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히 내 진짜 욕망을 깨달았다.

치마를 입고 다닌 지 4개월이 넘었다. 나는 내가 그저 치마를 입고 싶어서 입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내 마음 깊은 곳에 권력욕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가족의 장남이며, 우리 집안의 장손인 내가 가부장제를 싫어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단지 장손인 내게 없는 그 빼앗긴 권력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고 화장까지 하는 것이었다.

평소 유입 로그를 살펴보며 검색어를 그대로 넣어 검색해보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몰랐을 뻔했다. 오늘 그 검색어 살펴보기 덕에 훌륭한(!) 글[각주:1]을 두 개나 읽게 되었다. 『남자가 치마입기?(부제: 유선형은 권력이다.)(http://blog.naver.com/handzfree/220674595980)』를 먼저 보았고, 그 글의 링크를 통해 『구조론 심리학3. 남자들이여, 치마를 입어라! -오세(http://gujoron.com/xe/277606)』라는 글도 접하게 되었다.

앞쪽 링크의 글머리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남녀평등이 점점 구현되고 있는 지구촌에 아직도 남성들에게는 불문율 처럼 금기시되는 사항이 있으니… 바로 치마입기다. 여성들은 이미 남자옷을 다 입고다녀도 괜찮은 세상인데 남자들은 치마를 못입는다. 집안에서 쫓겨나고, 거리에서는 눈총의 대상이 되고…”[각주:2]

그리고 마지막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여하튼 극한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21세기에도 이러한 터부가 남아있는데 고대시대에는 얼마나 큰 터부로 인하여 인간들이 고통을 겪고 살았을지… 남성들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여성들에게 빼앗긴 권리를 찾을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남자들도 부디 유선형 본능을 되찾을 수 있기를…”[각주:3]

난 이렇게 깨달았다. 내 행동은 여성에게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이었다.


- 권력자 남성의 특징

그런데 난 집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안 쫓아내시던데? 거리에서는 그다지 눈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 자기 할 일에 바빠 나 같은 존재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난 이미 권력을 가졌나? 으하하하하 우리 가족 최고 권력자가 나라니, 황당해서 웃음 밖에 안 나온다.

글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여성의 옷은 사회에서 상위 계층이 입을 수 있는 옷의 형태이고, 여성의 머리 또한 상위계층이 누릴 수 있는 형태로 보인다.”[각주:4]


“물론 남성들도 머리를 기르던 조선시대까지는, 상투를 틀거나 등등 작게 만드는 기술을 사용하였으나, 일제시대 단발령이 내려지고 엄청난 남성들의 반발이 있었다. 즉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가 그만큼 낮아진다는 것에 반발했던것…”[각주:5]


“권력자 남성 복장의 치마형태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통털어서 전부다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치마나 긴머리나 모두 우아한 곡선으로 되어있다. 여성의 눈화장도 마찬가지, 마치 유선형의 날씬한 물고기를 보는듯하게 눈화장을 하면, 그것이 사람의 시선을 끈다.”[각주:6]


“치마나 긴머리와 마찬가지로, 화장 또한 고대시대에는 신분의 상징이였을 것이다. 신분이 높은자가 좋은 화장을 하여, 남들이 보기에 낮은 계층과 구분이 된다. 현대사회에서도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남자또한 화장을 하고 출연을 하는것을 보면 이런 추론이 크게 틀린것은 아닐듯 하다.”[각주:7]

난 권력을 가진 자의 상징으로 머리도 기른 것이고, 치마도 입고, 대충이나마 화장을 하는 것이었다! 난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 권력도 별 권력이 다 있다.

황당할 뿐이다. 권력도 별 권력이 다 있다. 어떻게 머리 기르기, 치마 입기, 화장하기가 권력이 될 수 있을까?

조선 시대의 머리 기르기는 유교의 영향이 강했다. 효경에 나오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불감훼상효지시야(不敢毁傷孝之始也)를 보자.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몸뚱이 터럭, 살갗으로 사람의 몸 전체를 이야기한다. 이런 몸뚱이를 수지부모(受之父母), 즉 어버이로부터 물려받았다. 불감훼상(不敢毀傷), 감히 상처입히지 않는 것이, 효지시야(孝之始也), 효의 시작이라는 내용이다.

머리 기르기가 권력? 분명, 권력과 아무 관계 없다고는 못 한다. 머리 기르기보다 유교의 가르침이 권력이었다. 유교의 경전을 공부하며 수백 년을 그게 당연한 듯 살아왔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부정당하니 기분이 어떻겠는가? 나라가 만들어내고 자신도 만들어낸 그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일 것이다. 부모에게 효를 다 해야 하는 세계관이 외부에 의해서 무너지니 한 반발이었지, 머리가 길다고 권력은 아니었다. 머리가 길다고 권력이면 상투를 왜 틀까?

치마 입기가 권력이라는 것은 뒷쪽 링크가 더 가관이다.

“바지는 보통의 남성들이 취하는 삶의 양식을 집약하고 있다. 남성은 기본적으로 잉여다. 김동렬님 말대로 유전적으로 보면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여자의 세력이며 잉여이다. 공동체의 세력을 확장하고 영토를 넓히기 위해 남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차피 단 한 명만 있어도 무방한 잉여이기 때문에  공동체에 의해 마구 소모된다. 주로 전쟁의 형태로 말이다.”[각주:8]

“그들은 마구 소모되니까 옷도 아무렇게 입는다.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데 적합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남성의 옷은 거의 기능 위주이고 실용성이 기준이 된다. 남성 옷은 그야말로 '위하여'의 집합체이다. 멋에 의하여, 아름다움에 의하여. 어울림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농사짓기 위해, 사냥하기 위해, 전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각주:9]

소모되기 위해 실용적인 바지를 입혔다고 한다. 바지보다 더 먼저 등장한 실용적 복장은 짧은 치마다. 바지보다 만들기 쉽고 동작의 제한이 적다. 바지는 실용적이지만, 바지 제작과정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가장 기본적인 패턴과 꿰맬 부분만 보아도 바지가 훨씬 번거롭다. 문화권과 별개로 기술적인 면에서 바지를 입는다는 것은 권력에 더 가깝다. 말을 타지 않는 이상 실용성은 짧은 치마가 훨씬 높다.

또한, 짧은 치마가 패션 일부가 된 것은 불과 백 년도 안 된 20세기의 일이다. 그 전까지 여성은 동작의 제한이 있는 긴 치마만 입어야 했으며, 그 긴 치마를 입고 가사 노동을 해야만 했다. 전쟁 때 생산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여성을 고용했지만, 그것도 대체로 바지보다 치마를 입어야 했고, 바지가 여성의 패션이 된 것은 더 이후의 일이다.

앞쪽 링크로 다시 돌아가 유선형을 권력이라고 끌어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치마나 긴머리나 모두 우아한 곡선으로 되어 있다. 여성의 눈화장도 마찬가지, 마치 유선형의 날씬한 물고기를 보는듯하게 눈화장을 하면, 그것이 사람의 시선을 끈다.”[각주:10]

그 전에 왜 남성은 화장을 안 해도 별말을 듣지 않는지, 왜 현대에도 여성보다 남성들이 덜 꾸미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온갖 미디어를 통해 강요받는다. 여성성과 아름다움이라는 말로 강요받는다. 물론 본인의 선택과 미적 감각 때문에 자신을 꾸미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출근길에 화장하는 여성들은 본인을 위해 꾸미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꾸미는 것일까? 그 꾸미는 행위가 권력이라면 왜 남성들은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꾸미지 않는 것일까?

앞쪽 링크에서 방송을 예로 들기도 한다. 방송 출연을 위해 화장한다? 정확하게는 분장이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의 특성에 맞게 만들기도 하고, 방송에서 카메라가 비출 때 그 사람의 모습을 뚜렷하게 잡기 위해서 꾸미는 것이다. 방송을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 분장이다. 방송에 출연한다고 무슨 권력이 생기는가? 방송을 봐도 돈 더 많이 받는 남성이 분장을 좀 더 적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 여성혐오

두 링크는 여성혐오이다. 여성혐오는 한문 글자 하나 만들듯이 해석해야 한다. 혐오라는 개인의 감정을 끌고 오면 끝이 없어진다. 사전에서 보통 “여성에 대한 혐오”라고 정의하는 데, 그 사전의 편찬자가 내린 정의일 뿐 정확한 뜻이 아니다. 학자들이나 정치권에서 사회문화, 범죄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현상을 논의하며 계속 새롭게 정의한다.[각주:11]

단순하게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야기는 여성혐오라는 현상과는 그렇게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혐오감뿐 아니라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행위, 여성에 대한 편견 등을 모두 포괄하며 남성, 여성 모두에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두 링크는 여성에게 강요했던 여성성을 왜곡하여 설명하고 있다. 머리는 기를 것을 강요받았고, 바지는 못 입게 했으며, 화장은 사회적으로 여성에게만 강요했다. 그것을 특권이라고 하며, 남성이 권리를 빼앗겼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혐오일 뿐이다.

졸지에 허울뿐인 권력자가 되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