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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나야나

연대는 혐오보다 강하다

허울 좋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라는 뱃지는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서도 자신이 가장 약자라는 착각 속에 빠지게 만듭니다.
페미니스트라면서 권력에 위계에 관한 고찰은 없습니다. 페미니스트로서 가부장제는 외부 생식기와 검사도 안한 성염색체만으로 끝난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저는 에코 퀴어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제 위계를 끊임없이 점검합니다. 주변에서 문제 삼으면 바로 고치고 사과하려 노력하고 제가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살펴봅니다. 가부장제를 끝장내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가부장제 종식을 통해 위계로부터 해방을 얻고자 합니다.
수많은 위계가 있습니다. 그 위계는 한 가지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존재를 부정당하고, 그로 인해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트랜스젠더입니다. 전환이 아니라 내 원래 모습을 무시하고 타인이 마음대로 지정한 걸 나로 되돌리는 겁니다.
인정 투쟁의 한 과정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떤 모습으로 패싱되어야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정만 못 받아도, 안전만 없어도 생존이 힘들지만, 둘 다 없으면 생존은 그 자체로 투쟁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존재만으로도 투쟁이라는 건 그만큼 삶이 힘들다는 겁니다.
어차피 혐오자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만이 진정한 사회 구조의 밑바닥이라고 생각하거나, 특정 한 요소만이 사회의 위계를 결정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래도 전 이렇게 계속 이야기할 겁니다. 혐오자와 우리 사이가 아닌 그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호소할 겁니다. 그렇게 세상과의 간극을 좁힐 겁니다. 존재만으로도 투쟁이 아니라, 그저 아무개 정도로만 인식될 수 있게 호소하고 투쟁할 겁니다.
동지들, 다른 퀴어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연대할 겁니다. 그 연대는 우리 사이의 혐오도 계속 고찰하게 하며 혐오를 넘어서게 할 겁니다. 그래서 연대는 혐오보다 강합니다.
혐오가 아니라 연대가 승리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