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치마를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두려웠다. 당시에는 내 의도와 상관없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몰라서 굉장히 두려웠다. 그중 "너 혹시 여자가 되려고 하느냐?", "변태냐?" 따위의 이야기를 들을까 가장 두려웠다. 나름 성평등을 위한 운동을 겸해서 치마를 입으려고 했던 것인데, 남의 시선이 굉장히 두려웠다. 남의 시선을 무시하기를 좋아하면서 굉장히 두려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볍게 패션으로 시작해보고 싶었다. 예전에 몇몇 연예인이 했던 것처럼 바지 위에 랩스커트를 덧입는 식으로 시작하려고 했다. 다른 치마는 안 된다. 꼭 랩스커트여야만 했다. 전례가 있어서 꼭 랩스커트를 선택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짧으면, 바리스타 앞치마 같을 것 같기도 했고, 돌아다니기도 부담스럽고 그래서 적당히 무릎길이로 덧입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용기를 얻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나와 만나던 그가 용기를 줬다. 심지어 그는 내가 치마를 고를 때 함께 골라주기도 했다. 그때 그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던 건지, 그가 함께 골라줘서 행복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행복한 모습을 옷가게 점원에게 보여주었었다. 그일 뿐 아니라, 나중에 내가 굉장히 행복한 얼굴이었다는 이야기를 옷가게 점원에게 듣게 되며 어색함이 많이 사라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난 용기를 더 얻고 당당하게 스타킹을 신고 (당시는 겨울이라 안 신을 수는 없었다) 그 위에 치마를 입을 수 있었다.

이후로 데이트할 때 내가 치마를 입는 일도 잦았다.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나를 나로만 봤다. 다른 존재로 보지 않았다. 뭘 입든 그는 내 모습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5월부터 다시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난 치마를 입는 것을 그만두었고, 화장만 하고 다녔다.

생각해보면 화장을 본격적으로 한 것은 치마를 입은 다음이었다. 그 전에는 화장도 제대로 못 했다. 그냥 파운데이션 종류만 펴 바르고, 눈썹이나 조금 그린 정도였다. 그렇게 화장을 하면서 점차 색조 화장의 가짓수도 늘렸다. 나도 모르게 점점 풀메이크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치마 입는 것을 중단하고 화장만 하던 중, 멀리 떨어지게 되며 연인과 헤어졌다. 혼자 지내면서 화장한다고, 핫팬츠 입는다고 학생으로부터 성희롱당하고, 교무부장으로부터는 사직서 이야기에, 교원 모임 때 그 며칠 전 성희롱 예방 연수 내용과 다른 교감의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소리까지. 한동안 머리 아프고 힘든 일투성이였다. 2학기 말에 다른 학교 교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하기까지 하면서 마음이 많이 망가졌다.

시간이 지나 학년이 끝났다. 계약이 끝나고 난 새 직장을 얻지 못했다. 면접 보는 곳마다 머리 길이, 혹은 화장을 언급하며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난 백수가 됐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난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러다 여유가 생겼고, 치마를 다시 입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많이 달라졌다. 처음 치마 입을 때와 굉장히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성장하기도 했다. 많은 것을 공부했고, 더 많은 고민을 했다. 난 나를 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내 취향도 열렸다. 난 내가 선호하는 것을 알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지금 역시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지금 정확하게 내가 입기 원하는 스타일의 치마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어울리는지는 이제 뒤가 되었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우선이 되었다. 겨우 치마 하나일지 모르지만, 그 치마를 입으면서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취향을 발견하게 되었다.

겨우 한 번에 걸치는 한 조각의 옷, 치마 한 장이지만 나의 자아를 찾게 해주었고, 나의 패션 취향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 말고 여러 사람의 변화를 끌어낸 것 같다. 그 덕에 난 삶과 사람을 더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난 이전보다 좀 더 행복한 느낌이 든다. 가끔 힘들긴 하지만.

난 어릴 때부터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초능력을 가진 영웅 같은 존재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불편함을 고치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고치려고 하는 데 참여하려고 하면

"지금은 바꿀 수 없어."

"네가 간다고 바꿀 수 있을 것 같냐?"

"크면 바꿀 수 있어."

"네가 힘이 생기면 바꿀 수 있어. 그러니 지금은 참아."

그보다 더 어릴 때는 가능성을 그렇게 무한하게 이야기했으면서 중학생 때부터 되어 불합리한 것을 보며 불만을 느끼기 시작하자 어렵다는 이야기만 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참고 견디다 보면 세상을, 사람을 천천히라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갑자기 바뀐 게 아니듯 서서히 젖어 들어가게 바꾸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게 첫째는 치마 입기, 둘째는 화장하기였다. 나를 꾸미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운동이다.


인연을 대놓고 끊어본 적은 거의 없다. 항상 아직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사람을 끊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처음으로 대놓고 인연을 끊은 것은 2014년이었다. 좀 늦은 첫걸음이었다. 1999년부터 내 말을 쉽게 옮기고, 내 이름을 도용하여 책을 빌리고 몇 달이 넘도록 안 갖다 주기, 물건 빌려 가서 안 갖다 주기,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하면 쪽팔리지도 않느냐고 면박을 주기, 술 마시며 다른 사람한테 받았던 스트레스를 그대로 나한테 풀기 등등 (지나치게) 많이 참았었다. 한동안 자기 필요한 것 얻을 때까지는 조용하다가 필요한 것을 나한테 받자 태도가 바뀐 순간 터졌다. 나랑 관계없는 것을 갖고 내게 따지는데 도저히 말도 통하지 않고 감당할 수도 없었다. 본인 마음에 안 드는 정책을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건데?

그리고 한동안은 사람을 끊어낼 일이 잘 없었다. 세상에 포기할 만큼 나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좀 참아주면 지나간다. 생각해보면 본인의 문제를 언젠가는 깨달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을 또 끊었다. 폭언을 참아내는 것보다 폭언을 끊어내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내 인스타그램에 핀잔을 주는 댓글을 달기에 무시했었다. 그런데, 며칠 안 있어 동창 단체 채팅방에 내 사진을 캡쳐해 올리고는 좀 그만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난 어이 없어서

"미쳤냐? 왜 남의 사진을 함부로 캡쳐해서 올리냐?"

"미친 건 너야. 남자가 화장을 왜 해?"

이건 분명 사이버 불링[각주:1]이다. 너무 화가 나 단체 채팅방을 캡쳐할 생각도 못 하고 나왔고, 그 녀석을 차단했다. 생각해보면 이놈은 언제든 그럴 수 있는 녀석이었다. 미리 쳐냈어야 했다. 무슨 좋은 사람인 척할 거라고 사람을 그냥 두었는지 모르겠다.

이 녀석은 전에 내가 치마 입고 다닐 때 이렇게 이야기한 녀석이다.

"너 그렇게 입고 다니면 따먹힐 수 있다. 내가 아는 게이 형이 있는데, 너처럼 입고 다니는 것 보면 분명 너 따먹을 거다."[각주:2]2015/12/27 - [함께] - 치마와 성폭력

내가 출근하는데 뛰어가는 걸 보고 단체 채팅방에

"쟤 지각한다."

그를 바꾸려고 잔소리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가해에 특화되어 타인의 자존감을 짓밟는 게 전부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포기하고 피하는 게 내 삶의 질에 내 삶의 목표에 더 도움된다.


세상을 바꾸려면 내 의지와 자존을 깎아내는 이를 먼저 쳐내야 한다.

  1. CyberBullying. 가상 공간에서의 괴롭힘. [본문으로]
  2. 나를 향한 성희롱이다. 성소수자에 관한 무지이자 비하이다. [본문으로]

낙태권이라는 말 참 생소하다. 정말 생소하다. 설명을 읽거나 들을 수록 슬퍼지는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중고등학교 시절 성교육부터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난 낙태에 반대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성교육을 받을 때 들었던 낙태와 관련한 이야기는 생명 존중 밖에 없었다. "태아의 생명에 관한 윤리적 문제", "이후 임신이 어려워 질 수 있다" 같은 이야기가 거의 전부였다. 낙태와 관련한 영상을 봤던 것 같은데, 그 영상에서 낙태는 그만큼 끔찍했다. 이후 성별 감별 후 여아만 낙태하는 문제에 관한 시사 프로그램을 봤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 난 낙태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했다. 성차별과 책임지지 않는 행위라는 이유를 댔다.

성교육과정에서 피임 이야기를 아예 듣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응급 피임약 이야기 정도 들었다. 그때는 무책임한 남자들이 문제라는 이야기 밖에 못 들으며, "원하지 않는 임신 방지 목적"의 어쩔 수 없는 피임 방법으로 밖에 듣지 못했다. 그래서 낙태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었고, 들어야 할 생각도 못했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낙태에 찬성한다.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성별 감별 낙태와 낙태죄 두 가지 문제의 본질은 같다. 방향이 조금 다를 뿐, 모두 개인, 특히 임신한 여성의 신체를 도구로 바라본다는 것은 같다. 전자는 남아선호라고 하는 여아혐오와 동급의 성차별적 사회에서 남아를 낳아야 할 도구로 만들어버린 것이고, 후자는 사회의 인구를 강제로 조정하려는 인간 생산의 도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방향의 차이는 단 하나다 선별 생산이라는 제한이냐, 생산 중단 불가라는 제한이냐. 둘 모두 여성을 생산의 도구로 바라보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되어 있다. 낙태죄라는 데서 이미 여성을 도구로 바라보다 보장해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깨트리는 행위가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을 근거로 하면 낙태죄는 성별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이다. 임신할 수 없는 신체를 가진 이를 제외하고 임신 가능한 신체를 가진 이만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추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 36조 1항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2항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3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을 보았을 때에도 국가의 보장이 우선이다. 개인의 권리에 대하여 국가의 의무를 먼저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1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임신과 관련된 내용이 나와있지 않다는 여성을 생산의 도구로 보며 여성의 신체의 자유와 권리를 경시해서도 안 된다. 또한 임신이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공공복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여전히 낙태권이라는 말은 생소하다. 자기신체의 권리에 다른 말을 더 붙여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 어떤 이들은 "책임질 수 없는 행위"라는 말을 통해 임신을 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이의 책임만 강조한다. 정작 국가에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책임은 어디에 두고 그런 법을 입법하려는 것일까? "책임질 수 없는 행위"는 힘 없는 개인에게 굴레를 씌우기 위한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힘을 가진 집단이나 개인의 무책임을 막기 위한 말로만 쓰여야 한다.

- 우연히 내 진짜 욕망을 깨달았다.

치마를 입고 다닌 지 4개월이 넘었다. 나는 내가 그저 치마를 입고 싶어서 입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내 마음 깊은 곳에 권력욕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가족의 장남이며, 우리 집안의 장손인 내가 가부장제를 싫어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단지 장손인 내게 없는 그 빼앗긴 권력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고 화장까지 하는 것이었다.

평소 유입 로그를 살펴보며 검색어를 그대로 넣어 검색해보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몰랐을 뻔했다. 오늘 그 검색어 살펴보기 덕에 훌륭한(!) 글[각주:1]을 두 개나 읽게 되었다. 『남자가 치마입기?(부제: 유선형은 권력이다.)(http://blog.naver.com/handzfree/220674595980)』를 먼저 보았고, 그 글의 링크를 통해 『구조론 심리학3. 남자들이여, 치마를 입어라! -오세(http://gujoron.com/xe/277606)』라는 글도 접하게 되었다.

앞쪽 링크의 글머리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남녀평등이 점점 구현되고 있는 지구촌에 아직도 남성들에게는 불문율 처럼 금기시되는 사항이 있으니… 바로 치마입기다. 여성들은 이미 남자옷을 다 입고다녀도 괜찮은 세상인데 남자들은 치마를 못입는다. 집안에서 쫓겨나고, 거리에서는 눈총의 대상이 되고…”[각주:2]

그리고 마지막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여하튼 극한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21세기에도 이러한 터부가 남아있는데 고대시대에는 얼마나 큰 터부로 인하여 인간들이 고통을 겪고 살았을지… 남성들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여성들에게 빼앗긴 권리를 찾을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남자들도 부디 유선형 본능을 되찾을 수 있기를…”[각주:3]

난 이렇게 깨달았다. 내 행동은 여성에게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이었다.


- 권력자 남성의 특징

그런데 난 집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안 쫓아내시던데? 거리에서는 그다지 눈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 자기 할 일에 바빠 나 같은 존재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난 이미 권력을 가졌나? 으하하하하 우리 가족 최고 권력자가 나라니, 황당해서 웃음 밖에 안 나온다.

글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여성의 옷은 사회에서 상위 계층이 입을 수 있는 옷의 형태이고, 여성의 머리 또한 상위계층이 누릴 수 있는 형태로 보인다.”[각주:4]


“물론 남성들도 머리를 기르던 조선시대까지는, 상투를 틀거나 등등 작게 만드는 기술을 사용하였으나, 일제시대 단발령이 내려지고 엄청난 남성들의 반발이 있었다. 즉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가 그만큼 낮아진다는 것에 반발했던것…”[각주:5]


“권력자 남성 복장의 치마형태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통털어서 전부다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치마나 긴머리나 모두 우아한 곡선으로 되어있다. 여성의 눈화장도 마찬가지, 마치 유선형의 날씬한 물고기를 보는듯하게 눈화장을 하면, 그것이 사람의 시선을 끈다.”[각주:6]


“치마나 긴머리와 마찬가지로, 화장 또한 고대시대에는 신분의 상징이였을 것이다. 신분이 높은자가 좋은 화장을 하여, 남들이 보기에 낮은 계층과 구분이 된다. 현대사회에서도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남자또한 화장을 하고 출연을 하는것을 보면 이런 추론이 크게 틀린것은 아닐듯 하다.”[각주:7]

난 권력을 가진 자의 상징으로 머리도 기른 것이고, 치마도 입고, 대충이나마 화장을 하는 것이었다! 난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 권력도 별 권력이 다 있다.

황당할 뿐이다. 권력도 별 권력이 다 있다. 어떻게 머리 기르기, 치마 입기, 화장하기가 권력이 될 수 있을까?

조선 시대의 머리 기르기는 유교의 영향이 강했다. 효경에 나오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불감훼상효지시야(不敢毁傷孝之始也)를 보자.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몸뚱이 터럭, 살갗으로 사람의 몸 전체를 이야기한다. 이런 몸뚱이를 수지부모(受之父母), 즉 어버이로부터 물려받았다. 불감훼상(不敢毀傷), 감히 상처입히지 않는 것이, 효지시야(孝之始也), 효의 시작이라는 내용이다.

머리 기르기가 권력? 분명, 권력과 아무 관계 없다고는 못 한다. 머리 기르기보다 유교의 가르침이 권력이었다. 유교의 경전을 공부하며 수백 년을 그게 당연한 듯 살아왔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부정당하니 기분이 어떻겠는가? 나라가 만들어내고 자신도 만들어낸 그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일 것이다. 부모에게 효를 다 해야 하는 세계관이 외부에 의해서 무너지니 한 반발이었지, 머리가 길다고 권력은 아니었다. 머리가 길다고 권력이면 상투를 왜 틀까?

치마 입기가 권력이라는 것은 뒷쪽 링크가 더 가관이다.

“바지는 보통의 남성들이 취하는 삶의 양식을 집약하고 있다. 남성은 기본적으로 잉여다. 김동렬님 말대로 유전적으로 보면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여자의 세력이며 잉여이다. 공동체의 세력을 확장하고 영토를 넓히기 위해 남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차피 단 한 명만 있어도 무방한 잉여이기 때문에  공동체에 의해 마구 소모된다. 주로 전쟁의 형태로 말이다.”[각주:8]

“그들은 마구 소모되니까 옷도 아무렇게 입는다.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데 적합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남성의 옷은 거의 기능 위주이고 실용성이 기준이 된다. 남성 옷은 그야말로 '위하여'의 집합체이다. 멋에 의하여, 아름다움에 의하여. 어울림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농사짓기 위해, 사냥하기 위해, 전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각주:9]

소모되기 위해 실용적인 바지를 입혔다고 한다. 바지보다 더 먼저 등장한 실용적 복장은 짧은 치마다. 바지보다 만들기 쉽고 동작의 제한이 적다. 바지는 실용적이지만, 바지 제작과정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가장 기본적인 패턴과 꿰맬 부분만 보아도 바지가 훨씬 번거롭다. 문화권과 별개로 기술적인 면에서 바지를 입는다는 것은 권력에 더 가깝다. 말을 타지 않는 이상 실용성은 짧은 치마가 훨씬 높다.

또한, 짧은 치마가 패션 일부가 된 것은 불과 백 년도 안 된 20세기의 일이다. 그 전까지 여성은 동작의 제한이 있는 긴 치마만 입어야 했으며, 그 긴 치마를 입고 가사 노동을 해야만 했다. 전쟁 때 생산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여성을 고용했지만, 그것도 대체로 바지보다 치마를 입어야 했고, 바지가 여성의 패션이 된 것은 더 이후의 일이다.

앞쪽 링크로 다시 돌아가 유선형을 권력이라고 끌어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치마나 긴머리나 모두 우아한 곡선으로 되어 있다. 여성의 눈화장도 마찬가지, 마치 유선형의 날씬한 물고기를 보는듯하게 눈화장을 하면, 그것이 사람의 시선을 끈다.”[각주:10]

그 전에 왜 남성은 화장을 안 해도 별말을 듣지 않는지, 왜 현대에도 여성보다 남성들이 덜 꾸미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온갖 미디어를 통해 강요받는다. 여성성과 아름다움이라는 말로 강요받는다. 물론 본인의 선택과 미적 감각 때문에 자신을 꾸미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출근길에 화장하는 여성들은 본인을 위해 꾸미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꾸미는 것일까? 그 꾸미는 행위가 권력이라면 왜 남성들은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꾸미지 않는 것일까?

앞쪽 링크에서 방송을 예로 들기도 한다. 방송 출연을 위해 화장한다? 정확하게는 분장이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의 특성에 맞게 만들기도 하고, 방송에서 카메라가 비출 때 그 사람의 모습을 뚜렷하게 잡기 위해서 꾸미는 것이다. 방송을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 분장이다. 방송에 출연한다고 무슨 권력이 생기는가? 방송을 봐도 돈 더 많이 받는 남성이 분장을 좀 더 적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 여성혐오

두 링크는 여성혐오이다. 여성혐오는 한문 글자 하나 만들듯이 해석해야 한다. 혐오라는 개인의 감정을 끌고 오면 끝이 없어진다. 사전에서 보통 “여성에 대한 혐오”라고 정의하는 데, 그 사전의 편찬자가 내린 정의일 뿐 정확한 뜻이 아니다. 학자들이나 정치권에서 사회문화, 범죄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현상을 논의하며 계속 새롭게 정의한다.[각주:11]

단순하게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야기는 여성혐오라는 현상과는 그렇게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혐오감뿐 아니라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행위, 여성에 대한 편견 등을 모두 포괄하며 남성, 여성 모두에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두 링크는 여성에게 강요했던 여성성을 왜곡하여 설명하고 있다. 머리는 기를 것을 강요받았고, 바지는 못 입게 했으며, 화장은 사회적으로 여성에게만 강요했다. 그것을 특권이라고 하며, 남성이 권리를 빼앗겼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혐오일 뿐이다.

졸지에 허울뿐인 권력자가 되었다.


요즘 치마를 입는다. 치마는 특별한 때에나 반강제로 입던 것이었다. 스스로 입기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좀 넘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어색해서 청바지 위에 랩스커트로 입었었다. 그렇게 1주일 후 용기를 얻고, 스타킹 내지 레깅스를 신고 치마를 입는다. 이제 남들처럼 치마를 입은 지 3주가 지났다. 이제는 이렇게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되었다. 그런데 대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난 남성기를 갖고 태어난 인간이다.

길에서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이나 카페에 앉아 있는 것 자체는 사람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나한테 시선이 집중되는 기분도 없다.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나한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걸 알게 된 후로 별로 신경 쓰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성별을 보더라도 얼핏 보고 판단할 뿐인 것 같다. 그렇게 자세히 뜯어보지 않는다. 파마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곱슬머리에 길이는 어깨 근처. 키도 170cm가 안되는(169cm) 데다 마른 몸이다. 걸친 옷을 보면 아래는 치마, 위는 허리까지밖에 안 오는 짧은 니트, 오른쪽을 위로 하여 여미는 재킷까지 자연스럽게 남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다 가방은 성별이 느껴지지 않는 에코백.

그런데 가슴은 평평하고, 어깨는 넓다. 목에도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여성의 특징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처음부터 그렇게 자세히 볼까? 아는 사람이나 자세히 보고 나서야 “나보다 치마가 잘 어울리고 예쁘다. 어깨만 좁으면 딱인데.” 라는 말을 한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도 중성적인 인상 때문인지 나의 인상을 두고 성별에 대해 내기를 하는 한 쌍을 본 적도 있다. 혼자서 말을 할 일이 없으니 조용히 있었다. 주문한 것을 기다리는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눈치도 분명히 나다. 굳이 시비를 가리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상큼한 김선생 고객님, 주문하신 오늘의 커피 나왔습니다.” 내 음료가 나왔다고 알리는 소리에 가서 커피를 받았다. 그때 수군대던 한 쌍 중 남자의 소리 “거봐 여자 맞잖아.” 남자는 신난 표정, 여자는 묘한 표정. 내기했다면 분명 여자 쪽이 이긴 게 맞다. 둘 중 한쪽은 이겼고, 한쪽은 진 게 아닌 것 같은데 라는 표정을 잠깐 보는데, 어이없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게 뭔가?

아무튼, 평소에 나한테 대놓고 물어보거나 뭐라고 하는 사람 없으니 남의 눈이야 알게 뭔가? 그렇게 치마 입는 것 자체는 거리를 걷거나, 커피 마시러 가도 신경 쓰일 게 없었다. 어머니도 내가 치마 입고 싶어 하고,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을 안다. 여자친구도 알고 있고, 치마를 골라주기도 한다. 주변의 사람들도 치마를 입는 것 자체 갖고 타박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신경 쓰일 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요 며칠은 스트레스를 좀 심하게 받았다. 육체적인 부분은 없었지만, 성폭력과 성차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내가 치마 입은 것을 보고 뭐하는 거냐? 남자가 그런 것 왜 입느냐고 하셨다. 분명 두어 번 보셨을 텐데, 신경을 아예 안 쓰셨나? 아니면, 잘 모르셨나?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도 입었었는데? 어차피 어머니는 인정해주시고, 아버지가 화를 내는 것에 대해 나를 그냥 두라고 두둔해주셔서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문제는 친구들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 그런데, 몇 명

그런데 요 며칠은 스트레스를 좀 심하게 받았다. 육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성폭력과 성차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께서 내가 치마 입은 것을 보고 화를 내셨었다. 남자가 그런 것을 왜 입느냐고 하셨다. 분명 두어 번 보셨을 텐데, 신경을 아예 안 쓰셨나? 아니면, 잘 모르셨나?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도 입었었는데? 어차피 어머니는 인정해주시고, 아버지가 화를 내는 것에 대해 나를 그냥 두라고 두둔해주셔서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문제는 친구들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내가 페이스북에 치마를 입어보겠다고 선언한 글을 올리고, 이후에 입은 사진을 일부러 올렸다. 그렇게 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알기 시작했다. 나를 대하는 것도 별문제 없었고, 치마를 왜 입는지 정도만 물었다.

고등학교 교악대 동문회에 갔을 때도 별일이 없었다. 한 선배는 왜 치마 안 입고 왔느냐? 농담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내가 치마 입는 것에 대해 내 생각을 알게 되면서 치마 입는 것에 대해 지지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 생각을 먼저 들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튀는 사람일 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만난 친구들 모임에서는 달랐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동문회 때와 비슷하게 시작했다. 왜 치마 안 입고 오냐고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놀다가 2차가 되어 아이를 데려온 친구들은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갔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쯤에는 부부관계, 그러니까 섹스 이야기가 나왔다.

성욕이 커지는 시기가 남녀가 각각 어떠니, 남자는 일정 기간에 한 번은 빼줘야 한다느니, 어떤 형태나 도구를 사용한 섹스에 대해서 변태적이라느니, 남자는 빼줘야 한다느니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고자 취급당할까, 트랜스섹슈얼이라 오해할까 싶어 남자는 빼줘야 한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고, 그냥 자위하라고 했다. 어떤 형태나 도구를 사용한 섹스는 변태적이기에 옳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박했다.

집에 갈 때쯤 화재가 나로 바뀌었다. 섹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로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성과 복장. 엄청나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으니까.

어떤 녀석은 “너 그렇게 입고 다니면 따먹힐 수 있다. 내가 아는 게이 형이 있는데, 너처럼 입고 다니는 것 보면 분명 너 따먹을 거다.” 거기에 그럴 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녀석은 “너 왜 치마를 입고 다니냐? 성 정체성이 흔들리냐?” 아니, 그냥 입고 다닌다. 나 나름의 성 평등 운동이기도 하고, 치마 입고 싶어서 입는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말로 “너 스타일이 특이하고 앞서 나가는 건 알겠다. 일본 스타일인 것은 인정하겠는데, 이 동네에서는, 아니 한국에서는 아니다. 여기서는 절대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따먹힐 것이라는 복장이 성폭력을 부른다는 여성혐오에 가까운 전형적인 피해자 탓하기와 특정 성적 지향에 대한 비난. 성 정체성이 흔들리느냐는 타인의 성적 지향, 성별 지향 자체에 대한 비난. 여기서는 아니라는 문화상대주의를 가장한 비난. 이런 성폭력과 성차별을 띄는 비난에 굉장히 힘들었다. 덕분에 며칠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 그래도 계속

나는 스트레스에 좀 약하다. 아니, 스트레스에 약해졌다. 다시 튼튼해져야 한다. 내가 알기에 이런 식으로 성 평등, 성 인식 전환 운동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 나다. 내가 약해지면, 누가 대신 운동해줄 것인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옷을 내 마음대로 못 입으면 그것도 스트레스일 텐데, 좋아하는 일 하고 스트레스받는 게 낫다. 튼튼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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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버리어 2016.01.05 14:03 신고

    지지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남성으로서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지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 또한 치마를 입어볼까 고민해봅니다. 일단 혼자 사는 집에서라도 시작해볼게요. 머리는 기르고 있는데 치마는 더 겁이 나서 입지 않았었거든요. 님의 글 읽고 용기내봅니다.

    • 지지 감사합니다 :)
      치마를 입는 게 부담스러우시면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나 바지 위에 덧입는 것부터 시작해보셔요.
      용기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2. 리니리난 2018.05.08 12:21 신고

    안녕하세요 김선생님 치마를 자주 입고 화장하는 걸 좋아하는 행인입니다. 지정성별은 남성이에요.
    크로스 드레서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의복에 성별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이분법적으로 분류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글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공감됐어요. 특히 전 남자화장실에 들어갈 때 시선이나 사소한 성추행이 굉장히 끔찍했는데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댓글 남겼습니다.

-트랜스젠더는 화장실을 어떻게 가야 할까?

트랜스젠더는 화장실을 어떻게 가야하는 것일까? 『내가 같이 가줄게(http://www.huffingtonpost.kr/janna-barkin/story_b_8626260.html?utm_hp_ref=korea)』와 같은 글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도 우리 '딸'은 여자 화장실에 있으면 이상해 보였다. 내가 아마야를 화장실에 데리고 가면 눈에 띄게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꾸 쳐다보고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더불에 그 경험에 따라 “사람들 대부분은 어떤 화장실이 자기에게 자연스러운지 본능적으로 알고, 자신의 젠더 정체성과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고른다.“며 젠더 정체성에 맞는 화장실을 쓸 수 있게 하자고 주장한다.

거기에  “트랜스젠더, 특히 트랜스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 범죄 사례는 많이 있다.”며 통계를 보여주며 시스젠더들의 시선이 불편함을 함께 이야기한다.

나는 이 글도 조금 불편했다. 나는 시스젠더인데, 치마를 입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화장실의 성별표시

(출처 한국표준정보망 http://www.kssn.net/Pictogram/KS_pictogram_detail.asp?code=PI%20PF%20003&gotopage=1)

화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별 표시가 있다. 남성은 바지 입은 모습, 여성은 치마 입은 모습의 픽토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글을 읽지 않고 직관적으로 보기 편하라고 만든 것이다. 이런 상징은 글을 몰라도 쉽게 구분하여 들어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화장실이라는 폐쇄적 공간에 동성끼리 몰아넣음으로써 이성이 같이 있을 때 생길 수 있는 배변하는 소리가 들리거나 배변하는 모습을 보이는 민망함, 혹은 성범죄를 예방하고자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화장실의 이 성별 표시와 구분 정도로는 괜찮은 것일까?

먼저 이 성별표시가 의상을 다룬다는 것은 그 젠더가 일상적으로 착용한 복장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성이라는 젠더는 치마, 남성이라는 젠더는 바지가 당연한 규범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지를 입은 여성, 치마를 입은 남성은 어떻게 화장실에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바지를 입은 여성은 지금 굉장히 흔하다. 치마의 불편함 때문에 바지를 입는 여성도 많고, 체육복의 경우 반드시 바지를 입는다. 그래서 바지를 입은 여성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은 치마를 입은 여성과 바지를 입은 여성 사이에 서로 불편한 일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바지는 세계적으로 봤을 때 여성에게 일반적이지 않았었다. 서유럽은 여성에게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는 풍습이 있었고, 심지어 조례를 지정(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3/02/05/0619000000AKR20130205001400081.HTML)하기도 했었다. 조선 같은 곳은 예외적으로 여성이 바지를 착용하는 것이 흔했다(속바지 일지라도). 하지만, 겉은 치마였으니 바지가 겉에 보이게 입은 여성이라는 것은 20세기 이전에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바지를 입는 여성이 늘어난 것과 반대로 지금은 치마를 입은 남성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킬트 같은 전통의상이라고 해도 대부분 일상에서 입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체 행사에서 남성에게 치마를 입혀 여장이라며 조롱 내지 오락거리로 만드는 것이 가장 흔하게 보는 형태. 그외에 특별한 전공의 사람들이나 남성용 치마를 입고, 나머지는 게이(오해다 https://namu.wiki/w/여장남자#s-1.2)이거나 트렌스 젠더가 되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치마를 입은 남성이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은 불편한 일이 된다. 머리만 길어도 목욕탕, 화장실 등에서 뒷모습에 깜짝깜짝 놀라는 사람이 좀 있다. 뒷걸음질 쳐서 남자 화장실이 맞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얼굴과 복장에 안심하고 다시 들어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것을 머리 길이만으로 겪을 때는 괜찮다. 복장이 치마가 되어버리면 화장실 청소하러 들어온 여성 그 이상으로 불편한 시선이 걱정된다.

일단 남성이 치마를 입는 것 자체를 여장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만약 그게 일반적인 인식이기 때문에 여장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쳐도 그것이 왜 오락거리이거나 조롱거리, 혹은 (호모포비아로 보이는) 시스섹슈얼이나 시스젠더에 의해 따가운 시선이나 호기심 충족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일반적인 젠더 역할에 대해 불만이 있다. 모계사회든 가부장제든 차별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모두 불만이다. 능력이나 상황에 따라 역할을 나누면 될 것을 굳이 젠더 역할을 부여하면서 개인의 외모의 지향점부터 삶의 양식까지 나누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해외에는 장난감이나 캐릭터 의상 등에서 젠더 인식에 대한 변화(http://www.huffingtonpost.kr/2015/09/25/story_n_8193874.html)가 나타나는 것 같다. 어린이들의 불만을 시작으로 나타난 변화다. 아이들의 호불호를 성별을 통해 나누지 않게 하여, 아동의 취향이나 선호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를 존중하지 않는 어른들 역시 그대로 존재(http://www.huffingtonpost.kr/2015/10/22/story_n_8364204.html)하긴 한다. 장난감 부엌 세트를 바라는 아이를 갖고 성을 따지며, 비하하는 의미로 특정 성적 지향으로 만들어낸다고 비난한다. 아이의 선호를 존중하는 것이 왜 비난받을 거리가 되는 것일까? 시스젠더만이 정답이 아닐텐데, 아이의 선호까지 강제해야하는 걸까?


- 겉모습으로 판단하기는 괜찮은 것일까?

잠깐 영상을 하나 보자.

EBS 다큐프라임 - 인간의 두 얼굴 2. 2부 아름다운 세상(https://www.youtube.com/watch?v=9Gfyen0jHS4)을 보고 여성이 성격을 본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며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일부 남성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오독이다. 이 영상은 외모만으로 보는 첫인상에 대한 실험일 뿐이다. 사람들이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미리 판단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만화 선천적 얼간이들의 30번째 에피소드 헤드윅 사우나(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478261&no=31)는 머리 긴 남성들이 겪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는 많이 없을지 몰라도 비슷한 상황들이 한 번씩 발생한다. 화장실에서 뒷모습을 보고 놀란다거나 정면 가슴위 만을 보고(내가 겪었다…) 놀라기도 한다. 일부 남성으로 오해 받는 여성의 경우에도 화장실에서 비슷한 일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이렇게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당신의 눈매가 날카로워 보인다고 성격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 당신이 항상 웃는 모습이라고 무슨 일이든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당신의 눈매가 날카롭고 인상이 딱딱하여 나쁜 짓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다 허용할 수 있는가?

당신이 잠깐 졸았다고 평소 밤에 놀기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당신이 몸무게가 적어 보인다고 밥을 안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몸무게가 많아 보인다고 밥을 많이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다 허용할 수 있는가?

당신이 빛이 바랜 셔츠를 입었다고 소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당신이 갖고 싶은 휴대전화를 겨우 하나 샀는데 갑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추위에 떨지 말라고 협찬으로 받은 옷(http://www.dispatch.co.kr/429747)빅이슈 판매원이 모욕을 받는 것(http://www.insight.co.kr/newsRead.php?ArtNo=42177) 다 옳다고 생각하는가?


- 젠더 블라인드, 젠더 비순응 운동을 제안한다.

겉모습을 꾸미는 것 자체를 반대하거나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겉모습을 보고 타인을 억압하고 있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 그리고 겉모습만을 보고 문제삼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성평등(양성평등이 아니다)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젠더 블라인드 운동을 제안한다. 이 글을 읽고 이 운동에 동의하는 분은 남성의 치마입기, 채용 담당자의 경우 이력서에 사진 및 성별표시 없애기, 남녀 화장실 따로 설치 대신 장애인 구분 없는 공용 1인 화장실 2개 이상 설치, 쇼핑몰의 경우 남성복 여성복 대신 카테고리와 사이즈 상세 표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했으면 한다.

나는 공공연히 치마를 입는 것을 시작으로 젠더 블라인드 운동을 하고자 한다. 함께 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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