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섯시쯤 일어나 열심히 화장하고 부족한 게 없는지 다시 점검했다. 그날은 집에 아무도 없을 거라 혹시나 없을 때 무슨 일 생길까 봐 집안에 이것저것 좀 찾아 점검할 수밖에 없었다. 강아지 밥도 주고, 문단속도 했더니 어느새 여덟시가 넘었다. 그래도 집이 멀지 않은 덕에 간신히 시간 맞춰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탑승 수속하고 보안검색대로 가기 전 출발장에서 보안요원에게 내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보안요원이 본인이 맞는지 확인했다. 보통은 금방 체크하고 주는데, 본인 생년월일, 이름을 물었다. 주민등록증 사진은 머리가 짧고 뒷자리가 1로 시작하는데, 막상 당사자는 화장도 진한 데다 오프숄더 블라우스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어 본인이 맞는지 당황했던 것 같다. 퀴어문화축제에 가는 길부터 괴상한(queer) 존재였다.

출발장을 지나 보안 검색을 끝내고, 열심히 걸었다. 비행기 출발 시각이 다 되어갔지만 굽 있는 걸 신고 뛰기는 아직 힘들어 열심히 걸었다. 방송으로 내 이름이 나왔다. 전화도 왔다. 그때 뛸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뛰어 비행기에 탔다. 비행기에 타서 자리에 앉았는데 어느새 서울이었다. 긴장과 피로 때문이었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열심히 걸어 지하철로 서울시청역까지 갔다. 서울광장을 찾아가는데, 분위기가 묘했다. 발랄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동성애 반대 집회하는 분들은 그분들대로 안내판을 들고 있었다. 이거 참 괴상한(queer) 모습이었다.

출구로 나왔더니 우산과 비옷을 파는 분들이 좌우로 엄청나게 있었다. 아직 비가 오고 있지는 않았지만, 비가 올 분위기였다. 난 미리 비옷을 준비해와서 그냥 지나쳐 들어갔다. 들어갔더니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부스도 굉장히 많았다. 대충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데 자세히 볼 생각으로 한번 쭉 돌아봤다.


줄이 조금만 길어도 접근하지 않다가 내가 후원하고 있는 앰네스티 부스가 보여 회원이라고 인사한 다음 가져온 과자를 드리고 굿즈를 받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여러 부스를 돌아보며 아는 사람을 만나면 가져온 말린 귤을 드렸다. 활동하는 커뮤니티 분들도 만나고, 페이스북으로만 알고 지내는 분들도 만나고, 제주에 오셔서 페미니즘 수업을 해주셨던 분 중 한 분인 이나영 교수님도 만났다.

이제 굿즈를 좀 받아볼까 하고 다니는데 여기저기 너무 줄이 길어서 꼭 갖고 싶었던 것을 먼저 찾았다.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모임 여행자> 부스에 가서 후원하고 젠더여행자를 위한 번역책자 <Non-binary>를 받았다. 그리고, 다른 데 가서 무지개 깃발, 무지개 뱃지, 안드로진 뱃지, 젠더퀴어 리본를 받았다.


중간중간 비가 많이 와서 너무 지쳤다. 그래서 돌아다니는 것을 포기했더니 제대로 체험하지는 못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봤는데, 웨딩드레스 입은 분도 멋졌고, 여기저기 멋지게 입은 분들 많았다. 그런 분들을 지켜보니 부러웠고 후회가 들었다. 괜히 몸매 생각하며 적당한 노출만 했는데, 몸매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다들 당당했다. 나는 좀 당당하지 못했다. 그래도 인터뷰 요청에 인터뷰도 하긴 했다.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종편인 티비 조선에서

퀴어퍼레이드 시간이 다 되어 일행들과 일찍 제일 앞쪽으로 갔다. 제일 앞은 트랜스젠더였다. 갔더니 트랜스젠더 깃발을 흔드는 분들이 보여 신났다. 행진 시작할 때쯤 비가 그쳤다. 많은 사람이 앞으로 몰려갔고 여러 사람이 다양한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가장 가까이 있었던 깃발은 대구 퀴어 문화 축제 깃발이었다.

행진할 때 앞서가는 트럭에서 분위기를 만들어 함께 춤추며 움직였다.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손에 트랜스젠더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좀 있었다. 중간에 유튜브로 구독하고 있는 파니님도 봤다. 파니님도 손에 트랜스젠더 깃발을 들고 있었다. 나도 자세히 보고 트랜스젠더 깃발 찾아볼 걸 아쉬웠다.

행진 중간중간 동성애 반대 팻말을 들고 외치는 분들을 보면 다 함께 환호성을 지르며 하트를 날렸다. 카페 같은 데 보여도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함께 있으니 즐거웠다. 따로 또 같이지만 함께 있으니 자긍심도 생기고 분위기 자체가 유쾌했다.

서울광장에 다시 도착하니 동성애 반대 트럭이 있었다. 수고했다면서 격려하나 싶더니 내년부터는 안 와도 된다면서 난리였다. 우스웠다. 그러면서 뒤에 오는 행렬들을 지켜봤다. 집단마다 힘이 남아있는 집단, 힘이 다 빠진 집단 재미있었다. 페미당당은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지는데 가슴이 찡했다.

일행과 빠져나가려는데, 제주에서 온 친구, 창원에서 온 친구, 서울에 사는 친구 다양한 친구들과 마주쳤다. 행복했다. 여기저기서 오랜만에 보는 아는 사람들!

숙소를 잡고 상의만 크롭티로 갈아입고 이태원으로 갔다. 이태원 클럽 펄스에서 공식 파티인 프라이빗 비치를 하는데 난 미리 예매해두었다. 들어가서 춤추고 싶었지만 펄스는 사람이 꽉 차서 흔들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빈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신나게 흔들었다.

12시 반이 넘었을 때 결국 너무 지쳐서 밖으로 나왔다. 오래 놀려고 했지만 아침에 6시에 일어나 0시까지 비행기 안에서 제외하고 거의 16시간을 돌아다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택시는 잘 잡히지 않았다. 다들 예약, 예약, 카카오택시는 잡히지도 않았다. 빈 차라고 된 걸 타려고 했더니 문이 잠겨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거리만 받으려고 다들 꼼수만 쓰는 것이었다.

한 시간을 택시 잡으려고 소비하다 그 꼼수를 알고 결국 택시 잡기를 포기하고 걸어가기로 했다. 숙소가 있는 서울역까지 1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발도 아프지만 밤새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 걸어갔다. 걸어가던 중 공용 자전거 따릉이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창원 누비자처럼 새벽에 이용 못 하나? 싶었는데, 이용시간 제한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숙소 근처 따릉이 거치대의 주차 가능 공간을 확인하고, 자전거를 탔다. 미니스커트 입고 자전거를 타려니 참 민망했다. 새벽에 사람이 적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보여서 크로스백을 가랑이 사이에 두고 자전거를 탔다.

숙소에 들어가서는 씻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제주에 돌아와서도 피곤해서 금새 곯아떨어졌고 며칠 근육통에 시달렸다. 다음에는 좀 더 편한 신발을 신고,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행진이 그립다.

  1. 용살자 2017.07.25 10:50 신고

    저는 여장하는 걸 좋아하지만 게이들을 보면 쇠파이프로 쳐죽이고 싶네요.

    • 왜죠? 게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래요? 잘못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 게이 집단이 잘못한 것은 아닐 거잖아요.

  2. 2017.10.11 17:06

    비밀댓글입니다

  3. 신승진 2017.10.11 17:30 신고

    김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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