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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리

여성 서사로써 『항거: 유관순 이야기』보기.

굉장한 우려 속에 보러 갔다. 귀향에서 본 그 끔찍하고 생각 없는 재현과 그 재현을 파해치는 행위를 민족주의로 포장했던 그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이 괜찮았다. 시대에 갇힐 수 밖에 없지만, 시대에 갇히지 않은 독립운동가 유관순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감독의 전작 때문에 우려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절제된 모습과 연출이었다. 감옥을 중심으로 한 흑백의 제사와 감옥에 들어가기 전을 컬러로 보여주는 묘사는 굉장히 뻔한 대비라면 뻔한 대비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정적일 수 밖에 없는 공간과 그게 아닌 공간의 대비로 볼 수 있다.

사망 순간 흑백에서 색이 점점 나타나는 연출은 굉장했다. 우리가 아는 건 흑백과 컬러의 교차점뿐이었다. 우리가 모르는 컬러풀한 유관순의 모습, 우리가 아는 흑백 속 유관순의 모습.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가 당연히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 컬러풀한 현실, 우리가 유관순 외에는 기억 못한 단색의 감옥을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연출이었다.

갈등을 겪고, 연대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운동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묘사하고, 시대에 갇힌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시대의 주체적 여성을 배운 학생만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개굴개굴을 통해 연대하며, 기생이 부르는 본조 아리랑을 통해 연대한다. 그렇게 운동하는 모두는 주체가 된다.

감옥 안에 같이 있는 이들이 천하다며 뭐라고 했지만, 가장 주체적이고 비민족주의적인 인물로 그려진 김향화에 대한 묘사는 각성과 운동에 대한 갈망이 형식적 교육만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김향화는 유관순의 친오빠와 함께 나타난 모습을 통해 대비된다. 감옥에서 나올 때 김향화는 능동적으로 동지의 가족을 찾아낸다. 그때 김향화의 옷은 기생들의 한복, 유관순의 친오빠는 교복이다. 복장으로 볼 때 오히려 김향화가 세상으로부터는 수동적이다. 하지만, 유관순을 면회하는 시점에서 김향화는 양장, 유관순의 오빠는 두루마기까지 갖춘 한복으로 기존 민족 체제와 작별하는 이와 편입하는 이와의 대비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유관순의 대사 역시 대비된다. 친오빠에게는 “밥상 차려주고 싶다”라는 말로 기존 질서라는 안정적 삶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준다. 이어서 김향황게는 “언니하고는 술 한 잔 하고 싶다”라며 새로운 삶의 지향과 연대를 보여준다. 이는 감옥에서 나온 후 만주를 택하고 떠나는 김향화와 머무는 유관순의 친오빠를 통해 새 체제의 주체로 저항에 합류하는 자와 기존 체제에서 저항하는 자로 나누게 된다.

난 여성 서사로써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꽤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부분이 아닌 맥락으로 풀어나갔고, 맥락을 통해 교차성을 드러내면서 평면적으로 풀기 쉬운 인물을 입체적으로 구성해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