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에서 하는 <까칠남녀>를 보다가 출연자 중 한 명이 '본인 딸이라도 그렇게 말씀하시겠어요?'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생각에 얼굴을 찌푸렸다. 비슷한 감정을 가진 적 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났다. 몇 년 전에 했던 토론 때 들었던 말이었다.

몇 년 전 연수 받을 때였다. 토론 프로그램이 있었다. 난 토론을 굉장히 좋아해서 기대하고 있었다. 주제는 당시에 한참 논란이었던 '성범죄자 화학적 거세'였다. 법은 이미 통과된 상태였고, 압도적인 여론 때문에 반대쪽을 다들 하기 싫어했다. 하지만, 나는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어떻게 토론에서 이겨볼까 하는 생각에 흥분했다.

나는 내 입장과 내용에 자신 있었다. 나는 '성폭력의 원인은 성욕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학적 거세는 의미가 없어 반대했다. 그래서 이걸 주장하기 시작하면 내가 이 토론에서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흥분했고 우리 조원들을 설득해서 반대쪽에 서기로 했다.

막상 토론이 시작되자 별로 재미없었다. 인신공격하려 하거나 다들 뻔한 주장밖에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성폭력의 원인이 '성욕'이라는 전제로 이야기하는 덕에 말의 합이 맞지 않기도 했다. 시간만 흐르고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기만 했다.

거의 끝날 시간이 다 되어 갈 때였다. 찬성 쪽에서 한 명이 나서서 반대 쪽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딸이 강간 피해자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 말고 반대였던 다른 한 명이 먼저 답했다.

"그건 토론의 주제와 맞지 않고 인신공격에 가깝습니다!"

찬성 쪽에서 질문 던진 사람은 편안하게 다시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까 답했던 사람이 다시 답했다.

"그런 새끼는 찾아내서 죽여버릴 겁니다."

황당했다. 진짜 토론을 위한 토론을 했나 싶었다. 감상에 젖어 들 틈이 없었다. 내가 답할 차례가 됐다.

"저는 복수하지 않을 겁니다. 내 가족을 지켜야 합니다.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치료에 힘써야지 복수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가족을 치유하는 데 힘쓸 겁니다."

내가 답을 하자 상대는 알겠다고 했다. 그때 마침 토론 시간도 끝났다.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으면 네 딸이 그렇게 당한다고 생각해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난 그런 주장이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위험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성범죄는 형량을 높이거나 화학적 거세 따위의 문제가 더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를 치유하고,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치안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처벌이나 복수 같은 건 얼핏 달콤하다. 하지만 피해는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예방할 수 있도록 치안을 강화하고, 사후에는 피해자 치유에 우선을 두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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