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건 일도 아니다. 배신이 아니다. 몰랐던 것이다. 호의 속에 감춰진 불의를 몰랐던 것이다. 우리는 불의에 상처 입지 않기 위해 호의 속에 가시를 숨기게 된다. 그렇게 점점 딜레마에 빠진 고슴도치가 되어 간다.‬

‪오늘 상처를 받으면 내일 움츠리며 가시가 더 단단해진다. 그렇게 단단해진 가시가 하나 하나 늘 수록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 더 빠르게 더 많은 가시가 단단해진다. 무감각한 밤송이가 되고 싶지 않지만,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모양새가 된다.‬

‪호의 속 악의라면 눈치채고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의를 눈치채기에는 너무나도 희망찬 사람들이다. 그 희망을 벗어던졌을 때 추위가 두렵기도 하지만, 오늘 한 발이 가져다 줄 내일의 행복을 믿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우리는 행복한 한 발을 내딛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느낀 점을 마치는 말로 써보았습니다. 우리는 가시 돋힌 사람이 되고 싶지 않지만, 가시가 늘어갑니다. 수많은 혐오와 편견이 우리를 가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한 발 앞으로 나갈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 인간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한 발 앞으로 나갈 것입니다.
혐오에 무너지지 않고, 인간으로서 살 것입니다.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리고 계속 더 페미니스트답고자 노력하기 위해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제가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먼저 잘못하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30년 남짓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억 중에 제가 잘못했거나 잘못할 뻔한 기억들이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저를 모르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앞으로 잘못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못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제가 잘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존중 없는 삶이 무섭습니다.

저는 그다지 존중받고 살아온 것 같지 않습니다. 다르면 다른대로 비난 혹은 놀림을 받았고, 변하면 변한 것 모습만 갖고 관심을 받았습니다. 저 자신의 선택으로 오롯하게 존중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저도 존중만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존중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삶을 만들고 싶습니다.


- 소수자로 살았습니다.

존중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소수자로 살았습니다. 다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도 소수였습니다. 소수였던 만큼 배제당하고 무시당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과에서 종교적 소수자였습니다. 종교적 소수자였던 만큼 당연히 종교적 다수자에 맞추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다수인 종교에 당연히 익숙해져야 하고, 그 행동을 당연히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건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제가 화장을 한다거나 머리를 기르는 일 그게 모두 비난 혹은 배제의 대상이었습니다. 나의 개성이 아니라 나의 불만 혹은 사회에 대한 불협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소수자인 만큼 약자입니다.

정규직이 다수인 교직 사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과목도 음악이라는 단위 수가 적은 과목입니다. 화장한다고 사직서 제출 소리를 들어봤고, "교사냐 강사냐 구분"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이 인권침해라고 문제를 제기했더니 관리자 입장에서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등 무시당하고 배제당했습니다.


- 그래서 페미니스트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이 엮이고 보니 제 자유를 위해 평등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등과 연대는 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합니다. 일상의 운동가로서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합니다.

- 감추어야 하는 것 1

나는 정신과에 다닌 적이 몇 번 있다. 처음은 중학교 다닐 때 성적인 별명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견딜 수가 없어서 상담받으러 다녔다. 두 번째는 대학 졸업하고 불면증이 너무 심해서 잠 좀 자고 싶어서 다녔다. 세 번째는 데이트 폭력과 과로로 누적된 스트레스가 폭발하여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잠도 못 자고 말도 안 되는 죄책감에 시달려서 그걸 해결하기 위해 다녔다. 네 번째는 직장에서 과로와 스트레스 업무로 번아웃 되어서 회복하기 위해 다녔다.

아파서 병원 다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누가 안부를 묻거나 왜 이렇게 살이 안 찌냐고 물으면 병원 다니면서 약을 먹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신과는 아파서 다녀도 숨겨야 하는 곳이어야 하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내가 정신과에 다닌다는 말에 내뱉는 말이 대체로 이랬다.

"젊은 놈이 벌써부터."

"그까짓 게 뭐라고 고생을 안 해봐서 그래."

"그런 거 이야기하는 거 아냐."

"너가 무슨 힘든 게 있다고 그런 데를 다니냐?"

"의지가 부족해서 그래."

이런 말들을 듣고 정신과에 다니는 사실을 잘 이야기하지 않거나 감추었다. 그냥 상담하고 약 받으러 가는 날이면, 오늘은 병원에 간다고만 했다. 많은 사람이 저런 말을 한다면 나에게 어떤 불이익을 줄 것 같았다.


- 감추어야 하는 것 2

나는 불만이 있으면 불만을 잘 이야기한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해서 풀려고 노력한다. 어느 날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사람들 조심해라, 다 니 편 아니다."

"나 말고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마라. 너만 더 힘들어진다."

"너에 대한 말이 많더라. 얼굴 좀 펴고 다녀라."

난 누구도 믿으면 안 됐고, 누구에게도 힘듦을 티 내서도 안 됐다.


- 감추어야 하는 것 3

(…)


- 여성혐오(misogyny)를 알게 되었다.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여성을 싫어한다거나 혐오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었다. 여성 일반에 대한 편견을 갖거나 여성을 타자화하는 태도라는 것을 여성혐오라고 했다.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알게 되면서 사회의 여성혐오를 인식할 수 있었다. 내 잘못, 다른 사람의 잘못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감추어야 한다고 강요받거나 겪었던 부당한 일들이 모두 혐오였다. 난 여성혐오라는 단어와 페미니즘을 통해 새로운 언어를 얻게 되었다. 부당함을 지적할 수 있는 언어와 연대의 언어를 모두 얻었다. 차별이나 위협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했고, 연대로 하나씩 바꾸는 것을 보면서 함께 지적하면 바꿀 수 있다는 성취감과 성공의 경험도 얻었다.


- 내가 얻은 연대의 언어 페미니즘

내가 살아가며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가 생겼다. 함께 숨 쉴 수 있는 언어가 생겼다. 위로받고, 위로할 수 있는 연대의 언어는 페미니즘이다. 내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마음에 공부한다. 내가 감추면서 스트레스받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 모든 차별을 없애기 위한 그 노력을 같이할 수 있다는 마음에 기뻐서 공부한다.

처음에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에 너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 차별을 철폐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뻐서 공부한다.

그리고 그 연대를 다른 데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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