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이라는 말 참 생소하다. 정말 생소하다. 설명을 읽거나 들을 수록 슬퍼지는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중고등학교 시절 성교육부터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난 낙태에 반대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성교육을 받을 때 들었던 낙태와 관련한 이야기는 생명 존중 밖에 없었다. "태아의 생명에 관한 윤리적 문제", "이후 임신이 어려워 질 수 있다" 같은 이야기가 거의 전부였다. 낙태와 관련한 영상을 봤던 것 같은데, 그 영상에서 낙태는 그만큼 끔찍했다. 이후 성별 감별 후 여아만 낙태하는 문제에 관한 시사 프로그램을 봤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 난 낙태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했다. 성차별과 책임지지 않는 행위라는 이유를 댔다.

성교육과정에서 피임 이야기를 아예 듣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응급 피임약 이야기 정도 들었다. 그때는 무책임한 남자들이 문제라는 이야기 밖에 못 들으며, "원하지 않는 임신 방지 목적"의 어쩔 수 없는 피임 방법으로 밖에 듣지 못했다. 그래서 낙태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었고, 들어야 할 생각도 못했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낙태에 찬성한다.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성별 감별 낙태와 낙태죄 두 가지 문제의 본질은 같다. 방향이 조금 다를 뿐, 모두 개인, 특히 임신한 여성의 신체를 도구로 바라본다는 것은 같다. 전자는 남아선호라고 하는 여아혐오와 동급의 성차별적 사회에서 남아를 낳아야 할 도구로 만들어버린 것이고, 후자는 사회의 인구를 강제로 조정하려는 인간 생산의 도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방향의 차이는 단 하나다 선별 생산이라는 제한이냐, 생산 중단 불가라는 제한이냐. 둘 모두 여성을 생산의 도구로 바라보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되어 있다. 낙태죄라는 데서 이미 여성을 도구로 바라보다 보장해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깨트리는 행위가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을 근거로 하면 낙태죄는 성별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이다. 임신할 수 없는 신체를 가진 이를 제외하고 임신 가능한 신체를 가진 이만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추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 36조 1항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2항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3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을 보았을 때에도 국가의 보장이 우선이다. 개인의 권리에 대하여 국가의 의무를 먼저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1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임신과 관련된 내용이 나와있지 않다는 여성을 생산의 도구로 보며 여성의 신체의 자유와 권리를 경시해서도 안 된다. 또한 임신이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공공복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여전히 낙태권이라는 말은 생소하다. 자기신체의 권리에 다른 말을 더 붙여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 어떤 이들은 "책임질 수 없는 행위"라는 말을 통해 임신을 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이의 책임만 강조한다. 정작 국가에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책임은 어디에 두고 그런 법을 입법하려는 것일까? "책임질 수 없는 행위"는 힘 없는 개인에게 굴레를 씌우기 위한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힘을 가진 집단이나 개인의 무책임을 막기 위한 말로만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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