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5월 퇴근길

퇴근이 평소보다 한 시간가량 늦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옆에 않기 힘들 거로 생각하는 곳을 찾았다. 제일 뒤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있었던 일을 속으로 곱씹었다. 내가 평소 생각과 다르게 행동했던 부분이 떠올라 어떻게 고쳐야 할지 생각했다. 그 자리가 처음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 게 많아 중간중간 조금 더 앞자리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내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자리 이동도 못 하고 있었다. 집까지 두 정거장쯤 남았을 때쯤 거의 만원 버스가 되었다. 어떤 사람이 버스에 올라 뒤쪽으로 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이 새끼들아, 어른이 왔으면 벌떡벌떡 일어날 줄 알아야지! 어른을 공경할 줄 몰라."

많아 봐야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거친 말에 화가 났다. 받아쳤다.

"뭡니까? 무슨 일인데 그렇게 소리 지르십니까? 어른이면 어른답게 점잖게 있으세요."

그는 내 옆자리에 올라와 앉았다. 다른 데 자리가 없어 할 수 없이 앉은 모양이다. 앉자마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다시 큰소리쳤다.

"건방지게… 너 몇 살인데 그러냐?"

"어른이면 어른답게 하세요."

"나 오십 세 살이다. 너 몇 살이냐?"

"그래서요? 어른이면 어른답게 점잖게 행동하세요."

그는 감정이 상했지만,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내 말투 때문인지, 내가 풍기는 기운 때문인지 기가 좀 죽은 듯 조그맣게 구시렁댔다.

"옛날에는 이렇게 안 했었는데…"

난 내가 생각하기에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 어른 대접만 받으려고 하는 것이 싫다. 그래서 똑같은 말투로 아주 잘 들리게 비아냥댔다.

"옛날 어른들은 이렇게 안 했었는데…"

그는 입을 닫았다. 얼마 안 있어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리고 비웃다가 아차 했다. 그는 내 반면교사였다. 합리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꼰대질처럼 행동한 일이 생각났다. 반성할 범위를 너무 좁게 잡았다.


- 같은 날 퇴근 전

학교에서 벌점을 주는 카드인 약속카드가 있다. 별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사용하기 편해서 남발하듯이 사용하고 있었다. 행동을 제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잘못을 예방하고 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어느새 행동을 제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의도는 큰 폭력으로 생각하는데, 난 내 행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의도가 정당하니 방법도 정당한 척하고 있었다. 그걸 깨닫게 된 것은 학생들 덕이었다.

수업 종이 쳤는데, 소란스럽기만 하고 자리에 앉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다. 자리에 앉으라고 한 차례 외쳤다. 반응이 없어 다시 외쳤다. 그래도 자리에 앉지 않아서 숫자를 읊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않지 않은 학생 셋을 불러 바로 약속 카드를 발급했다.

번호와 이름을 부르는 중 웃는 학생이 있었다. 난 행동만을 갖고 판단하겠다는 생각으로 웃은 학생들을 나오라고 해서 모두 약속 카드를 발급했다. 혼나는 아이들을 비웃었다고 생각해서 '타인을 비하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약속 카드를 발급했다. 그리고 수업은 웃으며 밝은 분위기로 진행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청소시간 나는 선풍기를 분해해서 씻은 후 말리고 있었다. 청소 담당 학생이 와서 비 때문에 걸레질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선풍기를 좀 닦아달라고 부탁했다. 선풍기 팬의 날이 날카로우니 손을 베어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다쳐도 상관없어요."

"내가 니들 다치는 게 싫어서 시킬 생각하지 않고 내가 씻었는데, 누가 다치면 애써 내가 씻은 보람이 없는 거잖아."

이렇게 좋은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그 학생이 하나씩 닦아주니 시간 여유가 생겼다. 나는 책상 위로 올라가서 천장에 있는 선풍기를 빠르게 조립했다. 거의 다 하고 청소하던 학생들을 교실로 보냈다. 거의 다 조립했을 때쯤 누가 나를 찾아왔다. 약속카드를 대량 발급했던 그 반 담임선생님이셨다.

학생들이 '선생님이 우리를 오해해서 카드를 그렇게 많이 준 것'이라고 해서 사유를 정확하게 알려고 찾아왔다고 하셨다. 그래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더니, 아이들하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나중에 가서 이야기한다고 했고, 종례하러 갈 시간에 내게 전화해 준다고 하셨다.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과 같이 들어가서 한 시간 반 넘게 입씨름했다. 내가 본 것과 아이들이 본 것의 대결이었다. 내가 본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의도를 함부로 파악해서 상처 주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계속 행동만 보려고 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내가 의도를 함부로 재단하고, 내 의도를 강압적으로 강요하는 인간이 될 것 같았다. 내가 흥분해서 상처 줄까 걱정하며 행동을 분리해서 이야기했다.

문득 깨달았다. 둘 다 억울하다고 여기는구나. 내 잘못이었다. 내가 한 행동이 아이들의 말을 부정하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다. 난 아이들을 이기려고만 했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내가 아이들을 못 믿어서 내 방식으로 윽박지른 것에 불과했다. 난 인권과 약자 대변을 외치면서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이었다.

한참 지난 덕에 여러 학생이 갔다. 일부가 남아 있었다.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나는 평소에 의도를 폭력이라고 생각해서 행동만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내가… 하아… 잘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습니다. 여러분들하고 잘 지내고 싶고, 잘 지내야 하는데 상처를 줬습니다. 지금 사과하고, 내일 모두가 있을 때 다시 사과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잘못한 것 없습니다. 감정 흐름까지 계산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여러분들을 통제하려고만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내가 사과를 했더니 학생들이 자기들도 잘못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난 사과를 거부했다.

"여러분들이 사과할 것은 없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입니다."

학생들은 당황하며 '그렇게 하면 자기들이 뭐가 되느냐'며 자기들도 사과해야겠다고 했다.

"제가 더 나이 먹었는데, 생각이 짧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사과하면 여러분이 나중에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저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함께해야 하는 수업이라고 해놓고, 제가 끌고 가려고만 했습니다. 그래서 제 책임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제 책임이니 저만 사과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반박했다.

"우리가 사과하지 않아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그러니까 우리도 사과할게요."

말문이 탁 막혔다.

"제가 더 나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저만 사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제가 먼저 사과하겠습니다. 내일 여러분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제가 먼저 사과하겠습니다. 그건 양보 못 하겠습니다."

학생들은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마치면서 다음 날 아침에 보기로 했다.



- 다음 날 아침

전체가 모인 교실로 찾아갔다. 조례 중에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는 '이제 생각났어요.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학생들이 그 학생에게 야유를 보냈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내가 반성할 부분이 있으니 그건 두자고 하며 말렸다. 그리고 전날 버스에서 본 그 사람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 이야기를 하고 사과했다.

"돌아가는 길에 내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더 제대로 사과하지 고민하던 중에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 식의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하는데, 비판적인 시기인 여러분의 비판을 원천봉쇄하다시피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 나이의 그 시기를 그렇게 비판적으로 보내놓고 여러분을 막는 행동을 했다. 여러분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과합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나이 많은 이에게 어른의 자격을 묻는 만큼 나도 어른의 자격을 갖추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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