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치마를 입고 외출했다. 며칠 전 바지 위에 레이어드해서 입긴 했다. 그건 덧댄 것이지 치마를 입었다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했다. 맨다리 혹은 스타킹이나 레깅스에 치마만 입어야 치마를 입은 느낌이 난다. 이렇게 치마를 입고 외출한 건 11개월 만이다.

며칠 전 스타킹에 반바지를 입었을 때 신은 80데니어 스타킹은 꽃샘추위를 막기에는 좀 부족했다. 그래서 좀 더 따뜻해지면 치마나 반바지를 다시 입을까? 아니면 따뜻하게 입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었다. 어제 마트 들렀을 때 150데니어 스타킹이 보여 샀다. 혹시나 해서 150데니어 스타킹을 신었더니 훨씬 나았다. 그래서 오늘 치마를 입고 나올 수 있었다.

앉았을 때 무릎 윗부분에서 한 뼘(25cm) 정도인데, H라인이라 그런가? 쪼그려 앉아 신발을 신을 때 엉덩이가 보일 것 같았다. 살펴보니 엉덩이 쪽이 굴곡지면서 뒤쪽만 많이 올라가서 밑으로 보면 엉덩이 쪽이 보였다. 스타킹 속으로 비치는 내 속옷을 보고 민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옷으로 드로즈를 입었는데, 보이면 민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삼각팬티로 입고 싶어졌다. 집에 삼각팬티가 없는데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웃음이 나왔다. '속옷이 보일 것을 가정하고 속옷을 입으려고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마 속을 안 보여줄 거고, 남도 안 봐야 하는 건데, 남 보기에 이 속옷이 어색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

밑에 입는 속옷은 기능적으로 만들어졌다. 어느 기저귀 광고에서 여아용, 남아용은 흡수 면이 중요한 거라는 것처럼 여성용 팬티는 밑부분에, 남성용 팬티는 앞부분에 면으로 된 흡습부가 있다. 성기의 모양과 방향에 따라 분비물 흡수 때문에 입는 속옷을 두고 그게 보일 것을 먼저 생각했다니 우스웠다. 평소에 속옷을 장식용으로 입지도 않는 주제에!


치마를 입고 외출해도 딱히 갈 데가 없다. 스터디 모임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다 보니 어디 놀러 갈 생각도 못 했다. 그냥 기분 내려고 항상 꾸며 입는데, 카페에 앉아 공부만 하려니 입었다는 만족감 외에는 없다. 오히려 화장실 갈 때 다른 사람들이 불편할까 걱정만 된다. 미니스커트 입어서 화장실에서 소변기에 소변 눌 때 편하긴 한데, 드나들 때 다른 사람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불편하다. 바지를 입고 들어가도 사람들이 당황하는데, 치마 입고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더 당황스러워한다.

짧은 치마 입고 남자 화장실에 안 가본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치마 입고 다닌 초기에는 들어가면 항상 좌변기를 찾아서 들어가서 소변을 봤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덜 띄고 싶었다. 눈에 띄기 위해 입은 것도 아니라 상호 불편한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덜 보이기 위해 들어갔다. 하지만, 내가 익숙해지면서 그냥 들어가서 소변기에 누고는 했다. 엉덩이가 보일락 말락 치마 뒤쪽도 올라가는 게 좀 민망하긴 하지만, 서서 소변 보는 게 빠르고 편하긴 하니까 편한 대로 행동했다.


오랜만에 치마를 입으니 이것저것 걱정만 많다. 기분 좋은데 어색한 이 기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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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날짜와 날씨를 기억한다.


- 2016년 9월 30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4시 반 퇴근 시간이 되어 챙겨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실내에 있다 보니 비가 오는 것을 깜빡하고 우산을 두고 나왔다. 다시 우산을 가지러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교무부장과 마주쳤다.

교무부장은 내게 시간 있느냐고 물었다. 퇴근하고 딱히 할 일은 없어 집에 갈 생각이었기에 시간 있다고 했더니, 밥을 먹자고 했다. 갑작스러운 말에 무슨 일인가 의심이 들긴 했지만, 굳이 피할 이유도 없었다. 알겠다고 했더니 곧 챙겨서 갈 테니 먼저 근처에 어느 식당에 가 있으라고 했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다 보니 굳이 밖에서 사 먹을 일이 잘 없어서 근처 식당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들어가서 뻘쭘하게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5분쯤 기다렸더니 교무부장이 들어왔다. 이야기하자면서 조용한 자리를 찾았다. 약간 막힌 자리로 들어가서 주문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교무부장은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었다. 들어와서 같이 일하는데 챙기지도 못하고 미안했는데 생각나서 이렇게 밥 먹자고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때 친구들 이야기를 꺼냈다. 난 살짝 긴장을 풀고 그때 친구들 이야기를 했다. 친구 중 게임회사에 들어간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게임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더니

"게임 회사에 들어갔으면 게임을 많이 하겠네."

이때부터 이상한 것을 눈치챘어야 했다.

"게임 회사는 게임을 만드는 곳이지 게임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도 게임 회사에 있으면 게임 많이 할 거 아니?"

"업무가 뭔지도 모르지만, 게임 개발하는 것과 게임을 하는 건 다릅니다."

"그런가?"

그렇게 말이 끊어졌다. 교무부장은 화제를 바꾸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이건 동료 교사로서 이야기하는 거라. 그래서 내 말을 꼭 따를 필요는 없어. 교사는 각자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거고 성인이니까 아니다 싶으면 안 하는 거지. 말이 좀 나오는 게 있는데, 화장 안 하면 안 될 거? 그리고 커피 수업 시간에 안 마시면 안 될 거?"

"네? 저는 교단을 무대라고 생각하고 무대 분장으로 화장하는 건데요."

"혹시 면접 때도 화장했어?"

"네."

"난 잘 몰랐는데 근데 화장을 꼭 해야 할 거?"

"저는 제 필요에 따라 하는 겁니다."

"젊으니까 패기가 있잖아. 그 패기로 화장 안 하고 한 번 참아봐."

"그게 나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나는 화장을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꼭 해야 할 거?"

"그러면 화장해보십시오."

"허허 화장을 해봐? 그러면 잠깐 다른 이야기 좀 해보자. 쉬는 시간에 바빠?"

"바쁘지는 않습니다."

"안 바쁘면 교무실 왔다 갔다 하면 안 될 거?"

"저 연속으로 수업이 있으면 중간에 쉬는 시간에 정리도 하고 학생들 상담도 하는데요."

"여학생들 조심해라. 여학생들은 친한 척하다가도 언제 말 바뀔지 몰라. 조심해야 해."

"네? 무슨 말입니까? 저는 저 나름대로 중간에 아이들하고 대화만 하면서 조심합니다. 혹시나 음악 진로나 다른 상담 거리 있으면 상담하려는 건데요."

"그래도 여학생들은 조심하고."

"저는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학생하고 대화하면서 고개 숙여 사과도 하고, 문제가 있으면 찾아 고치려 합니다."

"교사를 학생하고 동급이라고 생각하지 마. 다르니까."

"…"

"안 바쁘면 커피는 내려와서 마시면 안 될 거? 우리 학교는 수업 시간에 뭐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거든."

"네. 커피 안 들고 가죠."

"그건 시원하게 약속하네. 화장은 아니면서."

"행동을 고치는 건 쉬운 것 아닙니까? 그까짓 커피 굳이 수업 시간에 안 마셔도 됩니다."

"그러면 화장을 꼭 해야겠으면 일단 석 달만 참아봐. 석 달만 참고 정 못 견뎌서 계속 화장해야겠다 싶으면 그때 사직서를 내. 그때는 내가 교장 선생님한테 잘 말씀드릴 테니."

"네? 그러니까 화장을 할 거면 그만두라는 이야기입니까?"

"그런 말이 아니고 좀 타협을 하자는 거지. 일단 밥 먹어."

교무부장의 입에서 나온 단어 '석 달', '사직서' 굉장히 황당한 이야기이다. 석 달이 지나면 방학이다. 방학 때까지 화장하지 말라는 것이고, 방학이 되면 그만두라는 소리이다. 그 전에 그만두는 것은 사람을 구하는 것도 문제고 진도나 평가 때문에 곤란하다. 그러니 학교에 지장 없을 시기를 찾아서 그만둘 시기를 정해준 것이다. 그런데, 이건 퇴사 압박이다. 교무부장이든 관리자든 해서는 안 될 소리이다.

"약속만 해. 성인인데 생각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하는 거지. 약속하고 안 지켜도 돼."

"아니다 싶으면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이라고 해도 저는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안 한다고 못 하겠습니다. 못 지킬 약속을 하는 것도 제 양심에 어긋나고요."

"화장 안 하면 안 될 거?"

"그런 식이면 여자 선생님들 화장은 문제없습니까?"

"사회는 여성 화장은 괜찮지만, 남성의 화장은 안 좋게 여기다 보니 학생들에게 말이 나올 우려가 있어."

학생들하고 동급으로 여기지 말라면서 학생들에게 말이 나올 우려가 있다며 압박을 주었다. 그 외에도 국가, 사회, 관습 등을 이야기하는데 난 어이도 없고 화도 났다. 앞뒤도 안 맞는 데다 성차별적인 말이 계속 나왔다.

"어느 교육학자가 이야기한 맨박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남자다움을 강조할 때 성차별이 심해지니 그런 것을 좀 버릴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난 맨박스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그건 일부의 이야기고. 학교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곳이라. 그러니까 화장 안 한다고 약속만 해."

"약속 못 하겠습니다."

"공무원은 공인이라. 공무원에게는 품위 유지의 의무라는 게 있어. 그래서 품위 유지 때문에 복장도 예전에는 정장만 입었어. 요즘이야 많이 풀렸지만."

말을 계속 돌리면서 내가 화장하지 못하게 하려고만 했다. 내 이야기를 전혀 듣지도 않고, 보수적이라면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품위유지라고 해도 난 공무원이 아니다. 공무원에 준하는 의무를 가진 비정규직이지만, 순직도 인정 안 되는 기간제 교사이다. 아무튼, 남성이 화장하는 것이 품위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은데 품위를 깎는다며 나에게 계속 압박을 주었다.

나중에는 이 지역은 정말 좁다면서 이야기를 했다. 예술제를 언급하며 그것만 잘 넘기면 좋은 소문 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했다. 이건 협박이다. 억압하는 사람이 좁다고 표현하는 것은 협박이다. 피억압자가 좁다고 하는 것과 다른 의미이다.

결국, 난 약속을 하지 않았고, 스트레스받아서 너무 힘들다고 나왔다. 밖에 나오니 비는 그쳤다. 난 비 맞고 싶을 정도로 우울해졌는데, 비도 그쳤다.


- 2016년 10월 1일 아침

아침 전체 모임 시작할 때부터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 선생님이 갑자기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화장했네요? 남자가 왜 화장을 해요?"

맨날 화장하고 다녔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도 아니면서 인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난 대답도 하지 않고 무시하고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전체 모임이 끝날 때쯤에야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교감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생님들, 남자 선생님은 남자답게, 여자 선생님은 여자답게, 학생들에게 본을 보이세요."

며칠 전에 했던 성평등 자체 연수에서도 성차별, 성폭력 예방을 위해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강조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리 연수 자체를 형식적으로 한다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나를 타깃으로 해서 전체가 압박을 주더라도 이건 아니다. 며칠 전 연수에서 한 이야기 마저 엎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 2016년 11월 28일

저 말이 왜 나왔는지 사정을 알게 되었다. 화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다. 수업 중에 거울을 꺼내서 화장하는 남자 교사가 있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렇게 저렇게 알 수 없이 꼬여 화장하는 것에 대하여 주의를 주고 못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된 것이었다.

문제는 화장하는 남자 교사는 나뿐이었다. 수업 시간에 거울을 꺼내서 화장할 이유가 없었다. 수업 시간은 굉장히 바쁘다. 내 진도 나가기도 바쁘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교장의 말에 민원을 넣은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하겠느냐며 화를 냈다고 했다. 일단 교장은 내 화장에 관해서는 예술가라는 이유로 방어했다고 이야기했다. 몇 차례 전화 왔지만, 그냥 욕먹고 말았고, 수업 중에 했다는 것에 그냥 둘 수 없어서 주의를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밑에 전달했다고 했다고 했다.

그 민원의 배경으로 추정되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나에게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라며 성희롱한 학생에게 성희롱이라고 경고했고 그 학생이 반발하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인데 그게 뭐가 문제냐?"고 한 것에 벌점을 준 것이다. 또 하나는 수업 중 분장 연습 후 교칙 위반을 막기 위해 메이크업 리무버를 갖고 온 김에 화장으로 벌점 받을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 벌점 대신 화장 솜에 메이크업 리무버를 묻혀서 닦게 했다. 이것도 잠깐 하고 하지 않았다. 다른 교사는 그냥 물티슈로 닦게 하지만, 나는 그래도 저게 좀 더 낫겠다 싶어서 메이크업 리무버를 사용했다. 나는 그 두 배경 중 전자를 더 크게 의심한다. 의심을 어떻게 하든 그걸 학생에게 티 낼 수는 없으니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 일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더 미칠 것 같았다. 나도 폭력적이었고, 그 학생과 학부모도 폭력적이었으며, 관리자와 관리자쯤의 위치인 사람도 폭력적이었다. 모두 폭력적이었다. 문제가 전자라면 폭력의 시작은 학생이다. 더 크게 보면 잘못 가르친 어른들이 폭력의 시작이었다. 문제가 후자라면 폭력의 시작은 나다. 교칙이 반인권적이라는 생각에도 동조한 내 잘못이 시작이다.


- 보수의 품위

학교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학교는 언제나 끊임없이 학습하며 진보해야 하는 곳이다. 새로운 것을 항상 접하는 학생들 옆에 항상 있고, 교육과정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문화교육을 하기 위해 소수자의 인권을 공부하는 등 더 진보적으로 열려 있어야 하는 곳이 학교이다.

학교에서 보수적이라는 것은 학습하기 싫다는 핑계, 인정하기 싫다는 핑계에 불과하다. 보수적이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지칭해서는 안 된다. 안정적인 현재에 부작용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변화에 대하여 더 고민하겠다는 태도여야 한다.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보수적인 것이 아니다. 그냥 게으른 것이다. 진짜 학교에서 보수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면 보수의 품위를 보였으면 좋겠다. 난 계속 화장을 할 것이다.

요즘 치마를 입는다. 치마는 특별한 때에나 반강제로 입던 것이었다. 스스로 입기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좀 넘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어색해서 청바지 위에 랩스커트로 입었었다. 그렇게 1주일 후 용기를 얻고, 스타킹 내지 레깅스를 신고 치마를 입는다. 이제 남들처럼 치마를 입은 지 3주가 지났다. 이제는 이렇게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되었다. 그런데 대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난 남성기를 갖고 태어난 인간이다.

길에서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이나 카페에 앉아 있는 것 자체는 사람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나한테 시선이 집중되는 기분도 없다.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나한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걸 알게 된 후로 별로 신경 쓰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성별을 보더라도 얼핏 보고 판단할 뿐인 것 같다. 그렇게 자세히 뜯어보지 않는다. 파마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곱슬머리에 길이는 어깨 근처. 키도 170cm가 안되는(169cm) 데다 마른 몸이다. 걸친 옷을 보면 아래는 치마, 위는 허리까지밖에 안 오는 짧은 니트, 오른쪽을 위로 하여 여미는 재킷까지 자연스럽게 남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다 가방은 성별이 느껴지지 않는 에코백.

그런데 가슴은 평평하고, 어깨는 넓다. 목에도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여성의 특징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처음부터 그렇게 자세히 볼까? 아는 사람이나 자세히 보고 나서야 “나보다 치마가 잘 어울리고 예쁘다. 어깨만 좁으면 딱인데.” 라는 말을 한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도 중성적인 인상 때문인지 나의 인상을 두고 성별에 대해 내기를 하는 한 쌍을 본 적도 있다. 혼자서 말을 할 일이 없으니 조용히 있었다. 주문한 것을 기다리는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눈치도 분명히 나다. 굳이 시비를 가리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상큼한 김선생 고객님, 주문하신 오늘의 커피 나왔습니다.” 내 음료가 나왔다고 알리는 소리에 가서 커피를 받았다. 그때 수군대던 한 쌍 중 남자의 소리 “거봐 여자 맞잖아.” 남자는 신난 표정, 여자는 묘한 표정. 내기했다면 분명 여자 쪽이 이긴 게 맞다. 둘 중 한쪽은 이겼고, 한쪽은 진 게 아닌 것 같은데 라는 표정을 잠깐 보는데, 어이없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게 뭔가?

아무튼, 평소에 나한테 대놓고 물어보거나 뭐라고 하는 사람 없으니 남의 눈이야 알게 뭔가? 그렇게 치마 입는 것 자체는 거리를 걷거나, 커피 마시러 가도 신경 쓰일 게 없었다. 어머니도 내가 치마 입고 싶어 하고,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을 안다. 여자친구도 알고 있고, 치마를 골라주기도 한다. 주변의 사람들도 치마를 입는 것 자체 갖고 타박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신경 쓰일 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요 며칠은 스트레스를 좀 심하게 받았다. 육체적인 부분은 없었지만, 성폭력과 성차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내가 치마 입은 것을 보고 뭐하는 거냐? 남자가 그런 것 왜 입느냐고 하셨다. 분명 두어 번 보셨을 텐데, 신경을 아예 안 쓰셨나? 아니면, 잘 모르셨나?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도 입었었는데? 어차피 어머니는 인정해주시고, 아버지가 화를 내는 것에 대해 나를 그냥 두라고 두둔해주셔서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문제는 친구들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 그런데, 몇 명

그런데 요 며칠은 스트레스를 좀 심하게 받았다. 육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성폭력과 성차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께서 내가 치마 입은 것을 보고 화를 내셨었다. 남자가 그런 것을 왜 입느냐고 하셨다. 분명 두어 번 보셨을 텐데, 신경을 아예 안 쓰셨나? 아니면, 잘 모르셨나?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도 입었었는데? 어차피 어머니는 인정해주시고, 아버지가 화를 내는 것에 대해 나를 그냥 두라고 두둔해주셔서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문제는 친구들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내가 페이스북에 치마를 입어보겠다고 선언한 글을 올리고, 이후에 입은 사진을 일부러 올렸다. 그렇게 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알기 시작했다. 나를 대하는 것도 별문제 없었고, 치마를 왜 입는지 정도만 물었다.

고등학교 교악대 동문회에 갔을 때도 별일이 없었다. 한 선배는 왜 치마 안 입고 왔느냐? 농담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내가 치마 입는 것에 대해 내 생각을 알게 되면서 치마 입는 것에 대해 지지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 생각을 먼저 들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튀는 사람일 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만난 친구들 모임에서는 달랐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동문회 때와 비슷하게 시작했다. 왜 치마 안 입고 오냐고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놀다가 2차가 되어 아이를 데려온 친구들은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갔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쯤에는 부부관계, 그러니까 섹스 이야기가 나왔다.

성욕이 커지는 시기가 남녀가 각각 어떠니, 남자는 일정 기간에 한 번은 빼줘야 한다느니, 어떤 형태나 도구를 사용한 섹스에 대해서 변태적이라느니, 남자는 빼줘야 한다느니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고자 취급당할까, 트랜스섹슈얼이라 오해할까 싶어 남자는 빼줘야 한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고, 그냥 자위하라고 했다. 어떤 형태나 도구를 사용한 섹스는 변태적이기에 옳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박했다.

집에 갈 때쯤 화재가 나로 바뀌었다. 섹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로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성과 복장. 엄청나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으니까.

어떤 녀석은 “너 그렇게 입고 다니면 따먹힐 수 있다. 내가 아는 게이 형이 있는데, 너처럼 입고 다니는 것 보면 분명 너 따먹을 거다.” 거기에 그럴 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녀석은 “너 왜 치마를 입고 다니냐? 성 정체성이 흔들리냐?” 아니, 그냥 입고 다닌다. 나 나름의 성 평등 운동이기도 하고, 치마 입고 싶어서 입는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말로 “너 스타일이 특이하고 앞서 나가는 건 알겠다. 일본 스타일인 것은 인정하겠는데, 이 동네에서는, 아니 한국에서는 아니다. 여기서는 절대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따먹힐 것이라는 복장이 성폭력을 부른다는 여성혐오에 가까운 전형적인 피해자 탓하기와 특정 성적 지향에 대한 비난. 성 정체성이 흔들리느냐는 타인의 성적 지향, 성별 지향 자체에 대한 비난. 여기서는 아니라는 문화상대주의를 가장한 비난. 이런 성폭력과 성차별을 띄는 비난에 굉장히 힘들었다. 덕분에 며칠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 그래도 계속

나는 스트레스에 좀 약하다. 아니, 스트레스에 약해졌다. 다시 튼튼해져야 한다. 내가 알기에 이런 식으로 성 평등, 성 인식 전환 운동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 나다. 내가 약해지면, 누가 대신 운동해줄 것인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옷을 내 마음대로 못 입으면 그것도 스트레스일 텐데, 좋아하는 일 하고 스트레스받는 게 낫다. 튼튼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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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버리어 2016.01.05 14:03 신고

    지지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남성으로서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지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 또한 치마를 입어볼까 고민해봅니다. 일단 혼자 사는 집에서라도 시작해볼게요. 머리는 기르고 있는데 치마는 더 겁이 나서 입지 않았었거든요. 님의 글 읽고 용기내봅니다.

    • 지지 감사합니다 :)
      치마를 입는 게 부담스러우시면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나 바지 위에 덧입는 것부터 시작해보셔요.
      용기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2. 리니리난 2018.05.08 12:21 신고

    안녕하세요 김선생님 치마를 자주 입고 화장하는 걸 좋아하는 행인입니다. 지정성별은 남성이에요.
    크로스 드레서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의복에 성별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이분법적으로 분류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글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공감됐어요. 특히 전 남자화장실에 들어갈 때 시선이나 사소한 성추행이 굉장히 끔찍했는데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댓글 남겼습니다.

나는 예쁜 옷을 좋아한다. 옷을 사러 가면 별로 예쁜 옷이 없어 항상 고민했다. 조금이라도 예쁘다 싶으면 가격이 부담스럽거나 여성복으로 파는 것들이었다. 그런 여성복을 사볼까 하다가 다른 사람의 눈이 무서워서 구입해본 적이 없다. 사이즈가 안 맞을까 걱정, 이상하게 볼까 걱정. 걱정, 걱정, 걱정, 그렇게 걱정만 하며 내 취향을 피하기만 했다.

육지에서 2년 가량 살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내 상태는 엉망이었다. 마지막 1년에 겪었던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이었다. 그래도 만나는 사람이 생기면서 상태가 점점 좋아졌다. 하지만, 방황하게 되었다. 긴장이 아직 남아 있는 데다, 다가오는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로 방황을 선택한 것이다. 방황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던 중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변화를 줄까 고민하던 중 흥미가 생기는 구인 광고를 봤다. 교사를 하고 싶지만, 이곳이라면 잠시 교직을 벗어나서 일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음식과 관련되어 있고, 나 같은 성향이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쓰던 중 저항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내가 저항하지 않고 피했을 때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다시 저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환절기도 오고 해서 옷을 새로 사고 싶었다. 내가 입는 옷을 통해 큰 변화를 주고 싶었다. 이전에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항상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색을 입어서 튀고 또 튀었다. 그래도 나 나름 무난하다고 생각하고 입었을 뿐이었다. 이제 무난함의 범위를 넓혀보고 싶었다. 좀 더 튀게 입고 싶었다. 옷을 통해서도 저항하고 싶었다. 여자한테 폐끼치는 사이즈라고 하는 말, 젠더에 맞는 의상이라는 것에도 저항하고 싶었다.

치마가 입고 싶어졌다. 내가 보기에 바지보다 치마가 예쁜 것이 많았다. 예쁜 치마를 입어보자. 치마에 맞는 상의를 입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좀 두려웠다. 그래서 랩스커트를 선택해서 바지 위에 겹쳐 입을 생각을 하고 랩스커트를 주문했다. 계속 두려워서 직접 사러는 못 가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주문했다.

막상 결심하고 주문했는데, 복장도착이라며 변태 취급 받는 것은 아닐까? 난 여성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젠더를 바꾸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불안에 사로잡혀 사는구나, 왜 이렇게 살까? 답답해 하며 일단 주변에 여기 저기 물어봤다. 뭐 어떻냐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러고 치마를 입으려고 한다고 어머니한테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 왈 “여자 옷 아니냐?”

대답은 바지 위에 겹쳐 입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크로스 드레서로 행동하려는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 레깅스나 스타킹을 입을 생각도 했고, 여름에 맨다리도 해볼까 생각을 했었는데, 이게 이성의 옷을 입는 행위로 비춰지려나? 아니, 대체 여성복, 남성복이라는 개념이 뭐기에 그래? 치마는 남자한테 더 좋다는데. 그리고, 재봉이 발달하기 전에는 그런 거 안 가리고 치마였을텐데! 여자가 바지 입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나는 성별에 관계 없이 입고 싶은 옷을 입으려는 것인데, 이건 어떻게 설명을 할까? 유니섹스? 메트로섹슈얼? 왜 설명을 해야하는 거지? 난 젠더라는 것에도 저항하려는 건데. 내가 왜 젠더에 얽메이는 거지? 이렇게 갑갑한 마음을 하면서도 나를 설명할 말을 계속 찾아보았다. 젠더 비순응, 젠더 블라인드 정도가 가장 어울릴 것 같았다.

데이트를 하러 가면서 치마를 입었다. 바지 위에 치마. 이틀 연속 만났는데, 그는 하루는 바지, 하루는 치마. 좀 부러웠다. 나는 치마를 입는데 남들 눈을 걱정하는 남자, 그는 치마를 입는 게 사회적으로 자연스러운 여자. 그렇게 데이트를 하면서 남자인 내가 치마 입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속에 레깅스 입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어차피 남인데.”라면서 괜찮다고 했다. 그말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나를 그만큼 존중하는 것이었다. 그래 모두 남인데, 내가 아닌데, 뭘 그렇게 걱정했을까? 겨우 남의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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