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버스에 탔다. 버스 안에 사람이 꽉 들어찼다. 너무 여유있게 줄을 선 탓에 늦게 탔고 정문에서 안으로 더 들어가지 못했다. 나중에 더 탈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안쪽으로 더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안쪽으로 더 들어갈 수 없었다. 몇 정거장이 지나도록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점점 불안해졌다. 뒤에 탈 사람을 생각해서 안으로 좀 더 들어가고 싶어도 안에 있는 사람을 쉽게 밀고 치며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중간에 그렇게 하는 남자가 탔다.

중장년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좀 들어가라며 큰 소리치고 난리였다. 소리치기만 한 게 아니라 팔꿈치로 내 척추뼈를 찔러댔다. 잠시 밀기만 한 것도 아니고 한참 동안 들어가라며 큰 소리치며 내 척추뼈를 찔러댔다. 견디다 못해 아프다며 찌르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무시하고 큰 소리치며 들어가라고만 하며 팔꿈치를 빼지 않았다. 아픔과 화를 못 참고 너도 아파 보라고 팔꿈치로 그 남자의 등을 쳤다.

"어린 놈이 건방지게 뭐야? 왜 쳐?!"

그 남자의 말이 너무 어이 없었다. 찌르지 말라고 했을 때 무시했던 인간이 이런 염치 없는 소리를 하다니. 나도 질 수 없었다. 맞대고 소리쳤다.

"나이 먹으면 나이 먹은 값을 합써(하세요)!"

그랬더니 그 남자 입에서 욕설이 나왔다. 나도 똑같이 욕으로 받아쳤다. 그와중에 같이 탄 웬 중년의 여성이 나보고만 좀 가만히 있으라며 뭐라고 했다.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하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그 남자한테도 잠깐 뭐라고 했다. 가만 보니 둘이 부부인 것 같았다.

내릴 때가 가까워져 내릴 준비를 했다. 그때 그 남자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비아냥댔다.

"남자 새끼가 화장했네."

어떻게 입다물게 할까 잠깐 고민을 했다. 맞받아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치마도 입었다. 이 개새끼야!"

남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때 옆에 있는 중년 여성이 비아냥댔다.

"잘도 예쁜 게 마씀(정말 예쁘십니다)."

슬펐다. 나는 외모 표현만으로도 시비거리가 된다. 게다가 저런 예의 없는 인간도 거들어주고 편들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버스 안에서도 나는 편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서러웠다.


외모 표현만으로 시비거리가 된 건 그게 처음이 아니었다. 출장 갔는데 화장한 내 얼굴을 보고는 "잘도(정말) 예뻐서 여자인 줄 알안(알았어). 장가는 갈 거?"라며 비아냥이 섞인 말로 성희롱한 다른 학교 여교사. 더 전에는 화장했다는 걸 핑계로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라며 성희롱한 남학생. 그들의 해맑은 시비조의 성희롱이 떠오르며 더 서러웠다.

심지어 화장을 하고 다닌다며 학교에서 난리가 났었다. 화장을 하고 다니는 남교사가 있다며 교장에게 민원을 넣은 학부모. 거기에 반응해서 성차별 예방 연수 내용에도 불구하고 전체 모임 때 "남자 교사는 남자답게, 여자 교사는 여자답게 하세요."라고 말한 교감. 맨날 화장한 거 봐 놓고 새삼스레 "선생님 남자인데 왜 남자 답지 않게 머리 기르고 화장을 하세요?"라던 머리 짧은 나이 많은 여교사.

그뿐 아니라 내가 중3때 담임이었던 교부무장인 남교사는 오랜만에 밥 먹자고 불러서는 '동료 교사'임을 강조하며 내 말에 따를 필요는 없지만 "화장 안 하면 안 되겠냐?"며 말을 꺼냈다. 화장 계속 하겠다고 했더니 약속을 하기 전까지 집에 안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모순도 화가 났는데, "화장을 참아보고 정 그렇게 못 견뎌서 화장을 하고 싶으면 사직서를 내라."고 까지 말했다. 동료도, 은사도 아니었다.


가족이라고 다를 것 없었다. 아버지가 정년퇴직해서 그걸 기념하는 식사 자리에 가는 날, "아버지를 위한 자리니까 화장하지 마라."라던 남동생. 화가 나서 안 간다고 했더니 내가 이기적이라던 부모님. 부모님은 명절연휴 때 "남동생 친구들이 세배하러 올 거니까 화장하지 마라."라고도 했다. 못 참고 화장 갖고 뭐라고 하지 말랬더니 아버지는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다른 사람이 오는 자리만 갖고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집에서 저녁 식사 중 티비에서 나오는 사극을 보고 있었다. 남자한테 귀걸이 자국이 있다며 웃는 어머니 말에 "조선시대에는 남성들 귀걸이 흔하게 했다."며 "고증이 잘 됐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 말에 "어디 남자가 귀걸이를 한다는 말이냐? 난 그런 말 들어본 적도 없다."며 크게 화냈다.

가족은 남성성이라는 허상에만 매달릴 뿐 아니라,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를 내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나를 장식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정말 서러웠다. 가족에게 조차 나를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게 너무 서러웠다.


몇 달 전, 서러움을 더이상 참지 못하고 내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나는 성소수자다. 성적 지향은 양성애, 성정체성은 안드로진이다. 나는 이성애 중심주의에서 벗어났고, 성별 이분법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그런 내가 남성으로만 젠더 표현을 해야 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난 내 자아에 맞는, 내 정체성에 맞는 표현을 하고 살겠다는 내용을 SNS에 공개적으로 올렸다. 내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더니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엄청났다. 친구 맺고 있는 수백 명의 내 학생들과 수백 명의 지인들은 지지하거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매일 #오늘의미모 #오늘의치마 라는 태그로 사진을 올리는데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댓글을 단다. 난 그렇게 용기를 얻고 어머니에게도 커밍아웃했다. 어머니는 내 표현을 보고 상처 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상처 받을까 걱정했다.

내 편이 생겼다. 엄청나게 많이 생겼다.

요즘 매일 #오늘의미모 라는 태그로 화장한 후의 모습을 셀카로 찍어 올린다. 상의로 블라우스를 입기도 하고, 셔츠나 후드티를 입기도 한다. 가끔은 다른 사진도 올린다. 전신을 찍을 수 있는 거울이 있으면 전신을 찍어 올린다. 스타킹 신고 반바지 입은 모습을 올렸을 때 이런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예전의 멋있는 모습은 어디 갔나요?"

내 답은 '난 언제나 멋있는데?'였다. 난 내가 꾸미는 행위를 즐기고, 내 삶을 당당하게 살아간다. 얼마나 멋진가? 난 부끄럽게 살지 않는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오늘의미모 셀카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너 왜 계속 그러고 다니냐?, 왜 계속 여장하고 다니냐고 한두 번은 장난인 줄 알았다."

좀 당황스러웠다. 나는 여장한 적이 없다. '이게 뭐가 여장이에요?'라고 답하긴 했지만, 전에 겪었던 나보고 미쳤다고 한 녀석이 생각나 글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여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여장02(女裝) 「명사」 남자가 여자처럼 차림. 또는 그런 차림새.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반대말 남장01(男裝) 「명사」 여자가 남자처럼 차림. 또는 그런 차림새.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중 중 소수자의 의사를 별로 존중하지 않고 소수자 억압에 관한 의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립국어원의 정의가 낱말의 '뜻'이라고 불리는 게 제일 싫다. 언어의 정의는 헤게모니 싸움인데, 그 헤게모니 싸움을 피하는 척 강자의 처지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빌려온 것은 내가 인식할 수 있는 한계 때문이다. 내가 소수자이기 때문에 비소수자의 이야기를 할 때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빌려와야만 한다. 그래야 소수자 입장에서 그 인식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하면 난 저 정의에 따른다고 해도 여장한 적이 없다. 물론 나는 화장하고 다닌다. 블라우스도 입고, 스타킹을 신고 반바지나 치마를 입기도 한다. 화장은 화장대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할 뿐이고 딱히 여성용이라고 표시되어 판매되는 상품도 아니다. 스타킹도 뭐 여성용이라고 나오지도 않는다. 반바지도 마찬가지. 치마나 블라우스는 여성복 분류로 판매되긴 하지만 내 몸에 맞아서 입을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여장이라 부르기도 황당한 게 나는 여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 나는 여자처럼 차린다는 것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내가 입고 싶다고 생각한 대로 입는다. 여자처럼 차린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처음 입을 때 용기를 내어 입긴 했지만, 타인의 무지한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처음 화장할 때에도 용기를 내긴 했지만, 그건 내 화장의 수준 때문이지 화장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여자처럼'이라는 내 인식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여장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나는 내 젠더를 고민하는 사람 젠더 퀘스처너(Gender Questioner)[각주:1]이다. 젠더퀴어[각주:2] 혹은 논바이너리(Non-Binary)[각주:3] 쪽으로 고민하고 있다. 안드로진[각주:4] 내지 뉴트로이스[각주:5] 혹은 데미메일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100% 남자가 맞는지부터 의문을 품고 있으므로 여장의 전제인 남자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젠더 고민 끝에 나는 100% 남자라고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첫째에서 말한 여자처럼 차림새를 가꾸는 것 자체에 의문을 가진 이상 여장이 되기 힘들다.

셋째, 반대로 남장을 끌고 와보자. 여자가 남자처럼 차려입는 것은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서 남성만이 입는 옷이 뭐가 있을까? 없다. 또 여자는 반드시 화장해야 하나? 아니다. 화장하지 않는 여자도 있다. 여장의 반의어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금 무슨 사회적 의미가 있는 단어인가? 단어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도 남자가 바지를 입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바지를 입고 화장을 하지 않는 여자가 많다고 그에 빗대어 여장했다고 할 것인가?

난 내 생물학적 성별이 XY 염색체의 남성이라 추정[각주:6]하고 있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0세기에 태어난 남성을 가리키는 1로 지정 성별은 남성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성역할을 강제로 부여받아 산다. 난 그 성역할을 강제하는 게 싫다. 내가 어떻게 생겼든 어떻게 살든 나는 성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존중받고 싶다. 젠더라는 프레임으로 나를 보게 하고 싶지 않다.

  1. 자기 자신의 젠더에 의문을 품는 사람 [본문으로]
  2. 성정체성 소수자. [본문으로]
  3. 성정체성 소수자로 젠더 이분법(여성과 남성으로만 구분)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 [본문으로]
  4. 남성을 뜻하는 Andro와 여성을 뜻하는 Gyne의 합성으로 양쪽의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다. 바이젠더가 왔다갔다 하는 것이라면 안드로진은 모두 섞여 있는 상태를 뜻한다. [본문으로]
  5. Neutrois,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에 가깝다. 중성 정도? [본문으로]
  6. 검사한 적 없으니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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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드레싱이라는 말이 있다. '특정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반대 성별이 입는 것으로 인식되는 옷을 입는 행위'라고 위키백과에 나와 있다. 드랙퀸(Drag Queen) 같이 유희를 목적으로 과장되게 여성처럼 치장하고 행동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성복장도착 같은 성적 도착증도 있다. 그 외에 변장이나 다른 것들을 목적으로 이성의 옷을 입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남성기가 있는 주민등록상 남성이다. 그리고 여성복이라고 하는 것들을 입는다.

나는 블라우스를 즐겨 입는다. 바지도 레깅스 같은 핏의 스키니 진을 즐겨 입었고, 여름이면 핫팬츠를 입고 다닌다. 거의 1년간은 입지 않기는 했지만 한동안 치마도 입고 다녔었다. 나는 유희 목적으로 입고 여성(이라고 생각되는 모습)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니 드랙퀸은 아니다. 성적 쾌감을 느끼지도 않으니 복장도착도 아니다. 그러면 나는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것일까?

나는 옷을 살 때 여성복 판매점에서 산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남성복은 잘 살펴보지 않는다. 바지를 사거나 티셔츠나 니트를 살 때도 불편함 없이 산다. 온라인에서는 내 사이즈 재둔 것과 비교해서 보면 입는 데 무리 없고, 오프라인에서는 단골 가게가 있어서 들어가면 편안하고 여유 있게 고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남성복보다 저렴하기도 하지만 모양이 다양해서 좋다. 그래서 여성복 판매점에서 산다. 

트위터에서 나와 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하게 옷을 입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FTM[각주:1] 트랜스젠더인데, 샬랄라 원피스나 치마 입기도 좋아한다고 했다. 일단 남성이 된 사람들인데 여성의 옷이라고 불리는 옷을 입는다. 그러면 이들은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것일까? 원래는 여성이었는데 남성이 되었다고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것일까?

난 옷을 입을 때 이성의 옷이라는 생각을 하고 입지 않는다. 성별을 둘로만 나누고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이분법적 사고도 싫어한다. 사회 통념상 치마나 블라우스는 여성만 입는 옷이다.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사람일 수는 있겠지만 나는 반대 성별의 옷을 입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지 예뻐 보여서 입으면 어울릴 것 같은 옷을 입을 뿐이다.

난 머리도 기르고 화장도 한다. 그렇게 보면 통념상 여성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나는 내 성별을 여러 가지로 고민하는 젠더 퀘스처너[각주:2]이지만 여성이 되려는 생각은 없으니 트랜스젠더도 아니다. 젠더 이분법으로부터도 탈출하고 싶고, 내가 보기에 예뻐 보이는 옷을 좀 자유롭게 입고 싶을 뿐이다.

  1. Female to Male [본문으로]
  2. 본인의 젠더에 대하여 고민하는 사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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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릴 때부터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초능력을 가진 영웅 같은 존재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불편함을 고치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고치려고 하는 데 참여하려고 하면

"지금은 바꿀 수 없어."

"네가 간다고 바꿀 수 있을 것 같냐?"

"크면 바꿀 수 있어."

"네가 힘이 생기면 바꿀 수 있어. 그러니 지금은 참아."

그보다 더 어릴 때는 가능성을 그렇게 무한하게 이야기했으면서 중학생 때부터 되어 불합리한 것을 보며 불만을 느끼기 시작하자 어렵다는 이야기만 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참고 견디다 보면 세상을, 사람을 천천히라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갑자기 바뀐 게 아니듯 서서히 젖어 들어가게 바꾸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게 첫째는 치마 입기, 둘째는 화장하기였다. 나를 꾸미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운동이다.


인연을 대놓고 끊어본 적은 거의 없다. 항상 아직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사람을 끊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처음으로 대놓고 인연을 끊은 것은 2014년이었다. 좀 늦은 첫걸음이었다. 1999년부터 내 말을 쉽게 옮기고, 내 이름을 도용하여 책을 빌리고 몇 달이 넘도록 안 갖다 주기, 물건 빌려 가서 안 갖다 주기,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하면 쪽팔리지도 않느냐고 면박을 주기, 술 마시며 다른 사람한테 받았던 스트레스를 그대로 나한테 풀기 등등 (지나치게) 많이 참았었다. 한동안 자기 필요한 것 얻을 때까지는 조용하다가 필요한 것을 나한테 받자 태도가 바뀐 순간 터졌다. 나랑 관계없는 것을 갖고 내게 따지는데 도저히 말도 통하지 않고 감당할 수도 없었다. 본인 마음에 안 드는 정책을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건데?

그리고 한동안은 사람을 끊어낼 일이 잘 없었다. 세상에 포기할 만큼 나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좀 참아주면 지나간다. 생각해보면 본인의 문제를 언젠가는 깨달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을 또 끊었다. 폭언을 참아내는 것보다 폭언을 끊어내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내 인스타그램에 핀잔을 주는 댓글을 달기에 무시했었다. 그런데, 며칠 안 있어 동창 단체 채팅방에 내 사진을 캡쳐해 올리고는 좀 그만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난 어이 없어서

"미쳤냐? 왜 남의 사진을 함부로 캡쳐해서 올리냐?"

"미친 건 너야. 남자가 화장을 왜 해?"

이건 분명 사이버 불링[각주:1]이다. 너무 화가 나 단체 채팅방을 캡쳐할 생각도 못 하고 나왔고, 그 녀석을 차단했다. 생각해보면 이놈은 언제든 그럴 수 있는 녀석이었다. 미리 쳐냈어야 했다. 무슨 좋은 사람인 척할 거라고 사람을 그냥 두었는지 모르겠다.

이 녀석은 전에 내가 치마 입고 다닐 때 이렇게 이야기한 녀석이다.

"너 그렇게 입고 다니면 따먹힐 수 있다. 내가 아는 게이 형이 있는데, 너처럼 입고 다니는 것 보면 분명 너 따먹을 거다."[각주:2]2015/12/27 - [함께] - 치마와 성폭력

내가 출근하는데 뛰어가는 걸 보고 단체 채팅방에

"쟤 지각한다."

그를 바꾸려고 잔소리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가해에 특화되어 타인의 자존감을 짓밟는 게 전부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포기하고 피하는 게 내 삶의 질에 내 삶의 목표에 더 도움된다.


세상을 바꾸려면 내 의지와 자존을 깎아내는 이를 먼저 쳐내야 한다.

  1. CyberBullying. 가상 공간에서의 괴롭힘. [본문으로]
  2. 나를 향한 성희롱이다. 성소수자에 관한 무지이자 비하이다. [본문으로]

평소 심심하면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 설 다음 날, 설 연휴에도 딱히 할 일 없어서 책을 가지고 카페에 갔다. 그것도 외출이라고 나름 꾸민다고 화장을 한다. 그날도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썹을 그렸다. 아이섀도, 마스카라, 립스틱까지 발랐다. 립스틱은 나름대로 발색을 신경 쓴다고 두 종류를 써서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냈다. 겨우 혼자 책 보러 가면서 정성 들여 화장했다.

두 시간쯤 책을 읽는데 몸이 너무 아팠다. 전날 저녁부터 몸살기가 좀 있긴 했다. 좀 괜찮아진 것 같아서 나왔는데, 가만히 있으려니 몸이 점점 아파져 왔다. 목욕탕에 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좀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목욕탕을 가려고 나왔다. 다른 건 괜찮은데 마스카라를 어떻게 지워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향했다. 전용 리무버를 갖고 나올 생각이었다.

집에 가까워지니 몸이 더 쑤셨다. 잠깐만 방에서 쉬다가 목욕탕 갈 준비를 제대로 하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갔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거실에 나와 있었다. 어머니는 과일을 깎고 있으셨다. 난 두 분을 지나쳐 내 방으로 들어갔다. 엎드려서 잠시 쉬는데 무슨 말이 들렸다.

"동생 친구들 올 거다. 화장 지워라."

너무 황당했다. 동생 친구들 오는 거랑 나랑 무슨 관계라고, 아니 내 화장이 동생 친구들 오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지우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지워야 합니까?"

"너 동생 친구들 오는데 화장한 거 보일래?"

"오는 거랑 나랑 무슨 관계입니까?"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냐?"

내가 이기적이라고? 내가 언제 내 방식을 강요했었나? 나한테 강요하지 말라는 게 왜 이기적이야?

"내가 뭐가 이기적입니까?"

"화장 안 지우겠다는 거 너만 생각하는 거잖아?"

"아니 내가 화장하는 게 왜 나만 생각하는 겁니까? 난 못 지우겠습니다."

"왜 넌 너 입장만 생각하냐? 좀 가족 입장도 생각해라."

"또 같은 말 해야 됩니까? 내가 가족의 장식품입니까?"

"언제 장식품이라고 했냐?"

"내가 화장한 게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그게 중요한 걸 보면 장식품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닙니까?"

"넌 가족 생각해서 지우면 안 되냐?"

"내 생각은 하고 이야기하는 겁니까?"

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가 해서는 안 될 소리를 했다.

"너 정체성[각주:1]에 혼란 느끼는 거 아니냐?"

"지금 뭐라고 말 한 겁니까? 화장이랑 정체성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입을 닫았다. 하지만 나도 흥분했고 온갖 예전 이야기를 다 헤집어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소리 높여 싸우고 난리를 치고 나서야 내가 지쳐서 쓰러졌다. 중간에 동생은 왔다 가며 분위기를 보고 친구들 데려오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한참을 씩씩대다

"덕분에 흥분해서 그런지 몸 아픈 것도 안 느껴지고 완전 좋네요. 사람 취급도 못 받으면서 사람 취급받으려고 한참을 지랄했더니 몸이 흥분해서 그런가 아픈 것도 안 느껴지고 정말 좋네요. 사람 취급도 못 받아서 살고 싶지도 않은데 아픈 감각도 없어지고 좋네요."

이렇게 비아냥대다 분을 못 이기고 부술 듯이 대문을 닫고 나왔다. 나와서 갈 데도 없어 한참을 근처를 돌아다니다 목욕탕에 갔다. 화장이 제대로 안 지워지면 나중에 집에 가서 다시 지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목욕탕 비누와 온수로 문질러 지워냈다. 한참을 몸 담그고 있으니 몸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목욕을 끝내고도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근처 맥주 가게에 들어가 바에 앉아서 맥주 한 잔과 감자튀김을 시켰다. 피자 한 판을 혼자 먹기는 부담스러워 감자튀김을 시켰는데, 몸이 다시 안 좋아져서 맥주도 감자튀김도 먹기 힘들었다.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버텨내다가 집으로 향했다.

들어가면서도 죽을 것 같았다. 사람 취급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다. 내가 사람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체면을 위한 도구 취급받았다는 생각에 모멸감이 들어 너무 들어가기 힘들었다. 난 기분 좋으려고 화장했는데 이게 무슨 난리인지, 이게 무슨 취급인 건지 모멸감에 더 몸이 아파져 왔다.

  1. 성정체성을 이야기한 것 같다. [본문으로]

나는 화장하는 사람이다. 기초화장[각주:1], 피부를 표현하는 화장[각주:2], 색조화장[각주:3]까지 한다. 화장도 별로 예쁘게 나오지도 않고, 튀게 하지도 못하는 초보이다. 그런데 화장한다는 이유로 간혹 싸워야 한다. 나는 지정 성별이 남성이다. 그리고 시스젠더[각주:4]이다. 요즘에 조금씩 내 성별을 특정해야 한다는 데 의문을 품긴 하지만[각주:5], 일단은 시스젠더이다.

우리 가족은 내가 화장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혐오에 가까운 것 같다. 화장하면 잔소리를 한다. 적당히 하라느니, 얼굴이 너무 하얗게 되었다느니, 애(내게는 조카)가 내 화장 때문에 운다느니 온갖 핑계로 화장하는 것 자체를 갖고 건든다. 그 정도는 좀 참고 지냈다. 그러다 참지 못할 만큼 화나는 일이 생겼다.


아버지 정년퇴임 후에 직원들과 밥 먹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씻고 기초화장품을 바르는데 동생이 내 방문을 갑자기 활짝 열고 이렇게 명령조로 이야기했다.

"형 화장하지 마, 아버지 뭐하는 자리라."

"잔소리, 잔소리."

"화장하지 마."

"잔소리나 하지 마."

화장할 생각도 없었는데 너무 화가 났다. 참고 가자는 마음이 안 들었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갈까 하다 마음이 너무 상해서 도저히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가지 말자고 생각하고 옷을 다 벗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다 말을 해줘야 시간 낭비 안 할 것 같아서 어머니께 메시지를 보냈다.

'안 갈 테니 그냥 가세요.'

좀 있으니 밖에서 소리치는 소리가 멀게 들렸다. 동생은 화가 난 목소리로 'ㅇㅇㅇ 나와!' 어머니가 울먹이며 말리는 소리.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내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난 내가 기분 상했다는 것을 표현했을 뿐이다. 내 표현으로 저러는 게 이상한 것이다. 난 그래도 참고 기분 상했다는 것을 표현했을 뿐이다.

그냥 갈 줄 알았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내려왔다.

"넌 그냥 넘어가면 안 되냐?"

"애초에 말 안 하면 안 됩니까?"

"말 한 걸 어떡할 거냐?"

"그러니까 감정 상한 건 어떡할 겁니까?"

"어떻게 한 마디를 안 지냐? 아버지 중심 자리인데 아버지 때문에라도 화장 안 하면 안 되나?"

"내가 장식품입니까?"

"무슨 말이냐?"

"내가 액세서리, 장식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렇게 말할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체면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까?"

"체면 좀 생각해주면 안 되냐?"

"그게 나를 사람 취급 안 하는 거 아닙니까?"

"넌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이냐?"

"내가 이기적인 겁니까? 사람을 사람 취급 안 하는 게 누군데!"

"어떻게 넌 너만 생각하냐?"

"뭐가 나만 생각하는 겁니까?"

"너가 그렇게 화장 못 하게 한다고 안 간다고 하는 게 너만 생각하는 거지."

"그러면 애초에 자기네만 생각해서 그런 말 안 거 아닙니까?"

"나는 말을 잘 못 해서 뭐라고 못 하겠다."

"내가 말을 잘하는 겁니까? 애초에 잘못된 게 누군데 그럽니까?"


결국, 포기하고 갔다. 난 속만 부글부글 끓여대다 잠들면서 간신히 가라앉혔다.

  1. 스킨, 로션, 에센스 등 피부 손질 화장. [본문으로]
  2. 베이스 메이크업. 파운데이션 등의 화장품으로 하는 피부 톤, 질감 등을 표현하는 화장. [본문으로]
  3. 눈이나 입술 등에 하는 색을 입히는 화장. [본문으로]
  4. cisgender 'cis-'는 같은 편이라는 뜻의 접두사로 태어나서 부여받은 성별(sex)과 인식하는 성별(gender)이 같은 사람을 뜻한다. 트랜스젠더에 상대적인 말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본문으로]
  5. 젠더 퀘스쳐너(Gender Questioner) [본문으로]

학교에서 자주 보는 것 중 하나가 화장 단속이다. 심지어 불시 화장품 단속으로 화장품을 빼앗겼다며 엉엉엉 울며불며 대성통곡을 하는 학생도 본 적 있다. 화장을 못 하게 하는 규정이 있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화장품을 빼앗는 것은 더 이해하기 힘들다. 수업 중에 꺼내서 수업 방해한 물건만 잠시 맡아 두는 것도 아니고 검사해서 화장품을 빼앗는 것은 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도 선도부를 시켜서 하는 것은 더욱더!

나도 화장 단속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해봤다. 수업 중에 단속해서 화장솜 주고 거기에 리무버 잘 흔들어서 뿌려준 다음 스스로 닦게 했다. 그런데 그것도 지쳤다. 동의하지 않는 일을 단지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하는 것도 싫었다. 나중에는 그것도 지쳐서 살살 모른 척했다. '내가 아니라도 누가 하겠지. 아무도 안 하면 더 좋겠지.' 대충 이런 생각으로 모른 척했다.

언제인지 기억 잘 안 나지만 화장 단속하면서 여러 학생을 교무실에 불러다 무릎 꿇게 하고서는 반성을 요구하는 것도 본 적 있다. 심지어 학생의 보호자에게 전화해서 학교에까지 부르기까지 했다. 보호자를 불러 학생이 엄청나게 큰 잘못을 저지른 양 화장을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엄청나게 황당했었다. 대체로 보호자를 부르는 것은 지속적인 폭력 행위, 금품 갈취 등 타인에게 피해를 준 사건이다. 피해도 안 주는 화장, 겨우 화장으로 부르다니!


한 번은 화장을 왜 단속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애들 피부에도 안 좋잖아. 나중에 크면 화장하면서 피부 더 상할 텐데."

좀 당황스러운 답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학생의 본분 운운하지 않고, 성적 대상화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장 좋은 대답이었을 것이다. 나는 거기에 대고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면 잘 지울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그 뒤의 대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입장에 부정적이었다는 정도만 생각난다. 술 마시던 자리에서 물어본 것이라 잘 기억 안 난다.


학교라면 통제보다는 교육이 바르다고 생각한다. 왜 화장을 문제 삼는지 설득해야 하고, 성교육을 통해 성적 대상화부터 성적 자기결정권까지 스스로 생각하고 주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화장은 도덕의 문제도 규범의 문제도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덕의 문제, 규범의 문제로 만들면 여성 노동자에 대한 화장 요구, 외모 요구가 당연해진다.

학교에서 화장을 단속하게 되면 한 성만 대상으로 한다. 당연히 남학생은 안 할 것으로 생각해서 제외한다. 그러니깐 여학생만을 대상으로 화장을 단속하게 된다. 화장품을 빼앗거나 화장을 강제로 지우게 하는 것 오로지 여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반면 일반적으로 남학생만을 대상으로 머리 길이를 단속하게 된다. 이는 성역할이나 성에 따른 외모 고정관념을 만들 우려가 있다.

화장을 단속하는 모습을 보는 남학생은 남학생대로 은연중에 화장은 여성의 욕망으로만 학습하게 될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여자가 화장하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성역할에 관한 생각이 고정될 것이다. '무슨 여자가 화장도 안 해?', '무슨 여자가 꾸밀 생각도 안 해?' 이렇게.

여학생은 여학생대로 성적 대상화에 저항하는 데 무력하게 될 것이다. 화장을 통해 외모를 꾸미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니까 자기결정권, 즉 권리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중고등학생 때는 화장해서는 안 돼. 어차피 사회 나가면 꾸미게 되어 있어'라는 말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내면화하게 만든다. 선택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으로 만들어 개인의 꾸밈을 선택이 아닌 사회의 요구로 만들어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게 한다. 이것이 여성의 성적 대상화이다.

최근 CJ 등을 비롯한 서비스 관련 기업에서 여성 노동자에게 강요했던 외모를 생각해보면 학교와 별 차이가 없다. 남성의 외모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여성의 외모만 관여한다.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 화장, 긴 머리는 단정하게 묶기, 화장하기 등등. 화장을 못 하게 하는 것에서 당연히 화장하는 것으로 바뀌었지 화장을 강요하는 태도는 똑같다.

학교에서 학생들 외모 꾸미는 것을 단속하는 것에 관하여 솔직해지자. 그리고 생각해보자. 그건 성적 대상화가 아닌지 다시 한번 고민해보자.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인지 아닌지 고민해보자. 

반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날짜와 날씨를 기억한다.


- 2016년 9월 30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4시 반 퇴근 시간이 되어 챙겨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실내에 있다 보니 비가 오는 것을 깜빡하고 우산을 두고 나왔다. 다시 우산을 가지러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교무부장과 마주쳤다.

교무부장은 내게 시간 있느냐고 물었다. 퇴근하고 딱히 할 일은 없어 집에 갈 생각이었기에 시간 있다고 했더니, 밥을 먹자고 했다. 갑작스러운 말에 무슨 일인가 의심이 들긴 했지만, 굳이 피할 이유도 없었다. 알겠다고 했더니 곧 챙겨서 갈 테니 먼저 근처에 어느 식당에 가 있으라고 했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다 보니 굳이 밖에서 사 먹을 일이 잘 없어서 근처 식당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들어가서 뻘쭘하게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5분쯤 기다렸더니 교무부장이 들어왔다. 이야기하자면서 조용한 자리를 찾았다. 약간 막힌 자리로 들어가서 주문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교무부장은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었다. 들어와서 같이 일하는데 챙기지도 못하고 미안했는데 생각나서 이렇게 밥 먹자고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때 친구들 이야기를 꺼냈다. 난 살짝 긴장을 풀고 그때 친구들 이야기를 했다. 친구 중 게임회사에 들어간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게임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더니

"게임 회사에 들어갔으면 게임을 많이 하겠네."

이때부터 이상한 것을 눈치챘어야 했다.

"게임 회사는 게임을 만드는 곳이지 게임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도 게임 회사에 있으면 게임 많이 할 거 아니?"

"업무가 뭔지도 모르지만, 게임 개발하는 것과 게임을 하는 건 다릅니다."

"그런가?"

그렇게 말이 끊어졌다. 교무부장은 화제를 바꾸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이건 동료 교사로서 이야기하는 거라. 그래서 내 말을 꼭 따를 필요는 없어. 교사는 각자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거고 성인이니까 아니다 싶으면 안 하는 거지. 말이 좀 나오는 게 있는데, 화장 안 하면 안 될 거? 그리고 커피 수업 시간에 안 마시면 안 될 거?"

"네? 저는 교단을 무대라고 생각하고 무대 분장으로 화장하는 건데요."

"혹시 면접 때도 화장했어?"

"네."

"난 잘 몰랐는데 근데 화장을 꼭 해야 할 거?"

"저는 제 필요에 따라 하는 겁니다."

"젊으니까 패기가 있잖아. 그 패기로 화장 안 하고 한 번 참아봐."

"그게 나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나는 화장을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꼭 해야 할 거?"

"그러면 화장해보십시오."

"허허 화장을 해봐? 그러면 잠깐 다른 이야기 좀 해보자. 쉬는 시간에 바빠?"

"바쁘지는 않습니다."

"안 바쁘면 교무실 왔다 갔다 하면 안 될 거?"

"저 연속으로 수업이 있으면 중간에 쉬는 시간에 정리도 하고 학생들 상담도 하는데요."

"여학생들 조심해라. 여학생들은 친한 척하다가도 언제 말 바뀔지 몰라. 조심해야 해."

"네? 무슨 말입니까? 저는 저 나름대로 중간에 아이들하고 대화만 하면서 조심합니다. 혹시나 음악 진로나 다른 상담 거리 있으면 상담하려는 건데요."

"그래도 여학생들은 조심하고."

"저는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학생하고 대화하면서 고개 숙여 사과도 하고, 문제가 있으면 찾아 고치려 합니다."

"교사를 학생하고 동급이라고 생각하지 마. 다르니까."

"…"

"안 바쁘면 커피는 내려와서 마시면 안 될 거? 우리 학교는 수업 시간에 뭐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거든."

"네. 커피 안 들고 가죠."

"그건 시원하게 약속하네. 화장은 아니면서."

"행동을 고치는 건 쉬운 것 아닙니까? 그까짓 커피 굳이 수업 시간에 안 마셔도 됩니다."

"그러면 화장을 꼭 해야겠으면 일단 석 달만 참아봐. 석 달만 참고 정 못 견뎌서 계속 화장해야겠다 싶으면 그때 사직서를 내. 그때는 내가 교장 선생님한테 잘 말씀드릴 테니."

"네? 그러니까 화장을 할 거면 그만두라는 이야기입니까?"

"그런 말이 아니고 좀 타협을 하자는 거지. 일단 밥 먹어."

교무부장의 입에서 나온 단어 '석 달', '사직서' 굉장히 황당한 이야기이다. 석 달이 지나면 방학이다. 방학 때까지 화장하지 말라는 것이고, 방학이 되면 그만두라는 소리이다. 그 전에 그만두는 것은 사람을 구하는 것도 문제고 진도나 평가 때문에 곤란하다. 그러니 학교에 지장 없을 시기를 찾아서 그만둘 시기를 정해준 것이다. 그런데, 이건 퇴사 압박이다. 교무부장이든 관리자든 해서는 안 될 소리이다.

"약속만 해. 성인인데 생각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하는 거지. 약속하고 안 지켜도 돼."

"아니다 싶으면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이라고 해도 저는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안 한다고 못 하겠습니다. 못 지킬 약속을 하는 것도 제 양심에 어긋나고요."

"화장 안 하면 안 될 거?"

"그런 식이면 여자 선생님들 화장은 문제없습니까?"

"사회는 여성 화장은 괜찮지만, 남성의 화장은 안 좋게 여기다 보니 학생들에게 말이 나올 우려가 있어."

학생들하고 동급으로 여기지 말라면서 학생들에게 말이 나올 우려가 있다며 압박을 주었다. 그 외에도 국가, 사회, 관습 등을 이야기하는데 난 어이도 없고 화도 났다. 앞뒤도 안 맞는 데다 성차별적인 말이 계속 나왔다.

"어느 교육학자가 이야기한 맨박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남자다움을 강조할 때 성차별이 심해지니 그런 것을 좀 버릴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난 맨박스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그건 일부의 이야기고. 학교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곳이라. 그러니까 화장 안 한다고 약속만 해."

"약속 못 하겠습니다."

"공무원은 공인이라. 공무원에게는 품위 유지의 의무라는 게 있어. 그래서 품위 유지 때문에 복장도 예전에는 정장만 입었어. 요즘이야 많이 풀렸지만."

말을 계속 돌리면서 내가 화장하지 못하게 하려고만 했다. 내 이야기를 전혀 듣지도 않고, 보수적이라면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품위유지라고 해도 난 공무원이 아니다. 공무원에 준하는 의무를 가진 비정규직이지만, 순직도 인정 안 되는 기간제 교사이다. 아무튼, 남성이 화장하는 것이 품위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은데 품위를 깎는다며 나에게 계속 압박을 주었다.

나중에는 이 지역은 정말 좁다면서 이야기를 했다. 예술제를 언급하며 그것만 잘 넘기면 좋은 소문 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했다. 이건 협박이다. 억압하는 사람이 좁다고 표현하는 것은 협박이다. 피억압자가 좁다고 하는 것과 다른 의미이다.

결국, 난 약속을 하지 않았고, 스트레스받아서 너무 힘들다고 나왔다. 밖에 나오니 비는 그쳤다. 난 비 맞고 싶을 정도로 우울해졌는데, 비도 그쳤다.


- 2016년 10월 1일 아침

아침 전체 모임 시작할 때부터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 선생님이 갑자기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화장했네요? 남자가 왜 화장을 해요?"

맨날 화장하고 다녔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도 아니면서 인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난 대답도 하지 않고 무시하고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전체 모임이 끝날 때쯤에야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교감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생님들, 남자 선생님은 남자답게, 여자 선생님은 여자답게, 학생들에게 본을 보이세요."

며칠 전에 했던 성평등 자체 연수에서도 성차별, 성폭력 예방을 위해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강조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리 연수 자체를 형식적으로 한다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나를 타깃으로 해서 전체가 압박을 주더라도 이건 아니다. 며칠 전 연수에서 한 이야기 마저 엎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 2016년 11월 28일

저 말이 왜 나왔는지 사정을 알게 되었다. 화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다. 수업 중에 거울을 꺼내서 화장하는 남자 교사가 있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렇게 저렇게 알 수 없이 꼬여 화장하는 것에 대하여 주의를 주고 못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된 것이었다.

문제는 화장하는 남자 교사는 나뿐이었다. 수업 시간에 거울을 꺼내서 화장할 이유가 없었다. 수업 시간은 굉장히 바쁘다. 내 진도 나가기도 바쁘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교장의 말에 민원을 넣은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하겠느냐며 화를 냈다고 했다. 일단 교장은 내 화장에 관해서는 예술가라는 이유로 방어했다고 이야기했다. 몇 차례 전화 왔지만, 그냥 욕먹고 말았고, 수업 중에 했다는 것에 그냥 둘 수 없어서 주의를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밑에 전달했다고 했다고 했다.

그 민원의 배경으로 추정되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나에게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라며 성희롱한 학생에게 성희롱이라고 경고했고 그 학생이 반발하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인데 그게 뭐가 문제냐?"고 한 것에 벌점을 준 것이다. 또 하나는 수업 중 분장 연습 후 교칙 위반을 막기 위해 메이크업 리무버를 갖고 온 김에 화장으로 벌점 받을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 벌점 대신 화장 솜에 메이크업 리무버를 묻혀서 닦게 했다. 이것도 잠깐 하고 하지 않았다. 다른 교사는 그냥 물티슈로 닦게 하지만, 나는 그래도 저게 좀 더 낫겠다 싶어서 메이크업 리무버를 사용했다. 나는 그 두 배경 중 전자를 더 크게 의심한다. 의심을 어떻게 하든 그걸 학생에게 티 낼 수는 없으니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 일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더 미칠 것 같았다. 나도 폭력적이었고, 그 학생과 학부모도 폭력적이었으며, 관리자와 관리자쯤의 위치인 사람도 폭력적이었다. 모두 폭력적이었다. 문제가 전자라면 폭력의 시작은 학생이다. 더 크게 보면 잘못 가르친 어른들이 폭력의 시작이었다. 문제가 후자라면 폭력의 시작은 나다. 교칙이 반인권적이라는 생각에도 동조한 내 잘못이 시작이다.


- 보수의 품위

학교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학교는 언제나 끊임없이 학습하며 진보해야 하는 곳이다. 새로운 것을 항상 접하는 학생들 옆에 항상 있고, 교육과정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문화교육을 하기 위해 소수자의 인권을 공부하는 등 더 진보적으로 열려 있어야 하는 곳이 학교이다.

학교에서 보수적이라는 것은 학습하기 싫다는 핑계, 인정하기 싫다는 핑계에 불과하다. 보수적이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지칭해서는 안 된다. 안정적인 현재에 부작용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변화에 대하여 더 고민하겠다는 태도여야 한다.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보수적인 것이 아니다. 그냥 게으른 것이다. 진짜 학교에서 보수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면 보수의 품위를 보였으면 좋겠다. 난 계속 화장을 할 것이다.

학교에서 근무하던 기간에도 성차별이 존재했다. 그냥 차별 정도가 아니라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큼의 성희롱이었다. 교사에게 당한 것도 있고, 학생에게 당한 것도 있다. 둘 다 그냥 넘어가기 힘들어서 정색하며 대처했다. 사과를 받아내긴 했지만, 그 스트레스에 몸이 아팠다. 이건 애초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일이지 사과를 받고 끝내봐야 별 소용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중할 필요도 있지만, 사람들이 가진 성편견을 없애야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두 가지 성희롱은 모두 학교에서 일어난 일로 나의 성적 지향, 혹은 성별 정체성을 두고 건든 일이다. 차이점으로 하나는 다른 학교에 출장 갔다가 겪은 일, 하나는 학교에서 수업 중에 겪은 일이다. 또 다른 점은 가해자의 직업이 하나는 교사, 하나는 학생이었다. 또 다른 점으로 가해자의 성이 하나는 여성, 하나는 남성이었다. 이 일들을 겪으며 가해자의 직업, 나이, 성별, 피해자의 직업, 나이, 성별은 애초에 특정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2016년 12월 19일 출장

교과연구회에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음악 교사 록밴드 보컬이라 출장을 내서 음악회를 하는 학교에 찾아갔다. 밴드 멤버 중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해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컬이 악기 배치를 건들 것도 아니라 쉬기 위해 대기실을 찾았다. 남자 대기실에서 뭘 하고 있다며 나 보고 여자 대기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들어갔더니 고등학교 선배이자 고등학교 때 음악 선생님 중 한 분이었던 분이 있었다. 인사를 했더니

"남자가 왜 화장을 하냐?"

내 화장을 지적했다. 난 바로 반발했다.

"그건 성편견이고 성차별적인 이야기예요."

"남자가 무슨 화장이냐? 남교사는 남자답게, 여교사는 여자답게 해야지."

"성폭력 예방 연수에서는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는 성평등을 방해하고 성폭력 예방에 좋지 않다고 하던데요?"

"그래도 학교에서는 애들한테 성역할을 제대로 가르쳐야지."

"그것 자체가 해서는 안 될 거라니까요."

"잘 들어봐."

"에에, 잔소리, 잔소리."

이때까지는 그렇게 기분이 상해있지 않았다. 공연 시작 직전이라 그 긴장감에 기분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잠시 후 같은 밴드 선생님들이 왔고 리허설을 했다. 우리 돈으로 커피를 사 왔고 그걸 마시면서 좀 쉬고 있었다. 잠깐 이야기하던 중 우리 차례가 왔다. 무대에 올라가 공연을 했고, 공연은 즐겁게 끝냈다. 우리 딴에 틀린 것도 거의 없고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게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공연 끝나고 내려와 대기실로 갔더니 우리 커피는 다른 사람 입에 있거나 사라졌다. 우리보다 평균 연령이 15세 이상 높은 다른 팀이 자기네 주려고 사온 줄 알고 먹었다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그 황당한 중에 누가 나 보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예뻐서 여자인 줄 알았네. 장가는 갈 거라?"

난 화가 나서 바로 받아쳤다.

"장가는 가서 뭐할 겁니까?"

거기에 구시렁대는 소리인지 건방지다는 소리인지 무슨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우리를 일렬로 세우더니 자기소개를 하라는 것이었다. 자기네가 선배라고 우리를 집합시켜서 소개하라는 소리였다. 이후에 그 '선배님'들도 자기소개를 했지만,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난 서서히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예뻐서 여자인 줄 알았네. 장가는 갈 거?'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역겨웠다. 역겹고 수치심이 들었다. 모멸감도 들었다. 대체 왜 그따위 소리를 한 거야? 그날은 완전히 기분을 망쳤다. 쉬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도 수치심과 모멸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행사 주최 측 총무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성희롱으로 신고하면 일이 커지고 더 스트레스가 심해질 것 같아서 직접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 총무 선생님은 당황스러워했고 조심스레 의논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수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업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모멸감으로 심장이 아렸고 머리도 아팠다. 몸도 계속 떨렸다. 덕분에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최대한 내 마음을 다독이며 쉬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ㅇㅇㅇ 선생님? 나 ㅇㅇ."

"네 선생님."

"기분 나빴다면 미안. 기분 나쁠 거라고 생각 못 했어. 자연스럽게 받아치기에 괜찮은 줄 알았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생각해보니 잘못한 것 같아서 전화했어. 미안. 그런데 그건 성희롱까지는 아닌 것 같아.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런 뉘앙스는 아니었어."

화가 났다.

"전해 들었으면 분명히 어떻게 메시지를 보냈는지 알 거 아닙니까? 정황설명을 다 했고 사과와 재발 방지만 요청했는데 내가 왜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겁니까? '예뻐서 여자인 줄 알았다'는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그 이후에 '장가는 갈 거?'라는 부분이 바로 들어가면서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낀 건데 어떤 뉘앙스를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내가 그 자리에 같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한테 자세히 이야기하려고 전화한 거.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미안해. 나 때문에 시작한 것 같아서 자세히 듣고 사과도 하려고 했는데. 미안."

"지금 이러는 거 2차 가해예요. 내가 왜 추궁받아야 하는 거죠? 내가 모멸감을 느끼고 수치심을 느꼈는데, 왜 내가 해명해야 하는 거죠?"

"미안해. 내가 전화해서 사과하게 하고 다시 전화할게."

이렇게 통화가 끝났다. 또 심장이 아렸다. 수치심도 더 올라오고 머리는 더 아팠다. 모멸감이 몸이 더 떨려왔다. 다들 성희롱당하고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이런 건가? 따지고 났더니 이런 사람들 때문에 더 힘들고 그런 것인가? 뭐 이따위인 거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더니 너무 지쳐서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는 지쳐 잠들었다. 어느 순간 전화가 왔고 그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여보세요."

"ㅇㅇㅇ 선생님 전화입니까?"

"네 맞습니다."

"나 ㅇㅇㅇ인데, 미안해요.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

어떻게 어떻게 사과를 받기는 했지만, 썩 기분 좋은 사과는 아니었다. 모르면 언제든 배워야지 하면서 능구렁이처럼 넘어갔다. 난 나름 이성적으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고 그게 충족된 것 같아 끊었다. 전화를 끊은 후 난 피곤해서 다시 잠들었다.

다음 날도 별 차이 없었다. 사과를 받았는데 모멸감과 수치심에 온종일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결국, 지난번에 왔던 성폭력 상담센터 전화번호를 얻어서 전화를 걸어 상담을 예약하고 나를 다독이는 수밖에 없었다.


- 2016년 9월 초 수업 시간

표현영역 수행평가를 준비하면서 신체표현을 평가하고 싶었다. 뮤지컬의 한 장면을 체험할 겸 춤추는 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간단한 율동을 신체표현 수행평가로 준비했다. 한두 번의 수업시간 중 연습만으로는 불충분할 것 같아 학생들이 영상을 찾아볼 수 있도록 따로 영상을 만들었다.

음악실에 큰 거울이 없어 프로젝터에 노트북을 연결해서 거울 모드로 영상을 촬영하며 내가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며 내가 앞에서 함께 율동을 했다. 그 주는 2학년 수업에서 그렇게 열심히 춤을 추면서 수업하고 있었다. 어느 날 어떤 남학생반에서 한 학생이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

"뭐?"

"남자친구 있냐고요?"

"그거 성희롱이다."

"그게 왜 성희롱인데요? 누구나 저 영상 보면 그렇게 생각할 텐데요?"

"내 성적 지향을 네가 뭔데 마음대로 판단해서 그런 소리를 하냐? 그런 생각이 들든 안 들든 그걸 입 밖으로 꺼내서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게 성희롱이다."

"왜요? 나 말고도 그렇게 생각할 텐데요."

난 황당해서 벌점을 주고 끝나고 교무실로 불러 담임선생님께 벌점 사유를 말씀드리고 지도를 부탁드렸다. 그 학생은 거기서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텐데 뭐가 문제예요?'라고. 결국, 지도로 사과를 받긴 했지만, 썩 좋은 마무리는 아니었다.


내가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해서 외모를 꾸미는데 그것을 핑계로 아무렇게나 이야기하는 것 그 자체가 폭력이다. 그걸 성적 비하가 담긴 내용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은 성희롱이다. 이런 일이 특별한 것 같지만, 별로 특별하지도 않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학교는 그만큼 폐쇄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를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이런 것과 관련해서 다른 폭언을 들었었다.

근무하던 학교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다. 이번 임용시험에서 떨어져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근무지를 알아봐야 했다. 공부만 하기에는 내 개인의 경제적 사정도 문제고, 마음 붙여 일할 데가 없으면 마음이 힘들다는 것도 문제라서 그렇다. 몇 군데 면접을 치렀는데 모두 떨어졌다. 망할, 어쩌면 올해는 직장 없는 교사로 살게 될지 모른다.

직장이 없어 소득도 소속도 없을 것으로 생각하니 별로 마음이 좋지 않다. 결과라도 좋았으면 마음이 덜 힘들었을 텐데, 과정도 별로 좋지 않았다. 면접을 돌이켜 봤을 때 굉장히 불쾌한 질문이 있었다. 그 질문에 한 번은 소신에 따라 바로 반발했고, 한 번은 굽히고 성실하게 소신에 따라 답했다. 둘 다 반발했어야 했다. 내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었는지, 가중치를 다르게 둔 것이었는지 하나만 반발했다.

그 질문은 성차별적, 반 인권적인 질문이었다. 그것도 내 외모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 중 하나는 화장에 관한 질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머리 길이에 관한 질문이었다. 각기 다른 성의 학생들의 학생들과 비교해서 질문했다. 질문 자체에 학교의 이중성, 성차별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 2월 21일 면접

이날 면접에서 들은 질문은 이렇다.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인데 화장을 좀 하셨네요. 그것 관련해서 질문 좀 드리겠습니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 화장 엄격하게 단속하는데 학생들이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은 화장하는데 우리는 왜 안 돼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난 화장을 한다. 꾸미는 것이 좋다. 화장이 재미있다. 단지 재미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성편견을 깨기 위한 내 나름의 운동으로써 하는 행동이다. 여성이 꾸미는 것은 당연하고 남성이 꾸미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에 저항하고 사람들이 차차 익숙해지게 만들어 세상을 바꾸기 위한 행동이다. 언젠가는 화장이 개인의 선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는 것이다.

저 물음은 내 운동의 목적이나 목표를 모른 채 한 질문이다. 물론 내 운동의 존재 여부조차 모를 것이다. 심지어 저 날은 바빠서 색조 화장도 못 한 날이었다. 파운데이션에 눈썹 정도만 그린 날이었다. 그래서 화장을 제대로 했다는 생각도 못 했는데, 화장했다는 것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니 당황스러웠다.

황당하기도 했다. 질문한 면접관 본인도 화장한 상태였다. 학생들은 여교사의 화장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고, 남교사의 화장만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인가? 성차별적 질문이었다. 그래서 바로 반발했다.

"그런 성차별적 인식을 갖고 이야기하시다니요. 그러면 여자 선생님들 먼저 화장을 못 하게 하고 이야기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에 그 면접관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무엇인가를 적었다.

"학생과 교사는 다르다고 한다."

내가 한 말이 아닌 말을 중얼거리며 적었다. 너무 황당했다.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계속 곱씹어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성차별이었다. 거기다 학생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가 동시에 들어가 있었다.

성차별적인 태도는 이렇다. '남성의 화장은 당연하지 않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남교사에게 자신들의 화장을 단속하는 것과 비교하며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그러니 그것에 관한 것을 물어보아야 하겠다.'며 특정 성의 화장만 문제 제기하는 것은 한 성은 당연히 화장해야 하는 존재, 한 성은 절대 화장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낙인 찍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는 이렇다. '학생들의 용의복장을 통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학생 통제를 당연하게 여긴다. 동시에 학생의 반발을 걱정한다. 통제하지 않으면 통제에 대한 반발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통제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을 모순이다.


- 2월 24일 면접

이날 면접에서 들은 질문은 이렇다.

"지금 머리를 묶으셨는데, 우리 학교는 남학교이다 보니 두발 규정이 엄격합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머리를 보고 '선생님은 머리 기르는데 우리는 왜 머리 기르면 안 돼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난 머리를 기른다. 큰 의미는 없다. 심한 곱슬머리이라 짧은 것보다 긴 것이 머리 정리하기 편하다. 추울 때 머리 풀면 따뜻하고 더울 때 머리 묶으면 시원하니 좋다. 내 머리의 곱슬거림은 예쁘다. 컬이 예뻐서 어디서 파마한 것으로 보일 정도이다. 머리를 짧게 정리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 그냥 그럴 생각이 들면 그때 자를 생각이다. 길이가 어느 정도 이상 되면 머리카락 기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저 물음은 생각도 못 해 봤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올해 마지막 면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반발을 못 했다. 소신에 따라 성실하게 답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기르다가 이왕 기른 김에 몇 달 정도 더 기르고 머리카락 기부를 해볼 생각으로 더 기르고 있다. 왜 기르면 안 되냐는 물음에는 답을 못하겠다. 교칙으로 규제하고 있는데, 나는 그 교칙으로 규제하는 대상에 해당하지 않거든.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바꿔보는 것은 어떻겠니? 규정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꿔보겠다면 응원할게.’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 성차별적 인식을 갖고 질문을 해도 되는 겁니까? 여교사에게는 하지 않을 질문을 왜 머리가 긴 남교사에게 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머리 길이는 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까?”

질문 자체가 성차별이다. 이 질문에는 앞의 면접과 같이 학생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가 동시에 들어가 있다.


애초에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이해하기 너무 힘들다. 이제까지 겪은 교직 생활을 돌이켜 보면 이 교직 사회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건 성차별이고 폭력이다. 겪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겪은 다른 성희롱, 성차별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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