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성이 되기를 주저한다. 나의 성적지향은 양성애(Bisexual)이고, 나의 성 정체성은 안드로진(Androgyne)이다. 그리고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남성이 되기를 주저하는 건 성 정체성과 페미니스트로서의 신념 때문만이 아니다. 내 안에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존재하고, 지정 성별 남성으로 혜택을 받았던 것들이 있다. 난 매개체로써, 도구로써 존재하고 싶지 않다. 나는 오로지 나로 존재하고 싶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단순한 유전자 전달 매개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전자 전달 매개체라고 해도 그건 생명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일 뿐, 내가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과는 관계없다. 가부장제는 자연 발생도 아닌데 인위적으로 나를 주체가 아닌 매개체로 만든다. 그래서 가부장제가 아직도 공고한 이곳에서 남성이 되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가부장제에서 남성은 지배적 성이다. 그래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렇다고 남성이 주체가 되는 건 아니다. 가부장제는 남성도 도구로 만든다. 성(姓)을 전달하는 집안의 명성과 가치를 대물림하거나 일으켜야 하는 매개체나 도구로 만든다.

나는 장남이고 장손이다. 결혼과 재생산은 나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이름으로 씌워졌다. 나에게 어떤 권리가 있냐고 물었을 때, 제사하고 대물림하는 게 권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나는 그게 어떻게 권리냐고, 그건 의무에 불과할 뿐이라고 맞섰다. 그리고 화가 나서 나는 비혼을 선언했다.

나는 내 유전자를 물려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없다. 내가 결혼을 하든, 누군가와 아이를 만들든, 입양하든 나는 내 정신적인 것을 알려줄 생각밖에 없다. 내가 성과 의무를 물려받았기에 당연히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려준다기보다 나를 알려주고 소통하고 싶을 뿐이다. 굳이 내 핏줄이 아니어도 전달할 수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유지를 잇는 의무를 지우고 싶지 않다. 다음 세대의 삶은 다음 세대가 선택하는 것인데, 그 선택을 못 하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가부장제는 다음 세대의 삶을 억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부장제에서 먼저 벗어나기 위해 남성이 되기를 주저한다.

나는 매개체가 아니라, 주체로서 살아가고 싶다. 나의 길은 전달자가 아니다. 나다.

나는 남성이 되기를 주저한다. 나는 성 정체성을 계속 고민 중이기는 하지만, 안드로진(Androgyne)이라고 정체화했다. 남성이 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비단 성 정체성 때문만은 아니다. 내 안에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존재한다. 남성이 존재함에도 남성이 되기를 주저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로서 가부장제 아래서의 일방적인 남성성이라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신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을 가르는 것 중 하나는 아름다움에 대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남성의 외모를 칭찬할 때는 '멋지다', '멋있다', 여성의 외모를 칭찬할 때는 '예쁘다', '아름답다'라고 한다. 이렇게 성별에 따라 외모를 칭찬하는 말이 다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http://stdweb2.korean.go.kr)(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편견이나 헤게모니를 보여줄 수 있으므로 인용한다.)의 정의를 살펴보자.


멋01 [먿]

「명사」

「1」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다움.

「2」고상한 품격이나 운치.


아름-답다 [---따]

「형용사」

「1」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2」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예쁘다   [예ː--]

「형용사」

「1」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 ≒이쁘다「1」.

「2」행동이나 동작이 보기에 사랑스럽거나 귀엽다. ≒이쁘다「2」.

「3」아이가 말을 잘 듣거나 행동이 발라서 흐뭇하다. ≒이쁘다「3」.


미14(美) [미ː]

「명사」

「1」눈 따위의 감각 기관을 통하여 인간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

「2」((일부 명사 앞 또는 뒤에 붙어))‘아름다움’의 뜻을 나타내는 말.

「3」『교육』성적이나 등급을 ‘수, 우, 미, 양, 가’의 다섯 단계로 나눌 때 셋째 단계.

「4」『철학』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없이, 내적 쾌감을 주는 감성적인 대상.


아름답다거나 예쁘다는 것에는 보이는 대상, 생김새에 대한 시각적 만족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멋에는 차림새나 행동 따위로 그 사람의 생김새에 대한 것이 들어가 있지 않다. 남성의 생김새는 두고 따로 '잘생겼다'고 하기도 하지만, 타고난 외모에 대한 이야기이지, 꾸민다는 개념 같은 것이 들어가 있지 않다. 보통 여성에게 곱다, 아름다워진다, 예뻐진다는 말을 사용하지만, 남성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그루밍족이 있긴 하지만 잘생겨진다는 말을 쓴다.). 오히려 곱다는 말 같은 경우는 남성성을 부정하는 성희롱이 될 가능성도 강하다.

보통 남성은 명사에서 기본값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지우고 남성을 기본값으로 내세운다. 그 예가 소년(少年)과 소녀(少女)이다. 소년은 어린 시절이라고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남자 어린이를 부를 때 소년이라고 하며, 애써 여자 어린이에게만 소녀라는 명칭을 따로 사용한다. 유년기(幼年期), 소년기(少年期), 청년기(靑年期), 장년기(壯年期), 노년기(老年期) 등 이렇게 나이에 따른 시기를 부르는 말은 비슷하다. 연령을 기준으로 하므로 -년기를 쓴다. 청년은 기본적으로 성년기의 사람을 부르는 말이지만, 성년 남성에 한정해 이야기하고, 성년 여성에게는 혼인 여부에 따라 처녀, 처자, 아가씨 등과 아주머니 이렇게 다른 명칭이 있다. 숙녀처럼 구분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명칭이 많다는 것은 그렇게 구분하는 언어가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제 아래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정되지만, 타자를 가리키는 말은 상황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본값이 여성인 단어가 있다. 바로 미인이다.


미인01(美人) [미ː-]

「명사」

「1」아름다운 사람. 주로 얼굴이나 몸매 따위가 아름다운 여자를 이른다. ≒가인01(佳人)

「2」재덕(才德)이 뛰어난 사람.

「3」『역사』중국 한(漢)나라 때에 둔, 궁녀의 관직.

「비」「1」미녀


물론 비슷한 말로 미녀(美女)가 존재하지만, 현재 남성에게만은 따로 미남(美男)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아름다운 여자, 아름다운 여성이라고는 하지만, 풀어서 아름다운 남성, 아름다운 남자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이 정도로 대상화된 아름다움은 여성에게만 붙인다. 애초에 타자화했기 때문에 기본값이 여성이 된 것이다. 남성에게 미인을 붙인 경우가 없지는 않다.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이 그렇다. 사미인곡에서 미인은 임금이며, 임금은 성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人앞에 美를 붙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현대의 유명한 가요 중 신중현의 '미인' 가사를 살펴보자.


한번보도 두번보고 자꾸만 보고싶네

아름다운 그 모습을 자꾸만 보고싶네

그 누구나 한번보면 자꾸만 보고있네

그 누구의 애인인가 정말로 궁금하네

모두 사랑하네 나도 사랑하네

모두 사랑하네 나도 사랑하네


가사 전체가 미인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고 있다. 미인은 주체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여성이 갖추어야 할 아름다움의 대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뷰티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뷰티는 여성의 미용, 화장을 가리키는 말이고, 그루밍이라는 것은 남성의 미용, 화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미 아름다움 자체를 구분하며 여성을 대상화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남성도 미용을 하지만, 뷰티에 있어 대상은 여성이다. 남성은 따로 용어를 만든다. 남성에게 뷰티라는 말을 붙이지 않으려 한다.

난 남성이 되기를 주저한다. 그래서 내 화장은 뷰티라고 할 것이다. 내 화장품도 뷰티 코너에서 사지, 멘스 그루밍 코너에서 사지 않으니까. 어차피 안드로진에게는 별 차이 없지만, 지정성별 남성으로서 행동은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매일 #오늘의미모 라는 태그로 화장한 후의 모습을 셀카로 찍어 올린다. 상의로 블라우스를 입기도 하고, 셔츠나 후드티를 입기도 한다. 가끔은 다른 사진도 올린다. 전신을 찍을 수 있는 거울이 있으면 전신을 찍어 올린다. 스타킹 신고 반바지 입은 모습을 올렸을 때 이런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예전의 멋있는 모습은 어디 갔나요?"

내 답은 '난 언제나 멋있는데?'였다. 난 내가 꾸미는 행위를 즐기고, 내 삶을 당당하게 살아간다. 얼마나 멋진가? 난 부끄럽게 살지 않는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오늘의미모 셀카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너 왜 계속 그러고 다니냐?, 왜 계속 여장하고 다니냐고 한두 번은 장난인 줄 알았다."

좀 당황스러웠다. 나는 여장한 적이 없다. '이게 뭐가 여장이에요?'라고 답하긴 했지만, 전에 겪었던 나보고 미쳤다고 한 녀석이 생각나 글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여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여장02(女裝) 「명사」 남자가 여자처럼 차림. 또는 그런 차림새.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반대말 남장01(男裝) 「명사」 여자가 남자처럼 차림. 또는 그런 차림새.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중 중 소수자의 의사를 별로 존중하지 않고 소수자 억압에 관한 의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립국어원의 정의가 낱말의 '뜻'이라고 불리는 게 제일 싫다. 언어의 정의는 헤게모니 싸움인데, 그 헤게모니 싸움을 피하는 척 강자의 처지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빌려온 것은 내가 인식할 수 있는 한계 때문이다. 내가 소수자이기 때문에 비소수자의 이야기를 할 때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빌려와야만 한다. 그래야 소수자 입장에서 그 인식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하면 난 저 정의에 따른다고 해도 여장한 적이 없다. 물론 나는 화장하고 다닌다. 블라우스도 입고, 스타킹을 신고 반바지나 치마를 입기도 한다. 화장은 화장대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할 뿐이고 딱히 여성용이라고 표시되어 판매되는 상품도 아니다. 스타킹도 뭐 여성용이라고 나오지도 않는다. 반바지도 마찬가지. 치마나 블라우스는 여성복 분류로 판매되긴 하지만 내 몸에 맞아서 입을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여장이라 부르기도 황당한 게 나는 여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 나는 여자처럼 차린다는 것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내가 입고 싶다고 생각한 대로 입는다. 여자처럼 차린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처음 입을 때 용기를 내어 입긴 했지만, 타인의 무지한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처음 화장할 때에도 용기를 내긴 했지만, 그건 내 화장의 수준 때문이지 화장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여자처럼'이라는 내 인식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여장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나는 내 젠더를 고민하는 사람 젠더 퀘스처너(Gender Questioner)[각주:1]이다. 젠더퀴어[각주:2] 혹은 논바이너리(Non-Binary)[각주:3] 쪽으로 고민하고 있다. 안드로진[각주:4] 내지 뉴트로이스[각주:5] 혹은 데미메일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100% 남자가 맞는지부터 의문을 품고 있으므로 여장의 전제인 남자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젠더 고민 끝에 나는 100% 남자라고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첫째에서 말한 여자처럼 차림새를 가꾸는 것 자체에 의문을 가진 이상 여장이 되기 힘들다.

셋째, 반대로 남장을 끌고 와보자. 여자가 남자처럼 차려입는 것은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서 남성만이 입는 옷이 뭐가 있을까? 없다. 또 여자는 반드시 화장해야 하나? 아니다. 화장하지 않는 여자도 있다. 여장의 반의어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금 무슨 사회적 의미가 있는 단어인가? 단어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도 남자가 바지를 입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바지를 입고 화장을 하지 않는 여자가 많다고 그에 빗대어 여장했다고 할 것인가?

난 내 생물학적 성별이 XY 염색체의 남성이라 추정[각주:6]하고 있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0세기에 태어난 남성을 가리키는 1로 지정 성별은 남성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성역할을 강제로 부여받아 산다. 난 그 성역할을 강제하는 게 싫다. 내가 어떻게 생겼든 어떻게 살든 나는 성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존중받고 싶다. 젠더라는 프레임으로 나를 보게 하고 싶지 않다.

  1. 자기 자신의 젠더에 의문을 품는 사람 [본문으로]
  2. 성정체성 소수자. [본문으로]
  3. 성정체성 소수자로 젠더 이분법(여성과 남성으로만 구분)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 [본문으로]
  4. 남성을 뜻하는 Andro와 여성을 뜻하는 Gyne의 합성으로 양쪽의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다. 바이젠더가 왔다갔다 하는 것이라면 안드로진은 모두 섞여 있는 상태를 뜻한다. [본문으로]
  5. Neutrois,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에 가깝다. 중성 정도? [본문으로]
  6. 검사한 적 없으니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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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유니클로 <'감탄' 팬츠> 광고 시리즈는 재미를 추구한다. 남자들의 바지가 불편하다면서 이 바지를 입으면 '감탄'할 만큼 편하다고 광고한다. 광고를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많다. 단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편안하다는 치마, 이 이야기가 조금 불편하다. 왜냐하면, 치마 입는 과정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커피를 들고 스커트를 입은 채 걸어간다. 여자들의 스커트를

남성이 여성들을 바라보는 듯한 모숩이다. 그들의 편안함을

여자들이 커피를 들고  걸어간다. 언제까지 부러워만 할 것인가


"여자들의 스커트를, 그들의 편안함을, 언제까지 부러워만 할 것인가."는 불편한 말이다.


먼저 치마를 입을 때 신경 쓸 것이 많다. 속옷이 보이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짧은 치마의 경우 H라인으로 팽팽하면 움직임도 불편하고 앉았을 때 틈으로 속옷이 보일까 봐, 허리를 숙일 때 뒤로 엉덩이와 속옷이 보일까 봐 신경 쓰인다. A라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짧으면 신경 쓰인다. 펜슬 스커트 같은 경우에는 밑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좁아지므로 다리의 움직임이 제한된다. 무릎까지 오는 치마도 H라인의 경우 다리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많이 불편해진다. 물론 이런 치마들이 바지에 비하면 통풍은 잘 된다는 장점이 있다.

긴 치마의 경우는 나풀거리면 나풀거리는 대로 다리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팽팽하면 팽팽한 대로 다리의 움직임을 많이 방해한다. 상대적으로 함기량이 많으므로 보온이 잘 되긴 하지만, 바지에 비하면 치마는 기본적으로 활동이 불편하다.

활동이 불편한 것만이 아니다. 과정이 추가된다. 치마를 입는 과정은 치마의 종류나 계절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스타킹을 신고 치마를 입는다. 스타킹은 통풍이 안 된다. 더군다나 치마를 입으며 스타킹을 신을 때 무릎보다 조금 위로 올라오는 스타킹보다 엉덩이까지 감싸는 팬티스타킹을 많이 신기 때문에 전체적인 압박감도 압박감이지만 통풍 안 되는 부분이 넓다. 특히 다른 데는 몰라도 발에 통풍이 안 되기 때문에 답답하다.

스타킹을 안 신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치마를 입을 때 스타킹을 안 신을 수 있는 계절이 얼마나 있을까? 거의 없다. 치마를 입으려면 스타킹은 거의 필수이다. 보온에도 필요하고 맨살끼리 부딪치며 마찰하는 것도 예방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라면 치마를 입을 때 검은 스타킹을 강제로 신어야 하는 시기도 있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물론 스타킹을 신으면 압박되어 각선미 보정 효과 등이 있다. 하지만 털이 있으면, 털이 보이면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제모한다. 여성에게 제모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제모를 많이 한다. 여성에게 다리털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털이 가늘거나 별로 없는 여성들 정도나 여성들에게 털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한 후배는 동생 자취하는 집에 놀러 갔다가 면도기를 발견했다. 면도기를 보고 흥분해서 남자랑 동거하나 싶어 동생을 불러 야단을 치려고 면도기에 관하여 캐물었다. 동생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본인 제모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둘 다 여성이다. 언니는 털이 거의 나지 않아 미용을 위한 제모가 필요 없었고 동생은 본인의 미용을 위한 제모가 필요했다.

여하튼 그런 편견과 사회적 강요 때문인지 몰라도 올리브영이나 왓슨스 같은 데 가면 제모 관련 용품들이 전시된 코너가 있다. 제모 크림, 제모 왁스, 제모 왁스 스트립, 여성용 면도기 등 다양한 용품들이 있다. 이런 게 왜 있을까? 제모 왁스 스트립을 보면 팔 및 다리용, 비키니 및 겨드랑이용, 얼굴용 등 여러 부분이 있다. 팔, 다리, 비키니 라인, 겨드랑이, 얼굴 등 미용을 위한 제모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다. 

제모 크림은 크림을 바르고 10분 남짓 있으면 털이 불어난다. 파마약 같은 냄새도 나고 예민할 경우 피부가 따가울 수도 있다. 민감한 부분이나 상처에 바를 경우 한동안 쓰릴 수도 있다. 털이 불어나면 스패츌러로 밀어서 털을 뜯어낸다.

제모 크림


제모 왁스의 경우는 전자레인지로 녹이거나 물로 중탕해 녹여서 스패츌러로 바른 다음 스트립을 붙인 다음 한 번에 당겨서 수많은 털을 뽑아낸다. 제모 왁스 스트립의 경우 이게 스트립에 발라져 있어 손으로 비벼 뗀 다음 제모할 부분에 붙이고 한 번에 당겨 털을 뽑아낸다. 피부에 남은 왁스는 오일 시트나 오일로 닦아내거나 미온수로 녹여 씻어낸다. 좀 고통스러운 방식이지만, 털을 족집게로 일일이 뽑아내는 것보다 고통이 덜하게 느껴진다.

제모 왁스

제모 왁스 스트립

면도기의 경우 면도크림을 바르거나 해서 남자들처럼 면도한다. 면도해서 털이 겉에 드러나지 않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여성용 제모 면도기

살펴보면 털이 적으면 스타킹 착용 후 치마 입기 2단계이다. 털이 많으면 제모 후 스타킹 착용 후 치마 입기 3단계이다. 이래도 치마가 편해 보이는가?

분명 넷플릭스 광고 유세윤, 에뛰드 광고 전현무보다야 타깃 설정이 잘 된 광고이긴 하다. 하지만, 치마를 입지도 않는 이들에게 치마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 타깃 설정이 올바르다고 해도 성편견을 조장하는 광고는 바르지 않다.

학교에서는 교과서가 있는 교과만 갖고 수업하지 않는다. 교과 외에도 여러 가지 분야에 관하여 자율 시간 등을 통해 교육한다. 자율 시간을 통해 성폭력 예방, 폭력 예방, 다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교육한다. 이런 교육은 특별하게 자율 시간만 갖고 수업하지 않는다. 일반 교과 시간에 녹여내어 수업하기도 한다.

나는 그 중 성교육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보건 선생님께 찾아가서 가끔 그런 내용을 갖고 이야기를 해본다. 대화 중에 보건 선생님이 성교육을 보건에서 가져온 것을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업무만 늘어난 것뿐이면 괜찮은데, 성교육은 보건에서 전담으로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었다. '섹슈얼리티나 생물학적, 성병 예방을 넘어서 젠더 교육까지 함께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보건만이 맡기에는 역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성교육은 '모든 교과에서 다 함께해야 한다.'고 덧붙이셨다.

성교육에서 젠더가 빠진 상태는 아니다. 성교육 관련하여 보고할 때 몇몇 교과를 지정하여 그 교과에서 성교육했는지 보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그 교과가 기술가정, 도덕, 사회, 과학, 체육이다. 그 외의 교과는 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인지 보고받지 않는다.

성교육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국가는 성교육 표준안을 만들어내어 일선 학교에 배포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비웃음을 받을 만큼 질이 낮은 편이다. 실제 성교육을 그 표준안대로 집행하는 것이 문제없다고 하더라도 성교육은 은연중에 굉장히 다양한 곳에서 일어난다. 학교폭력예방 교육에서도, 일선 교과에서도,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금융교육에서도 나타난다.

남학생반 금융교육을 하는 데 우연히 들어간 적이 있다. 가서 사진이나 좀 찍어 줄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기회비용과 한정된 자원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강사분이 쉽게 설명하려고 했는지 예시를 하나 들었다.

"여자친구 있는 분 있어요?"

별 대답이 없다. 예상했는지 바로 이어 이야기를 했다.

"예쁜 여자는 한정되어 있죠?"

너무 당황스러웠다. 예쁜 여성이라는 말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여 자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시스젠더, 이성애 중심으로 학생들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고정하면서 인간을 대상화했다. 영웅호색이나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는 남성 중심의 폭력적 언사와 다를 바 없는 말이 교육 중에 나온 것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문제를 제기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인식을 고쳤다고 해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이 외부에서 올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의 젠더 인식이 괜찮다면 괜찮을까? 아니다. 학교 자체, 그 안에서도 성적 대상화는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성교육, 성폭력 예방교육에서도, 교칙 위반을 단속한다는 용의복장 단속에서도 계속 성적 대상화한다.


- 2년 전 모 학교에서 한 성폭력 예방교육

"지금부터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겠습니다. 여학생들! 짧게 입지 말고, 옷 제대로 입어라. 밤에 돌아다니지마. 남학생들! 니들이 참아! 니들만 참으면 돼."

방법도 황당하지만, 내용도 황당한 성폭력 예방교육이다. 요즘 이렇게 하는 학교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학생의 복장에 따라 성폭력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가해자 중심 사고방식은 성폭력 예방에 도움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자존감을 낮추고 후에 피해를 입었을 때 자책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그리고 이건 교육이 아니다. 복장을 핑계 삼아 일방적인 언어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성적 대상화 하도록 부추기는 것에 불과하다. 더불어 참으면 된다는 말로 성욕을 성폭력의 원인 삼아 성폭력이 어떤 관계에서 일어나는지 생각 못 하게 만든다. 차별적 말로 성 편견을 부추기는 것이다.


- 작년에 모 학교에서 한 성폭력예방교육

자율시간을 통해 성폭력예방교육 영상을 상영했다. 보면서 좀 당황스러웠다. 젠더 감수성을 키우기보다 이전에 봤던 성교육보다 조금 나아진 정도였다. 시작 부분에서 남성은 사정과 쾌락을 이야기하지만, 여성은 월경과 임신을 이야기하며 차이를 비교한다. 월경은 고통, 사정은 쾌락이라는 방식으로 여성의 쾌락을 배제한다. 남성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하지만, 여성에게는 월경으로 겪는 통증만 언급하고 성적 쾌락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성의 성적 쾌락을 감춘다.

성욕은 개인차라고 하며, 사정을 통해 남성은 성욕이 발달하지만, 여성은 초경과 비교하며 성욕의 발달이 상대적으로 늦는다고 비교한다. 자연스럽게 마찰을 통해 알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가정을 하지도 않는다. 여성은 초경 시기보다 성 경험이 늦기 때문에 성욕의 발달이 늦어진다는 정도로 넘어간다.

긍정적이게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언급하기는 한다. '사회적 관행이나 타인의 압력에 구속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나 판단에 의해 자율성 있고 책임성 있게 자신의 성적인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고 언급한다. 언급하며 '아니야'는 내숭이 아닌 의사 표현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성적인 부분에 관하여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는데 여성은 임신의 책임 따위로 성적 쾌락은 배제당한다. 더불어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공개적 연애라는 말로 반쯤 부정한다.

성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언급하지만, 성폭력을 보고 가만히 있지 말라는 말이나 성폭력에 반대하는 연대 행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더불어 성폭력의 원인도 언급하지 않으며 여성이 성폭력의 대상이라고 성적 대상화만 한다. 남성 간의 성폭력에 관한 언급은 하지도 않는다.

보는 내내 황당해서 보건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올 줄 알았다고 하셨다. 할 수 있는 게 한 시간밖에 없는데, 한 시간에 하기에 이것보다 나은 내용을 가진 것도 잘 없다고 하셨다. 원래는 각 교과에서 다양하게 접하며 해야 하는 것이 성교육인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서 안타깝다고 하셨다.

그나마 나은 성폭력예방교육 영상도 성적 대상화 자체를 피하지 못한다.


복장 단속이나 화장 단속은 성적 대상화 그 자체이다. '학교는 보수적이다. 학생답지 못하다.'는 핑계가 대부분이지만, 그 자체가 성적 대상화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개인의 권리, 존엄을 생각하지 않고 여학생이기에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그 자체가 성적 대상화이다.

청순한 아름다움, 화장기 없는 아름다움, 청초함 이런 것도 성적 매력 중 하나이다. 사람을 그 자체로 존중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성적 대상화이다.

학교에서 자주 보는 것 중 하나가 화장 단속이다. 심지어 불시 화장품 단속으로 화장품을 빼앗겼다며 엉엉엉 울며불며 대성통곡을 하는 학생도 본 적 있다. 화장을 못 하게 하는 규정이 있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화장품을 빼앗는 것은 더 이해하기 힘들다. 수업 중에 꺼내서 수업 방해한 물건만 잠시 맡아 두는 것도 아니고 검사해서 화장품을 빼앗는 것은 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도 선도부를 시켜서 하는 것은 더욱더!

나도 화장 단속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해봤다. 수업 중에 단속해서 화장솜 주고 거기에 리무버 잘 흔들어서 뿌려준 다음 스스로 닦게 했다. 그런데 그것도 지쳤다. 동의하지 않는 일을 단지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하는 것도 싫었다. 나중에는 그것도 지쳐서 살살 모른 척했다. '내가 아니라도 누가 하겠지. 아무도 안 하면 더 좋겠지.' 대충 이런 생각으로 모른 척했다.

언제인지 기억 잘 안 나지만 화장 단속하면서 여러 학생을 교무실에 불러다 무릎 꿇게 하고서는 반성을 요구하는 것도 본 적 있다. 심지어 학생의 보호자에게 전화해서 학교에까지 부르기까지 했다. 보호자를 불러 학생이 엄청나게 큰 잘못을 저지른 양 화장을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엄청나게 황당했었다. 대체로 보호자를 부르는 것은 지속적인 폭력 행위, 금품 갈취 등 타인에게 피해를 준 사건이다. 피해도 안 주는 화장, 겨우 화장으로 부르다니!


한 번은 화장을 왜 단속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애들 피부에도 안 좋잖아. 나중에 크면 화장하면서 피부 더 상할 텐데."

좀 당황스러운 답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학생의 본분 운운하지 않고, 성적 대상화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장 좋은 대답이었을 것이다. 나는 거기에 대고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면 잘 지울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그 뒤의 대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입장에 부정적이었다는 정도만 생각난다. 술 마시던 자리에서 물어본 것이라 잘 기억 안 난다.


학교라면 통제보다는 교육이 바르다고 생각한다. 왜 화장을 문제 삼는지 설득해야 하고, 성교육을 통해 성적 대상화부터 성적 자기결정권까지 스스로 생각하고 주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화장은 도덕의 문제도 규범의 문제도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덕의 문제, 규범의 문제로 만들면 여성 노동자에 대한 화장 요구, 외모 요구가 당연해진다.

학교에서 화장을 단속하게 되면 한 성만 대상으로 한다. 당연히 남학생은 안 할 것으로 생각해서 제외한다. 그러니깐 여학생만을 대상으로 화장을 단속하게 된다. 화장품을 빼앗거나 화장을 강제로 지우게 하는 것 오로지 여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반면 일반적으로 남학생만을 대상으로 머리 길이를 단속하게 된다. 이는 성역할이나 성에 따른 외모 고정관념을 만들 우려가 있다.

화장을 단속하는 모습을 보는 남학생은 남학생대로 은연중에 화장은 여성의 욕망으로만 학습하게 될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여자가 화장하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성역할에 관한 생각이 고정될 것이다. '무슨 여자가 화장도 안 해?', '무슨 여자가 꾸밀 생각도 안 해?' 이렇게.

여학생은 여학생대로 성적 대상화에 저항하는 데 무력하게 될 것이다. 화장을 통해 외모를 꾸미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니까 자기결정권, 즉 권리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중고등학생 때는 화장해서는 안 돼. 어차피 사회 나가면 꾸미게 되어 있어'라는 말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내면화하게 만든다. 선택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으로 만들어 개인의 꾸밈을 선택이 아닌 사회의 요구로 만들어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게 한다. 이것이 여성의 성적 대상화이다.

최근 CJ 등을 비롯한 서비스 관련 기업에서 여성 노동자에게 강요했던 외모를 생각해보면 학교와 별 차이가 없다. 남성의 외모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여성의 외모만 관여한다.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 화장, 긴 머리는 단정하게 묶기, 화장하기 등등. 화장을 못 하게 하는 것에서 당연히 화장하는 것으로 바뀌었지 화장을 강요하는 태도는 똑같다.

학교에서 학생들 외모 꾸미는 것을 단속하는 것에 관하여 솔직해지자. 그리고 생각해보자. 그건 성적 대상화가 아닌지 다시 한번 고민해보자.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인지 아닌지 고민해보자. 

근무하던 학교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다. 이번 임용시험에서 떨어져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근무지를 알아봐야 했다. 공부만 하기에는 내 개인의 경제적 사정도 문제고, 마음 붙여 일할 데가 없으면 마음이 힘들다는 것도 문제라서 그렇다. 몇 군데 면접을 치렀는데 모두 떨어졌다. 망할, 어쩌면 올해는 직장 없는 교사로 살게 될지 모른다.

직장이 없어 소득도 소속도 없을 것으로 생각하니 별로 마음이 좋지 않다. 결과라도 좋았으면 마음이 덜 힘들었을 텐데, 과정도 별로 좋지 않았다. 면접을 돌이켜 봤을 때 굉장히 불쾌한 질문이 있었다. 그 질문에 한 번은 소신에 따라 바로 반발했고, 한 번은 굽히고 성실하게 소신에 따라 답했다. 둘 다 반발했어야 했다. 내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었는지, 가중치를 다르게 둔 것이었는지 하나만 반발했다.

그 질문은 성차별적, 반 인권적인 질문이었다. 그것도 내 외모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 중 하나는 화장에 관한 질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머리 길이에 관한 질문이었다. 각기 다른 성의 학생들의 학생들과 비교해서 질문했다. 질문 자체에 학교의 이중성, 성차별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 2월 21일 면접

이날 면접에서 들은 질문은 이렇다.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인데 화장을 좀 하셨네요. 그것 관련해서 질문 좀 드리겠습니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 화장 엄격하게 단속하는데 학생들이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은 화장하는데 우리는 왜 안 돼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난 화장을 한다. 꾸미는 것이 좋다. 화장이 재미있다. 단지 재미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성편견을 깨기 위한 내 나름의 운동으로써 하는 행동이다. 여성이 꾸미는 것은 당연하고 남성이 꾸미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에 저항하고 사람들이 차차 익숙해지게 만들어 세상을 바꾸기 위한 행동이다. 언젠가는 화장이 개인의 선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는 것이다.

저 물음은 내 운동의 목적이나 목표를 모른 채 한 질문이다. 물론 내 운동의 존재 여부조차 모를 것이다. 심지어 저 날은 바빠서 색조 화장도 못 한 날이었다. 파운데이션에 눈썹 정도만 그린 날이었다. 그래서 화장을 제대로 했다는 생각도 못 했는데, 화장했다는 것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니 당황스러웠다.

황당하기도 했다. 질문한 면접관 본인도 화장한 상태였다. 학생들은 여교사의 화장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고, 남교사의 화장만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인가? 성차별적 질문이었다. 그래서 바로 반발했다.

"그런 성차별적 인식을 갖고 이야기하시다니요. 그러면 여자 선생님들 먼저 화장을 못 하게 하고 이야기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에 그 면접관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무엇인가를 적었다.

"학생과 교사는 다르다고 한다."

내가 한 말이 아닌 말을 중얼거리며 적었다. 너무 황당했다.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계속 곱씹어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성차별이었다. 거기다 학생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가 동시에 들어가 있었다.

성차별적인 태도는 이렇다. '남성의 화장은 당연하지 않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남교사에게 자신들의 화장을 단속하는 것과 비교하며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그러니 그것에 관한 것을 물어보아야 하겠다.'며 특정 성의 화장만 문제 제기하는 것은 한 성은 당연히 화장해야 하는 존재, 한 성은 절대 화장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낙인 찍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는 이렇다. '학생들의 용의복장을 통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학생 통제를 당연하게 여긴다. 동시에 학생의 반발을 걱정한다. 통제하지 않으면 통제에 대한 반발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통제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을 모순이다.


- 2월 24일 면접

이날 면접에서 들은 질문은 이렇다.

"지금 머리를 묶으셨는데, 우리 학교는 남학교이다 보니 두발 규정이 엄격합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머리를 보고 '선생님은 머리 기르는데 우리는 왜 머리 기르면 안 돼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난 머리를 기른다. 큰 의미는 없다. 심한 곱슬머리이라 짧은 것보다 긴 것이 머리 정리하기 편하다. 추울 때 머리 풀면 따뜻하고 더울 때 머리 묶으면 시원하니 좋다. 내 머리의 곱슬거림은 예쁘다. 컬이 예뻐서 어디서 파마한 것으로 보일 정도이다. 머리를 짧게 정리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 그냥 그럴 생각이 들면 그때 자를 생각이다. 길이가 어느 정도 이상 되면 머리카락 기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저 물음은 생각도 못 해 봤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올해 마지막 면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반발을 못 했다. 소신에 따라 성실하게 답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기르다가 이왕 기른 김에 몇 달 정도 더 기르고 머리카락 기부를 해볼 생각으로 더 기르고 있다. 왜 기르면 안 되냐는 물음에는 답을 못하겠다. 교칙으로 규제하고 있는데, 나는 그 교칙으로 규제하는 대상에 해당하지 않거든.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바꿔보는 것은 어떻겠니? 규정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꿔보겠다면 응원할게.’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 성차별적 인식을 갖고 질문을 해도 되는 겁니까? 여교사에게는 하지 않을 질문을 왜 머리가 긴 남교사에게 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머리 길이는 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까?”

질문 자체가 성차별이다. 이 질문에는 앞의 면접과 같이 학생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가 동시에 들어가 있다.


애초에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이해하기 너무 힘들다. 이제까지 겪은 교직 생활을 돌이켜 보면 이 교직 사회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건 성차별이고 폭력이다. 겪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겪은 다른 성희롱, 성차별들이 생각난다.

음악사를 공부하다 보면 20세기까지 유명한 음악가들은 거의 남성이다. 특히 음악 교과서의 음악가는 클라라 슈만 정도가 로베르트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와 함께 로맨스 정도로 언급되는 정도에 불과하다. 굳이 교과서가 아니라도 클라라 슈만은 남편 로베르트 슈만과 평생 자신만을 짝사랑한 브람스와의 관계 정도만 이야기될 뿐이다. 왜 여성은 음악사에서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일까?


- "여성"음악가에 대한 말

계몽시대 자연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Jaques Rousseau)는 “여성들은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무엇이든지 깨닫고 배우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각주:1]고 했으며,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역시 부정적으로 보고 “여성 전체 중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을 지닌 여자일지라도 예술 분야에서 참으로 위대하고 순수하고 독창적인 업적은 단 한 가지도 이룩하지 못하였다.”[각주:2]라고 했다.

이 두 유명 철학자의 말대로 여성은 타고나지 못한 것일까? 20세기의 심리학자인 칼 시쇼어(Carl E. Seashore)는 『왜 위대한 여성 작곡가는 없는가(Why No Great Women Composers?)』라는 에세이를 통해 ‘위대한 작곡가의 조건으로 음악적 기질, 타고난 재능 등의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는 창의성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창조적 능력은 유전보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각주:3]

지금 음악가들의 성비뿐 아니라 대학 음악과(음악교육과 등 관련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학과를 포함한)의 성비를 생각해 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험에 의하면 남학생들이 존재한다는 생각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시쇼어가 언급한 위대한 여성 작곡가 존재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음악전공자의 수 먼저 살펴보면,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는 여성의 수가 많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여성 작곡가라고 알려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환경의 영향이라면 후천적이라는 이야기인데, 어떤 후천적 영향이 있던 것일까? 능력과 관련한 후천적 영향은 학습과 교육 정도로 볼 수 있을 텐데, 19세기, 아니 가깝게 20세기만 살펴보아도 대졸자 비율은 남성이 훨씬 높다지만, 현재는 여성의 비율이 더 높고, 음악과는 압도적일 정도다.

이제부터 위대한 여성 음악가의 비율이 늘까? 글쎄 난 부정적이다. 능력 때문이 아니다. 아직 사회적 환경은 그렇게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아직 가부장제는 공고하다.


- 가부장제와 "여성"음악가

서양음악사에서 “여성”음악가의 존재가 드러나기 힘들었던 것은 가부장제의 탓이 크다. 가부장제는 집안의 남성 연장자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는 가족제도이다. 가부장제 아래 가족에서 가장 큰 권력자는 가장이라는 이름의 아버지와 장남이다. 가부장제에서는 이들이 가정 안에서 존중받는 모습을 외부에 보이는 것과 외부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가부장제는 대가족이 아닌 핵가족과 유사한 형태에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장남 유고 시 차남 혹은 그 아래 남성의 존재는 가부장제에서 중요한 존재였다. 집안의 명예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집안의 명예에서 남성보다 뛰어나거나 잘난 여성의 존재는 가부장제에 해가 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가부장제 유지를 위해 여성이 성인, 혹은 결혼 가능한 시기가 가까워지면 그들의 재능을 숨기고 “여성”으로서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 유명한 모차르트, 그러니까 18세기 말에 활동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어릴 때 누나인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애칭 나네를)와 함께 남매 신동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성인이 되자 볼프강만 데리고 다닌다. 당시에 여성의 역할이라고 했던 아내로 사는 삶을 위해 신부수업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는 여성이 음악 활동을 하는 것도 환영하지 않았다.

변화의 과도기였던 18세기였기 때문일까? 시간이 흘러 자유로운 인간의 사고를 찬양하던 19세기도 여성의 음악 활동이 제한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들었던 클라라 슈만은 작곡이나 피아니스트로서의 업적이 아니라 극적인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졌다. 남편 로베르트 슈만과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소송전을 통한 결혼, 먼저 죽은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평생 헌신한 삶, 천재 음악가 브람스가 평생 짝사랑했던 이야기. 클라라 슈만은 음악사에서 주체가 아닌 객체로만 남아 있다. 그것도 그나마 그 천재 음악가들 사이의 로맨스가 유명해서 이름이 많이 남은 것이다.

파니 헨젤은 한여름 밤의 꿈 중 결혼행진곡, 무언가, 바흐의 재발굴로 유명한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나이다. 그의 작품은 펠릭스 멘델스존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본인의 이름으로 출판하는 것은 가족의 굉장한 반대가 있었다.[각주:4]

“시작부터 네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단다....나는 출판을 시작했어. 내가 출판하는 것으로 인해 네가 불명예를 당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창작을 위한 자극을 항상 필요로 해왔어.”[각주:5]

위와 같은  편지가 남아 있을 정도였다.

파니 멘델스존의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도 이야기하였다.

“음악은 펠릭스에게는 직업이 될 수 있겠지만, 너에게는 결국 장식에 불과할 뿐이며 너의 존재나 활동의 기반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펠릭스에게는 명예와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야망이 무척 중요한 일이란다. 왜냐하면 그는 음악을 천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너에게는 정숙하게 행동하는 것이 곧 명예로운 일이란다. 가령, 동생에게 쏟아지는 갈채를 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함으로써, 타인으로 하여금 너 또한 존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리라. 여자스러운 것만이 여성의 자랑이 될 수 있으니까.”[각주:6]

그런데 가부장제는 여성에게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일까? 


-성차별의 비극 "카스트라토"

교회에 고음 성악가가 필요했지만, 여성에게 노래를 금지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남성이 가성과 기교를 통해 소리를 내는 카운터테너를 사용하였다. 카운터테너는 가성(falsetto)을 사용한다고 하여 팔세티스트(Falsettist)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이 팔세티스트는 별로 선호되지 않았다. 하지만, 보이소프라노로는 한계가 있는 데다 오페라의 등장과 로마 주변의 여성 성악가 제한으로 팔세티스트가 필요했다.

17~18세기 들어 여성 성악가들을 고용하지 못하는 로마와 그 영향을 받는 지역에도 고음 성악가들의 수요가 많아졌다. 하지만 고음 성악가의 양성이 어려웠다. 소년 단원의 주기적 교체, 팔세티스트의 갈라지는 것 같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평생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는 카스트라토가 주목받았다. 당시 팔세티스트의 목소리는 인공적인 소리로 간주하였지만, 카스트라토의 소리는 ‘자연스러움’, ‘진실함’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카스트라토를 더 선호했다.

카스트라토는 남성 호르몬을 생산하는 고환을 변성기 전에 제거한 거세 성악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카스트라토에 대한 선호 때문에 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해마다 4000여 명의 소년이 거세될 정도였다. 1903년 공식적으로 금지하기 전까지 수많은 소년이 남성성을 제거당했다.[각주:7] 심지어 성공한 카스트라토는 1% 내외에 불과했고, 나머지 카스트라토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카스트라토의 삶을 일부 엿볼 수 있는 영화 『파리넬리』를 보면 파리넬리는 형이 작곡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발판으로 쓰이기 위해 거세당한다. 가부장제와 성차별의 화살이 어린 남성 아동을 향한 것이다.


차별과 배제는 당하는 이가 정당하게 학습한 내용과 재능을 묻어버리는 일뿐 아니라, 다른 형태로 차별과 배제의 주체인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공정함을 원하면 “역차별”이라는 말-이 되는지 알 수 없는 말-을 쓰기보다 내 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권리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 아닐까? 다른 쪽에서 받은 차별을 더 만만한 곳에 쏟아내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각주:8]

  1.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3 재인용 [본문으로]
  2.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1 재인용 [본문으로]
  3. Carl E. Seashore, “Why No Great Women Composers?”. Neels-Bates, Carol(ed). Women in Music : An Anthology of source Readings from the Middle Ages to the Present. Boston: Northeastern University Press, 1996, p.299. 『음악사 다시 생각하기 : 19세기 여성음악가들의 글을 중심으로』, 홍인경,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2008) p.20 재인용 [본문으로]
  4.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27 [본문으로]
  5. Marcia J. Citron. "Fanny Medelsohn Hensel: Musician in Her Brother's Shadow". Women Making Music: The Western Art Tradition, 1150~1950.(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86)p.158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46 재인용 [본문으로]
  6. 에바 리거, 『서양 음악사와 여성』, 김금희 역(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1), p.259,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6 재인용 [본문으로]
  7. 『카스트라토와 카운터테너에 대한 연구』 전영호, 중앙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 성악전공 석사학위 논문(2006) p.26~27 [본문으로]
  8. 이 글은 내가 학교에서 서양음악사 수업을 할 때 한 번씩 하는 수업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내용을 갖고 수업하는 이유는 이 각주가 달린 문단이다. 혹시 수업자료가 필요하신 분은 보내드리겠습니다. 토론이나 질문도 환영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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