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쁜 옷을 좋아한다. 옷을 사러 가면 별로 예쁜 옷이 없어 항상 고민했다. 조금이라도 예쁘다 싶으면 가격이 부담스럽거나 여성복으로 파는 것들이었다. 그런 여성복을 사볼까 하다가 다른 사람의 눈이 무서워서 구입해본 적이 없다. 사이즈가 안 맞을까 걱정, 이상하게 볼까 걱정. 걱정, 걱정, 걱정, 그렇게 걱정만 하며 내 취향을 피하기만 했다.

육지에서 2년 가량 살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내 상태는 엉망이었다. 마지막 1년에 겪었던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이었다. 그래도 만나는 사람이 생기면서 상태가 점점 좋아졌다. 하지만, 방황하게 되었다. 긴장이 아직 남아 있는 데다, 다가오는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로 방황을 선택한 것이다. 방황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던 중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변화를 줄까 고민하던 중 흥미가 생기는 구인 광고를 봤다. 교사를 하고 싶지만, 이곳이라면 잠시 교직을 벗어나서 일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음식과 관련되어 있고, 나 같은 성향이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쓰던 중 저항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내가 저항하지 않고 피했을 때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다시 저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환절기도 오고 해서 옷을 새로 사고 싶었다. 내가 입는 옷을 통해 큰 변화를 주고 싶었다. 이전에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항상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색을 입어서 튀고 또 튀었다. 그래도 나 나름 무난하다고 생각하고 입었을 뿐이었다. 이제 무난함의 범위를 넓혀보고 싶었다. 좀 더 튀게 입고 싶었다. 옷을 통해서도 저항하고 싶었다. 여자한테 폐끼치는 사이즈라고 하는 말, 젠더에 맞는 의상이라는 것에도 저항하고 싶었다.

치마가 입고 싶어졌다. 내가 보기에 바지보다 치마가 예쁜 것이 많았다. 예쁜 치마를 입어보자. 치마에 맞는 상의를 입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좀 두려웠다. 그래서 랩스커트를 선택해서 바지 위에 겹쳐 입을 생각을 하고 랩스커트를 주문했다. 계속 두려워서 직접 사러는 못 가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주문했다.

막상 결심하고 주문했는데, 복장도착이라며 변태 취급 받는 것은 아닐까? 난 여성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젠더를 바꾸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불안에 사로잡혀 사는구나, 왜 이렇게 살까? 답답해 하며 일단 주변에 여기 저기 물어봤다. 뭐 어떻냐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러고 치마를 입으려고 한다고 어머니한테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 왈 “여자 옷 아니냐?”

대답은 바지 위에 겹쳐 입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크로스 드레서로 행동하려는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 레깅스나 스타킹을 입을 생각도 했고, 여름에 맨다리도 해볼까 생각을 했었는데, 이게 이성의 옷을 입는 행위로 비춰지려나? 아니, 대체 여성복, 남성복이라는 개념이 뭐기에 그래? 치마는 남자한테 더 좋다는데. 그리고, 재봉이 발달하기 전에는 그런 거 안 가리고 치마였을텐데! 여자가 바지 입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나는 성별에 관계 없이 입고 싶은 옷을 입으려는 것인데, 이건 어떻게 설명을 할까? 유니섹스? 메트로섹슈얼? 왜 설명을 해야하는 거지? 난 젠더라는 것에도 저항하려는 건데. 내가 왜 젠더에 얽메이는 거지? 이렇게 갑갑한 마음을 하면서도 나를 설명할 말을 계속 찾아보았다. 젠더 비순응, 젠더 블라인드 정도가 가장 어울릴 것 같았다.

데이트를 하러 가면서 치마를 입었다. 바지 위에 치마. 이틀 연속 만났는데, 그는 하루는 바지, 하루는 치마. 좀 부러웠다. 나는 치마를 입는데 남들 눈을 걱정하는 남자, 그는 치마를 입는 게 사회적으로 자연스러운 여자. 그렇게 데이트를 하면서 남자인 내가 치마 입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속에 레깅스 입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어차피 남인데.”라면서 괜찮다고 했다. 그말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나를 그만큼 존중하는 것이었다. 그래 모두 남인데, 내가 아닌데, 뭘 그렇게 걱정했을까? 겨우 남의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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