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교육 활동 외에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일까? 생활 지도이다. 생활 지도를 통해 인성, 비행, 폭력 등을 다루는 것이 맞을 것 같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외모 통제이다.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외모를 표준화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사회에서 적절한 외모의 조건이 내면화되며, 표준화된 외모 취향을 만든다.

기간제교사 면접을 보러 갈 때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이 외모이다. 면접 보는 본인 말고도 주변에서 평범하게 하라고 강조할 정도이다. 면접에서 특징적인 부분이 있으면 학생들이 본받을 것이라거나 불평등한 상황에 의문을 품을 것이라고 잠재적 교육과정을 가정하여 안 좋은 점수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

외모는 점수에 안 들어간다는 교원임용시험 2차 면접, 수업 실연 때도 다들 외모에 신경 많이 쓴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무난한 복장 색상을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여성일 경우 되도록 무릎 정도로 오는 적절한 길이의 치마 정장, 무난한 화장, 잔머리 안 빠져나오게 머리를 잘 묶어 무난한 인상을 만든다. 남성일 경우 짧고 단정해 보이게 머리카락을 자르고 무난한 인상을 만든다.

다들 잘 알고 있다.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학교에서 외모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다들 아주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16년 이상 학교에서 생활했기에 잘 알고 있다. 12년만 생활해도 잘 알 수 있다. 아니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만 관련되면 무의식중에 외모를 신경 쓰게 된다. 학교에서 계속 외모를 통제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외모의 통제를 내면화해서 타인의 외모마저 통제한다. 간혹 이렇게 '머리 긴 남자는 별로'라며 교사의 외모를 지적하는 학생도 만날 수 있을 정도이다. 어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매일 옷을 관찰한다며 옷에 굉장히 신경 쓰기도 한다. 화장 여부, 안경을 착용하느냐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느냐까지 외모에 신경 쓴다.

외모 등을 신경 쓰는 것은 인권과 관련되어 있다. 1세대 인권인 자유권적 권리에 해당하는 신체의 자유이다. 이렇게 자신의 신체를 자신이 통제할 권리를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모두가 시스젠더[각주:1]에 이성애자라고 가정하고 외모를 조건화하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타인의 권리 또한 인식할 수 없다.

남성은 짧은 머리에 바지가 당연하다. 여성은 짧은 머리에 바지를 입을 수도 있지만, 일정 이상 길이의 긴 머리에 치마가 기본값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파마나 염색은 허용하지 않으며, 교복을 짧게 만들거나 줄이는 등의 행위도 허용하지 않는다.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신체의 자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당연한 인권, 헌법적 기본권에 '허용'이라는 말이 들어가면서 제한한다. 당연한 인권, 헌법적 기본권을 가르치지 않는 것을 통해 쉽게 통제당하게 하여 우리의 권리,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게 한다. '권리를 빼앗지 마라'가 아니라 '허용해주세요'라고 하게 한다.

인권이나 기본권은 인간에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진 것이다. 이 당연한 것을 제한하면 다수의 가능성이 제한된다. 다수의 제한이 당연해지면 다름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소수자의 제한도 당연해진다.

다원화 사회에서 표준화는 필요한 일이다. 그 표준화는 다양한 것이 공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다양한 것이 공존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일부 제한은 여러 사람의 권리가 공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권리 제한이 사회가 존재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사회에는 성소수자[각주:2]가 존재한다. 학교에도 성소수자가 존재한다. 외모의 표준화는 비슷한 사람들을 똑같이 만드는 행위일 뿐 아니라 비슷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같게 만드는 성차별이다.

  1. cisgender 'cis-'는 같은 편이라는 뜻의 접두사로 태어나서 부여받은 성별(sex)과 인식하는 성별(gender)이 같은 사람을 뜻한다. 트랜스젠더에 상대적인 말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본문으로]
  2. LGBTAIQ 등 https://femiwiki.com/w/성소수자 참조 [본문으로]

학교에서는 교과서가 있는 교과만 갖고 수업하지 않는다. 교과 외에도 여러 가지 분야에 관하여 자율 시간 등을 통해 교육한다. 자율 시간을 통해 성폭력 예방, 폭력 예방, 다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교육한다. 이런 교육은 특별하게 자율 시간만 갖고 수업하지 않는다. 일반 교과 시간에 녹여내어 수업하기도 한다.

나는 그 중 성교육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보건 선생님께 찾아가서 가끔 그런 내용을 갖고 이야기를 해본다. 대화 중에 보건 선생님이 성교육을 보건에서 가져온 것을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업무만 늘어난 것뿐이면 괜찮은데, 성교육은 보건에서 전담으로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었다. '섹슈얼리티나 생물학적, 성병 예방을 넘어서 젠더 교육까지 함께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보건만이 맡기에는 역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성교육은 '모든 교과에서 다 함께해야 한다.'고 덧붙이셨다.

성교육에서 젠더가 빠진 상태는 아니다. 성교육 관련하여 보고할 때 몇몇 교과를 지정하여 그 교과에서 성교육했는지 보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그 교과가 기술가정, 도덕, 사회, 과학, 체육이다. 그 외의 교과는 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인지 보고받지 않는다.

성교육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국가는 성교육 표준안을 만들어내어 일선 학교에 배포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비웃음을 받을 만큼 질이 낮은 편이다. 실제 성교육을 그 표준안대로 집행하는 것이 문제없다고 하더라도 성교육은 은연중에 굉장히 다양한 곳에서 일어난다. 학교폭력예방 교육에서도, 일선 교과에서도,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금융교육에서도 나타난다.

남학생반 금융교육을 하는 데 우연히 들어간 적이 있다. 가서 사진이나 좀 찍어 줄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기회비용과 한정된 자원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강사분이 쉽게 설명하려고 했는지 예시를 하나 들었다.

"여자친구 있는 분 있어요?"

별 대답이 없다. 예상했는지 바로 이어 이야기를 했다.

"예쁜 여자는 한정되어 있죠?"

너무 당황스러웠다. 예쁜 여성이라는 말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여 자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시스젠더, 이성애 중심으로 학생들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고정하면서 인간을 대상화했다. 영웅호색이나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는 남성 중심의 폭력적 언사와 다를 바 없는 말이 교육 중에 나온 것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문제를 제기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인식을 고쳤다고 해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이 외부에서 올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의 젠더 인식이 괜찮다면 괜찮을까? 아니다. 학교 자체, 그 안에서도 성적 대상화는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성교육, 성폭력 예방교육에서도, 교칙 위반을 단속한다는 용의복장 단속에서도 계속 성적 대상화한다.


- 2년 전 모 학교에서 한 성폭력 예방교육

"지금부터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겠습니다. 여학생들! 짧게 입지 말고, 옷 제대로 입어라. 밤에 돌아다니지마. 남학생들! 니들이 참아! 니들만 참으면 돼."

방법도 황당하지만, 내용도 황당한 성폭력 예방교육이다. 요즘 이렇게 하는 학교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학생의 복장에 따라 성폭력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가해자 중심 사고방식은 성폭력 예방에 도움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자존감을 낮추고 후에 피해를 입었을 때 자책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그리고 이건 교육이 아니다. 복장을 핑계 삼아 일방적인 언어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성적 대상화 하도록 부추기는 것에 불과하다. 더불어 참으면 된다는 말로 성욕을 성폭력의 원인 삼아 성폭력이 어떤 관계에서 일어나는지 생각 못 하게 만든다. 차별적 말로 성 편견을 부추기는 것이다.


- 작년에 모 학교에서 한 성폭력예방교육

자율시간을 통해 성폭력예방교육 영상을 상영했다. 보면서 좀 당황스러웠다. 젠더 감수성을 키우기보다 이전에 봤던 성교육보다 조금 나아진 정도였다. 시작 부분에서 남성은 사정과 쾌락을 이야기하지만, 여성은 월경과 임신을 이야기하며 차이를 비교한다. 월경은 고통, 사정은 쾌락이라는 방식으로 여성의 쾌락을 배제한다. 남성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하지만, 여성에게는 월경으로 겪는 통증만 언급하고 성적 쾌락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성의 성적 쾌락을 감춘다.

성욕은 개인차라고 하며, 사정을 통해 남성은 성욕이 발달하지만, 여성은 초경과 비교하며 성욕의 발달이 상대적으로 늦는다고 비교한다. 자연스럽게 마찰을 통해 알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가정을 하지도 않는다. 여성은 초경 시기보다 성 경험이 늦기 때문에 성욕의 발달이 늦어진다는 정도로 넘어간다.

긍정적이게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언급하기는 한다. '사회적 관행이나 타인의 압력에 구속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나 판단에 의해 자율성 있고 책임성 있게 자신의 성적인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고 언급한다. 언급하며 '아니야'는 내숭이 아닌 의사 표현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성적인 부분에 관하여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는데 여성은 임신의 책임 따위로 성적 쾌락은 배제당한다. 더불어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공개적 연애라는 말로 반쯤 부정한다.

성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언급하지만, 성폭력을 보고 가만히 있지 말라는 말이나 성폭력에 반대하는 연대 행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더불어 성폭력의 원인도 언급하지 않으며 여성이 성폭력의 대상이라고 성적 대상화만 한다. 남성 간의 성폭력에 관한 언급은 하지도 않는다.

보는 내내 황당해서 보건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올 줄 알았다고 하셨다. 할 수 있는 게 한 시간밖에 없는데, 한 시간에 하기에 이것보다 나은 내용을 가진 것도 잘 없다고 하셨다. 원래는 각 교과에서 다양하게 접하며 해야 하는 것이 성교육인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서 안타깝다고 하셨다.

그나마 나은 성폭력예방교육 영상도 성적 대상화 자체를 피하지 못한다.


복장 단속이나 화장 단속은 성적 대상화 그 자체이다. '학교는 보수적이다. 학생답지 못하다.'는 핑계가 대부분이지만, 그 자체가 성적 대상화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개인의 권리, 존엄을 생각하지 않고 여학생이기에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그 자체가 성적 대상화이다.

청순한 아름다움, 화장기 없는 아름다움, 청초함 이런 것도 성적 매력 중 하나이다. 사람을 그 자체로 존중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성적 대상화이다.

반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날짜와 날씨를 기억한다.


- 2016년 9월 30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4시 반 퇴근 시간이 되어 챙겨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실내에 있다 보니 비가 오는 것을 깜빡하고 우산을 두고 나왔다. 다시 우산을 가지러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교무부장과 마주쳤다.

교무부장은 내게 시간 있느냐고 물었다. 퇴근하고 딱히 할 일은 없어 집에 갈 생각이었기에 시간 있다고 했더니, 밥을 먹자고 했다. 갑작스러운 말에 무슨 일인가 의심이 들긴 했지만, 굳이 피할 이유도 없었다. 알겠다고 했더니 곧 챙겨서 갈 테니 먼저 근처에 어느 식당에 가 있으라고 했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다 보니 굳이 밖에서 사 먹을 일이 잘 없어서 근처 식당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들어가서 뻘쭘하게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5분쯤 기다렸더니 교무부장이 들어왔다. 이야기하자면서 조용한 자리를 찾았다. 약간 막힌 자리로 들어가서 주문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교무부장은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었다. 들어와서 같이 일하는데 챙기지도 못하고 미안했는데 생각나서 이렇게 밥 먹자고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때 친구들 이야기를 꺼냈다. 난 살짝 긴장을 풀고 그때 친구들 이야기를 했다. 친구 중 게임회사에 들어간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게임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더니

"게임 회사에 들어갔으면 게임을 많이 하겠네."

이때부터 이상한 것을 눈치챘어야 했다.

"게임 회사는 게임을 만드는 곳이지 게임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도 게임 회사에 있으면 게임 많이 할 거 아니?"

"업무가 뭔지도 모르지만, 게임 개발하는 것과 게임을 하는 건 다릅니다."

"그런가?"

그렇게 말이 끊어졌다. 교무부장은 화제를 바꾸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이건 동료 교사로서 이야기하는 거라. 그래서 내 말을 꼭 따를 필요는 없어. 교사는 각자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거고 성인이니까 아니다 싶으면 안 하는 거지. 말이 좀 나오는 게 있는데, 화장 안 하면 안 될 거? 그리고 커피 수업 시간에 안 마시면 안 될 거?"

"네? 저는 교단을 무대라고 생각하고 무대 분장으로 화장하는 건데요."

"혹시 면접 때도 화장했어?"

"네."

"난 잘 몰랐는데 근데 화장을 꼭 해야 할 거?"

"저는 제 필요에 따라 하는 겁니다."

"젊으니까 패기가 있잖아. 그 패기로 화장 안 하고 한 번 참아봐."

"그게 나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나는 화장을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꼭 해야 할 거?"

"그러면 화장해보십시오."

"허허 화장을 해봐? 그러면 잠깐 다른 이야기 좀 해보자. 쉬는 시간에 바빠?"

"바쁘지는 않습니다."

"안 바쁘면 교무실 왔다 갔다 하면 안 될 거?"

"저 연속으로 수업이 있으면 중간에 쉬는 시간에 정리도 하고 학생들 상담도 하는데요."

"여학생들 조심해라. 여학생들은 친한 척하다가도 언제 말 바뀔지 몰라. 조심해야 해."

"네? 무슨 말입니까? 저는 저 나름대로 중간에 아이들하고 대화만 하면서 조심합니다. 혹시나 음악 진로나 다른 상담 거리 있으면 상담하려는 건데요."

"그래도 여학생들은 조심하고."

"저는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학생하고 대화하면서 고개 숙여 사과도 하고, 문제가 있으면 찾아 고치려 합니다."

"교사를 학생하고 동급이라고 생각하지 마. 다르니까."

"…"

"안 바쁘면 커피는 내려와서 마시면 안 될 거? 우리 학교는 수업 시간에 뭐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거든."

"네. 커피 안 들고 가죠."

"그건 시원하게 약속하네. 화장은 아니면서."

"행동을 고치는 건 쉬운 것 아닙니까? 그까짓 커피 굳이 수업 시간에 안 마셔도 됩니다."

"그러면 화장을 꼭 해야겠으면 일단 석 달만 참아봐. 석 달만 참고 정 못 견뎌서 계속 화장해야겠다 싶으면 그때 사직서를 내. 그때는 내가 교장 선생님한테 잘 말씀드릴 테니."

"네? 그러니까 화장을 할 거면 그만두라는 이야기입니까?"

"그런 말이 아니고 좀 타협을 하자는 거지. 일단 밥 먹어."

교무부장의 입에서 나온 단어 '석 달', '사직서' 굉장히 황당한 이야기이다. 석 달이 지나면 방학이다. 방학 때까지 화장하지 말라는 것이고, 방학이 되면 그만두라는 소리이다. 그 전에 그만두는 것은 사람을 구하는 것도 문제고 진도나 평가 때문에 곤란하다. 그러니 학교에 지장 없을 시기를 찾아서 그만둘 시기를 정해준 것이다. 그런데, 이건 퇴사 압박이다. 교무부장이든 관리자든 해서는 안 될 소리이다.

"약속만 해. 성인인데 생각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하는 거지. 약속하고 안 지켜도 돼."

"아니다 싶으면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이라고 해도 저는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안 한다고 못 하겠습니다. 못 지킬 약속을 하는 것도 제 양심에 어긋나고요."

"화장 안 하면 안 될 거?"

"그런 식이면 여자 선생님들 화장은 문제없습니까?"

"사회는 여성 화장은 괜찮지만, 남성의 화장은 안 좋게 여기다 보니 학생들에게 말이 나올 우려가 있어."

학생들하고 동급으로 여기지 말라면서 학생들에게 말이 나올 우려가 있다며 압박을 주었다. 그 외에도 국가, 사회, 관습 등을 이야기하는데 난 어이도 없고 화도 났다. 앞뒤도 안 맞는 데다 성차별적인 말이 계속 나왔다.

"어느 교육학자가 이야기한 맨박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남자다움을 강조할 때 성차별이 심해지니 그런 것을 좀 버릴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난 맨박스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그건 일부의 이야기고. 학교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곳이라. 그러니까 화장 안 한다고 약속만 해."

"약속 못 하겠습니다."

"공무원은 공인이라. 공무원에게는 품위 유지의 의무라는 게 있어. 그래서 품위 유지 때문에 복장도 예전에는 정장만 입었어. 요즘이야 많이 풀렸지만."

말을 계속 돌리면서 내가 화장하지 못하게 하려고만 했다. 내 이야기를 전혀 듣지도 않고, 보수적이라면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품위유지라고 해도 난 공무원이 아니다. 공무원에 준하는 의무를 가진 비정규직이지만, 순직도 인정 안 되는 기간제 교사이다. 아무튼, 남성이 화장하는 것이 품위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은데 품위를 깎는다며 나에게 계속 압박을 주었다.

나중에는 이 지역은 정말 좁다면서 이야기를 했다. 예술제를 언급하며 그것만 잘 넘기면 좋은 소문 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했다. 이건 협박이다. 억압하는 사람이 좁다고 표현하는 것은 협박이다. 피억압자가 좁다고 하는 것과 다른 의미이다.

결국, 난 약속을 하지 않았고, 스트레스받아서 너무 힘들다고 나왔다. 밖에 나오니 비는 그쳤다. 난 비 맞고 싶을 정도로 우울해졌는데, 비도 그쳤다.


- 2016년 10월 1일 아침

아침 전체 모임 시작할 때부터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 선생님이 갑자기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화장했네요? 남자가 왜 화장을 해요?"

맨날 화장하고 다녔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도 아니면서 인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난 대답도 하지 않고 무시하고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전체 모임이 끝날 때쯤에야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교감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생님들, 남자 선생님은 남자답게, 여자 선생님은 여자답게, 학생들에게 본을 보이세요."

며칠 전에 했던 성평등 자체 연수에서도 성차별, 성폭력 예방을 위해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강조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리 연수 자체를 형식적으로 한다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나를 타깃으로 해서 전체가 압박을 주더라도 이건 아니다. 며칠 전 연수에서 한 이야기 마저 엎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 2016년 11월 28일

저 말이 왜 나왔는지 사정을 알게 되었다. 화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다. 수업 중에 거울을 꺼내서 화장하는 남자 교사가 있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렇게 저렇게 알 수 없이 꼬여 화장하는 것에 대하여 주의를 주고 못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된 것이었다.

문제는 화장하는 남자 교사는 나뿐이었다. 수업 시간에 거울을 꺼내서 화장할 이유가 없었다. 수업 시간은 굉장히 바쁘다. 내 진도 나가기도 바쁘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교장의 말에 민원을 넣은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하겠느냐며 화를 냈다고 했다. 일단 교장은 내 화장에 관해서는 예술가라는 이유로 방어했다고 이야기했다. 몇 차례 전화 왔지만, 그냥 욕먹고 말았고, 수업 중에 했다는 것에 그냥 둘 수 없어서 주의를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밑에 전달했다고 했다고 했다.

그 민원의 배경으로 추정되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나에게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라며 성희롱한 학생에게 성희롱이라고 경고했고 그 학생이 반발하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인데 그게 뭐가 문제냐?"고 한 것에 벌점을 준 것이다. 또 하나는 수업 중 분장 연습 후 교칙 위반을 막기 위해 메이크업 리무버를 갖고 온 김에 화장으로 벌점 받을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 벌점 대신 화장 솜에 메이크업 리무버를 묻혀서 닦게 했다. 이것도 잠깐 하고 하지 않았다. 다른 교사는 그냥 물티슈로 닦게 하지만, 나는 그래도 저게 좀 더 낫겠다 싶어서 메이크업 리무버를 사용했다. 나는 그 두 배경 중 전자를 더 크게 의심한다. 의심을 어떻게 하든 그걸 학생에게 티 낼 수는 없으니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 일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더 미칠 것 같았다. 나도 폭력적이었고, 그 학생과 학부모도 폭력적이었으며, 관리자와 관리자쯤의 위치인 사람도 폭력적이었다. 모두 폭력적이었다. 문제가 전자라면 폭력의 시작은 학생이다. 더 크게 보면 잘못 가르친 어른들이 폭력의 시작이었다. 문제가 후자라면 폭력의 시작은 나다. 교칙이 반인권적이라는 생각에도 동조한 내 잘못이 시작이다.


- 보수의 품위

학교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학교는 언제나 끊임없이 학습하며 진보해야 하는 곳이다. 새로운 것을 항상 접하는 학생들 옆에 항상 있고, 교육과정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문화교육을 하기 위해 소수자의 인권을 공부하는 등 더 진보적으로 열려 있어야 하는 곳이 학교이다.

학교에서 보수적이라는 것은 학습하기 싫다는 핑계, 인정하기 싫다는 핑계에 불과하다. 보수적이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지칭해서는 안 된다. 안정적인 현재에 부작용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변화에 대하여 더 고민하겠다는 태도여야 한다.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보수적인 것이 아니다. 그냥 게으른 것이다. 진짜 학교에서 보수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면 보수의 품위를 보였으면 좋겠다. 난 계속 화장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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