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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bow is the NEW Black

레인보우 이즈 더 뉴 블랙 7강 - <퀴어의 삶 2 - 퀴어의 역사 - 한국에서>

레인보우 이즈 더 뉴 블랙 7강 - <퀴어의 삶 2 - 퀴어의 역사 - 한국에서>


2018.9.11.(화) 19:00



1. 퀴어란?

  - Queer: “괴상한”이라는 형용사에서 유래한 남성 동성애자를 일컫던 말로 현재는 성소수자 전체를 포괄

  - 어디까지가 퀴어 당사자일까?

     1) 성소수자의 정의에 해당하는 사람만?

     2) 퀴어로 정체화한 사람만?

     3) 앨라이는 퀴어가 아닌가?


  - 성소수자 정의하기

     1) 사회적 다수로 알려진(사회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성애자, 시스젠더와 비교되는 성적 지향, 성정체성, 신체 등을 지닌 이들로 크게 신체,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연애, 관계 지향 등으로 구분

     2) 섹슈얼리티 이데올로기에서 비주류들?

     3) 성소수자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 이성애정상성에서 벗어나는 사람?

       + 소수자라는 말의 오해: 소수자는 수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minority의 번역어로 비주류를 가리키는 말.


  - 퀴어로 정체화한 사람만 퀴어라면?

     1) 퀴어라는 개념조차 모르는 사람은?

     2) 자신의 몸을 모르는 사람은?

     3) 정체화하기 두려워하는 사람은?

     4) 어디까지 정체화인가?

     5) 퀴어로 정체화하는 조건은?


  - 앨라이(Ally)

     1) 동맹 등의 뜻을 지닌 단어로 사회 정의로서 소수자 혹은 그 커뮤니티에 연대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

     2) 앨라이는 퀴어일 가능성이 아예 없는가?

       + 현재 정체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 클로짓 퀴어라면?

       + 아직 본인의 비주류성을 깨닫지 못한 경우라면?

     3) 앨라이의 연대는 퀴어로 볼 수 없는가?


2. 성과학

  - 1897년 영국의 성 과학자 해블록 엘리스 “성도착” 출판

    +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

  - 영국에서 음란시비로 미국에서 전집 출판하였으나 자격증을 가진 전문 의료인만이 구입 가능(~1935)

  - 1927년 일본에서 번역 출판

  - 1931년 조선의 지식인들이 해블록 엘리스 전집을 과시적 언급


3. 성과학과 문명, 인종주의

  -  크라프트에빙은 문명의 발전과 성도덕 사이에 강한 관련성이 있다고 믿음. 제도화된 이성애는 문명의 정점. 단혼제 외부의 성관계는 문명 퇴화이자, 문명 자체의 위협으로 봄.

  - 서구 의학 저널에서는 미국 원주민, 아시아 사회 등에서 호모섹슈얼이나 성도착이 두드러진다는 증거를 발굴하여 원시 단계의 문화일 수록 성도착에 관용적이라고 입증하려 함.

  - 1930년 잡지 <별건곤> - 열대 지방 주민들은 대개 조숙하여 5,6세 밖에 안 된 애 어머니 수두룩, 3,4세만 되면 벌써 성인으로 육체가 발달되어 결혼 가능하다고 소개.

  - 일본의 성 과학자 코무로 슈진 - 조선인의 민족성이 둔하고 단정하지 못한 것은 조선 젊은이들 사이에 퍼진 남색 풍습 때문.

  - 성과학자 다나카 지우라 - 1928년 잡지 <성이론> 혼자 사는 남성이 성욕을 참을 수 없어 키우던 돼지와 성관계를 맺고, 이 돼지가 인간의 얼굴을 닮은 새끼를 출산했다고 투고하며 일본 본토에서는 발견할 수 없고 주로 대만, 조선, 중국, 인도 등에서 흔히 발견된다고 덧붙임.

  - 1929년 <조선일보> 중국 사천성의 소수민족 요족을 두고 일부다처제 풍속을 가졌다고 전제하고 이상적인 남성성을 갖지 못한 남성들은 성의 번뇌를 풀기 위해 비공식적 풍습인 원숭이와 결혼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주장, 원숭이와 교배종을 보는 것이 드물지 않다고 주장. 조선인들 조차 다른 식민지를 비하적으로 취급.

  - 1935년 <동아일보> "키스의 역사" - 미개 단계일 수록 후각, 문명화될 수록 촉각에 중심을 둔 키스

  - 1938년 <조선일보> "생식기능이 퇴화될 수록 키스가 발달"

  - 


4. 성과학과 사회 통제

  - 성과학의 목적성

     1)  서구의 성과학자들은 이성애와 단혼제 혼인에 바탕을 둔 성도덕, 성질서만이 사회 진보를 위한 필수 토대라는 믿음을 가짐.

     2) 성과학의 논거를 통해 성교육의 목적을 새로운 성도덕인 단혼제적 이성애 제도의 규범성 확립과 연결

  - 성과학과 단혼제

    1) 여성의 경우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할 경우 태아의 혈액속에 "오혈이 혼입"하여 "혈통의 순결"을 침해한다는 '불순혈설'이 나타나 상층신분의 여성들에게만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과학적 요청을 통해 모든 여성에게 적용되어야만 하는 원칙으로 제기됨.

    2) 결혼 거부 역시 병리화.

    3) 30세가 넘어서까지 독신으로 금욕하면 히스테리가 생김(정신의 질환이 생기고 고민 상태에 빠지고 몸이 수척해지고 빈혈 신경통", "월경부정 생식기관이 위축","여자의 금욕의 해는 남자보다도 더 빨리 생기고 더 심하다"는 의학적 경고

    4) 히스테리는 오직 결혼이라는 규범적 방식으로 편입을 통해서만 치료 가능하다고 주장

    5) 이유 없이 앓는 처녀가 있어 이를 낫게 하는 최후의 방식으로 결혼을 시키자 갑자기 나아졌다는 치료경험담의 형식으로 유포

    6) 1920년대부터 미혼률(당시 혼인이 인생의 과업 중 하나라는 시대상에 따라 비혼이 아니라 미혼이라는 단어를 선택) 증가의 원인을 여성 교육의 확대로 봄.

  - 소도미 조항: 1912년 이후 일본 형법을 적용받은 식민지 조선에서는 다른 조건을 위반하지 않는 남성간 성행위 금지법은 존재하지 않음. 이는 남성간의 성관계가 폭력과 아동을 대상으로만 한다고 대중에게 가시화.

  - 미국의 크로스드레싱 처벌 입법

    1) 시카고 -1851

    2) 스프링필드, 윌밍턴 - 1856

    3) 뉴어크, 찰스턴 - 1858

    4) 캔자스시티 - 1860

    5) 후스턴 - 1861

    6) 톨레도 1862

    7) 댈러스 1880

    8) 내슈빌 - 1881

    9) 새너제이 - 1882

    10) 투손, 컬럼비아 - 1883

    11) 콜롬버스, 피오리아 - 1884

    12) 덴버 - 1886

    13) 링컨 - 1889


  - 성욕 통제

    1) 남성의 경우 수음과 계간 등 방지를 위해 다양한 방법 강구

    2) 주요섭의 "학생풍기문란론"

      + 화장실 문은 위아래가 뚫려 외부에 있는 사람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낙서를 통해 성적 충동이 일어나지 않게 물로 씻어낼 수 있는 에나멜 재질로 만들 것, 교지기는 한 시간에 한 번 화장실을 순례

      + 화장실을 훈육의 공간으로 봄


  - 근대의 자유 연애에 대한 시각

    1) 1938년 서대문정 네거리 약국 앞에서 입을 맞추던 연인 경찰서에 끌려가 취조

    2) 여성의 자유 연애에 대해서는 조리돌림 등 사적 처벌

    3) 1930년대 카페에서 연애를 판매 - 여급을 대상으로 자유 연애 실험


5. 정상성과 비정상성

  - 신체와 범죄: 1930년 <별건곤> "변태성욕자는 겉으로 이상 없지만 생식샘에 변형", 범죄는 타고난 신체 차이의 결과

  - 크로스드레싱

    1) 1925년 <동아일보> 47세 늙은 처녀 - 30년을 지속해온 '남장' - 양반 남성에게 기대되는 남성성도 수행. 상투를 틀다 단발령에 상투 자르기까지

    2) 1928년 <동아일보> 도항저지를 피하기 위한 여장을 했으나 신체검사로 발각

    3) 1929년 화천읍내에서 저고리에 검정 통치마를 입고 손에 흰 양산을 쓴 여성과 함께 다니는 17세의 "미인" 남성 김창룡. 한 남학생이 그를 연모하다 발각되어 퇴학. 하녀로 일하거나 요리점에서 음식을 만듦. 공적 공간에서 점차 여장을 동성애의 한 징후로 보는 것으로 알려짐. 경찰의 권고로 남자 옷을 입고 움직이게 됨.

      →  김창룡은 남자 옷을 입고 경성에 갔다 종로 부근에서 여자가 남장했다며 체포됨.

    4) 1935년 <조선일보> 경남 산청군의 한 술집에서 여장하고 "써비스 걸"로 활약하는 경미개라는 20세 "미남 술장사" 소개. 어린 시절부터 "여복"을 입혀 키워져 모두 여자로 알고, 머리, 얼굴, 음성, 체격, 행동까지 여자와 흡사한 미인. 16세에 만난 청년에게는 남자인 것이 발각되어 실연. 술집에서 일하는 것은 70노부 봉양을 위해. 촌락에서는 관습적으로 용인

    5) 1922년 기생출신 신여성 강향란 "남자 양복에 캡 모자" 쓴 차림으로 정측강습소에 등교해 남학생들과 함께 수업. 1923년 상해 유학길에서도 남자 양복 즐겨 입음.

    6) 1925년 황육진도 같은 학교에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고 등교. 시집을 보내려는 데 맞서기 위해. - 황육진은 검사 중 발각되어 알려짐.

    7)  1938년 <동아일보> 의학적 차원에서 이성의 신체적 특징이 두드러지게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며 크로스드레싱을 인터섹스와 결합하여 설명


6. 근대에 인터섹스를 바라보는 방식

  - 1930년 양성의 인물 배갑술이 절도죄로 체포되었으나 어떤 성의 감방에 두어야 하는지 두통거리.

  - 괴미인 34세 김정집은 어린 시절에는 남자 행세, 현재는 의원에서 여자로 행세하며 환자의 심부름

  - 1938년 25세 법적 남성 윤재호, 월경과 임신

  - 1933년 개천 군우리 공설시장 - 그네 타기 대회에 참가한 여성을 두고 남자라는 수군거림에 연행됨. 생식기 검사 후 "생식기가 하도 기형적", 의사의 진단을 통해 "간신이 남자" 이후 진정한 성별을 남성이라며 삶을 부정.

  - 1938년 <동아일보> "조물주의 영역을 현대의학이 침범. 중성인간을 수술. 남자로 완전변작"

  - 미셸 푸코 - 근대 서구사회에서 인터섹스는 두 개의 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

  - 근대부터 진정한 성별을 판단하는 권위는 본인의 정체화가 아닌, 의학 전문가 집단의 판정에 귀속


7. 동성애

  - 남성 동성애 풍습

    1) 수동무: 어린 소년을 일종의 결혼 대상으로 여성으로 소비하며 아내와 미동이 한 집에 동거

    2) 맞동무: 경제적 수준이 없는 성인 남성간 행위

  - 여성 동성애

    1) 여학교에서 S

    2) 미국에서는 스매싱, 크러쉬, 영국에서는 레이브, 일본과 조선에서는 S라 불린 여성 간 “동성연애"

    3) 일부 연구에서는 이성애의 대리보충으로 발전한 유사연애의 한 형식으로 보았으나 연애라는 말이 들어온 시기와 S의 유행 시기가 거의 일치

    4)  1924년 <신여성> 현루영 "동성애가 오히려 여성애게 있어서는 정서의 발달을 촉진할 뿐 아니라, 남녀간의 풋사랑에 대한 유혹을 면하게 함으로써 순결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

    5) 1931년 4월 8일 두 명의 젊은 여성이 열차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음. "최초의 동성연애 자살"이라는 제목으로 1973년 조선일보가 1931년의 기사를 다시 소개.


8. 트랜스젠더

  - 1950년대까지는 인터섹스와 성전환 수술 중심으로 뉴스 생산

  - 1960년대는 복장 전환을 중심으로 뉴스 생산

  - 트랜스젠더 업소

    1) 1960년대 초반 - 이태원 형성, 초기 트랜스젠더 업소 등장

    2) 1963년 <조선일보> 마포구 공덕동 - 공미화라는 이름으로 술집에서 접대부 노릇을 했던 24세 이주옥은 술에 만취하여 수작 거는 손님들에 의해 정체가 드러나고  간첩혐의로 조사받음. 기지촌 인근 성노동자는 통상적 '여성'만이 아니었음.

    3) 1964년 <조선일보> 이태원에 남장여인이 살고 있다. 양공주(기지촌 성노동자) 중 남장여인과 동거하는 경우가 많다는 기사.

    4) 1971년 <경향신문> "남자면서 여자로 살거나, 여자면서 남자처럼 사는 사람이", 중성(여장남자위안부)

    5) 해괴하기 이를 데 없는 여장남자들이 있는 "텍사스촌", 사람들은 이들을 중성이라 부름.

    6) 유국치(1990년대 초)- 1976년 게이(1990년대 초 용어)바 “열애” 등장했다고 전함.

    7) 윤일웅 <매춘: 전국 사창가와 창녀 실태>(1987) - 이태원 게이클럽. 한결같이 여자 뺨치는 미인이나 실제론 모두 남자들

    8) <BUDDY> - 1990년대까지 "게이"라는 용어는 현재의 트랜스젠더를 지칭. 게이를 남성 동성애자로 명확하게 규정한 시기는 1993~3년으로 이전에는 호모라 부름. 현재의 의미로 게이바 등장은 1994년

    9) 1983년 <동아일보> - 남자들이 여장을 하거나 여자 몸가짐 목소리로 시중 드는 게이바 생겨나 십여 곳.

    10) 1980년대에는 남창과 에이즈를 중심으로 뉴스 생산

    11) 남창의 범주에 이태원의 "게이"(트랜스젠더)를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