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일 #오늘의미모 라는 태그로 화장한 후의 모습을 셀카로 찍어 올린다. 상의로 블라우스를 입기도 하고, 셔츠나 후드티를 입기도 한다. 가끔은 다른 사진도 올린다. 전신을 찍을 수 있는 거울이 있으면 전신을 찍어 올린다. 스타킹 신고 반바지 입은 모습을 올렸을 때 이런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예전의 멋있는 모습은 어디 갔나요?"

내 답은 '난 언제나 멋있는데?'였다. 난 내가 꾸미는 행위를 즐기고, 내 삶을 당당하게 살아간다. 얼마나 멋진가? 난 부끄럽게 살지 않는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오늘의미모 셀카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너 왜 계속 그러고 다니냐?, 왜 계속 여장하고 다니냐고 한두 번은 장난인 줄 알았다."

좀 당황스러웠다. 나는 여장한 적이 없다. '이게 뭐가 여장이에요?'라고 답하긴 했지만, 전에 겪었던 나보고 미쳤다고 한 녀석이 생각나 글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여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여장02(女裝) 「명사」 남자가 여자처럼 차림. 또는 그런 차림새.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반대말 남장01(男裝) 「명사」 여자가 남자처럼 차림. 또는 그런 차림새.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중 중 소수자의 의사를 별로 존중하지 않고 소수자 억압에 관한 의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립국어원의 정의가 낱말의 '뜻'이라고 불리는 게 제일 싫다. 언어의 정의는 헤게모니 싸움인데, 그 헤게모니 싸움을 피하는 척 강자의 처지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빌려온 것은 내가 인식할 수 있는 한계 때문이다. 내가 소수자이기 때문에 비소수자의 이야기를 할 때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빌려와야만 한다. 그래야 소수자 입장에서 그 인식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하면 난 저 정의에 따른다고 해도 여장한 적이 없다. 물론 나는 화장하고 다닌다. 블라우스도 입고, 스타킹을 신고 반바지나 치마를 입기도 한다. 화장은 화장대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할 뿐이고 딱히 여성용이라고 표시되어 판매되는 상품도 아니다. 스타킹도 뭐 여성용이라고 나오지도 않는다. 반바지도 마찬가지. 치마나 블라우스는 여성복 분류로 판매되긴 하지만 내 몸에 맞아서 입을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여장이라 부르기도 황당한 게 나는 여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 나는 여자처럼 차린다는 것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내가 입고 싶다고 생각한 대로 입는다. 여자처럼 차린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처음 입을 때 용기를 내어 입긴 했지만, 타인의 무지한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처음 화장할 때에도 용기를 내긴 했지만, 그건 내 화장의 수준 때문이지 화장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여자처럼'이라는 내 인식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여장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나는 내 젠더를 고민하는 사람 젠더 퀘스처너(Gender Questioner)[각주:1]이다. 젠더퀴어[각주:2] 혹은 논바이너리(Non-Binary)[각주:3] 쪽으로 고민하고 있다. 안드로진[각주:4] 내지 뉴트로이스[각주:5] 혹은 데미메일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100% 남자가 맞는지부터 의문을 품고 있으므로 여장의 전제인 남자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젠더 고민 끝에 나는 100% 남자라고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첫째에서 말한 여자처럼 차림새를 가꾸는 것 자체에 의문을 가진 이상 여장이 되기 힘들다.

셋째, 반대로 남장을 끌고 와보자. 여자가 남자처럼 차려입는 것은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서 남성만이 입는 옷이 뭐가 있을까? 없다. 또 여자는 반드시 화장해야 하나? 아니다. 화장하지 않는 여자도 있다. 여장의 반의어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금 무슨 사회적 의미가 있는 단어인가? 단어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도 남자가 바지를 입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바지를 입고 화장을 하지 않는 여자가 많다고 그에 빗대어 여장했다고 할 것인가?

난 내 생물학적 성별이 XY 염색체의 남성이라 추정[각주:6]하고 있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0세기에 태어난 남성을 가리키는 1로 지정 성별은 남성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성역할을 강제로 부여받아 산다. 난 그 성역할을 강제하는 게 싫다. 내가 어떻게 생겼든 어떻게 살든 나는 성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존중받고 싶다. 젠더라는 프레임으로 나를 보게 하고 싶지 않다.

  1. 자기 자신의 젠더에 의문을 품는 사람 [본문으로]
  2. 성정체성 소수자. [본문으로]
  3. 성정체성 소수자로 젠더 이분법(여성과 남성으로만 구분)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 [본문으로]
  4. 남성을 뜻하는 Andro와 여성을 뜻하는 Gyne의 합성으로 양쪽의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다. 바이젠더가 왔다갔다 하는 것이라면 안드로진은 모두 섞여 있는 상태를 뜻한다. [본문으로]
  5. Neutrois,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에 가깝다. 중성 정도? [본문으로]
  6. 검사한 적 없으니까 [본문으로]

'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때 그 시절, 그리고 성희롱의 경계라는 것  (0) 2017.04.23
제모하기  (0) 2017.04.08
여장하는 남자?  (0) 2017.04.05
오랜만에 입은 치마  (0) 2017.04.02
스타킹 신고 반바지 입기  (0) 2017.03.29
크로스드레싱  (0) 2017.03.28

크로스드레싱이라는 말이 있다. '특정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반대 성별이 입는 것으로 인식되는 옷을 입는 행위'라고 위키백과에 나와 있다. 드랙퀸(Drag Queen) 같이 유희를 목적으로 과장되게 여성처럼 치장하고 행동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성복장도착 같은 성적 도착증도 있다. 그 외에 변장이나 다른 것들을 목적으로 이성의 옷을 입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남성기가 있는 주민등록상 남성이다. 그리고 여성복이라고 하는 것들을 입는다.

나는 블라우스를 즐겨 입는다. 바지도 레깅스 같은 핏의 스키니 진을 즐겨 입었고, 여름이면 핫팬츠를 입고 다닌다. 거의 1년간은 입지 않기는 했지만 한동안 치마도 입고 다녔었다. 나는 유희 목적으로 입고 여성(이라고 생각되는 모습)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니 드랙퀸은 아니다. 성적 쾌감을 느끼지도 않으니 복장도착도 아니다. 그러면 나는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것일까?

나는 옷을 살 때 여성복 판매점에서 산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남성복은 잘 살펴보지 않는다. 바지를 사거나 티셔츠나 니트를 살 때도 불편함 없이 산다. 온라인에서는 내 사이즈 재둔 것과 비교해서 보면 입는 데 무리 없고, 오프라인에서는 단골 가게가 있어서 들어가면 편안하고 여유 있게 고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남성복보다 저렴하기도 하지만 모양이 다양해서 좋다. 그래서 여성복 판매점에서 산다. 

트위터에서 나와 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하게 옷을 입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FTM[각주:1] 트랜스젠더인데, 샬랄라 원피스나 치마 입기도 좋아한다고 했다. 일단 남성이 된 사람들인데 여성의 옷이라고 불리는 옷을 입는다. 그러면 이들은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것일까? 원래는 여성이었는데 남성이 되었다고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것일까?

난 옷을 입을 때 이성의 옷이라는 생각을 하고 입지 않는다. 성별을 둘로만 나누고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이분법적 사고도 싫어한다. 사회 통념상 치마나 블라우스는 여성만 입는 옷이다.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사람일 수는 있겠지만 나는 반대 성별의 옷을 입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지 예뻐 보여서 입으면 어울릴 것 같은 옷을 입을 뿐이다.

난 머리도 기르고 화장도 한다. 그렇게 보면 통념상 여성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나는 내 성별을 여러 가지로 고민하는 젠더 퀘스처너[각주:2]이지만 여성이 되려는 생각은 없으니 트랜스젠더도 아니다. 젠더 이분법으로부터도 탈출하고 싶고, 내가 보기에 예뻐 보이는 옷을 좀 자유롭게 입고 싶을 뿐이다.

  1. Female to Male [본문으로]
  2. 본인의 젠더에 대하여 고민하는 사람 [본문으로]

'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랜만에 입은 치마  (0) 2017.04.02
스타킹 신고 반바지 입기  (0) 2017.03.29
크로스드레싱  (0) 2017.03.28
화장실에서 겪은 일 - 젠더 중립 화장실을 바란다.  (0) 2017.03.20
화장을 하면서  (0) 2016.07.18
'맥'으로도 보고싶다.  (0) 2016.01.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