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성이 되기를 주저한다. 나는 성 정체성을 계속 고민 중이기는 하지만, 안드로진(Androgyne)이라고 정체화했다. 남성이 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비단 성 정체성 때문만은 아니다. 내 안에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존재한다. 남성이 존재함에도 남성이 되기를 주저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로서 가부장제 아래서의 일방적인 남성성이라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신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을 가르는 것 중 하나는 아름다움에 대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남성의 외모를 칭찬할 때는 '멋지다', '멋있다', 여성의 외모를 칭찬할 때는 '예쁘다', '아름답다'라고 한다. 이렇게 성별에 따라 외모를 칭찬하는 말이 다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http://stdweb2.korean.go.kr)(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편견이나 헤게모니를 보여줄 수 있으므로 인용한다.)의 정의를 살펴보자.


멋01 [먿]

「명사」

「1」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다움.

「2」고상한 품격이나 운치.


아름-답다 [---따]

「형용사」

「1」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2」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예쁘다   [예ː--]

「형용사」

「1」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 ≒이쁘다「1」.

「2」행동이나 동작이 보기에 사랑스럽거나 귀엽다. ≒이쁘다「2」.

「3」아이가 말을 잘 듣거나 행동이 발라서 흐뭇하다. ≒이쁘다「3」.


미14(美) [미ː]

「명사」

「1」눈 따위의 감각 기관을 통하여 인간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

「2」((일부 명사 앞 또는 뒤에 붙어))‘아름다움’의 뜻을 나타내는 말.

「3」『교육』성적이나 등급을 ‘수, 우, 미, 양, 가’의 다섯 단계로 나눌 때 셋째 단계.

「4」『철학』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없이, 내적 쾌감을 주는 감성적인 대상.


아름답다거나 예쁘다는 것에는 보이는 대상, 생김새에 대한 시각적 만족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멋에는 차림새나 행동 따위로 그 사람의 생김새에 대한 것이 들어가 있지 않다. 남성의 생김새는 두고 따로 '잘생겼다'고 하기도 하지만, 타고난 외모에 대한 이야기이지, 꾸민다는 개념 같은 것이 들어가 있지 않다. 보통 여성에게 곱다, 아름다워진다, 예뻐진다는 말을 사용하지만, 남성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그루밍족이 있긴 하지만 잘생겨진다는 말을 쓴다.). 오히려 곱다는 말 같은 경우는 남성성을 부정하는 성희롱이 될 가능성도 강하다.

보통 남성은 명사에서 기본값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지우고 남성을 기본값으로 내세운다. 그 예가 소년(少年)과 소녀(少女)이다. 소년은 어린 시절이라고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남자 어린이를 부를 때 소년이라고 하며, 애써 여자 어린이에게만 소녀라는 명칭을 따로 사용한다. 유년기(幼年期), 소년기(少年期), 청년기(靑年期), 장년기(壯年期), 노년기(老年期) 등 이렇게 나이에 따른 시기를 부르는 말은 비슷하다. 연령을 기준으로 하므로 -년기를 쓴다. 청년은 기본적으로 성년기의 사람을 부르는 말이지만, 성년 남성에 한정해 이야기하고, 성년 여성에게는 혼인 여부에 따라 처녀, 처자, 아가씨 등과 아주머니 이렇게 다른 명칭이 있다. 숙녀처럼 구분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명칭이 많다는 것은 그렇게 구분하는 언어가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제 아래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정되지만, 타자를 가리키는 말은 상황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본값이 여성인 단어가 있다. 바로 미인이다.


미인01(美人) [미ː-]

「명사」

「1」아름다운 사람. 주로 얼굴이나 몸매 따위가 아름다운 여자를 이른다. ≒가인01(佳人)

「2」재덕(才德)이 뛰어난 사람.

「3」『역사』중국 한(漢)나라 때에 둔, 궁녀의 관직.

「비」「1」미녀


물론 비슷한 말로 미녀(美女)가 존재하지만, 현재 남성에게만은 따로 미남(美男)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아름다운 여자, 아름다운 여성이라고는 하지만, 풀어서 아름다운 남성, 아름다운 남자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이 정도로 대상화된 아름다움은 여성에게만 붙인다. 애초에 타자화했기 때문에 기본값이 여성이 된 것이다. 남성에게 미인을 붙인 경우가 없지는 않다.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이 그렇다. 사미인곡에서 미인은 임금이며, 임금은 성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人앞에 美를 붙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현대의 유명한 가요 중 신중현의 '미인' 가사를 살펴보자.


한번보도 두번보고 자꾸만 보고싶네

아름다운 그 모습을 자꾸만 보고싶네

그 누구나 한번보면 자꾸만 보고있네

그 누구의 애인인가 정말로 궁금하네

모두 사랑하네 나도 사랑하네

모두 사랑하네 나도 사랑하네


가사 전체가 미인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고 있다. 미인은 주체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여성이 갖추어야 할 아름다움의 대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뷰티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뷰티는 여성의 미용, 화장을 가리키는 말이고, 그루밍이라는 것은 남성의 미용, 화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미 아름다움 자체를 구분하며 여성을 대상화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남성도 미용을 하지만, 뷰티에 있어 대상은 여성이다. 남성은 따로 용어를 만든다. 남성에게 뷰티라는 말을 붙이지 않으려 한다.

난 남성이 되기를 주저한다. 그래서 내 화장은 뷰티라고 할 것이다. 내 화장품도 뷰티 코너에서 사지, 멘스 그루밍 코너에서 사지 않으니까. 어차피 안드로진에게는 별 차이 없지만, 지정성별 남성으로서 행동은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성소수자(Sexual minority)입니다. 나와 같은 성소수자는 대체로 아래 네 가지 범주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합니다.

1.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사람.

2.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을 지정 성별 그대로 인식(Cisgender)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정체성으로 인식하는 사람

3.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인식하는 이성애자(Heterosexual)가 아닌 사람

4. 연애 지향(Romantic orientation)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인식하는 이성연애지향(Heteroromantic)이 아닌 사람


보통 LGBT, LGBTAIQ, LGBTAIQP 등이 이들을 부르는 명칭을 모은 것이며, 퀴어(Queer)라고도 합니다.

L은 Lesbian(레즈비언), 즉 여성 동성애자(Homosexual)입니다.

G는 Gay(게이), 즉 남성 동성애자(Homosexual)입니다.

B는 Bisexual(바이섹슈얼), 즉 양성애자입니다.

T는 Transgender(트랜스젠더) 혹은 Transsexual(트랜스섹슈얼)은 성전환자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A는 Asexual(에이섹슈얼)이며 무성애자라고 합니다.

I는 Intersex(인터섹스)이며 간성인을 말합니다.

Q는 Questioning(퀘스처닝)으로 스스로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질문중인 사람을 말합니다.

P는 Pansexual(팬섹슈얼)로 범성애자, 즉 성을 구분하지 않는 성적지향을 이야기합니다.


이외에도 논바이너리(Non-binary) 혹은 젠더퀴어(Genderqueer)라 부르는 두 성으로 부를 수 없는 젠더가 있습니다.

에이젠더(Agender) 혹은 젠더리스(Genderless)라고 하는 무성인 사람

안드로진(Androgyne)이라고 하는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사람

바이젠더(Bigender)라고 하는 두 가지 성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

팬젠더(Pangender)라고 하는 모든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

트라이젠더(Trigender)라고 하는 세 가지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

써드젠더(Third gender)라고 하는 제3의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라고 성별 정체성이 유동적인 사람


언급한 것들 외에도 다양한 성소수자가 있습니다. 언급한 것만 다시 정리하면

1.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사람 : 간성(Intersex)

2. 성적 정체성(Gender identity)이 지정 성별 그대로 인식(Cisgender)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정체성으로 인식하는 사람 : 트랜스젠더(Transgender), 논바이너리(Non-binary)

3.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인식하는 이성애자(Heterosexual)가 아닌 사람 : 여성 동성애자(Lesbian), 남성 동성애자(Gay), 양성애자(Bisexual), 무성애자(Asexual), 범성애자(Pansexual)

4. 연애 지향(Romantic orientation)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인식하는 이성연애지향(Heteroromantic)이 아닌 사람 : 보통 무성애자들이 많이 구분하는데, 에이로맨틱(Aromantic), 호모로맨틱, 바이로맨틱, 팬로맨틱 등으로 성적 지향과 비슷하나 성접촉 없는 연애 지향 종류입니다.


이런 성소수자들을 상징하는 깃발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들을 모두 통틀어 상징하는 깃발이 있습니다. 무지개 깃발(Rainbow Flag) 🏳️‍🌈[각주:1]입니다.

무지개 깃발(Rainbow Flag)Ludovic Bertron from New York City, Usa - https://www.flickr.com/photos/23912576@N05/2942525739 Rainbow flag flapping in the wind with blue skies and the sun.

모르는 사람을 위해 사전 설명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얼마 전 홧김에 커망아웃을 했습니다. 어떤 금수저 비스무레하게 자란 인간이 자칭 흙수저라는 사람들이 금수저라는 말을 만들어서 노력도 안 하는 게 XX같다며 욕을 하기에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고 하며 함부로 말하지 말고 좀 공부하면 달라질 거라고 했더니

"쫌 지랄하지마 게이새끼야 죽여버리기 전에 XX같은 새끼가 걍 쪄져 있어"


메시지를 보내고는 바로 차단하더군요. 화가 나서 홧김에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커밍아웃했습니다.

"참고로 저 게이 아닙니다. 열받아서 홧김에 커밍아웃하는데 저 바이섹슈얼, 논바이너리 젠더이자 젠더 퀘스처너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인권 따위 뭣같이 여기고, 성소수자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면서 쉽게 떠들어대는 인간 항상 역겨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홧김에 커밍아웃한 것이 너무 슬펐습니다. 그 와중에 4월 25일 대선후보자 토론회에서 홍준표, 문재인 발언에 스트레스가 심해졌습니다. 저 말고도 스트레스 받은 사람이 많았는지 그날 홧김에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들이 좀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성소수자 단체의 문재인 후보에 대한 항의와 사과 요구 이후 멱살을 잡았다거나 주먹질을 했다는 루머와 함께 나타나는 문재인 지지자들의 성소수자 혐오에 점점 위축되고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의 루머와 비아냥, 비하 그것이 바로 성소수자 혐오입니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이렇게 쓰고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성소수자 혐오가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설명하고 커밍아웃합니다. 내 성적지향은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자)이며, 젠더는 고민중(Questioning)인데 논바이너리(Non-binary)로 안드로진(Androgyne) 혹은 데미메일(Demimale)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는 일상적으로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조용히 항상 싸우고 있는데, 만만한 사람한테만 떼 쓴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성소수자는 언제까지 숨어서 조용히 지내야 하는 겁니까? 당신 옆에 있는 사람, 당신 가족, 당신 친구가 성소수자일 수 있습니다. 인구의 대략 2~4%는 성소수자라고 하니, 당신 주변에도 흔할 겁니다.

안 보인다고요? 그건 당신이나 주변 사람이 지웠기 때문에 숨어 있는 겁니다. 누구도 눈에 띄려고 살아가는 사람 없습니다. 당신들처럼 그냥 살아갑니다. 싸울 때마다 우리의 깃발을 항상 올리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깃발 밑에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존재합니다.

지워지지 않기 위해 솔직히 위험과 위협을 무릅쓰고 이렇게 커밍아웃합니다. 나는 성소수자입니다.

  1. 무지개 깃발은 전자 문자 표준체계인 유니코드에도 이모지 중 하나로도 들어가 있습니다. (1F3F3 FE0F 200D 1F308), http://www.unicode.org/Public/emoji/5.0/emoji-test.txt [본문으로]

모 대선후보가 12년 전에 쓴 자전적 에세이에 있는 '돼지흥분제 이야기'가 화제이다. 내용은 강간 모의에 가담했던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게 글 타래의 시작이 되어 비난부터 실제로 돼지 발정제를 먹어본 경험(돼지발정제, 저는 무려 그걸 먹어봤습니다)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먹어본 이야기를 읽다가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3년 전, 새로 근무한 학교 첫 회식 날이었다. 1차는 그럭저럭 즐거웠다. 2차에 갔을 때 굉장히 화가 나는 일이 생겼다. 2차에서 여자 선생님은 딱 한 분만 계셨다. 다른 여자 선생님은 모두 가셨다. 나머지는 다 남자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교장은 다른 선생님들한테는 '김샘', '우리 김샘' 등 이렇게 성에 선생님 붙였는데, 이 여자 선생님한테만 'ㅇㅇ씨', '우리 ㅇㅇ씨' 등으로 불렀다. 그 꼴에 너무 화가 났다. 그 분을 삭이지 못해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하는 척하며 분을 삭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몇몇 젊은 선생님들이 한구석에 모여 있는 걸 봤다.

"화나서 못 들어가겠어요."

"왜요?"

"교장이 자꾸 성희롱하는 게 들려서 짜증 나서 못 있겠어요."

"당사자도 가만히 있는데…"

그 자리에 성희롱당한 당사자가 있었다.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어 힘든데, 당신이 뭘 어떻게 하겠느냐는 탄식이었다. 난 할 말을 잃었다. 말리거나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속상한 척은 제일 많이 하고 있었다. 미안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망할 비정규직이라고 겁내는 내 모습에 짜증도 났다.


한 두 달쯤 지나서 교무부장과 단둘이 술 마실 일이 있었다. 그때 교장이 하는 것 중 성희롱을 지적했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교무부장은 되려 나를 나무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교장샘 하시는 건 성희롱의 경계 정도이지, 성희롱 아냐. 그래서 내가 선 넘어가지 말라고 종종 말씀드린다. 심해서 맞다고 생각하면 니가 고발을 하던가?"

잠시 조용히 있다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옛날에는 둘이 이어주려고 회식 자리에서 술 많이 먹여 놓고 한 방에 재웠다. 그렇게 결혼한 사람 많다. 요즘 같으면 큰일 날 일이지. 교장샘도 옛날 사람 치고는 성희롱 선 넘어갈락 말락 경계까지만 가시는 걸 보면 굉장히 점잖으신 분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상처일 이야기이다. 설마 그런 강간혼이 흔했을까? 하며 속으로만 끔찍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걸 모 대선후보의 사과(같지도 않은 용서 명령질)[각주:1]과 그 댓글들을 보면서 끔찍하게도 90년대 초반까지도 그런 성폭력들이 공공연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고 속이 너무 뒤집어졌다.


세상을 살기 좋게 바꾸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 전에 소수자 혐오에 죽거나 역겨움에 토하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전문. 제나이 50세가 되던 해인 2005년에 어릴적부터 그때까지 제가 잘못했던 일에 대한 반성문으로 나돌아가고 싶다 라는 자서전을 쓴 일이 있습니다.30여개 반성문 중에서 18세때 대학교 1학년 시절 S대생들만 하숙하던 홍릉에서 같이 하숙할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쓰면서 돼지 발정제 이야기를 쓴일이 있습니다.책의 내용과는 다소 다른 점은 있지만 그걸 알고도 말리지 않고 묵과 한것은 크나큰 잘못이기에 그 당시 크게 반성하면서 그 잘못에 대해 반성한 일이 있습니다.45년전의 잘못입니다.이미 12년전에 스스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일이 있습니다.이제와서 공개된 자서전 내용을 다시 재론하는 것을 보니 저에 대해서는 검증할것이 없기는 없나 봅니다.어릴때 저질렀던 잘못이고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이제 그만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본문으로]

제모하는 부분이 굉장히 넓어졌다. 예전에는 겨우 수염이나 면도하는 정도였다. 그것도 자꾸 얼굴에 상처가 생겨 따갑고 쓰려서 안 지저분하면 이삼일에 한 번 정도 했었다. 수염 자라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 그렇게 티 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염 정도만 면도하고 살다가 치마를 입고 싶어서 수염 말고 다른 데도 제모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면도기를 처음으로 댄 것은 다리이다. 얼굴보다 더 먼저 댔다. 고등학교 때 여름에 반바지를 입는데, 덥수룩한 다리털이 괜히 부끄러워 면도기로 깔끔하게 밀었었다. 그다음에 한동안 편안하게 반바지를 입고 다녔다. 그러나 다리털이 자라면서 까슬까슬 너무 따가워 다음부터는 다리털을 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치마를 처음 입을 때 어떻게 할까 하다가 레그 트리머라는 걸로 깎아봤다. 약간씩 걸리는 그 느낌이 별로였다. 깔끔하게 되지도 않아서 뭐지 생각했는데 다리털을 적당히 정리하는 용도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정리하고 난 다음 주변에 떨어진 다리털을 롤 클리너로 열심히 청소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다음부터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다음에 사용한 것은 제모 크림이다. 스패츌러로 다리에 바르고 시간이 지난 다음 스패츌러를 이용해 다시 밀기만 된다기에 사용했다. 기다리는 것은 굉장히 지루했다. 털도 그렇게 깔끔하게 제거되지 않았다. 욕실 배수구에 모인 다리털은 치우기도 번거로웠다. 결국, 티 많이 나는 것은 족집게로 뽑아야만 했다. 다시 길 때 느낌은 다리털을 깎았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아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왁싱테이프를 사용했다. 깔끔했다. 뽑힐 때 좀 아프긴 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고 빠르게 뽑을 수 있어 좋았다. 털이 너무 길면 잘 안 뽑히긴 했지만, 그런 것은 몇 개 없어 족집게로 뽑을 수 있었다. 거기에다 빠진 털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청소하기 불편하지도 않았다.

다리털을 제모한 후부터 방을 청소할 때 짧은 털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 제모가 내 방을 덜 더럽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제모가 좋아졌다. 그래서 더 많은 곳을 제모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제모는 배꼽 밑 털과 성기 주변의 음모였다. 왁싱테이프를 쓰기는 무서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족집게로 뽑았다. 족집게로 뽑았는데, 오래 걸리고 아프기만 했다. 그래도 적당한 범위를 제거했더니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살이 부드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씻었을 때 성기 주변을 닦기만 해도 빠르게 말라서 좋았다.

적당히 제거한 후에는 좀 깔끔하게 제거하고 싶어서 용기를 내 왁싱 테이프를 사용했다. 연약한 살이 뜯어지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며 사용했다. 살은 뜯어지지 않았지만, 털이 뽑히며 핏방울이 맺혔다. 급하게 일회용 알코올 솜을 뜯어 닦아냈다. 좀 아픈 느낌도 들었지만, 얼른 끝내고 싶어 다 했다. 손과 왁싱테이프에는 피가 조금씩 묻어 있었다. 다 끝나고 다시 알코올 솜으로 닦아내고 피가 멎기를 기다렸다. 피는 곧 멎었다. 그다음 날부터 살이 부드러웠고, 사타구니 주변이 습하지 않고 뽀송뽀송한 느낌이 들었다. 속옷을 갈아입을 때도 속옷의 상태가 이전보다 깔끔했고, 방바닥에는 털이 더 보이지 않았다.

곧 문제가 생겼다. 목욕탕에 가고 싶은데 부끄러운 마음에 목욕탕에 갈 수 없었다. 너무 깔끔하게 뽑아낸 탓에 어린이가 된 기분이 들어 부끄러웠다. 그래도 성기 주변에 털이 좀 있어야지 없으니 부끄러웠다. 그래서 한참을 기다려 음모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야 목욕탕에 다닐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났을 때 음모를 다시 좀 정리하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번에는 제모 크림을 사용했다. 제모 크림은 최악이었다. 따갑고 쓰렸다. 설명서를 봤더니 그런 데는 사용하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한 덕에 아프기만 했다. 그래서 얼마 제모도 못 하고 쓰린 부분을 부여잡을 수도 없어서 아픔이 없어질 때까지 한참 고생했다. 그 쓰린 걸 좀 줄일 거라고 한동안 수딩젤을 발랐다. 거의 두 주가 지난 후에야 아픔이 사라졌고, 한동안 주변만 제모했다.

치마를 한동안 못 입을 상황이 되면서 수염을 제외한 부분은 한동안 제모하지 않았다. 수염 정도나 제모했다. 얼굴용 왁싱테이프로 시도했는데, 접착력도 약하고 수염도 짧아서 제모가 그렇게 잘 안 됐다. 수염같이 굵고 뻣뻣한 털이 아니라 솜털같이 가늘고 부드러운 털을 위한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족집게로 수염을 뽑았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턱과 입술 주변에 염증이 생기지 않았다. 간혹 생기긴 했는데, 그런 건 수염이 피부 안쪽으로 자란 경우였다. 괜히 너무 신경 쓰여 바늘로 찌르고 살짝 털을 들어 올려 뺐다. 털은 엄청나게 길었고, 뽑자 곧 염증이 가라앉고 시원했다.

면도기를 아예 안 쓰는 것은 아니다. 다리털을 다시 제모하면서 애매하게 길어 왁싱 테이프 사용하기 힘들 때 면도기로 밀었다. 얼굴의 솜털이 많이 길었을 때도 면도기로 살살 면도했다. 매일 면도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가 크게 상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면도날도 전용 도구로 깔끔하게 닦아도 매일 면도할 때는 항상 상처가 났는데, 가끔 하니 상처가 잘 나지 않았다.

요놈의 제모, 하자니 번거롭고 안 하자니 괜히 찝찝하다. 면도기를 쓰자니 아프고, 안 쓰자니 번거롭다. 그렇다고 넓은 범위를 레이저 제모하러 가기도 부끄럽고 부담된다. 제모를 처음부터 안 했으면 몰라도 한 번 하고 났더니 그 시원한 기분에 자꾸 하게 된다. 이젠 미용이 목적이 아니라, 내 기분을 위한 것이 됐다. 괜히 내가 변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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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오늘의미모 라는 태그로 화장한 후의 모습을 셀카로 찍어 올린다. 상의로 블라우스를 입기도 하고, 셔츠나 후드티를 입기도 한다. 가끔은 다른 사진도 올린다. 전신을 찍을 수 있는 거울이 있으면 전신을 찍어 올린다. 스타킹 신고 반바지 입은 모습을 올렸을 때 이런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예전의 멋있는 모습은 어디 갔나요?"

내 답은 '난 언제나 멋있는데?'였다. 난 내가 꾸미는 행위를 즐기고, 내 삶을 당당하게 살아간다. 얼마나 멋진가? 난 부끄럽게 살지 않는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오늘의미모 셀카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너 왜 계속 그러고 다니냐?, 왜 계속 여장하고 다니냐고 한두 번은 장난인 줄 알았다."

좀 당황스러웠다. 나는 여장한 적이 없다. '이게 뭐가 여장이에요?'라고 답하긴 했지만, 전에 겪었던 나보고 미쳤다고 한 녀석이 생각나 글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여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여장02(女裝) 「명사」 남자가 여자처럼 차림. 또는 그런 차림새.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반대말 남장01(男裝) 「명사」 여자가 남자처럼 차림. 또는 그런 차림새.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중 중 소수자의 의사를 별로 존중하지 않고 소수자 억압에 관한 의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립국어원의 정의가 낱말의 '뜻'이라고 불리는 게 제일 싫다. 언어의 정의는 헤게모니 싸움인데, 그 헤게모니 싸움을 피하는 척 강자의 처지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빌려온 것은 내가 인식할 수 있는 한계 때문이다. 내가 소수자이기 때문에 비소수자의 이야기를 할 때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빌려와야만 한다. 그래야 소수자 입장에서 그 인식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하면 난 저 정의에 따른다고 해도 여장한 적이 없다. 물론 나는 화장하고 다닌다. 블라우스도 입고, 스타킹을 신고 반바지나 치마를 입기도 한다. 화장은 화장대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할 뿐이고 딱히 여성용이라고 표시되어 판매되는 상품도 아니다. 스타킹도 뭐 여성용이라고 나오지도 않는다. 반바지도 마찬가지. 치마나 블라우스는 여성복 분류로 판매되긴 하지만 내 몸에 맞아서 입을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여장이라 부르기도 황당한 게 나는 여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 나는 여자처럼 차린다는 것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내가 입고 싶다고 생각한 대로 입는다. 여자처럼 차린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처음 입을 때 용기를 내어 입긴 했지만, 타인의 무지한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처음 화장할 때에도 용기를 내긴 했지만, 그건 내 화장의 수준 때문이지 화장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여자처럼'이라는 내 인식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여장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나는 내 젠더를 고민하는 사람 젠더 퀘스처너(Gender Questioner)[각주:1]이다. 젠더퀴어[각주:2] 혹은 논바이너리(Non-Binary)[각주:3] 쪽으로 고민하고 있다. 안드로진[각주:4] 내지 뉴트로이스[각주:5] 혹은 데미메일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100% 남자가 맞는지부터 의문을 품고 있으므로 여장의 전제인 남자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젠더 고민 끝에 나는 100% 남자라고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첫째에서 말한 여자처럼 차림새를 가꾸는 것 자체에 의문을 가진 이상 여장이 되기 힘들다.

셋째, 반대로 남장을 끌고 와보자. 여자가 남자처럼 차려입는 것은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서 남성만이 입는 옷이 뭐가 있을까? 없다. 또 여자는 반드시 화장해야 하나? 아니다. 화장하지 않는 여자도 있다. 여장의 반의어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금 무슨 사회적 의미가 있는 단어인가? 단어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도 남자가 바지를 입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바지를 입고 화장을 하지 않는 여자가 많다고 그에 빗대어 여장했다고 할 것인가?

난 내 생물학적 성별이 XY 염색체의 남성이라 추정[각주:6]하고 있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0세기에 태어난 남성을 가리키는 1로 지정 성별은 남성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성역할을 강제로 부여받아 산다. 난 그 성역할을 강제하는 게 싫다. 내가 어떻게 생겼든 어떻게 살든 나는 성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존중받고 싶다. 젠더라는 프레임으로 나를 보게 하고 싶지 않다.

  1. 자기 자신의 젠더에 의문을 품는 사람 [본문으로]
  2. 성정체성 소수자. [본문으로]
  3. 성정체성 소수자로 젠더 이분법(여성과 남성으로만 구분)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 [본문으로]
  4. 남성을 뜻하는 Andro와 여성을 뜻하는 Gyne의 합성으로 양쪽의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다. 바이젠더가 왔다갔다 하는 것이라면 안드로진은 모두 섞여 있는 상태를 뜻한다. [본문으로]
  5. Neutrois,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에 가깝다. 중성 정도? [본문으로]
  6. 검사한 적 없으니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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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치마를 입고 외출했다. 며칠 전 바지 위에 레이어드해서 입긴 했다. 그건 덧댄 것이지 치마를 입었다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했다. 맨다리 혹은 스타킹이나 레깅스에 치마만 입어야 치마를 입은 느낌이 난다. 이렇게 치마를 입고 외출한 건 11개월 만이다.

며칠 전 스타킹에 반바지를 입었을 때 신은 80데니어 스타킹은 꽃샘추위를 막기에는 좀 부족했다. 그래서 좀 더 따뜻해지면 치마나 반바지를 다시 입을까? 아니면 따뜻하게 입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었다. 어제 마트 들렀을 때 150데니어 스타킹이 보여 샀다. 혹시나 해서 150데니어 스타킹을 신었더니 훨씬 나았다. 그래서 오늘 치마를 입고 나올 수 있었다.

앉았을 때 무릎 윗부분에서 한 뼘(25cm) 정도인데, H라인이라 그런가? 쪼그려 앉아 신발을 신을 때 엉덩이가 보일 것 같았다. 살펴보니 엉덩이 쪽이 굴곡지면서 뒤쪽만 많이 올라가서 밑으로 보면 엉덩이 쪽이 보였다. 스타킹 속으로 비치는 내 속옷을 보고 민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옷으로 드로즈를 입었는데, 보이면 민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삼각팬티로 입고 싶어졌다. 집에 삼각팬티가 없는데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웃음이 나왔다. '속옷이 보일 것을 가정하고 속옷을 입으려고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마 속을 안 보여줄 거고, 남도 안 봐야 하는 건데, 남 보기에 이 속옷이 어색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

밑에 입는 속옷은 기능적으로 만들어졌다. 어느 기저귀 광고에서 여아용, 남아용은 흡수 면이 중요한 거라는 것처럼 여성용 팬티는 밑부분에, 남성용 팬티는 앞부분에 면으로 된 흡습부가 있다. 성기의 모양과 방향에 따라 분비물 흡수 때문에 입는 속옷을 두고 그게 보일 것을 먼저 생각했다니 우스웠다. 평소에 속옷을 장식용으로 입지도 않는 주제에!


치마를 입고 외출해도 딱히 갈 데가 없다. 스터디 모임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다 보니 어디 놀러 갈 생각도 못 했다. 그냥 기분 내려고 항상 꾸며 입는데, 카페에 앉아 공부만 하려니 입었다는 만족감 외에는 없다. 오히려 화장실 갈 때 다른 사람들이 불편할까 걱정만 된다. 미니스커트 입어서 화장실에서 소변기에 소변 눌 때 편하긴 한데, 드나들 때 다른 사람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불편하다. 바지를 입고 들어가도 사람들이 당황하는데, 치마 입고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더 당황스러워한다.

짧은 치마 입고 남자 화장실에 안 가본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치마 입고 다닌 초기에는 들어가면 항상 좌변기를 찾아서 들어가서 소변을 봤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덜 띄고 싶었다. 눈에 띄기 위해 입은 것도 아니라 상호 불편한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덜 보이기 위해 들어갔다. 하지만, 내가 익숙해지면서 그냥 들어가서 소변기에 누고는 했다. 엉덩이가 보일락 말락 치마 뒤쪽도 올라가는 게 좀 민망하긴 하지만, 서서 소변 보는 게 빠르고 편하긴 하니까 편한 대로 행동했다.


오랜만에 치마를 입으니 이것저것 걱정만 많다. 기분 좋은데 어색한 이 기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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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스타킹을 자주 신었다. 남자아이지만 반바지에 스타킹 신는 모양새는 별것 아니었다. 당연히 신어야 하는 것이었다. 난 어릴 때 보이스카우트에서 몇 년을 활동했다. 단복에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스타킹이라 안 신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남성은 스타킹을 신을 일이 점점 없어졌다. 줄어들다 못해 없어졌다. 남성이 스타킹을 신는다는 생각도 못 할뿐더러 스타킹이라는 말이 남성의 입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민망했다. 아니면 성적인 농담을 할 때나 이야기를 할 때나 이야기가 오갈 뿐. 스타킹은 일상과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반바지 입을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사춘기 때는 다리털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까 민망했다. 한 번은 면도기로 털을 싹 밀기도 했었다. 나중에 20대가 되어서야 털에 덜 민감해졌고 반바지를 좀 편하게 입었다. 반바지를 입는다고 해도 무릎 정도 오는 게 거의 전부였다. 나도 그렇게 따라 입었었다. 그런데, 난 그런 반바지가 활동하기 불편했다.

언젠가 허벅지 중간보다 더 올라오는 짧은 바지를 사서 입기 시작했다. 짧은 바지를 입으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입는 본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민망하게 여겼다. 왜 여성들이 핫팬츠라고 불리는 그렇게 짧은 반바지를 입는 건 별로 민망하게 여기지 않는데, 남성이든 여성이든 남성이 입는 핫팬츠를 입는 것을 민망하게 여겼다. 남성용으로는 짧은 반바지가 잘 나오지도 않은 것이 어찌 보면 그런 통념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여성복 파는 데서 반바지를 샀다.

반바지를 사고 여름에만 입기 좀 아까웠다. 여자들은 추운 겨울에도 스타킹에 반바지를 입는데, 그것도 괜찮아 보였다. 치마도 입었던 내가 못 입을 게 뭐 있나 싶어서 오랜만에 스타킹 신고 반바지를 입었다. 날이 아직 덜 풀렸지만 바람에 다리가 시릴 정도는 아니었다. 차라리 긴 바지 입을 때에 바람이 직접 들어와 다리가 좀 더 시렸던 것 같다. 아직 다리털 제모가 좀 덜 되어 속이 덜 비치라고 150데니어 검은 스타킹을 신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조만간에는 팬티스타킹이 아닌 무릎 위 정도로만 올라오는 오버니삭스에도 한 번 도전해볼 생각이다. 내 패션에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다.


스타킹 신고 핫팬츠까지 입기 시작했으니 곧 다시 치마 입을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새로 산 청치마를 애써 청바지에 레이어드해서 입었는데, 곧 그냥 청치마만 입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다리가 좀 더 편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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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드레싱이라는 말이 있다. '특정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반대 성별이 입는 것으로 인식되는 옷을 입는 행위'라고 위키백과에 나와 있다. 드랙퀸(Drag Queen) 같이 유희를 목적으로 과장되게 여성처럼 치장하고 행동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성복장도착 같은 성적 도착증도 있다. 그 외에 변장이나 다른 것들을 목적으로 이성의 옷을 입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남성기가 있는 주민등록상 남성이다. 그리고 여성복이라고 하는 것들을 입는다.

나는 블라우스를 즐겨 입는다. 바지도 레깅스 같은 핏의 스키니 진을 즐겨 입었고, 여름이면 핫팬츠를 입고 다닌다. 거의 1년간은 입지 않기는 했지만 한동안 치마도 입고 다녔었다. 나는 유희 목적으로 입고 여성(이라고 생각되는 모습)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니 드랙퀸은 아니다. 성적 쾌감을 느끼지도 않으니 복장도착도 아니다. 그러면 나는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것일까?

나는 옷을 살 때 여성복 판매점에서 산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남성복은 잘 살펴보지 않는다. 바지를 사거나 티셔츠나 니트를 살 때도 불편함 없이 산다. 온라인에서는 내 사이즈 재둔 것과 비교해서 보면 입는 데 무리 없고, 오프라인에서는 단골 가게가 있어서 들어가면 편안하고 여유 있게 고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남성복보다 저렴하기도 하지만 모양이 다양해서 좋다. 그래서 여성복 판매점에서 산다. 

트위터에서 나와 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하게 옷을 입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FTM[각주:1] 트랜스젠더인데, 샬랄라 원피스나 치마 입기도 좋아한다고 했다. 일단 남성이 된 사람들인데 여성의 옷이라고 불리는 옷을 입는다. 그러면 이들은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것일까? 원래는 여성이었는데 남성이 되었다고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것일까?

난 옷을 입을 때 이성의 옷이라는 생각을 하고 입지 않는다. 성별을 둘로만 나누고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이분법적 사고도 싫어한다. 사회 통념상 치마나 블라우스는 여성만 입는 옷이다.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사람일 수는 있겠지만 나는 반대 성별의 옷을 입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지 예뻐 보여서 입으면 어울릴 것 같은 옷을 입을 뿐이다.

난 머리도 기르고 화장도 한다. 그렇게 보면 통념상 여성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나는 내 성별을 여러 가지로 고민하는 젠더 퀘스처너[각주:2]이지만 여성이 되려는 생각은 없으니 트랜스젠더도 아니다. 젠더 이분법으로부터도 탈출하고 싶고, 내가 보기에 예뻐 보이는 옷을 좀 자유롭게 입고 싶을 뿐이다.

  1. Female to Male [본문으로]
  2. 본인의 젠더에 대하여 고민하는 사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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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기 남자 화장실인데!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이 닫히는 찰나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거기 남자 화장실인데!"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치마를 입고 다닐 때였는데, 짧은 치마 입고 남자 화장실 들어갔을 때 밖에서 한 여성분이 외친 소리 이후 거의 1년만인 것 같다. 치마를 안 입은 지 (아니 못 입은 것에 가깝다) 11달쯤 되었으니 1년쯤 된 게 맞을 거다. 이유는 안다. 예쁜 다리(다리 예쁘다며 부럽다는 이야기 듣는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스키니 진에 파마한 것처럼 보이는 곱슬머리 그것도 어깨를 넘길 정도로 긴 머리의 뒷모습 때문에 여자인 줄 알았던 거다.

굳이 문을 열어 해명하는 것도 우스운 것 같아서 그냥 넘기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남자 같지 않아 여자라 생각하고 탄성을 내뱉는 것을 보면 짧은 머리의 여성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그것도 놀라실 분 아닐까?

분명 남성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성폭력 염려 때문에 놀랄 수는 있을 것이다. 여성이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 역시 그런 염려라고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외모로 편견을 갖고 소수자를 억압하는 것일 수 있다.


2. 내가 잘못 들어왔나?

화장실에 들어가서 소변을 볼 때면 항상 재빠르게 소변을 보는 자세를 취한다. 안 그러면 들어오며 뒷모습만 보고 놀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소변 보고 싶지만 다른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좌변기에서 대변을 보고 나오다 내 옆모습이나 뒷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해서 좀 주의한다.

손을 씻을 때는 거울을 보면서 손을 씻는다. 사람이 들어오면 표정을 굳힌 채 눈을 마주친다. 일단 생물학적으로 남자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안 그러면 들어오다 놀라서 도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게 걱정되어 일부러 고개를 들고 손의 감각으로만 손을 씻는다.

소변기가 문 옆에 붙어 있어 들어오며 소변 누는 사람 얼굴을 볼 수 있어도 놀라서 되돌아 나가 남자 화장실 여부를 확인하는 사람도 있다. 얼굴을 보고도 머리가 긴 것 때문인지, 화장한 얼굴 때문인지 소변기에서 소변을 누는 모습을 보아도 놀라서 되돌아 나간다. 그럴 때면 내가 예쁜가 싶어 내 미모에 감탄하기도 한다.


3. 듣기 싫은 소리 촤르르르르르

소변기에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좌변기 화장실로 들어가서 소변을 누는 사람들이 있다. 급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소리가 들린다. 물줄기가 물을 지속해서 치는 소리가 들린다. 굉장히 불쾌하다. 나는 나중에 큰 게 마려우면 들어가서 앉아서 눠야 하는데, 소변 줄기가 물을 치면서 여기저기 튈 것 아닌가? 심지어 바닥에도 축축하게 소변 흘린 자국이 있다. 앉아서 누면 될 것을 왜 서서 눌까?


젠더 중립 화장실이 필요해

3번까지는 모르겠지만, 1번과 2번과 같은 혼란을 피하려면 젠더 중립 화장실이 필요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젠더 중립 1인 화장실이다. 겉모습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의 화장실 이용 문제나 화장실의 줄이 성별에 따라 불균형하게 긴 모습도 해결할 수 있다.

장애인의 구분도 없이 누구나 한 데서 누구에게도 볼일 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배변을 해결할 수 있다. 더불어 장애인 화장실을 따로 둘 때 나타나는 관리 부실 문제도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직원의 화장실 관리도 성별을 가리지 않고 1인씩 들어가기 때문에 민망할 문제가 줄어든다. 또 1인씩 들어가기 때문에 화장실에 누가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 성폭력 예방에도 도움될 것이다.



사족 - 손 좀 씻어라.

화장실에 있으면 소변이든 대변이든 볼일 보고 손 안 씻고 나가는 남성들이 있다. 정말 싫다. 안 튈 것 같지만 다 튄다. 그리고 아무리 잘 털어도 조금씩은 남아 있고 그게 팬티에 조금씩 묻어난다. 남성 팬티는 앞에, 여성 팬티는 밑에 흡습 면이 만들어진 것은 이 성기 구조에 따른 차이 때문이다. 팬티에 묻어난 것이 성기에 어떻게든 묻을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성기 주변에서 땀이나 피지가 나와서 습해지기 때문에 냄새나거나 세균이 번식하기 쉽다. 그러니까 남자들 화장실 다녀올 때는 제발 손 좀 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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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깼다. 몸이 무겁다. 다시 눕고 싶다. 하지만 이제 출근해야 한다. 뻣뻣한 몸을 풀기 위해 몸을 이리 저리 비틀고 당겼다. 쉽게 풀리지 않는다. 잠에서 몇 번 깼기 때문일까? 너무 피곤하다. 그 피곤함을 억지로 풀기 위해 따뜻한 물로 씻기라도 해야지. 그냥은 몸이 너무 힘들다.

보일러의 전원을 켰다. 금방 뎁혀지겠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아까워 화장실로 움직인다. 찌뿌둥한 것을 풀기 위해 얼른 움직였다. 밖에 비가 오나? 우리 집 화장실은 밖에 있기 때문에 비가 오면 괜히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도 다녀와야 더 기운 난다.

변기에 앉았다. 피로 때문인지 원하는 만큼 나오지도 않는다. 비데로 잠깐 씻고 닦으려나 신호가 또 온다. 배도 살살 아프다. 하지만 잠시 뿐이다. 벌써 3분이나 앉아 있었다. 시간 끌지 말고 얼른 출근한 다음 화장실에 가는 수 밖에 없다.

다 씻고 나왔다. 어머니는 내 아침을 차려 주신다. 솔직히 먹을 시간이 없다. 차려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여유가 없다. 최소한 어느 정도 준비한 상태로 출근한 다음 최소 10분 전에는 도착해서 내 자리에 앉고 싶다. 좀 더 일찍 일어났으면 더 나을테지. 이렇게 속으로 생각해도 자는 중간에 몇 번 씩 깨다보니 일어나 출근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아직 7시 20분. 밥을 조금 먹을 여유가 있다. 밥을 반 넘게 덜어내고 밥을 먹었다. 이 정도 먹고 힘 내기는 힘들다. 그래도 굶는 것보다 낫다. 시간을 보면서 적당히 씹어 넘긴다. 밥 먹는 시간은 5분 남짓, 더 넘어가면 챙길 시간이 줄어든다. 전날 저녁에 대충 다 챙기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다시 뒤져봐야 한다. 그리고, 화장도 해야 한다.

그렇다. 나는 화장을 한다. 단골 화장품 가게에서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혹시 연극 배우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연기도 하고, 거의 매일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난 배우가 아니다. 내 무대는 교단이고, 소품은 칠판과 분필, 피아노이며, 무대 장치로 노트북과 프로젝터를 사용한다. 난 매일 출근 때마다 무대 의상을 고르고, 무대를 위한 분장을 한다.

메이크업 베이스 대신 CC크림을 썼다. 그리고 몇 몇 부분에 컨실러를 살짝 찍은 다음 문지른다. 그 다음 쿠션으로 두드린다. 적당히 된 것 같으면 눈썹을 그린다. 눈썹은 적당히 진하게만 그린다. 균형보다 좀 더 진한 인상을 주고 싶어서 눈썹을 그린다. 그 다음 같은 계열 색상의 아이라이너 두 종류를 사용해 하나는 눈 밑에 살살 그린다. 잘 보면 반짝 반짝, 대체로 잘 모른다. 속쌍꺼풀이라 티는 잘 안 나겠지만, 윗쪽 속눈썹에도 진한 색으로 살살 그린다. 그리고 립밤을 바른 다음 티슈로 닦아낸다. 그리고 다시 립밤을 바른다. 가끔은 립밤을 바르고 틴트를 바른 다음 입술을 문지르고 바로 티슈로 닦은 후 립밤을 덧칠한다. 컨투어링은 잠깐 시도 해본 적도 있지만, 내 얼굴이 워낙 입체적이라 쓸모 없는 것 같아 이젠 하지 않는다.

7시 40분이 넘었다. 모자를 쓰고, 가방을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 간다. 걸어가면 3분이지만, 뛰면 1분 남짓. 땀만 안 나면 좋겠다. 버스도 안 놓치고 싶다. 버스가 보인다. 바로 탔다. 앉을 자리가 없다. 우리 학교 학생도 있다. 화장하고 나오길 잘했다. 버스에서 화장하는 게 쉬운일도 아니지만, 솔직히 민망하다. 강한 인상을 보여주는 것은 좋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민망하다. 연습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큼 민망하다.

하루 종일 수업 준비를 하고 수업을 한다. 그외 다른 업무가 있으면 한다. 그러다보니 중간 중간 내 상태가 어떤지 거울 볼 정신이 없다. 수업하면서 준비하고 계산한대로 잘 되고 있는지 신경 쓰다보면 음악실도 내 얼굴도 점점 엉망이 되어 간다. 중간 중간 여학생들 교칙에 맞지 않게 화장한 것을 보면서 한숨도 내쉬어 본다. 특히 틴트를 엉망으로 발라 입술을 이상하게 물들인 것을 볼 때 한숨이 더 크게 나온다. 바를 거면 좀 예쁘게 바르던가. 20~30년 전 심형래 펭귄 분장하며 입술 가운데만 위 아래로 빨갛게 칠한 것보다 못하게 수정테이프 그은 모양은 뭔지.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 얼굴을 바로 닦을까 나갔다올까 고민한다. 하지만, 피곤에 절어 곧 잠들어버린다. 잠깐 잠들고 일어나서는 나갈 의욕을 잃고 놀다가 느즈막하게 화장을 지운다. 반짝이는 눈가를 먼저 지우고, 클렌징 오일이나 클렌징 워터로 얼굴을 지우고 다시 세안을 한다.

이렇게 화장을 지우는 과정은 좀 귀찮다. 실은 화장하는 과정도 귀찮다. 그래도 무대 분장이라는 핑계로 출근 때마다 하고, 퇴근해서 지우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다 주말이 되면 하지말아야지 하다가도 외출하기 전 다시 화장을 한다. 자외선 차단제 대신한다는 핑계로 화장을 한다. 안 하면 못 나가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하고 나간다.

그리고 주말 저녁 마저도 일 하고 온 것 마냥 피곤한지 늘어져 있다.

내일 아침에도 다크써클은 여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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