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귀향』의 문제

며칠 전 영화 『귀향』을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중간중간 눈을 뜨기 힘든 장면도 있었다. 그래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면서 계속 보았다. 같이 보자고 했던 여자친구는 나한테 미안해하고, 본인도 굉장히 힘들어했다. 내가 한동안 침울한 표정을 지었는지 내내 내 표정을 계속 신경 쓰며 본인을 탓했다. 나도 보려고 했던 영화라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계속 자신을 탓했다. 영화 자체의 문제인 건데…


- 문제1. 성폭력의 전시

영화를 보기 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과는 달리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두 이야기가 병렬로 진행하는 줄 알았다.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가 왜 굿당에 왔는지 이해할 수도 없기도 했고, 초혼을 통해 넋을 위로하기 위한 서사를 만들기 위한 것일 줄 알았다.

그런데, 현대의 소녀와 과거의 소녀가 끔찍한 폭력에 시달리는 장면이 등장했다. 현대에서는 칼로 더듬다 아버지를 찌르는 장면이었다. 일제강점기는 온몸을 후려치고 벗기는 장면, 단체 책임을 물어 강제로 옷을 벗게 만드는 장면, 강제로 섹스를 시도하는 장면, 초경도 않은 열네 살 처녀라고 실실대는 장면 등 끔찍한 장면을 너무 많이 등장시켰다. 최악은 카메라가 하늘로 올라가며 쪽방촌 전체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강간이었다. 스너프 필름을 모아서 동시에 전시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형태의 성폭력 전시는 무슨 의미로 한 것일까? 끔찍한 사건을 끔찍하게 묘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공분할 일이니 잘 보고 제대로 분노하라는 것일까? 왜 저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저런 연기를 해야 했던 것일까? 그 사람들은 정신적 상처를 입지 않을 자신이 있던 것일까? 아니면, 감독은 정신적 상처를 주지 않을 자신이 있던 것일까?


- 문제2. 군인이 끌고 가고 군인이 구출하는 서사

또 하나 끔찍했던 것은 일본 군인을 해치우고 소녀를 죽음으로부터 구출하는 장면이었다. 전투장면이 어찌나 유치하고 어설픈지 끔찍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장면의 끔찍함은 서사 구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본 군인이 납치해 가고 일본 군인이 관리하며, 일본 군인이 계속 이용하다 완전히 없애버리기 직전 구출하기 위해 나타나는 광복군(으로 추정)이라는 서사라는 생각이 든 순간 욕지기가 올라왔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인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서 구출하러 왔다는 대리 만족을 주기 위한 것인가? 그 와중에 소녀를 끝까지 죽이려는 일본군의 잔악함을 전시하며 구출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끔찍하게도 끔찍할 뿐이었다. 군인에게 당해 온 사람이 군인을 다시 만난다는 것 너무 폭력적이다. 이후 미군기지에 비슷한 기지촌을 묵인하고 한국을 부자로 만들자고 했던 군사정권 시절의 한국 정부를 생각하면 이 영화는 피해자를 농락하는 수준이다.


- 문제3. 굿의 과정과 결과

그래도 굿을 하며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내가 왜 마음을 다지는 노력을 하며 봐야 했는지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노력해서라도 피해자를 위한 마음으로 끝까지 보려고 했다.

영화를 보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굿도 우스웠다. 살아 있는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을 생각하면 살아있음 자체도 죄로 만드는 것 아닌가? 왜 하필 성폭력 피해자인 그를 신들리게 하여 성폭력 피해자의 혼을 씌운 것일까? 공통점이 있어서?


- 문제4. 아리랑과 민족주의

공통점을 굳이 따져보자면 강간을 당하다 아버지를 잃은 소녀는 강간당하고 나라 잃은 민족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개개인의 피해를 개개인의 처지로 다독이거나 구조적 문제로 나타나는 성폭력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뜬금없는 아리랑의 등장은 그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영화를 볼 때 들리는 아리랑은 그렇지 않아도 이제까지 듣던 아리랑 중 가장 역겨운 아리랑이었다. 민족주의적으로 그들의 아픔을 다룬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역겨웠다. 『디 워』의 아리랑은 부끄러워 미칠 것 같은 아리랑이었는데, 여기 아리랑은 아리랑과 민족을 역겹게 만드는 『디 워』보다 더 한 최악의 아리랑이었다.


- 성폭력을 다룬 다른 영화는 어떻게?

『귀향』을 본 다음 날, 오스카 이야기를 하다 다시 영화를 보게 되었다. 평소에 배우의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않아서 배우들 이름을 잘 모르는데, 몇몇 영화로 익숙한 마크 러팔로가 나오고 오스카 후보라고 해서 더 보고 싶었다. 마침 개봉했고 상영관이 있었다. 시놉시스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도 성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였다. 그 영화는 『스포트라이트』다.


맥과 아이폰을 사용하다 보니 검색 도구인 스포트라이트를 먼저 생각했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그게 아니라 “보스턴 글로브”라는 언론의 집중 취재팀 이름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이 집중 취재팀이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폭력 스캔들을 취재한 과정을 그린 실화 기반의 영화이다. 

전날 본 『귀향』과 다르게 한결 개운한 기분으로 나올 수 있었다. 찝찝하거나 불편한 구석이 별로 없었다. 피해자의 피해를 전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피해를 이야기할 때 괴로워하는 모습은 보여주되, 아동을 성추행하거나 강간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 않았다. 사건과 가장 직접 관련된 영상이라고 해봐야 경찰서에서 기소하지 않는 장면일 정도로 피해자의 피해장면을 고발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 도구로 쓰지 않았다.


『스포트라이트』는 취재과정을 그렸기 때문에 전시하지 않을 수 있는 충분한 배경이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2013년 작인 『한공주』를 살펴보면, 얼마든지 선정적으로 그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공주』는 성폭력 문제를 피해자를 둘러싼 사람 위주로 다룬다. 강간 장면이 등장하지만, 『귀향』처럼 피해자의 신체를 불필요하게 전시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고통을 보여주어 감정의 당위성을 드러내는 것 역시 얼굴과 흔들림 정도로만 묘사하여 최소한으로 비춘다.

『한공주』라는 영화를 언급하다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이 영화가 영화관에 정식 개봉했던 2014년 밀양시 교육지원청에서는 각 학교 관리자에게 과장되게 밀양을 욕보이는 영화라며 교사들이 보지 않을 수 있도록 협조 요청을 한 적이 있다. 영화에 실제 사건은 더 큰 피해가 있었으나 영화에서는 축소해서 이야기했다는 식의 자막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왔던 나는 실제 사건은 더 굉장했고, 영화제 때는 모르겠지만, 현재 그런 자막은 들어가 있지 않으며 잘못을 인정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관람하자고 하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서 『한공주』와 관련하여 보지 말자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 밀양시 전체에서 그 보지 말자는 말은 거의 무시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 그러면 『귀향』은 성폭력을 어떻게 다루어야 했나?

그러면 『귀향』은 위안소의 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했을까? 별거 없다. 민족주의 빼서 다루면 된다. 더불어 군인이 납치하고 군인이 구출하는 서사가 아니어야 한다. 또, 굿을 할 때 신들리는 이가 성폭력 피해자이며 현장에서 아버지가 죽는 이야기를 없애거나, 충분한 개연성을 줄 필요가 있다. 스너프 필름 전시하는 듯한 쪽방 위안소 전체 묘사를 빼고, 인물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영화 전체가 문제라서 싹 갈아엎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성폭력을 관찰하는 것이 성폭력에 대한 2차 가해라는 것을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찬양이 좀 없어지고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좋겠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 ㅉㅉㅉ 2016.08.12 16:53 신고

    이 생키는 시발 무슨 프로불편러인가

욕설이 가득한 기사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에는 감정적인 댓글이 많이 달린다(단체로 같은 것을 보면서 성토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휘발성이 강한 말소리와는 다르게 여러 사람이 같은 글을 볼 수 있어 감정이 여러 방향으로 뻗는 모습이 보인다. 조롱부터 잘못 이해한 내용까지 감정적으로 싸우는 댓글뿐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보자는 내용의 댓글도 종종 보인다. 칵테일 파티 효과인 모양인지 감정적인 댓글이 더 눈에 띈다.

그런 감정 성토의 장인 기사 댓글난은 대체로 몇 가지 내용으로 두어 가지 베댓이 생기는데, 그런 것 없이 대부분 비슷한 내용으로 대동단결하는 기사가 가끔 있다. 내용과 묘사, 적절한 타이밍이 아닌, 묘사대회에 온 것처럼 묘사의 수준이 베댓을 좌우하기도 한다. 바로 성폭력범의 처벌에 대한 기사이다. 약간의 자비라도 보였다가 온 인류의 자비(를 위한 무자비)를 부정하는 부정한 자로 몰리기도 한다.

보다 보면 세금조차 아까우니 목숨을 빼앗자는 것을 넘어서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을 잘라내라는 내용도 있다. 이런 내용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신체 손상의 수준으로 경쟁하는 것을 보면 온갖 상상이 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성폭력에 대한 개개인의 두려움과 분노가 크다는 방증이겠지만, 엉뚱한 데 화풀이한다는 생각이 든다.



성폭력의 원인은 발기하는 남성기?

발기하는 남성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발기하는 남성기는 단순한 생리 현상일 뿐이다. 그 발기하는 남성기 자체에는 폭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의 광기 속에서 클리토리스의 발기와 쾌감을 악마의 젖꼭지라 부르며 마녀의 증거로 삼던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다. 단순한 신체의 반응을 사회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일의 당연한 원인으로 삼는 것은 모순이다.

성폭력은 강간이 아니다. 강간은 성폭력의 일부다. 물리적인 행위만이 성폭력이 아니다. 그래서 “성적인 행위로 남에게 육체적 손상 및 정신적·심리적 압박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이라는 국립국어원의 정의는 매우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정의가 강제추행이나 강간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많은 사람이 국립국어원의 권위 덕에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단어의 뜻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를 수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반적 인식이나 실제 법 집행과 동떨어진 정의보다는 실제 법령과 더불어 집행하는 기관의 설명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법무부는 생활법령정보에서 성폭력을 “성(性)적인 행위로 남에게 육체적·정신적 손상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으로서 강간이나 강제추행뿐만 아니라 언어적 성희롱, 음란성 메시지 및 몰래카메라 등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포함합니다.”라고 설명한다. 실제 우리가 마주하는 처벌 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에 가장 가까운 설명이다.

법무부의 설명대로라면 성폭력은 물리적 강제력뿐 아니라 성과 관련한 모든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포함한다. 성폭력에서 발기와 성욕 자체가 물리적으로 유의미한 것은 강간과 강제추행에 한정되어 있다. 강제추행은 발기되지 않아도 가능한 행위이고, 성희롱이나 몰래카메라는 성욕이 없어도 가능한 행위이다. 그래서 성기의 발기 여부와 성욕에 집착하는 것은 실제 성폭력의 범위 자체를 축소할 우려가 있다. 그러면 성폭력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성폭력은 성욕의 연장선이 아닌 폭력의 연장선

성폭력은 성욕의 연장선이 아닌, 폭력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모든 성행위에 강제력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폭력 중 성폭력은 성과 관련한 강제력이 들어가지만, 성행위 그 자체에는 강제력이 아니다. 둘이(혹은 그 이상의 사람이) 서로 좋아해서 한 성행위, 혹은 혼자서 하는 성행위(자위) 자체는 문제 되지 않는다. 성욕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자위라는 성행위로 풀 수 있다.

폭력으로 성적 쾌감을 더 느끼는 사람도 있지 않겠느냐고 할 수도 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강제력을 통한 성적인 자극”으로 쾌감을 얻는 성행위가 존재한다. 그것은 SM이다. SM은 둘 사이에 약속된 강제력을 통해 성적인 쾌감을 얻는 역할 놀이이다. 가학과 피학이라는 역할 놀이를 통해 폭력적인 부분을 자연스럽게 성적인 자극으로 바꾸어 낸다. 강제로 성적인 쾌감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한 강제력을 매개로 서로의 쾌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약 약속 없이 강제로 어떤 행위를 시킨다면 그것은 폭력일 뿐 SM이 아니다. 다시 말해 SM은 폭력을 흉내 낸 역할 놀이로 통한 성적인 자극을 얻는 것일 뿐이다. 영화나 게임의 역할과 차이가 없다.



성욕 때문이라고?

만약 남성의 분출할 수 없는 성욕 때문에 성범죄가 나타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여성의 성욕을 부정하고, 남성이 성욕을 독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독점하였기 때문에 또한 성욕을 자극하는 모든 형태에 대해 문제 삼을 권리를 갖게 된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핑계에 여성의 옷차림이나 생김새 등에 원인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가해 남성의 핑계도, 피해자를 비난하는 주장의 근거도 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의 주체성과 성을 부정하는 차별이기 때문이다.

만약 가해자가 성도착증이라면 성욕 때문에 저지른 말을 합리화할 수 있을까? 합리화한다 쳐도 화학적거세, 즉 약물치료를 통해 발기를 억제하면 괜찮을까? 발기 억제하는 기간이 끝나면? 발기 억제 자체가 성욕을 안 불러일으킨다는 보장은? 더 나아가서 진짜 거세한다면 괜찮을까?

조선 시대의 환관은 사춘기가 오기 전 고환을 제거한 사람이었다. 이들은 발기됐고, 성생활을 했다고 한다. (단, 사정이 되지 않는 괴로움에 몸을 깨물어 아내들이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렇게 실제 거세한 이들조차 성욕이 있었고 성행위를 했다. 굳이 환관이 아니더라도 성기 성형까지 한 M2F 역시 성욕이 있고 성행위를 한다. 고환 대신 난소가 있는 여성에게 성욕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발기부전일 경우 치료를 받으려는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굳이 발기가 아니더라도 성욕이 존재한다는 것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관점을 바꾸자

이렇게 성욕과 발기에 대해서 강조한 것은 성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개인의 욕망과 신체 현상을 절제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 여성의 성을 억압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개인의 욕망과 신체현상이 범죄와 연결고리가 크다고 생각할수록 성범죄 자체를 어쩔 수 없다며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불어 여성의 성적 자유를 억압할 핑계가 늘고, 성욕의 위계를 만들어 모든 남성은 당연한 예비 가해자, 모든 여성은 당연한 예비 피해자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만약 재범이 문제라면 처벌 강화와 화학적 거세로 눈을 돌리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교도가 제대로 되는지 그 자체를 먼저 바라보아야 한다. 교도소가 교도와 사회 복귀에 대한 의지 없이 격리 처벌에서 그치면 재범률은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로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 낙인 찍힌 범죄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영원히 잡아둘 수 없다면 그들을 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 없이 화학적 거세를 하자는 것은 교도나 사회안전망의 허점을 회피하기 위한 여론 무마용 장치에 불과하다.

교도를 바꾸고,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남성적이라는 말, 여성적이라는 말을 없애야 한다. 너는 이성 같다는 말, 너는 네 젠더 답지 못 하다는 말 속에 있는 젠더 폭력을 없애야 한다. 남성의 욕망을 당연히 풀어줘야 한다는 인식도 없애 하고, 여성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문제 삼는 것도 없애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젠더 인식을 바꾸어야 이 위계적인 성폭력을 줄일 수 있다.


*덧붙여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 소설 ‘소년의 죄’(http://freshteacher.kim/12)와 다음의 TED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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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성폭력과 관련하여 썼던 단편 소설입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 없을 때 생기는 문제 중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성폭력은 주체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위계와 폭력 때문에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쓴 소설입니다. 예전에 쓰던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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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죄


소년의 미간에 굵은 주름이 생겼다. 입가에 보이지도 않던 팔자주름은 점점 골이 깊게 파여 그림자도 함께 짙어졌다.

"끙!"

소년의 목 깊숙한 곳에서 신음이 올라온다. 눈 밑이 조금씩 부풀고 눈꺼풀도 점점 처져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눈 밑 그림자도 짙어져 무척이나 피곤해 보인다.

"아파. 아프다고."

눈 검은자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눈을 조금 찌푸린다.

'누가 있을 리가 없지'

"하아"

소년은 몸을 굴렸다. 몸에 이불이 감겨 불편한 기색이다. 손을 바닥에 대고 상체를 들어올려 몸을 흔든다. 이불이 풀려 조금 편해졌는지 표정이 풀렸다. 가슴을 바닥에 바짝 붙이고 팔을 펴서 손등은 바닥에 댄다. 눈은 질끈 감고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후우. 조금만 엎드려 있어야지."

-삑삑삑

알람이 울렸다.

"아 씨."

손을 가슴 앞에 대고 밀어 상체를 들었다. 소년은 무릎을 꿇고 베개에 이마를 쳐박았다.

"일어나라."

"일어났어요."

이불을 걷고 일어섰다. 표정이 좋지 않다. 바지 가운데가 삐쭉 솟아있다.

"으으"

소년은 바지 안에 손을 넣어 팬티를 잡아당긴다. 손을 잠깐 움직이다 떼니 바지가 가라앉았다. 양손을 모두 빼 왼손은 주머니에 찌르고 오른손은 머리칼을 움켜쥔다.

"씨!"

'짜증난다. 쪽팔리게 커지고 난리야. 이래도 튀어나온 게 보이네.'

주머니에 찌른 손을 조금 들어올린다. 머리를 움켜쥔 손으로 머리를 긁는다.

'이쯤하면 안 보이겠지? 화장실까지는…'

머리를 긁던 손으로 방문을 열었다.

"밥 먹어."

"똥 마려워요. 똥 싸고."

소년은 몸을 조금 틀어 화장실로 걸어갔다.머리를 긁던 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 불을 안켰구나.'

조금 뒤로 물러나 오른쪽 어깨로 스위치를 눌렀다. 화장실 안이 환해졌다.

"훗!"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코웃음을 냈다. 슬리퍼를 신으며 왼쪽 손을 뺐다. 새끼 손가락으로는 왼쪽 콧구멍을 후비고 엉덩이로는 문을 밀어 닫는다.

-쿵, 딸깍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바지 속에 집어넣었다. 왼손 새끼손가락을 콧구멍에서 빼고 새끼손가락만 쭉 편다.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바지를 조금 내리고 뒤로 돈다. 변기 위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코를 후비던 손을 세면대에 문지른다.

'오줌 나올 때 아플텐데… 단단해져서 오줌발도 쓸 데 없이 강할테고…'

"하아"

소년은 한숨을 쉬고 얼굴을 찌푸렸다. 왼손은 머리를 움켜쥐고 오른손은 머뭇거리며 아랫배를 쓰다듬는다.

'짜증나. 눌러야하잖아.'

손을 더 내려 아래를 누른다. 다리를 모아 무릎을 붙이고 손을 뗐다.

"짜증나. 아프기만 하잖아. 씨."

손을 다리 사이로 집어넣어 지그시 누른다.

-쉬

'아 씨, 아파'

"으음. 흑."

-뿌지직

"아아."

팔자주름의 그림자 한 쪽이 더 짙어졌다. 콧구멍이 벌어지고 인중이 짧아진다. 눈 밑이 부풀어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흑."

-쑤욱, 쏴아.

일어서서 팬티를 올린다.

-촥!

경쾌한 소리가 난다.

"아아, 씨."

'아프잖아. 그래도 많이 가라앉았으니 안보이겠지.'

-촤아아

소년은 물을 틀어 손을 대강 씻고 화장실 밖으로 나온다. 소년은 밑에 튀어나온 다리사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하아."

'아직도…'

소년은 누가 볼까 방으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불 안끌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소년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화장실로 가 불을 껐다.

'아 씨. 깜빡할 수도 있지.'

"껐어요!"

"왜 짜증이냐?!"

"엄마가 먼저 짜증 냈잖아!"

"아침부터 화내게 할래?"

"아 뭐! 사람 짜증나게 해놓고 짜증낸다 뭐라 그래!"

"똑바로 하면 짜증날 일도 없잖아!"

"에이 씨!"

-쾅!

소년은 화장실로 들어가며 문을 세게 닫았다.

'짜증나. 보이지도 않잖아.'

-딸깍

"나중에 나올 때 불 꺼."

-하아

소년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아래를 봤다. 가라앉은 가랑이를 보고, 바로 문을 열어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착, 딸깍

소년이 밖에 나오자마자 어머니가 말을 했다.

"밥 먹어라."

소년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긴장한 탓에 소년의 이맛살이 팽팽해졌다.

'보고 있는 사람은 없겠지?'

소년은 눈을 굴려가며 두리번거렸다.

"하아"

크게 숨을 들이마신 덕에 어깨가 들리며 가슴이 부풀었다. 주섬주섬, 뒤지는 척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르고 다시 두리번거렸다.

"으으!"

얕은 신음을 냈다. 손은 주머니에 찔렀는데 부풀어오르는 것은 가랑이다. 소년의 이맛살에 주름이 생겼다 풀린다. 주름살과 함께 가랑이도 다시 가라앉았다.

-끄응

소년은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버스였다. 노선을 확인하고는 버스에 올랐다. 소년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두 명씩 앉을 수 있는 곳에는 다 여자 혼자 앉아 있어 부끄러운 마음에 앉을 수 없었다. 맨 뒷줄 가운데 자리는 아래때문에 민망한 일이 생길까 피하고 싶었다.

-이번 정거장은 동…

"아씨"

느껴졌다. 소년은 도리질을 하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들 창밖만 보고 있었다. 기회다! 양손을 살짝 부푼 가랑이로 가져가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끄응

"으아."

버스가 갑자기 서는 바람에 소년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얼굴색이 하얗다. 균형을 잡고 얼굴이 붉어졌다.

-삐이

버스 문이 열려 사람들이 내렸다.

"하아 하아."

소년은 갑자기 숨이 가빠왔다. 소년의 어깨가 급하게 오르락내리락한다.

-삐이

버스 문이 닫혔다.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버스 뒷쪽 빈자리를 보고 몸을 틀어 움직였다. 뒤에서 두 번째 좌석 창가에 앉았다.

소년은 앉자마자 목이 뻣뻣한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사람도 별로 없고, 안 보이겠네. 아 씨, 왜 자꾸 커지냐? 가라앉긴 했지만.'

"아 씨."

소년은 오른손을 배꼽 아래로 가져가 가랑이를 만져 나중에 커져도 티 안나게 만지작거렸다. 다시 눈치를 살피다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 안심하고 오른쪽 팔꿈치를 창틀에 기댄다. 오른손은 살짝 벌려 엄지와 집게 손가락 사이에 귀를 끼운다. 손바닥은 광대뼈를 받치고 고개는 오른쪽으로 틀어 어깨를 창에 붙인다.

-이번 정거장은…

"흠."

손을 올려 버튼에 댔다.

-삐

다른 사람이 먼저 눌렀다. 소년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일어선다. 아래도 같이 일어섰다.

"윽!"

아까 만져둔 덕에 크게 표는 안 나겠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정거에 휘청이는 척하며 앉아 아래를 살짝 다듬었다.

'이제 됐어. 괜찮겠지.'

소년은 흐트러진 균형을 잡아 흐뭇한 척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내리는 문으로 갔다. 또 느낌이 왔다.

'윽! 또 커진다.'

섰다.

-삐이

문이 열릴 때소년은 촉감을 믿고 아래를 쳐다보았다. 표나지 않는 것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아랫배에 힘을 빡 주고 당당하게 버스에서 내렸다.



'또 꼴렸네. 딸딸이라는 거 한 번 쳐볼까?'

소년은 바지를 내려 손을 가랑이로 가져갔다. 그리고 열심히 문질렀다.

"아 씨, 아파."



"아 씨, 아파."

소년은 자기 바지 가랑이를 꼭 붙잡았다.

"왜? 어디가 아픈데?"

친구의 물음에 소년은 신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끙, 자꾸 선다. 왜 이렇게 아프냐?"

"꼴렸냐?"

"꼴렸냐고? 많이 들어보긴 했어. 근데 그게 뭔데?"

"자지가 발딱 선 거. 그게 꼴린 거야."

"어? 진짜? 아 씨."

소년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얼굴도 찡그린다.

"그럼 딸딸이도 모르겠네?"

"딸딸딸 거리는 차 이야기하는 거 아냐?"

"너 뭐냐? 설명하기는 좀 그런데 그건 아니다. 자지 문지르는 거거든. 다른 말로 뭐라더라? 아, 자위."

"이해가 안 가는데. 그거 왜 하냐?"

"해보면 알아."

'뭘 해보면 알아?'



'이걸 왜 하는 거야? 아프기만 한 걸 해서 뭐해?'

소년은 바지를 올렸다.

"짜증나."

소년은 투덜거리고 가방을 챙겨 문 밖으로 나갔다.



-사층입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소년은 왼쪽으로 움직여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총무를 보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소년은 고개를 들고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꼬르륵

뱃속에서 나는 소리에 휴대전화를 꺼내어 액정화면을 바라보았다. 6시 30분.

'아, 사람 없을 시간이구나.'

"밥이나 먹어야겠다."

소년은 휘파람같은 소리가 섞여있을 정도로 가늘게 중얼거렸다.

-지잉

'깜짝이야.'

휴대전화 진동이었다. 소년은 휴대전화를 꺼내 액정화면을 바라보았다.

[어디?]

소년의 친구 ㅇ의 문자였다. 고민할 것 없이 바로 독서실이라고 답을 보냈다.

-지잉

[ㅇㅇ]

'뭐냐?'

[뭐냐?]

[거기로간다]

[밥먹을건데언제올거냐]

[밥빨리먹어금방간다]

[ㅇㅇ]

'밥 뭐 먹지?'

소년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사발면에 삼각김밥이나 먹자.'

소년은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으로 들어가 음료수 행사를 하는 삼각김밥 두 개와 음료수 두 개, 사발면 하나를 집어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사발면을 뜯어 스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바깥이 잘 보이는 바에 앉아 사발면을 내려놓았다. 사발면이 익는 동안 먹기 위해 삼각 김밥 하나를 뜯었다.

'언제쯤 올까? 밥 다 먹을 때쯤 왔으면 좋겠는데…'

삼각김밥 하나를 다 먹었다. 다시 한 개를 뜯으려다 면이 익었나 확인해보았다. 아직 다 안익었지만 아까 먹은 삼각김밥 때문에 목이 매여 국물을 마셨다.

'아 씨, 스프 안 섞였잖아.'

투덜대며 사발면을 내려놓았다. 젓가락으로 면과 국물을 휘저어 스프를 다 녹이고는 뚜껑을 다시 붙였다. 사발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젓가락으로 사발면을 툭툭치며 바깥을 살펴봤다.

'익어라. 익어라.'

젓가락으로 리듬 치는 것은 어느새 시들해지고 사람들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배고파. 아!"

소년은 저도 모르게 나온 말에 스스로 놀라 사발면 뚜껑을 열었다. 라면은 다 불어있었다.

"아 씨."

삼각김밥을 먼저 다 먹으려고 했지만 국물 이 거의 없어 목이 메었다. 갑갑하니 물을 머금어 불어버린 면을 꾸역꾸역 먹었다. 결국 다 삼켰는데 갑갑한 게 없어지질 않아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려봐도 소용이 없었다.

-딱

"바보야 있는 음료수도 안먹고 이게 뭐냐?"

소년의 친구 ㅇ이 왔다. ㅇ은 소년에게 뚜껑을 딴 음료수 하나를 내밀었다.

"아으으아"

소년은 정신 없이 받아 벌컥 벌컥 들이켰다. 목으로 넘기기도 힘들 정도로 가득 머금은 바람에 뱉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이다. 음료수를 간신히 삼켰는데, 기침하고 코로도 나오는 바람에 더 고통스러워한다.

"꾸웨엑!"

ㅇ이 소년에게 휴지를 준다. 소년은 한참을 큰소리 내다 좀 가라앉았는지 숨만 헐떡인다.

"고마워."

"가자."

소년은 일어서기 전에 물었다.

"음료수 하나 먹을래?"

"어."

행사로 받은 음료수를 건냈다.

"자."

ㅇ은 받아들고, 편의점 바깥으로 나갔다. 소년은 휴지도 치우고, 테이블로 닦았다. 다 먹은 음료수 병, 라면 국물, 쓰레기를 다 버리고 ㅇ을 따라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ㅇ은 편의점 밖에서 PMP를 들고 뭘 보고 있었다.

"뭐 보냐?"

"야설."

"그게 뭔데?"

"독서실로 가자. 가서 보여줄게."



소년은 책상에 앉아 ㅇ의 PMP에 집중했다.

소년의 표정이 계속 바뀌었다. ㅇ은 소년의 표정을 읽고, PMP를 돌려받아 말을 했다.

"야설 가져가서 볼래?"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USB 있냐?"

소년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줘."

소년은 ㅇ에게 USB메모리를 건냈다. ㅇ은 소년의 독서실 컴퓨터에 PMP와 USB메모리를 연결해 복사하고 다시 소년에게 건냈다.

"재밌게 봐라."

"어, 고마워"

ㅇ은 휴대전화를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야, 10시 넘었다. 집에 가자."

소년과 ㅇ은 가방을 챙겼다. 어차피 엘레베이터 기다리는 거 오래 걸린다며 둘은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독서실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ㅇ은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뭐? 아무튼 이거 읽고 딸딸이 너무 많이 치지 마라."

"안쳐."

"딸딸이 쳐보기는 해봤냐?"

"아프기만 하던데, 짜증나서 안 한다."

"그런가? 난 기분 좋던데"

"그게?"

"특이하네."

소년은 ㅇ의 집 방향으로 걸었다. 바로 가나, ㅇ의 집 쪽으로 돌아서 가나 시간 차이는 얼마 없다. ㅇ은 야설을 보면서 걷고, 소년은 주변을 살피며 야설을 훔쳐보았다.

"진짜 이러냐?"

"그러겠지. 다 왔다. 나 들어가. 잘 가."

"어."

소년은 더 읽다 가고 싶었지만, ㅇ이 집에 들어가는 바람에 입맛만 다셨다.

"쩝."

'아!'

갑자기 USB메모리가 생각난 소년은 집으로 바람처럼 달렸다.



소년은 평소처럼 집에 들어오면 컴퓨터를 바로 켠다. 조용하다 조금 있으면 또 스피커 볼륨을 높여 게임을 한다. 이전보다 청소를 열심히 하고, 조용히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요즘은 팬티만 입은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문 밖에서는 항상 바지를 입고 있다. 방에서 나올 때 다리를 후들후들 떠는 일이 잦아졌다. 소년은 이제 손을 깨끗하게 잘 씻는다.



밤 10시 넘어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ㅇ은 소년에게 말했다.

"애 하나 잡아다 할래?"

"뭘?"

"야설 봤잖아. 해보지 않을래?"

소년은 긍정하지도 못하지만, 부정하지도 못한다. 눈이 떨리고, 몸이 떨린다. 야설로 읽던 것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성폭행을 당하지만 결국 좋아하며 또 하자는 여자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만졌는데 오히려 더 즐기며 따로 데려가 하는 여자들만이 기억난다.

'애 하나 잡아서 하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가자"

소년은 대답조차 못하고 ㅇ이 이끄는대로 간다.

'꽉 조이면 그렇게 좋을까? 길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기분일까?'

소년은 ㅇ이 가는 길을 따라 갔다. ㅇ은 자신의 집 방향으로 갔다.

"야 어디 가?"

"어두운 데 찾아야지."

둘은 ㅇ의 집을 지나 더 어두운 동네로 갔다. 이 시간에 누가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꼬마 아이들이 몇 명 보였다. ㅇ이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어느 애 잡을까?"

"진짜 하려고?"

"그러려고 온 거 아냐?"

소년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핑계를 댄다.

"소리 지르지 않을까?"

"살살 꼬셔야지."

"좀 많지 않아?"

"왜 그래?"

"들키면 어떡해?"

"더 어두운 데로 가자."

ㅇ은 소년을 이끌고 더 어두운 곳으로 갔다.

"야, 그냥 가자. 걸리면 쪽팔리잖아. 무섭기도 하고…"

ㅇ은 소년 때문에 할 수 없다는 듯이 방향을 바꾸어 집 근처로 향했다. 소년은 ㅇ을 따라 집으로 갔다.

'아쉽지만, 무서워.'



토요일 저녁, 소년의 가족은 안방에 모여 함께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마침 주말연속극이 끝나고 뉴스를 할 시간이었다. 소년은 드라마를 보고 싶었지만, 채널 이동에 관한 권리가 없다. 자기 방으로 움직일까 했는데 소년의 어머니가 딸기를 씻어 안방으로 갖고 왔다.

"딸기 먹어라."

"아까 냉장고에는 없던데, 웬 딸기?"

"방금 들어오면서 사왔어."

소년은 딸기를 조금씩 베어물었다.

"쯧쯧쯧."

소년의 아버지가 혀차는 소리를 내며 뉴스를 봤다. 소년은 물었다.

"왜? 무슨일인데?"

"봐봐라. 저 쳐죽일 놈."

소년은 뉴스에 집중했다. 초등학교 안에서 초등학생을 강간한 용의자의 생활이 나오고 있었다. 소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곧 이어 나오는 뉴스는 성범죄자 화학적 거세 법안 논란이었다.

"거세하면 새 범죄자는 안 나오나? 범인만 잡으면 뭘해? 치안이 이렇게 엉망인데!"

소년의 아버지는 흥분했다. 소년은 어두운 골목 속에서 뛰어놀던 꼬마 아이들이 생각났다.

-오늘 밤 …

"미친놈들"

-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대처와 속칭 성범죄자 화학적 거세법안에 대해 보도합니다.

소년은 화장실로 갔다. 다리가 후들거려 슬리퍼를 제대로 신지도 못하고 미끄러졌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고통에 소년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조심해. 괜찮니?"

아버지, 어머니가 달려왔다.

"네, 괜찮아요."

소년은 화장실 불을 켜고 들어가 문을 잠갔다. 변기에 앉아 머리칼을 움켜 쥐었다.

'아 씨, 걸리면 어떡하지? 누가 아는 건 아닐까?'

한참을 고민하다 물을 내리고 나왔다.

"왜? 배탈 났니?"

"네 괜찮아요."

소년은 안방으로 들어가 텔레비전을 봤다. 마침 시사프로그램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성폭력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정신적 고통, 재범율과 약물 치료가 통하지 않는 사례…

'나 그렇게 나쁜 놈이었어? 아냐, 안했잖아. 나는 성충동을 이겨냈어.'

시사프로그램이 끝나고 소년은 다리를 후들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괜찮아, 괜찮아… 나쁜놈은 ㅇ이야.'

소년은 컴퓨터를 켜고 휴대전화를 들어 문자를 썼다.

[개새꺄]

차마 발송하지도 못하고 종료버튼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나도 똑같은 놈인 걸.'

부팅이 완료됐다. 인터넷 창을 띄워 게시판, 블로그, 뉴스를 검색했다.

[피해자의 고통… 지워지지 않는 상처,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족에 다시 상처를 주는 것. 약물 치료의 효력이 입증된 것도 아니다. 아동 성폭력은 성충동 보다 약자만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 물리적 거세를 해야한다, 사형을 시켜야 한다, 치안을 강화해야 한다]

'쪽팔리게 나도 저런 사람이 될 뻔 했어? 아니, 고통… 내가 K처럼 애들 괴롭히는 그딴 놈이란 말야?'

소년은 흐느꼈다. 아래에 무슨 느낌이 왔다. 섰다.

"미친… 흐윽…"

소년은 야설을 찾았다. 읽으며 자위를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아파!'

소년은 아픈 데도 계속 했다.

'다 빼야 해. 그래야 그런 짓 안 하지.'

다섯 번째, 핑 돌았다. 색도 이상했다. 소년은 자기 눈이 이상한 줄 알았다. 하지만 비교해보니 붉은 빛이었다.

'피… 나 죽는 건가?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소년은 죽음을 기다리며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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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글을 쓰기 위해 외출할 준비를 했다. 입술이 너무 어두워서 조금이라도 건강해 보이려고 처음으로 틴티드 립밤을 써봤다. 거울을 봤는데, 자연스러운 것 같다. 조금 더 중성적으로 보인다. 내가 원하는 젠더 블라인드에 가깝게 연출…은 못하겠구나. 머리도 예쁘게 묶었는데 목이 활짝 드러나는 셔츠와 니트를 입었다. 내 목은 매우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집을 나와 천천히 걸었다. 심부름도 하고 동문로에 도착했다. 그리고 평소 글을 쓰기 위해 찾는 곳에 도착했다. 얼굴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 좋아 사이렌 오더를 별로 안 쓰려고 하다 보니 기다리는데, 한 중년 여성분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런데 카운터 한구석으로 가서는 말을 걸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남잔데 치마 입었어."

대답하는 그는

"그럴 수도 있죠."

라며 평소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도 반갑게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은 뭐 드실 거에요?"

"오늘의 커피 그란데 사이즈로 주세요."

"아까 수군대는 소리 다 들렸어요."

"네?"

"치마"

"아~ 하하하"

"사이즈는 뭐로요?"

"그란데요"

"아 맞다. 그란데. 그런데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오셨어요?"

"뭐 그냥?"

난 대답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나와 이야기한 그는 이곳에서 나랑 제일 친한 파트너다. 예쁘게 입는다고 치마 귀엽다고 가장 많이 칭찬해주는 이다.

'아주머니 상대 잘못 골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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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똘구임? 2016.08.12 16:55 신고

    남자인데 치마를 입으면 또라이지 그게 정상이냐

    옛다 관심!!!

왜 치마 입어? 예뻐서 입는데?

“치마 왜 입어?”

치마가 7벌이 되기까지 이 질문 참 많이 들었다. 분명 이유를 썼던 것 같은데, 묻는 사람이 종종 있다. 일일이 답해주는 건 쉽지 않다. 치마 입는 이유가 뚜렷하게 한 가지가 아니라 반복해서 같은 말을 할 수 없다. 같은 대답을 해줄 수 있다고 해도 반복은 짜증을 부르는 일이다. 무엇보다 질문의 뉘앙스가 모두 다르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의문에 맞춰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옷 입는 것 갖고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니 이것도 우스운 노릇이다.

“바지보다 예뻐서”

대답을 아무리 좋은 걸 찾아도 이 이상의 대답을 할 게 없다. 나는 치마가 바지보다 예뻐서 입고 싶은 것이다. 다른 이야기에서 저항이라는 말도 했지만, 저항한다고 굳이 치마 입을 이유는 없다. 그 저항은 저항하기 위한 저항이 아니라 자존감을 위한 저항이다.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게 아니라 나의 마음을 존중하기 위한 저항이다. 내 자존감을 위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으면서 그것을 문제 삼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다. 치마 자체가 저항이 아니다.

치마가 예뻐서 입는다고 해도 묻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거기서만 끝나면 나도 그냥 치마 입는 것에서 끝날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치마를 왜 입느냐는 말이 또 나온다. 그 물음은 내 욕망을 인정하지도 않고, 내 욕망에 따른 행동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힘을 가진 게 없고, 누군가의 삶을 방해하지도 않는데, 스파이더맨처럼 책임이 생겨버렸다. 내 욕망과 욕망에 따른 행동밖에 없었는데, 설명하고 싸워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굳이 왜 치마를 입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바지보다 예뻐서 입는다고 해도 물어보면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소리를 하고 싶다. 나는 치마를 여성복으로 생각하고 입는 것이 아니다. 입고 싶은 예쁜 옷이라고 생각하고 입는 것이다. 바지 입으면 왜 바지 입었느냐고 묻지 않듯 물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중에야 떠올리기는 하지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왜 옷 그렇게 입어요?”

“게이였어?”

대놓고 묻기도 하지만, “치마 왜 입어?”라는 말을 통해 그런 뉘앙스로 묻는 사람도 있다. 트랜스젠더나 크로스드레서와 착각한 것 같다. 게이는 남성 동성애자일 뿐인데, 게이가 치마를 입을 이유가 있을까? 트랜스젠더라고 다 치마 입는 것도 아니다. 여자라고 다 치마 입던가? 그리고 나는 다른 젠더의 옷이라고 생각하고 입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성의 역할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예쁜 옷을 입을 뿐이다.

“여자가 되려고?”

이런 말 때문에 찾아낸 말이 젠더 비순응, 젠더 블라인드이다. 안 그래도 치마라는 옷을 처음 살 때 한참을 마음고생 했고, 입고 다니기까지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마음고생 했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난 성 역할이나 성에 따른 옷의 구분 자체에 항상 의문을 품고 있다. 당연하다는 말에 한 번도 그냥 수긍해 본 적 없는 내게 이런 말은 금지와 별다를 바 없는 말이라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젠더 비순응 혹은 젠더 블라인드 운동.

젠더 블라인드 운동은 젠더 구분을 피하자는 내용이다. 젠더 구분을 피해서 성 평등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사회적으로 성 역할을 구분한다는 것은 차별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여성의 역할과 남성의 역할이 따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신체 기능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일이 있겠지만, 그것이 작용하지 않는 데까지 역할을 나누는 것은 차별이다. 그래서 “여자가 되려고?” 라는 말이 싫다. 단지 예쁜 옷을 입을 뿐이다.

“대단하다”

치마 때문에 여기저기서 건드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아버지하고도 싸우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치마 입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고 인정해주신다. 그것을 보고 함께 응원의 뜻으로 다단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물론 감사한 일이다. 그게 세상 주류의 관점에서 대단하시긴 하다. 하지만 옷을 어떻게 입느냐는 것은 내 권리이다. 그래서 대단하다는 말이 정말 어색하다. 당연한 권리를 인정해 주는 모습을 대단하다고 할 필요가 없다. 사회가 아무리 권리를 인정 않는 사회라고 해도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에 감사하거나 대단하다고 하는 것은 내 권리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누가 준 것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 내가 바라는 것

“예쁘게 입었다.” “어떡해, 귀여워.”

이런 말 말고는 별로 원하지 않는다. 내 옷맵시 갖고 칭찬하는 것은 좋다. 다른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내가 들을 의무도 없고, 스트레스만 받는다. 안 어울린다고 하는 것도 괜찮다. 어울리게 다시 코디하면 되니까. 그냥 내 모습일 뿐이다.


만약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옷 왜 입어?”

“왜 긴 바지 입어?”

“왜 상의 입어?”

“왜 태어났어?”

뉘앙스가 달라질 때마다 감당할 수 있을까?


자꾸 그렇게 치마 왜 입느냐고 질문하면 “왜 살아요?”라는 소리 듣는 기분이다. 질문 감당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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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

환절기라고 부를 만할 그때쯤부터 옷을 자주 샀다. 추워지는데, 입을 옷도 바꾸어보고 싶어서 한두 번 보다가 빠져들었다. 한동안은 자주 보면서 이미 사둔 치마랑 맞춰 입을 상의도 찾고, 다른 모양의 치마도 찾아보았다. 남자 혼자 가서 매장에 가서 여성복이라 불리는 것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친구 매상 올려줄 겸 친구 가게에 갔다가 “여기 너 입을 옷 없어. 너 여자친구 데려와서 여자친구 옷이나 사줘.” 소리까지 듣는 바람에 더 위축됐었다.

그래서 더 한동안 온라인 쇼핑몰만 봤었다. 치마를 사려고 하니 보는 분류는 당연히 여성복의 치마나 니트류다. 바지는 많이 갖고 있으니, 굳이 더 살 필요는 없고, 나랑 어울릴 만한 옷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았다. 매일 같이 찾아보던 중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제목을 봤다. “남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 갑자기 예전 일이 생각났다.



- 여성이 꾸미는 이유

몇 년 전 교원임용시험 실기 시험 준비 때문에 민요를 배우려고 개인 선생님을 찾았었다. 판소리 전공하는 친구 동생이 있으니 혹시나 알아봐 줄 수 있을까 싶어 연락하니, 자기는 못한다고 자기 후배를 소개해 준다고 했다. 같은 판소리 전공인데, 민요 가르친 경험이 있어서 잘 가르칠 거라고 했다. 그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 속으로 “완전 예쁘다”라는 소리가 나왔다. 첫인상이 워낙 그렇게 강렬하게 예뻤다. 지금도 예쁘다. 단가 “광대가”에 보면 판소리를 부르는 광대의 조건 중 첫 번째가 외모[각주:1]인데, 딱 그 조건에 맞는 판소리 전공자라니!

내 생존을 위한 배움이다 보니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외모는 잠깐 노래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장단에 노래만 해도 미치겠는데 다른 것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외모가 엄청나게 신경 쓰였다. 이분이 한껏 꾸미고 오신 것이었다. 안 그래도 화려하게 예쁜 분이 더 예쁘게 꾸미고 오셨다. 겨울인데도 짧은 원피스에 정말 화려하게 꾸미셔서 “어디 가세요? 혹시 남자친구 만나러?[각주:2]”라고 했더니, 여자친구들 만난다고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입어요?”라고 물었더니, 나 보고 잘 모른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래 여자들끼리 만날 때 더 열심히 꾸미고 만난다고 했다.

그 기억에 남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각주:3]이라는 것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 중에 나온 그 데이트룩이라는 것을 살펴보니 거의 치마 종류 혹은 어떤 사람들이 여성스럽다고 표현하는 그런 종류의 옷이었다. 남친이 보기에 좋은 걸까? 반대로 여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은 잘 안 나오던데, 불편하더라도 데이트할 때 꾸미는 것은 여성들만의 몫인 걸까? 아니 굳이 꾸며야 하는 걸까?

어떤 것은 태그로 이렇게 입으면 남친이 생긴다는 말까지 있었다. 내가 입고 싶은 모양의 옷인데, 내가 사면 안 되는 것일까? 만약 내가 사면 “여자친구한테 선물하려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할까? 그러면 나는 내가 보기 좋기 위해 여자친구를 인형처럼 꾸미는 인간이 되는 걸까? 남자인 내가 그걸 입는다고 하면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예쁘게 꾸미는 게이에 대한 흔한 편견(+오해)을 재생하게 되는 것일까?


- 치마는 예쁘고 편안한 옷

치마는 예쁘고 편한 옷이다. 바지보다 모양이나 색상, 소재가 다양하게 나온다. 좀 더 꾸미기 좋고, 편안하게 입기 좋은 옷이 더 많이 나온다. 바지처럼 입을 때 양발을 따로 끼워 넣을 필요 없이 쉽게 통째로 둘러 입을 수 있다. 상의랑 합쳐진 상태로 나와도 화장실 갈 때 불편함이 바지에 비해 적다. 점프슈트 같은 경우 통째로 벗어야 화장실 이용이 가능한데, 원피스 같은 경우 치마만 올리면 된다.

랩스커트 같은 경우 발을 끼워서 입는 게 아니라 둘러서 입을 수 있어 편하다. 원피스는 통째로 한 벌만 입으면 끝이다. 더운 여름 바람이 통해 시원하게 입을 수도 있다. 겨울에는 스타킹이나 레깅스에 롱스커트를 입어 함기량을 늘려 좀 더 따뜻한 하체를 유지할 수도 있다. 치마는 이렇게 예쁘고, 여러가지  장점이 많은 좋은 옷이다. 이런 장점만 생각하면 남친이 좋아하는 데이트룩이 치마뿐이라도 예쁘고 편안한 옷이니 문제 될 것이 없을 것 같다.



- 치마는 예쁘고 불편한 옷

그런데 치마는 굉장히 불편한 옷이다. 수많은 개인적인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편한 옷이다. 물론 여성이 바지 입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사회가 바뀌었다. 누구나 바지를 입고, 누구나 바지를 쉽게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치마는 여전히 여성에게만 강요된 옷이다. 그래서 치마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편한 옷이다.

20세기 초, 중반까지 치마는 여성 억압이며 바지는 여성 해방의 상징이었다. 여성에게 바지를 금지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패션의 고장이라는 프랑스 파리에서도 조례를 통해 여성에게 바지를 금지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19세기 초에서 20세기 초에 여성이 바지를 입으려면 특별한 허가가 필요했다. 중간중간 개정되고 사문화되긴 했지만, 불과 몇 년 전인 2013년에야 폐지되었다. 그 정도로 치마는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강요된 의복이다.

그런 종류의 성문화된 억압이 아니더라도 다른 형태로 강요된 경우는 여전하다. 특정한 단체에 속해 있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여성에게 치마를 입는 것이 당연한 예의처럼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길이도 자신이 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에 맞게 적당한 수준이어야 한다. 제복의 경우에도 여성의 예복은 치마, 교복의 경우도 여학생은 치마(몇 년 전부터 바지 교복이 생기고, 바지를 입을 수 있게 한 곳이 많다.)가 기본적인 교복이다. 면접을 볼 때도 여성의 경우 보통은 치마 정장을 선택할 정도로 여성에게 치마는 여전히 강요된 복장이다.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입을 경우에도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다. 나풀거릴 경우 바람에 치맛자락이 날려서 하고 싶지 않은 노출을 할 수도 있다. 치마를 입고 넘어지게 될 경우 각도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노출을 할 수도 있다. 치마를 입고 다리를 모아 앉지 않으면 조신하지 않다고 지적당하기도 한다. 성범죄자가 카메라를 이용해 뒤나 아래에서 몰래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치마가 짧거나 다른 쪽에 피부가 많이 보일 경우 노출이라는 말로 성범죄 핑계[각주:4]를 대는 데 쓰기도 한다.

그런 사회적 억압의 기반에 성차별이 있는지, 여성 혐오가 있는지, 전반적인 소수자 혐오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 누구나 바지를 입을 수 있고, 바지를 금지하지 않기 때문에 치마는 억압의 상징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도 예로 든 것처럼 여전히 치마를 향한 시선이나, 치마 입기를 강요하는 행위나 분위기, 그리고 치마 입은 자에 대한 범죄, 혐오를 볼 때 치마는 아직 사회적 억압 도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닐까?



- 치마가 사회적 억압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이유

치마가 사회적 억압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치마 입는 남성에 대한 시선이다. 수치스럽게 여기는 시선, 변태로 보는 시선,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대해 다르게 보는 시선, 유희로 보는 시선이다.

수치스럽게 여기는 시선은 아직 개인적으로 겪은 것이 대부분이다. 아버지가 치마 입는 것에 대해 창피하다거나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고 하며 못 입게 하고 있다. 그래도 어머니가 내 편 들어주시기에 아버지와 직접적인 큰 충돌은 없다. 또 얼마 전 내가 치마 입은 것을 본 동생의 어이 없어 하는 소리도 있었다. 옷 갈아입고 와서 밥 먹는데, 『응답하라 1988』 17화에서 김원준이 티비로 나온 장면에서 남자가 치마 입는다고 뭐라고 하는 것을 보고 나한테 똑같이 뭐라고 했다.

변태로 보는 시선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친구네 가게에서 옷 사려고 했는데 그것을 꺼린 것까지 포함하여 남자가 치마 입는 것 자체를 꺼리는 일도 있었다. 또 다른 데서는 치마를 입으면 성적 쾌락을 위한 것인 양 그렇게 입으면 누가 너를 ‘따먹을 것’이라던 폭력적 말까지 들었었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이 치마일 뿐인데, 그것이 해선 안 될 금기를 어긴 것일까?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흔들리느냐는 소리도 들었다. 흔들리든 말든 단지 옷을 입었을 뿐이다. 치마가 여성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인 것처럼 치마를 입은 것 자체로 내가 정할 성별 정체성을 마음대로 흔들려고 한다. 그게 아니면 게이에 대한 흔한 오해와 편견을 덧씌워 성적 지향을 마음대로 판단하여 내뱉는다.

유희로 보는 시선도 있다. 간혹 어떤 행사에서 놀이 삼아 유희로 여장이라는 말로 남성에게 치마를 입히고, “여성스럽게” 행동하도록 한다. 그런 놀이 자체가 치마가 사회적인 억압이라는 이야기 아닐까? 반대의 경우는 드물뿐더러 재미 삼아 하는 일도 (내가 알기에는) 없다. 남장이라는 것도 극에서나 드라마적 장치로 차별에 맞서거나 반전을 위한 것으로만 소비된다.

그런 모든 시선이 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아닐까? 여성스러움이라는 말을 남성에게 붙이면 수치가 된다는 것은 젠더를 고착화할 뿐 아니라 젠더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치마는 당연히 여성만이 입어야 하며, 남자가 입는 치마는 유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치마에 대한 폭력적 시선이 있다는 것 아닌가?

더불어 검색으로 나오던 여러 가지 일(링크1-남자가 치마를 입으면 안되는 이유, 링크2-"저게 남자여 여자여 치마 한 번 올려봐")을 봐도 치마는 여전히 억압적인 장치로 작용하는 것 같다.

저런 일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 편안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많이 인정한다. 더불어 치마 입는 행위 자체를 별것 아닌 취급하기도 한다. 내가 하는 성 평등 운동에 대해서도 공감한다. 또한, 치마를 골라주는 사람도 있고, 내가 입은 옷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저들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것인가?



- 남성의 외모 욕망

많은 남성이 어린 시절 호기심으로 어머니의 화장품과 치마, 누나나 여동생의 치마를 입어보았을 것이다. 대부분은 여성이 되고 싶다거나 여성처럼 살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입어 보지 않은, 혹은 입어 보지 못한 옷에 대한 호기심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쩌면 강요받은 남성적임에 때문에 느끼는 다른 모습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다. 실제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다. 어쩌면 성적 흥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부분은 금기를 깨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느낀 두근거림이었을 것이다.

외모를 꾸미는 것은 누구나 가진 미에 대한 욕망일 것이다. 그것을 남성이라는 이유로 제한당했을 것이다. 머리 모양이나 수염, 여드름 제거 정도는 개개인의 욕망에 따라 꾸밀 수 있는 사회적 시선이나 물건이 있었다. 하지만 화장을 통해 외모를 꾸민다거나 잡티를 가린다는 것, 여성스러움의 상징이라 알려진 치마나 레이스를 사용하는 것은 남성적이지 않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여린 마음을 갖고 있거나 목소리가 높다거나 예쁘장한 외모를 가진 것은 여자 같다며 놀림거리가 되었다.

요즘은 꾸미는 남성에 대해 인식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그루밍이라는 말 덕인지 외모를 꾸미는 것이나 화장에 대해서는 인식이 많이 나아진 편이다. 그래도 그루밍에 사용되는 화장품 광고는 여전히 남성성을 강조하며, 화장품의 색이나 향 역시 여전히 남성성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남성성을 강조하는 것은 개인적인 미의 추구와는 거리가 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욕망으로 포장된 자본의 안내를 소비하는 행위일 뿐이다. 여전히 여성성은 남성에게 소비되거나 적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소리를 재생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 남성들도 치마를 입자

남성들도 치마를 입자. 치마를 입고 자연스럽게 다니자. 치마 밑으로 나온 다리에 털이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인가? 털이 없는 매끈한 다리인데, 얼굴에 수염이 거뭇거뭇하면 어떤가? 자신을 자신답게 꾸밀 수 있으려면 시도를 해봐야 할 것 아닌가? 외모를 빼고 보아도 치마는 장점이 많다. 남성의 정자 건강에 좋다. 더울 때 반바지보다 시원하다. 추울 때 덧입어서 더 따뜻하게 다닐 수도 있다. 그리고 여성복이라고 나온 것들이 더 싸고 예쁜 것이 많다.

건강, 외모뿐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입으면 사회적으로 강요된 남성성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해방될 수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장남의 의무, 남성이라면 해야 할 것, 남성끼리 있을 때 좀 더 남성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마음의 압박까지 모두 해방될 수 있다. 성폭력과 관련한 이슈에 대해서 직접 겪는 것을 통해 상대를 좀 더 이해하게 되면서 가해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남성들도 함께 치마를 입자. 치마 별것 아니다.

  1. 신재효가 광대가를 통해 제시한 고전적인 판소리 소리꾼의 조건으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 [본문으로]
  2. 요즘에야 저런 물음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했었다. 사람을 주체가 아닌 객체화 시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트클럽 말고는 춤추는 클럽이 없는 지역이다. [본문으로]
  3. 여성들끼리의 말이라고 넘어가기에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갖는 젠더 폭력이 생각났다. [본문으로]
  4. 그런 범죄자가 어째서 성욕보다 강한 식욕과 수면욕을 핑계로 절도나 무전취식, 무전숙박을 먼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배설욕은 어떻게 참고 살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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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리스 2017.02.19 11:55 신고

    안녕하세요 용기가 대단 하시네요 저도 치마를 즐겨 입고 있습니다
    정보를 공유 했으면 합니다 저의 카페에 놀러 오셔요

치마를 몇 개 돌려 가며 입고 있다. 몇 번 돌려 입다 보니 치마가 너무 적은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새 치마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는 싫고, 직접 보면서 사고 싶었다. 그래서 옷 가게가 많이 있는 동네로 갔다. 가서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데, 밖에서 구경하다가 막상 들어가려니 망설여졌다. 옷 살 때 버릇 중 하나가 밖에서 대충 보고 안에 들어가서 사는 것인데, 가게들이 너무 작아서 들어가기 꺼려졌다. 안 사고 나오면 좀 안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점원이 좀 나이 있어 보여 불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 어떤 치마를 살까?

그렇게 며칠 망설이다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날, 맥주가 마시고 싶어 단골 가게로 가다가 옷 가게에 들어갈 용기가 생겼다. 그때부터 어떤 치마를 살까 고민을 해봤다. 가진 것과 다른 것을 입고 싶어 어떤 치마가 있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처음에 샀던 무릎길이의 까만색 랩스커트와 한쪽은 무릎 아래, 한쪽은 무릎 위로 올라오는 까만색 비대칭 랩스커트가 있다. 그다음에 샀던 것이 발목까지 오는 와인색 롱스커트. 그다음이 바지 위에 입는 펑퍼짐한 빨간색 니트 원피스. 그리고 여자친구가 골라준 무릎 조금 위로 올라오는 녹색 체크무늬의 A라인(플레어) 스커트까지. 이렇게 다섯 종류였다. 니트 원피스는 치마로 보이지도 않긴 하지만, 어쨌든 치마는 치마다.

짧은 치마, H라인 치마가 없었다. 무릎 위로 많이 올라오는 짧은 치마 그것도 H라인으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 가게에 혼자 가서 직접 치마를 사는 것은 처음이라 두근거렸다. 입고 있는 치마도 직접 사긴 했지만, 여자친구랑 같이 가면서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혼자 가려니 정말 많이 두근거렸다.

어쩔까 하다가 전에 혼자 니트 사러 갔던 데에 갔다. 같은 점원이 있으면 얼굴이 익어서 좀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그 점원이 있었다. 치마를 보러 왔다고 하자 안내를 해주었다.

“어떤 치마 보시겠어요?”

“짧은 치마 보려고요.”

그 순간 체크무늬 짧은 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따뜻해 보이는 색에 H라인, 무엇보다 예뻤다! 두 가지 색이 있었는데,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무엇으로 살까 망설이면서 마음에 드는 색을 먼저 대보았다.

“언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저 남잔데요.”

“미안해요. 버릇이 돼서.”

“아니에요.”

옷을 확인해보고 싶어 거울을 찾아 두리번거렸더니 거울 있는 곳을 안내해줬다.

“거울 여기 있어요. 언니… 아… 죄송합니다.”

확실히 버릇은 쉽게 고치기 힘들다. 그렇다고 나보고 아저씨나 오빠라 부르기도 그럴 테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고객이라는 다른 호칭도 당장은 쉽게 안 떠오를 테고.

“입어보실래요?”

“네.”

“사이즈는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S, M? M이 맞겠죠?”

“네 M으로 주세요.”

“저쪽에 탈의실 있어요.”

“네.”

탈의실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감촉도 그렇고 쏙 마음에 들었다. 다 입고 나왔더니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지퍼가 옆이 아니라 주머니 있는 쪽이 앞에 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돌렸더니 지퍼가 허리 뒤 한가운데로 왔다. 그리고 거울로 가서 봤다. 예뻤다. 어울렸다.

“언니 어울리시네요. 아, 죄송… 배 좀 조이실 거에요. 나중에 늘어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안 조이는데요. 편안한데요.”

“아, 그러면 뭐…”

“저 코트도 볼래요.”

“네, 저기로 안내해드릴게요.”

코트까지 고르고, 코트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옷 그대로 입고 가겠다고 입은 채로 계산하고 입고 왔던 옷을 챙기고 나왔다.



- 짧은 치마는 예쁘지만 불편

같은 치마를 두 번 정도 입고 나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짧은 치마가 예쁘긴 예뻤다. 내 다리 모양이 어떻든 더 예뻐 보이고 바지 입을 때보다도 다리가 더 길어 보였다. H라인이라 걸을 때 약간 걸리는 느낌이 들지만, 팔자걸음일 때 문제라 걸음걸이를 바꾸니 불편함이 사라졌다. H라인이라서 그런 것인지, 짧은 치마라서 그런 것인지 날씬해 보였다. 난 마른 편인데, 마른 게 아니라 날씬해 보였다.

그런데 굉장히 조심해야 했다. 치마가 허벅지 중간쯤인데, 선 채로 허리만 굽히면 올라와서 속이 보일 정도였다. 또 의자에 앉으면 치마가 먼저 닿는 게 아니라 치마가 약간 올라가 엉덩이가 의자에 닿았다. 조금 신경 써서 앉으면 치마가 약간 닿긴 하지만, 그래도 엉덩이 밑부분이 의자에 닿았다. 플레어스커트를 입을 때 퍼져서 닿은 건 겪었지만, 이 정도로 엉덩이가 많이 드러날 줄은 몰랐다.

다른 문제도 있었다. 랩스커트처럼 붙어있는 천이 있어서 가려지다 보니 잘 몰랐는데, 혹시나 해서 올려 보니 치마가 올라와서 치마 속이 보일 것 같았다.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치마를 좀 내렸지만, 무릎을 계속 모으지 않으면 치마가 계속 조금씩 위로 올라왔다. 만약 이게 천이 더 없었다면?

갑자기 여성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무릎 위로 코트나 무릎 담요를 덮는 것이 생각났다. 그냥 덮는 게 아니었다. 속이 노출될 우려 때문에 덮는 것이었다. 짧은 A라인이 아니라 H라인이라서 계단을 올라갈 때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허리만 꼿꼿하게 펴면 보일 염려가 없을 것 같았다(실험해보기는 민망하다). 하지만 앉으면 속이 그대로 노출되기 쉬웠다. 계속 누를 것 아니면 덮는 것이 원하지 않는 노출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쁘게 입는다고 내가 노출을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에서 엉덩이 뒤를 가방으로 가리는 것에 대해 다른 생각이 들었다. 몰카나 엿보는 사람을 대비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예비 가해자로 보고 뒤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부분이 노출되면 부끄럽기 때문이 먼저였다.

치마를 입지 않는 남성들은 여성들이 계단 등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뒤를 가린다고 불쾌할 필요 없는 것이다. 예쁜 치마를 입고 싶었고, 입으면 본인도 예뻐 보여서 입는데, 원하지 않는 부분이 노출되면 예쁘지 않다. 노출을 원하지 않는 부분을 가리는 것은 남성, 여성 가리지 않고 누구나 하는 일이다.


- 그래도 새로 치마를 산다면 짧은 치마로

이제 짧은 치마가 예쁜 것을 알게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짧은 치마를 더 사야겠다. 새 치마는 다른 모양으로 해도 나랑 어울릴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끝에 프릴이 있어도 좋을 것 같고 아니면 A라인으로 나온 것도 좋을 것 같다. 거기서 불편함을 발견한다면 여성의 삶에 대해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될 테니 그것대로 좋은 것일 거고, 아니면 아닌 대로 예쁘고 내 마음에 들어서 좋은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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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리스 2017.02.19 12:04 신고

    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저도 치마를 입어 봐서 이해를 합니다
    그레서 여성분들을 이해 하게 되고 배려를 해 주게 됩니다
    여자와 남자는 다른 개체라는 것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좋은 정보 감서합니다
    놀러 오세요
    http://cafe.naver.com/nonoms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삼부작은 슈퍼 히어로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은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그중 제일을 둘째 편인 다크나이트라고 한다. 마지막 편인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다크나이트에 비하면 실망스럽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실망스러운 수준의 작품도 아니고 형식적으로 훌륭한 마무리였다. 고전시대의 소나타 형식이 엿보일 정도로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잘 맞아 들어간 작품이다.

소나타 형식은 제시부, 전개부, 재현부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소나타 형식은 평균율을 바탕으로 한 까닭에 조성의 대비를 강하게 나타낼 수 있다. 또한, 화성 음악으로 만들어져 리듬과 가락이 명료한 까닭에 주제를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데, 이는 주제의 가락을 두 개로 만들어 대비를 더 강렬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장점이 되었다.

소나타 형식의 첫째 부분인 제시부에서는 조성과 리듬, 성격이 모두 대비되는 두 개의 주제 가락을 제시한다. 제1주제는 주 조성으로 제시되며, 제2주제는 대비되는 관계 조성으로 제시된다. 둘째 부분인 전개부에서는 두 개의 주제가 쪼개지고, 대위적인 형태로 등장하며 전조가 잦아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재현부에서는 제시부의 주제가 같은 조로 함께 등장하며 웅장하게 끝을 맺는다.

다크나이트 삼부작은 소나타 형식에 거의 맞아 들어간다. 각 편을 부분에 대입하면 배트맨 비긴즈를 제시부, 다크나이트를 전개부,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재현부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격(character)의 대비를 나타내는 주제로 해석할 수 있는 인물(character)이 있기 때문이다. 고담이라는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선한 인물인 배트맨과 악당의 대결이 항상 나타난다.


- 고담이라는 배경을 조성으로

배트맨은 고담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히어로다. 고담은 범죄의 공포에 시달리는 도시이다. 배트맨은 고담에서 범죄자들을 공포로 제압한다. 이렇게 배경을 주 조성으로 보고, 이 조성과 가장 어울리는 공포의 상징 배트맨을 제1주제로 볼 수 있다. 배트맨은 범죄자를 공포로 제압하여 경찰에게 처분을 맡기며 본인은 심판하지 않는다. 오로지 악에 대해 공포로만 작용한다.

반대쪽에는 라스 알 굴과 리그 오브 어새신이 있다. 이들은 고담이라는 도시 자체를 악으로 보고 고담을 없애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담을 지키면서 심판하지 않는 배트맨과 대결하게 된다. 이렇게 제2주제로 보기 충분하다.


-제시부(배트맨 비긴즈)

배트맨 비긴즈에서는 공포의 상징인 어둠의 기사 배트맨이 탄생한다. 배트맨은 공포의 도시에서 공포를 극복하며 탄생했다. 리그 오브 어새신에게 수련을 받지만, 리그 오브 어새신에서 요구하는 살인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제시부에서 두 주제가 관계조(리그 오브 어새신의 일원)인데다 대비(살인 대 불살)를 주며 형식을 모두 충족한다. 더불어 배트맨과 반대편의 성격을 강하게 각인시킨다.


-전개부(다크나이트)

다크나이트에는 배트맨의 조력자로 정의의 검사 하비 덴트, 주 악당으로 조커가 등장한다. 하비 덴트는 배트맨의 조력자인데도 불구하고 직업이 검사이기 때문에 제1주제인 악에 대해 작용하는 공포를 포함하지만, 법을 통해 심판의 내용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제2주제인 심판 역시 나타난다. 이런 양면적인 성질이 있지만, 오로지 긍정적으로 가기 위해 양면이 똑같은 동전으로 무시하고 산다. 그래서 하비덴트는 전조 과정에 있는 제1주제와 제2주제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조커는 순수한 악으로 배트맨의 반대 성격을 가진다. 누구도 심판하지 않지만, 악으로써 모두에게 공포로 작용하고 살인을 쉽게 저지른다. 이는 배트맨의 완전한 반대면으로 제1주제의 전위(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가락)이자 제2주제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조커는 심지어 하비 덴트의 정신을 파괴하여 투 페이스라는 악당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는 하비 덴트의 양면을 더 드러내며 공포라는 조성으로 전조를 유도한다. 투페이스는 쉽게 살인을 저지르는 공포라는 제1주제가 변형된 상태에서 제1주제 쪽으로 전조된 제2주제가 합쳐지며 새로운 사건을 저지른다. 그렇게 조커와 함께 사건 전체를 동시에 움직이며 주제의 스트레토(주제가 짧게 끊어져 나오는 형태)처럼 나타난다.

다크나이트는 이렇게 제1주제와 제2주제가 변화무쌍하게 나타나며 분위기를 더 공포로 물들이며 각자의 기교를 뽐낸다. 전개부의 형식적 요건을 이렇게 충족시킨다.


-재현부(다크나이트 라이즈)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 비긴즈의 재현처럼 나타난다. 다크나이트는 악에 대한 공포와 도시의 구원자로 다시 등장한다. 더불어 도시를 심판하려는 자들이 다시 나타난다. 심지어 그들은 라스 알 굴의 리그 오브 어새신이다. 라스 알 굴은 없지만, 구원자처럼 나타난 베인과 탈리아 알 굴이 함께 있다.

다크나이트는 제1주제인 다크나이트는 다시 관계조인 리그 오브 어새신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도시를 구하기 위해 만든 원자로를 리그 오브 어새신에게 빼앗긴다. 그리고 척추가 부러지며 다시 리그 오브 어새신의 흔적과 합류하게 된다. 수장의 아이(the child)가 있던 감옥에 갇히는데, 여기서 수장의 아이처럼 공포를 극복하고, 공포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다.

선한 사람처럼 나타났던 탈리아 알 굴은 주제를 구원할 것처럼 하다가 도시를 심판하려 한다. 이는 제1주제와 같은 조성으로 전조된 제2주제로 볼 수 있다. 결국 제1주제가 승리하며 끝을 맺고 주역은 사라지며 구원을 강렬하게 남긴다. 제1주제가 조성 싸움에서 승리했는데, 사라질 수는 없다. 그래서 그 흔적으로 로빈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 블레이크를 제2대 배트맨으로 만든다. 이렇게 코다를 제2대 배트맨으로 만들며 형식적 요소를 충족한다.


영화나 극을 전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처럼 음악 전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다크나이트 삼부작을 통해 이렇게 소나타 형식을 볼 수 있었다. 다른 형식으로 분석할 수 있다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다크나이트 삼부작 분석해놓고 보니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사단조가 생각났다. 소나타 형식의 악곡 중 질풍노조 사조로 만든 곡이면 대체로 어울릴 것 같다.


학교는 여성 관리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 학기말 인사철마다 “제발 ‘여성 관리자’가 안 왔으면 좋겠다.”, “내신 냈는데, 1순위가 아니라 차순위 학교로 가면 관리자 때문에 힘들 텐데.” 같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발령이 나면 학교 관리자에 대한 질문 전화를 하긴 하지만, 여성 관리자일 경우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 눈치가 보인다. 어느 지역에는 ‘마녀’가 있다는 이야기도 가끔 있다. 학교는 성차별이 심한 곳인 걸까? 아니면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이 심한 곳일까? 아니면 실제 여성의 전반적 성향이 문제인 것일까?

잘 맞는 여성 관리자와 일을 하며 업무 능력과 자존감이 향상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여성 관리자에 대한 편견을 들었을 때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다른 학교에서 개인적으로 교권침해를 넘어 인격적 모욕이라 생각할 정도로 당한 적이 있다. 그분은 다른 관리자들보다 좀 더 특별한 경우라고 했다. 스트레스를 주는 간격도 좁았기에 너무 지쳤었다. 그렇게 다른 형태의 관리자를 만났기 때문에 개인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학교는 여성 관리자가 점점 많아지게 될 것이다. 학교는 여성의 비율이 높은 직장이기 때문이다. 2015년 현재 59.2%(2015 교육통계 기준), 초중등교육기관만을 대상으로 하면 62.1%로 다섯 중 셋이 여성이다. 여성의 비율이 높은 학교에서도 여성 관리자의 비율은 아직 높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교육통계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초등학교는 2015년 기준 여성의 비율이 76.9%로 가장 높은 만큼 관리자 중 여성의 성비도 가장 높다. 교감의 54.3%, 교장의 28.7%가 여성이다. 교감으로 근무 중 (전직하지 않을 경우) 길면 5년 후에 교장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 비슷한 비율로 승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2020년에는 초등학교의 여성 교장 비율은 55% 가까이 될 것이다. 교감 승진에 필요한 경력을 20~25년으로 보면, 몇 년 후에는 재직 교사의 비율과 엇비슷하게 맞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중학교의 경우 2015년 기준 68.6%로 10명 중 7명 가까이 여성이다. 관리자는 교감의 30.1%, 교장의 23.2%이다. 고등학교의 경우 여성의 비율이 50.1%로 반 이상이 여성이다. 교감은 10.7%, 교장은 9.1%가 여성으로 중학교보다 훨씬 적은 편이다(1990년대에는 특이하게도 여성 교감보다 여성 교장의 비율이 높았던 시기가 있다). 추세를 보았을 때 향후 10년 정도면 초등학교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20년 전 여성 재직 비율을 따라가거나 초과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재직자 중 여성의 비율이 높고, 여성 관리자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곳이 학교이다. 그런 곳에서 동성에 대한 편견이 많은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크게 심할 것이라 보기도 힘들다. 그런 학교에서 그런 학교에서 여성 관리자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나오고 꺼리게 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중등학교의 경우 승진에 유리한 전공이 있었다고 들었다. 즉, 대회 등으로 가산점을 얻을 수 있는 전공이 있어 유독 승진이 잘 됐다. 성별보다 전공이 더 장해물이었다. 그런데 승진의 유리한 전공 교사의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그래서 성 평등 문제 제기도, 제도 개선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산점이 적을 수 밖에 없는 전공의 교사에게는 경쟁이 더 버거웠을 것이다.

교육사를 공부할 때 지나친 경쟁이 가져온 폐단에 대해서 본 적 있다. 굳이 교육사가 아니더라도 지나친 경쟁은 발전이라는 목적 대신 이긴다는 목표 달성을 위한 경쟁이라는 수단에 치우쳐 본질을 왜곡한다. 특히나 겉보기에는 특정 전공이 유리한 편에 가까웠지만, 실질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한 승진 구조였다. 그래서 경쟁이 더 치열했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점수 경쟁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한 박탈감과 함께 완벽과 실적에 대한 집착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심리적 보상으로 권위가 필요하게 된 것 아닐까?

앞으로 여성 관리자의 비율이 재직 비율과 비슷하게 되면 여성 관리자를 만났을 때 특히 더 힘들다는 이야기가 사라지게 될까?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는 관리자로 누구를 만나든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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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OTL-숨은 인권 찾기] ‘맥’으로도 보고싶다

한겨레21 독자편집위원회 활동하면서 글을 한 번 기고하고 싶었는데, 딱 한 번 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맥용 한컴 뷰어와 한컴오피스가 출시되었고, 맥용 MS오피스 역시 한국어로 사용할 수 있게끔 현지화되어 있습니다. 많이 좋아졌지만, 공공의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유료 프로그램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썩 좋은 일이 아니지요. 보안이라는 명목 아래 여전히 웹접근성도 문제가 있습니다. 심지어 공공기관에 웹문서 인코딩조차 제대로 설정 않은 곳이 많아 다운로드 받을 때 파일명을 알아보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2008년 10월 3일에 블로그에도 따로 포스팅했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글을 옮길 생각입니다.

아래는 기고한 글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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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는 동생이 여행을 다녀왔다며 여행기를 첨부해서 메일을 보내왔다. 여행이 어땠는지 궁금해 첨부파일을 다운받으려고 보니 확장자가 ‘hwp’, 한/글 문서다. 나처럼 한/글을 구입하지 않은 맥(매킨토시) 사용자는 안 읽어도 상관 없다는 건가? 윈도 말고는 한/글 뷰어도 없는데… 관공서 말고 개인한테까지 시위할 수도 없고 해서 문서 못 연다고 답장을 보냈다. 덕분에 문서 하나로 생긴 일이 생각나 씁쓸했다.
작년 대선 때, 시험 준비 때문에 집에 갈 수 없어 부재자 투표를 신청하려는데 신고일을 몰랐었다. 홍보도 없어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갔는데 공지도 없고 답답했다. 한 일주일 잊고 지내다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신고 마지막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야 하는데 공지일자에 어이없고, 맥에서 깨지는 페이지에 황당하고, 아무 배려 없는 한/글 문서로 된 공문에 화가 났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12월 13일 부재자투표일에 부재자투표소로 갔다. 홍보 시기, 웹 접근성, 한/글 문서의 폐쇄성 문제를 거론하는 내용을 담은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선관위 소속이 아닌 많은 공무원 분들이 “참고하려 한다”며 관심을 보여 보람있었다. 그런데 정작 지역 선관위는 사과와 시정 약속은 커녕 지역선관위 직원의 무단 채증(?)에 타당하면 연락주겠다며 ‘인적사항’ 요구(취조?). 나가서 시위나 계속 하라는 말은 덤이다. 덕분에 화가 이만큼 났는데 어떤 높아 보이는 사람이 와서 “문서가 안 열리면 되는 곳에 가서 열면 되는 것 아니냐”며 훈계를 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공문을 내가 따로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열어야 하는 것이 말이 되냐”는 당연한 반박에 “전화로 민원을 넣어도 되는 것 아니냐”며 한 마디 덤을 주신다.
이정도 일이 있었으니 선관위도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총선 즈음하여도 홍보 외에는 바뀐 것이 없었다. 기가 차서 중앙선관위에 직접 전화를 했더니 민원 게시판을 활용하라고 한다. 들어가보니 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웹브라우저로는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없었다. 쓸 수 있다해도 몇 개월 전에 올라온 광고 글 투성이로 전혀 관리가 안되는 게시판에 쓰나마나 아닌가? 결국 다시 전화하여 홈페이지 문제에 대한 수정할 것과 한/글 문서로 된 공문을 PDF파일로 변환하여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금방 금방 처리해 주었지만,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전산 담당자는 윈도 외의 다른 운영체제와 그 현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항의를 받은 후에야 조취를 취한 것일까? 하긴 웹표준(또는 웹접근성)을 무시하여 익스플로러와 윈도만 생각하여 독점을 방조하는 것도 무죄 판결하는 나란데…
웹표준을 지키고 웹접근성을 조금만 높이면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하며 편하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액티브엑스로 생긴 보안 문제를 줄일 수 있고, 시각장애인 전용 페이지 또는 음성안내 시스템으로 시각장애인의 웹서핑을 방해하는 일도 줄일 수 있지 않은가? 문서도 열린문서캠페인에서 이야기 하는 표준 문서 포맷(TXT, PDF, ODF)을 쓰면 윈도를 안 쓰더라도 누구나 읽거나 쓸 수 있다. 모든 운영체제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오피스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누구나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우리나라는 왜 윈도만 되게 할까?
그나저나 이친구는 내가 문서 못 연다고 답장 보낸지가 언젠데 왜 아직 답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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