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비혼[각주:1]이다. 결혼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난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다. 결혼에 관한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식을 어떤 방식으로 해볼까, 결혼하기까지 치러야 할 과정이 어떨까 한참을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미혼[각주:2]이었다. 요 몇 달 동안 몇 번에 걸쳐 집에 비혼을 선언했다. 이제는 미혼이 아니다. 비혼이다.

20대 초부터 아버지에게 '장가 빨리 가라.', '손주를 빨리 보고 싶다.' 등의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나이 먹을수록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중간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기도 했고 결혼과 살 곳에 관하여 이야기 나누며 고민하기도 했다. 각자 원하는 삶의 터전과 삶의 방식은 달랐다. 같이 살지 않고 각자의 삶을 지키려는 욕망이 같이 살아야만 한다는 욕망보다 강했다. 적어도 지금에 와서는 그런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해야 한다는 욕망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결혼에 관한 내 생각이 많이 달라지기도 했다. 처음에 결혼은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결혼은 가족 간의 결합이었다. 심지어 결혼의 주체는 나와 내 배우자도 아니었다. 그렇게 내가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좀 더 나를 돌아보고 나를 먼저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을 어떻게 할지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았다. 주례 없이 더 부부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결혼식, 뮤지컬 무대처럼 모든 게 극이 되는 즐거운 결혼식, 하객은 소수만 불러서 평일 저녁에 치르는 조용한 결혼식, 파티처럼 온종일 사람 모아놓고 놀다가 공개 선언하는 결혼식, 축의금 대신에 각자 기부하는 결혼식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결혼식의 주인은 결혼하는 부부가 아니었다. 무대 위의 주인공일 뿐 결혼식의 주체는 양가 부모였다.

결혼한 이후의 삶을 생각해보았다.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독립적인 개개인의 모습,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법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부부 각자의 성을 딴 성이 다른 아이들 등. 하지만 결혼은 새로운 가족이지만, 기존 가족에 종속된 존재였다. 제사나 집안일을 도울 것을 요구하거나, 각자의 의사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기존 가족과 새로운 가족까지 모두 고려해서 삶을 조절해야 한다.

사회적 동물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그걸 넘어서서 나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은 싫다.

나는 장남이다. 그리고 장손이다. 가부장제의 중심이 되는 대를 잇는 남성이다. 나는 그 장손이라는 호칭이 싫다. 대를 잇는다는 것도 싫다. 그건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대를 잇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술에 취한 아버지와 싸운 적이 있다. 그때 더 절절하게 알게 되었다. 

"장손으로 권리가 뭐 있습니까?"

"대를 이을 권리가 있지."

"그게 무슨 권리입니까? 의무이지."

"장손은 집안일을 챙길 권리가 있지."

"그것도 의무이지 무슨 권리입니까?"

"난 무슨 권리가 있는지 말씀하세요."

"장손인 것 자체가 권리이지."

"아니, 장손이라고 집안에서 발언권이 큰 것도 아니고, 맨날 하는 소리가 할아버지가 없어서 그렇다면서 징징대기밖에 더하셨습니까? 장손이 힘이 있으면 작은할아버지들이 말이 안 되는 소리 하면 말이 안 되는 소리 한다고 큰 소리라도 쳐보셨습니까? 무슨 말을 하면 기죽어서 조용히 있는 주제에, 무슨 말 하면 네네 소리밖에 못 하면서 무슨 권리가 있다는 겁니까? 어차피 재산도 공평하게 물려받았는데, 무슨 힘이 더 있는 겁니까?"

"그러니까 내가 너희들 부담 안 가게 집안 일 정리하겠다고 했잖아."

"아니 평소에 큰소리나 좀 치고 이야기하세요. 내가 말하면 싸움 되고, 어머니가 이야기하면 싸움 되는데 그러기 전에 아무것도 못 하면서 무슨 소리입니까?"

"너가 나중에 결혼해서 문중회 들어온 다음 큰소리쳐."

"아니 그때 되면 그때대로 또 큰소리치는 어른들은 어떡할 겁니까?"

"어차피 촌수가 점점 멀어지고 안 보게 되어 있어."

"그걸 기다릴 게 아니라 지금 바꿔야 할 거 아닙니까?"

"너네 자식 때 되면 바뀐다."

"내가 자식을 왜 낳아야 합니까?"

"대를 이어야지."

"내가 왜 대를 이어야 합니까?"

"너 장손이잖아."

"내가 장손 하고 싶어서 했습니까? 권리도 없는 장손 뭐 하러 합니까?"

"너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을 거냐?"

"결혼해서 뭐합니까?"

"장손이 왜 결혼을 안 하냐?"

"장손이라고 왜 결혼을 해야 합니까?"

"대이어야지."

"내가 대를 잇는 도구입니까? 난 나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도구로 만들어진 겁니까?"

"언제 도구랬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아니 장손이라고 더 큰 권리도 없고, 의무만 가득한데 도구가 아닙니까? 내가 선택 안 할 수도 없다면서."

"그게 어떻게 도구냐?"

"도구지요. 나는 결혼 안 할 겁니다. 애도 안 낳을 거고. 애를 낳는다고 해도 제사고 뭐고 다 없앨 겁니다. 내가 도구가 되기 싫은 만큼 다른 사람도 도구로 만들기 싫습니다."

"넌 재산 안 물려줄 거다."

"물려주지 마세요. 어차피 법적으로 배분해야 하는 건데."

"너 동생이, 너 조카가 장손 노릇 하면 되지."

"무슨 의무를 떠넘기는 걸 뭘 주는 것 모양으로 이야기합니까?"

이런 식의 대화인지 싸움인지 모를 것을 통해 내가 도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장손이라는 굴레를 이제 벗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비혼을 선언했다. 아직 독립도 못 하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주제에 비혼을 선언한 것도 좀 우습긴 하지만, 난 나라도 나를 존중하고 싶다. 나는 도구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이라고 인식하고 싶다. 그래서 비혼을 선언했다. 도구화를 끝내고 싶고, 인간을 존엄하게 여기고 싶어서 비혼을 선언했다.

  1. 결혼을 하지 않음.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의미가 있다. [본문으로]
  2.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음. 결혼은 당연히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는 말이다. [본문으로]

낙태권이라는 말 참 생소하다. 정말 생소하다. 설명을 읽거나 들을 수록 슬퍼지는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중고등학교 시절 성교육부터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난 낙태에 반대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성교육을 받을 때 들었던 낙태와 관련한 이야기는 생명 존중 밖에 없었다. "태아의 생명에 관한 윤리적 문제", "이후 임신이 어려워 질 수 있다" 같은 이야기가 거의 전부였다. 낙태와 관련한 영상을 봤던 것 같은데, 그 영상에서 낙태는 그만큼 끔찍했다. 이후 성별 감별 후 여아만 낙태하는 문제에 관한 시사 프로그램을 봤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 난 낙태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했다. 성차별과 책임지지 않는 행위라는 이유를 댔다.

성교육과정에서 피임 이야기를 아예 듣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응급 피임약 이야기 정도 들었다. 그때는 무책임한 남자들이 문제라는 이야기 밖에 못 들으며, "원하지 않는 임신 방지 목적"의 어쩔 수 없는 피임 방법으로 밖에 듣지 못했다. 그래서 낙태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었고, 들어야 할 생각도 못했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낙태에 찬성한다.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성별 감별 낙태와 낙태죄 두 가지 문제의 본질은 같다. 방향이 조금 다를 뿐, 모두 개인, 특히 임신한 여성의 신체를 도구로 바라본다는 것은 같다. 전자는 남아선호라고 하는 여아혐오와 동급의 성차별적 사회에서 남아를 낳아야 할 도구로 만들어버린 것이고, 후자는 사회의 인구를 강제로 조정하려는 인간 생산의 도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방향의 차이는 단 하나다 선별 생산이라는 제한이냐, 생산 중단 불가라는 제한이냐. 둘 모두 여성을 생산의 도구로 바라보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되어 있다. 낙태죄라는 데서 이미 여성을 도구로 바라보다 보장해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깨트리는 행위가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을 근거로 하면 낙태죄는 성별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이다. 임신할 수 없는 신체를 가진 이를 제외하고 임신 가능한 신체를 가진 이만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추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 36조 1항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2항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3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을 보았을 때에도 국가의 보장이 우선이다. 개인의 권리에 대하여 국가의 의무를 먼저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1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임신과 관련된 내용이 나와있지 않다는 여성을 생산의 도구로 보며 여성의 신체의 자유와 권리를 경시해서도 안 된다. 또한 임신이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공공복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여전히 낙태권이라는 말은 생소하다. 자기신체의 권리에 다른 말을 더 붙여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 어떤 이들은 "책임질 수 없는 행위"라는 말을 통해 임신을 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이의 책임만 강조한다. 정작 국가에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책임은 어디에 두고 그런 법을 입법하려는 것일까? "책임질 수 없는 행위"는 힘 없는 개인에게 굴레를 씌우기 위한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힘을 가진 집단이나 개인의 무책임을 막기 위한 말로만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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