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의 변은 너무 엉망으로 써서 공들여 준비해서 쓴 후보 수락 연설문이다. 경선 결과를 먼저 이야기하면 난 3위를 했고, 당내 비례 2번을 받았다.

제주 녹색당의 2018 지방선거 도지사 및 비례대표 후보 선출 경선에서 고은영 후보가 1위를 했다. 고은영 후보는 현재 제주 녹색당 제주도지사 예비후보로 수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오수경 후보는 2위를 해서 도의원 비례 1번을 받았고, 함께 선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고권일 후보는 중도에 사고가 나는 등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퇴했지만, 선본에 함께 합류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한동안 논평만 썼을 뿐 블로그에 글을 너무 안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락 연설문을 이렇게 올린다. 실은 지난달쯤 사무장님이 후보들 출마의 변이나 수락 연설문 출력해서 붙여두자고 했는데, 내 것만 출력하고 잊고 있었다. 오늘 고은영 후보가 출마의 변, 수락 연설문을 출력해서 붙이자고 하더니 바로 적당히 편집해서 출력한다음 사무실 벽에 붙였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이렇게 포스팅한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주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먼저 제주녹색당 경선에 참여해주신 당원 여러분, 선거인단에 참여해주신 도민 여러분, 경선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 고생하신 제주녹색당선거관리위원회, 경선 일정을 함께한 고권일, 고은영, 오수경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 지역은 스스로를 타자화시키는 건너 땅이라는 뜻의 제주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스스로 짓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이름으로 탄생하는 정체성도 있습니다. 우리는 제주라는 이름 그대로 물 건너 불구경하듯 이 땅의 수많은 사업에 대해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별자치도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권한이 이양되었지만, 실제 도민의 삶을 함께 만들기보다 제2공항이나 강정해군기지 등 제주도민의 삶을 무시한 각종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의 실험으로 기초자치단체를 없애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 시행의 의의를 무시했습니다.


제주의 위치는 소수자와 같습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여느 약자와 다름없이 제주의 정치적 역사적 위치는 실종되었고, 제주의 문화와 공동체는 강제로 깨어졌습니다. 저처럼 존재만으로도 음란하다고 몰리는 성소수자처럼 존재만으로도 불경하다거나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곳입니다.

탐라가 고려에 복속되고 탐라의 역사를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몽골에 침략을 당해 말을 키우는 목장이 되었습니다. 조선이 들어서서는 괴력난신을 타파한다는 이유로 제주의 전통 종교와 문화가 억압당했을 뿐 아니라, 특산물 생산과 영토의 유지를 위해 제주 밖으로 사람이 나가지 못하게 통제당했고, 가장 최악의 유배지로 꼽혔습니다.

근대 들어 일제에 침략당한 시기에는 수많은 제주도민이 강제로 동원되어 삶을 빼앗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위치가 전략적으로 좋다는 이유로 병참기지화되어 징용하여 강제 노역을 시켰고, 그 병참기지는 난징학살에 이용당하고, 미군과의 결전에 대비한 요새가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제주의 위치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3.1절 기념식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여 제주도 전역에서 총파업이 일어나자 다시 한번 총을 발포합니다. 이후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들과 군경을 동원해 빨갱이 사냥을 구실로 민간인을 강간, 폭행, 학살하였습니다. 제주의 아픔인 4.3을 다룬 작품을 제작하거나 공공연하게 상영할 경우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했습니다.

4.3뿐 아닙니다. 학교 등 공공기관에서 제주어를 쓰는 것을 막고, 학생이 쓸 경우 문제 삼으며 육지 사람이 생각하는 억양으로 추정하는 것을 기준으로 건방지다고 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제주는 스스로를 부정해야 했고, 부정당하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잘났다는 사람들을 육지로 보냈습니다.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말은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는 말처럼 우리는 우리를 위한 산업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한 산업에 종사해야 했습니다. 학문은 우리의 눈으로 보고 자생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돕기보다 육지, 해외의 유명한 명문대라는 데 보내 우리의 자존감을 스스로 깎아왔습니다.

물론 교류는 필요합니다. 폐쇄는 제주를 풍성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주의 사람은 일방적으로 종속당해왔습니다. 말을 빼앗기고, 생각을 빼앗겼습니다. 우리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데 우리의 입장보다 권력자의 입장이 우선이었습니다.

저도 육지에서 공부하고 왔습니다. 하지만, 서울도 수도권도 아닌 한 소도시의 국립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거기도 서울의 영향이 컸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말을 유지했습니다. 우리는 제주의 사람인데도 제주의 말을 빼앗겼는데, 그곳은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서울과 더 가까운 곳인데도 스스로의 말을 유지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제주는 제주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단체 선거입니다. 국가를 이루는 단위 중 풀뿌리라고 할 수 있는 각 지역의 삶과 정책을 스스로 결정하는 선거입니다. 우리는 이 선거에서 도지사, 도의원, 교육감, 교육의원을 뽑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움직여야 합니다.

선거에서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선거 이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먼저 이 선거를 통해 제주의 이름을 함께 찾을 것입니다. 지역 사회에 관하여 폭넓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이 지역에 가장 어울리는 우리의 이름을 찾기 위한 함께 노력할 것입니다.

제주라는 지방자치단체가 오롯하게 스스로 돌보고, 생존할 수 있도록 제주의 위치를 함께 다시 만들어갈 것입니다. 소외되지 않고, 제주 스스로의 모습을 스스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누구의 이념이나 이익의 잣대로 제주의 위치를 잡을 것이 아니라, 제주 스스로의 생존과 자치를 위해 제주를 만들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입니다.


제주의 사람이 바라보는 제주, 제주에 사는 사람이 살기 좋은 제주, 제주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살기 좋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을 수 있는 제주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어떤 정책의 실험대로 쓰이지 않고, 스스로 연구하여 스스로 제대로 서고,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할 수 있는 제주를 만들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입니다.


제주에 사는 어떤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제주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제주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수많은 개발만을 위한 목소리와 업체, 수치만을 대변했던 제주를 넘어 우리가 행복하고, 앞으로 살아갈 세대가 행복하며, 제주에서의 아름다운 삶이 지속가능하도록 함께 노력할 것입니다.


준비하고 있고, 더 준비할 것입니다. 오롯하게 정치를 위한 정치인이 되어 내려다보는 정치가가 아니라, 제주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며, 필요한 것을 함께 찾는 자치와 행복을 위한 제주를 함께 만들 것입니다.

행복한 제주도정은 정치하는 사람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한다는 것은 기만이고 거만한 자세입니다. 불통의 정치이기도 합니다. 모두의 인권을 존중하며 제주의 모든 것을 존중하며 대화하는 제주도를 함께 만들 수 있는 도의원이 되겠습니다.

녹색 사람들의 아름답고 행복한 녹색 여정을 모든 도민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우리가 선택하는 제주의 삶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십시오.

함께 하고 싶습니다. 손잡고 함께 합시다.

감사합니다.


2018.2.1. 김기홍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리고 계속 더 페미니스트답고자 노력하기 위해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제가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먼저 잘못하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30년 남짓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억 중에 제가 잘못했거나 잘못할 뻔한 기억들이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저를 모르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앞으로 잘못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못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제가 잘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존중 없는 삶이 무섭습니다.

저는 그다지 존중받고 살아온 것 같지 않습니다. 다르면 다른대로 비난 혹은 놀림을 받았고, 변하면 변한 것 모습만 갖고 관심을 받았습니다. 저 자신의 선택으로 오롯하게 존중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저도 존중만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존중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삶을 만들고 싶습니다.


- 소수자로 살았습니다.

존중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소수자로 살았습니다. 다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도 소수였습니다. 소수였던 만큼 배제당하고 무시당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과에서 종교적 소수자였습니다. 종교적 소수자였던 만큼 당연히 종교적 다수자에 맞추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다수인 종교에 당연히 익숙해져야 하고, 그 행동을 당연히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건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제가 화장을 한다거나 머리를 기르는 일 그게 모두 비난 혹은 배제의 대상이었습니다. 나의 개성이 아니라 나의 불만 혹은 사회에 대한 불협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소수자인 만큼 약자입니다.

정규직이 다수인 교직 사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과목도 음악이라는 단위 수가 적은 과목입니다. 화장한다고 사직서 제출 소리를 들어봤고, "교사냐 강사냐 구분"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이 인권침해라고 문제를 제기했더니 관리자 입장에서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등 무시당하고 배제당했습니다.


- 그래서 페미니스트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이 엮이고 보니 제 자유를 위해 평등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등과 연대는 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합니다. 일상의 운동가로서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합니다.

학교에서 교육 활동 외에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일까? 생활 지도이다. 생활 지도를 통해 인성, 비행, 폭력 등을 다루는 것이 맞을 것 같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외모 통제이다.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외모를 표준화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사회에서 적절한 외모의 조건이 내면화되며, 표준화된 외모 취향을 만든다.

기간제교사 면접을 보러 갈 때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이 외모이다. 면접 보는 본인 말고도 주변에서 평범하게 하라고 강조할 정도이다. 면접에서 특징적인 부분이 있으면 학생들이 본받을 것이라거나 불평등한 상황에 의문을 품을 것이라고 잠재적 교육과정을 가정하여 안 좋은 점수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

외모는 점수에 안 들어간다는 교원임용시험 2차 면접, 수업 실연 때도 다들 외모에 신경 많이 쓴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무난한 복장 색상을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여성일 경우 되도록 무릎 정도로 오는 적절한 길이의 치마 정장, 무난한 화장, 잔머리 안 빠져나오게 머리를 잘 묶어 무난한 인상을 만든다. 남성일 경우 짧고 단정해 보이게 머리카락을 자르고 무난한 인상을 만든다.

다들 잘 알고 있다.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학교에서 외모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다들 아주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16년 이상 학교에서 생활했기에 잘 알고 있다. 12년만 생활해도 잘 알 수 있다. 아니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만 관련되면 무의식중에 외모를 신경 쓰게 된다. 학교에서 계속 외모를 통제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외모의 통제를 내면화해서 타인의 외모마저 통제한다. 간혹 이렇게 '머리 긴 남자는 별로'라며 교사의 외모를 지적하는 학생도 만날 수 있을 정도이다. 어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매일 옷을 관찰한다며 옷에 굉장히 신경 쓰기도 한다. 화장 여부, 안경을 착용하느냐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느냐까지 외모에 신경 쓴다.

외모 등을 신경 쓰는 것은 인권과 관련되어 있다. 1세대 인권인 자유권적 권리에 해당하는 신체의 자유이다. 이렇게 자신의 신체를 자신이 통제할 권리를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모두가 시스젠더[각주:1]에 이성애자라고 가정하고 외모를 조건화하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타인의 권리 또한 인식할 수 없다.

남성은 짧은 머리에 바지가 당연하다. 여성은 짧은 머리에 바지를 입을 수도 있지만, 일정 이상 길이의 긴 머리에 치마가 기본값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파마나 염색은 허용하지 않으며, 교복을 짧게 만들거나 줄이는 등의 행위도 허용하지 않는다.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신체의 자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당연한 인권, 헌법적 기본권에 '허용'이라는 말이 들어가면서 제한한다. 당연한 인권, 헌법적 기본권을 가르치지 않는 것을 통해 쉽게 통제당하게 하여 우리의 권리,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게 한다. '권리를 빼앗지 마라'가 아니라 '허용해주세요'라고 하게 한다.

인권이나 기본권은 인간에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진 것이다. 이 당연한 것을 제한하면 다수의 가능성이 제한된다. 다수의 제한이 당연해지면 다름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소수자의 제한도 당연해진다.

다원화 사회에서 표준화는 필요한 일이다. 그 표준화는 다양한 것이 공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다양한 것이 공존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일부 제한은 여러 사람의 권리가 공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권리 제한이 사회가 존재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사회에는 성소수자[각주:2]가 존재한다. 학교에도 성소수자가 존재한다. 외모의 표준화는 비슷한 사람들을 똑같이 만드는 행위일 뿐 아니라 비슷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같게 만드는 성차별이다.

  1. cisgender 'cis-'는 같은 편이라는 뜻의 접두사로 태어나서 부여받은 성별(sex)과 인식하는 성별(gender)이 같은 사람을 뜻한다. 트랜스젠더에 상대적인 말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본문으로]
  2. LGBTAIQ 등 https://femiwiki.com/w/성소수자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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