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히 내 진짜 욕망을 깨달았다.

치마를 입고 다닌 지 4개월이 넘었다. 나는 내가 그저 치마를 입고 싶어서 입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내 마음 깊은 곳에 권력욕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가족의 장남이며, 우리 집안의 장손인 내가 가부장제를 싫어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단지 장손인 내게 없는 그 빼앗긴 권력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고 화장까지 하는 것이었다.

평소 유입 로그를 살펴보며 검색어를 그대로 넣어 검색해보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몰랐을 뻔했다. 오늘 그 검색어 살펴보기 덕에 훌륭한(!) 글[각주:1]을 두 개나 읽게 되었다. 『남자가 치마입기?(부제: 유선형은 권력이다.)(http://blog.naver.com/handzfree/220674595980)』를 먼저 보았고, 그 글의 링크를 통해 『구조론 심리학3. 남자들이여, 치마를 입어라! -오세(http://gujoron.com/xe/277606)』라는 글도 접하게 되었다.

앞쪽 링크의 글머리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남녀평등이 점점 구현되고 있는 지구촌에 아직도 남성들에게는 불문율 처럼 금기시되는 사항이 있으니… 바로 치마입기다. 여성들은 이미 남자옷을 다 입고다녀도 괜찮은 세상인데 남자들은 치마를 못입는다. 집안에서 쫓겨나고, 거리에서는 눈총의 대상이 되고…”[각주:2]

그리고 마지막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여하튼 극한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21세기에도 이러한 터부가 남아있는데 고대시대에는 얼마나 큰 터부로 인하여 인간들이 고통을 겪고 살았을지… 남성들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여성들에게 빼앗긴 권리를 찾을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남자들도 부디 유선형 본능을 되찾을 수 있기를…”[각주:3]

난 이렇게 깨달았다. 내 행동은 여성에게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이었다.


- 권력자 남성의 특징

그런데 난 집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안 쫓아내시던데? 거리에서는 그다지 눈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 자기 할 일에 바빠 나 같은 존재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난 이미 권력을 가졌나? 으하하하하 우리 가족 최고 권력자가 나라니, 황당해서 웃음 밖에 안 나온다.

글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여성의 옷은 사회에서 상위 계층이 입을 수 있는 옷의 형태이고, 여성의 머리 또한 상위계층이 누릴 수 있는 형태로 보인다.”[각주:4]


“물론 남성들도 머리를 기르던 조선시대까지는, 상투를 틀거나 등등 작게 만드는 기술을 사용하였으나, 일제시대 단발령이 내려지고 엄청난 남성들의 반발이 있었다. 즉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가 그만큼 낮아진다는 것에 반발했던것…”[각주:5]


“권력자 남성 복장의 치마형태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통털어서 전부다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치마나 긴머리나 모두 우아한 곡선으로 되어있다. 여성의 눈화장도 마찬가지, 마치 유선형의 날씬한 물고기를 보는듯하게 눈화장을 하면, 그것이 사람의 시선을 끈다.”[각주:6]


“치마나 긴머리와 마찬가지로, 화장 또한 고대시대에는 신분의 상징이였을 것이다. 신분이 높은자가 좋은 화장을 하여, 남들이 보기에 낮은 계층과 구분이 된다. 현대사회에서도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남자또한 화장을 하고 출연을 하는것을 보면 이런 추론이 크게 틀린것은 아닐듯 하다.”[각주:7]

난 권력을 가진 자의 상징으로 머리도 기른 것이고, 치마도 입고, 대충이나마 화장을 하는 것이었다! 난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 권력도 별 권력이 다 있다.

황당할 뿐이다. 권력도 별 권력이 다 있다. 어떻게 머리 기르기, 치마 입기, 화장하기가 권력이 될 수 있을까?

조선 시대의 머리 기르기는 유교의 영향이 강했다. 효경에 나오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불감훼상효지시야(不敢毁傷孝之始也)를 보자.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몸뚱이 터럭, 살갗으로 사람의 몸 전체를 이야기한다. 이런 몸뚱이를 수지부모(受之父母), 즉 어버이로부터 물려받았다. 불감훼상(不敢毀傷), 감히 상처입히지 않는 것이, 효지시야(孝之始也), 효의 시작이라는 내용이다.

머리 기르기가 권력? 분명, 권력과 아무 관계 없다고는 못 한다. 머리 기르기보다 유교의 가르침이 권력이었다. 유교의 경전을 공부하며 수백 년을 그게 당연한 듯 살아왔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부정당하니 기분이 어떻겠는가? 나라가 만들어내고 자신도 만들어낸 그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일 것이다. 부모에게 효를 다 해야 하는 세계관이 외부에 의해서 무너지니 한 반발이었지, 머리가 길다고 권력은 아니었다. 머리가 길다고 권력이면 상투를 왜 틀까?

치마 입기가 권력이라는 것은 뒷쪽 링크가 더 가관이다.

“바지는 보통의 남성들이 취하는 삶의 양식을 집약하고 있다. 남성은 기본적으로 잉여다. 김동렬님 말대로 유전적으로 보면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여자의 세력이며 잉여이다. 공동체의 세력을 확장하고 영토를 넓히기 위해 남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차피 단 한 명만 있어도 무방한 잉여이기 때문에  공동체에 의해 마구 소모된다. 주로 전쟁의 형태로 말이다.”[각주:8]

“그들은 마구 소모되니까 옷도 아무렇게 입는다.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데 적합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남성의 옷은 거의 기능 위주이고 실용성이 기준이 된다. 남성 옷은 그야말로 '위하여'의 집합체이다. 멋에 의하여, 아름다움에 의하여. 어울림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농사짓기 위해, 사냥하기 위해, 전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각주:9]

소모되기 위해 실용적인 바지를 입혔다고 한다. 바지보다 더 먼저 등장한 실용적 복장은 짧은 치마다. 바지보다 만들기 쉽고 동작의 제한이 적다. 바지는 실용적이지만, 바지 제작과정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가장 기본적인 패턴과 꿰맬 부분만 보아도 바지가 훨씬 번거롭다. 문화권과 별개로 기술적인 면에서 바지를 입는다는 것은 권력에 더 가깝다. 말을 타지 않는 이상 실용성은 짧은 치마가 훨씬 높다.

또한, 짧은 치마가 패션 일부가 된 것은 불과 백 년도 안 된 20세기의 일이다. 그 전까지 여성은 동작의 제한이 있는 긴 치마만 입어야 했으며, 그 긴 치마를 입고 가사 노동을 해야만 했다. 전쟁 때 생산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여성을 고용했지만, 그것도 대체로 바지보다 치마를 입어야 했고, 바지가 여성의 패션이 된 것은 더 이후의 일이다.

앞쪽 링크로 다시 돌아가 유선형을 권력이라고 끌어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치마나 긴머리나 모두 우아한 곡선으로 되어 있다. 여성의 눈화장도 마찬가지, 마치 유선형의 날씬한 물고기를 보는듯하게 눈화장을 하면, 그것이 사람의 시선을 끈다.”[각주:10]

그 전에 왜 남성은 화장을 안 해도 별말을 듣지 않는지, 왜 현대에도 여성보다 남성들이 덜 꾸미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온갖 미디어를 통해 강요받는다. 여성성과 아름다움이라는 말로 강요받는다. 물론 본인의 선택과 미적 감각 때문에 자신을 꾸미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출근길에 화장하는 여성들은 본인을 위해 꾸미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꾸미는 것일까? 그 꾸미는 행위가 권력이라면 왜 남성들은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꾸미지 않는 것일까?

앞쪽 링크에서 방송을 예로 들기도 한다. 방송 출연을 위해 화장한다? 정확하게는 분장이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의 특성에 맞게 만들기도 하고, 방송에서 카메라가 비출 때 그 사람의 모습을 뚜렷하게 잡기 위해서 꾸미는 것이다. 방송을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 분장이다. 방송에 출연한다고 무슨 권력이 생기는가? 방송을 봐도 돈 더 많이 받는 남성이 분장을 좀 더 적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 여성혐오

두 링크는 여성혐오이다. 여성혐오는 한문 글자 하나 만들듯이 해석해야 한다. 혐오라는 개인의 감정을 끌고 오면 끝이 없어진다. 사전에서 보통 “여성에 대한 혐오”라고 정의하는 데, 그 사전의 편찬자가 내린 정의일 뿐 정확한 뜻이 아니다. 학자들이나 정치권에서 사회문화, 범죄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현상을 논의하며 계속 새롭게 정의한다.[각주:11]

단순하게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야기는 여성혐오라는 현상과는 그렇게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혐오감뿐 아니라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행위, 여성에 대한 편견 등을 모두 포괄하며 남성, 여성 모두에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두 링크는 여성에게 강요했던 여성성을 왜곡하여 설명하고 있다. 머리는 기를 것을 강요받았고, 바지는 못 입게 했으며, 화장은 사회적으로 여성에게만 강요했다. 그것을 특권이라고 하며, 남성이 권리를 빼앗겼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혐오일 뿐이다.

졸지에 허울뿐인 권력자가 되었다.


오늘도 글을 쓰기 위해 외출할 준비를 했다. 입술이 너무 어두워서 조금이라도 건강해 보이려고 처음으로 틴티드 립밤을 써봤다. 거울을 봤는데, 자연스러운 것 같다. 조금 더 중성적으로 보인다. 내가 원하는 젠더 블라인드에 가깝게 연출…은 못하겠구나. 머리도 예쁘게 묶었는데 목이 활짝 드러나는 셔츠와 니트를 입었다. 내 목은 매우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집을 나와 천천히 걸었다. 심부름도 하고 동문로에 도착했다. 그리고 평소 글을 쓰기 위해 찾는 곳에 도착했다. 얼굴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 좋아 사이렌 오더를 별로 안 쓰려고 하다 보니 기다리는데, 한 중년 여성분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런데 카운터 한구석으로 가서는 말을 걸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남잔데 치마 입었어."

대답하는 그는

"그럴 수도 있죠."

라며 평소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도 반갑게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은 뭐 드실 거에요?"

"오늘의 커피 그란데 사이즈로 주세요."

"아까 수군대는 소리 다 들렸어요."

"네?"

"치마"

"아~ 하하하"

"사이즈는 뭐로요?"

"그란데요"

"아 맞다. 그란데. 그런데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오셨어요?"

"뭐 그냥?"

난 대답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나와 이야기한 그는 이곳에서 나랑 제일 친한 파트너다. 예쁘게 입는다고 치마 귀엽다고 가장 많이 칭찬해주는 이다.

'아주머니 상대 잘못 골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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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똘구임? 2016.08.12 16:55 신고

    남자인데 치마를 입으면 또라이지 그게 정상이냐

    옛다 관심!!!

왜 치마 입어? 예뻐서 입는데?

“치마 왜 입어?”

치마가 7벌이 되기까지 이 질문 참 많이 들었다. 분명 이유를 썼던 것 같은데, 묻는 사람이 종종 있다. 일일이 답해주는 건 쉽지 않다. 치마 입는 이유가 뚜렷하게 한 가지가 아니라 반복해서 같은 말을 할 수 없다. 같은 대답을 해줄 수 있다고 해도 반복은 짜증을 부르는 일이다. 무엇보다 질문의 뉘앙스가 모두 다르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의문에 맞춰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옷 입는 것 갖고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니 이것도 우스운 노릇이다.

“바지보다 예뻐서”

대답을 아무리 좋은 걸 찾아도 이 이상의 대답을 할 게 없다. 나는 치마가 바지보다 예뻐서 입고 싶은 것이다. 다른 이야기에서 저항이라는 말도 했지만, 저항한다고 굳이 치마 입을 이유는 없다. 그 저항은 저항하기 위한 저항이 아니라 자존감을 위한 저항이다.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게 아니라 나의 마음을 존중하기 위한 저항이다. 내 자존감을 위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으면서 그것을 문제 삼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다. 치마 자체가 저항이 아니다.

치마가 예뻐서 입는다고 해도 묻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거기서만 끝나면 나도 그냥 치마 입는 것에서 끝날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치마를 왜 입느냐는 말이 또 나온다. 그 물음은 내 욕망을 인정하지도 않고, 내 욕망에 따른 행동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힘을 가진 게 없고, 누군가의 삶을 방해하지도 않는데, 스파이더맨처럼 책임이 생겨버렸다. 내 욕망과 욕망에 따른 행동밖에 없었는데, 설명하고 싸워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굳이 왜 치마를 입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바지보다 예뻐서 입는다고 해도 물어보면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소리를 하고 싶다. 나는 치마를 여성복으로 생각하고 입는 것이 아니다. 입고 싶은 예쁜 옷이라고 생각하고 입는 것이다. 바지 입으면 왜 바지 입었느냐고 묻지 않듯 물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중에야 떠올리기는 하지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왜 옷 그렇게 입어요?”

“게이였어?”

대놓고 묻기도 하지만, “치마 왜 입어?”라는 말을 통해 그런 뉘앙스로 묻는 사람도 있다. 트랜스젠더나 크로스드레서와 착각한 것 같다. 게이는 남성 동성애자일 뿐인데, 게이가 치마를 입을 이유가 있을까? 트랜스젠더라고 다 치마 입는 것도 아니다. 여자라고 다 치마 입던가? 그리고 나는 다른 젠더의 옷이라고 생각하고 입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성의 역할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예쁜 옷을 입을 뿐이다.

“여자가 되려고?”

이런 말 때문에 찾아낸 말이 젠더 비순응, 젠더 블라인드이다. 안 그래도 치마라는 옷을 처음 살 때 한참을 마음고생 했고, 입고 다니기까지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마음고생 했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난 성 역할이나 성에 따른 옷의 구분 자체에 항상 의문을 품고 있다. 당연하다는 말에 한 번도 그냥 수긍해 본 적 없는 내게 이런 말은 금지와 별다를 바 없는 말이라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젠더 비순응 혹은 젠더 블라인드 운동.

젠더 블라인드 운동은 젠더 구분을 피하자는 내용이다. 젠더 구분을 피해서 성 평등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사회적으로 성 역할을 구분한다는 것은 차별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여성의 역할과 남성의 역할이 따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신체 기능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일이 있겠지만, 그것이 작용하지 않는 데까지 역할을 나누는 것은 차별이다. 그래서 “여자가 되려고?” 라는 말이 싫다. 단지 예쁜 옷을 입을 뿐이다.

“대단하다”

치마 때문에 여기저기서 건드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아버지하고도 싸우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치마 입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고 인정해주신다. 그것을 보고 함께 응원의 뜻으로 다단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물론 감사한 일이다. 그게 세상 주류의 관점에서 대단하시긴 하다. 하지만 옷을 어떻게 입느냐는 것은 내 권리이다. 그래서 대단하다는 말이 정말 어색하다. 당연한 권리를 인정해 주는 모습을 대단하다고 할 필요가 없다. 사회가 아무리 권리를 인정 않는 사회라고 해도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에 감사하거나 대단하다고 하는 것은 내 권리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누가 준 것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 내가 바라는 것

“예쁘게 입었다.” “어떡해, 귀여워.”

이런 말 말고는 별로 원하지 않는다. 내 옷맵시 갖고 칭찬하는 것은 좋다. 다른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내가 들을 의무도 없고, 스트레스만 받는다. 안 어울린다고 하는 것도 괜찮다. 어울리게 다시 코디하면 되니까. 그냥 내 모습일 뿐이다.


만약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옷 왜 입어?”

“왜 긴 바지 입어?”

“왜 상의 입어?”

“왜 태어났어?”

뉘앙스가 달라질 때마다 감당할 수 있을까?


자꾸 그렇게 치마 왜 입느냐고 질문하면 “왜 살아요?”라는 소리 듣는 기분이다. 질문 감당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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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

환절기라고 부를 만할 그때쯤부터 옷을 자주 샀다. 추워지는데, 입을 옷도 바꾸어보고 싶어서 한두 번 보다가 빠져들었다. 한동안은 자주 보면서 이미 사둔 치마랑 맞춰 입을 상의도 찾고, 다른 모양의 치마도 찾아보았다. 남자 혼자 가서 매장에 가서 여성복이라 불리는 것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친구 매상 올려줄 겸 친구 가게에 갔다가 “여기 너 입을 옷 없어. 너 여자친구 데려와서 여자친구 옷이나 사줘.” 소리까지 듣는 바람에 더 위축됐었다.

그래서 더 한동안 온라인 쇼핑몰만 봤었다. 치마를 사려고 하니 보는 분류는 당연히 여성복의 치마나 니트류다. 바지는 많이 갖고 있으니, 굳이 더 살 필요는 없고, 나랑 어울릴 만한 옷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았다. 매일 같이 찾아보던 중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제목을 봤다. “남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 갑자기 예전 일이 생각났다.



- 여성이 꾸미는 이유

몇 년 전 교원임용시험 실기 시험 준비 때문에 민요를 배우려고 개인 선생님을 찾았었다. 판소리 전공하는 친구 동생이 있으니 혹시나 알아봐 줄 수 있을까 싶어 연락하니, 자기는 못한다고 자기 후배를 소개해 준다고 했다. 같은 판소리 전공인데, 민요 가르친 경험이 있어서 잘 가르칠 거라고 했다. 그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 속으로 “완전 예쁘다”라는 소리가 나왔다. 첫인상이 워낙 그렇게 강렬하게 예뻤다. 지금도 예쁘다. 단가 “광대가”에 보면 판소리를 부르는 광대의 조건 중 첫 번째가 외모[각주:1]인데, 딱 그 조건에 맞는 판소리 전공자라니!

내 생존을 위한 배움이다 보니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외모는 잠깐 노래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장단에 노래만 해도 미치겠는데 다른 것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외모가 엄청나게 신경 쓰였다. 이분이 한껏 꾸미고 오신 것이었다. 안 그래도 화려하게 예쁜 분이 더 예쁘게 꾸미고 오셨다. 겨울인데도 짧은 원피스에 정말 화려하게 꾸미셔서 “어디 가세요? 혹시 남자친구 만나러?[각주:2]”라고 했더니, 여자친구들 만난다고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입어요?”라고 물었더니, 나 보고 잘 모른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래 여자들끼리 만날 때 더 열심히 꾸미고 만난다고 했다.

그 기억에 남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각주:3]이라는 것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 중에 나온 그 데이트룩이라는 것을 살펴보니 거의 치마 종류 혹은 어떤 사람들이 여성스럽다고 표현하는 그런 종류의 옷이었다. 남친이 보기에 좋은 걸까? 반대로 여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은 잘 안 나오던데, 불편하더라도 데이트할 때 꾸미는 것은 여성들만의 몫인 걸까? 아니 굳이 꾸며야 하는 걸까?

어떤 것은 태그로 이렇게 입으면 남친이 생긴다는 말까지 있었다. 내가 입고 싶은 모양의 옷인데, 내가 사면 안 되는 것일까? 만약 내가 사면 “여자친구한테 선물하려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할까? 그러면 나는 내가 보기 좋기 위해 여자친구를 인형처럼 꾸미는 인간이 되는 걸까? 남자인 내가 그걸 입는다고 하면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예쁘게 꾸미는 게이에 대한 흔한 편견(+오해)을 재생하게 되는 것일까?


- 치마는 예쁘고 편안한 옷

치마는 예쁘고 편한 옷이다. 바지보다 모양이나 색상, 소재가 다양하게 나온다. 좀 더 꾸미기 좋고, 편안하게 입기 좋은 옷이 더 많이 나온다. 바지처럼 입을 때 양발을 따로 끼워 넣을 필요 없이 쉽게 통째로 둘러 입을 수 있다. 상의랑 합쳐진 상태로 나와도 화장실 갈 때 불편함이 바지에 비해 적다. 점프슈트 같은 경우 통째로 벗어야 화장실 이용이 가능한데, 원피스 같은 경우 치마만 올리면 된다.

랩스커트 같은 경우 발을 끼워서 입는 게 아니라 둘러서 입을 수 있어 편하다. 원피스는 통째로 한 벌만 입으면 끝이다. 더운 여름 바람이 통해 시원하게 입을 수도 있다. 겨울에는 스타킹이나 레깅스에 롱스커트를 입어 함기량을 늘려 좀 더 따뜻한 하체를 유지할 수도 있다. 치마는 이렇게 예쁘고, 여러가지  장점이 많은 좋은 옷이다. 이런 장점만 생각하면 남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이 치마뿐이라도 예쁘고 편안한 옷이니 문제 될 것이 없을 것 같다.



- 치마는 예쁘고 불편한 옷

그런데 치마는 굉장히 불편한 옷이다. 수많은 개인적인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편한 옷이다. 물론 여성이 바지 입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사회가 바뀌었다. 누구나 바지를 입고, 누구나 바지를 쉽게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치마는 여전히 여성에게만 강요된 옷이다. 그래서 치마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편한 옷이다.

20세기 초, 중반까지 치마는 여성 억압이며 바지는 여성 해방의 상징이었다. 여성에게 바지를 금지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패션의 고장이라는 프랑스 파리에서도 조례를 통해 여성에게 바지를 금지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19세기 초에서 20세기 초에 여성이 바지를 입으려면 특별한 허가가 필요했다. 중간중간 개정되고 사문화되긴 했지만, 불과 몇 년 전인 2013년에야 폐지되었다. 그 정도로 치마는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강요된 의복이다.

그런 종류의 성문화된 억압이 아니더라도 다른 형태로 강요된 경우는 여전하다. 특정한 단체에 속해 있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여성에게 치마를 입는 것이 당연한 예의처럼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길이도 자신이 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에 맞게 적당한 수준이어야 한다. 제복의 경우에도 여성의 예복은 치마, 교복의 경우도 여학생은 치마(몇 년 전부터 바지 교복이 생기고, 바지를 입을 수 있게 한 곳이 많다.)가 기본적인 교복이다. 면접을 볼 때도 여성의 경우 보통은 치마 정장을 선택할 정도로 여성에게 치마는 여전히 강요된 복장이다.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입을 경우에도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다. 나풀거릴 경우 바람에 치맛자락이 날려서 하고 싶지 않은 노출을 할 수도 있다. 치마를 입고 넘어지게 될 경우 각도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노출을 할 수도 있다. 치마를 입고 다리를 모아 앉지 않으면 조신하지 않다고 지적당하기도 한다. 성범죄자가 카메라를 이용해 뒤나 아래에서 몰래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치마가 짧거나 다른 쪽에 피부가 많이 보일 경우 노출이라는 말로 성범죄 핑계[각주:4]를 대는 데 쓰기도 한다.

그런 사회적 억압의 기반에 성차별이 있는지, 여성 혐오가 있는지, 전반적인 소수자 혐오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 누구나 바지를 입을 수 있고, 바지를 금지하지 않기 때문에 치마는 억압의 상징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도 예로 든 것처럼 여전히 치마를 향한 시선이나, 치마 입기를 강요하는 행위나 분위기, 그리고 치마 입은 자에 대한 범죄, 혐오를 볼 때 치마는 아직 사회적 억압 도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닐까?



- 치마가 사회적 억압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이유

치마가 사회적 억압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치마 입는 남성에 대한 시선이다. 수치스럽게 여기는 시선, 변태로 보는 시선,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대해 다르게 보는 시선, 유희로 보는 시선이다.

수치스럽게 여기는 시선은 아직 개인적으로 겪은 것이 대부분이다. 아버지가 치마 입는 것에 대해 창피하다거나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고 하며 못 입게 하고 있다. 그래도 어머니가 내 편 들어주시기에 아버지와 직접적인 큰 충돌은 없다. 또 얼마 전 내가 치마 입은 것을 본 동생의 어이 없어 하는 소리도 있었다. 옷 갈아입고 와서 밥 먹는데, 『응답하라 1988』 17화에서 김원준이 티비로 나온 장면에서 남자가 치마 입는다고 뭐라고 하는 것을 보고 나한테 똑같이 뭐라고 했다.

변태로 보는 시선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친구네 가게에서 옷 사려고 했는데 그것을 꺼린 것까지 포함하여 남자가 치마 입는 것 자체를 꺼리는 일도 있었다. 또 다른 데서는 치마를 입으면 성적 쾌락을 위한 것인 양 그렇게 입으면 누가 너를 ‘따먹을 것’이라던 폭력적 말까지 들었었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이 치마일 뿐인데, 그것이 해선 안 될 금기를 어긴 것일까?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흔들리느냐는 소리도 들었다. 흔들리든 말든 단지 옷을 입었을 뿐이다. 치마가 여성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인 것처럼 치마를 입은 것 자체로 내가 정할 성별 정체성을 마음대로 흔들려고 한다. 그게 아니면 게이에 대한 흔한 오해와 편견을 덧씌워 성적 지향을 마음대로 판단하여 내뱉는다.

유희로 보는 시선도 있다. 간혹 어떤 행사에서 놀이 삼아 유희로 여장이라는 말로 남성에게 치마를 입히고, “여성스럽게” 행동하도록 한다. 그런 놀이 자체가 치마가 사회적인 억압이라는 이야기 아닐까? 반대의 경우는 드물뿐더러 재미 삼아 하는 일도 (내가 알기에는) 없다. 남장이라는 것도 극에서나 드라마적 장치로 차별에 맞서거나 반전을 위한 것으로만 소비된다.

그런 모든 시선이 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아닐까? 여성스러움이라는 말을 남성에게 붙이면 수치가 된다는 것은 젠더를 고착화할 뿐 아니라 젠더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치마는 당연히 여성만이 입어야 하며, 남자가 입는 치마는 유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치마에 대한 폭력적 시선이 있다는 것 아닌가?

더불어 검색으로 나오던 여러 가지 일(링크1-남자가 치마를 입으면 안되는 이유, 링크2-"저게 남자여 여자여 치마 한 번 올려봐")을 봐도 치마는 여전히 억압적인 장치로 작용하는 것 같다.

저런 일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 편안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많이 인정한다. 더불어 치마 입는 행위 자체를 별것 아닌 취급하기도 한다. 내가 하는 성 평등 운동에 대해서도 공감한다. 또한, 치마를 골라주는 사람도 있고, 내가 입은 옷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저들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것인가?



- 남성의 외모 욕망

많은 남성이 어린 시절 호기심으로 어머니의 화장품과 치마, 누나나 여동생의 치마를 입어보았을 것이다. 대부분은 여성이 되고 싶다거나 여성처럼 살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입어 보지 않은, 혹은 입어 보지 못한 옷에 대한 호기심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쩌면 강요받은 남성적임에 때문에 느끼는 다른 모습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다. 실제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다. 어쩌면 성적 흥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부분은 금기를 깨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느낀 두근거림이었을 것이다.

외모를 꾸미는 것은 누구나 가진 미에 대한 욕망일 것이다. 그것을 남성이라는 이유로 제한당했을 것이다. 머리 모양이나 수염, 여드름 제거 정도는 개개인의 욕망에 따라 꾸밀 수 있는 사회적 시선이나 물건이 있었다. 하지만 화장을 통해 외모를 꾸민다거나 잡티를 가린다는 것, 여성스러움의 상징이라 알려진 치마나 레이스를 사용하는 것은 남성적이지 않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여린 마음을 갖고 있거나 목소리가 높다거나 예쁘장한 외모를 가진 것은 여자 같다며 놀림거리가 되었다.

요즘은 꾸미는 남성에 대해 인식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그루밍이라는 말 덕인지 외모를 꾸미는 것이나 화장에 대해서는 인식이 많이 나아진 편이다. 그래도 그루밍에 사용되는 화장품 광고는 여전히 남성성을 강조하며, 화장품의 색이나 향 역시 여전히 남성성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남성성을 강조하는 것은 개인적인 미의 추구와는 거리가 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욕망으로 포장된 자본의 안내를 소비하는 행위일 뿐이다. 여전히 여성성은 남성에게 소비되거나 적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소리를 재생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 남성들도 치마를 입자

남성들도 치마를 입자. 치마를 입고 자연스럽게 다니자. 치마 밑으로 나온 다리에 털이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인가? 털이 없는 매끈한 다리인데, 얼굴에 수염이 거뭇거뭇하면 어떤가? 자신을 자신답게 꾸밀 수 있으려면 시도를 해봐야 할 것 아닌가? 외모를 빼고 보아도 치마는 장점이 많다. 남성의 정자 건강에 좋다. 더울 때 반바지보다 시원하다. 추울 때 덧입어서 더 따뜻하게 다닐 수도 있다. 그리고 여성복이라고 나온 것들이 더 싸고 예쁜 것이 많다.

건강, 외모뿐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입으면 사회적으로 강요된 남성성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해방될 수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장남의 의무, 남성이라면 해야 할 것, 남성끼리 있을 때 좀 더 남성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마음의 압박까지 모두 해방될 수 있다. 성폭력과 관련한 이슈에 대해서 직접 겪는 것을 통해 상대를 좀 더 이해하게 되면서 가해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남성들도 함께 치마를 입자. 치마 별것 아니다.

  1. 신재효가 광대가를 통해 제시한 고전적인 판소리 소리꾼의 조건으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 [본문으로]
  2. 요즘에야 저런 물음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했었다. 사람을 주체가 아닌 객체화 시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트클럽 말고는 춤추는 클럽이 없는 지역이다. [본문으로]
  3. 여성들끼리의 말이라고 넘어가기에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갖는 젠더 폭력이 생각났다. [본문으로]
  4. 그런 범죄자가 어째서 성욕보다 강한 식욕과 수면욕을 핑계로 절도나 무전취식, 무전숙박을 먼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배설욕은 어떻게 참고 살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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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리스 2017.02.19 11:55 신고

    안녕하세요 용기가 대단 하시네요 저도 치마를 즐겨 입고 있습니다
    정보를 공유 했으면 합니다 저의 카페에 놀러 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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