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진 이야기를 했을 때도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 내 성적 지향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을까? 성적 지향에 관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젠더 퀴어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깨달은 것은 바이섹슈얼이고, 이 성적 지향은 젠더와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1. 성적 지향의 개념과 종류

성적 지향은 성적 감정이 향하는 방향이다. 한문으로는 性的指向, 영어로는 Sexual orientation 이렇게 쓴다. 모두 성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지 말한다. 이런 성적 지향이 동성을 향할 때는 같다(Homo-)에 성애(-sexual)를 붙여서 동성애(Homosexual)라고 부른다. 성적 지향이 이성을 향할 때 다르다(Hetero-)에 성애를 붙여서 이성애(Heterosexual)라고 한다. 이런 말은 성별 이분법적(Gender binary)인 구분으로 두 개의 성(Sex 혹은 Gender)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나 그 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방식의 구분이다.

두 개의 성, 즉 여성과 남성 외에도 다른 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좀 더 젠더 중립적인 말을 사용한다. 남성애(Androphilia)라는 말이나 여성애(Gynephilia)라는 말이 그것이다. 본인의 젠더를 드러내지 않고 어떤 성에게 성적으로 끌리는지 쓸 때 사용한다.

두 가지 성에게 성적 감정이 향할 때는 양성애(Bisexual)라고 한다. 보통 성별 이분법적 구분에 따라 여성과 남성 두 성 모두에게 성적 감정이 향하는 경우를 이야기한다. 나는 젠더 퀴어이지만, 아직은 직접 만난 사람이 남성과 여성 외에는 없어서 아직 성적으로 끌리는 경우가 여성과 남성뿐이라 양성애자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성적 감정이 누구도 향하지 않을 때 무성애(Asexual)라고 부른다. 젠더적인 구분 없이 사람 그 자체만을 향할 때는 범성애(Pansexual), 성적 감정이 특정 젠더를 구별하면서 셋 이상의 여러 젠더에 끌릴 때는 다성애(polysexuality)라고 한다. 이런 것들을 고민할 때 고민하는 그 상태를 퀘스쳐너리(Questionary)라고 쓴다. 퀘스쳐너리는 젠더에도 쓰인다.


2. 단성애자들 -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한 성에게만 성적 감정이 향한다. 이렇게 하나의 성만을 향한 성적 감정이 향하는 것을 단성애(Monosexuality)라고 한다. 단성애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 성소수자 중 하나인 동성애자를 포함한다.

동성애는 단성애 중 하나이므로 한 성에게만 성적 감정이 향한다. 게이(Gay)는 보통 남성 동성애자를 이야기한다. 남성인 남성애자라고 생각해도 좋다. 레즈비언(Lesbian)은 여성 동성애자를 이야기한다. 여성인 여성애자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성애자도 마찬가지로 단성애중 하나이므로 한 성에게만 성적 감정이 향한다. 남성인 여성애자, 여성인 남성애자를 이성애자라고 한다. 


3. 무성애자들 - 무낭만과 낭만

무성애자는 성적 감정이 어디로 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연애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이들에게는 연애 지향(Romantic orientaion)이라는 말을 따로 사용한다. 크게 무낭만(Aromantic)과 낭만(Romantic)으로 나눈다. 낭만적 감정이 생기지 않거나 연애에 관심이 없는 무낭만적 무성애(Aromantic Asexual)가 있고, 낭만적 감정이 생기며 순수하게 연애 감정만 있고 성적 끌림이 없는 낭만적 무성애(Romantic Asexual)이 있다. 낭만적 무성애는 연애 감정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 로맨틱 앞에 동성, 이성, 양성, 범성 등을 붙이기도 한다.

유성애와 무성애 사이에 정체성이 있는 회색인 사람들도 존재한다.


4. 양성애자

양성애는 보통 남성과 여성 두 성에게 성적 감정이 향한다. 어떤 이는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에 있는 스펙트럼 전체를 양성애자로 보기도 한다. 거의 한 성에게만 끌리고 다른 성에게는 가끔 끌리는 경우도 양성애자라고 하는데, 이를 두 성애 사이에 있는 긴 스펙트럼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성애자나 동성애자와는 다른 별개의 정체성으로 생각한다. 범성애자나 무성애자, 다성애자들을 생각할 때 이들을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의 스펙트럼에 넣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양성애자만 보면 그 안에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한다.


5. 성적 지향 고민과 두려움

나는 성적 지향 때문에 두려웠다. 고민을 한 시기도 있었지만, 고민 자체를 할 시간은 별로 없이 두려움이 훨씬 더 컸다. 내 성적 지향은 어떤 이들에게는 놀림거리이거나 혐오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다. 특히나 역겨웠고 무서웠던 놀림은 군대 가면 비누 줍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군대 가면 비누 줍지 말라는 것은 그 자체로도 강간인 혐오적 농담이기도 했지만 성소수자, 특히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에 대한 혐오가 가득한 농담이었다. 이 상황에서 내 성적 지향이 알려지면 어떤 취급을 받을지 두려웠다. 실제 군대 내 성추행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동성애자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컸는데, 실제로 그중 동성애자는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동성애자들은 군형법 92조 6항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색출 당해 성추행이나 다른 피해를 볼까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여하튼 남의 피해를 비난하거나 어떻게 이야기할 수도 없어 난 침묵해야 했다.

또 하나, 트랜스젠더, 크로스드레서[각주:1], 드랙퀸[각주:2], 게이를 구분 못 하는 선배들이 연락 안 되는 과거 (그들 기준으로) 여성스러웠던 한 선배와 내가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꾸 꺼냈었다. 그러면서 사람을 살살 게이라는 식으로 놀리거나 여장 관련 농담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고민할 틈도 없이 두렵기만 했다.

고민이 끝난 건 우연히 본 한 남성에게 끌림을 느꼈고, 거기에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을 때였다. 그전까지 여성 외에 한눈에 반해본 적 없었는데, 그게 처음이었다. 그때 내 성적 지향에 관한 고민을 완전히 끝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도 두려웠다. 내 마음을 들킬까, 들키면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두려웠다. 지향에 관한 고민은 결국 두려움만 남기고 끝났다.


6. 나는 바이섹슈얼이다.

나는 바이섹슈얼이다. 양성애자다. 나는 양성애자라는 말을 잘 안 쓴다. 솔직히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양성애자라는 말이 어색하기도 하다. 그냥 두 자로 줄여서 '바이'라고만 이야기 하고 싶다. 왜 그런지 몰라도 그러면 정말 편하다.

여성과 남성을 둘 다 좋아하지만, 나는 얼빠다. 예쁜 여자는 흔한데, 잘생기거나 예쁜 남자는 드물다. 그래서 그런가? 낭만적 감정이 생기는 비율이 여성99 대 남성 1에 가까울 정도이다. 그래서 솔직히 양성애자라고 말하면서도 부끄러울 때가 많다. 마음을 먼저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마음을 먼저 보기도 힘든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요즘은 동성애자의 인권 이야기를 먼저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나마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시화되고 그들의 인권이 먼저 챙겨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시화될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내 젠더 정체성인 안드로진은 말만 들어도 생소할 정도이다. 하지만, 바이섹슈얼, 양성애자라고 하면 그나마 알아듣기는 한다. 덜 알려져서 애초에 탄압될 일도 없긴 하지만, 얼른 가시화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다를 거 없다고. 모든 사람에게 연애 감정 갖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열어둔 건, 내 과거의 학생, 내 미래의 학생들을 생각해서 그렇다. 난 교사로서 정체성도 갖고 있다. 내가 가시화되고, 내가 열어두고 있으면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희망 내지, 의지할 곳이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양성애자다. 바이섹슈얼이다.

  1. Cross dresser, 반대 성별의 옷을 입는 사람들을 뜻한다. 남성의 경우 여성복을, 여성의 경우 남성복을 그 성의 방식 그대로 입고 꾸미는 사람들이다. [본문으로]
  2. Drag Queen 크로스드레서와 비슷하지만, 과장되게 꾸미고 쇼를 하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여성이 남성처럼 꾸미고 쇼를 하는 경우 드랙킹.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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