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는 교과서가 있는 교과만 갖고 수업하지 않는다. 교과 외에도 여러 가지 분야에 관하여 자율 시간 등을 통해 교육한다. 자율 시간을 통해 성폭력 예방, 폭력 예방, 다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교육한다. 이런 교육은 특별하게 자율 시간만 갖고 수업하지 않는다. 일반 교과 시간에 녹여내어 수업하기도 한다.

나는 그 중 성교육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보건 선생님께 찾아가서 가끔 그런 내용을 갖고 이야기를 해본다. 대화 중에 보건 선생님이 성교육을 보건에서 가져온 것을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업무만 늘어난 것뿐이면 괜찮은데, 성교육은 보건에서 전담으로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었다. '섹슈얼리티나 생물학적, 성병 예방을 넘어서 젠더 교육까지 함께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보건만이 맡기에는 역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성교육은 '모든 교과에서 다 함께해야 한다.'고 덧붙이셨다.

성교육에서 젠더가 빠진 상태는 아니다. 성교육 관련하여 보고할 때 몇몇 교과를 지정하여 그 교과에서 성교육했는지 보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그 교과가 기술가정, 도덕, 사회, 과학, 체육이다. 그 외의 교과는 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인지 보고받지 않는다.

성교육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국가는 성교육 표준안을 만들어내어 일선 학교에 배포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비웃음을 받을 만큼 질이 낮은 편이다. 실제 성교육을 그 표준안대로 집행하는 것이 문제없다고 하더라도 성교육은 은연중에 굉장히 다양한 곳에서 일어난다. 학교폭력예방 교육에서도, 일선 교과에서도,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금융교육에서도 나타난다.

남학생반 금융교육을 하는 데 우연히 들어간 적이 있다. 가서 사진이나 좀 찍어 줄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기회비용과 한정된 자원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강사분이 쉽게 설명하려고 했는지 예시를 하나 들었다.

"여자친구 있는 분 있어요?"

별 대답이 없다. 예상했는지 바로 이어 이야기를 했다.

"예쁜 여자는 한정되어 있죠?"

너무 당황스러웠다. 예쁜 여성이라는 말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여 자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시스젠더, 이성애 중심으로 학생들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고정하면서 인간을 대상화했다. 영웅호색이나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는 남성 중심의 폭력적 언사와 다를 바 없는 말이 교육 중에 나온 것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문제를 제기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인식을 고쳤다고 해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이 외부에서 올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의 젠더 인식이 괜찮다면 괜찮을까? 아니다. 학교 자체, 그 안에서도 성적 대상화는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성교육, 성폭력 예방교육에서도, 교칙 위반을 단속한다는 용의복장 단속에서도 계속 성적 대상화한다.


- 2년 전 모 학교에서 한 성폭력 예방교육

"지금부터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겠습니다. 여학생들! 짧게 입지 말고, 옷 제대로 입어라. 밤에 돌아다니지마. 남학생들! 니들이 참아! 니들만 참으면 돼."

방법도 황당하지만, 내용도 황당한 성폭력 예방교육이다. 요즘 이렇게 하는 학교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학생의 복장에 따라 성폭력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가해자 중심 사고방식은 성폭력 예방에 도움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자존감을 낮추고 후에 피해를 입었을 때 자책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그리고 이건 교육이 아니다. 복장을 핑계 삼아 일방적인 언어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성적 대상화 하도록 부추기는 것에 불과하다. 더불어 참으면 된다는 말로 성욕을 성폭력의 원인 삼아 성폭력이 어떤 관계에서 일어나는지 생각 못 하게 만든다. 차별적 말로 성 편견을 부추기는 것이다.


- 작년에 모 학교에서 한 성폭력예방교육

자율시간을 통해 성폭력예방교육 영상을 상영했다. 보면서 좀 당황스러웠다. 젠더 감수성을 키우기보다 이전에 봤던 성교육보다 조금 나아진 정도였다. 시작 부분에서 남성은 사정과 쾌락을 이야기하지만, 여성은 월경과 임신을 이야기하며 차이를 비교한다. 월경은 고통, 사정은 쾌락이라는 방식으로 여성의 쾌락을 배제한다. 남성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하지만, 여성에게는 월경으로 겪는 통증만 언급하고 성적 쾌락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성의 성적 쾌락을 감춘다.

성욕은 개인차라고 하며, 사정을 통해 남성은 성욕이 발달하지만, 여성은 초경과 비교하며 성욕의 발달이 상대적으로 늦는다고 비교한다. 자연스럽게 마찰을 통해 알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가정을 하지도 않는다. 여성은 초경 시기보다 성 경험이 늦기 때문에 성욕의 발달이 늦어진다는 정도로 넘어간다.

긍정적이게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언급하기는 한다. '사회적 관행이나 타인의 압력에 구속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나 판단에 의해 자율성 있고 책임성 있게 자신의 성적인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고 언급한다. 언급하며 '아니야'는 내숭이 아닌 의사 표현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성적인 부분에 관하여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는데 여성은 임신의 책임 따위로 성적 쾌락은 배제당한다. 더불어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공개적 연애라는 말로 반쯤 부정한다.

성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언급하지만, 성폭력을 보고 가만히 있지 말라는 말이나 성폭력에 반대하는 연대 행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더불어 성폭력의 원인도 언급하지 않으며 여성이 성폭력의 대상이라고 성적 대상화만 한다. 남성 간의 성폭력에 관한 언급은 하지도 않는다.

보는 내내 황당해서 보건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올 줄 알았다고 하셨다. 할 수 있는 게 한 시간밖에 없는데, 한 시간에 하기에 이것보다 나은 내용을 가진 것도 잘 없다고 하셨다. 원래는 각 교과에서 다양하게 접하며 해야 하는 것이 성교육인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서 안타깝다고 하셨다.

그나마 나은 성폭력예방교육 영상도 성적 대상화 자체를 피하지 못한다.


복장 단속이나 화장 단속은 성적 대상화 그 자체이다. '학교는 보수적이다. 학생답지 못하다.'는 핑계가 대부분이지만, 그 자체가 성적 대상화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개인의 권리, 존엄을 생각하지 않고 여학생이기에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그 자체가 성적 대상화이다.

청순한 아름다움, 화장기 없는 아름다움, 청초함 이런 것도 성적 매력 중 하나이다. 사람을 그 자체로 존중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성적 대상화이다.

학교에서 자주 보는 것 중 하나가 화장 단속이다. 심지어 불시 화장품 단속으로 화장품을 빼앗겼다며 엉엉엉 울며불며 대성통곡을 하는 학생도 본 적 있다. 화장을 못 하게 하는 규정이 있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화장품을 빼앗는 것은 더 이해하기 힘들다. 수업 중에 꺼내서 수업 방해한 물건만 잠시 맡아 두는 것도 아니고 검사해서 화장품을 빼앗는 것은 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도 선도부를 시켜서 하는 것은 더욱더!

나도 화장 단속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해봤다. 수업 중에 단속해서 화장솜 주고 거기에 리무버 잘 흔들어서 뿌려준 다음 스스로 닦게 했다. 그런데 그것도 지쳤다. 동의하지 않는 일을 단지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하는 것도 싫었다. 나중에는 그것도 지쳐서 살살 모른 척했다. '내가 아니라도 누가 하겠지. 아무도 안 하면 더 좋겠지.' 대충 이런 생각으로 모른 척했다.

언제인지 기억 잘 안 나지만 화장 단속하면서 여러 학생을 교무실에 불러다 무릎 꿇게 하고서는 반성을 요구하는 것도 본 적 있다. 심지어 학생의 보호자에게 전화해서 학교에까지 부르기까지 했다. 보호자를 불러 학생이 엄청나게 큰 잘못을 저지른 양 화장을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엄청나게 황당했었다. 대체로 보호자를 부르는 것은 지속적인 폭력 행위, 금품 갈취 등 타인에게 피해를 준 사건이다. 피해도 안 주는 화장, 겨우 화장으로 부르다니!


한 번은 화장을 왜 단속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애들 피부에도 안 좋잖아. 나중에 크면 화장하면서 피부 더 상할 텐데."

좀 당황스러운 답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학생의 본분 운운하지 않고, 성적 대상화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장 좋은 대답이었을 것이다. 나는 거기에 대고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면 잘 지울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그 뒤의 대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입장에 부정적이었다는 정도만 생각난다. 술 마시던 자리에서 물어본 것이라 잘 기억 안 난다.


학교라면 통제보다는 교육이 바르다고 생각한다. 왜 화장을 문제 삼는지 설득해야 하고, 성교육을 통해 성적 대상화부터 성적 자기결정권까지 스스로 생각하고 주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화장은 도덕의 문제도 규범의 문제도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덕의 문제, 규범의 문제로 만들면 여성 노동자에 대한 화장 요구, 외모 요구가 당연해진다.

학교에서 화장을 단속하게 되면 한 성만 대상으로 한다. 당연히 남학생은 안 할 것으로 생각해서 제외한다. 그러니깐 여학생만을 대상으로 화장을 단속하게 된다. 화장품을 빼앗거나 화장을 강제로 지우게 하는 것 오로지 여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반면 일반적으로 남학생만을 대상으로 머리 길이를 단속하게 된다. 이는 성역할이나 성에 따른 외모 고정관념을 만들 우려가 있다.

화장을 단속하는 모습을 보는 남학생은 남학생대로 은연중에 화장은 여성의 욕망으로만 학습하게 될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여자가 화장하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성역할에 관한 생각이 고정될 것이다. '무슨 여자가 화장도 안 해?', '무슨 여자가 꾸밀 생각도 안 해?' 이렇게.

여학생은 여학생대로 성적 대상화에 저항하는 데 무력하게 될 것이다. 화장을 통해 외모를 꾸미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니까 자기결정권, 즉 권리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중고등학생 때는 화장해서는 안 돼. 어차피 사회 나가면 꾸미게 되어 있어'라는 말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내면화하게 만든다. 선택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으로 만들어 개인의 꾸밈을 선택이 아닌 사회의 요구로 만들어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게 한다. 이것이 여성의 성적 대상화이다.

최근 CJ 등을 비롯한 서비스 관련 기업에서 여성 노동자에게 강요했던 외모를 생각해보면 학교와 별 차이가 없다. 남성의 외모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여성의 외모만 관여한다.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 화장, 긴 머리는 단정하게 묶기, 화장하기 등등. 화장을 못 하게 하는 것에서 당연히 화장하는 것으로 바뀌었지 화장을 강요하는 태도는 똑같다.

학교에서 학생들 외모 꾸미는 것을 단속하는 것에 관하여 솔직해지자. 그리고 생각해보자. 그건 성적 대상화가 아닌지 다시 한번 고민해보자.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인지 아닌지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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