라거나 불평등한 상황에 의문을 품을 것이라고 잠재적 교육과정을 가정하여 안 좋은 점수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외모는 점수에 안 들어간다는 교원임용시험 2차 면접, 수업 실연 때도 다들 외모에 신경 많이 쓴다. 성별..
학교에서 겪은 성차별 이야기 6. 그건 성적 대상화입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가 있는 교과만 갖고 수업하지 않는다. 교과 외에도 여러 가지 분야에 관하여 자율 시간 등을 통해 교육한다. 자율 시간을 통해 성폭력 예방, 폭력 예방, 다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교육한다. 이런 교육은 특별하게 자율 시간만 갖고 수업하지 않는다. 일반 교과 시간에 녹여내어 수업하기도 한다.나는 그 중 성교육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보건 선생님께 찾아가서 가끔 그런 내용을 갖고 이야기를 해본다. 대화 중에 보건 선생님이 성교육을 보건에서 가져온 것을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업무만 늘어난 것뿐이면 괜찮은데, 성교육은 보건에서 전담으로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었다. '섹슈얼리티나 생물학적, 성병 예방을 넘어서 젠더 교육까지 함께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학교에서 겪은 성차별 이야기 5. 너의 피부를 위해? 학교에서 자주 보는 것 중 하나가 화장 단속이다. 심지어 불시 화장품 단속으로 화장품을 빼앗겼다며 엉엉엉 울며불며 대성통곡을 하는 학생도 본 적 있다. 화장을 못 하게 하는 규정이 있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화장품을 빼앗는 것은 더 이해하기 힘들다. 수업 중에 꺼내서 수업 방해한 물건만 잠시 맡아 두는 것도 아니고 검사해서 화장품을 빼앗는 것은 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도 선도부를 시켜서 하는 것은 더욱더!나도 화장 단속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해봤다. 수업 중에 단속해서 화장솜 주고 거기에 리무버 잘 흔들어서 뿌려준 다음 스스로 닦게 했다. 그런데 그것도 지쳤다. 동의하지 않는 일을 단지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하는 것도 싫었다. 나중에는 그것도 지쳐서 살살 모른 척했다. '내가 아니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