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유니클로 <'감탄' 팬츠> 광고 시리즈는 재미를 추구한다. 남자들의 바지가 불편하다면서 이 바지를 입으면 '감탄'할 만큼 편하다고 광고한다. 광고를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많다. 단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편안하다는 치마, 이 이야기가 조금 불편하다. 왜냐하면, 치마 입는 과정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커피를 들고 스커트를 입은 채 걸어간다. 여자들의 스커트를

남성이 여성들을 바라보는 듯한 모숩이다. 그들의 편안함을

여자들이 커피를 들고  걸어간다. 언제까지 부러워만 할 것인가


"여자들의 스커트를, 그들의 편안함을, 언제까지 부러워만 할 것인가."는 불편한 말이다.


먼저 치마를 입을 때 신경 쓸 것이 많다. 속옷이 보이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짧은 치마의 경우 H라인으로 팽팽하면 움직임도 불편하고 앉았을 때 틈으로 속옷이 보일까 봐, 허리를 숙일 때 뒤로 엉덩이와 속옷이 보일까 봐 신경 쓰인다. A라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짧으면 신경 쓰인다. 펜슬 스커트 같은 경우에는 밑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좁아지므로 다리의 움직임이 제한된다. 무릎까지 오는 치마도 H라인의 경우 다리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많이 불편해진다. 물론 이런 치마들이 바지에 비하면 통풍은 잘 된다는 장점이 있다.

긴 치마의 경우는 나풀거리면 나풀거리는 대로 다리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팽팽하면 팽팽한 대로 다리의 움직임을 많이 방해한다. 상대적으로 함기량이 많으므로 보온이 잘 되긴 하지만, 바지에 비하면 치마는 기본적으로 활동이 불편하다.

활동이 불편한 것만이 아니다. 과정이 추가된다. 치마를 입는 과정은 치마의 종류나 계절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스타킹을 신고 치마를 입는다. 스타킹은 통풍이 안 된다. 더군다나 치마를 입으며 스타킹을 신을 때 무릎보다 조금 위로 올라오는 스타킹보다 엉덩이까지 감싸는 팬티스타킹을 많이 신기 때문에 전체적인 압박감도 압박감이지만 통풍 안 되는 부분이 넓다. 특히 다른 데는 몰라도 발에 통풍이 안 되기 때문에 답답하다.

스타킹을 안 신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치마를 입을 때 스타킹을 안 신을 수 있는 계절이 얼마나 있을까? 거의 없다. 치마를 입으려면 스타킹은 거의 필수이다. 보온에도 필요하고 맨살끼리 부딪치며 마찰하는 것도 예방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라면 치마를 입을 때 검은 스타킹을 강제로 신어야 하는 시기도 있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물론 스타킹을 신으면 압박되어 각선미 보정 효과 등이 있다. 하지만 털이 있으면, 털이 보이면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제모한다. 여성에게 제모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제모를 많이 한다. 여성에게 다리털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털이 가늘거나 별로 없는 여성들 정도나 여성들에게 털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한 후배는 동생 자취하는 집에 놀러 갔다가 면도기를 발견했다. 면도기를 보고 흥분해서 남자랑 동거하나 싶어 동생을 불러 야단을 치려고 면도기에 관하여 캐물었다. 동생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본인 제모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둘 다 여성이다. 언니는 털이 거의 나지 않아 미용을 위한 제모가 필요 없었고 동생은 본인의 미용을 위한 제모가 필요했다.

여하튼 그런 편견과 사회적 강요 때문인지 몰라도 올리브영이나 왓슨스 같은 데 가면 제모 관련 용품들이 전시된 코너가 있다. 제모 크림, 제모 왁스, 제모 왁스 스트립, 여성용 면도기 등 다양한 용품들이 있다. 이런 게 왜 있을까? 제모 왁스 스트립을 보면 팔 및 다리용, 비키니 및 겨드랑이용, 얼굴용 등 여러 부분이 있다. 팔, 다리, 비키니 라인, 겨드랑이, 얼굴 등 미용을 위한 제모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다. 

제모 크림은 크림을 바르고 10분 남짓 있으면 털이 불어난다. 파마약 같은 냄새도 나고 예민할 경우 피부가 따가울 수도 있다. 민감한 부분이나 상처에 바를 경우 한동안 쓰릴 수도 있다. 털이 불어나면 스패츌러로 밀어서 털을 뜯어낸다.

제모 크림


제모 왁스의 경우는 전자레인지로 녹이거나 물로 중탕해 녹여서 스패츌러로 바른 다음 스트립을 붙인 다음 한 번에 당겨서 수많은 털을 뽑아낸다. 제모 왁스 스트립의 경우 이게 스트립에 발라져 있어 손으로 비벼 뗀 다음 제모할 부분에 붙이고 한 번에 당겨 털을 뽑아낸다. 피부에 남은 왁스는 오일 시트나 오일로 닦아내거나 미온수로 녹여 씻어낸다. 좀 고통스러운 방식이지만, 털을 족집게로 일일이 뽑아내는 것보다 고통이 덜하게 느껴진다.

제모 왁스

제모 왁스 스트립

면도기의 경우 면도크림을 바르거나 해서 남자들처럼 면도한다. 면도해서 털이 겉에 드러나지 않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여성용 제모 면도기

살펴보면 털이 적으면 스타킹 착용 후 치마 입기 2단계이다. 털이 많으면 제모 후 스타킹 착용 후 치마 입기 3단계이다. 이래도 치마가 편해 보이는가?

분명 넷플릭스 광고 유세윤, 에뛰드 광고 전현무보다야 타깃 설정이 잘 된 광고이긴 하다. 하지만, 치마를 입지도 않는 이들에게 치마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 타깃 설정이 올바르다고 해도 성편견을 조장하는 광고는 바르지 않다.

오늘도 글을 쓰기 위해 외출할 준비를 했다. 입술이 너무 어두워서 조금이라도 건강해 보이려고 처음으로 틴티드 립밤을 써봤다. 거울을 봤는데, 자연스러운 것 같다. 조금 더 중성적으로 보인다. 내가 원하는 젠더 블라인드에 가깝게 연출…은 못하겠구나. 머리도 예쁘게 묶었는데 목이 활짝 드러나는 셔츠와 니트를 입었다. 내 목은 매우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집을 나와 천천히 걸었다. 심부름도 하고 동문로에 도착했다. 그리고 평소 글을 쓰기 위해 찾는 곳에 도착했다. 얼굴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 좋아 사이렌 오더를 별로 안 쓰려고 하다 보니 기다리는데, 한 중년 여성분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런데 카운터 한구석으로 가서는 말을 걸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남잔데 치마 입었어."

대답하는 그는

"그럴 수도 있죠."

라며 평소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도 반갑게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은 뭐 드실 거에요?"

"오늘의 커피 그란데 사이즈로 주세요."

"아까 수군대는 소리 다 들렸어요."

"네?"

"치마"

"아~ 하하하"

"사이즈는 뭐로요?"

"그란데요"

"아 맞다. 그란데. 그런데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오셨어요?"

"뭐 그냥?"

난 대답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나와 이야기한 그는 이곳에서 나랑 제일 친한 파트너다. 예쁘게 입는다고 치마 귀엽다고 가장 많이 칭찬해주는 이다.

'아주머니 상대 잘못 골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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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똘구임? 2016.08.12 16:55 신고

    남자인데 치마를 입으면 또라이지 그게 정상이냐

    옛다 관심!!!

왜 치마 입어? 예뻐서 입는데?

“치마 왜 입어?”

치마가 7벌이 되기까지 이 질문 참 많이 들었다. 분명 이유를 썼던 것 같은데, 묻는 사람이 종종 있다. 일일이 답해주는 건 쉽지 않다. 치마 입는 이유가 뚜렷하게 한 가지가 아니라 반복해서 같은 말을 할 수 없다. 같은 대답을 해줄 수 있다고 해도 반복은 짜증을 부르는 일이다. 무엇보다 질문의 뉘앙스가 모두 다르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의문에 맞춰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옷 입는 것 갖고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니 이것도 우스운 노릇이다.

“바지보다 예뻐서”

대답을 아무리 좋은 걸 찾아도 이 이상의 대답을 할 게 없다. 나는 치마가 바지보다 예뻐서 입고 싶은 것이다. 다른 이야기에서 저항이라는 말도 했지만, 저항한다고 굳이 치마 입을 이유는 없다. 그 저항은 저항하기 위한 저항이 아니라 자존감을 위한 저항이다.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게 아니라 나의 마음을 존중하기 위한 저항이다. 내 자존감을 위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으면서 그것을 문제 삼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다. 치마 자체가 저항이 아니다.

치마가 예뻐서 입는다고 해도 묻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거기서만 끝나면 나도 그냥 치마 입는 것에서 끝날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치마를 왜 입느냐는 말이 또 나온다. 그 물음은 내 욕망을 인정하지도 않고, 내 욕망에 따른 행동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힘을 가진 게 없고, 누군가의 삶을 방해하지도 않는데, 스파이더맨처럼 책임이 생겨버렸다. 내 욕망과 욕망에 따른 행동밖에 없었는데, 설명하고 싸워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굳이 왜 치마를 입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바지보다 예뻐서 입는다고 해도 물어보면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소리를 하고 싶다. 나는 치마를 여성복으로 생각하고 입는 것이 아니다. 입고 싶은 예쁜 옷이라고 생각하고 입는 것이다. 바지 입으면 왜 바지 입었느냐고 묻지 않듯 물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중에야 떠올리기는 하지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왜 옷 그렇게 입어요?”

“게이였어?”

대놓고 묻기도 하지만, “치마 왜 입어?”라는 말을 통해 그런 뉘앙스로 묻는 사람도 있다. 트랜스젠더나 크로스드레서와 착각한 것 같다. 게이는 남성 동성애자일 뿐인데, 게이가 치마를 입을 이유가 있을까? 트랜스젠더라고 다 치마 입는 것도 아니다. 여자라고 다 치마 입던가? 그리고 나는 다른 젠더의 옷이라고 생각하고 입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성의 역할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예쁜 옷을 입을 뿐이다.

“여자가 되려고?”

이런 말 때문에 찾아낸 말이 젠더 비순응, 젠더 블라인드이다. 안 그래도 치마라는 옷을 처음 살 때 한참을 마음고생 했고, 입고 다니기까지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마음고생 했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난 성 역할이나 성에 따른 옷의 구분 자체에 항상 의문을 품고 있다. 당연하다는 말에 한 번도 그냥 수긍해 본 적 없는 내게 이런 말은 금지와 별다를 바 없는 말이라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젠더 비순응 혹은 젠더 블라인드 운동.

젠더 블라인드 운동은 젠더 구분을 피하자는 내용이다. 젠더 구분을 피해서 성 평등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사회적으로 성 역할을 구분한다는 것은 차별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여성의 역할과 남성의 역할이 따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신체 기능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일이 있겠지만, 그것이 작용하지 않는 데까지 역할을 나누는 것은 차별이다. 그래서 “여자가 되려고?” 라는 말이 싫다. 단지 예쁜 옷을 입을 뿐이다.

“대단하다”

치마 때문에 여기저기서 건드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아버지하고도 싸우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치마 입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고 인정해주신다. 그것을 보고 함께 응원의 뜻으로 다단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물론 감사한 일이다. 그게 세상 주류의 관점에서 대단하시긴 하다. 하지만 옷을 어떻게 입느냐는 것은 내 권리이다. 그래서 대단하다는 말이 정말 어색하다. 당연한 권리를 인정해 주는 모습을 대단하다고 할 필요가 없다. 사회가 아무리 권리를 인정 않는 사회라고 해도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에 감사하거나 대단하다고 하는 것은 내 권리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누가 준 것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 내가 바라는 것

“예쁘게 입었다.” “어떡해, 귀여워.”

이런 말 말고는 별로 원하지 않는다. 내 옷맵시 갖고 칭찬하는 것은 좋다. 다른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내가 들을 의무도 없고, 스트레스만 받는다. 안 어울린다고 하는 것도 괜찮다. 어울리게 다시 코디하면 되니까. 그냥 내 모습일 뿐이다.


만약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옷 왜 입어?”

“왜 긴 바지 입어?”

“왜 상의 입어?”

“왜 태어났어?”

뉘앙스가 달라질 때마다 감당할 수 있을까?


자꾸 그렇게 치마 왜 입느냐고 질문하면 “왜 살아요?”라는 소리 듣는 기분이다. 질문 감당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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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

환절기라고 부를 만할 그때쯤부터 옷을 자주 샀다. 추워지는데, 입을 옷도 바꾸어보고 싶어서 한두 번 보다가 빠져들었다. 한동안은 자주 보면서 이미 사둔 치마랑 맞춰 입을 상의도 찾고, 다른 모양의 치마도 찾아보았다. 남자 혼자 가서 매장에 가서 여성복이라 불리는 것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친구 매상 올려줄 겸 친구 가게에 갔다가 “여기 너 입을 옷 없어. 너 여자친구 데려와서 여자친구 옷이나 사줘.” 소리까지 듣는 바람에 더 위축됐었다.

그래서 더 한동안 온라인 쇼핑몰만 봤었다. 치마를 사려고 하니 보는 분류는 당연히 여성복의 치마나 니트류다. 바지는 많이 갖고 있으니, 굳이 더 살 필요는 없고, 나랑 어울릴 만한 옷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았다. 매일 같이 찾아보던 중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제목을 봤다. “남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 갑자기 예전 일이 생각났다.



- 여성이 꾸미는 이유

몇 년 전 교원임용시험 실기 시험 준비 때문에 민요를 배우려고 개인 선생님을 찾았었다. 판소리 전공하는 친구 동생이 있으니 혹시나 알아봐 줄 수 있을까 싶어 연락하니, 자기는 못한다고 자기 후배를 소개해 준다고 했다. 같은 판소리 전공인데, 민요 가르친 경험이 있어서 잘 가르칠 거라고 했다. 그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 속으로 “완전 예쁘다”라는 소리가 나왔다. 첫인상이 워낙 그렇게 강렬하게 예뻤다. 지금도 예쁘다. 단가 “광대가”에 보면 판소리를 부르는 광대의 조건 중 첫 번째가 외모[각주:1]인데, 딱 그 조건에 맞는 판소리 전공자라니!

내 생존을 위한 배움이다 보니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외모는 잠깐 노래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장단에 노래만 해도 미치겠는데 다른 것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외모가 엄청나게 신경 쓰였다. 이분이 한껏 꾸미고 오신 것이었다. 안 그래도 화려하게 예쁜 분이 더 예쁘게 꾸미고 오셨다. 겨울인데도 짧은 원피스에 정말 화려하게 꾸미셔서 “어디 가세요? 혹시 남자친구 만나러?[각주:2]”라고 했더니, 여자친구들 만난다고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입어요?”라고 물었더니, 나 보고 잘 모른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래 여자들끼리 만날 때 더 열심히 꾸미고 만난다고 했다.

그 기억에 남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각주:3]이라는 것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 중에 나온 그 데이트룩이라는 것을 살펴보니 거의 치마 종류 혹은 어떤 사람들이 여성스럽다고 표현하는 그런 종류의 옷이었다. 남친이 보기에 좋은 걸까? 반대로 여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은 잘 안 나오던데, 불편하더라도 데이트할 때 꾸미는 것은 여성들만의 몫인 걸까? 아니 굳이 꾸며야 하는 걸까?

어떤 것은 태그로 이렇게 입으면 남친이 생긴다는 말까지 있었다. 내가 입고 싶은 모양의 옷인데, 내가 사면 안 되는 것일까? 만약 내가 사면 “여자친구한테 선물하려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할까? 그러면 나는 내가 보기 좋기 위해 여자친구를 인형처럼 꾸미는 인간이 되는 걸까? 남자인 내가 그걸 입는다고 하면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예쁘게 꾸미는 게이에 대한 흔한 편견(+오해)을 재생하게 되는 것일까?


- 치마는 예쁘고 편안한 옷

치마는 예쁘고 편한 옷이다. 바지보다 모양이나 색상, 소재가 다양하게 나온다. 좀 더 꾸미기 좋고, 편안하게 입기 좋은 옷이 더 많이 나온다. 바지처럼 입을 때 양발을 따로 끼워 넣을 필요 없이 쉽게 통째로 둘러 입을 수 있다. 상의랑 합쳐진 상태로 나와도 화장실 갈 때 불편함이 바지에 비해 적다. 점프슈트 같은 경우 통째로 벗어야 화장실 이용이 가능한데, 원피스 같은 경우 치마만 올리면 된다.

랩스커트 같은 경우 발을 끼워서 입는 게 아니라 둘러서 입을 수 있어 편하다. 원피스는 통째로 한 벌만 입으면 끝이다. 더운 여름 바람이 통해 시원하게 입을 수도 있다. 겨울에는 스타킹이나 레깅스에 롱스커트를 입어 함기량을 늘려 좀 더 따뜻한 하체를 유지할 수도 있다. 치마는 이렇게 예쁘고, 여러가지  장점이 많은 좋은 옷이다. 이런 장점만 생각하면 남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이 치마뿐이라도 예쁘고 편안한 옷이니 문제 될 것이 없을 것 같다.



- 치마는 예쁘고 불편한 옷

그런데 치마는 굉장히 불편한 옷이다. 수많은 개인적인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편한 옷이다. 물론 여성이 바지 입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사회가 바뀌었다. 누구나 바지를 입고, 누구나 바지를 쉽게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치마는 여전히 여성에게만 강요된 옷이다. 그래서 치마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편한 옷이다.

20세기 초, 중반까지 치마는 여성 억압이며 바지는 여성 해방의 상징이었다. 여성에게 바지를 금지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패션의 고장이라는 프랑스 파리에서도 조례를 통해 여성에게 바지를 금지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19세기 초에서 20세기 초에 여성이 바지를 입으려면 특별한 허가가 필요했다. 중간중간 개정되고 사문화되긴 했지만, 불과 몇 년 전인 2013년에야 폐지되었다. 그 정도로 치마는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강요된 의복이다.

그런 종류의 성문화된 억압이 아니더라도 다른 형태로 강요된 경우는 여전하다. 특정한 단체에 속해 있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여성에게 치마를 입는 것이 당연한 예의처럼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길이도 자신이 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에 맞게 적당한 수준이어야 한다. 제복의 경우에도 여성의 예복은 치마, 교복의 경우도 여학생은 치마(몇 년 전부터 바지 교복이 생기고, 바지를 입을 수 있게 한 곳이 많다.)가 기본적인 교복이다. 면접을 볼 때도 여성의 경우 보통은 치마 정장을 선택할 정도로 여성에게 치마는 여전히 강요된 복장이다.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입을 경우에도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다. 나풀거릴 경우 바람에 치맛자락이 날려서 하고 싶지 않은 노출을 할 수도 있다. 치마를 입고 넘어지게 될 경우 각도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노출을 할 수도 있다. 치마를 입고 다리를 모아 앉지 않으면 조신하지 않다고 지적당하기도 한다. 성범죄자가 카메라를 이용해 뒤나 아래에서 몰래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치마가 짧거나 다른 쪽에 피부가 많이 보일 경우 노출이라는 말로 성범죄 핑계[각주:4]를 대는 데 쓰기도 한다.

그런 사회적 억압의 기반에 성차별이 있는지, 여성 혐오가 있는지, 전반적인 소수자 혐오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 누구나 바지를 입을 수 있고, 바지를 금지하지 않기 때문에 치마는 억압의 상징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도 예로 든 것처럼 여전히 치마를 향한 시선이나, 치마 입기를 강요하는 행위나 분위기, 그리고 치마 입은 자에 대한 범죄, 혐오를 볼 때 치마는 아직 사회적 억압 도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닐까?



- 치마가 사회적 억압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이유

치마가 사회적 억압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치마 입는 남성에 대한 시선이다. 수치스럽게 여기는 시선, 변태로 보는 시선,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대해 다르게 보는 시선, 유희로 보는 시선이다.

수치스럽게 여기는 시선은 아직 개인적으로 겪은 것이 대부분이다. 아버지가 치마 입는 것에 대해 창피하다거나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고 하며 못 입게 하고 있다. 그래도 어머니가 내 편 들어주시기에 아버지와 직접적인 큰 충돌은 없다. 또 얼마 전 내가 치마 입은 것을 본 동생의 어이 없어 하는 소리도 있었다. 옷 갈아입고 와서 밥 먹는데, 『응답하라 1988』 17화에서 김원준이 티비로 나온 장면에서 남자가 치마 입는다고 뭐라고 하는 것을 보고 나한테 똑같이 뭐라고 했다.

변태로 보는 시선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친구네 가게에서 옷 사려고 했는데 그것을 꺼린 것까지 포함하여 남자가 치마 입는 것 자체를 꺼리는 일도 있었다. 또 다른 데서는 치마를 입으면 성적 쾌락을 위한 것인 양 그렇게 입으면 누가 너를 ‘따먹을 것’이라던 폭력적 말까지 들었었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이 치마일 뿐인데, 그것이 해선 안 될 금기를 어긴 것일까?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흔들리느냐는 소리도 들었다. 흔들리든 말든 단지 옷을 입었을 뿐이다. 치마가 여성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인 것처럼 치마를 입은 것 자체로 내가 정할 성별 정체성을 마음대로 흔들려고 한다. 그게 아니면 게이에 대한 흔한 오해와 편견을 덧씌워 성적 지향을 마음대로 판단하여 내뱉는다.

유희로 보는 시선도 있다. 간혹 어떤 행사에서 놀이 삼아 유희로 여장이라는 말로 남성에게 치마를 입히고, “여성스럽게” 행동하도록 한다. 그런 놀이 자체가 치마가 사회적인 억압이라는 이야기 아닐까? 반대의 경우는 드물뿐더러 재미 삼아 하는 일도 (내가 알기에는) 없다. 남장이라는 것도 극에서나 드라마적 장치로 차별에 맞서거나 반전을 위한 것으로만 소비된다.

그런 모든 시선이 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아닐까? 여성스러움이라는 말을 남성에게 붙이면 수치가 된다는 것은 젠더를 고착화할 뿐 아니라 젠더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치마는 당연히 여성만이 입어야 하며, 남자가 입는 치마는 유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치마에 대한 폭력적 시선이 있다는 것 아닌가?

더불어 검색으로 나오던 여러 가지 일(링크1-남자가 치마를 입으면 안되는 이유, 링크2-"저게 남자여 여자여 치마 한 번 올려봐")을 봐도 치마는 여전히 억압적인 장치로 작용하는 것 같다.

저런 일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 편안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많이 인정한다. 더불어 치마 입는 행위 자체를 별것 아닌 취급하기도 한다. 내가 하는 성 평등 운동에 대해서도 공감한다. 또한, 치마를 골라주는 사람도 있고, 내가 입은 옷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저들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것인가?



- 남성의 외모 욕망

많은 남성이 어린 시절 호기심으로 어머니의 화장품과 치마, 누나나 여동생의 치마를 입어보았을 것이다. 대부분은 여성이 되고 싶다거나 여성처럼 살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입어 보지 않은, 혹은 입어 보지 못한 옷에 대한 호기심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쩌면 강요받은 남성적임에 때문에 느끼는 다른 모습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다. 실제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다. 어쩌면 성적 흥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부분은 금기를 깨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느낀 두근거림이었을 것이다.

외모를 꾸미는 것은 누구나 가진 미에 대한 욕망일 것이다. 그것을 남성이라는 이유로 제한당했을 것이다. 머리 모양이나 수염, 여드름 제거 정도는 개개인의 욕망에 따라 꾸밀 수 있는 사회적 시선이나 물건이 있었다. 하지만 화장을 통해 외모를 꾸민다거나 잡티를 가린다는 것, 여성스러움의 상징이라 알려진 치마나 레이스를 사용하는 것은 남성적이지 않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여린 마음을 갖고 있거나 목소리가 높다거나 예쁘장한 외모를 가진 것은 여자 같다며 놀림거리가 되었다.

요즘은 꾸미는 남성에 대해 인식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그루밍이라는 말 덕인지 외모를 꾸미는 것이나 화장에 대해서는 인식이 많이 나아진 편이다. 그래도 그루밍에 사용되는 화장품 광고는 여전히 남성성을 강조하며, 화장품의 색이나 향 역시 여전히 남성성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남성성을 강조하는 것은 개인적인 미의 추구와는 거리가 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욕망으로 포장된 자본의 안내를 소비하는 행위일 뿐이다. 여전히 여성성은 남성에게 소비되거나 적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소리를 재생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 남성들도 치마를 입자

남성들도 치마를 입자. 치마를 입고 자연스럽게 다니자. 치마 밑으로 나온 다리에 털이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인가? 털이 없는 매끈한 다리인데, 얼굴에 수염이 거뭇거뭇하면 어떤가? 자신을 자신답게 꾸밀 수 있으려면 시도를 해봐야 할 것 아닌가? 외모를 빼고 보아도 치마는 장점이 많다. 남성의 정자 건강에 좋다. 더울 때 반바지보다 시원하다. 추울 때 덧입어서 더 따뜻하게 다닐 수도 있다. 그리고 여성복이라고 나온 것들이 더 싸고 예쁜 것이 많다.

건강, 외모뿐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입으면 사회적으로 강요된 남성성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해방될 수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장남의 의무, 남성이라면 해야 할 것, 남성끼리 있을 때 좀 더 남성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마음의 압박까지 모두 해방될 수 있다. 성폭력과 관련한 이슈에 대해서 직접 겪는 것을 통해 상대를 좀 더 이해하게 되면서 가해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남성들도 함께 치마를 입자. 치마 별것 아니다.

  1. 신재효가 광대가를 통해 제시한 고전적인 판소리 소리꾼의 조건으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 [본문으로]
  2. 요즘에야 저런 물음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했었다. 사람을 주체가 아닌 객체화 시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트클럽 말고는 춤추는 클럽이 없는 지역이다. [본문으로]
  3. 여성들끼리의 말이라고 넘어가기에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갖는 젠더 폭력이 생각났다. [본문으로]
  4. 그런 범죄자가 어째서 성욕보다 강한 식욕과 수면욕을 핑계로 절도나 무전취식, 무전숙박을 먼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배설욕은 어떻게 참고 살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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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리스 2017.02.19 11:55 신고

    안녕하세요 용기가 대단 하시네요 저도 치마를 즐겨 입고 있습니다
    정보를 공유 했으면 합니다 저의 카페에 놀러 오셔요

치마를 몇 개 돌려 가며 입고 있다. 몇 번 돌려 입다 보니 치마가 너무 적은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새 치마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는 싫고, 직접 보면서 사고 싶었다. 그래서 옷 가게가 많이 있는 동네로 갔다. 가서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데, 밖에서 구경하다가 막상 들어가려니 망설여졌다. 옷 살 때 버릇 중 하나가 밖에서 대충 보고 안에 들어가서 사는 것인데, 가게들이 너무 작아서 들어가기 꺼려졌다. 안 사고 나오면 좀 안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점원이 좀 나이 있어 보여 불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 어떤 치마를 살까?

그렇게 며칠 망설이다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날, 맥주가 마시고 싶어 단골 가게로 가다가 옷 가게에 들어갈 용기가 생겼다. 그때부터 어떤 치마를 살까 고민을 해봤다. 가진 것과 다른 것을 입고 싶어 어떤 치마가 있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처음에 샀던 무릎길이의 까만색 랩스커트와 한쪽은 무릎 아래, 한쪽은 무릎 위로 올라오는 까만색 비대칭 랩스커트가 있다. 그다음에 샀던 것이 발목까지 오는 와인색 롱스커트. 그다음이 바지 위에 입는 펑퍼짐한 빨간색 니트 원피스. 그리고 여자친구가 골라준 무릎 조금 위로 올라오는 녹색 체크무늬의 A라인(플레어) 스커트까지. 이렇게 다섯 종류였다. 니트 원피스는 치마로 보이지도 않긴 하지만, 어쨌든 치마는 치마다.

짧은 치마, H라인 치마가 없었다. 무릎 위로 많이 올라오는 짧은 치마 그것도 H라인으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 가게에 혼자 가서 직접 치마를 사는 것은 처음이라 두근거렸다. 입고 있는 치마도 직접 사긴 했지만, 여자친구랑 같이 가면서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혼자 가려니 정말 많이 두근거렸다.

어쩔까 하다가 전에 혼자 니트 사러 갔던 데에 갔다. 같은 점원이 있으면 얼굴이 익어서 좀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그 점원이 있었다. 치마를 보러 왔다고 하자 안내를 해주었다.

“어떤 치마 보시겠어요?”

“짧은 치마 보려고요.”

그 순간 체크무늬 짧은 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따뜻해 보이는 색에 H라인, 무엇보다 예뻤다! 두 가지 색이 있었는데,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무엇으로 살까 망설이면서 마음에 드는 색을 먼저 대보았다.

“언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저 남잔데요.”

“미안해요. 버릇이 돼서.”

“아니에요.”

옷을 확인해보고 싶어 거울을 찾아 두리번거렸더니 거울 있는 곳을 안내해줬다.

“거울 여기 있어요. 언니… 아… 죄송합니다.”

확실히 버릇은 쉽게 고치기 힘들다. 그렇다고 나보고 아저씨나 오빠라 부르기도 그럴 테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고객이라는 다른 호칭도 당장은 쉽게 안 떠오를 테고.

“입어보실래요?”

“네.”

“사이즈는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S, M? M이 맞겠죠?”

“네 M으로 주세요.”

“저쪽에 탈의실 있어요.”

“네.”

탈의실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감촉도 그렇고 쏙 마음에 들었다. 다 입고 나왔더니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지퍼가 옆이 아니라 주머니 있는 쪽이 앞에 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돌렸더니 지퍼가 허리 뒤 한가운데로 왔다. 그리고 거울로 가서 봤다. 예뻤다. 어울렸다.

“언니 어울리시네요. 아, 죄송… 배 좀 조이실 거에요. 나중에 늘어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안 조이는데요. 편안한데요.”

“아, 그러면 뭐…”

“저 코트도 볼래요.”

“네, 저기로 안내해드릴게요.”

코트까지 고르고, 코트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옷 그대로 입고 가겠다고 입은 채로 계산하고 입고 왔던 옷을 챙기고 나왔다.



- 짧은 치마는 예쁘지만 불편

같은 치마를 두 번 정도 입고 나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짧은 치마가 예쁘긴 예뻤다. 내 다리 모양이 어떻든 더 예뻐 보이고 바지 입을 때보다도 다리가 더 길어 보였다. H라인이라 걸을 때 약간 걸리는 느낌이 들지만, 팔자걸음일 때 문제라 걸음걸이를 바꾸니 불편함이 사라졌다. H라인이라서 그런 것인지, 짧은 치마라서 그런 것인지 날씬해 보였다. 난 마른 편인데, 마른 게 아니라 날씬해 보였다.

그런데 굉장히 조심해야 했다. 치마가 허벅지 중간쯤인데, 선 채로 허리만 굽히면 올라와서 속이 보일 정도였다. 또 의자에 앉으면 치마가 먼저 닿는 게 아니라 치마가 약간 올라가 엉덩이가 의자에 닿았다. 조금 신경 써서 앉으면 치마가 약간 닿긴 하지만, 그래도 엉덩이 밑부분이 의자에 닿았다. 플레어스커트를 입을 때 퍼져서 닿은 건 겪었지만, 이 정도로 엉덩이가 많이 드러날 줄은 몰랐다.

다른 문제도 있었다. 랩스커트처럼 붙어있는 천이 있어서 가려지다 보니 잘 몰랐는데, 혹시나 해서 올려 보니 치마가 올라와서 치마 속이 보일 것 같았다.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치마를 좀 내렸지만, 무릎을 계속 모으지 않으면 치마가 계속 조금씩 위로 올라왔다. 만약 이게 천이 더 없었다면?

갑자기 여성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무릎 위로 코트나 무릎 담요를 덮는 것이 생각났다. 그냥 덮는 게 아니었다. 속이 노출될 우려 때문에 덮는 것이었다. 짧은 A라인이 아니라 H라인이라서 계단을 올라갈 때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허리만 꼿꼿하게 펴면 보일 염려가 없을 것 같았다(실험해보기는 민망하다). 하지만 앉으면 속이 그대로 노출되기 쉬웠다. 계속 누를 것 아니면 덮는 것이 원하지 않는 노출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쁘게 입는다고 내가 노출을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에서 엉덩이 뒤를 가방으로 가리는 것에 대해 다른 생각이 들었다. 몰카나 엿보는 사람을 대비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예비 가해자로 보고 뒤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부분이 노출되면 부끄럽기 때문이 먼저였다.

치마를 입지 않는 남성들은 여성들이 계단 등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뒤를 가린다고 불쾌할 필요 없는 것이다. 예쁜 치마를 입고 싶었고, 입으면 본인도 예뻐 보여서 입는데, 원하지 않는 부분이 노출되면 예쁘지 않다. 노출을 원하지 않는 부분을 가리는 것은 남성, 여성 가리지 않고 누구나 하는 일이다.


- 그래도 새로 치마를 산다면 짧은 치마로

이제 짧은 치마가 예쁜 것을 알게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짧은 치마를 더 사야겠다. 새 치마는 다른 모양으로 해도 나랑 어울릴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끝에 프릴이 있어도 좋을 것 같고 아니면 A라인으로 나온 것도 좋을 것 같다. 거기서 불편함을 발견한다면 여성의 삶에 대해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될 테니 그것대로 좋은 것일 거고, 아니면 아닌 대로 예쁘고 내 마음에 들어서 좋은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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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리스 2017.02.19 12:04 신고

    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저도 치마를 입어 봐서 이해를 합니다
    그레서 여성분들을 이해 하게 되고 배려를 해 주게 됩니다
    여자와 남자는 다른 개체라는 것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좋은 정보 감서합니다
    놀러 오세요
    http://cafe.naver.com/nonoms

요즘 치마를 입는다. 치마는 특별한 때에나 반강제로 입던 것이었다. 스스로 입기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좀 넘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어색해서 청바지 위에 랩스커트로 입었었다. 그렇게 1주일 후 용기를 얻고, 스타킹 내지 레깅스를 신고 치마를 입는다. 이제 남들처럼 치마를 입은 지 3주가 지났다. 이제는 이렇게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되었다. 그런데 대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난 남성기를 갖고 태어난 인간이다.

길에서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이나 카페에 앉아 있는 것 자체는 사람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나한테 시선이 집중되는 기분도 없다.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나한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걸 알게 된 후로 별로 신경 쓰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성별을 보더라도 얼핏 보고 판단할 뿐인 것 같다. 그렇게 자세히 뜯어보지 않는다. 파마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곱슬머리에 길이는 어깨 근처. 키도 170cm가 안되는(169cm) 데다 마른 몸이다. 걸친 옷을 보면 아래는 치마, 위는 허리까지밖에 안 오는 짧은 니트, 오른쪽을 위로 하여 여미는 재킷까지 자연스럽게 남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다 가방은 성별이 느껴지지 않는 에코백.

그런데 가슴은 평평하고, 어깨는 넓다. 목에도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여성의 특징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처음부터 그렇게 자세히 볼까? 아는 사람이나 자세히 보고 나서야 “나보다 치마가 잘 어울리고 예쁘다. 어깨만 좁으면 딱인데.” 라는 말을 한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도 중성적인 인상 때문인지 나의 인상을 두고 성별에 대해 내기를 하는 한 쌍을 본 적도 있다. 혼자서 말을 할 일이 없으니 조용히 있었다. 주문한 것을 기다리는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눈치도 분명히 나다. 굳이 시비를 가리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상큼한 김선생 고객님, 주문하신 오늘의 커피 나왔습니다.” 내 음료가 나왔다고 알리는 소리에 가서 커피를 받았다. 그때 수군대던 한 쌍 중 남자의 소리 “거봐 여자 맞잖아.” 남자는 신난 표정, 여자는 묘한 표정. 내기했다면 분명 여자 쪽이 이긴 게 맞다. 둘 중 한쪽은 이겼고, 한쪽은 진 게 아닌 것 같은데 라는 표정을 잠깐 보는데, 어이없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게 뭔가?

아무튼, 평소에 나한테 대놓고 물어보거나 뭐라고 하는 사람 없으니 남의 눈이야 알게 뭔가? 그렇게 치마 입는 것 자체는 거리를 걷거나, 커피 마시러 가도 신경 쓰일 게 없었다. 어머니도 내가 치마 입고 싶어 하고,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을 안다. 여자친구도 알고 있고, 치마를 골라주기도 한다. 주변의 사람들도 치마를 입는 것 자체 갖고 타박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신경 쓰일 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요 며칠은 스트레스를 좀 심하게 받았다. 육체적인 부분은 없었지만, 성폭력과 성차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내가 치마 입은 것을 보고 뭐하는 거냐? 남자가 그런 것 왜 입느냐고 하셨다. 분명 두어 번 보셨을 텐데, 신경을 아예 안 쓰셨나? 아니면, 잘 모르셨나?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도 입었었는데? 어차피 어머니는 인정해주시고, 아버지가 화를 내는 것에 대해 나를 그냥 두라고 두둔해주셔서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문제는 친구들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 그런데, 몇 명

그런데 요 며칠은 스트레스를 좀 심하게 받았다. 육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성폭력과 성차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께서 내가 치마 입은 것을 보고 화를 내셨었다. 남자가 그런 것을 왜 입느냐고 하셨다. 분명 두어 번 보셨을 텐데, 신경을 아예 안 쓰셨나? 아니면, 잘 모르셨나?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도 입었었는데? 어차피 어머니는 인정해주시고, 아버지가 화를 내는 것에 대해 나를 그냥 두라고 두둔해주셔서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문제는 친구들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내가 페이스북에 치마를 입어보겠다고 선언한 글을 올리고, 이후에 입은 사진을 일부러 올렸다. 그렇게 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알기 시작했다. 나를 대하는 것도 별문제 없었고, 치마를 왜 입는지 정도만 물었다.

고등학교 교악대 동문회에 갔을 때도 별일이 없었다. 한 선배는 왜 치마 안 입고 왔느냐? 농담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내가 치마 입는 것에 대해 내 생각을 알게 되면서 치마 입는 것에 대해 지지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 생각을 먼저 들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튀는 사람일 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만난 친구들 모임에서는 달랐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동문회 때와 비슷하게 시작했다. 왜 치마 안 입고 오냐고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놀다가 2차가 되어 아이를 데려온 친구들은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갔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쯤에는 부부관계, 그러니까 섹스 이야기가 나왔다.

성욕이 커지는 시기가 남녀가 각각 어떠니, 남자는 일정 기간에 한 번은 빼줘야 한다느니, 어떤 형태나 도구를 사용한 섹스에 대해서 변태적이라느니, 남자는 빼줘야 한다느니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고자 취급당할까, 트랜스섹슈얼이라 오해할까 싶어 남자는 빼줘야 한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고, 그냥 자위하라고 했다. 어떤 형태나 도구를 사용한 섹스는 변태적이기에 옳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박했다.

집에 갈 때쯤 화재가 나로 바뀌었다. 섹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로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성과 복장. 엄청나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으니까.

어떤 녀석은 “너 그렇게 입고 다니면 따먹힐 수 있다. 내가 아는 게이 형이 있는데, 너처럼 입고 다니는 것 보면 분명 너 따먹을 거다.” 거기에 그럴 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녀석은 “너 왜 치마를 입고 다니냐? 성 정체성이 흔들리냐?” 아니, 그냥 입고 다닌다. 나 나름의 성 평등 운동이기도 하고, 치마 입고 싶어서 입는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말로 “너 스타일이 특이하고 앞서 나가는 건 알겠다. 일본 스타일인 것은 인정하겠는데, 이 동네에서는, 아니 한국에서는 아니다. 여기서는 절대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따먹힐 것이라는 복장이 성폭력을 부른다는 여성혐오에 가까운 전형적인 피해자 탓하기와 특정 성적 지향에 대한 비난. 성 정체성이 흔들리느냐는 타인의 성적 지향, 성별 지향 자체에 대한 비난. 여기서는 아니라는 문화상대주의를 가장한 비난. 이런 성폭력과 성차별을 띄는 비난에 굉장히 힘들었다. 덕분에 며칠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 그래도 계속

나는 스트레스에 좀 약하다. 아니, 스트레스에 약해졌다. 다시 튼튼해져야 한다. 내가 알기에 이런 식으로 성 평등, 성 인식 전환 운동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 나다. 내가 약해지면, 누가 대신 운동해줄 것인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옷을 내 마음대로 못 입으면 그것도 스트레스일 텐데, 좋아하는 일 하고 스트레스받는 게 낫다. 튼튼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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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버리어 2016.01.05 14:03 신고

    지지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남성으로서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지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 또한 치마를 입어볼까 고민해봅니다. 일단 혼자 사는 집에서라도 시작해볼게요. 머리는 기르고 있는데 치마는 더 겁이 나서 입지 않았었거든요. 님의 글 읽고 용기내봅니다.

    • 지지 감사합니다 :)
      치마를 입는 게 부담스러우시면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나 바지 위에 덧입는 것부터 시작해보셔요.
      용기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나는 예쁜 옷을 좋아한다. 옷을 사러 가면 별로 예쁜 옷이 없어 항상 고민했다. 조금이라도 예쁘다 싶으면 가격이 부담스럽거나 여성복으로 파는 것들이었다. 그런 여성복을 사볼까 하다가 다른 사람의 눈이 무서워서 구입해본 적이 없다. 사이즈가 안 맞을까 걱정, 이상하게 볼까 걱정. 걱정, 걱정, 걱정, 그렇게 걱정만 하며 내 취향을 피하기만 했다.

육지에서 2년 가량 살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내 상태는 엉망이었다. 마지막 1년에 겪었던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이었다. 그래도 만나는 사람이 생기면서 상태가 점점 좋아졌다. 하지만, 방황하게 되었다. 긴장이 아직 남아 있는 데다, 다가오는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로 방황을 선택한 것이다. 방황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던 중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변화를 줄까 고민하던 중 흥미가 생기는 구인 광고를 봤다. 교사를 하고 싶지만, 이곳이라면 잠시 교직을 벗어나서 일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음식과 관련되어 있고, 나 같은 성향이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쓰던 중 저항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내가 저항하지 않고 피했을 때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다시 저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환절기도 오고 해서 옷을 새로 사고 싶었다. 내가 입는 옷을 통해 큰 변화를 주고 싶었다. 이전에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항상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색을 입어서 튀고 또 튀었다. 그래도 나 나름 무난하다고 생각하고 입었을 뿐이었다. 이제 무난함의 범위를 넓혀보고 싶었다. 좀 더 튀게 입고 싶었다. 옷을 통해서도 저항하고 싶었다. 여자한테 폐끼치는 사이즈라고 하는 말, 젠더에 맞는 의상이라는 것에도 저항하고 싶었다.

치마가 입고 싶어졌다. 내가 보기에 바지보다 치마가 예쁜 것이 많았다. 예쁜 치마를 입어보자. 치마에 맞는 상의를 입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좀 두려웠다. 그래서 랩스커트를 선택해서 바지 위에 겹쳐 입을 생각을 하고 랩스커트를 주문했다. 계속 두려워서 직접 사러는 못 가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주문했다.

막상 결심하고 주문했는데, 복장도착이라며 변태 취급 받는 것은 아닐까? 난 여성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젠더를 바꾸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불안에 사로잡혀 사는구나, 왜 이렇게 살까? 답답해 하며 일단 주변에 여기 저기 물어봤다. 뭐 어떻냐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러고 치마를 입으려고 한다고 어머니한테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 왈 “여자 옷 아니냐?”

대답은 바지 위에 겹쳐 입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크로스 드레서로 행동하려는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 레깅스나 스타킹을 입을 생각도 했고, 여름에 맨다리도 해볼까 생각을 했었는데, 이게 이성의 옷을 입는 행위로 비춰지려나? 아니, 대체 여성복, 남성복이라는 개념이 뭐기에 그래? 치마는 남자한테 더 좋다는데. 그리고, 재봉이 발달하기 전에는 그런 거 안 가리고 치마였을텐데! 여자가 바지 입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나는 성별에 관계 없이 입고 싶은 옷을 입으려는 것인데, 이건 어떻게 설명을 할까? 유니섹스? 메트로섹슈얼? 왜 설명을 해야하는 거지? 난 젠더라는 것에도 저항하려는 건데. 내가 왜 젠더에 얽메이는 거지? 이렇게 갑갑한 마음을 하면서도 나를 설명할 말을 계속 찾아보았다. 젠더 비순응, 젠더 블라인드 정도가 가장 어울릴 것 같았다.

데이트를 하러 가면서 치마를 입었다. 바지 위에 치마. 이틀 연속 만났는데, 그는 하루는 바지, 하루는 치마. 좀 부러웠다. 나는 치마를 입는데 남들 눈을 걱정하는 남자, 그는 치마를 입는 게 사회적으로 자연스러운 여자. 그렇게 데이트를 하면서 남자인 내가 치마 입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속에 레깅스 입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어차피 남인데.”라면서 괜찮다고 했다. 그말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나를 그만큼 존중하는 것이었다. 그래 모두 남인데, 내가 아닌데, 뭘 그렇게 걱정했을까? 겨우 남의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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