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노아모리, 모노가미의 세상 삐딱하게 보기

모노아모리(Monoamory): 1대 1로 하는 독점 연애.

모노가미(Monogamy): 일부일처제.


현재 연애 중 많은 수가 모노아모리이다. 모노아모리는 사랑을 한 사람이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데서 독점 연애라고 볼 수 있다. 서로 간의 독점이라는 점에서 평등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 독점은 있을 수 없다. 독점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부르게 되어 집착이나 불평등한 관계가 된다. 한 명하고만 연애하지만 한 명을 독점하려는 마음이 집착을 부르거나 불평등한 관계를 만들게 된다. 쌍방이 협의한 과점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겠지만, 독점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되어야 한다는 등의 집착을 부를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잠시 눈 돌리는 것조차 불만을 부를 수 있다.

모노가미도 비슷하다. 배우자가 생기면 배우자하고만 관계를 맺어야 하고, 이외의 관계는 불륜이라고 보게 된다. 애초에 모노가미에 모노아모리가 아니라면, 열린 마음이기 때문에 불륜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하지만, 독점의 연애든 독점의 결혼이든 한 사람하고 만의 관계만을 정상적이며 윤리적으로 보므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의 정상성 집착이 일어나게 된다.

정상성 집착은 연인의 친구 조건을 한정시켜 버린다. 연인 이외의 관계는 시간 독점을 경쟁하는 상대가 된다. 친구의 조건은 블랙리스트(제외 조건)와 화이트리스트(가능 조건) 형태를 모두 써서 범위를 한정한다. 이 연인의 친구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은 만약 연인의 시간 할애가 연인 이상이 될 경우 질투나 경쟁의 대상이 된다. 연인 외의 기본값은 부동의의 대상이 되고, 연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이 허락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 당연하게 되면, 동의하지 않은 대상은 불륜 내지 비윤리적 연애의 대상이 된다.

모노아모리와 모노가미의 세상은 모노섹슈얼이 독점한 세상이기도 하다. 더 심하게는 이성애 중심주의의 세상이기도 하다. 이성애 중심일 경우 이성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기도 한다. 친구의 조건을 한정시켜 상대를 더 고립시킨다.


2. 폴리아모리가 주는 희망

폴리아모리(Polyamory): 3명 이상이 평등하고 열린 관계로 하는 비독점 연애. 다자간 비독점 연애, 다자간 연애.


소수의 폴리아모리스트(Polyamorist: 다자간 비독점 연애자)가 존재한다. 폴리아모리스트의 사랑은 여러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데서 비독점적이고, 자율적인 사랑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도 독점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독점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평등이 존재하기 힘들다. 하지만, 독점적 연애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비독점이란 역차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처럼 나와 연인의 관계를 불평등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애초에 지배적인 관계에서 평등 관계로의 진입은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다.

폴리아모리는 신뢰 관계와 평등 의식, 비독점적 사고를 기본으로 한다. 서로 간 신뢰가 없으면 통제를 하게 되고, 통제는 곧 평등을 깨는 것이며, 감정을 독점하는 행위이다. 단지 여럿을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폴리아모리를 시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간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합의, 평등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 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감정 소모만 일어날 수도 있는 어려운 일이다.

폴리아모리는 논모노섹슈얼들에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준다. 논모노섹슈얼에게 연애의 대상은 한 성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노아모리스트들이 질투를 하게 된다면 대상이 더 많아진다. 논모노섹슈얼은 애초에 친구의 대상이든 연애의 대상이든 한정 짓는 사람들이 아니다. 논모노섹슈얼이 모노아모리스트이고 모노아모리스트와 만났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독점을 원하게 되면 모두가 질투의 대상이므로 친구를 누구도 사귈 수 없게 된다.

폴리아모리는 어렵지만, 폴리아모리의 요소에는 모노아모리에 없는 희망이 있다. 비독점에 따른 신뢰와 평등,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려는 소통이다. 연인의 모든 시간과 사랑을 내가 가지려 하는 사람은 모든 감정마저 얻어 내고자 한다. 하지만, 사람은 한 사람에게 쏟을 수 있는 감정이 한정되고, 다른 사람을 통해 감정이 충전되기도 한다. 상대방을 놓아주고 감정과 체력을 충천할 시간을 주면, 내게 쏟는 감정의 양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3. 모노섹슈얼의 세상 삐딱하게 보기

모노섹슈얼(Monosexual): 한 가지의 성에게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성적 지향. 단성애.


모노섹슈얼은 성적끌림이 한쪽 성에 한정된다. 나누면 크게 두 가지쯤으로 볼 수 있다. 동성애자(Homosexual)와 이성애자(Heterosexual). 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 중 일부는 동성애자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긴다. 그런 사람은 이성을 바라볼 때 어떻게 성적대상화 하여 바라보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동성애자 중 일부는 양성애자 등의 논모노섹슈얼을 아직 이쪽으로 못 온 사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모노아모리가 대부분인 사회에서 논모노섹슈얼의 연애는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모노섹슈얼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상상력이 제한된다. 성적 끌림을 당연하게 여기고, 성적 끌림이 한쪽으로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떤 이성애자들은 성적 끌림을 강제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상상까지 한다. 한 성만으로 성적 끌림이 존재한다는 편협한 상상력 때문이다.

친구의 범위를 제한하거나 특정 성적 지향을 연애에 있어 안전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이성애자의 경우 이성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동성애자를 바라볼 때 제3의 성 취급을 하며 이성이 아니지만 안전한 존재라고 무성적 존재 취급하기도 한다. 난 홍석천 씨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라는 컨셉이 슬프다.


4. 에이섹슈얼, 논모노섹슈얼이 주는 교훈

에이섹슈얼(Asexual):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성적 지향. 무성애. 연애 지향, 연애 비지향 모두 존재한다.

논모노섹슈얼(Non-monosexual): 두 가지 이상의 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성적 지향. 다성애.


무성애자는 성적 끌림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 이들은 연애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연애를 원할 경우라도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 무성애자와 연애를 할 때 그의 성적 지향을 존중해야 한다. 물론, 연애 상대가 아니더라도 타인의 성적 지향은 존중해야 한다. 그의 모든 것을 독점하려 하지 않는 비독점적 태도가 필요하다.

논모노섹슈얼은 성적 끌림이 나타나는 성이 두 가지 이상이다. 바이섹슈얼 같은 두 성에게 성적 끌림이 나타나는 존재, 팬섹슈얼처럼 성에 관계없이 모두 성적 끌림이 나타나는 존재, 폴리섹슈얼 같이 세 성 이상에게 성적 끌림이 나타나는 존재 등 다양하다. 이들은 단성애자들 보다 성적 끌림의 범위가 넓으므로 이들은 모두와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들은 누구와도 성적 행위 없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모두 취향이 있고, 감정적 끌림이 나타나는 계기가 다르다. 모노섹슈얼이 독점한 세상, 특히 이성애자들이 독점한 세상에서는 이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배제한다. 이들의 존재와 삶의 방식을 상상한다면 좀 더 편안한 연애가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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