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리고 계속 더 페미니스트답고자 노력하기 위해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제가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먼저 잘못하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30년 남짓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억 중에 제가 잘못했거나 잘못할 뻔한 기억들이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저를 모르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앞으로 잘못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못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제가 잘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존중 없는 삶이 무섭습니다.

저는 그다지 존중받고 살아온 것 같지 않습니다. 다르면 다른대로 비난 혹은 놀림을 받았고, 변하면 변한 것 모습만 갖고 관심을 받았습니다. 저 자신의 선택으로 오롯하게 존중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저도 존중만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존중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삶을 만들고 싶습니다.


- 소수자로 살았습니다.

존중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소수자로 살았습니다. 다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도 소수였습니다. 소수였던 만큼 배제당하고 무시당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과에서 종교적 소수자였습니다. 종교적 소수자였던 만큼 당연히 종교적 다수자에 맞추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다수인 종교에 당연히 익숙해져야 하고, 그 행동을 당연히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건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제가 화장을 한다거나 머리를 기르는 일 그게 모두 비난 혹은 배제의 대상이었습니다. 나의 개성이 아니라 나의 불만 혹은 사회에 대한 불협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소수자인 만큼 약자입니다.

정규직이 다수인 교직 사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과목도 음악이라는 단위 수가 적은 과목입니다. 화장한다고 사직서 제출 소리를 들어봤고, "교사냐 강사냐 구분"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이 인권침해라고 문제를 제기했더니 관리자 입장에서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등 무시당하고 배제당했습니다.


- 그래서 페미니스트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이 엮이고 보니 제 자유를 위해 평등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등과 연대는 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합니다. 일상의 운동가로서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합니다.

학교에서 교육 활동 외에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일까? 생활 지도이다. 생활 지도를 통해 인성, 비행, 폭력 등을 다루는 것이 맞을 것 같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외모 통제이다.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외모를 표준화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사회에서 적절한 외모의 조건이 내면화되며, 표준화된 외모 취향을 만든다.

기간제교사 면접을 보러 갈 때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이 외모이다. 면접 보는 본인 말고도 주변에서 평범하게 하라고 강조할 정도이다. 면접에서 특징적인 부분이 있으면 학생들이 본받을 것이라거나 불평등한 상황에 의문을 품을 것이라고 잠재적 교육과정을 가정하여 안 좋은 점수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

외모는 점수에 안 들어간다는 교원임용시험 2차 면접, 수업 실연 때도 다들 외모에 신경 많이 쓴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무난한 복장 색상을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여성일 경우 되도록 무릎 정도로 오는 적절한 길이의 치마 정장, 무난한 화장, 잔머리 안 빠져나오게 머리를 잘 묶어 무난한 인상을 만든다. 남성일 경우 짧고 단정해 보이게 머리카락을 자르고 무난한 인상을 만든다.

다들 잘 알고 있다.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학교에서 외모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다들 아주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16년 이상 학교에서 생활했기에 잘 알고 있다. 12년만 생활해도 잘 알 수 있다. 아니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만 관련되면 무의식중에 외모를 신경 쓰게 된다. 학교에서 계속 외모를 통제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외모의 통제를 내면화해서 타인의 외모마저 통제한다. 간혹 이렇게 '머리 긴 남자는 별로'라며 교사의 외모를 지적하는 학생도 만날 수 있을 정도이다. 어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매일 옷을 관찰한다며 옷에 굉장히 신경 쓰기도 한다. 화장 여부, 안경을 착용하느냐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느냐까지 외모에 신경 쓴다.

외모 등을 신경 쓰는 것은 인권과 관련되어 있다. 1세대 인권인 자유권적 권리에 해당하는 신체의 자유이다. 이렇게 자신의 신체를 자신이 통제할 권리를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모두가 시스젠더[각주:1]에 이성애자라고 가정하고 외모를 조건화하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타인의 권리 또한 인식할 수 없다.

남성은 짧은 머리에 바지가 당연하다. 여성은 짧은 머리에 바지를 입을 수도 있지만, 일정 이상 길이의 긴 머리에 치마가 기본값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파마나 염색은 허용하지 않으며, 교복을 짧게 만들거나 줄이는 등의 행위도 허용하지 않는다.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신체의 자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당연한 인권, 헌법적 기본권에 '허용'이라는 말이 들어가면서 제한한다. 당연한 인권, 헌법적 기본권을 가르치지 않는 것을 통해 쉽게 통제당하게 하여 우리의 권리,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게 한다. '권리를 빼앗지 마라'가 아니라 '허용해주세요'라고 하게 한다.

인권이나 기본권은 인간에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진 것이다. 이 당연한 것을 제한하면 다수의 가능성이 제한된다. 다수의 제한이 당연해지면 다름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소수자의 제한도 당연해진다.

다원화 사회에서 표준화는 필요한 일이다. 그 표준화는 다양한 것이 공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다양한 것이 공존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일부 제한은 여러 사람의 권리가 공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권리 제한이 사회가 존재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사회에는 성소수자[각주:2]가 존재한다. 학교에도 성소수자가 존재한다. 외모의 표준화는 비슷한 사람들을 똑같이 만드는 행위일 뿐 아니라 비슷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같게 만드는 성차별이다.

  1. cisgender 'cis-'는 같은 편이라는 뜻의 접두사로 태어나서 부여받은 성별(sex)과 인식하는 성별(gender)이 같은 사람을 뜻한다. 트랜스젠더에 상대적인 말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본문으로]
  2. LGBTAIQ 등 https://femiwiki.com/w/성소수자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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