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성이 되기를 주저한다. 나의 성적지향은 양성애(Bisexual)이고, 나의 성 정체성은 안드로진(Androgyne)이다. 그리고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남성이 되기를 주저하는 건 성 정체성과 페미니스트로서의 신념 때문만이 아니다. 내 안에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존재하고, 지정 성별 남성으로 혜택을 받았던 것들이 있다. 난 매개체로써, 도구로써 존재하고 싶지 않다. 나는 오로지 나로 존재하고 싶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단순한 유전자 전달 매개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전자 전달 매개체라고 해도 그건 생명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일 뿐, 내가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과는 관계없다. 가부장제는 자연 발생도 아닌데 인위적으로 나를 주체가 아닌 매개체로 만든다. 그래서 가부장제가 아직도 공고한 이곳에서 남성이 되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가부장제에서 남성은 지배적 성이다. 그래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렇다고 남성이 주체가 되는 건 아니다. 가부장제는 남성도 도구로 만든다. 성(姓)을 전달하는 집안의 명성과 가치를 대물림하거나 일으켜야 하는 매개체나 도구로 만든다.

나는 장남이고 장손이다. 결혼과 재생산은 나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이름으로 씌워졌다. 나에게 어떤 권리가 있냐고 물었을 때, 제사하고 대물림하는 게 권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나는 그게 어떻게 권리냐고, 그건 의무에 불과할 뿐이라고 맞섰다. 그리고 화가 나서 나는 비혼을 선언했다.

나는 내 유전자를 물려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없다. 내가 결혼을 하든, 누군가와 아이를 만들든, 입양하든 나는 내 정신적인 것을 알려줄 생각밖에 없다. 내가 성과 의무를 물려받았기에 당연히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려준다기보다 나를 알려주고 소통하고 싶을 뿐이다. 굳이 내 핏줄이 아니어도 전달할 수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유지를 잇는 의무를 지우고 싶지 않다. 다음 세대의 삶은 다음 세대가 선택하는 것인데, 그 선택을 못 하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가부장제는 다음 세대의 삶을 억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부장제에서 먼저 벗어나기 위해 남성이 되기를 주저한다.

나는 매개체가 아니라, 주체로서 살아가고 싶다. 나의 길은 전달자가 아니다. 나다.

나는 남성이 되기를 주저한다. 나는 성 정체성을 계속 고민 중이기는 하지만, 안드로진(Androgyne)이라고 정체화했다. 남성이 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비단 성 정체성 때문만은 아니다. 내 안에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존재한다. 남성이 존재함에도 남성이 되기를 주저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로서 가부장제 아래서의 일방적인 남성성이라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신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을 가르는 것 중 하나는 아름다움에 대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남성의 외모를 칭찬할 때는 '멋지다', '멋있다', 여성의 외모를 칭찬할 때는 '예쁘다', '아름답다'라고 한다. 이렇게 성별에 따라 외모를 칭찬하는 말이 다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http://stdweb2.korean.go.kr)(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편견이나 헤게모니를 보여줄 수 있으므로 인용한다.)의 정의를 살펴보자.


멋01 [먿]

「명사」

「1」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다움.

「2」고상한 품격이나 운치.


아름-답다 [---따]

「형용사」

「1」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2」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예쁘다   [예ː--]

「형용사」

「1」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 ≒이쁘다「1」.

「2」행동이나 동작이 보기에 사랑스럽거나 귀엽다. ≒이쁘다「2」.

「3」아이가 말을 잘 듣거나 행동이 발라서 흐뭇하다. ≒이쁘다「3」.


미14(美) [미ː]

「명사」

「1」눈 따위의 감각 기관을 통하여 인간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

「2」((일부 명사 앞 또는 뒤에 붙어))‘아름다움’의 뜻을 나타내는 말.

「3」『교육』성적이나 등급을 ‘수, 우, 미, 양, 가’의 다섯 단계로 나눌 때 셋째 단계.

「4」『철학』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없이, 내적 쾌감을 주는 감성적인 대상.


아름답다거나 예쁘다는 것에는 보이는 대상, 생김새에 대한 시각적 만족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멋에는 차림새나 행동 따위로 그 사람의 생김새에 대한 것이 들어가 있지 않다. 남성의 생김새는 두고 따로 '잘생겼다'고 하기도 하지만, 타고난 외모에 대한 이야기이지, 꾸민다는 개념 같은 것이 들어가 있지 않다. 보통 여성에게 곱다, 아름다워진다, 예뻐진다는 말을 사용하지만, 남성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그루밍족이 있긴 하지만 잘생겨진다는 말을 쓴다.). 오히려 곱다는 말 같은 경우는 남성성을 부정하는 성희롱이 될 가능성도 강하다.

보통 남성은 명사에서 기본값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지우고 남성을 기본값으로 내세운다. 그 예가 소년(少年)과 소녀(少女)이다. 소년은 어린 시절이라고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남자 어린이를 부를 때 소년이라고 하며, 애써 여자 어린이에게만 소녀라는 명칭을 따로 사용한다. 유년기(幼年期), 소년기(少年期), 청년기(靑年期), 장년기(壯年期), 노년기(老年期) 등 이렇게 나이에 따른 시기를 부르는 말은 비슷하다. 연령을 기준으로 하므로 -년기를 쓴다. 청년은 기본적으로 성년기의 사람을 부르는 말이지만, 성년 남성에 한정해 이야기하고, 성년 여성에게는 혼인 여부에 따라 처녀, 처자, 아가씨 등과 아주머니 이렇게 다른 명칭이 있다. 숙녀처럼 구분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명칭이 많다는 것은 그렇게 구분하는 언어가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제 아래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정되지만, 타자를 가리키는 말은 상황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본값이 여성인 단어가 있다. 바로 미인이다.


미인01(美人) [미ː-]

「명사」

「1」아름다운 사람. 주로 얼굴이나 몸매 따위가 아름다운 여자를 이른다. ≒가인01(佳人)

「2」재덕(才德)이 뛰어난 사람.

「3」『역사』중국 한(漢)나라 때에 둔, 궁녀의 관직.

「비」「1」미녀


물론 비슷한 말로 미녀(美女)가 존재하지만, 현재 남성에게만은 따로 미남(美男)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아름다운 여자, 아름다운 여성이라고는 하지만, 풀어서 아름다운 남성, 아름다운 남자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이 정도로 대상화된 아름다움은 여성에게만 붙인다. 애초에 타자화했기 때문에 기본값이 여성이 된 것이다. 남성에게 미인을 붙인 경우가 없지는 않다.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이 그렇다. 사미인곡에서 미인은 임금이며, 임금은 성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人앞에 美를 붙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현대의 유명한 가요 중 신중현의 '미인' 가사를 살펴보자.


한번보도 두번보고 자꾸만 보고싶네

아름다운 그 모습을 자꾸만 보고싶네

그 누구나 한번보면 자꾸만 보고있네

그 누구의 애인인가 정말로 궁금하네

모두 사랑하네 나도 사랑하네

모두 사랑하네 나도 사랑하네


가사 전체가 미인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고 있다. 미인은 주체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여성이 갖추어야 할 아름다움의 대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뷰티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뷰티는 여성의 미용, 화장을 가리키는 말이고, 그루밍이라는 것은 남성의 미용, 화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미 아름다움 자체를 구분하며 여성을 대상화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남성도 미용을 하지만, 뷰티에 있어 대상은 여성이다. 남성은 따로 용어를 만든다. 남성에게 뷰티라는 말을 붙이지 않으려 한다.

난 남성이 되기를 주저한다. 그래서 내 화장은 뷰티라고 할 것이다. 내 화장품도 뷰티 코너에서 사지, 멘스 그루밍 코너에서 사지 않으니까. 어차피 안드로진에게는 별 차이 없지만, 지정성별 남성으로서 행동은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비혼[각주:1]이다. 결혼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난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다. 결혼에 관한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식을 어떤 방식으로 해볼까, 결혼하기까지 치러야 할 과정이 어떨까 한참을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미혼[각주:2]이었다. 요 몇 달 동안 몇 번에 걸쳐 집에 비혼을 선언했다. 이제는 미혼이 아니다. 비혼이다.

20대 초부터 아버지에게 '장가 빨리 가라.', '손주를 빨리 보고 싶다.' 등의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나이 먹을수록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중간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기도 했고 결혼과 살 곳에 관하여 이야기 나누며 고민하기도 했다. 각자 원하는 삶의 터전과 삶의 방식은 달랐다. 같이 살지 않고 각자의 삶을 지키려는 욕망이 같이 살아야만 한다는 욕망보다 강했다. 적어도 지금에 와서는 그런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해야 한다는 욕망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결혼에 관한 내 생각이 많이 달라지기도 했다. 처음에 결혼은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결혼은 가족 간의 결합이었다. 심지어 결혼의 주체는 나와 내 배우자도 아니었다. 그렇게 내가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좀 더 나를 돌아보고 나를 먼저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을 어떻게 할지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았다. 주례 없이 더 부부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결혼식, 뮤지컬 무대처럼 모든 게 극이 되는 즐거운 결혼식, 하객은 소수만 불러서 평일 저녁에 치르는 조용한 결혼식, 파티처럼 온종일 사람 모아놓고 놀다가 공개 선언하는 결혼식, 축의금 대신에 각자 기부하는 결혼식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결혼식의 주인은 결혼하는 부부가 아니었다. 무대 위의 주인공일 뿐 결혼식의 주체는 양가 부모였다.

결혼한 이후의 삶을 생각해보았다.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독립적인 개개인의 모습,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법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부부 각자의 성을 딴 성이 다른 아이들 등. 하지만 결혼은 새로운 가족이지만, 기존 가족에 종속된 존재였다. 제사나 집안일을 도울 것을 요구하거나, 각자의 의사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기존 가족과 새로운 가족까지 모두 고려해서 삶을 조절해야 한다.

사회적 동물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그걸 넘어서서 나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은 싫다.

나는 장남이다. 그리고 장손이다. 가부장제의 중심이 되는 대를 잇는 남성이다. 나는 그 장손이라는 호칭이 싫다. 대를 잇는다는 것도 싫다. 그건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대를 잇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술에 취한 아버지와 싸운 적이 있다. 그때 더 절절하게 알게 되었다. 

"장손으로 권리가 뭐 있습니까?"

"대를 이을 권리가 있지."

"그게 무슨 권리입니까? 의무이지."

"장손은 집안일을 챙길 권리가 있지."

"그것도 의무이지 무슨 권리입니까?"

"난 무슨 권리가 있는지 말씀하세요."

"장손인 것 자체가 권리이지."

"아니, 장손이라고 집안에서 발언권이 큰 것도 아니고, 맨날 하는 소리가 할아버지가 없어서 그렇다면서 징징대기밖에 더하셨습니까? 장손이 힘이 있으면 작은할아버지들이 말이 안 되는 소리 하면 말이 안 되는 소리 한다고 큰 소리라도 쳐보셨습니까? 무슨 말을 하면 기죽어서 조용히 있는 주제에, 무슨 말 하면 네네 소리밖에 못 하면서 무슨 권리가 있다는 겁니까? 어차피 재산도 공평하게 물려받았는데, 무슨 힘이 더 있는 겁니까?"

"그러니까 내가 너희들 부담 안 가게 집안 일 정리하겠다고 했잖아."

"아니 평소에 큰소리나 좀 치고 이야기하세요. 내가 말하면 싸움 되고, 어머니가 이야기하면 싸움 되는데 그러기 전에 아무것도 못 하면서 무슨 소리입니까?"

"너가 나중에 결혼해서 문중회 들어온 다음 큰소리쳐."

"아니 그때 되면 그때대로 또 큰소리치는 어른들은 어떡할 겁니까?"

"어차피 촌수가 점점 멀어지고 안 보게 되어 있어."

"그걸 기다릴 게 아니라 지금 바꿔야 할 거 아닙니까?"

"너네 자식 때 되면 바뀐다."

"내가 자식을 왜 낳아야 합니까?"

"대를 이어야지."

"내가 왜 대를 이어야 합니까?"

"너 장손이잖아."

"내가 장손 하고 싶어서 했습니까? 권리도 없는 장손 뭐 하러 합니까?"

"너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을 거냐?"

"결혼해서 뭐합니까?"

"장손이 왜 결혼을 안 하냐?"

"장손이라고 왜 결혼을 해야 합니까?"

"대이어야지."

"내가 대를 잇는 도구입니까? 난 나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도구로 만들어진 겁니까?"

"언제 도구랬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아니 장손이라고 더 큰 권리도 없고, 의무만 가득한데 도구가 아닙니까? 내가 선택 안 할 수도 없다면서."

"그게 어떻게 도구냐?"

"도구지요. 나는 결혼 안 할 겁니다. 애도 안 낳을 거고. 애를 낳는다고 해도 제사고 뭐고 다 없앨 겁니다. 내가 도구가 되기 싫은 만큼 다른 사람도 도구로 만들기 싫습니다."

"넌 재산 안 물려줄 거다."

"물려주지 마세요. 어차피 법적으로 배분해야 하는 건데."

"너 동생이, 너 조카가 장손 노릇 하면 되지."

"무슨 의무를 떠넘기는 걸 뭘 주는 것 모양으로 이야기합니까?"

이런 식의 대화인지 싸움인지 모를 것을 통해 내가 도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장손이라는 굴레를 이제 벗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비혼을 선언했다. 아직 독립도 못 하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주제에 비혼을 선언한 것도 좀 우습긴 하지만, 난 나라도 나를 존중하고 싶다. 나는 도구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이라고 인식하고 싶다. 그래서 비혼을 선언했다. 도구화를 끝내고 싶고, 인간을 존엄하게 여기고 싶어서 비혼을 선언했다.

  1. 결혼을 하지 않음.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의미가 있다. [본문으로]
  2.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음. 결혼은 당연히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는 말이다. [본문으로]

나는 화장하는 사람이다. 기초화장[각주:1], 피부를 표현하는 화장[각주:2], 색조화장[각주:3]까지 한다. 화장도 별로 예쁘게 나오지도 않고, 튀게 하지도 못하는 초보이다. 그런데 화장한다는 이유로 간혹 싸워야 한다. 나는 지정 성별이 남성이다. 그리고 시스젠더[각주:4]이다. 요즘에 조금씩 내 성별을 특정해야 한다는 데 의문을 품긴 하지만[각주:5], 일단은 시스젠더이다.

우리 가족은 내가 화장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혐오에 가까운 것 같다. 화장하면 잔소리를 한다. 적당히 하라느니, 얼굴이 너무 하얗게 되었다느니, 애(내게는 조카)가 내 화장 때문에 운다느니 온갖 핑계로 화장하는 것 자체를 갖고 건든다. 그 정도는 좀 참고 지냈다. 그러다 참지 못할 만큼 화나는 일이 생겼다.


아버지 정년퇴임 후에 직원들과 밥 먹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씻고 기초화장품을 바르는데 동생이 내 방문을 갑자기 활짝 열고 이렇게 명령조로 이야기했다.

"형 화장하지 마, 아버지 뭐하는 자리라."

"잔소리, 잔소리."

"화장하지 마."

"잔소리나 하지 마."

화장할 생각도 없었는데 너무 화가 났다. 참고 가자는 마음이 안 들었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갈까 하다 마음이 너무 상해서 도저히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가지 말자고 생각하고 옷을 다 벗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다 말을 해줘야 시간 낭비 안 할 것 같아서 어머니께 메시지를 보냈다.

'안 갈 테니 그냥 가세요.'

좀 있으니 밖에서 소리치는 소리가 멀게 들렸다. 동생은 화가 난 목소리로 'ㅇㅇㅇ 나와!' 어머니가 울먹이며 말리는 소리.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내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난 내가 기분 상했다는 것을 표현했을 뿐이다. 내 표현으로 저러는 게 이상한 것이다. 난 그래도 참고 기분 상했다는 것을 표현했을 뿐이다.

그냥 갈 줄 알았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내려왔다.

"넌 그냥 넘어가면 안 되냐?"

"애초에 말 안 하면 안 됩니까?"

"말 한 걸 어떡할 거냐?"

"그러니까 감정 상한 건 어떡할 겁니까?"

"어떻게 한 마디를 안 지냐? 아버지 중심 자리인데 아버지 때문에라도 화장 안 하면 안 되나?"

"내가 장식품입니까?"

"무슨 말이냐?"

"내가 액세서리, 장식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렇게 말할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체면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까?"

"체면 좀 생각해주면 안 되냐?"

"그게 나를 사람 취급 안 하는 거 아닙니까?"

"넌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이냐?"

"내가 이기적인 겁니까? 사람을 사람 취급 안 하는 게 누군데!"

"어떻게 넌 너만 생각하냐?"

"뭐가 나만 생각하는 겁니까?"

"너가 그렇게 화장 못 하게 한다고 안 간다고 하는 게 너만 생각하는 거지."

"그러면 애초에 자기네만 생각해서 그런 말 안 거 아닙니까?"

"나는 말을 잘 못 해서 뭐라고 못 하겠다."

"내가 말을 잘하는 겁니까? 애초에 잘못된 게 누군데 그럽니까?"


결국, 포기하고 갔다. 난 속만 부글부글 끓여대다 잠들면서 간신히 가라앉혔다.

  1. 스킨, 로션, 에센스 등 피부 손질 화장. [본문으로]
  2. 베이스 메이크업. 파운데이션 등의 화장품으로 하는 피부 톤, 질감 등을 표현하는 화장. [본문으로]
  3. 눈이나 입술 등에 하는 색을 입히는 화장. [본문으로]
  4. cisgender 'cis-'는 같은 편이라는 뜻의 접두사로 태어나서 부여받은 성별(sex)과 인식하는 성별(gender)이 같은 사람을 뜻한다. 트랜스젠더에 상대적인 말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본문으로]
  5. 젠더 퀘스쳐너(Gender Questioner) [본문으로]

귀향을 본 건 개봉한 주 평일 낮이었다. 관객은 반 이상 들어차 있었다. 얼마나 힘들게 개봉했는지 흘러나오던 이야기, 단체 관람을 시켜준 어느 교사 이야기, 소녀상 이야기, 위안부 협정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다른 관객도 나처럼 비슷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앉아 있을 것 같았다. 조명이 꺼지고 비상구 안내가 나왔다.

영화를 보면서 당황했다. 점점 기분이 나빠졌고, 머리도 아파졌다. 아리랑이 나왔을 때 소름이 돋고 구역질이 났다. 그래도 평소처럼 엔딩크레딧 끝까지 화면 보고 있었다. 중간에 울며 나가는 관객이 눈에 들어왔다. 왜 저 사람들은 울면서 나가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는지 얼굴 경련에 구역질이 더 올라오는데.


- 귀향에 대한 찬양뿐, 비평은 실종

나처럼 보러 갔다가 끔찍한 기분으로 나온 사람은 꽤 많았다. 하지만 영화 잡지에서는 그 끔찍함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이동진 평론가의 짧은 평 정도가 세련되게 영화의 문제를 지적한 정도였다. 그 외에는 영화 뒷이야기와 영화에 관한 긍정적인 기사만 있었다. 평론가가 아닌 일반 관객들이나 영화전문 사이트에서 댓글로 싸우고 있을 뿐이었다.

블로그에 글도 쓰고, 내 평에 대한 비난에 반박하면서 계속 기사를 찾아보았다. 몇 년 전 디 워 광풍과 26년에 대한 학습 때문인 건지, 영화를 볼 필요성조차 못 느꼈던 건지 몰라도 영화 자체에 대한 비평가들의 비평은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더 지나 300만이라는 흥행에도 여러 매체에서 비평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여전히 나오는 것은 얼마나 힘들게 영화를 만들었느냐는 감독 인터뷰, 단체 관람 미담, 출연자에 대한 소식뿐. 그러다 발견한 『[손희정의 영화비평] 어떻게 새로운 ‘우리’를 상상할 것인가』는 가뭄의 단비 같았다. 영화적 텍스트 비판에 머물지 말고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논의에 대한 스펙트럼을 줄일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지만, 비판적 논의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데 목을 축일 수는 있었다.


- 귀향을 불편하게 여기는 시선

1. 인간을 물건으로 여기는 모습

귀향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는 성폭력을 전시하는 장면이다. 그중 최악은 카메라가 하늘로 올라가며 쪽방촌 전체에서 벌어지는 강간을 동시에 보여주는 부분이다. 스너프 필름을 모은 전시회에 온 기분이 들었다. 실화를 묘사한다면, 그 묘사하기 위해 연기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상처는 어디 가서 회복해야 할까? 정신치료를 받으면서까지 묘사를 해야 할까? 아픔을 달래기 위해 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아프게 해야만 그 아픔을 달랠 수 있는 것일까?

맥락적인 당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을 후려치며 벗기는 장면, 초경도 하지 않았다고 실실대는 장면 등 단지 잔인함을 쌓아가며 잔인함의 절정을 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잔인함의 절정 후 각자의 이야기를 전시하듯 지나치며, 또 다른 잔악함의 전시만 풀어가듯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사건이 중첩되며 변화도 없이 쌓이기만 한다. 그 사건이 쌓이며 어느 인물도 변화 없이, 사건의 이유를 만들기 위해 소모적으로 이용하기만 한다.


2. 가부장적 민족주의 서사

또 불편한 부분은 가부장적 민족주의 서사이다. 극은 과거와 현재로 나누어 따로 나누어 진행하는데, 과거와 현재를 잇기 위해 공통점을 부여한다.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다. 여기서도 가부장적 차별이 나타난다. 아버지와 다르게 어머니는 “신비의 영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로 전락시켜 버린다. 그나마도 과거의 어머니는 복선의 역할이라도 하며 더 큰 의미를 주지만, 현대의 어머니는 아이를 신당에 두고 가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아버지 역시 장치적 역할에 불과하긴 하다. 하지만, 과거의 “아버지를 더 따르는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외동딸과 침략자에게 빼앗겨도 무력한 아버지”와 현재의 “아버지가 사랑스러운 외동딸이 강간당하는 모습에 분노하여 달려들다 죽는 무력한 아버지”라는 형태를 통해 딸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더 강하게 묶어 버린다. 여기에 목숨을 걸고 소녀들을 구출하는 광복군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등장할 때 아리랑을 내보내면서 “조국의 딸”이라는 가부장적 민족주의를 완성한다.


3. 굿을 통한 타자화

굿 또한 불편하다. 굿은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보다 가부장적 민족주의를 완성하는 장치로 등장한다. 굿을 통해 이어주는 것은 두 성폭력 피해자이다. 신기가 있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위안부라는 성폭력에 당하고 사망한 피해자를 빙의시킨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사죄하고 빙의된 이는 안심시킨다.

그 장면에 앞서 행정 기관에서 “내가 그 미친년이다”라며 생존자가 외치던 장면이 있다. 소리치는 행위를 통해 피해 사실을 숨기고 죄책감에 숨어 지내던 가엾은 이에서 생존하여 사과를 받아낼 주체로서 각성한 그는 이후 미안하다는 사과를 통해 다시 죄인으로 각하된다. 빙의한 이가 괜찮다며 사과를 받아주며 과거와 만나 갈등을 풀지만, 그렇게 성장을 뒤집으며 다시 무력한 개인으로 만든다. 그들의 당당한 주체로 사는 삶을 빼앗아 의존해야 할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 영화 자체를 텍스트로 삼은 비평이 먼저 필요한 이유

이런 불편함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그래서 영화라는 텍스트에 대한 비평이 더 필요하다. 진부한 재현에 대한 비판이라는 이유로 텍스트 비판도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귀향이라는 작품이 수많은 시민의 동참이 있기에 가야 할 지향점이 있더라도 텍스트에 대한 비판과 토론 없이 나아간다는 것은 영화라는 예술을 도구 취급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소재가 소재인 만큼 작품과 표현을 온전히 예술적인 문제로만 다루기 쉽지 않다. 표현 그 자체는 도구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자체를 다양한 시선으로 논하는 행위 없이 분노를 일으키는 정치적 도구로만 사용한다면, 체제 선전 영화와 다를 것이 있을까? 또한, 흥행한다고 우리에게 어떤 힘이 생기는 것일까?

힘들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중요하지 않다. 힘들게 만들지 않은 영화는 없다. 수많은 사람이 온갖 상상을 좋은 목적으로 영화로 만들고자 한다.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은 영화를 보고 이야기할 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관람 못지않게 비평은 중요한 예술적 행위이다. 그 진부한 예술적 행위를 계속하는 것은 창작이라는 예술적 행위의 좋은 밑거름이 된다. 비평가는 관람객을 비평하지 않는다. 작품을 비평한다. 당신이 보는 재미 자체를 공격하지 않는다. 더 좋은 예술을 위해 비평한다.

음악사를 공부하다 보면 20세기까지 유명한 음악가들은 거의 남성이다. 특히 음악 교과서의 음악가는 클라라 슈만 정도가 로베르트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와 함께 로맨스 정도로 언급되는 정도에 불과하다. 굳이 교과서가 아니라도 클라라 슈만은 남편 로베르트 슈만과 평생 자신만을 짝사랑한 브람스와의 관계 정도만 이야기될 뿐이다. 왜 여성은 음악사에서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일까?


- "여성"음악가에 대한 말

계몽시대 자연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Jaques Rousseau)는 “여성들은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무엇이든지 깨닫고 배우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각주:1]고 했으며,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역시 부정적으로 보고 “여성 전체 중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을 지닌 여자일지라도 예술 분야에서 참으로 위대하고 순수하고 독창적인 업적은 단 한 가지도 이룩하지 못하였다.”[각주:2]라고 했다.

이 두 유명 철학자의 말대로 여성은 타고나지 못한 것일까? 20세기의 심리학자인 칼 시쇼어(Carl E. Seashore)는 『왜 위대한 여성 작곡가는 없는가(Why No Great Women Composers?)』라는 에세이를 통해 ‘위대한 작곡가의 조건으로 음악적 기질, 타고난 재능 등의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는 창의성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창조적 능력은 유전보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각주:3]

지금 음악가들의 성비뿐 아니라 대학 음악과(음악교육과 등 관련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학과를 포함한)의 성비를 생각해 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험에 의하면 남학생들이 존재한다는 생각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시쇼어가 언급한 위대한 여성 작곡가 존재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음악전공자의 수 먼저 살펴보면,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는 여성의 수가 많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여성 작곡가라고 알려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환경의 영향이라면 후천적이라는 이야기인데, 어떤 후천적 영향이 있던 것일까? 능력과 관련한 후천적 영향은 학습과 교육 정도로 볼 수 있을 텐데, 19세기, 아니 가깝게 20세기만 살펴보아도 대졸자 비율은 남성이 훨씬 높다지만, 현재는 여성의 비율이 더 높고, 음악과는 압도적일 정도다.

이제부터 위대한 여성 음악가의 비율이 늘까? 글쎄 난 부정적이다. 능력 때문이 아니다. 아직 사회적 환경은 그렇게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아직 가부장제는 공고하다.


- 가부장제와 "여성"음악가

서양음악사에서 “여성”음악가의 존재가 드러나기 힘들었던 것은 가부장제의 탓이 크다. 가부장제는 집안의 남성 연장자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는 가족제도이다. 가부장제 아래 가족에서 가장 큰 권력자는 가장이라는 이름의 아버지와 장남이다. 가부장제에서는 이들이 가정 안에서 존중받는 모습을 외부에 보이는 것과 외부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가부장제는 대가족이 아닌 핵가족과 유사한 형태에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장남 유고 시 차남 혹은 그 아래 남성의 존재는 가부장제에서 중요한 존재였다. 집안의 명예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집안의 명예에서 남성보다 뛰어나거나 잘난 여성의 존재는 가부장제에 해가 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가부장제 유지를 위해 여성이 성인, 혹은 결혼 가능한 시기가 가까워지면 그들의 재능을 숨기고 “여성”으로서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 유명한 모차르트, 그러니까 18세기 말에 활동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어릴 때 누나인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애칭 나네를)와 함께 남매 신동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성인이 되자 볼프강만 데리고 다닌다. 당시에 여성의 역할이라고 했던 아내로 사는 삶을 위해 신부수업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는 여성이 음악 활동을 하는 것도 환영하지 않았다.

변화의 과도기였던 18세기였기 때문일까? 시간이 흘러 자유로운 인간의 사고를 찬양하던 19세기도 여성의 음악 활동이 제한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들었던 클라라 슈만은 작곡이나 피아니스트로서의 업적이 아니라 극적인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졌다. 남편 로베르트 슈만과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소송전을 통한 결혼, 먼저 죽은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평생 헌신한 삶, 천재 음악가 브람스가 평생 짝사랑했던 이야기. 클라라 슈만은 음악사에서 주체가 아닌 객체로만 남아 있다. 그것도 그나마 그 천재 음악가들 사이의 로맨스가 유명해서 이름이 많이 남은 것이다.

파니 헨젤은 한여름 밤의 꿈 중 결혼행진곡, 무언가, 바흐의 재발굴로 유명한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나이다. 그의 작품은 펠릭스 멘델스존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본인의 이름으로 출판하는 것은 가족의 굉장한 반대가 있었다.[각주:4]

“시작부터 네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단다....나는 출판을 시작했어. 내가 출판하는 것으로 인해 네가 불명예를 당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창작을 위한 자극을 항상 필요로 해왔어.”[각주:5]

위와 같은  편지가 남아 있을 정도였다.

파니 멘델스존의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도 이야기하였다.

“음악은 펠릭스에게는 직업이 될 수 있겠지만, 너에게는 결국 장식에 불과할 뿐이며 너의 존재나 활동의 기반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펠릭스에게는 명예와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야망이 무척 중요한 일이란다. 왜냐하면 그는 음악을 천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너에게는 정숙하게 행동하는 것이 곧 명예로운 일이란다. 가령, 동생에게 쏟아지는 갈채를 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함으로써, 타인으로 하여금 너 또한 존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리라. 여자스러운 것만이 여성의 자랑이 될 수 있으니까.”[각주:6]

그런데 가부장제는 여성에게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일까? 


-성차별의 비극 "카스트라토"

교회에 고음 성악가가 필요했지만, 여성에게 노래를 금지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남성이 가성과 기교를 통해 소리를 내는 카운터테너를 사용하였다. 카운터테너는 가성(falsetto)을 사용한다고 하여 팔세티스트(Falsettist)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이 팔세티스트는 별로 선호되지 않았다. 하지만, 보이소프라노로는 한계가 있는 데다 오페라의 등장과 로마 주변의 여성 성악가 제한으로 팔세티스트가 필요했다.

17~18세기 들어 여성 성악가들을 고용하지 못하는 로마와 그 영향을 받는 지역에도 고음 성악가들의 수요가 많아졌다. 하지만 고음 성악가의 양성이 어려웠다. 소년 단원의 주기적 교체, 팔세티스트의 갈라지는 것 같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평생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는 카스트라토가 주목받았다. 당시 팔세티스트의 목소리는 인공적인 소리로 간주하였지만, 카스트라토의 소리는 ‘자연스러움’, ‘진실함’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카스트라토를 더 선호했다.

카스트라토는 남성 호르몬을 생산하는 고환을 변성기 전에 제거한 거세 성악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카스트라토에 대한 선호 때문에 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해마다 4000여 명의 소년이 거세될 정도였다. 1903년 공식적으로 금지하기 전까지 수많은 소년이 남성성을 제거당했다.[각주:7] 심지어 성공한 카스트라토는 1% 내외에 불과했고, 나머지 카스트라토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카스트라토의 삶을 일부 엿볼 수 있는 영화 『파리넬리』를 보면 파리넬리는 형이 작곡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발판으로 쓰이기 위해 거세당한다. 가부장제와 성차별의 화살이 어린 남성 아동을 향한 것이다.


차별과 배제는 당하는 이가 정당하게 학습한 내용과 재능을 묻어버리는 일뿐 아니라, 다른 형태로 차별과 배제의 주체인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공정함을 원하면 “역차별”이라는 말-이 되는지 알 수 없는 말-을 쓰기보다 내 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권리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 아닐까? 다른 쪽에서 받은 차별을 더 만만한 곳에 쏟아내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각주:8]

  1.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3 재인용 [본문으로]
  2.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1 재인용 [본문으로]
  3. Carl E. Seashore, “Why No Great Women Composers?”. Neels-Bates, Carol(ed). Women in Music : An Anthology of source Readings from the Middle Ages to the Present. Boston: Northeastern University Press, 1996, p.299. 『음악사 다시 생각하기 : 19세기 여성음악가들의 글을 중심으로』, 홍인경,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2008) p.20 재인용 [본문으로]
  4.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27 [본문으로]
  5. Marcia J. Citron. "Fanny Medelsohn Hensel: Musician in Her Brother's Shadow". Women Making Music: The Western Art Tradition, 1150~1950.(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86)p.158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46 재인용 [본문으로]
  6. 에바 리거, 『서양 음악사와 여성』, 김금희 역(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1), p.259, 『근대 여성 음악가들의 지위와 활동에 대한 통찰』 최은아,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11) p.6 재인용 [본문으로]
  7. 『카스트라토와 카운터테너에 대한 연구』 전영호, 중앙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 성악전공 석사학위 논문(2006) p.26~27 [본문으로]
  8. 이 글은 내가 학교에서 서양음악사 수업을 할 때 한 번씩 하는 수업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내용을 갖고 수업하는 이유는 이 각주가 달린 문단이다. 혹시 수업자료가 필요하신 분은 보내드리겠습니다. 토론이나 질문도 환영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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