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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지금 당장! – 하이퍼 리얼리즘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하이퍼 리얼리즘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오랜만에 드라마에 빠졌다. 2019년 8월, 16회로 종영한 '60일, 지정생존자'라는 드라마다. 미국 드라마 '지정 생존자'가 원작인데, 이를 한국 상황에 맞추어 만들어졌다. 우리도 2년 전 대통령 탄핵으로 겪어봤던, 대통령 유고 시 60일 권한대행의 이야기를 그렸다. 단, 설정이 좀 끔찍하다. 대통령을 비롯한 각 장관들이 함께 국회에서 연설하던 중 국회 지붕이 터지면서 모두 죽고 만다. 기적의 생존자 한 명 빼고. 미국과 한국 모두 공통점은 환경부 장관과 주택부 장관이라는, 힘없는 이들이 대통령 혹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드라마는 지정생존자로 안전가옥에 갇혀있던 주택부 장관 빼고 모든 의원까지 사망한 반면, 우리 드리마는 제1야당이 대통령 연설 보이콧으로 모두 살아 있다.

같은 무력 충돌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의 외교적 상황이 다른 만큼 해결 방법도 무척이나 다르다. 진짜 한국 같다고 탄식하면서 보았다. 그런데, 계속 눈에 들어온 것은 인권과 관련한 이야기, 그리고 쟁점이 되는 법안이 차별금지법이라는 것. 그것마저도 너무나도 한국적이었다.

첫 인권 문제 상황은 국회 붕괴 테러로 어수선할 때, 탈북민(북한이탈주민)들이 테러의 배후라는 극우주의자들의 주장이다. 그렇게 그들이 모인 곳을 극우세력이 부순다. 피해자들이 벌벌 떨 때 서울 시장은 그곳을 특별 구역으로 지정하여 안보에도 자신 있다는 식으로 선동한다. 그때 마약을 밀매하던 이들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희귀 질환으로 주사 한 대를 못 맞은 상황이라 마약 투약자로 의심 받는데 갇힌 상태에서 병원도 못 가고 죽고 만다. 이후 남편은 대통령 권한 대행 앞에 나와 1인 시위를 하려 했지만, 테러로 어수선한 정치 상황에 대통령 권한 대행을 향한 테러로 오인 받는다.

 

힘없는 이들만 골라 공격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2년 전 유력 후보인 문재인 후보가 대선 토론회에서 동성애 반대 발언을 하여 그 발언을 규탄하던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들더러 주먹질 했다며 욕하던 이들이 생각났다. 인권은 나중이라며 이야기하던 그들의 모습과 겹쳤다. 피해자인 소수자들을 두고 오히려 폭력적이라며 여론을 몰아가던 일이 떠올랐다.

前한겨레 기자였던 허재현 씨 생각도 났났다. 마약을 권하며 함정수사 했다던 그의 말도 생각났지만, 마약의 유통자와 투여자를 크게 다르게 보지 보는 이 사회가 끔찍하게 보였다. 만약 희귀 질환이 아니라 마약 투여라고 해도 건강상태에 문제가 있으면 먼저 병원으로 보내야 하는데, 죄보다 죄지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더 문제 삼는 그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런 어수선하게 인권과 정치가 혼란스럽게 얽힌 상황에서 드라마는 그 문제를 한 장면으로 풀어 설명했다. 부대변인이 답변을 못하고 도망가자 어쩔 수 없이 연설문 행정관이 대신 대변인처럼 행동했는데, 그 행정관은 탈북민이다. 그 이후 부대변인이 원한을 품었는지 연설문 행정관에게 진짜 북한이 탈북민에게 지시한 것 아니냐고 비아냥댄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무마하기 위해 소수자를 낮춰보던 그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그때 다른 행정관이 부대변인에게 탈북민을 두둔하며 사과하라고 요구한다. 연설문 행정관은 조용히 "탈북민으로 말씀드립니까? 아니면 청와대 행정관 입장으로 말씀드립니까?"라고 한다. 그리고 부대변인에게 주먹을 들이민다. 부대변인이 놀라자 그는 주먹을 아래로 향하게 움직이고 말한다.

“이 주먹은 아래로 향한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탈북민들을 공격한 건 위험해서가 아닙니다. 없어서.”

이 대사는 마음을 크게 울렸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며 공격하던 일본인들, 테러가 일어나면 무슬림이 잘못이라며 무슬림을 공격하는 이들. 트랜스젠더에게 탈동성애 할 수 있다고 하거나, 퀴어를 더럽다고 하던, 굳이 찾아와서 사랑하니 존재에 반대한다, 동성애는 가짜 인권이다, 저들은 어디 뒤에서 돈을 지급해서 활동하는 것이라고 하는 혐오세력들이 떠올랐다. 진짜 소수자가 위험하고 무서웠다면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이나 할 수 있었을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하면 두려워했지, 그들의 잘못이라고 공격할 수 있을까? 사회에서 직장 구하기도 쉽지 않은 우리를 공격하는 건 정말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다. 힘이 없어서다. 정치 조직을 만드는 방법 중 하나가 큰 하나의 적을 상정하고 공격하여 세를 모으는 것인데, 퀴어 혐오를 중심으로 쉽게 세를 모으고 여론을 조직한다. 조국 법무부장관 청문회 과정에서도 동성애 반대, 군내 동성애라고 연대하는 꼴까지 보았을 때, 참 만만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은 없다! 오늘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뿐

다시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오면, 본능적으로 힘없는 자들을 내치는 것에 대해 탈북민 행정관의 말 한 마디로 끝내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을 내세우며 그를 둘러싼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이 왜 제정되지 못하는지 그 민낯에 대해 그대로 고발한다. 14화에서 차별금지법을 안건으로 올린 국무회의가 있다. 그 국무회의 직전 오영석 국방부 장관과 박무진 대통령 권한대행이 복도에서 마주치고 차별금지법을 두고 설전을 벌인다. 오영석 국방부 장관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건 힘들다며 본능을 언급하며 말한다.

“그 어떤 이유에서건 인간은 항상 차별을 찬성해왔습니다. 그래야 이 전쟁 같은 세상에서 자기가 조금은 유리해지니까. 본능이죠.”

이에 박무진 권한 대행은

“하지만, 사람은…”

이라고 반박하려 했으나 오영석 국방부 장관이 바로 반박한다.

“사람이니까 그 말을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겠죠. 차별에 찬성한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동성애라는 핑계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겁니다. 종교와 신념, 전통이란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한 채 인간은 가면 속에서는 차별에 찬성하고 평등에 반대하는 이기적인 족속이죠. 그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민낯이에요.”​

이 말 후에 한참 고민하던 박무진 권한대행은 국무회의 마지막 안건인 차별금지법 차례가 되었을 때 차기 정권으로 넘긴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모든 인물이 당황한다. 그리고 차별금지법 제정 소식에 기뻐했던, 자신과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한 노주영 감독에게 사과하러 간다. 노주영 감독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말을 하며 넘어가려 했다.

“기사 봤어요. 쉽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어요. 이렇게 찾아오지 않으셔도 대행님 원망하거나…”

​그때 박무진 권한대행은 다른 핑계를 댄다.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고 싶어졌습니다. 차별금지법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어서. 선거에서 꼭 이길 생각입니다. 차기 행정부에서는 제일 먼저 차별금지법부터 제정하죠. 약속드리러 왔습니다.”

이때 난 너무 슬펐다. 악이라고 생각하는 데 굴복하기도 했거니와, 지금 당장 내 친구들이 죽어 가는데 나중이라는 말을 또 했기 때문이다.

그때 노주영 감독이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때 또 그때의 이유가 생길 텐데요. 우린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부부도 가족도 될 수 없어요. 법이 인정하지 않으니까. 차별금지법은 특혜를 주는 법이 아니에요. 우리 같은 소수자들은 그 법이 있어야 비로소 보통 사람이 되는 거죠. 이렇게 찾아와서 선심 쓰듯 말하지 마세요. 대행님은 오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뿐이니까.”

직후 박무진 장관이 1화에서 ‘짤리기’직전 양진만 대통령과 한미 FTA협정에서 경유차 규제 완화 관련하여 언쟁하는 부분이 플래시백으로 나온다.

“그런데, 지금은 저더러 거짓말을 하라고 하시는 겁니까? 못 이기는 척 선심 쓰듯이?”
“박 장관 자네는 정치는 모른다.”
정치는 몰라도 정책은 하게 해주겠다. 저에게 약속도 하셨습니다. 바로 그날에.”
“약속하지 2021년 이후에는 규제기준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어. 또 문제는 마 또 그때 가서
“그때까지 우리 아이들은 이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에 있다, 늘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아니다. 정치는 대중의 여론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설득하고 지지를 넓히는 과정이다. 여론에만 따르는 정치인은 무슨 쓸모인가? 모두 투표만 하고 넘어가면 될 텐데?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2017년부터 전국에서 새 축제 지역이 늘어나는 건 더 이상 가만히 못 있겠다는 개개인의 울부짖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우리의 울부짖음에도 2018년 인천퀴어문화축제 때, 인천동구청이 악성 민원을 끊어내지 못하고, 자기들은 허가한 적 없다며 회피한 탓에 우리는 혐오세력의 폭력에 노출되어야 했다. 그들은 몸으로 우리를 막고, 치고, 깃대를 빼앗아 부러트리고, 깃발을 빼앗고, 깃발을 내리라고 했다. 그 폭력에 우리는 깃발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고, 깃발을 다시 올리며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계속 외쳤다. 광주에서는 혐오세력 수천 명이 우리를 위협했다.

2019년 퀴어와 관련해 시기상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체 언제가 되어야 시기상조가 아닌 걸까?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시기상조라는 말에도 민주화 운동을 통해 민주화를 쟁취했던 그들이 우리에게 시기상조라고 한다.

누가 이 상황을 두고 한탄하듯 말했다. ‘시기상조란 아직 사람이 덜 죽었다는 뜻이라고. 슬프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전해들은 활동가의 죽음만 인천퀴어문화축제와 제주퀴어문화축제 사이에 한 명, 최근에 또 한 명이다. 그나마 활동가니까 자살이 알려진 것이다. 활동가가 아닌 성소수자의 죽음은 전해 듣기 힘들다. 가족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쉬쉬하거나, 애초에 커뮤니티에 못 나와서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뒤에서 죽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 성소수자가 몇 명이 죽어야 시기상조가 아닌 걸까?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이런 슬로건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듣는 건 언제나 공격적인 말이거나 뒤로 미루는 말이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중에.”​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하이퍼 리얼리즘이었다. 현실에서 못 이룬 바람을 이루어주는 판타지는 되지 못했다.

 

 

* 이 글은 국가인권위 광주인권사무소에 함께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