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심심하면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 설 다음 날, 설 연휴에도 딱히 할 일 없어서 책을 가지고 카페에 갔다. 그것도 외출이라고 나름 꾸민다고 화장을 한다. 그날도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썹을 그렸다. 아이섀도, 마스카라, 립스틱까지 발랐다. 립스틱은 나름대로 발색을 신경 쓴다고 두 종류를 써서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냈다. 겨우 혼자 책 보러 가면서 정성 들여 화장했다.

두 시간쯤 책을 읽는데 몸이 너무 아팠다. 전날 저녁부터 몸살기가 좀 있긴 했다. 좀 괜찮아진 것 같아서 나왔는데, 가만히 있으려니 몸이 점점 아파져 왔다. 목욕탕에 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좀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목욕탕을 가려고 나왔다. 다른 건 괜찮은데 마스카라를 어떻게 지워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향했다. 전용 리무버를 갖고 나올 생각이었다.

집에 가까워지니 몸이 더 쑤셨다. 잠깐만 방에서 쉬다가 목욕탕 갈 준비를 제대로 하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갔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거실에 나와 있었다. 어머니는 과일을 깎고 있으셨다. 난 두 분을 지나쳐 내 방으로 들어갔다. 엎드려서 잠시 쉬는데 무슨 말이 들렸다.

"동생 친구들 올 거다. 화장 지워라."

너무 황당했다. 동생 친구들 오는 거랑 나랑 무슨 관계라고, 아니 내 화장이 동생 친구들 오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지우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지워야 합니까?"

"너 동생 친구들 오는데 화장한 거 보일래?"

"오는 거랑 나랑 무슨 관계입니까?"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냐?"

내가 이기적이라고? 내가 언제 내 방식을 강요했었나? 나한테 강요하지 말라는 게 왜 이기적이야?

"내가 뭐가 이기적입니까?"

"화장 안 지우겠다는 거 너만 생각하는 거잖아?"

"아니 내가 화장하는 게 왜 나만 생각하는 겁니까? 난 못 지우겠습니다."

"왜 넌 너 입장만 생각하냐? 좀 가족 입장도 생각해라."

"또 같은 말 해야 됩니까? 내가 가족의 장식품입니까?"

"언제 장식품이라고 했냐?"

"내가 화장한 게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그게 중요한 걸 보면 장식품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닙니까?"

"넌 가족 생각해서 지우면 안 되냐?"

"내 생각은 하고 이야기하는 겁니까?"

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가 해서는 안 될 소리를 했다.

"너 정체성[각주:1]에 혼란 느끼는 거 아니냐?"

"지금 뭐라고 말 한 겁니까? 화장이랑 정체성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입을 닫았다. 하지만 나도 흥분했고 온갖 예전 이야기를 다 헤집어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소리 높여 싸우고 난리를 치고 나서야 내가 지쳐서 쓰러졌다. 중간에 동생은 왔다 가며 분위기를 보고 친구들 데려오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한참을 씩씩대다

"덕분에 흥분해서 그런지 몸 아픈 것도 안 느껴지고 완전 좋네요. 사람 취급도 못 받으면서 사람 취급받으려고 한참을 지랄했더니 몸이 흥분해서 그런가 아픈 것도 안 느껴지고 정말 좋네요. 사람 취급도 못 받아서 살고 싶지도 않은데 아픈 감각도 없어지고 좋네요."

이렇게 비아냥대다 분을 못 이기고 부술 듯이 대문을 닫고 나왔다. 나와서 갈 데도 없어 한참을 근처를 돌아다니다 목욕탕에 갔다. 화장이 제대로 안 지워지면 나중에 집에 가서 다시 지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목욕탕 비누와 온수로 문질러 지워냈다. 한참을 몸 담그고 있으니 몸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목욕을 끝내고도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근처 맥주 가게에 들어가 바에 앉아서 맥주 한 잔과 감자튀김을 시켰다. 피자 한 판을 혼자 먹기는 부담스러워 감자튀김을 시켰는데, 몸이 다시 안 좋아져서 맥주도 감자튀김도 먹기 힘들었다.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버텨내다가 집으로 향했다.

들어가면서도 죽을 것 같았다. 사람 취급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다. 내가 사람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체면을 위한 도구 취급받았다는 생각에 모멸감이 들어 너무 들어가기 힘들었다. 난 기분 좋으려고 화장했는데 이게 무슨 난리인지, 이게 무슨 취급인 건지 모멸감에 더 몸이 아파져 왔다.

  1. 성정체성을 이야기한 것 같다. [본문으로]

학교에서 근무하던 기간에도 성차별이 존재했다. 그냥 차별 정도가 아니라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큼의 성희롱이었다. 교사에게 당한 것도 있고, 학생에게 당한 것도 있다. 둘 다 그냥 넘어가기 힘들어서 정색하며 대처했다. 사과를 받아내긴 했지만, 그 스트레스에 몸이 아팠다. 이건 애초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일이지 사과를 받고 끝내봐야 별 소용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중할 필요도 있지만, 사람들이 가진 성편견을 없애야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두 가지 성희롱은 모두 학교에서 일어난 일로 나의 성적 지향, 혹은 성별 정체성을 두고 건든 일이다. 차이점으로 하나는 다른 학교에 출장 갔다가 겪은 일, 하나는 학교에서 수업 중에 겪은 일이다. 또 다른 점은 가해자의 직업이 하나는 교사, 하나는 학생이었다. 또 다른 점으로 가해자의 성이 하나는 여성, 하나는 남성이었다. 이 일들을 겪으며 가해자의 직업, 나이, 성별, 피해자의 직업, 나이, 성별은 애초에 특정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2016년 12월 19일 출장

교과연구회에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음악 교사 록밴드 보컬이라 출장을 내서 음악회를 하는 학교에 찾아갔다. 밴드 멤버 중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해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컬이 악기 배치를 건들 것도 아니라 쉬기 위해 대기실을 찾았다. 남자 대기실에서 뭘 하고 있다며 나 보고 여자 대기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들어갔더니 고등학교 선배이자 고등학교 때 음악 선생님 중 한 분이었던 분이 있었다. 인사를 했더니

"남자가 왜 화장을 하냐?"

내 화장을 지적했다. 난 바로 반발했다.

"그건 성편견이고 성차별적인 이야기예요."

"남자가 무슨 화장이냐? 남교사는 남자답게, 여교사는 여자답게 해야지."

"성폭력 예방 연수에서는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는 성평등을 방해하고 성폭력 예방에 좋지 않다고 하던데요?"

"그래도 학교에서는 애들한테 성역할을 제대로 가르쳐야지."

"그것 자체가 해서는 안 될 거라니까요."

"잘 들어봐."

"에에, 잔소리, 잔소리."

이때까지는 그렇게 기분이 상해있지 않았다. 공연 시작 직전이라 그 긴장감에 기분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잠시 후 같은 밴드 선생님들이 왔고 리허설을 했다. 우리 돈으로 커피를 사 왔고 그걸 마시면서 좀 쉬고 있었다. 잠깐 이야기하던 중 우리 차례가 왔다. 무대에 올라가 공연을 했고, 공연은 즐겁게 끝냈다. 우리 딴에 틀린 것도 거의 없고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게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공연 끝나고 내려와 대기실로 갔더니 우리 커피는 다른 사람 입에 있거나 사라졌다. 우리보다 평균 연령이 15세 이상 높은 다른 팀이 자기네 주려고 사온 줄 알고 먹었다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그 황당한 중에 누가 나 보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예뻐서 여자인 줄 알았네. 장가는 갈 거라?"

난 화가 나서 바로 받아쳤다.

"장가는 가서 뭐할 겁니까?"

거기에 구시렁대는 소리인지 건방지다는 소리인지 무슨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우리를 일렬로 세우더니 자기소개를 하라는 것이었다. 자기네가 선배라고 우리를 집합시켜서 소개하라는 소리였다. 이후에 그 '선배님'들도 자기소개를 했지만,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난 서서히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예뻐서 여자인 줄 알았네. 장가는 갈 거?'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역겨웠다. 역겹고 수치심이 들었다. 모멸감도 들었다. 대체 왜 그따위 소리를 한 거야? 그날은 완전히 기분을 망쳤다. 쉬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도 수치심과 모멸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행사 주최 측 총무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성희롱으로 신고하면 일이 커지고 더 스트레스가 심해질 것 같아서 직접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 총무 선생님은 당황스러워했고 조심스레 의논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수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업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모멸감으로 심장이 아렸고 머리도 아팠다. 몸도 계속 떨렸다. 덕분에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최대한 내 마음을 다독이며 쉬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ㅇㅇㅇ 선생님? 나 ㅇㅇ."

"네 선생님."

"기분 나빴다면 미안. 기분 나쁠 거라고 생각 못 했어. 자연스럽게 받아치기에 괜찮은 줄 알았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생각해보니 잘못한 것 같아서 전화했어. 미안. 그런데 그건 성희롱까지는 아닌 것 같아.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런 뉘앙스는 아니었어."

화가 났다.

"전해 들었으면 분명히 어떻게 메시지를 보냈는지 알 거 아닙니까? 정황설명을 다 했고 사과와 재발 방지만 요청했는데 내가 왜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겁니까? '예뻐서 여자인 줄 알았다'는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그 이후에 '장가는 갈 거?'라는 부분이 바로 들어가면서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낀 건데 어떤 뉘앙스를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내가 그 자리에 같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한테 자세히 이야기하려고 전화한 거.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미안해. 나 때문에 시작한 것 같아서 자세히 듣고 사과도 하려고 했는데. 미안."

"지금 이러는 거 2차 가해예요. 내가 왜 추궁받아야 하는 거죠? 내가 모멸감을 느끼고 수치심을 느꼈는데, 왜 내가 해명해야 하는 거죠?"

"미안해. 내가 전화해서 사과하게 하고 다시 전화할게."

이렇게 통화가 끝났다. 또 심장이 아렸다. 수치심도 더 올라오고 머리는 더 아팠다. 모멸감이 몸이 더 떨려왔다. 다들 성희롱당하고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이런 건가? 따지고 났더니 이런 사람들 때문에 더 힘들고 그런 것인가? 뭐 이따위인 거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더니 너무 지쳐서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는 지쳐 잠들었다. 어느 순간 전화가 왔고 그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여보세요."

"ㅇㅇㅇ 선생님 전화입니까?"

"네 맞습니다."

"나 ㅇㅇㅇ인데, 미안해요.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

어떻게 어떻게 사과를 받기는 했지만, 썩 기분 좋은 사과는 아니었다. 모르면 언제든 배워야지 하면서 능구렁이처럼 넘어갔다. 난 나름 이성적으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고 그게 충족된 것 같아 끊었다. 전화를 끊은 후 난 피곤해서 다시 잠들었다.

다음 날도 별 차이 없었다. 사과를 받았는데 모멸감과 수치심에 온종일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결국, 지난번에 왔던 성폭력 상담센터 전화번호를 얻어서 전화를 걸어 상담을 예약하고 나를 다독이는 수밖에 없었다.


- 2016년 9월 초 수업 시간

표현영역 수행평가를 준비하면서 신체표현을 평가하고 싶었다. 뮤지컬의 한 장면을 체험할 겸 춤추는 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간단한 율동을 신체표현 수행평가로 준비했다. 한두 번의 수업시간 중 연습만으로는 불충분할 것 같아 학생들이 영상을 찾아볼 수 있도록 따로 영상을 만들었다.

음악실에 큰 거울이 없어 프로젝터에 노트북을 연결해서 거울 모드로 영상을 촬영하며 내가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며 내가 앞에서 함께 율동을 했다. 그 주는 2학년 수업에서 그렇게 열심히 춤을 추면서 수업하고 있었다. 어느 날 어떤 남학생반에서 한 학생이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

"뭐?"

"남자친구 있냐고요?"

"그거 성희롱이다."

"그게 왜 성희롱인데요? 누구나 저 영상 보면 그렇게 생각할 텐데요?"

"내 성적 지향을 네가 뭔데 마음대로 판단해서 그런 소리를 하냐? 그런 생각이 들든 안 들든 그걸 입 밖으로 꺼내서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게 성희롱이다."

"왜요? 나 말고도 그렇게 생각할 텐데요."

난 황당해서 벌점을 주고 끝나고 교무실로 불러 담임선생님께 벌점 사유를 말씀드리고 지도를 부탁드렸다. 그 학생은 거기서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텐데 뭐가 문제예요?'라고. 결국, 지도로 사과를 받긴 했지만, 썩 좋은 마무리는 아니었다.


내가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해서 외모를 꾸미는데 그것을 핑계로 아무렇게나 이야기하는 것 그 자체가 폭력이다. 그걸 성적 비하가 담긴 내용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은 성희롱이다. 이런 일이 특별한 것 같지만, 별로 특별하지도 않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학교는 그만큼 폐쇄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를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이런 것과 관련해서 다른 폭언을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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