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선후보가 12년 전에 쓴 자전적 에세이에 있는 '돼지흥분제 이야기'가 화제이다. 내용은 강간 모의에 가담했던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게 글 타래의 시작이 되어 비난부터 실제로 돼지 발정제를 먹어본 경험(돼지발정제, 저는 무려 그걸 먹어봤습니다)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먹어본 이야기를 읽다가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3년 전, 새로 근무한 학교 첫 회식 날이었다. 1차는 그럭저럭 즐거웠다. 2차에 갔을 때 굉장히 화가 나는 일이 생겼다. 2차에서 여자 선생님은 딱 한 분만 계셨다. 다른 여자 선생님은 모두 가셨다. 나머지는 다 남자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교장은 다른 선생님들한테는 '김샘', '우리 김샘' 등 이렇게 성에 선생님 붙였는데, 이 여자 선생님한테만 'ㅇㅇ씨', '우리 ㅇㅇ씨' 등으로 불렀다. 그 꼴에 너무 화가 났다. 그 분을 삭이지 못해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하는 척하며 분을 삭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몇몇 젊은 선생님들이 한구석에 모여 있는 걸 봤다.

"화나서 못 들어가겠어요."

"왜요?"

"교장이 자꾸 성희롱하는 게 들려서 짜증 나서 못 있겠어요."

"당사자도 가만히 있는데…"

그 자리에 성희롱당한 당사자가 있었다.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어 힘든데, 당신이 뭘 어떻게 하겠느냐는 탄식이었다. 난 할 말을 잃었다. 말리거나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속상한 척은 제일 많이 하고 있었다. 미안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망할 비정규직이라고 겁내는 내 모습에 짜증도 났다.


한 두 달쯤 지나서 교무부장과 단둘이 술 마실 일이 있었다. 그때 교장이 하는 것 중 성희롱을 지적했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교무부장은 되려 나를 나무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교장샘 하시는 건 성희롱의 경계 정도이지, 성희롱 아냐. 그래서 내가 선 넘어가지 말라고 종종 말씀드린다. 심해서 맞다고 생각하면 니가 고발을 하던가?"

잠시 조용히 있다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옛날에는 둘이 이어주려고 회식 자리에서 술 많이 먹여 놓고 한 방에 재웠다. 그렇게 결혼한 사람 많다. 요즘 같으면 큰일 날 일이지. 교장샘도 옛날 사람 치고는 성희롱 선 넘어갈락 말락 경계까지만 가시는 걸 보면 굉장히 점잖으신 분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상처일 이야기이다. 설마 그런 강간혼이 흔했을까? 하며 속으로만 끔찍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걸 모 대선후보의 사과(같지도 않은 용서 명령질)[각주:1]과 그 댓글들을 보면서 끔찍하게도 90년대 초반까지도 그런 성폭력들이 공공연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고 속이 너무 뒤집어졌다.


세상을 살기 좋게 바꾸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 전에 소수자 혐오에 죽거나 역겨움에 토하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전문. 제나이 50세가 되던 해인 2005년에 어릴적부터 그때까지 제가 잘못했던 일에 대한 반성문으로 나돌아가고 싶다 라는 자서전을 쓴 일이 있습니다.30여개 반성문 중에서 18세때 대학교 1학년 시절 S대생들만 하숙하던 홍릉에서 같이 하숙할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쓰면서 돼지 발정제 이야기를 쓴일이 있습니다.책의 내용과는 다소 다른 점은 있지만 그걸 알고도 말리지 않고 묵과 한것은 크나큰 잘못이기에 그 당시 크게 반성하면서 그 잘못에 대해 반성한 일이 있습니다.45년전의 잘못입니다.이미 12년전에 스스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일이 있습니다.이제와서 공개된 자서전 내용을 다시 재론하는 것을 보니 저에 대해서는 검증할것이 없기는 없나 봅니다.어릴때 저질렀던 잘못이고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이제 그만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본문으로]

제모하는 부분이 굉장히 넓어졌다. 예전에는 겨우 수염이나 면도하는 정도였다. 그것도 자꾸 얼굴에 상처가 생겨 따갑고 쓰려서 안 지저분하면 이삼일에 한 번 정도 했었다. 수염 자라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 그렇게 티 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염 정도만 면도하고 살다가 치마를 입고 싶어서 수염 말고 다른 데도 제모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면도기를 처음으로 댄 것은 다리이다. 얼굴보다 더 먼저 댔다. 고등학교 때 여름에 반바지를 입는데, 덥수룩한 다리털이 괜히 부끄러워 면도기로 깔끔하게 밀었었다. 그다음에 한동안 편안하게 반바지를 입고 다녔다. 그러나 다리털이 자라면서 까슬까슬 너무 따가워 다음부터는 다리털을 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치마를 처음 입을 때 어떻게 할까 하다가 레그 트리머라는 걸로 깎아봤다. 약간씩 걸리는 그 느낌이 별로였다. 깔끔하게 되지도 않아서 뭐지 생각했는데 다리털을 적당히 정리하는 용도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정리하고 난 다음 주변에 떨어진 다리털을 롤 클리너로 열심히 청소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다음부터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다음에 사용한 것은 제모 크림이다. 스패츌러로 다리에 바르고 시간이 지난 다음 스패츌러를 이용해 다시 밀기만 된다기에 사용했다. 기다리는 것은 굉장히 지루했다. 털도 그렇게 깔끔하게 제거되지 않았다. 욕실 배수구에 모인 다리털은 치우기도 번거로웠다. 결국, 티 많이 나는 것은 족집게로 뽑아야만 했다. 다시 길 때 느낌은 다리털을 깎았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아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왁싱테이프를 사용했다. 깔끔했다. 뽑힐 때 좀 아프긴 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고 빠르게 뽑을 수 있어 좋았다. 털이 너무 길면 잘 안 뽑히긴 했지만, 그런 것은 몇 개 없어 족집게로 뽑을 수 있었다. 거기에다 빠진 털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청소하기 불편하지도 않았다.

다리털을 제모한 후부터 방을 청소할 때 짧은 털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 제모가 내 방을 덜 더럽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제모가 좋아졌다. 그래서 더 많은 곳을 제모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제모는 배꼽 밑 털과 성기 주변의 음모였다. 왁싱테이프를 쓰기는 무서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족집게로 뽑았다. 족집게로 뽑았는데, 오래 걸리고 아프기만 했다. 그래도 적당한 범위를 제거했더니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살이 부드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씻었을 때 성기 주변을 닦기만 해도 빠르게 말라서 좋았다.

적당히 제거한 후에는 좀 깔끔하게 제거하고 싶어서 용기를 내 왁싱 테이프를 사용했다. 연약한 살이 뜯어지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며 사용했다. 살은 뜯어지지 않았지만, 털이 뽑히며 핏방울이 맺혔다. 급하게 일회용 알코올 솜을 뜯어 닦아냈다. 좀 아픈 느낌도 들었지만, 얼른 끝내고 싶어 다 했다. 손과 왁싱테이프에는 피가 조금씩 묻어 있었다. 다 끝나고 다시 알코올 솜으로 닦아내고 피가 멎기를 기다렸다. 피는 곧 멎었다. 그다음 날부터 살이 부드러웠고, 사타구니 주변이 습하지 않고 뽀송뽀송한 느낌이 들었다. 속옷을 갈아입을 때도 속옷의 상태가 이전보다 깔끔했고, 방바닥에는 털이 더 보이지 않았다.

곧 문제가 생겼다. 목욕탕에 가고 싶은데 부끄러운 마음에 목욕탕에 갈 수 없었다. 너무 깔끔하게 뽑아낸 탓에 어린이가 된 기분이 들어 부끄러웠다. 그래도 성기 주변에 털이 좀 있어야지 없으니 부끄러웠다. 그래서 한참을 기다려 음모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야 목욕탕에 다닐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났을 때 음모를 다시 좀 정리하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번에는 제모 크림을 사용했다. 제모 크림은 최악이었다. 따갑고 쓰렸다. 설명서를 봤더니 그런 데는 사용하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한 덕에 아프기만 했다. 그래서 얼마 제모도 못 하고 쓰린 부분을 부여잡을 수도 없어서 아픔이 없어질 때까지 한참 고생했다. 그 쓰린 걸 좀 줄일 거라고 한동안 수딩젤을 발랐다. 거의 두 주가 지난 후에야 아픔이 사라졌고, 한동안 주변만 제모했다.

치마를 한동안 못 입을 상황이 되면서 수염을 제외한 부분은 한동안 제모하지 않았다. 수염 정도나 제모했다. 얼굴용 왁싱테이프로 시도했는데, 접착력도 약하고 수염도 짧아서 제모가 그렇게 잘 안 됐다. 수염같이 굵고 뻣뻣한 털이 아니라 솜털같이 가늘고 부드러운 털을 위한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족집게로 수염을 뽑았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턱과 입술 주변에 염증이 생기지 않았다. 간혹 생기긴 했는데, 그런 건 수염이 피부 안쪽으로 자란 경우였다. 괜히 너무 신경 쓰여 바늘로 찌르고 살짝 털을 들어 올려 뺐다. 털은 엄청나게 길었고, 뽑자 곧 염증이 가라앉고 시원했다.

면도기를 아예 안 쓰는 것은 아니다. 다리털을 다시 제모하면서 애매하게 길어 왁싱 테이프 사용하기 힘들 때 면도기로 밀었다. 얼굴의 솜털이 많이 길었을 때도 면도기로 살살 면도했다. 매일 면도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가 크게 상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면도날도 전용 도구로 깔끔하게 닦아도 매일 면도할 때는 항상 상처가 났는데, 가끔 하니 상처가 잘 나지 않았다.

요놈의 제모, 하자니 번거롭고 안 하자니 괜히 찝찝하다. 면도기를 쓰자니 아프고, 안 쓰자니 번거롭다. 그렇다고 넓은 범위를 레이저 제모하러 가기도 부끄럽고 부담된다. 제모를 처음부터 안 했으면 몰라도 한 번 하고 났더니 그 시원한 기분에 자꾸 하게 된다. 이젠 미용이 목적이 아니라, 내 기분을 위한 것이 됐다. 괜히 내가 변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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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오늘의미모 라는 태그로 화장한 후의 모습을 셀카로 찍어 올린다. 상의로 블라우스를 입기도 하고, 셔츠나 후드티를 입기도 한다. 가끔은 다른 사진도 올린다. 전신을 찍을 수 있는 거울이 있으면 전신을 찍어 올린다. 스타킹 신고 반바지 입은 모습을 올렸을 때 이런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예전의 멋있는 모습은 어디 갔나요?"

내 답은 '난 언제나 멋있는데?'였다. 난 내가 꾸미는 행위를 즐기고, 내 삶을 당당하게 살아간다. 얼마나 멋진가? 난 부끄럽게 살지 않는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오늘의미모 셀카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너 왜 계속 그러고 다니냐?, 왜 계속 여장하고 다니냐고 한두 번은 장난인 줄 알았다."

좀 당황스러웠다. 나는 여장한 적이 없다. '이게 뭐가 여장이에요?'라고 답하긴 했지만, 전에 겪었던 나보고 미쳤다고 한 녀석이 생각나 글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여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여장02(女裝) 「명사」 남자가 여자처럼 차림. 또는 그런 차림새.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반대말 남장01(男裝) 「명사」 여자가 남자처럼 차림. 또는 그런 차림새.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중 중 소수자의 의사를 별로 존중하지 않고 소수자 억압에 관한 의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립국어원의 정의가 낱말의 '뜻'이라고 불리는 게 제일 싫다. 언어의 정의는 헤게모니 싸움인데, 그 헤게모니 싸움을 피하는 척 강자의 처지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빌려온 것은 내가 인식할 수 있는 한계 때문이다. 내가 소수자이기 때문에 비소수자의 이야기를 할 때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빌려와야만 한다. 그래야 소수자 입장에서 그 인식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하면 난 저 정의에 따른다고 해도 여장한 적이 없다. 물론 나는 화장하고 다닌다. 블라우스도 입고, 스타킹을 신고 반바지나 치마를 입기도 한다. 화장은 화장대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할 뿐이고 딱히 여성용이라고 표시되어 판매되는 상품도 아니다. 스타킹도 뭐 여성용이라고 나오지도 않는다. 반바지도 마찬가지. 치마나 블라우스는 여성복 분류로 판매되긴 하지만 내 몸에 맞아서 입을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여장이라 부르기도 황당한 게 나는 여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 나는 여자처럼 차린다는 것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내가 입고 싶다고 생각한 대로 입는다. 여자처럼 차린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처음 입을 때 용기를 내어 입긴 했지만, 타인의 무지한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처음 화장할 때에도 용기를 내긴 했지만, 그건 내 화장의 수준 때문이지 화장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여자처럼'이라는 내 인식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여장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나는 내 젠더를 고민하는 사람 젠더 퀘스처너(Gender Questioner)[각주:1]이다. 젠더퀴어[각주:2] 혹은 논바이너리(Non-Binary)[각주:3] 쪽으로 고민하고 있다. 안드로진[각주:4] 내지 뉴트로이스[각주:5] 혹은 데미메일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100% 남자가 맞는지부터 의문을 품고 있으므로 여장의 전제인 남자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젠더 고민 끝에 나는 100% 남자라고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첫째에서 말한 여자처럼 차림새를 가꾸는 것 자체에 의문을 가진 이상 여장이 되기 힘들다.

셋째, 반대로 남장을 끌고 와보자. 여자가 남자처럼 차려입는 것은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서 남성만이 입는 옷이 뭐가 있을까? 없다. 또 여자는 반드시 화장해야 하나? 아니다. 화장하지 않는 여자도 있다. 여장의 반의어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금 무슨 사회적 의미가 있는 단어인가? 단어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도 남자가 바지를 입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바지를 입고 화장을 하지 않는 여자가 많다고 그에 빗대어 여장했다고 할 것인가?

난 내 생물학적 성별이 XY 염색체의 남성이라 추정[각주:6]하고 있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0세기에 태어난 남성을 가리키는 1로 지정 성별은 남성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성역할을 강제로 부여받아 산다. 난 그 성역할을 강제하는 게 싫다. 내가 어떻게 생겼든 어떻게 살든 나는 성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존중받고 싶다. 젠더라는 프레임으로 나를 보게 하고 싶지 않다.

  1. 자기 자신의 젠더에 의문을 품는 사람 [본문으로]
  2. 성정체성 소수자. [본문으로]
  3. 성정체성 소수자로 젠더 이분법(여성과 남성으로만 구분)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 [본문으로]
  4. 남성을 뜻하는 Andro와 여성을 뜻하는 Gyne의 합성으로 양쪽의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다. 바이젠더가 왔다갔다 하는 것이라면 안드로진은 모두 섞여 있는 상태를 뜻한다. [본문으로]
  5. Neutrois,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에 가깝다. 중성 정도? [본문으로]
  6. 검사한 적 없으니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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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하는 <까칠남녀>를 보다가 출연자 중 한 명이 '본인 딸이라도 그렇게 말씀하시겠어요?'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생각에 얼굴을 찌푸렸다. 비슷한 감정을 가진 적 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났다. 몇 년 전에 했던 토론 때 들었던 말이었다.

몇 년 전 연수 받을 때였다. 토론 프로그램이 있었다. 난 토론을 굉장히 좋아해서 기대하고 있었다. 주제는 당시에 한참 논란이었던 '성범죄자 화학적 거세'였다. 법은 이미 통과된 상태였고, 압도적인 여론 때문에 반대쪽을 다들 하기 싫어했다. 하지만, 나는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어떻게 토론에서 이겨볼까 하는 생각에 흥분했다.

나는 내 입장과 내용에 자신 있었다. 나는 '성폭력의 원인은 성욕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학적 거세는 의미가 없어 반대했다. 그래서 이걸 주장하기 시작하면 내가 이 토론에서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흥분했고 우리 조원들을 설득해서 반대쪽에 서기로 했다.

막상 토론이 시작되자 별로 재미없었다. 인신공격하려 하거나 다들 뻔한 주장밖에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성폭력의 원인이 '성욕'이라는 전제로 이야기하는 덕에 말의 합이 맞지 않기도 했다. 시간만 흐르고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기만 했다.

거의 끝날 시간이 다 되어 갈 때였다. 찬성 쪽에서 한 명이 나서서 반대 쪽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딸이 강간 피해자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 말고 반대였던 다른 한 명이 먼저 답했다.

"그건 토론의 주제와 맞지 않고 인신공격에 가깝습니다!"

찬성 쪽에서 질문 던진 사람은 편안하게 다시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까 답했던 사람이 다시 답했다.

"그런 새끼는 찾아내서 죽여버릴 겁니다."

황당했다. 진짜 토론을 위한 토론을 했나 싶었다. 감상에 젖어 들 틈이 없었다. 내가 답할 차례가 됐다.

"저는 복수하지 않을 겁니다. 내 가족을 지켜야 합니다.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치료에 힘써야지 복수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가족을 치유하는 데 힘쓸 겁니다."

내가 답을 하자 상대는 알겠다고 했다. 그때 마침 토론 시간도 끝났다.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으면 네 딸이 그렇게 당한다고 생각해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난 그런 주장이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위험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성범죄는 형량을 높이거나 화학적 거세 따위의 문제가 더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를 치유하고,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치안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처벌이나 복수 같은 건 얼핏 달콤하다. 하지만 피해는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예방할 수 있도록 치안을 강화하고, 사후에는 피해자 치유에 우선을 두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치마를 입고 외출했다. 며칠 전 바지 위에 레이어드해서 입긴 했다. 그건 덧댄 것이지 치마를 입었다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했다. 맨다리 혹은 스타킹이나 레깅스에 치마만 입어야 치마를 입은 느낌이 난다. 이렇게 치마를 입고 외출한 건 11개월 만이다.

며칠 전 스타킹에 반바지를 입었을 때 신은 80데니어 스타킹은 꽃샘추위를 막기에는 좀 부족했다. 그래서 좀 더 따뜻해지면 치마나 반바지를 다시 입을까? 아니면 따뜻하게 입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었다. 어제 마트 들렀을 때 150데니어 스타킹이 보여 샀다. 혹시나 해서 150데니어 스타킹을 신었더니 훨씬 나았다. 그래서 오늘 치마를 입고 나올 수 있었다.

앉았을 때 무릎 윗부분에서 한 뼘(25cm) 정도인데, H라인이라 그런가? 쪼그려 앉아 신발을 신을 때 엉덩이가 보일 것 같았다. 살펴보니 엉덩이 쪽이 굴곡지면서 뒤쪽만 많이 올라가서 밑으로 보면 엉덩이 쪽이 보였다. 스타킹 속으로 비치는 내 속옷을 보고 민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옷으로 드로즈를 입었는데, 보이면 민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삼각팬티로 입고 싶어졌다. 집에 삼각팬티가 없는데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웃음이 나왔다. '속옷이 보일 것을 가정하고 속옷을 입으려고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마 속을 안 보여줄 거고, 남도 안 봐야 하는 건데, 남 보기에 이 속옷이 어색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

밑에 입는 속옷은 기능적으로 만들어졌다. 어느 기저귀 광고에서 여아용, 남아용은 흡수 면이 중요한 거라는 것처럼 여성용 팬티는 밑부분에, 남성용 팬티는 앞부분에 면으로 된 흡습부가 있다. 성기의 모양과 방향에 따라 분비물 흡수 때문에 입는 속옷을 두고 그게 보일 것을 먼저 생각했다니 우스웠다. 평소에 속옷을 장식용으로 입지도 않는 주제에!


치마를 입고 외출해도 딱히 갈 데가 없다. 스터디 모임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다 보니 어디 놀러 갈 생각도 못 했다. 그냥 기분 내려고 항상 꾸며 입는데, 카페에 앉아 공부만 하려니 입었다는 만족감 외에는 없다. 오히려 화장실 갈 때 다른 사람들이 불편할까 걱정만 된다. 미니스커트 입어서 화장실에서 소변기에 소변 눌 때 편하긴 한데, 드나들 때 다른 사람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불편하다. 바지를 입고 들어가도 사람들이 당황하는데, 치마 입고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더 당황스러워한다.

짧은 치마 입고 남자 화장실에 안 가본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치마 입고 다닌 초기에는 들어가면 항상 좌변기를 찾아서 들어가서 소변을 봤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덜 띄고 싶었다. 눈에 띄기 위해 입은 것도 아니라 상호 불편한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덜 보이기 위해 들어갔다. 하지만, 내가 익숙해지면서 그냥 들어가서 소변기에 누고는 했다. 엉덩이가 보일락 말락 치마 뒤쪽도 올라가는 게 좀 민망하긴 하지만, 서서 소변 보는 게 빠르고 편하긴 하니까 편한 대로 행동했다.


오랜만에 치마를 입으니 이것저것 걱정만 많다. 기분 좋은데 어색한 이 기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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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유니클로 <'감탄' 팬츠> 광고 시리즈는 재미를 추구한다. 남자들의 바지가 불편하다면서 이 바지를 입으면 '감탄'할 만큼 편하다고 광고한다. 광고를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많다. 단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편안하다는 치마, 이 이야기가 조금 불편하다. 왜냐하면, 치마 입는 과정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커피를 들고 스커트를 입은 채 걸어간다. 여자들의 스커트를

남성이 여성들을 바라보는 듯한 모숩이다. 그들의 편안함을

여자들이 커피를 들고  걸어간다. 언제까지 부러워만 할 것인가


"여자들의 스커트를, 그들의 편안함을, 언제까지 부러워만 할 것인가."는 불편한 말이다.


먼저 치마를 입을 때 신경 쓸 것이 많다. 속옷이 보이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짧은 치마의 경우 H라인으로 팽팽하면 움직임도 불편하고 앉았을 때 틈으로 속옷이 보일까 봐, 허리를 숙일 때 뒤로 엉덩이와 속옷이 보일까 봐 신경 쓰인다. A라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짧으면 신경 쓰인다. 펜슬 스커트 같은 경우에는 밑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좁아지므로 다리의 움직임이 제한된다. 무릎까지 오는 치마도 H라인의 경우 다리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많이 불편해진다. 물론 이런 치마들이 바지에 비하면 통풍은 잘 된다는 장점이 있다.

긴 치마의 경우는 나풀거리면 나풀거리는 대로 다리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팽팽하면 팽팽한 대로 다리의 움직임을 많이 방해한다. 상대적으로 함기량이 많으므로 보온이 잘 되긴 하지만, 바지에 비하면 치마는 기본적으로 활동이 불편하다.

활동이 불편한 것만이 아니다. 과정이 추가된다. 치마를 입는 과정은 치마의 종류나 계절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스타킹을 신고 치마를 입는다. 스타킹은 통풍이 안 된다. 더군다나 치마를 입으며 스타킹을 신을 때 무릎보다 조금 위로 올라오는 스타킹보다 엉덩이까지 감싸는 팬티스타킹을 많이 신기 때문에 전체적인 압박감도 압박감이지만 통풍 안 되는 부분이 넓다. 특히 다른 데는 몰라도 발에 통풍이 안 되기 때문에 답답하다.

스타킹을 안 신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치마를 입을 때 스타킹을 안 신을 수 있는 계절이 얼마나 있을까? 거의 없다. 치마를 입으려면 스타킹은 거의 필수이다. 보온에도 필요하고 맨살끼리 부딪치며 마찰하는 것도 예방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라면 치마를 입을 때 검은 스타킹을 강제로 신어야 하는 시기도 있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물론 스타킹을 신으면 압박되어 각선미 보정 효과 등이 있다. 하지만 털이 있으면, 털이 보이면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제모한다. 여성에게 제모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제모를 많이 한다. 여성에게 다리털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털이 가늘거나 별로 없는 여성들 정도나 여성들에게 털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한 후배는 동생 자취하는 집에 놀러 갔다가 면도기를 발견했다. 면도기를 보고 흥분해서 남자랑 동거하나 싶어 동생을 불러 야단을 치려고 면도기에 관하여 캐물었다. 동생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본인 제모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둘 다 여성이다. 언니는 털이 거의 나지 않아 미용을 위한 제모가 필요 없었고 동생은 본인의 미용을 위한 제모가 필요했다.

여하튼 그런 편견과 사회적 강요 때문인지 몰라도 올리브영이나 왓슨스 같은 데 가면 제모 관련 용품들이 전시된 코너가 있다. 제모 크림, 제모 왁스, 제모 왁스 스트립, 여성용 면도기 등 다양한 용품들이 있다. 이런 게 왜 있을까? 제모 왁스 스트립을 보면 팔 및 다리용, 비키니 및 겨드랑이용, 얼굴용 등 여러 부분이 있다. 팔, 다리, 비키니 라인, 겨드랑이, 얼굴 등 미용을 위한 제모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다. 

제모 크림은 크림을 바르고 10분 남짓 있으면 털이 불어난다. 파마약 같은 냄새도 나고 예민할 경우 피부가 따가울 수도 있다. 민감한 부분이나 상처에 바를 경우 한동안 쓰릴 수도 있다. 털이 불어나면 스패츌러로 밀어서 털을 뜯어낸다.

제모 크림


제모 왁스의 경우는 전자레인지로 녹이거나 물로 중탕해 녹여서 스패츌러로 바른 다음 스트립을 붙인 다음 한 번에 당겨서 수많은 털을 뽑아낸다. 제모 왁스 스트립의 경우 이게 스트립에 발라져 있어 손으로 비벼 뗀 다음 제모할 부분에 붙이고 한 번에 당겨 털을 뽑아낸다. 피부에 남은 왁스는 오일 시트나 오일로 닦아내거나 미온수로 녹여 씻어낸다. 좀 고통스러운 방식이지만, 털을 족집게로 일일이 뽑아내는 것보다 고통이 덜하게 느껴진다.

제모 왁스

제모 왁스 스트립

면도기의 경우 면도크림을 바르거나 해서 남자들처럼 면도한다. 면도해서 털이 겉에 드러나지 않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여성용 제모 면도기

살펴보면 털이 적으면 스타킹 착용 후 치마 입기 2단계이다. 털이 많으면 제모 후 스타킹 착용 후 치마 입기 3단계이다. 이래도 치마가 편해 보이는가?

분명 넷플릭스 광고 유세윤, 에뛰드 광고 전현무보다야 타깃 설정이 잘 된 광고이긴 하다. 하지만, 치마를 입지도 않는 이들에게 치마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 타깃 설정이 올바르다고 해도 성편견을 조장하는 광고는 바르지 않다.

어릴 때는 스타킹을 자주 신었다. 남자아이지만 반바지에 스타킹 신는 모양새는 별것 아니었다. 당연히 신어야 하는 것이었다. 난 어릴 때 보이스카우트에서 몇 년을 활동했다. 단복에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스타킹이라 안 신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남성은 스타킹을 신을 일이 점점 없어졌다. 줄어들다 못해 없어졌다. 남성이 스타킹을 신는다는 생각도 못 할뿐더러 스타킹이라는 말이 남성의 입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민망했다. 아니면 성적인 농담을 할 때나 이야기를 할 때나 이야기가 오갈 뿐. 스타킹은 일상과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반바지 입을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사춘기 때는 다리털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까 민망했다. 한 번은 면도기로 털을 싹 밀기도 했었다. 나중에 20대가 되어서야 털에 덜 민감해졌고 반바지를 좀 편하게 입었다. 반바지를 입는다고 해도 무릎 정도 오는 게 거의 전부였다. 나도 그렇게 따라 입었었다. 그런데, 난 그런 반바지가 활동하기 불편했다.

언젠가 허벅지 중간보다 더 올라오는 짧은 바지를 사서 입기 시작했다. 짧은 바지를 입으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입는 본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민망하게 여겼다. 왜 여성들이 핫팬츠라고 불리는 그렇게 짧은 반바지를 입는 건 별로 민망하게 여기지 않는데, 남성이든 여성이든 남성이 입는 핫팬츠를 입는 것을 민망하게 여겼다. 남성용으로는 짧은 반바지가 잘 나오지도 않은 것이 어찌 보면 그런 통념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여성복 파는 데서 반바지를 샀다.

반바지를 사고 여름에만 입기 좀 아까웠다. 여자들은 추운 겨울에도 스타킹에 반바지를 입는데, 그것도 괜찮아 보였다. 치마도 입었던 내가 못 입을 게 뭐 있나 싶어서 오랜만에 스타킹 신고 반바지를 입었다. 날이 아직 덜 풀렸지만 바람에 다리가 시릴 정도는 아니었다. 차라리 긴 바지 입을 때에 바람이 직접 들어와 다리가 좀 더 시렸던 것 같다. 아직 다리털 제모가 좀 덜 되어 속이 덜 비치라고 150데니어 검은 스타킹을 신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조만간에는 팬티스타킹이 아닌 무릎 위 정도로만 올라오는 오버니삭스에도 한 번 도전해볼 생각이다. 내 패션에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다.


스타킹 신고 핫팬츠까지 입기 시작했으니 곧 다시 치마 입을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새로 산 청치마를 애써 청바지에 레이어드해서 입었는데, 곧 그냥 청치마만 입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다리가 좀 더 편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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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드레싱이라는 말이 있다. '특정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반대 성별이 입는 것으로 인식되는 옷을 입는 행위'라고 위키백과에 나와 있다. 드랙퀸(Drag Queen) 같이 유희를 목적으로 과장되게 여성처럼 치장하고 행동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성복장도착 같은 성적 도착증도 있다. 그 외에 변장이나 다른 것들을 목적으로 이성의 옷을 입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남성기가 있는 주민등록상 남성이다. 그리고 여성복이라고 하는 것들을 입는다.

나는 블라우스를 즐겨 입는다. 바지도 레깅스 같은 핏의 스키니 진을 즐겨 입었고, 여름이면 핫팬츠를 입고 다닌다. 거의 1년간은 입지 않기는 했지만 한동안 치마도 입고 다녔었다. 나는 유희 목적으로 입고 여성(이라고 생각되는 모습)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니 드랙퀸은 아니다. 성적 쾌감을 느끼지도 않으니 복장도착도 아니다. 그러면 나는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것일까?

나는 옷을 살 때 여성복 판매점에서 산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남성복은 잘 살펴보지 않는다. 바지를 사거나 티셔츠나 니트를 살 때도 불편함 없이 산다. 온라인에서는 내 사이즈 재둔 것과 비교해서 보면 입는 데 무리 없고, 오프라인에서는 단골 가게가 있어서 들어가면 편안하고 여유 있게 고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남성복보다 저렴하기도 하지만 모양이 다양해서 좋다. 그래서 여성복 판매점에서 산다. 

트위터에서 나와 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하게 옷을 입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FTM[각주:1] 트랜스젠더인데, 샬랄라 원피스나 치마 입기도 좋아한다고 했다. 일단 남성이 된 사람들인데 여성의 옷이라고 불리는 옷을 입는다. 그러면 이들은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것일까? 원래는 여성이었는데 남성이 되었다고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것일까?

난 옷을 입을 때 이성의 옷이라는 생각을 하고 입지 않는다. 성별을 둘로만 나누고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이분법적 사고도 싫어한다. 사회 통념상 치마나 블라우스는 여성만 입는 옷이다.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사람일 수는 있겠지만 나는 반대 성별의 옷을 입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지 예뻐 보여서 입으면 어울릴 것 같은 옷을 입을 뿐이다.

난 머리도 기르고 화장도 한다. 그렇게 보면 통념상 여성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나는 내 성별을 여러 가지로 고민하는 젠더 퀘스처너[각주:2]이지만 여성이 되려는 생각은 없으니 트랜스젠더도 아니다. 젠더 이분법으로부터도 탈출하고 싶고, 내가 보기에 예뻐 보이는 옷을 좀 자유롭게 입고 싶을 뿐이다.

  1. Female to Male [본문으로]
  2. 본인의 젠더에 대하여 고민하는 사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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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리고 계속 더 페미니스트답고자 노력하기 위해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제가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먼저 잘못하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30년 남짓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억 중에 제가 잘못했거나 잘못할 뻔한 기억들이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저를 모르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앞으로 잘못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못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제가 잘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존중 없는 삶이 무섭습니다.

저는 그다지 존중받고 살아온 것 같지 않습니다. 다르면 다른대로 비난 혹은 놀림을 받았고, 변하면 변한 것 모습만 갖고 관심을 받았습니다. 저 자신의 선택으로 오롯하게 존중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저도 존중만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존중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삶을 만들고 싶습니다.


- 소수자로 살았습니다.

존중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소수자로 살았습니다. 다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도 소수였습니다. 소수였던 만큼 배제당하고 무시당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과에서 종교적 소수자였습니다. 종교적 소수자였던 만큼 당연히 종교적 다수자에 맞추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다수인 종교에 당연히 익숙해져야 하고, 그 행동을 당연히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건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제가 화장을 한다거나 머리를 기르는 일 그게 모두 비난 혹은 배제의 대상이었습니다. 나의 개성이 아니라 나의 불만 혹은 사회에 대한 불협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소수자인 만큼 약자입니다.

정규직이 다수인 교직 사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과목도 음악이라는 단위 수가 적은 과목입니다. 화장한다고 사직서 제출 소리를 들어봤고, "교사냐 강사냐 구분"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이 인권침해라고 문제를 제기했더니 관리자 입장에서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등 무시당하고 배제당했습니다.


- 그래서 페미니스트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이 엮이고 보니 제 자유를 위해 평등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등과 연대는 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합니다. 일상의 운동가로서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합니다.

- 작년 5월 퇴근길

퇴근이 평소보다 한 시간가량 늦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옆에 않기 힘들 거로 생각하는 곳을 찾았다. 제일 뒤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있었던 일을 속으로 곱씹었다. 내가 평소 생각과 다르게 행동했던 부분이 떠올라 어떻게 고쳐야 할지 생각했다. 그 자리가 처음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 게 많아 중간중간 조금 더 앞자리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내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자리 이동도 못 하고 있었다. 집까지 두 정거장쯤 남았을 때쯤 거의 만원 버스가 되었다. 어떤 사람이 버스에 올라 뒤쪽으로 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이 새끼들아, 어른이 왔으면 벌떡벌떡 일어날 줄 알아야지! 어른을 공경할 줄 몰라."

많아 봐야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거친 말에 화가 났다. 받아쳤다.

"뭡니까? 무슨 일인데 그렇게 소리 지르십니까? 어른이면 어른답게 점잖게 있으세요."

그는 내 옆자리에 올라와 앉았다. 다른 데 자리가 없어 할 수 없이 앉은 모양이다. 앉자마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다시 큰소리쳤다.

"건방지게… 너 몇 살인데 그러냐?"

"어른이면 어른답게 하세요."

"나 오십 세 살이다. 너 몇 살이냐?"

"그래서요? 어른이면 어른답게 점잖게 행동하세요."

그는 감정이 상했지만,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내 말투 때문인지, 내가 풍기는 기운 때문인지 기가 좀 죽은 듯 조그맣게 구시렁댔다.

"옛날에는 이렇게 안 했었는데…"

난 내가 생각하기에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 어른 대접만 받으려고 하는 것이 싫다. 그래서 똑같은 말투로 아주 잘 들리게 비아냥댔다.

"옛날 어른들은 이렇게 안 했었는데…"

그는 입을 닫았다. 얼마 안 있어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리고 비웃다가 아차 했다. 그는 내 반면교사였다. 합리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꼰대질처럼 행동한 일이 생각났다. 반성할 범위를 너무 좁게 잡았다.


- 같은 날 퇴근 전

학교에서 벌점을 주는 카드인 약속카드가 있다. 별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사용하기 편해서 남발하듯이 사용하고 있었다. 행동을 제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잘못을 예방하고 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어느새 행동을 제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의도는 큰 폭력으로 생각하는데, 난 내 행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의도가 정당하니 방법도 정당한 척하고 있었다. 그걸 깨닫게 된 것은 학생들 덕이었다.

수업 종이 쳤는데, 소란스럽기만 하고 자리에 앉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다. 자리에 앉으라고 한 차례 외쳤다. 반응이 없어 다시 외쳤다. 그래도 자리에 앉지 않아서 숫자를 읊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않지 않은 학생 셋을 불러 바로 약속 카드를 발급했다.

번호와 이름을 부르는 중 웃는 학생이 있었다. 난 행동만을 갖고 판단하겠다는 생각으로 웃은 학생들을 나오라고 해서 모두 약속 카드를 발급했다. 혼나는 아이들을 비웃었다고 생각해서 '타인을 비하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약속 카드를 발급했다. 그리고 수업은 웃으며 밝은 분위기로 진행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청소시간 나는 선풍기를 분해해서 씻은 후 말리고 있었다. 청소 담당 학생이 와서 비 때문에 걸레질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선풍기를 좀 닦아달라고 부탁했다. 선풍기 팬의 날이 날카로우니 손을 베어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다쳐도 상관없어요."

"내가 니들 다치는 게 싫어서 시킬 생각하지 않고 내가 씻었는데, 누가 다치면 애써 내가 씻은 보람이 없는 거잖아."

이렇게 좋은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그 학생이 하나씩 닦아주니 시간 여유가 생겼다. 나는 책상 위로 올라가서 천장에 있는 선풍기를 빠르게 조립했다. 거의 다 하고 청소하던 학생들을 교실로 보냈다. 거의 다 조립했을 때쯤 누가 나를 찾아왔다. 약속카드를 대량 발급했던 그 반 담임선생님이셨다.

학생들이 '선생님이 우리를 오해해서 카드를 그렇게 많이 준 것'이라고 해서 사유를 정확하게 알려고 찾아왔다고 하셨다. 그래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더니, 아이들하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나중에 가서 이야기한다고 했고, 종례하러 갈 시간에 내게 전화해 준다고 하셨다.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과 같이 들어가서 한 시간 반 넘게 입씨름했다. 내가 본 것과 아이들이 본 것의 대결이었다. 내가 본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의도를 함부로 파악해서 상처 주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계속 행동만 보려고 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내가 의도를 함부로 재단하고, 내 의도를 강압적으로 강요하는 인간이 될 것 같았다. 내가 흥분해서 상처 줄까 걱정하며 행동을 분리해서 이야기했다.

문득 깨달았다. 둘 다 억울하다고 여기는구나. 내 잘못이었다. 내가 한 행동이 아이들의 말을 부정하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다. 난 아이들을 이기려고만 했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내가 아이들을 못 믿어서 내 방식으로 윽박지른 것에 불과했다. 난 인권과 약자 대변을 외치면서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이었다.

한참 지난 덕에 여러 학생이 갔다. 일부가 남아 있었다.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나는 평소에 의도를 폭력이라고 생각해서 행동만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내가… 하아… 잘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습니다. 여러분들하고 잘 지내고 싶고, 잘 지내야 하는데 상처를 줬습니다. 지금 사과하고, 내일 모두가 있을 때 다시 사과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잘못한 것 없습니다. 감정 흐름까지 계산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여러분들을 통제하려고만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내가 사과를 했더니 학생들이 자기들도 잘못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난 사과를 거부했다.

"여러분들이 사과할 것은 없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입니다."

학생들은 당황하며 '그렇게 하면 자기들이 뭐가 되느냐'며 자기들도 사과해야겠다고 했다.

"제가 더 나이 먹었는데, 생각이 짧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사과하면 여러분이 나중에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저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함께해야 하는 수업이라고 해놓고, 제가 끌고 가려고만 했습니다. 그래서 제 책임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제 책임이니 저만 사과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반박했다.

"우리가 사과하지 않아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그러니까 우리도 사과할게요."

말문이 탁 막혔다.

"제가 더 나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저만 사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제가 먼저 사과하겠습니다. 내일 여러분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제가 먼저 사과하겠습니다. 그건 양보 못 하겠습니다."

학생들은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마치면서 다음 날 아침에 보기로 했다.



- 다음 날 아침

전체가 모인 교실로 찾아갔다. 조례 중에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는 '이제 생각났어요.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학생들이 그 학생에게 야유를 보냈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내가 반성할 부분이 있으니 그건 두자고 하며 말렸다. 그리고 전날 버스에서 본 그 사람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 이야기를 하고 사과했다.

"돌아가는 길에 내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더 제대로 사과하지 고민하던 중에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 식의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하는데, 비판적인 시기인 여러분의 비판을 원천봉쇄하다시피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 나이의 그 시기를 그렇게 비판적으로 보내놓고 여러분을 막는 행동을 했다. 여러분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과합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나이 많은 이에게 어른의 자격을 묻는 만큼 나도 어른의 자격을 갖추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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