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를 공부하다 보면 20세기까지 유명한 음악가들은 거의 남성이다. 특히 음악 교과서의 음악가는 클라라 슈만 정도가 로베르트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와 함께 로맨스 정도로 언급되는 정도에 불과하다. 굳이 교과서가 아니라도 클라라 슈만은 남편 로베르트 슈만과 평생 자신만을 짝사랑한 브람스와의 관계 정도만 이야기될 뿐이다. 왜 여성은 음악사에서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일까?


- "여성"음악가에 대한 말

계몽시대 자연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Jaques Rousseau)는 “여성들은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무엇이든지 깨닫고 배우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각주:1]고 했으며,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역시 부정적으로 보고 “여성 전체 중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을 지닌 여자일지라도 예술 분야에서 참으로 위대하고 순수하고 독창적인 업적은 단 한 가지도 이룩하지 못하였다.”[각주:2]라고 했다.

이 두 유명 철학자의 말대로 여성은 타고나지 못한 것일까? 20세기의 심리학자인 칼 시쇼어(Carl E. Seashore)는 『왜 위대한 여성 작곡가는 없는가(Why No Great Women Composers?)』라는 에세이를 통해 ‘위대한 작곡가의 조건으로 음악적 기질, 타고난 재능 등의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는 창의성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창조적 능력은 유전보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각주:3]

지금 음악가들의 성비뿐 아니라 대학 음악과(음악교육과 등 관련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학과를 포함한)의 성비를 생각해 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험에 의하면 남학생들이 존재한다는 생각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시쇼어가 언급한 위대한 여성 작곡가 존재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음악전공자의 수 먼저 살펴보면,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는 여성의 수가 많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여성 작곡가라고 알려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환경의 영향이라면 후천적이라는 이야기인데, 어떤 후천적 영향이 있던 것일까? 능력과 관련한 후천적 영향은 학습과 교육 정도로 볼 수 있을 텐데, 19세기, 아니 가깝게 20세기만 살펴보아도 대졸자 비율은 남성이 훨씬 높다지만, 현재는 여성의 비율이 더 높고, 음악과는 압도적일 정도다.

이제부터 위대한 여성 음악가의 비율이 늘까? 글쎄 난 부정적이다. 능력 때문이 아니다. 아직 사회적 환경은 그렇게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아직 가부장제는 공고하다.


- 가부장제와 "여성"음악가

서양음악사에서 “여성”음악가의 존재가 드러나기 힘들었던 것은 가부장제의 탓이 크다. 가부장제는 집안의 남성 연장자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는 가족제도이다. 가부장제 아래 가족에서 가장 큰 권력자는 가장이라는 이름의 아버지와 장남이다. 가부장제에서는 이들이 가정 안에서 존중받는 모습을 외부에 보이는 것과 외부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가부장제는 대가족이 아닌 핵가족과 유사한 형태에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장남 유고 시 차남 혹은 그 아래 남성의 존재는 가부장제에서 중요한 존재였다. 집안의 명예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집안의 명예에서 남성보다 뛰어나거나 잘난 여성의 존재는 가부장제에 해가 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가부장제 유지를 위해 여성이 성인, 혹은 결혼 가능한 시기가 가까워지면 그들의 재능을 숨기고 “여성”으로서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 유명한 모차르트, 그러니까 18세기 말에 활동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어릴 때 누나인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애칭 나네를)와 함께 남매 신동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성인이 되자 볼프강만 데리고 다닌다. 당시에 여성의 역할이라고 했던 아내로 사는 삶을 위해 신부수업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는 여성이 음악 활동을 하는 것도 환영하지 않았다.

변화의 과도기였던 18세기였기 때문일까? 시간이 흘러 자유로운 인간의 사고를 찬양하던 19세기도 여성의 음악 활동이 제한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들었던 클라라 슈만은 작곡이나 피아니스트로서의 업적이 아니라 극적인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졌다. 남편 로베르트 슈만과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소송전을 통한 결혼, 먼저 죽은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평생 헌신한 삶, 천재 음악가 브람스가 평생 짝사랑했던 이야기. 클라라 슈만은 음악사에서 주체가 아닌 객체로만 남아 있다. 그것도 그나마 그 천재 음악가들 사이의 로맨스가 유명해서 이름이 많이 남은 것이다.

파니 헨젤은 한여름 밤의 꿈 중 결혼행진곡, 무언가, 바흐의 재발굴로 유명한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나이다. 그의 작품은 펠릭스 멘델스존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본인의 이름으로 출판하는 것은 가족의 굉장한 반대가 있었다.[각주:4]

“시작부터 네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단다....나는 출판을 시작했어. 내가 출판하는 것으로 인해 네가 불명예를 당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창작을 위한 자극을 항상 필요로 해왔어.”[각주:5]

위와 같은  편지가 남아 있을 정도였다.

파니 멘델스존의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도 이야기하였다.

“음악은 펠릭스에게는 직업이 될 수 있겠지만, 너에게는 결국 장식에 불과할 뿐이며 너의 존재나 활동의 기반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펠릭스에게는 명예와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야망이 무척 중요한 일이란다. 왜냐하면 그는 음악을 천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너에게는 정숙하게 행동하는 것이 곧 명예로운 일이란다. 가령, 동생에게 쏟아지는 갈채를 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함으로써, 타인으로 하여금 너 또한 존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리라. 여자스러운 것만이 여성의 자랑이 될 수 있으니까.”[각주:6]

그런데 가부장제는 여성에게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일까? 


-성차별의 비극 "카스트라토"

교회에 고음 성악가가 필요했지만, 여성에게 노래를 금지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남성이 가성과 기교를 통해 소리를 내는 카운터테너를 사용하였다. 카운터테너는 가성(falsetto)을 사용한다고 하여 팔세티스트(Falsettist)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이 팔세티스트는 별로 선호되지 않았다. 하지만, 보이소프라노로는 한계가 있는 데다 오페라의 등장과 로마 주변의 여성 성악가 제한으로 팔세티스트가 필요했다.

17~18세기 들어 여성 성악가들을 고용하지 못하는 로마와 그 영향을 받는 지역에도 고음 성악가들의 수요가 많아졌다. 하지만 고음 성악가의 양성이 어려웠다. 소년 단원의 주기적 교체, 팔세티스트의 갈라지는 것 같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평생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는 카스트라토가 주목받았다. 당시 팔세티스트의 목소리는 인공적인 소리로 간주하였지만, 카스트라토의 소리는 ‘자연스러움’, ‘진실함’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카스트라토를 더 선호했다.

카스트라토는 남성 호르몬을 생산하는 고환을 변성기 전에 제거한 거세 성악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카스트라토에 대한 선호 때문에 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해마다 4000여 명의 소년이 거세될 정도였다. 1903년 공식적으로 금지하기 전까지 수많은 소년이 남성성을 제거당했다.[각주:7] 심지어 성공한 카스트라토는 1% 내외에 불과했고, 나머지 카스트라토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카스트라토의 삶을 일부 엿볼 수 있는 영화 『파리넬리』를 보면 파리넬리는 형이 작곡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발판으로 쓰이기 위해 거세당한다. 가부장제와 성차별의 화살이 어린 남성 아동을 향한 것이다.


차별과 배제는 당하는 이가 정당하게 학습한 내용과 재능을 묻어버리는 일뿐 아니라, 다른 형태로 차별과 배제의 주체인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공정함을 원하면 “역차별”이라는 말-이 되는지 알 수 없는 말-을 쓰기보다 내 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권리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 아닐까? 다른 쪽에서 받은 차별을 더 만만한 곳에 쏟아내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각주:8]

  1.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3 재인용 [본문으로]
  2.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1 재인용 [본문으로]
  3. Carl E. Seashore, “Why No Great Women Composers?”. Neels-Bates, Carol(ed). Women in Music : An Anthology of source Readings from the Middle Ages to the Present. Boston: Northeastern University Press, 1996, p.299. 『음악사 다시 생각하기 : 19세기 여성음악가들의 글을 중심으로』, 홍인경,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2008) p.20 재인용 [본문으로]
  4.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27 [본문으로]
  5. Marcia J. Citron. "Fanny Medelsohn Hensel: Musician in Her Brother's Shadow". Women Making Music: The Western Art Tradition, 1150~1950.(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86)p.158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46 재인용 [본문으로]
  6. 에바 리거, 『서양 음악사와 여성』, 김금희 역(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1), p.259,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6 재인용 [본문으로]
  7. 『카스트라토와 카운터테너에 대한 연구』 전영호, 중앙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 성악전공 석사학위 논문(2006) p.26~27 [본문으로]
  8. 이 글은 내가 학교에서 서양음악사 수업을 할 때 한 번씩 하는 수업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내용을 갖고 수업하는 이유는 이 각주가 달린 문단이다. 혹시 수업자료가 필요하신 분은 보내드리겠습니다. 토론이나 질문도 환영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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