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모하는 부분이 굉장히 넓어졌다. 예전에는 겨우 수염이나 면도하는 정도였다. 그것도 자꾸 얼굴에 상처가 생겨 따갑고 쓰려서 안 지저분하면 이삼일에 한 번 정도 했었다. 수염 자라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 그렇게 티 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염 정도만 면도하고 살다가 치마를 입고 싶어서 수염 말고 다른 데도 제모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면도기를 처음으로 댄 것은 다리이다. 얼굴보다 더 먼저 댔다. 고등학교 때 여름에 반바지를 입는데, 덥수룩한 다리털이 괜히 부끄러워 면도기로 깔끔하게 밀었었다. 그다음에 한동안 편안하게 반바지를 입고 다녔다. 그러나 다리털이 자라면서 까슬까슬 너무 따가워 다음부터는 다리털을 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치마를 처음 입을 때 어떻게 할까 하다가 레그 트리머라는 걸로 깎아봤다. 약간씩 걸리는 그 느낌이 별로였다. 깔끔하게 되지도 않아서 뭐지 생각했는데 다리털을 적당히 정리하는 용도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정리하고 난 다음 주변에 떨어진 다리털을 롤 클리너로 열심히 청소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다음부터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다음에 사용한 것은 제모 크림이다. 스패츌러로 다리에 바르고 시간이 지난 다음 스패츌러를 이용해 다시 밀기만 된다기에 사용했다. 기다리는 것은 굉장히 지루했다. 털도 그렇게 깔끔하게 제거되지 않았다. 욕실 배수구에 모인 다리털은 치우기도 번거로웠다. 결국, 티 많이 나는 것은 족집게로 뽑아야만 했다. 다시 길 때 느낌은 다리털을 깎았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아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왁싱테이프를 사용했다. 깔끔했다. 뽑힐 때 좀 아프긴 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고 빠르게 뽑을 수 있어 좋았다. 털이 너무 길면 잘 안 뽑히긴 했지만, 그런 것은 몇 개 없어 족집게로 뽑을 수 있었다. 거기에다 빠진 털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청소하기 불편하지도 않았다.

다리털을 제모한 후부터 방을 청소할 때 짧은 털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 제모가 내 방을 덜 더럽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제모가 좋아졌다. 그래서 더 많은 곳을 제모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제모는 배꼽 밑 털과 성기 주변의 음모였다. 왁싱테이프를 쓰기는 무서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족집게로 뽑았다. 족집게로 뽑았는데, 오래 걸리고 아프기만 했다. 그래도 적당한 범위를 제거했더니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살이 부드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씻었을 때 성기 주변을 닦기만 해도 빠르게 말라서 좋았다.

적당히 제거한 후에는 좀 깔끔하게 제거하고 싶어서 용기를 내 왁싱 테이프를 사용했다. 연약한 살이 뜯어지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며 사용했다. 살은 뜯어지지 않았지만, 털이 뽑히며 핏방울이 맺혔다. 급하게 일회용 알코올 솜을 뜯어 닦아냈다. 좀 아픈 느낌도 들었지만, 얼른 끝내고 싶어 다 했다. 손과 왁싱테이프에는 피가 조금씩 묻어 있었다. 다 끝나고 다시 알코올 솜으로 닦아내고 피가 멎기를 기다렸다. 피는 곧 멎었다. 그다음 날부터 살이 부드러웠고, 사타구니 주변이 습하지 않고 뽀송뽀송한 느낌이 들었다. 속옷을 갈아입을 때도 속옷의 상태가 이전보다 깔끔했고, 방바닥에는 털이 더 보이지 않았다.

곧 문제가 생겼다. 목욕탕에 가고 싶은데 부끄러운 마음에 목욕탕에 갈 수 없었다. 너무 깔끔하게 뽑아낸 탓에 어린이가 된 기분이 들어 부끄러웠다. 그래도 성기 주변에 털이 좀 있어야지 없으니 부끄러웠다. 그래서 한참을 기다려 음모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야 목욕탕에 다닐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났을 때 음모를 다시 좀 정리하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번에는 제모 크림을 사용했다. 제모 크림은 최악이었다. 따갑고 쓰렸다. 설명서를 봤더니 그런 데는 사용하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한 덕에 아프기만 했다. 그래서 얼마 제모도 못 하고 쓰린 부분을 부여잡을 수도 없어서 아픔이 없어질 때까지 한참 고생했다. 그 쓰린 걸 좀 줄일 거라고 한동안 수딩젤을 발랐다. 거의 두 주가 지난 후에야 아픔이 사라졌고, 한동안 주변만 제모했다.

치마를 한동안 못 입을 상황이 되면서 수염을 제외한 부분은 한동안 제모하지 않았다. 수염 정도나 제모했다. 얼굴용 왁싱테이프로 시도했는데, 접착력도 약하고 수염도 짧아서 제모가 그렇게 잘 안 됐다. 수염같이 굵고 뻣뻣한 털이 아니라 솜털같이 가늘고 부드러운 털을 위한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족집게로 수염을 뽑았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턱과 입술 주변에 염증이 생기지 않았다. 간혹 생기긴 했는데, 그런 건 수염이 피부 안쪽으로 자란 경우였다. 괜히 너무 신경 쓰여 바늘로 찌르고 살짝 털을 들어 올려 뺐다. 털은 엄청나게 길었고, 뽑자 곧 염증이 가라앉고 시원했다.

면도기를 아예 안 쓰는 것은 아니다. 다리털을 다시 제모하면서 애매하게 길어 왁싱 테이프 사용하기 힘들 때 면도기로 밀었다. 얼굴의 솜털이 많이 길었을 때도 면도기로 살살 면도했다. 매일 면도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가 크게 상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면도날도 전용 도구로 깔끔하게 닦아도 매일 면도할 때는 항상 상처가 났는데, 가끔 하니 상처가 잘 나지 않았다.

요놈의 제모, 하자니 번거롭고 안 하자니 괜히 찝찝하다. 면도기를 쓰자니 아프고, 안 쓰자니 번거롭다. 그렇다고 넓은 범위를 레이저 제모하러 가기도 부끄럽고 부담된다. 제모를 처음부터 안 했으면 몰라도 한 번 하고 났더니 그 시원한 기분에 자꾸 하게 된다. 이젠 미용이 목적이 아니라, 내 기분을 위한 것이 됐다. 괜히 내가 변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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