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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녹색 도토리

녹색당 2020 여성출마프로젝트에 붙여

얼핏 이름 하나만을 썼을 때 배제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정체성의 이름을 부르며 개개인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많은 정체성을 갖고 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교차점 속에서 수많은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다. 그 많은 정체성의 이름을 모두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하나의 이름으로 정치적 이해를 실천하기 위해 모였다.  이렇게 이름을 하나로 모은 정당에 들어온 것 하나만으로도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이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냐가 정치이다. 수많은 과거 당명을 쓰는 정당, 유사 당명을 쓰는 정당이 있더라도 우리는 구분할 수 있고, 구분해왔다. 우리는 그 당의 행동을 보며 살아왔다.
여성 정치라는 말로 소수자를 모두 대표하자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할 수 있다. 최근 일부 분리주의자들이 페미니즘에서 여성의 범위를 한정시키려고 거세게 몰아붙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여성은 누구이며, 누가 정한 여성인가? 그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흔히 가장 많이 쓰는 말로 '생물학적 여성'이 있다. 생물학적 여성은 실제하는 것일까? XX라는 염색체만으로 여성을 논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보부아르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의문까지도 못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생물학에서 수많은 성의 존재를 연구하고 있을 때 우리는 우생학을 벗어나지 못한 반지성주의자가 된다. XX염색체를 갖고 있지만 표현되는 몸이 달라 남성으로 알고 있는 사람을 배제하는 존재가 되며, XY염색체를 갖고 있지만, 표현되는 몸이 달라 여성으로 알고 있는 사람을 무시하는 존재가 되며, 이 외에도 간성 범주로 태어난 사람을 배제하는 존재가 된다.
탈코르셋이라는 말로 정형화된 행동만을 추구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가부장제의 탄생을 목격하게 된다. 코르셋이란 무엇일까? 여성을 억압해왔던 수많은 유무형의 억압을 상징하는 말로 코르셋이라는 말을 써왔다. 중국으로 치면 전족이라는 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분리주의자로부터 분리되기 위해 코르셋을 유럽권의 그것으로만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코르셋으로 상징되는 다양한 가부장적 억압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함께 싸울 것인가? 우리가 싸울 것은 이름 그자체인가 아니면 그 이름의 내용인가?
정체성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야 할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 친한 사람들에게 여러분 보다, 각자의 이름이 불리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정당으로 모인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상대하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정체성을 대표할 이름이 필요하다. 그 이름은 반대를 이야기 하지만, 대놓고 반대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반동으로써 구호지, 새로운 체제로써의 구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야 할까? 만약 여럿이 한 사람을 대표로 내세우고 그를 불러야 할 때에는 그에게 그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건 그 사람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이다. 굳이 대표자 뿐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서 각각 불러야 할 때 우리는 그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녹색당과 도토리라는 이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 그건 우리가 약속하고 합의한 우리를 대표하는 정체성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원 개인의 이야기를 할 때 녹색당만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떤 공통의 정체성 이름으로 불러야 할 때와, 개인으로 이야기할 때 달라야 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가 알며 행하고 있는 기본적인 예의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필요가 있다. 시기상 낙태죄 헌법 불합치라는 애매한 판결에서 완전 폐지로 이어지게 하려는 정치적 행동을 위한 것도 있다. 하지만, 여성의 이름에 있는 소수자적 교차성을 두고 끊임 없이 이야기하며, 여성을 한정시키려는 반동의 언어를 끊고 가부장제에 저항하며 여성을 확장할 언어가 필요하다. 거기에 새로운 말을 만들 필요는 없다. 새로운 말을 만드는 것은 단순 유행으로 지나갈 수도 있다. 우리는 체제를 새로 구축하려 한다. 거기에 있어 기존의 의미를 한정하려는 다양한 반동 새력에 함께 저항하며 우리의 위치를 명확하게 하면서 새로운 판을 짜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페미니즘, 여성이다. 페미니즘에서 여성이 대표되지만, 페미니즘이 공격 받을 때 분리주의자들은 여성의 상징을 하나로 만들며 여성을 축소시킨다. 우리는 위축의 정치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확장의 정치를 한다. 우리는 확장의 정치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발을 뻗지 않는다. 우리는 확장의 정치를 위해 연대하고, 함께 할 이름을 찾는다.
난 그 이름으로 '여성'을 선택하는 것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좋은 프레이밍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을 가장한 분리주의자들과의 대응에서 확장의 언어로써 '여성'은 좋은 프레이밍이다. 무엇보다도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주의를 깨자는 데서 만들어지고 타자화된 존재에서 주체적 존재로 나아가는 '여성'은 좋은 프레이밍이다. 모두 타자화된 존재로 존재할 때 주체적 존재로 존재하기 위한 정치적 싸움의 언어로 '여성'은 어떤 정치적 정체성을 가졌든 녹색당에서 가져가기 가장 좋은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http://www.werun2020.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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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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