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교육 활동 외에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일까? 생활 지도이다. 생활 지도를 통해 인성, 비행, 폭력 등을 다루는 것이 맞을 것 같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외모 통제이다.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외모를 표준화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사회에서 적절한 외모의 조건이 내면화되며, 표준화된 외모 취향을 만든다.

기간제교사 면접을 보러 갈 때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이 외모이다. 면접 보는 본인 말고도 주변에서 평범하게 하라고 강조할 정도이다. 면접에서 특징적인 부분이 있으면 학생들이 본받을 것이라거나 불평등한 상황에 의문을 품을 것이라고 잠재적 교육과정을 가정하여 안 좋은 점수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

외모는 점수에 안 들어간다는 교원임용시험 2차 면접, 수업 실연 때도 다들 외모에 신경 많이 쓴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무난한 복장 색상을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여성일 경우 되도록 무릎 정도로 오는 적절한 길이의 치마 정장, 무난한 화장, 잔머리 안 빠져나오게 머리를 잘 묶어 무난한 인상을 만든다. 남성일 경우 짧고 단정해 보이게 머리카락을 자르고 무난한 인상을 만든다.

다들 잘 알고 있다.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학교에서 외모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다들 아주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16년 이상 학교에서 생활했기에 잘 알고 있다. 12년만 생활해도 잘 알 수 있다. 아니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만 관련되면 무의식중에 외모를 신경 쓰게 된다. 학교에서 계속 외모를 통제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외모의 통제를 내면화해서 타인의 외모마저 통제한다. 간혹 이렇게 '머리 긴 남자는 별로'라며 교사의 외모를 지적하는 학생도 만날 수 있을 정도이다. 어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매일 옷을 관찰한다며 옷에 굉장히 신경 쓰기도 한다. 화장 여부, 안경을 착용하느냐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느냐까지 외모에 신경 쓴다.

외모 등을 신경 쓰는 것은 인권과 관련되어 있다. 1세대 인권인 자유권적 권리에 해당하는 신체의 자유이다. 이렇게 자신의 신체를 자신이 통제할 권리를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모두가 시스젠더[각주:1]에 이성애자라고 가정하고 외모를 조건화하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타인의 권리 또한 인식할 수 없다.

남성은 짧은 머리에 바지가 당연하다. 여성은 짧은 머리에 바지를 입을 수도 있지만, 일정 이상 길이의 긴 머리에 치마가 기본값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파마나 염색은 허용하지 않으며, 교복을 짧게 만들거나 줄이는 등의 행위도 허용하지 않는다.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신체의 자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당연한 인권, 헌법적 기본권에 '허용'이라는 말이 들어가면서 제한한다. 당연한 인권, 헌법적 기본권을 가르치지 않는 것을 통해 쉽게 통제당하게 하여 우리의 권리,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게 한다. '권리를 빼앗지 마라'가 아니라 '허용해주세요'라고 하게 한다.

인권이나 기본권은 인간에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진 것이다. 이 당연한 것을 제한하면 다수의 가능성이 제한된다. 다수의 제한이 당연해지면 다름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소수자의 제한도 당연해진다.

다원화 사회에서 표준화는 필요한 일이다. 그 표준화는 다양한 것이 공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다양한 것이 공존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일부 제한은 여러 사람의 권리가 공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권리 제한이 사회가 존재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사회에는 성소수자[각주:2]가 존재한다. 학교에도 성소수자가 존재한다. 외모의 표준화는 비슷한 사람들을 똑같이 만드는 행위일 뿐 아니라 비슷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같게 만드는 성차별이다.

  1. cisgender 'cis-'는 같은 편이라는 뜻의 접두사로 태어나서 부여받은 성별(sex)과 인식하는 성별(gender)이 같은 사람을 뜻한다. 트랜스젠더에 상대적인 말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본문으로]
  2. LGBTAIQ 등 https://femiwiki.com/w/성소수자 참조 [본문으로]

근무하던 학교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다. 이번 임용시험에서 떨어져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근무지를 알아봐야 했다. 공부만 하기에는 내 개인의 경제적 사정도 문제고, 마음 붙여 일할 데가 없으면 마음이 힘들다는 것도 문제라서 그렇다. 몇 군데 면접을 치렀는데 모두 떨어졌다. 망할, 어쩌면 올해는 직장 없는 교사로 살게 될지 모른다.

직장이 없어 소득도 소속도 없을 것으로 생각하니 별로 마음이 좋지 않다. 결과라도 좋았으면 마음이 덜 힘들었을 텐데, 과정도 별로 좋지 않았다. 면접을 돌이켜 봤을 때 굉장히 불쾌한 질문이 있었다. 그 질문에 한 번은 소신에 따라 바로 반발했고, 한 번은 굽히고 성실하게 소신에 따라 답했다. 둘 다 반발했어야 했다. 내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었는지, 가중치를 다르게 둔 것이었는지 하나만 반발했다.

그 질문은 성차별적, 반 인권적인 질문이었다. 그것도 내 외모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 중 하나는 화장에 관한 질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머리 길이에 관한 질문이었다. 각기 다른 성의 학생들의 학생들과 비교해서 질문했다. 질문 자체에 학교의 이중성, 성차별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 2월 21일 면접

이날 면접에서 들은 질문은 이렇다.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인데 화장을 좀 하셨네요. 그것 관련해서 질문 좀 드리겠습니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 화장 엄격하게 단속하는데 학생들이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은 화장하는데 우리는 왜 안 돼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난 화장을 한다. 꾸미는 것이 좋다. 화장이 재미있다. 단지 재미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성편견을 깨기 위한 내 나름의 운동으로써 하는 행동이다. 여성이 꾸미는 것은 당연하고 남성이 꾸미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에 저항하고 사람들이 차차 익숙해지게 만들어 세상을 바꾸기 위한 행동이다. 언젠가는 화장이 개인의 선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는 것이다.

저 물음은 내 운동의 목적이나 목표를 모른 채 한 질문이다. 물론 내 운동의 존재 여부조차 모를 것이다. 심지어 저 날은 바빠서 색조 화장도 못 한 날이었다. 파운데이션에 눈썹 정도만 그린 날이었다. 그래서 화장을 제대로 했다는 생각도 못 했는데, 화장했다는 것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니 당황스러웠다.

황당하기도 했다. 질문한 면접관 본인도 화장한 상태였다. 학생들은 여교사의 화장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고, 남교사의 화장만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인가? 성차별적 질문이었다. 그래서 바로 반발했다.

"그런 성차별적 인식을 갖고 이야기하시다니요. 그러면 여자 선생님들 먼저 화장을 못 하게 하고 이야기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에 그 면접관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무엇인가를 적었다.

"학생과 교사는 다르다고 한다."

내가 한 말이 아닌 말을 중얼거리며 적었다. 너무 황당했다.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계속 곱씹어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성차별이었다. 거기다 학생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가 동시에 들어가 있었다.

성차별적인 태도는 이렇다. '남성의 화장은 당연하지 않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남교사에게 자신들의 화장을 단속하는 것과 비교하며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그러니 그것에 관한 것을 물어보아야 하겠다.'며 특정 성의 화장만 문제 제기하는 것은 한 성은 당연히 화장해야 하는 존재, 한 성은 절대 화장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낙인 찍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는 이렇다. '학생들의 용의복장을 통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학생 통제를 당연하게 여긴다. 동시에 학생의 반발을 걱정한다. 통제하지 않으면 통제에 대한 반발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통제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을 모순이다.


- 2월 24일 면접

이날 면접에서 들은 질문은 이렇다.

"지금 머리를 묶으셨는데, 우리 학교는 남학교이다 보니 두발 규정이 엄격합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머리를 보고 '선생님은 머리 기르는데 우리는 왜 머리 기르면 안 돼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난 머리를 기른다. 큰 의미는 없다. 심한 곱슬머리이라 짧은 것보다 긴 것이 머리 정리하기 편하다. 추울 때 머리 풀면 따뜻하고 더울 때 머리 묶으면 시원하니 좋다. 내 머리의 곱슬거림은 예쁘다. 컬이 예뻐서 어디서 파마한 것으로 보일 정도이다. 머리를 짧게 정리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 그냥 그럴 생각이 들면 그때 자를 생각이다. 길이가 어느 정도 이상 되면 머리카락 기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저 물음은 생각도 못 해 봤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올해 마지막 면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반발을 못 했다. 소신에 따라 성실하게 답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기르다가 이왕 기른 김에 몇 달 정도 더 기르고 머리카락 기부를 해볼 생각으로 더 기르고 있다. 왜 기르면 안 되냐는 물음에는 답을 못하겠다. 교칙으로 규제하고 있는데, 나는 그 교칙으로 규제하는 대상에 해당하지 않거든.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바꿔보는 것은 어떻겠니? 규정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꿔보겠다면 응원할게.’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 성차별적 인식을 갖고 질문을 해도 되는 겁니까? 여교사에게는 하지 않을 질문을 왜 머리가 긴 남교사에게 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머리 길이는 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까?”

질문 자체가 성차별이다. 이 질문에는 앞의 면접과 같이 학생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가 동시에 들어가 있다.


애초에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이해하기 너무 힘들다. 이제까지 겪은 교직 생활을 돌이켜 보면 이 교직 사회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건 성차별이고 폭력이다. 겪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겪은 다른 성희롱, 성차별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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