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서 선임이 비누 주워달라고 하면 비누 줍지 마라."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 낄낄댔다. 나는 거기에 대고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너무 무력했다. 화를 낼 수도 없다. 기억에 대고 화를 낼 수 없는 노릇이니까. 그 뜻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미 몇년이나 지난 일일 뿐 아니라 앞으로 그 선배를 만날 일도 없다. 갑자기 떠올라서 수치스럽고 두렵기만 하다.

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 있는 그를 오래 쳐다보고 싶은데, 오래 쳐다볼 수 없었다. 한참 쳐다보면 그는 내게 왜냐고 물을 것 같다. 그러면 난 할 말이 없다. 자꾸 쳐다보고 싶을 뿐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진다. 내가 남자를 보고 두근 거리는 건 괜찮다. 나는 내가 남자도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문제는 갑자기 비누가 떠올라서 수치스럽고, 들키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두렵다.

다음날부터 그를 볼 일은 없을 거다. 잠깐 눈에 뭐가 씌었던 것처럼 그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분위기만 기억나고 내 두근거림만 기억난다. 두려움이 커졌다. 내가 그를 보고 두근거렸다는 걸 들켰으면 어떻게 할지 두렵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게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만 커졌다.

아무 일 없이 넘어갔다. 그는 눈치도 못 챘을 것이다. 좀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보니 이상한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 그 자체만으로 두려워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내가 사람을 보고 두근거리고 호감을 갖는 건 내 의지로 하는 게 아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반응이 나타나는 건데, 두려워하다니 이상하다.

그 선배의 혐오스런 농담 때문인 것 같다. 그 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났을 때 다른 선배를 예로 들며 그 선배가 굉장히 여성스러워서 게이 같다느니, 서울에서 여장한 걸 봤다느니 하며, 나 보고 꼭 닮았다며 낄낄댔다. 그렇게 수치심을 내게 줘서 수치심이 쌓이고 자기 검열을 한 것 같다.

지금은 눈을 피하지 않는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티를 낸다. 바이섹슈얼이라고 커밍아웃한 이후에는 두렵지 않다. 치마 입고 다닌지 오래 되다 보니 그 선배의 말은 이젠 별로 안 신경 쓰인다. 상처받아서 한동안 움츠러든 것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남자를 보고 두근거리지 않는다. 길거리를 다녀도 예쁘거나 잘생긴 여자는 많은데 잘생긴 남자가 진짜 안 보여서 그렇다. 난 얼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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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랜스젠더(Transgender)란?

트랜스젠더는 젠더(정신적인 성, 사회적·문화적 성)와 지정성별(출생시에 의사가 지정한 성)이 일치하지 않는 성소수자이다. 다르게 말하면 본인이 느끼는 자신의 성과 신체적인 성이 다른 사람이 바로 트랜스젠더다. 이런 트랜스젠더에는 성별 이분법에 따라 트랜스 여성(MTF: Male to Female)과 트랜스 남성(FTM: Female to Male)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non-binary transgender)라고 여성 혹은 남성 외에 제3의 성정체성을 갖는 트랜스 젠더도 있다.

제3의 성별 정체성이라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종류는 굉장히 많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정체성이 하나로 모여 존재하는 안드로진(Androgyne). 여성과 남성의 정체성이 따로 존재하며 변화하는 바이젠더(Bigender). 젠더 정체성이 없는 에이젠더(Agender). 에이젠더 중 하나로 성별 상징할 수 있는 것에 불편감(Dysphoria)을 느겨 제거하고자 하는 뉴트로이스(Neutrois). 성별 자체를 부정하는 젠더리스(Genderless). 성별 정체성이 유동적인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성별 정체성의 강도가 달라지는 젠더플럭스(Genderflux). 세 가지 성 정체성이 따로 존재하며 변화하는 트라이젠더(Trigender). 통합적으로 모든 성별의 성별 정체성을 갖고 있는 팬젠더(Pangender) 등 다양한 성별 정체성이 존재한다.


2. 성별 불쾌감(Gender dyshporia)

트랜스젠더가 본인이 정체화한 젠더와 다른 지정성별에서 느끼는 불쾌감을 젠더 디스포리아(gender dyshporia)라고 한다.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끼는 건 MTF와 FTM뿐 아니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들도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낀다.

성기를 비롯한 생식기관 뿐 아니라 성별의 상징으로 읽힐 수 있는 엉덩이나 가슴까지 다양한 데서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낀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성기뿐 아니라 체형, 목소리까지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낀다. 뉴트로이스의 경우는 성별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에 주로 생식기관과 가슴, 엉덩이 등 체형에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낀다. 안드로진의 경우 양성적인 면 때문에 생식기관보다 주로 가슴과 엉덩이 등 체형에만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낀다.

이런 젠더 디스포리아는 태아일 때 원인이 나타난다고 하며, 호르몬, 시상하부의 차이 등 다양한 학설이 있다.


3. 성전환(Sex Transition)

젠더 디스포리아가 강한 이들은 성전환을 거치고자 한다. 성전환을 한다는 건 의학적 조치 뿐 아니라 패싱이라고 하여 사회에서 외모가 자신이 정체화한 젠더로 통과될 수 있는 상태로 바뀌는 것까지 포함하여 본인이 본인의 성별 표현에 만족하는 상태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가 의학적으로 성전환을 하기 위해서 거치는 단계가 있다. 먼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젠더 디스포리아 진단, 호르몬 대체 요법(HRT: Hormone Replacement Therapy), 성전환 수술(SRS: Sex Reassignment Surgery)이다.

정신과 진단은 유명한 병·의원이 있지만, 임상심리사가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이면 어디든 진단이 가능하다. 임상심리사를 두지 않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진단이 불가능하다. 성전환증 진단을 위해서 종합심리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종합심리검사는 특별하게 트랜스젠더만을 위한 검사는 아니고, 정신건강의학과의 일반적 심리 검사이다. 문장완성 검사, 트라우마 검사, 지능검사, 다면적 인성 검사, 로흐샤르 검사, 그림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시행한다. 여기에 성별과 관련한 수치도 있으며 이 검사 결과에 따라 임상심리사가 종합 의견을 내고, 의사는 이 검사 결과와 임상심리사의 의견을 종합하여 진단을 내리게 된다.

진단 결과에 따라 보통 F64.x의 진단을 받게 된다. F64.x는 성전환과 관련한 진단 코드이다. F64.0은 성전환증 혹은 성별 불쾌감이라는 명칭이며 호르몬 대체 요법 및 성전환 수술이 가능하고 성별 정정을 위해 꼭 필요하다. F64.9는 상세불명의 성주체성 장애로 보통 호르몬 대체 요법까지만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진단은 모두 최종 판단으로만 나오는 것은 아니고 임상적 추정으로 나오기도 한다.

진단 결과에 따라 먼저 호르몬 대체 요법을 하게 된다. 주로 수도권에 있는 산부인과 비뇨기과 병·의원이나 일부 대학병원에서 처방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기존에 하는 곳이 적다보니 트랜스젠더 개인이 찾아가서 요구해서 약을 구해 처방하는 경우도 있다.

호르몬 대체 요법을 시작하기 전 보통 간 기능과 신장 기능 및 호르몬 수치를 검사하고 시작하게 된다. 이 검사는 피를 뽑아 검사하며 개인 의원에서는 10만원 이하의 비용을 요구한다. 여성호르몬 주사의 경우 회당 2만원 남짓 비용이 든다. 그 외에 호르몬 억제제와 호르몬제를 병행한다.

성전환 수술의 경우 생식기 제거 및 외성기 재건 수술, 유방 확대 혹은 축소 수술 등을 하게 된다. 그 외에 MTF의 경우 목소리 수술과 성형수술도 많이 받는 편이다. 뉴트로이스는 생식기관 제거 수술, 지정성별 여성 안드로진의 경우 유방 축소 수술 등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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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매리 제인은 두 가지였다. 스파이더맨의 연인으로 나오는 매리 제인, 그리고 마리화나의 속칭인 매리 제인이다. 전자는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보면서 알게 되었고, 후자는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다 새로운 매리 제인을 알게 된 건 하이힐을 신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힐을 찾다 알게 되었다.

매리 제인은 하나 이상의 끈이 발등을 지나는 구두인데, 여러 가지 변형이 많다. 높은 굽이 있는 매리 제인도 있고, 낮은 굽이 있는 매리 제인도 있다. 가보시가 있는 플랫폼 형태도 있고, 구두 앞이 뾰족한 형태, 둔한 형태 등 다양하게 있다.

처음에는 발 크기가 260mm라 조금 큰 사이즈만 찾아봤다. 모양을 먼저 보기에는 발 크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았다. 그렇게 찾다 보니 몇 종류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펌프스 같이 끈이 없는 건 벗겨질까 두려웠고, 조금 무난하고 안 벗겨질만 한 걸 찾았다. 그게 매리 제인이었다.

4.5cm의 높지 않은 굽으로 주문했다. 260mm에 4.5cm 굽이면 각도 그렇게 높지 않아 크게 불편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신었을 때는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힐이 왜 불편하다는 건지 몰랐다. 그런데 한 두 시간쯤 지나고 보니 발가락부터 시작해 발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적응하고 7월 15일 퀴어퍼레이드 때 7~8cm짜리 힐을 신어보고 싶었는데, 가능할지 두려워졌다. 높지도 않은 신발인데 아팠다. 그나마 매리 제인 슈즈라 발등에 끈이 있어서 발이 덜 움직여 덜 아픈 것 같은데 높은 힐 신으면 내가 과연 몇 시간이나 걸을 수 있을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일단은 적응 중이다. 그나마 발이 붓지 않아 며칠 연속으로 신고 있다. 난 과연 퀴어퍼레이드에서 힐을 신을 수 있을까? 아니, 이 4.5cm 굽의 매리 제인 슈즈라도 제대로 신고 걸을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아이폰이 출시되고, 대한민국에는 아이폰이 출시될 가능성이나 있을지 짐작도 못 하던 그 시절 일이다. 탁현민의 <남자 마음 설명서>가 출간된 지 1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 책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아아, 조금 일찍 알았다면 나도 그 자부심이 가득하고 끈끈한 남성 연대에 낄 수 있었을까?

난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다. 그때 힘들었던 그 일을 몇몇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털어놓았을 때, 한 놈은 "그 여자 나한테 소개시켜줘라."라고 했다. 난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일이 누구에게는 굉장히 부러운 일이었다. 나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인데, 그놈이나 탁현민에게는 부러울 일인 것이다.

그 시절 나는 거의 매일 섹스를 했다. 거의 매일 싸웠고, 거의 매일 자살 소동이 있었다. 그는 집착이 굉장히 심했다. 죽어버리겠다며 위협했고, 내게 항상 큰소리쳤다. 그렇게 매일 같이 소동이 있고 나서 가라앉으면 그의 마음이든 나의 마음이든 달래기 위해 같이 요리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리고, 집에 보낼 수 없었다. 앞에 소동을 벌인 이유가 내가 그에게 이제 집에 가라고 했기 때문이라서 그렇다.

그는 함께 밤을 보내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섹스를 좋아했다. 그런데, 콘돔을 감이 안 좋다고 싫어했다. 하지만 임신에 대한 공포가 심했다. 끊임없이 섹스를 요구하면서도 콘돔을 하지 말자고도 계속 요구했다. 임신 걱정 심하지 않느냐 그러면 피임약이라도 먹으라고 했더니 피임약은 여자 몸에 좋지 않다고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콘돔을 했는데, 자꾸 콘돔을 하지 말자고 했다.

콘돔을 하든 안 하든 달라질 건 없었다. 다음날부터 불안에 떨며 임신 테스터를 사올 것을 요구했다. 두 주 후에 해야 한다고 해도 기어코 당장 확인해야겠다며 사오라고 했다. 참고 섹스를 하지 말고 두 주 기다리고 테스트를 해보자 했지만, 기다리는 것도, 섹스를 하지 않는 것도 모두 싫어했다.

난 섹스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다 못해 점점 두려웠다. 발기 부전이 생겼다. 발기가 안 되면 안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조루가 생겼다. 빨리 끝내면 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지루가 생겼다. 그가 오르가즘을 느낄 정도만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내가 사정하지 않는 것도 싫어했다.

나중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월경전증후군(PMS)이 굉장히 심하고 긴 편이었으며 월경 주기도 굉장히 불규칙했다. 그게 자살 소동의 원인은 아니었지만, 정도가 심한 것과 관계가 있던 것 같다. 그가 그렇게 집착했던 것은 어린 시절 당한 아동학대가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 아동학대의 원인은 어머니의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결혼이었다. 그래서 그 피임 실패로 나타나는 임신이 얼마나 큰 공포인지 알 수 있었다.

굉장히 힘든 경험이었지만, 그 자부심이 가득하고 끈끈한 남성 연대에 끼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 몸과 마음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처음 치마를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두려웠다. 당시에는 내 의도와 상관없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몰라서 굉장히 두려웠다. 그중 "너 혹시 여자가 되려고 하느냐?", "변태냐?" 따위의 이야기를 들을까 가장 두려웠다. 나름 성평등을 위한 운동을 겸해서 치마를 입으려고 했던 것인데, 남의 시선이 굉장히 두려웠다. 남의 시선을 무시하기를 좋아하면서 굉장히 두려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볍게 패션으로 시작해보고 싶었다. 예전에 몇몇 연예인이 했던 것처럼 바지 위에 랩스커트를 덧입는 식으로 시작하려고 했다. 다른 치마는 안 된다. 꼭 랩스커트여야만 했다. 전례가 있어서 꼭 랩스커트를 선택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짧으면, 바리스타 앞치마 같을 것 같기도 했고, 돌아다니기도 부담스럽고 그래서 적당히 무릎길이로 덧입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용기를 얻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나와 만나던 그가 용기를 줬다. 심지어 그는 내가 치마를 고를 때 함께 골라주기도 했다. 그때 그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던 건지, 그가 함께 골라줘서 행복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행복한 모습을 옷가게 점원에게 보여주었었다. 그일 뿐 아니라, 나중에 내가 굉장히 행복한 얼굴이었다는 이야기를 옷가게 점원에게 듣게 되며 어색함이 많이 사라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난 용기를 더 얻고 당당하게 스타킹을 신고 (당시는 겨울이라 안 신을 수는 없었다) 그 위에 치마를 입을 수 있었다.

이후로 데이트할 때 내가 치마를 입는 일도 잦았다.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나를 나로만 봤다. 다른 존재로 보지 않았다. 뭘 입든 그는 내 모습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5월부터 다시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난 치마를 입는 것을 그만두었고, 화장만 하고 다녔다.

생각해보면 화장을 본격적으로 한 것은 치마를 입은 다음이었다. 그 전에는 화장도 제대로 못 했다. 그냥 파운데이션 종류만 펴 바르고, 눈썹이나 조금 그린 정도였다. 그렇게 화장을 하면서 점차 색조 화장의 가짓수도 늘렸다. 나도 모르게 점점 풀메이크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치마 입는 것을 중단하고 화장만 하던 중, 멀리 떨어지게 되며 연인과 헤어졌다. 혼자 지내면서 화장한다고, 핫팬츠 입는다고 학생으로부터 성희롱당하고, 교무부장으로부터는 사직서 이야기에, 교원 모임 때 그 며칠 전 성희롱 예방 연수 내용과 다른 교감의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소리까지. 한동안 머리 아프고 힘든 일투성이였다. 2학기 말에 다른 학교 교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하기까지 하면서 마음이 많이 망가졌다.

시간이 지나 학년이 끝났다. 계약이 끝나고 난 새 직장을 얻지 못했다. 면접 보는 곳마다 머리 길이, 혹은 화장을 언급하며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난 백수가 됐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난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러다 여유가 생겼고, 치마를 다시 입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많이 달라졌다. 처음 치마 입을 때와 굉장히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성장하기도 했다. 많은 것을 공부했고, 더 많은 고민을 했다. 난 나를 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내 취향도 열렸다. 난 내가 선호하는 것을 알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지금 역시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지금 정확하게 내가 입기 원하는 스타일의 치마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어울리는지는 이제 뒤가 되었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우선이 되었다. 겨우 치마 하나일지 모르지만, 그 치마를 입으면서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취향을 발견하게 되었다.

겨우 한 번에 걸치는 한 조각의 옷, 치마 한 장이지만 나의 자아를 찾게 해주었고, 나의 패션 취향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 말고 여러 사람의 변화를 끌어낸 것 같다. 그 덕에 난 삶과 사람을 더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난 이전보다 좀 더 행복한 느낌이 든다. 가끔 힘들긴 하지만.

1. 모노아모리, 모노가미의 세상 삐딱하게 보기

모노아모리(Monoamory): 1대 1로 하는 독점 연애.

모노가미(Monogamy): 일부일처제.


현재 연애 중 많은 수가 모노아모리이다. 모노아모리는 사랑을 한 사람이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데서 독점 연애라고 볼 수 있다. 서로 간의 독점이라는 점에서 평등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 독점은 있을 수 없다. 독점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부르게 되어 집착이나 불평등한 관계가 된다. 한 명하고만 연애하지만 한 명을 독점하려는 마음이 집착을 부르거나 불평등한 관계를 만들게 된다. 쌍방이 협의한 과점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겠지만, 독점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되어야 한다는 등의 집착을 부를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잠시 눈 돌리는 것조차 불만을 부를 수 있다.

모노가미도 비슷하다. 배우자가 생기면 배우자하고만 관계를 맺어야 하고, 이외의 관계는 불륜이라고 보게 된다. 애초에 모노가미에 모노아모리가 아니라면, 열린 마음이기 때문에 불륜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하지만, 독점의 연애든 독점의 결혼이든 한 사람하고 만의 관계만을 정상적이며 윤리적으로 보므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의 정상성 집착이 일어나게 된다.

정상성 집착은 연인의 친구 조건을 한정시켜 버린다. 연인 이외의 관계는 시간 독점을 경쟁하는 상대가 된다. 친구의 조건은 블랙리스트(제외 조건)와 화이트리스트(가능 조건) 형태를 모두 써서 범위를 한정한다. 이 연인의 친구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은 만약 연인의 시간 할애가 연인 이상이 될 경우 질투나 경쟁의 대상이 된다. 연인 외의 기본값은 부동의의 대상이 되고, 연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이 허락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 당연하게 되면, 동의하지 않은 대상은 불륜 내지 비윤리적 연애의 대상이 된다.

모노아모리와 모노가미의 세상은 모노섹슈얼이 독점한 세상이기도 하다. 더 심하게는 이성애 중심주의의 세상이기도 하다. 이성애 중심일 경우 이성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기도 한다. 친구의 조건을 한정시켜 상대를 더 고립시킨다.


2. 폴리아모리가 주는 희망

폴리아모리(Polyamory): 3명 이상이 평등하고 열린 관계로 하는 비독점 연애. 다자간 비독점 연애, 다자간 연애.


소수의 폴리아모리스트(Polyamorist: 다자간 비독점 연애자)가 존재한다. 폴리아모리스트의 사랑은 여러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데서 비독점적이고, 자율적인 사랑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도 독점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독점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평등이 존재하기 힘들다. 하지만, 독점적 연애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비독점이란 역차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처럼 나와 연인의 관계를 불평등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애초에 지배적인 관계에서 평등 관계로의 진입은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다.

폴리아모리는 신뢰 관계와 평등 의식, 비독점적 사고를 기본으로 한다. 서로 간 신뢰가 없으면 통제를 하게 되고, 통제는 곧 평등을 깨는 것이며, 감정을 독점하는 행위이다. 단지 여럿을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폴리아모리를 시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간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합의, 평등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 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감정 소모만 일어날 수도 있는 어려운 일이다.

폴리아모리는 논모노섹슈얼들에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준다. 논모노섹슈얼에게 연애의 대상은 한 성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노아모리스트들이 질투를 하게 된다면 대상이 더 많아진다. 논모노섹슈얼은 애초에 친구의 대상이든 연애의 대상이든 한정 짓는 사람들이 아니다. 논모노섹슈얼이 모노아모리스트이고 모노아모리스트와 만났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독점을 원하게 되면 모두가 질투의 대상이므로 친구를 누구도 사귈 수 없게 된다.

폴리아모리는 어렵지만, 폴리아모리의 요소에는 모노아모리에 없는 희망이 있다. 비독점에 따른 신뢰와 평등,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려는 소통이다. 연인의 모든 시간과 사랑을 내가 가지려 하는 사람은 모든 감정마저 얻어 내고자 한다. 하지만, 사람은 한 사람에게 쏟을 수 있는 감정이 한정되고, 다른 사람을 통해 감정이 충전되기도 한다. 상대방을 놓아주고 감정과 체력을 충천할 시간을 주면, 내게 쏟는 감정의 양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3. 모노섹슈얼의 세상 삐딱하게 보기

모노섹슈얼(Monosexual): 한 가지의 성에게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성적 지향. 단성애.


모노섹슈얼은 성적끌림이 한쪽 성에 한정된다. 나누면 크게 두 가지쯤으로 볼 수 있다. 동성애자(Homosexual)와 이성애자(Heterosexual). 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 중 일부는 동성애자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긴다. 그런 사람은 이성을 바라볼 때 어떻게 성적대상화 하여 바라보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동성애자 중 일부는 양성애자 등의 논모노섹슈얼을 아직 이쪽으로 못 온 사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모노아모리가 대부분인 사회에서 논모노섹슈얼의 연애는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모노섹슈얼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상상력이 제한된다. 성적 끌림을 당연하게 여기고, 성적 끌림이 한쪽으로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떤 이성애자들은 성적 끌림을 강제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상상까지 한다. 한 성만으로 성적 끌림이 존재한다는 편협한 상상력 때문이다.

친구의 범위를 제한하거나 특정 성적 지향을 연애에 있어 안전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이성애자의 경우 이성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동성애자를 바라볼 때 제3의 성 취급을 하며 이성이 아니지만 안전한 존재라고 무성적 존재 취급하기도 한다. 난 홍석천 씨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라는 컨셉이 슬프다.


4. 에이섹슈얼, 논모노섹슈얼이 주는 교훈

에이섹슈얼(Asexual):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성적 지향. 무성애. 연애 지향, 연애 비지향 모두 존재한다.

논모노섹슈얼(Non-monosexual): 두 가지 이상의 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성적 지향. 다성애.


무성애자는 성적 끌림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 이들은 연애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연애를 원할 경우라도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 무성애자와 연애를 할 때 그의 성적 지향을 존중해야 한다. 물론, 연애 상대가 아니더라도 타인의 성적 지향은 존중해야 한다. 그의 모든 것을 독점하려 하지 않는 비독점적 태도가 필요하다.

논모노섹슈얼은 성적 끌림이 나타나는 성이 두 가지 이상이다. 바이섹슈얼 같은 두 성에게 성적 끌림이 나타나는 존재, 팬섹슈얼처럼 성에 관계없이 모두 성적 끌림이 나타나는 존재, 폴리섹슈얼 같이 세 성 이상에게 성적 끌림이 나타나는 존재 등 다양하다. 이들은 단성애자들 보다 성적 끌림의 범위가 넓으므로 이들은 모두와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들은 누구와도 성적 행위 없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모두 취향이 있고, 감정적 끌림이 나타나는 계기가 다르다. 모노섹슈얼이 독점한 세상, 특히 이성애자들이 독점한 세상에서는 이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배제한다. 이들의 존재와 삶의 방식을 상상한다면 좀 더 편안한 연애가 가능하지 않을까?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은 성적 끌림의 방향을 이야기한다. 이 성적 끌림의 방향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붙이는데, 이들을 묶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성적 끌림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크게 유성애(Allosexuality)와 무성애(Asexuality)로 분류할 수 있다. 유성애는 또 한 성의 사람만 좋아하는 모노섹슈얼(Monosexual, 단성애자)과 두 성 이상의 사람을 좋아하는 논모노섹슈얼(Non-monosexual, 비단성애자)로 나눌 수 있다.

모노(mono)는 '하나', '한 가지' 라는 뜻이다. 그러니 모노섹슈얼은 한 성에게만 성적 끌림이 존재한다. 이런 모노섹슈얼의 종류에는 이성애자(Heterosexual), 동성애자(Homosexual), 여성동성애자(Lesbian), 남성동성애자(Gay), 여성애자(Gyenphilia), 남성애자(Androphilia) 등이 있다.

논모노(non-mono)는 '하나가 아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논모노섹슈얼은 둘 이상의 성에게 성적 끌림이 존재한다. 멀티섹슈얼(Multisexual)이라고도 한다. 이런 논모노섹슈얼의 종류에는 양성애자(Bisexual), 양성애자보다 더 많은 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다성애자(Polysexual), 모든 성별 혹은 성별 구분 없이 성적 끌림을 느끼는 범성애자(Pansexual) 등이 있다.


1. 연애의 가지 뻗기 - 모노아모리와 폴리아모리

연애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모노아모리(Monoamory)라고 하는 1대 1로 하는 독점적 연애와 폴리아모리(Polyamory)라고 하는 다자간 비독점적 연애가 있다. 다수가 선택하는 연애는 모노아모리이다. 성적지향에 관계없이 대다수가 연애는 1대 1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명에게만 온전히 신경 쓰는 모노아모리를 선택하고, 그 외에 더 많은 연애 관계를 원할 경우 몰래 따로 연애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는 바람을 피운다고 한다.

폴리아모리는 연애의 가지를 늘린다. 비독점적으로 여럿과 연애를 한다. 여럿을 공평하게 사랑하고 그들의 다른 사랑을 인정해줘야 한다. 모노아모리 같은 독점적 연애관을 가진 이에게는 질투로 파국을 맞을 수 있는 형태이다. 그래서 폴리아모리는 상호간 비독점적이라는 원칙을 갖는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난잡할 수도 있지만, 상호 간 평등 관계를 전제하고 있다.

모노섹슈얼이든 논모노섹슈얼이든 대체로 모노아모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논모노섹슈얼들은 연애할 때 한 사람을 선택한 것이 한 성을 선택해서 연애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현재의 모습이나 과거의 연애 경험만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과연 당신은 논모노섹슈얼이 맞는지 의심하기도 한다. 논모노섹슈얼은 필수적으로 폴리아모리를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닌데, 이성애 중심주의를 벗어난 사람들도 단성애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해 끊임없이 모노섹슈얼로 끌어온다.

바이섹슈얼인데 현재 동성과 연애하거나 과거에 동성과 연애했다고 동성애자라고 하거나 현재 이성과 연애하거나 과거에 이성과 연애했다고 이성애자가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바이섹슈얼 같은 논모노섹슈얼이 동성애자들이 성적지향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거치는 과정 정도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런 행위는 논모노섹슈얼을 지우는 것이다.

폴리아모리를 하지 않는 논모노섹슈얼은 모노섹슈얼이 아니다. 논모노섹슈얼의 연애는 길이 여러 개가 있고 거기서 어디로 가지를 뻗느냐일 뿐이다. 논모노섹슈얼과 모노섹슈얼의 차이는 길의 개수 차이이다. 안 간다고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2. 논모노섹슈얼의 성적 끌림

논모노섹슈얼의 성적 끌림은 모두가 일정하지 않다. 모노섹슈얼에게도 취향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논모노섹슈얼에게도 취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모노섹슈얼처럼 성적인 끌림이 한 성에게만 지속해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논모노섹슈얼은 모노섹슈얼화된 것일까?

나는 안드로진이고 바이섹슈얼이다. 그런데, 나는 여성하고만 연애해봤다. 성적인 끌림이나 연애 감정도 대부분 여성에게만 느낀다. 태어나서 성적인 끌림을 느껴본, 혹은 연애 감정을 느껴본 남성은 한 명뿐이다. 그러면 그 한 명만 특이한 것이었고 나는 여성애자인 걸까? 아니다. 나는 분명 바이섹슈얼이다. 과거로 돌아가 남성에게 끌렸던 사건을 없앤다고 해도 나는 바이섹슈얼이다.

논모노섹슈얼이라는 성적 지향은 성적 끌림의 방향이 더 많을 뿐이다. 성적 에너지가 폭발하거나 통계적으로 여러 젠더를 공평하게 사랑하는 성적 지향이 아니다.

단성애자가 자신의 성적 지향과 다른 젠더와 섹스를 해봤다고 해서 단성애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만약 게이라고 하더라도 여성과 섹스를 할 가능성이 있다. 여성 이성애자라고 해도 여성과 섹스를 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본인의 지향이 어떤지 파악할 수도 있다.

논모노섹슈얼에게는 성적 끌림과 성 경험, 연애를 증명해야 할 의무가 없다. 그걸 증명하도록 하는 분위기나 묻는 행위는 논모노섹슈얼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다. 논모노섹슈얼은 존재한다. 현상이 나타나면 과거의 경험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현상은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지 그 현상을 있을 수 없다고 부정하거나 증명하라고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논모노섹슈얼은 존재한다. 내가 논모노섹슈얼이라고, 바이섹슈얼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논모노섹슈얼에서 모노섹슈얼로 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논모노섹슈얼, 바이섹슈얼, 팬섹슈얼, 폴리섹슈얼이라고 하면 그게 맞다. 타인이 의심하거나 의문을 품는 건 옳지 않다. 난 당신이 모노섹슈얼이라고 하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당신이 모노섹슈얼인지 의심하거나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안드로진 이야기를 했을 때도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 내 성적 지향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을까? 성적 지향에 관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젠더 퀴어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깨달은 것은 바이섹슈얼이고, 이 성적 지향은 젠더와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1. 성적 지향의 개념과 종류

성적 지향은 성적 감정이 향하는 방향이다. 한문으로는 性的指向, 영어로는 Sexual orientation 이렇게 쓴다. 모두 성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지 말한다. 이런 성적 지향이 동성을 향할 때는 같다(Homo-)에 성애(-sexual)를 붙여서 동성애(Homosexual)라고 부른다. 성적 지향이 이성을 향할 때 다르다(Hetero-)에 성애를 붙여서 이성애(Heterosexual)라고 한다. 이런 말은 성별 이분법적(Gender binary)인 구분으로 두 개의 성(Sex 혹은 Gender)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나 그 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방식의 구분이다.

두 개의 성, 즉 여성과 남성 외에도 다른 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좀 더 젠더 중립적인 말을 사용한다. 남성애(Androphilia)라는 말이나 여성애(Gynephilia)라는 말이 그것이다. 본인의 젠더를 드러내지 않고 어떤 성에게 성적으로 끌리는지 쓸 때 사용한다.

두 가지 성에게 성적 감정이 향할 때는 양성애(Bisexual)라고 한다. 보통 성별 이분법적 구분에 따라 여성과 남성 두 성 모두에게 성적 감정이 향하는 경우를 이야기한다. 나는 젠더 퀴어이지만, 아직은 직접 만난 사람이 남성과 여성 외에는 없어서 아직 성적으로 끌리는 경우가 여성과 남성뿐이라 양성애자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성적 감정이 누구도 향하지 않을 때 무성애(Asexual)라고 부른다. 젠더적인 구분 없이 사람 그 자체만을 향할 때는 범성애(Pansexual), 성적 감정이 특정 젠더를 구별하면서 셋 이상의 여러 젠더에 끌릴 때는 다성애(polysexuality)라고 한다. 이런 것들을 고민할 때 고민하는 그 상태를 퀘스쳐너리(Questionary)라고 쓴다. 퀘스쳐너리는 젠더에도 쓰인다.


2. 단성애자들 -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한 성에게만 성적 감정이 향한다. 이렇게 하나의 성만을 향한 성적 감정이 향하는 것을 단성애(Monosexuality)라고 한다. 단성애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 성소수자 중 하나인 동성애자를 포함한다.

동성애는 단성애 중 하나이므로 한 성에게만 성적 감정이 향한다. 게이(Gay)는 보통 남성 동성애자를 이야기한다. 남성인 남성애자라고 생각해도 좋다. 레즈비언(Lesbian)은 여성 동성애자를 이야기한다. 여성인 여성애자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성애자도 마찬가지로 단성애중 하나이므로 한 성에게만 성적 감정이 향한다. 남성인 여성애자, 여성인 남성애자를 이성애자라고 한다. 


3. 무성애자들 - 무낭만과 낭만

무성애자는 성적 감정이 어디로 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연애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이들에게는 연애 지향(Romantic orientaion)이라는 말을 따로 사용한다. 크게 무낭만(Aromantic)과 낭만(Romantic)으로 나눈다. 낭만적 감정이 생기지 않거나 연애에 관심이 없는 무낭만적 무성애(Aromantic Asexual)가 있고, 낭만적 감정이 생기며 순수하게 연애 감정만 있고 성적 끌림이 없는 낭만적 무성애(Romantic Asexual)이 있다. 낭만적 무성애는 연애 감정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 로맨틱 앞에 동성, 이성, 양성, 범성 등을 붙이기도 한다.

유성애와 무성애 사이에 정체성이 있는 회색인 사람들도 존재한다.


4. 양성애자

양성애는 보통 남성과 여성 두 성에게 성적 감정이 향한다. 어떤 이는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에 있는 스펙트럼 전체를 양성애자로 보기도 한다. 거의 한 성에게만 끌리고 다른 성에게는 가끔 끌리는 경우도 양성애자라고 하는데, 이를 두 성애 사이에 있는 긴 스펙트럼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성애자나 동성애자와는 다른 별개의 정체성으로 생각한다. 범성애자나 무성애자, 다성애자들을 생각할 때 이들을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의 스펙트럼에 넣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양성애자만 보면 그 안에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한다.


5. 성적 지향 고민과 두려움

나는 성적 지향 때문에 두려웠다. 고민을 한 시기도 있었지만, 고민 자체를 할 시간은 별로 없이 두려움이 훨씬 더 컸다. 내 성적 지향은 어떤 이들에게는 놀림거리이거나 혐오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다. 특히나 역겨웠고 무서웠던 놀림은 군대 가면 비누 줍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군대 가면 비누 줍지 말라는 것은 그 자체로도 강간인 혐오적 농담이기도 했지만 성소수자, 특히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에 대한 혐오가 가득한 농담이었다. 이 상황에서 내 성적 지향이 알려지면 어떤 취급을 받을지 두려웠다. 실제 군대 내 성추행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동성애자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컸는데, 실제로 그중 동성애자는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동성애자들은 군형법 92조 6항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색출 당해 성추행이나 다른 피해를 볼까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여하튼 남의 피해를 비난하거나 어떻게 이야기할 수도 없어 난 침묵해야 했다.

또 하나, 트랜스젠더, 크로스드레서[각주:1], 드랙퀸[각주:2], 게이를 구분 못 하는 선배들이 연락 안 되는 과거 (그들 기준으로) 여성스러웠던 한 선배와 내가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꾸 꺼냈었다. 그러면서 사람을 살살 게이라는 식으로 놀리거나 여장 관련 농담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고민할 틈도 없이 두렵기만 했다.

고민이 끝난 건 우연히 본 한 남성에게 끌림을 느꼈고, 거기에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을 때였다. 그전까지 여성 외에 한눈에 반해본 적 없었는데, 그게 처음이었다. 그때 내 성적 지향에 관한 고민을 완전히 끝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도 두려웠다. 내 마음을 들킬까, 들키면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두려웠다. 지향에 관한 고민은 결국 두려움만 남기고 끝났다.


6. 나는 바이섹슈얼이다.

나는 바이섹슈얼이다. 양성애자다. 나는 양성애자라는 말을 잘 안 쓴다. 솔직히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양성애자라는 말이 어색하기도 하다. 그냥 두 자로 줄여서 '바이'라고만 이야기 하고 싶다. 왜 그런지 몰라도 그러면 정말 편하다.

여성과 남성을 둘 다 좋아하지만, 나는 얼빠다. 예쁜 여자는 흔한데, 잘생기거나 예쁜 남자는 드물다. 그래서 그런가? 낭만적 감정이 생기는 비율이 여성99 대 남성 1에 가까울 정도이다. 그래서 솔직히 양성애자라고 말하면서도 부끄러울 때가 많다. 마음을 먼저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마음을 먼저 보기도 힘든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요즘은 동성애자의 인권 이야기를 먼저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나마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시화되고 그들의 인권이 먼저 챙겨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시화될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내 젠더 정체성인 안드로진은 말만 들어도 생소할 정도이다. 하지만, 바이섹슈얼, 양성애자라고 하면 그나마 알아듣기는 한다. 덜 알려져서 애초에 탄압될 일도 없긴 하지만, 얼른 가시화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다를 거 없다고. 모든 사람에게 연애 감정 갖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열어둔 건, 내 과거의 학생, 내 미래의 학생들을 생각해서 그렇다. 난 교사로서 정체성도 갖고 있다. 내가 가시화되고, 내가 열어두고 있으면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희망 내지, 의지할 곳이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양성애자다. 바이섹슈얼이다.

  1. Cross dresser, 반대 성별의 옷을 입는 사람들을 뜻한다. 남성의 경우 여성복을, 여성의 경우 남성복을 그 성의 방식 그대로 입고 꾸미는 사람들이다. [본문으로]
  2. Drag Queen 크로스드레서와 비슷하지만, 과장되게 꾸미고 쇼를 하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여성이 남성처럼 꾸미고 쇼를 하는 경우 드랙킹. [본문으로]

카페에서 나와 다른 카페로 가려고 버스를 탔다가 작년에 가르쳤던 학생들을 마주쳤다. 내가 치마 입고 다니는 걸 처음 안 한 학생이 어색하다, 이상하다며 이야기하기에 안드로진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안드로진을 검색해서 보여주었다.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것만 보고 바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길지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젠더의 개념과 표현

우리는 모두 어떤 성(Sex: 생물학적 성)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라 혹은 그와 별개로 젠더(Gender: 사회문화적 성)를 표현한다. 그 표현은 연기에 가까운데, 연기가 몸에 익어 연기인 줄도 모를 뿐이다. 우리는 대부분 성별 이분법(Gender binary) 따라 특정 성별을 연기 혹은 표현하고 있다. 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젠더가 일치하는 시스젠더(Cisgender)의 경우 남성은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형태로 젠더를 표현하며, 여성은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형태로 젠더를 표현한다.

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일반적으로 반대라고 부르는) 다른 성의 젠더를 가진 경우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고 한다. 이 트랜스젠더는 보통 MTF(Male to Female)라고 하는 트랜스 여성과 FTM(Female to Male)이라고 하는 트랜스 남성으로 구분한다. MTF는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형태로 젠더를 표현하며, FTM은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형태로 젠더를 표현한다. 이들은 많은 경우 호르몬을 맞고 원하는 형태로 성전환 수술을 한다.

다른 트랜스젠더도 존재하는데 이들을 젠더 퀴어(Gender queer, 소수 성 정체성)라고 한다. 성별 이분법에 따르지 않는다고 논바이너리(Non-binary) 트랜스 젠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에 해당하는 정체성으로는 두 개의 젠더를 가진 바이젠더(Bigender), 세 개의 젠더를 가진 트라이젠더(Trigender), 젠더에 관한 관념이 없는 젠더리스(Genderless), 젠더 정체성이 없는 에이젠더(Agender), 신체를 중성화하기를 원하는 제3의 성 뉴트로이스(Neutrois), 젠더가 유동적인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모든 성의 정체성을 가진 팬젠더(Pangender), 그리고 나의 성 정체성인 남성과 여성 젠더의 혼합 형태인 안드로진(Androgyne) 등등이 있다.


2. 안드로진(Androgyne, Androgyny)의 뜻과 젠더 표현

먼저 어원을 갖고 설명하면 남성이라는 뜻의 접두어 'Andro'와 여성이라는 뜻의 'Gyne(혹은 Gyny)'를 합한 단어이다. 말 그대로 남성과 여성을 합한 두 성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 젠더이다. 두 성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으니 성별 이분법에 따른 구분이 어렵다. 젠더 표현부터, 호칭, 신체까지 두 성의 특징을 모두 갖거나 두 성의 구분이 모호하다.

안드로진은 복장, 행동과 같은 젠더 표현을 지정 성별[각주:1]의 전형적인 형태로 나타내지 않는다. 성의 구분이 모호한 패션이나 두 성의 특성을 모두 나타내는 옷을 입는다. 나 같은 경우 치마와 블라우스 입기를 좋아해서 치마와 블라우스를 자주 입는다. 나는 옷 자체에 성별을 부여하지 않고 입기 때문에 지정 성별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고 모호하거나 어색해 보일 수도 있다.

호칭의 경우 신경 쓰는 사람은 성별 호칭을 불편해할 수도 있다. 지정 성별 남성 안드로진의 경우 형, 오빠, 삼촌,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같은 호칭, 지정 성별 여성 안드로진의 경우 언니, 누나, 이모, 고모 같은 호칭 등 성별이 강하게 드러나는 호칭을 불편해할 수 있다. 나는 호칭에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내 지정 성별 그대로 형, 오빠라고 불러도, 다르게 언니, 누나라고 불러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성별과 관계없는 김 선생님 호칭이 가장 마음에 들고 마음이 편안하긴 하지만, 상대의 버릇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신체의 경우 그대로 두는 안드로진도 있고, 변형시키는 안드로진도 있다. 지정 성별 여성인 안드로진의 경우 유방을 축소하는 수술을 받기도 하고, 반대로 지정 성별 남성인 안드로진의 경우 호르몬이나 수술로 유방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신체 변형에 관심이 없는 안드로진은 다른 형태의 젠더 표현만 신경 쓰거나, 아예 신경을 쓰지 않기도 한다. 나는 유방을 만들어 성별 인식을 좀 더 모호하게, 혹은 양쪽을 모두 드러내고 싶어 하는 쪽에 속한다.


3. 안드로진의 성적 지향

안드로진에게는 이성애나 동성애라는 표현이 어렵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이성애라는 말과 동성애라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 대신에 남성애, 여성애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 외의 성적 지향인 무성애, 양성애(혹은 다성애), 범성애는 다른 젠더와 똑같이 표현할 수 있다. 안드로진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성적 지향이 굉장히 여러 가지이다. 내 성적 지향은 양성애이다. 문제는 얼빠라… 남들 보기에는 여성애로 보기 쉽다.


4. 안드로진으로 정체화하기

안드로진이라는 말이 생소하다보니 안드로진이라는 정체성을 알기 전에 MTF 혹은 FTM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한다. 논바이너리 정체성 자체를 알기도 힘들다 보니, 그나마 알려진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으로만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젠더 퀘스쳐너리로 살다가 인터넷 검색 등으로 자신의 모습과 비슷한 사람을 찾다가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알면서 스스로를 대입하며 정체성을 찾는다.

내 정체화 과정은 좀 독특한 편이다. 나는 복장에 젠더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성평등 운동으로 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때야 마음이 편안해지며 성적 지향을 알리거나 알려지는 것에 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간신히 젠더에 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지정 성별 남성으로 태어나서 남성 젠더 표현만으로 살기 불편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안드로진으로 정체화한 지금에 와서야 그 불편함이나 어색함을 이해하고 있다.

난 분명 어릴 때부터 안드로진의 기미가 느껴졌다. 난 화장이나 여성복이라고 생각하던 옷에 대한 욕망이 있기도 했다. 바지만을 입는 데 불만이 있었고, 여성의 신체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한 편으로 지금 신체를 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성별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신체에서 큰 변화를 바라지도 않았다. 또 가부장적 남성을 굉장히 어려워하거나 가부장제를 두려워했고, 남성은 이래야 한다는 규범도 너무 힘들었다. 남성보다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여성이 편했는데, 여성과도 거리감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다른 점, 같은 점을 굉장히 다양한 데서 부분 부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여성이 되고 싶어 하는 건가 고민도 했고, 무엇일까 여러 가지 고민해봤는데, 난 남성과 여성 모두의 특징이 있고, 더 갖고 싶어 했다.


5. 내가 고민했던 젠더

나는 MTF 일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내 젠더에 의문을 품는 퀘스쳐너리 상태와 데미 메일(Demi male) 그러니까 반 남성 정도로만 생각해봤다. 젠더 플루이드라기에 나는 내 젠더가 움직인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바이 젠더라기에는 두 성이 또렷하지도 않았다. 나는 제3의 성이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성기를 없애고 싶은 욕망은 없었으니 뉴트로이스도 아니었고, 젠더가 없다는 생각도 안 했으니 에이젠더나 젠더리스도 아니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빼다가 안드로진에 관한 개념에 내 속에서 명확해질 수록 나는 지정 성별 그대로인 시스젠더가 아니었다. 안드로진이었다. 고민은 내 정체성과 관련된 것처럼 보이는 불명확한 개념들을 소거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6. 나는 안드로진이다.

나는 안드로진이다. 짧게 이렇게만 이야기하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이렇게만 이야기해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내 젠더 표현이 내 주변을 넘어 전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너무 나중은 힘들다.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당장이었으면 좋겠다. 내 정체성은 지금의 정체성이다. 나중의 정체성이 아니다. 그런 만큼 내 인권도 지금 챙겨야 할 인권이다. 나중에 챙겨도 되는 그런 인권이 아니다.

  1. 사회에서 지정한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성별이다. 주민등록번호 뒤 7자리 중 첫 번째 숫자가 홀수면 남자 짝수면 여자인데, 9와 0은 19세기에 태어난 남성과 여성, 1과 2는 20세기에 태어난 남성과 여성, 3과 4는 21세기에 태어난 남성과 여성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1. KASA 2018.06.30 13:47 신고

    안드로진이 뭔지 궁금해서 검색하다가 오게 되었는데요.. 본문을 봐도 안드로진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대충 언어적으로만 짚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제가 이해할때까지 확실하게 알아보는 스타일이라..

    1. 안드로진의 정의는 결국 신체의 성별(sex)와 관계없이 ""정신적, 사회적인 성별(gender)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닌 성정체성 "" 으로 생각하면 될까요?

    2. (제가 이해한게 맞다면) 1번까진 알겠는데, 남성성과 여성성의 정확한 정의를 잘 모르겠어요.

    현대사회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의 남성이 지닌 남성성, 여성이 지닌 여성성을 배척하고
    본질적인 의미의 성평등을 추구하지 않나요??

    특히 성 정체성을 성적지향과 분리해서 생각한다고해서 더욱 어렵습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어요.

    3. 신체적인 의미의 성이 아닌 정신적, 사회적인 성의 개념을 따로 두는 것이
    과연 본질적인 성정체성 확립과 성평등 이륙에 필요한 사항인지 의문이 듭니다.

    태어날 때 신체적 성별은 여자지만 (정신적, 사회적의미의) 남성성을 지니고 있어.
    태어날 때 신체적 성별은 남자지만 (정신적, 사회적의미의) 여성성을 지니고 있어.

    이걸 애초에 여성성, 남성성 분류하는 것 자체가 여러의미로 평등을 해치지 않나요?

    태어날때 성별이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신체적, 정신적 의미의 성정체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한다면..

    그렇다면 남성성, 여성성, 안드로진 등 여러가지 분류법이 불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 1. 중성으로 생각하셔도 좋고, 양성의 개념으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정체성의 이름을 찾다보니, 제게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어지는 이름을 가져온 것에 불과합니다.

      2-1. 저도 여성성과 남성성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사회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전통적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국가나 지역에 때라 근대 혹은 현대에 탄생했을 수도 있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개념이 저에게는 어렵습니다. 저도 이 글을 쓸 때보다 좀 더 복잡하게 정체화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전 여성성이나 남성성이라는 그 두 가지 모두와 맞지 않는 사람입니다.

      2-2.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은 분리할 수 없죠.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은 분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별정체성과 별개로 특정 형태의 성기 혹은 젠더에 성적으로 끌린다는 면에서 볼 때 분리 가능합니다. 제가 양성애자로 정체화한지 20년이 넘었지만, 양성애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범성애를 몰랐기 때문에 아직 덜 익숙해서 그런 건 아닐까? 이런 것을 비롯해 많은 의문이 있습니다.

      3. 정신적, 사회적인 성의 개념을 따로 두는 게 아니라, 특정 성역할을 사회가 강요하기 때문에 신체적인 의미의 성과 별개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중점을 두는 부분도 아니고, 사회가 바라보는 젠더라는 방식을 깨고 있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입장에서 인터섹스의 비가시화나 성적 불평등을 보았을 때 젠더의 해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제 정체성의 이름을 찾는 과정에서 젠더를 쪼개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젠더를 쪼개고 쪼개다 보면 언젠가는 젠더 자체가 해체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까지는 현재의 사회적, 법적 성과 싸우는 과정이 필요하죠. 거기에 균열을 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 KASA 2018.07.02 15:05 신고

      아아.. 감사합니다.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렵네요 ㅠ..

      말씀하신 젠더가 해체되는 사회시대가 언젠가 도래하면 좋겠습니다.

  2. 210N 2018.08.02 01:15 신고

    읽으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젠더플루이드와 안드로진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사회가 규정한 "남성성", "여성성"개념에서 자유로워져서 언젠가는 젠더를 지칭하는 용어가 없어질 만큼 젠더가 해체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이러한 용어들 역시 기존의 언어(남성과 여성을 규정해왔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일단은 학문적으로, 경험적으로 다양한 젠더들 간의 차이에 따라 분류하는 과정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언어에 의지할 수 밖에 없지만 이것 역시도 우리의 언어를 새롭게 만들고 정체성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이니까요..!

    • 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
      210N님 말씀대로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말을 계속 하다보면 분명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고, 새롭게 정체성의 이름을 만들 수 있겠죠? :)
      저도 기다립니다 :)

나는 남성이 되기를 주저한다. 나의 성적지향은 양성애(Bisexual)이고, 나의 성 정체성은 안드로진(Androgyne)이다. 그리고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남성이 되기를 주저하는 건 성 정체성과 페미니스트로서의 신념 때문만이 아니다. 내 안에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존재하고, 지정 성별 남성으로 혜택을 받았던 것들이 있다. 난 매개체로써, 도구로써 존재하고 싶지 않다. 나는 오로지 나로 존재하고 싶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단순한 유전자 전달 매개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전자 전달 매개체라고 해도 그건 생명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일 뿐, 내가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과는 관계없다. 가부장제는 자연 발생도 아닌데 인위적으로 나를 주체가 아닌 매개체로 만든다. 그래서 가부장제가 아직도 공고한 이곳에서 남성이 되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가부장제에서 남성은 지배적 성이다. 그래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렇다고 남성이 주체가 되는 건 아니다. 가부장제는 남성도 도구로 만든다. 성(姓)을 전달하는 집안의 명성과 가치를 대물림하거나 일으켜야 하는 매개체나 도구로 만든다.

나는 장남이고 장손이다. 결혼과 재생산은 나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이름으로 씌워졌다. 나에게 어떤 권리가 있냐고 물었을 때, 제사하고 대물림하는 게 권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나는 그게 어떻게 권리냐고, 그건 의무에 불과할 뿐이라고 맞섰다. 그리고 화가 나서 나는 비혼을 선언했다.

나는 내 유전자를 물려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없다. 내가 결혼을 하든, 누군가와 아이를 만들든, 입양하든 나는 내 정신적인 것을 알려줄 생각밖에 없다. 내가 성과 의무를 물려받았기에 당연히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려준다기보다 나를 알려주고 소통하고 싶을 뿐이다. 굳이 내 핏줄이 아니어도 전달할 수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유지를 잇는 의무를 지우고 싶지 않다. 다음 세대의 삶은 다음 세대가 선택하는 것인데, 그 선택을 못 하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가부장제는 다음 세대의 삶을 억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부장제에서 먼저 벗어나기 위해 남성이 되기를 주저한다.

나는 매개체가 아니라, 주체로서 살아가고 싶다. 나의 길은 전달자가 아니다.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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