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학생회에 있었다. 일을 잘하지는 못해서 그때 학우들께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 여하튼 학생회를 겪은 덕에 학생회에 관심이 많다. 특히 학생회의 자치와 자주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학생회를 보면 항상 안타깝다. 대부분 교칙에 어긋나는 것 따위나 단속하는 선도부 역할밖에 못 하는 모습 때문이다. 어른들이 못 하게 막는 탓이 가장 큰 것 같다. 그래도 매해 공약으로 어떻게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킬까 기대하며 11월에 하는 학생회 선거를 유심히 살펴본다.

2016년에 겪은 학생회 선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약은 살색[각주:1](살구색, 베이지색) 스타킹 허용이다. 그 중 '허용'이라는 단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치마 교복을 입는 학생들이 보온을 위해 신는 스타킹인데, 그게 검은색이 아닌 살색이라는 이유로 '불허'하고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맨다리나 검은색 스타킹은 되는데!

그 공약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학교에서는 살색 스타킹을 신는 곳이 많았다. 내가 순회 가는 학교는 살색 스타킹을 신는 학생들도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그 공약을 보고 다른 학교에서는 신는데 왜 못 신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말이 오갔다. 한 선생님이 너무 궁금해서 학생들 복장 규정과 가장 밀접한 학생부에 물어보았다.

"살색 스타킹을 왜 못 신게 하는 거? 이해를 못 하겠는데? 추우면 신을 수 있는 거 아니? 검은색만 신어야 돼?"

학생부의 계원인 선생님이 답했다.

"중부지역 학생부 협의회(대충 이렇게 기억한다.)에서 살색 스타킹을 신고 다리 벌려서 앉는 여학생들 때문에 남선생님들이 곤란해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심지어 속바지도 안 입어버려서 난감해서 살색 스타킹을 허용하지 않기로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난 여기까지 듣고 교무실 밖으로 나와버렸다. 수업 준비하러 가야 할 시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짜증이 났다. 권리에 앞서는 통제 중심주의, 그것도 성폭력 예방은 가해자가 해야 하는 것인데 그 예방을 피해자인 여성이 해야 한다는 투라 짜증이 났다. 이미 여성인 선생님께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어서 내가 끼어들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른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복 입을 때 맨다리에 속바지 안 입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다리 벌리는 경우가 많다. 속옷이 보일 것 같으면 안 보면 되는 일 아닌가? 아니면 책상 앞을 가리면 되는 것이다. 별로 어려운 일 아니다. 아니면 치마 교복을 없애고 바지 교복만 입게 하면 된다. 그건 그저 교사 중심으로 학생을 통제하는 것일 따름이다.

또 다르게 생각하면 다리 벌렸을 때 검은 스타킹을 신은 상태거나 속바지를 입은 경우에는 치마 속 보는 것이 안 민망하다는 이야기이다. 치마 속이 보이면 그 속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에 관한 반성은 애초에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네가 왜 안 가렸느냐며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성폭력이 발생하면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1. 살구색이 인권적인 관점에서 맞는 표현이지만, 공약에서 표현이나 실제 겪었던 표현 떄문에 살색으로 썼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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