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5월 퇴근길

퇴근이 평소보다 한 시간가량 늦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옆에 않기 힘들 거로 생각하는 곳을 찾았다. 제일 뒤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있었던 일을 속으로 곱씹었다. 내가 평소 생각과 다르게 행동했던 부분이 떠올라 어떻게 고쳐야 할지 생각했다. 그 자리가 처음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 게 많아 중간중간 조금 더 앞자리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내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자리 이동도 못 하고 있었다. 집까지 두 정거장쯤 남았을 때쯤 거의 만원 버스가 되었다. 어떤 사람이 버스에 올라 뒤쪽으로 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이 새끼들아, 어른이 왔으면 벌떡벌떡 일어날 줄 알아야지! 어른을 공경할 줄 몰라."

많아 봐야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거친 말에 화가 났다. 받아쳤다.

"뭡니까? 무슨 일인데 그렇게 소리 지르십니까? 어른이면 어른답게 점잖게 있으세요."

그는 내 옆자리에 올라와 앉았다. 다른 데 자리가 없어 할 수 없이 앉은 모양이다. 앉자마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다시 큰소리쳤다.

"건방지게… 너 몇 살인데 그러냐?"

"어른이면 어른답게 하세요."

"나 오십 세 살이다. 너 몇 살이냐?"

"그래서요? 어른이면 어른답게 점잖게 행동하세요."

그는 감정이 상했지만,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내 말투 때문인지, 내가 풍기는 기운 때문인지 기가 좀 죽은 듯 조그맣게 구시렁댔다.

"옛날에는 이렇게 안 했었는데…"

난 내가 생각하기에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 어른 대접만 받으려고 하는 것이 싫다. 그래서 똑같은 말투로 아주 잘 들리게 비아냥댔다.

"옛날 어른들은 이렇게 안 했었는데…"

그는 입을 닫았다. 얼마 안 있어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리고 비웃다가 아차 했다. 그는 내 반면교사였다. 합리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꼰대질처럼 행동한 일이 생각났다. 반성할 범위를 너무 좁게 잡았다.


- 같은 날 퇴근 전

학교에서 벌점을 주는 카드인 약속카드가 있다. 별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사용하기 편해서 남발하듯이 사용하고 있었다. 행동을 제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잘못을 예방하고 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어느새 행동을 제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의도는 큰 폭력으로 생각하는데, 난 내 행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의도가 정당하니 방법도 정당한 척하고 있었다. 그걸 깨닫게 된 것은 학생들 덕이었다.

수업 종이 쳤는데, 소란스럽기만 하고 자리에 앉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다. 자리에 앉으라고 한 차례 외쳤다. 반응이 없어 다시 외쳤다. 그래도 자리에 앉지 않아서 숫자를 읊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않지 않은 학생 셋을 불러 바로 약속 카드를 발급했다.

번호와 이름을 부르는 중 웃는 학생이 있었다. 난 행동만을 갖고 판단하겠다는 생각으로 웃은 학생들을 나오라고 해서 모두 약속 카드를 발급했다. 혼나는 아이들을 비웃었다고 생각해서 '타인을 비하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약속 카드를 발급했다. 그리고 수업은 웃으며 밝은 분위기로 진행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청소시간 나는 선풍기를 분해해서 씻은 후 말리고 있었다. 청소 담당 학생이 와서 비 때문에 걸레질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선풍기를 좀 닦아달라고 부탁했다. 선풍기 팬의 날이 날카로우니 손을 베어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다쳐도 상관없어요."

"내가 니들 다치는 게 싫어서 시킬 생각하지 않고 내가 씻었는데, 누가 다치면 애써 내가 씻은 보람이 없는 거잖아."

이렇게 좋은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그 학생이 하나씩 닦아주니 시간 여유가 생겼다. 나는 책상 위로 올라가서 천장에 있는 선풍기를 빠르게 조립했다. 거의 다 하고 청소하던 학생들을 교실로 보냈다. 거의 다 조립했을 때쯤 누가 나를 찾아왔다. 약속카드를 대량 발급했던 그 반 담임선생님이셨다.

학생들이 '선생님이 우리를 오해해서 카드를 그렇게 많이 준 것'이라고 해서 사유를 정확하게 알려고 찾아왔다고 하셨다. 그래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더니, 아이들하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나중에 가서 이야기한다고 했고, 종례하러 갈 시간에 내게 전화해 준다고 하셨다.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과 같이 들어가서 한 시간 반 넘게 입씨름했다. 내가 본 것과 아이들이 본 것의 대결이었다. 내가 본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의도를 함부로 파악해서 상처 주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계속 행동만 보려고 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내가 의도를 함부로 재단하고, 내 의도를 강압적으로 강요하는 인간이 될 것 같았다. 내가 흥분해서 상처 줄까 걱정하며 행동을 분리해서 이야기했다.

문득 깨달았다. 둘 다 억울하다고 여기는구나. 내 잘못이었다. 내가 한 행동이 아이들의 말을 부정하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다. 난 아이들을 이기려고만 했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내가 아이들을 못 믿어서 내 방식으로 윽박지른 것에 불과했다. 난 인권과 약자 대변을 외치면서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이었다.

한참 지난 덕에 여러 학생이 갔다. 일부가 남아 있었다.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나는 평소에 의도를 폭력이라고 생각해서 행동만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내가… 하아… 잘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습니다. 여러분들하고 잘 지내고 싶고, 잘 지내야 하는데 상처를 줬습니다. 지금 사과하고, 내일 모두가 있을 때 다시 사과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잘못한 것 없습니다. 감정 흐름까지 계산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여러분들을 통제하려고만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내가 사과를 했더니 학생들이 자기들도 잘못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난 사과를 거부했다.

"여러분들이 사과할 것은 없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입니다."

학생들은 당황하며 '그렇게 하면 자기들이 뭐가 되느냐'며 자기들도 사과해야겠다고 했다.

"제가 더 나이 먹었는데, 생각이 짧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사과하면 여러분이 나중에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저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함께해야 하는 수업이라고 해놓고, 제가 끌고 가려고만 했습니다. 그래서 제 책임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제 책임이니 저만 사과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반박했다.

"우리가 사과하지 않아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그러니까 우리도 사과할게요."

말문이 탁 막혔다.

"제가 더 나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저만 사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제가 먼저 사과하겠습니다. 내일 여러분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제가 먼저 사과하겠습니다. 그건 양보 못 하겠습니다."

학생들은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마치면서 다음 날 아침에 보기로 했다.



- 다음 날 아침

전체가 모인 교실로 찾아갔다. 조례 중에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는 '이제 생각났어요.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학생들이 그 학생에게 야유를 보냈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내가 반성할 부분이 있으니 그건 두자고 하며 말렸다. 그리고 전날 버스에서 본 그 사람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 이야기를 하고 사과했다.

"돌아가는 길에 내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더 제대로 사과하지 고민하던 중에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 식의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하는데, 비판적인 시기인 여러분의 비판을 원천봉쇄하다시피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 나이의 그 시기를 그렇게 비판적으로 보내놓고 여러분을 막는 행동을 했다. 여러분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과합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나이 많은 이에게 어른의 자격을 묻는 만큼 나도 어른의 자격을 갖추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학교에서 근무하던 기간에도 성차별이 존재했다. 그냥 차별 정도가 아니라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큼의 성희롱이었다. 교사에게 당한 것도 있고, 학생에게 당한 것도 있다. 둘 다 그냥 넘어가기 힘들어서 정색하며 대처했다. 사과를 받아내긴 했지만, 그 스트레스에 몸이 아팠다. 이건 애초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일이지 사과를 받고 끝내봐야 별 소용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중할 필요도 있지만, 사람들이 가진 성편견을 없애야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두 가지 성희롱은 모두 학교에서 일어난 일로 나의 성적 지향, 혹은 성별 정체성을 두고 건든 일이다. 차이점으로 하나는 다른 학교에 출장 갔다가 겪은 일, 하나는 학교에서 수업 중에 겪은 일이다. 또 다른 점은 가해자의 직업이 하나는 교사, 하나는 학생이었다. 또 다른 점으로 가해자의 성이 하나는 여성, 하나는 남성이었다. 이 일들을 겪으며 가해자의 직업, 나이, 성별, 피해자의 직업, 나이, 성별은 애초에 특정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2016년 12월 19일 출장

교과연구회에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음악 교사 록밴드 보컬이라 출장을 내서 음악회를 하는 학교에 찾아갔다. 밴드 멤버 중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해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컬이 악기 배치를 건들 것도 아니라 쉬기 위해 대기실을 찾았다. 남자 대기실에서 뭘 하고 있다며 나 보고 여자 대기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들어갔더니 고등학교 선배이자 고등학교 때 음악 선생님 중 한 분이었던 분이 있었다. 인사를 했더니

"남자가 왜 화장을 하냐?"

내 화장을 지적했다. 난 바로 반발했다.

"그건 성편견이고 성차별적인 이야기예요."

"남자가 무슨 화장이냐? 남교사는 남자답게, 여교사는 여자답게 해야지."

"성폭력 예방 연수에서는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는 성평등을 방해하고 성폭력 예방에 좋지 않다고 하던데요?"

"그래도 학교에서는 애들한테 성역할을 제대로 가르쳐야지."

"그것 자체가 해서는 안 될 거라니까요."

"잘 들어봐."

"에에, 잔소리, 잔소리."

이때까지는 그렇게 기분이 상해있지 않았다. 공연 시작 직전이라 그 긴장감에 기분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잠시 후 같은 밴드 선생님들이 왔고 리허설을 했다. 우리 돈으로 커피를 사 왔고 그걸 마시면서 좀 쉬고 있었다. 잠깐 이야기하던 중 우리 차례가 왔다. 무대에 올라가 공연을 했고, 공연은 즐겁게 끝냈다. 우리 딴에 틀린 것도 거의 없고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게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공연 끝나고 내려와 대기실로 갔더니 우리 커피는 다른 사람 입에 있거나 사라졌다. 우리보다 평균 연령이 15세 이상 높은 다른 팀이 자기네 주려고 사온 줄 알고 먹었다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그 황당한 중에 누가 나 보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예뻐서 여자인 줄 알았네. 장가는 갈 거라?"

난 화가 나서 바로 받아쳤다.

"장가는 가서 뭐할 겁니까?"

거기에 구시렁대는 소리인지 건방지다는 소리인지 무슨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우리를 일렬로 세우더니 자기소개를 하라는 것이었다. 자기네가 선배라고 우리를 집합시켜서 소개하라는 소리였다. 이후에 그 '선배님'들도 자기소개를 했지만,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난 서서히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예뻐서 여자인 줄 알았네. 장가는 갈 거?'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역겨웠다. 역겹고 수치심이 들었다. 모멸감도 들었다. 대체 왜 그따위 소리를 한 거야? 그날은 완전히 기분을 망쳤다. 쉬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도 수치심과 모멸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행사 주최 측 총무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성희롱으로 신고하면 일이 커지고 더 스트레스가 심해질 것 같아서 직접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 총무 선생님은 당황스러워했고 조심스레 의논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수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업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모멸감으로 심장이 아렸고 머리도 아팠다. 몸도 계속 떨렸다. 덕분에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최대한 내 마음을 다독이며 쉬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ㅇㅇㅇ 선생님? 나 ㅇㅇ."

"네 선생님."

"기분 나빴다면 미안. 기분 나쁠 거라고 생각 못 했어. 자연스럽게 받아치기에 괜찮은 줄 알았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생각해보니 잘못한 것 같아서 전화했어. 미안. 그런데 그건 성희롱까지는 아닌 것 같아.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런 뉘앙스는 아니었어."

화가 났다.

"전해 들었으면 분명히 어떻게 메시지를 보냈는지 알 거 아닙니까? 정황설명을 다 했고 사과와 재발 방지만 요청했는데 내가 왜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겁니까? '예뻐서 여자인 줄 알았다'는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그 이후에 '장가는 갈 거?'라는 부분이 바로 들어가면서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낀 건데 어떤 뉘앙스를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내가 그 자리에 같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한테 자세히 이야기하려고 전화한 거.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미안해. 나 때문에 시작한 것 같아서 자세히 듣고 사과도 하려고 했는데. 미안."

"지금 이러는 거 2차 가해예요. 내가 왜 추궁받아야 하는 거죠? 내가 모멸감을 느끼고 수치심을 느꼈는데, 왜 내가 해명해야 하는 거죠?"

"미안해. 내가 전화해서 사과하게 하고 다시 전화할게."

이렇게 통화가 끝났다. 또 심장이 아렸다. 수치심도 더 올라오고 머리는 더 아팠다. 모멸감이 몸이 더 떨려왔다. 다들 성희롱당하고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이런 건가? 따지고 났더니 이런 사람들 때문에 더 힘들고 그런 것인가? 뭐 이따위인 거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더니 너무 지쳐서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는 지쳐 잠들었다. 어느 순간 전화가 왔고 그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여보세요."

"ㅇㅇㅇ 선생님 전화입니까?"

"네 맞습니다."

"나 ㅇㅇㅇ인데, 미안해요.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

어떻게 어떻게 사과를 받기는 했지만, 썩 기분 좋은 사과는 아니었다. 모르면 언제든 배워야지 하면서 능구렁이처럼 넘어갔다. 난 나름 이성적으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고 그게 충족된 것 같아 끊었다. 전화를 끊은 후 난 피곤해서 다시 잠들었다.

다음 날도 별 차이 없었다. 사과를 받았는데 모멸감과 수치심에 온종일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결국, 지난번에 왔던 성폭력 상담센터 전화번호를 얻어서 전화를 걸어 상담을 예약하고 나를 다독이는 수밖에 없었다.


- 2016년 9월 초 수업 시간

표현영역 수행평가를 준비하면서 신체표현을 평가하고 싶었다. 뮤지컬의 한 장면을 체험할 겸 춤추는 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간단한 율동을 신체표현 수행평가로 준비했다. 한두 번의 수업시간 중 연습만으로는 불충분할 것 같아 학생들이 영상을 찾아볼 수 있도록 따로 영상을 만들었다.

음악실에 큰 거울이 없어 프로젝터에 노트북을 연결해서 거울 모드로 영상을 촬영하며 내가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며 내가 앞에서 함께 율동을 했다. 그 주는 2학년 수업에서 그렇게 열심히 춤을 추면서 수업하고 있었다. 어느 날 어떤 남학생반에서 한 학생이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

"뭐?"

"남자친구 있냐고요?"

"그거 성희롱이다."

"그게 왜 성희롱인데요? 누구나 저 영상 보면 그렇게 생각할 텐데요?"

"내 성적 지향을 네가 뭔데 마음대로 판단해서 그런 소리를 하냐? 그런 생각이 들든 안 들든 그걸 입 밖으로 꺼내서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게 성희롱이다."

"왜요? 나 말고도 그렇게 생각할 텐데요."

난 황당해서 벌점을 주고 끝나고 교무실로 불러 담임선생님께 벌점 사유를 말씀드리고 지도를 부탁드렸다. 그 학생은 거기서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텐데 뭐가 문제예요?'라고. 결국, 지도로 사과를 받긴 했지만, 썩 좋은 마무리는 아니었다.


내가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해서 외모를 꾸미는데 그것을 핑계로 아무렇게나 이야기하는 것 그 자체가 폭력이다. 그걸 성적 비하가 담긴 내용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은 성희롱이다. 이런 일이 특별한 것 같지만, 별로 특별하지도 않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학교는 그만큼 폐쇄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를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이런 것과 관련해서 다른 폭언을 들었었다.

근무하던 학교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다. 이번 임용시험에서 떨어져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근무지를 알아봐야 했다. 공부만 하기에는 내 개인의 경제적 사정도 문제고, 마음 붙여 일할 데가 없으면 마음이 힘들다는 것도 문제라서 그렇다. 몇 군데 면접을 치렀는데 모두 떨어졌다. 망할, 어쩌면 올해는 직장 없는 교사로 살게 될지 모른다.

직장이 없어 소득도 소속도 없을 것으로 생각하니 별로 마음이 좋지 않다. 결과라도 좋았으면 마음이 덜 힘들었을 텐데, 과정도 별로 좋지 않았다. 면접을 돌이켜 봤을 때 굉장히 불쾌한 질문이 있었다. 그 질문에 한 번은 소신에 따라 바로 반발했고, 한 번은 굽히고 성실하게 소신에 따라 답했다. 둘 다 반발했어야 했다. 내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었는지, 가중치를 다르게 둔 것이었는지 하나만 반발했다.

그 질문은 성차별적, 반 인권적인 질문이었다. 그것도 내 외모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 중 하나는 화장에 관한 질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머리 길이에 관한 질문이었다. 각기 다른 성의 학생들의 학생들과 비교해서 질문했다. 질문 자체에 학교의 이중성, 성차별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 2월 21일 면접

이날 면접에서 들은 질문은 이렇다.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인데 화장을 좀 하셨네요. 그것 관련해서 질문 좀 드리겠습니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 화장 엄격하게 단속하는데 학생들이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은 화장하는데 우리는 왜 안 돼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난 화장을 한다. 꾸미는 것이 좋다. 화장이 재미있다. 단지 재미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성편견을 깨기 위한 내 나름의 운동으로써 하는 행동이다. 여성이 꾸미는 것은 당연하고 남성이 꾸미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에 저항하고 사람들이 차차 익숙해지게 만들어 세상을 바꾸기 위한 행동이다. 언젠가는 화장이 개인의 선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는 것이다.

저 물음은 내 운동의 목적이나 목표를 모른 채 한 질문이다. 물론 내 운동의 존재 여부조차 모를 것이다. 심지어 저 날은 바빠서 색조 화장도 못 한 날이었다. 파운데이션에 눈썹 정도만 그린 날이었다. 그래서 화장을 제대로 했다는 생각도 못 했는데, 화장했다는 것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니 당황스러웠다.

황당하기도 했다. 질문한 면접관 본인도 화장한 상태였다. 학생들은 여교사의 화장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고, 남교사의 화장만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인가? 성차별적 질문이었다. 그래서 바로 반발했다.

"그런 성차별적 인식을 갖고 이야기하시다니요. 그러면 여자 선생님들 먼저 화장을 못 하게 하고 이야기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에 그 면접관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무엇인가를 적었다.

"학생과 교사는 다르다고 한다."

내가 한 말이 아닌 말을 중얼거리며 적었다. 너무 황당했다.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계속 곱씹어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성차별이었다. 거기다 학생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가 동시에 들어가 있었다.

성차별적인 태도는 이렇다. '남성의 화장은 당연하지 않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남교사에게 자신들의 화장을 단속하는 것과 비교하며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그러니 그것에 관한 것을 물어보아야 하겠다.'며 특정 성의 화장만 문제 제기하는 것은 한 성은 당연히 화장해야 하는 존재, 한 성은 절대 화장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낙인 찍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는 이렇다. '학생들의 용의복장을 통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학생 통제를 당연하게 여긴다. 동시에 학생의 반발을 걱정한다. 통제하지 않으면 통제에 대한 반발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통제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을 모순이다.


- 2월 24일 면접

이날 면접에서 들은 질문은 이렇다.

"지금 머리를 묶으셨는데, 우리 학교는 남학교이다 보니 두발 규정이 엄격합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머리를 보고 '선생님은 머리 기르는데 우리는 왜 머리 기르면 안 돼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난 머리를 기른다. 큰 의미는 없다. 심한 곱슬머리이라 짧은 것보다 긴 것이 머리 정리하기 편하다. 추울 때 머리 풀면 따뜻하고 더울 때 머리 묶으면 시원하니 좋다. 내 머리의 곱슬거림은 예쁘다. 컬이 예뻐서 어디서 파마한 것으로 보일 정도이다. 머리를 짧게 정리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 그냥 그럴 생각이 들면 그때 자를 생각이다. 길이가 어느 정도 이상 되면 머리카락 기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저 물음은 생각도 못 해 봤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올해 마지막 면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반발을 못 했다. 소신에 따라 성실하게 답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기르다가 이왕 기른 김에 몇 달 정도 더 기르고 머리카락 기부를 해볼 생각으로 더 기르고 있다. 왜 기르면 안 되냐는 물음에는 답을 못하겠다. 교칙으로 규제하고 있는데, 나는 그 교칙으로 규제하는 대상에 해당하지 않거든.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바꿔보는 것은 어떻겠니? 규정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꿔보겠다면 응원할게.’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 성차별적 인식을 갖고 질문을 해도 되는 겁니까? 여교사에게는 하지 않을 질문을 왜 머리가 긴 남교사에게 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머리 길이는 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까?”

질문 자체가 성차별이다. 이 질문에는 앞의 면접과 같이 학생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가 동시에 들어가 있다.


애초에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이해하기 너무 힘들다. 이제까지 겪은 교직 생활을 돌이켜 보면 이 교직 사회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건 성차별이고 폭력이다. 겪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겪은 다른 성희롱, 성차별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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