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민회의 <돌, 바람 그리고 페미니스트 아카데미> 7주간의 일정 중 벌써 5주가 지났다. 한 주에 한 주제씩 이야기를 했는데, 흥미로운 주제 덕에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제까지 했던 강의는 이렇다.

1강 LGTB/퀴어,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 한채윤님 <동성애 혐오와 한국 개신교의 상관관계>

2강 넷페미니스트,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님 <대한민국 넷페미史 들여다보기>

3강 여성과 노동,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현미님 <'나'의 노동과 '너'의 노동은 왜 다른가?>

4강 제주 여성, 제주여민회 공동대표 김영순님 <'강인한 제주 여성' 담론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5강 데이트 폭력, 한국여성의전화 전문위원 문채수연님 <나의 연애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1강은 퀴어에 관한 내용인데, '개신교가 왜 동성애에 집착하게 되었는가?'하는 게 주 내용이다 보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용은 좋았지만, 퀴어에 관한 내용이 궁금했던 다른 분들은 조금 당황스러워하기도 했다.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는 교리에 따른다고 보기에는 모순되는 점도 있어서 궁금했는데, 대형 교회를 비롯한 보수 교단의 세력화 중에 필요에 의한 새로운 타깃이 된 것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말씀이 너무 많으셔서 3시간이 부족했다. 의아함과 별도로 강의내용은 흥미진진해서 3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를 정도였다.


2강은 대한민국 넷페미스트들의 이야기 중 90년대 영 페미니스트 이야기였다. 이미 권김현영 선생님의 책 대한민국 넷페미史를 읽은 터라. 아는 내용을 반복해서 듣는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흥미롭게 들은 것 같다.


3강은 여성의 노동에 관한 학술적 이야기였다. 신자유주의가 여성 노동과 사회적 재생산에 끼친 영향을 이야기했다. 강의 끝난 후의 질의 응답이 다른 강의보다 길어서 강의 자체보다는 질의응답이 가장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5강은 데이트 폭력의 명명에 관한 이야기부터 실제 데이트 폭력 피해사례와 통계 자료, 한국 사회의 일방적 정조 관념 등을 제시하며 이야기했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것과 관련한 여성의 정치적 위치에 관한 슬픈 이야기였다.


4강은 솔직히 별 기대하지 않았다. '강인한 제주 여성' 담론을 비판적으로 봐봐야 얼마나 비판적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신화에서부터 강인하고 주체적인 여성이 등장하는 것이 제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부터 현대의 해녀 이야기까지 뒤집어 이야기했고, 제주 여민회가 함께 했던 싸움까지 넓고 깊은 이야기 덕에 이제까지 강의 중 가장 흥미로운 강의였다. 이 강의 내용은 더욱더 여러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1.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강인한 제주 여성

제주를 만든 존재는 여신 설문대 할망이다. 여성이 만든 강인한 여성의 세상이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설문대 할망의 죽음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 중 한 가지를 통해 제주가 가부장제에 물들며 여성이 착취당해가는 모습을 이야기했다. 설문대 할망의 죽음은 물장오리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와 오백장군을 먹일 죽을 끓이다 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중 오백장군 이야기는 500명의 아들을 먹이기 위해 죽을 끓이다 죽은 이야기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내용이다. 아들들은 모두 바깥일, 여성은 살림을 한다. 죽을 떠먹는 것도 500명이 각자 뜨지만, 맏이부터 500째까지 순서대로 뜬다. 500째가 죽에서 뼈를 발견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가부장제의 여성과 위계가 모두 나타난다. 또한, 살림을 하다 거기서 죽는다는 것은 가부장제에서 여성의 희생을 단적으로 상징한다고 했다. 원래의 정확한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제주가 이전과는 달리 여성이 가부장제에 희생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가믄장애기 이야기를 통해 남자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데서 보이는 결혼에서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자청비 이야기를 통해 문 도령이라는 남성에게 지지 않는 여성의 모습과 주체적 연애를 하려는 여성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또한 소를 잡아먹었다고 남편을 쫓아내는 백주또의 모습에서 결혼에 목매달지 않는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강인한 제주 여성상이 얼추 맞아 들어간다. 하지만, 가부장제에 희생되는 여성의 모습이 없는 것도 아니다.


2. 강인함과 융합으로 포장한 제주여성의 희생

아이업게 설화 등으로 알 수 있는 성적인 수탈을 사회 참여로 미화하며, 여군이었던 여정을 화살받이로 썼다는 것을 여성이 주체적으로 수행한 국방의 의무로 미화하였으며, 이재수의 난 때 죽임을 당해야 하는 존재인 적진에 보내는 사신을 여성을 보내 희생시킨 것을 주체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것으로 미화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3. 마을 포제와 굿으로 보는 제주의 양면

포제는 유교와 가부장제가 들어오며 남자들만의 행사로 만들었고, 이후 요리와 관련한 노동력이 필요하자, 피 흘리지 않는 여성은 부정 타지 않는다는 이유로 완경된 여성만을 데려와 일을 시켰다. 반면, 굿당에서 굿은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었고, 몇몇만의 폐쇄적인 의식이 아니라 개방적 의식으로 공동체의 행사였다.


3. 삼다도의 신화에서 우근민의 성추행까지 20세기의 제주 여성 착취.

삼다가 실제 존재했던 시기는 굉장히 짧았다. 제주에서 젊은 여성이 많던 시기는 1947~1954년으로 4.3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남성이 살해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서북청년단의 성 착취, 서북청년단 이후 혼자 사는 여성을 강간하여 작은 각시라는 이름으로 불러 살게 하는 등의 여성 착취가 다양하게 일어났던 시기이다. 이 이후로 제주 여성은 정조의식이 없다며 여성혐오적 소문이 돌았다.

관광지로 개발되며 일본인 기생관광이 있었다. 일본인들이 관광지인 제주에서 성매매를 일삼았으며, 이 역시 제주 여성을 희생자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제주 여성 혐오의 근거가 되어버렸다. 이 당시 국내 관광객들도 들어오면서 제주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세 가지 바리라며 다금바리, 붉바리, 비바리라며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였다.

비바리는 20대 초 전후 나잇대의 여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청소년 여성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앞에서 관광과 관련하여 성적인 의미로 비바리를 비하했는데, 제주 초콜릿을 개발하며 이름을 비바리 초콜릿으로 지었던 문제가 있었다. 제주도민 외에는 잘 이해를 못 했지만, 제주여민회가 문제를 공론화하며 제주도민들의 반발로 안 쓰이게 되었다.

우근민의 성추행 사건은 제주여민회가 크게 공론화했지만, 도내 정치에서 진보 지식인들의 반한나라당 친민주 의식과 선거를 앞두고 정치 공세라는 오해에 한참을 싸웠다고 했다. 이후 선거법 위반으로 중간에 낙마하고, 2006년에 성추행이라고 판결도 받았지만, 2010년 다시 출마하려고 하면서 이 내용을 숨기고 맞서는 바람에 다시 싸워야 했다.


4. '강인한 제주 여성은 제주 해녀' 신화 걷어내기

일부 연구자의 연구와 달리 제주에서 겪은 해녀는 딸에게 대물림시키고 싶지 않은 힘든 직업이며, 자기 대에서 끝내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지리적인 요건으로 봤을 때 제주 해녀가 제주 여성을 대표하기에는 어렵다. 제주 여성의 직업은 해녀 외에도 다양했다. 제주 해녀의 이주 노동을 지우기도 하며, 제주만의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해녀의 눈이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해녀를 대상화하는 것이다.

더불어 해녀들이 바다를 지키고 싶어 한다기보다 바다를 메울 때 가장 먼저 찬성하는 모습에서 볼 때 해녀 일은 숭고하기보다 너무 험하고 노동량이 너무 많은 일일 뿐이다. 또한, 해녀의 노동 강도가 센 이유 중 하나가 가족 부양인데, 가족과 지역사회를 위한 인내와 근면, 강인함은 타자화된 여성의 모습이며 제주 여성을 억압하는 또 하나의 담론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필기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기억나지 않는 것도 많다. 중요한 건, 비판적인 시각을 놓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의 학문적 업적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거기서 그치고 후속 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현장에 사는 사람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의 시각을 내재화하는 것은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일 뿐이다. 이 강의는 나한테 제주를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의식화였다. 프락시스가 뒤따라야겠지만, 기억하지 못하면 의식화마저 무너질까 이렇게 기록한다.

학교에서는 교과서가 있는 교과만 갖고 수업하지 않는다. 교과 외에도 여러 가지 분야에 관하여 자율 시간 등을 통해 교육한다. 자율 시간을 통해 성폭력 예방, 폭력 예방, 다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교육한다. 이런 교육은 특별하게 자율 시간만 갖고 수업하지 않는다. 일반 교과 시간에 녹여내어 수업하기도 한다.

나는 그 중 성교육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보건 선생님께 찾아가서 가끔 그런 내용을 갖고 이야기를 해본다. 대화 중에 보건 선생님이 성교육을 보건에서 가져온 것을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업무만 늘어난 것뿐이면 괜찮은데, 성교육은 보건에서 전담으로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었다. '섹슈얼리티나 생물학적, 성병 예방을 넘어서 젠더 교육까지 함께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보건만이 맡기에는 역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성교육은 '모든 교과에서 다 함께해야 한다.'고 덧붙이셨다.

성교육에서 젠더가 빠진 상태는 아니다. 성교육 관련하여 보고할 때 몇몇 교과를 지정하여 그 교과에서 성교육했는지 보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그 교과가 기술가정, 도덕, 사회, 과학, 체육이다. 그 외의 교과는 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인지 보고받지 않는다.

성교육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국가는 성교육 표준안을 만들어내어 일선 학교에 배포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비웃음을 받을 만큼 질이 낮은 편이다. 실제 성교육을 그 표준안대로 집행하는 것이 문제없다고 하더라도 성교육은 은연중에 굉장히 다양한 곳에서 일어난다. 학교폭력예방 교육에서도, 일선 교과에서도,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금융교육에서도 나타난다.

남학생반 금융교육을 하는 데 우연히 들어간 적이 있다. 가서 사진이나 좀 찍어 줄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기회비용과 한정된 자원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강사분이 쉽게 설명하려고 했는지 예시를 하나 들었다.

"여자친구 있는 분 있어요?"

별 대답이 없다. 예상했는지 바로 이어 이야기를 했다.

"예쁜 여자는 한정되어 있죠?"

너무 당황스러웠다. 예쁜 여성이라는 말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여 자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시스젠더, 이성애 중심으로 학생들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고정하면서 인간을 대상화했다. 영웅호색이나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는 남성 중심의 폭력적 언사와 다를 바 없는 말이 교육 중에 나온 것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문제를 제기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인식을 고쳤다고 해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이 외부에서 올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의 젠더 인식이 괜찮다면 괜찮을까? 아니다. 학교 자체, 그 안에서도 성적 대상화는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성교육, 성폭력 예방교육에서도, 교칙 위반을 단속한다는 용의복장 단속에서도 계속 성적 대상화한다.


- 2년 전 모 학교에서 한 성폭력 예방교육

"지금부터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겠습니다. 여학생들! 짧게 입지 말고, 옷 제대로 입어라. 밤에 돌아다니지마. 남학생들! 니들이 참아! 니들만 참으면 돼."

방법도 황당하지만, 내용도 황당한 성폭력 예방교육이다. 요즘 이렇게 하는 학교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학생의 복장에 따라 성폭력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가해자 중심 사고방식은 성폭력 예방에 도움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자존감을 낮추고 후에 피해를 입었을 때 자책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그리고 이건 교육이 아니다. 복장을 핑계 삼아 일방적인 언어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성적 대상화 하도록 부추기는 것에 불과하다. 더불어 참으면 된다는 말로 성욕을 성폭력의 원인 삼아 성폭력이 어떤 관계에서 일어나는지 생각 못 하게 만든다. 차별적 말로 성 편견을 부추기는 것이다.


- 작년에 모 학교에서 한 성폭력예방교육

자율시간을 통해 성폭력예방교육 영상을 상영했다. 보면서 좀 당황스러웠다. 젠더 감수성을 키우기보다 이전에 봤던 성교육보다 조금 나아진 정도였다. 시작 부분에서 남성은 사정과 쾌락을 이야기하지만, 여성은 월경과 임신을 이야기하며 차이를 비교한다. 월경은 고통, 사정은 쾌락이라는 방식으로 여성의 쾌락을 배제한다. 남성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하지만, 여성에게는 월경으로 겪는 통증만 언급하고 성적 쾌락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성의 성적 쾌락을 감춘다.

성욕은 개인차라고 하며, 사정을 통해 남성은 성욕이 발달하지만, 여성은 초경과 비교하며 성욕의 발달이 상대적으로 늦는다고 비교한다. 자연스럽게 마찰을 통해 알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가정을 하지도 않는다. 여성은 초경 시기보다 성 경험이 늦기 때문에 성욕의 발달이 늦어진다는 정도로 넘어간다.

긍정적이게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언급하기는 한다. '사회적 관행이나 타인의 압력에 구속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나 판단에 의해 자율성 있고 책임성 있게 자신의 성적인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고 언급한다. 언급하며 '아니야'는 내숭이 아닌 의사 표현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성적인 부분에 관하여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는데 여성은 임신의 책임 따위로 성적 쾌락은 배제당한다. 더불어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공개적 연애라는 말로 반쯤 부정한다.

성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언급하지만, 성폭력을 보고 가만히 있지 말라는 말이나 성폭력에 반대하는 연대 행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더불어 성폭력의 원인도 언급하지 않으며 여성이 성폭력의 대상이라고 성적 대상화만 한다. 남성 간의 성폭력에 관한 언급은 하지도 않는다.

보는 내내 황당해서 보건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올 줄 알았다고 하셨다. 할 수 있는 게 한 시간밖에 없는데, 한 시간에 하기에 이것보다 나은 내용을 가진 것도 잘 없다고 하셨다. 원래는 각 교과에서 다양하게 접하며 해야 하는 것이 성교육인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서 안타깝다고 하셨다.

그나마 나은 성폭력예방교육 영상도 성적 대상화 자체를 피하지 못한다.


복장 단속이나 화장 단속은 성적 대상화 그 자체이다. '학교는 보수적이다. 학생답지 못하다.'는 핑계가 대부분이지만, 그 자체가 성적 대상화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개인의 권리, 존엄을 생각하지 않고 여학생이기에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그 자체가 성적 대상화이다.

청순한 아름다움, 화장기 없는 아름다움, 청초함 이런 것도 성적 매력 중 하나이다. 사람을 그 자체로 존중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성적 대상화이다.

학교에서 자주 보는 것 중 하나가 화장 단속이다. 심지어 불시 화장품 단속으로 화장품을 빼앗겼다며 엉엉엉 울며불며 대성통곡을 하는 학생도 본 적 있다. 화장을 못 하게 하는 규정이 있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화장품을 빼앗는 것은 더 이해하기 힘들다. 수업 중에 꺼내서 수업 방해한 물건만 잠시 맡아 두는 것도 아니고 검사해서 화장품을 빼앗는 것은 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도 선도부를 시켜서 하는 것은 더욱더!

나도 화장 단속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해봤다. 수업 중에 단속해서 화장솜 주고 거기에 리무버 잘 흔들어서 뿌려준 다음 스스로 닦게 했다. 그런데 그것도 지쳤다. 동의하지 않는 일을 단지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하는 것도 싫었다. 나중에는 그것도 지쳐서 살살 모른 척했다. '내가 아니라도 누가 하겠지. 아무도 안 하면 더 좋겠지.' 대충 이런 생각으로 모른 척했다.

언제인지 기억 잘 안 나지만 화장 단속하면서 여러 학생을 교무실에 불러다 무릎 꿇게 하고서는 반성을 요구하는 것도 본 적 있다. 심지어 학생의 보호자에게 전화해서 학교에까지 부르기까지 했다. 보호자를 불러 학생이 엄청나게 큰 잘못을 저지른 양 화장을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엄청나게 황당했었다. 대체로 보호자를 부르는 것은 지속적인 폭력 행위, 금품 갈취 등 타인에게 피해를 준 사건이다. 피해도 안 주는 화장, 겨우 화장으로 부르다니!


한 번은 화장을 왜 단속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애들 피부에도 안 좋잖아. 나중에 크면 화장하면서 피부 더 상할 텐데."

좀 당황스러운 답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학생의 본분 운운하지 않고, 성적 대상화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장 좋은 대답이었을 것이다. 나는 거기에 대고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면 잘 지울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그 뒤의 대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입장에 부정적이었다는 정도만 생각난다. 술 마시던 자리에서 물어본 것이라 잘 기억 안 난다.


학교라면 통제보다는 교육이 바르다고 생각한다. 왜 화장을 문제 삼는지 설득해야 하고, 성교육을 통해 성적 대상화부터 성적 자기결정권까지 스스로 생각하고 주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화장은 도덕의 문제도 규범의 문제도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덕의 문제, 규범의 문제로 만들면 여성 노동자에 대한 화장 요구, 외모 요구가 당연해진다.

학교에서 화장을 단속하게 되면 한 성만 대상으로 한다. 당연히 남학생은 안 할 것으로 생각해서 제외한다. 그러니깐 여학생만을 대상으로 화장을 단속하게 된다. 화장품을 빼앗거나 화장을 강제로 지우게 하는 것 오로지 여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반면 일반적으로 남학생만을 대상으로 머리 길이를 단속하게 된다. 이는 성역할이나 성에 따른 외모 고정관념을 만들 우려가 있다.

화장을 단속하는 모습을 보는 남학생은 남학생대로 은연중에 화장은 여성의 욕망으로만 학습하게 될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여자가 화장하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성역할에 관한 생각이 고정될 것이다. '무슨 여자가 화장도 안 해?', '무슨 여자가 꾸밀 생각도 안 해?' 이렇게.

여학생은 여학생대로 성적 대상화에 저항하는 데 무력하게 될 것이다. 화장을 통해 외모를 꾸미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니까 자기결정권, 즉 권리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중고등학생 때는 화장해서는 안 돼. 어차피 사회 나가면 꾸미게 되어 있어'라는 말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내면화하게 만든다. 선택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으로 만들어 개인의 꾸밈을 선택이 아닌 사회의 요구로 만들어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게 한다. 이것이 여성의 성적 대상화이다.

최근 CJ 등을 비롯한 서비스 관련 기업에서 여성 노동자에게 강요했던 외모를 생각해보면 학교와 별 차이가 없다. 남성의 외모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여성의 외모만 관여한다.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 화장, 긴 머리는 단정하게 묶기, 화장하기 등등. 화장을 못 하게 하는 것에서 당연히 화장하는 것으로 바뀌었지 화장을 강요하는 태도는 똑같다.

학교에서 학생들 외모 꾸미는 것을 단속하는 것에 관하여 솔직해지자. 그리고 생각해보자. 그건 성적 대상화가 아닌지 다시 한번 고민해보자.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인지 아닌지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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