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릴 때부터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초능력을 가진 영웅 같은 존재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불편함을 고치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고치려고 하는 데 참여하려고 하면

"지금은 바꿀 수 없어."

"네가 간다고 바꿀 수 있을 것 같냐?"

"크면 바꿀 수 있어."

"네가 힘이 생기면 바꿀 수 있어. 그러니 지금은 참아."

그보다 더 어릴 때는 가능성을 그렇게 무한하게 이야기했으면서 중학생 때부터 되어 불합리한 것을 보며 불만을 느끼기 시작하자 어렵다는 이야기만 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참고 견디다 보면 세상을, 사람을 천천히라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갑자기 바뀐 게 아니듯 서서히 젖어 들어가게 바꾸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게 첫째는 치마 입기, 둘째는 화장하기였다. 나를 꾸미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운동이다.


인연을 대놓고 끊어본 적은 거의 없다. 항상 아직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사람을 끊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처음으로 대놓고 인연을 끊은 것은 2014년이었다. 좀 늦은 첫걸음이었다. 1999년부터 내 말을 쉽게 옮기고, 내 이름을 도용하여 책을 빌리고 몇 달이 넘도록 안 갖다 주기, 물건 빌려 가서 안 갖다 주기,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하면 쪽팔리지도 않느냐고 면박을 주기, 술 마시며 다른 사람한테 받았던 스트레스를 그대로 나한테 풀기 등등 (지나치게) 많이 참았었다. 한동안 자기 필요한 것 얻을 때까지는 조용하다가 필요한 것을 나한테 받자 태도가 바뀐 순간 터졌다. 나랑 관계없는 것을 갖고 내게 따지는데 도저히 말도 통하지 않고 감당할 수도 없었다. 본인 마음에 안 드는 정책을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건데?

그리고 한동안은 사람을 끊어낼 일이 잘 없었다. 세상에 포기할 만큼 나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좀 참아주면 지나간다. 생각해보면 본인의 문제를 언젠가는 깨달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을 또 끊었다. 폭언을 참아내는 것보다 폭언을 끊어내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내 인스타그램에 핀잔을 주는 댓글을 달기에 무시했었다. 그런데, 며칠 안 있어 동창 단체 채팅방에 내 사진을 캡쳐해 올리고는 좀 그만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난 어이 없어서

"미쳤냐? 왜 남의 사진을 함부로 캡쳐해서 올리냐?"

"미친 건 너야. 남자가 화장을 왜 해?"

이건 분명 사이버 불링[각주:1]이다. 너무 화가 나 단체 채팅방을 캡쳐할 생각도 못 하고 나왔고, 그 녀석을 차단했다. 생각해보면 이놈은 언제든 그럴 수 있는 녀석이었다. 미리 쳐냈어야 했다. 무슨 좋은 사람인 척할 거라고 사람을 그냥 두었는지 모르겠다.

이 녀석은 전에 내가 치마 입고 다닐 때 이렇게 이야기한 녀석이다.

"너 그렇게 입고 다니면 따먹힐 수 있다. 내가 아는 게이 형이 있는데, 너처럼 입고 다니는 것 보면 분명 너 따먹을 거다."[각주:2]2015/12/27 - [함께] - 치마와 성폭력

내가 출근하는데 뛰어가는 걸 보고 단체 채팅방에

"쟤 지각한다."

그를 바꾸려고 잔소리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가해에 특화되어 타인의 자존감을 짓밟는 게 전부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포기하고 피하는 게 내 삶의 질에 내 삶의 목표에 더 도움된다.


세상을 바꾸려면 내 의지와 자존을 깎아내는 이를 먼저 쳐내야 한다.

  1. CyberBullying. 가상 공간에서의 괴롭힘. [본문으로]
  2. 나를 향한 성희롱이다. 성소수자에 관한 무지이자 비하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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