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매일 집 밖으로 나간다. 거의 카페에 앉아서 공부한다. 주에 한두 번은 혼자 영화도 보고, 밤에 바나 펍에 가서 다트 게임을 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거의 공부만 한다. 일없이 공부만 하는 게 처량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 그러지 않으려고 집 밖으로 나갈 때면 꼭 꾸민다. 화장하고 예쁜 치마를 골라 입으면 기분이 좋다. 가는 데는 거의 같지만, 꾸미고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나와서 기분 좋게 공부하거나 놀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생리현상이 찾아온다. 꾸미고 나온 내 모습이 아무리 예쁘다지만 나도 사람이다 보니 (웃음) 똥도 싸고 오줌도 눈다. 몇 시간씩 있으면 화장실에 몇 번 가게 되는데, 가려고 할 때마다 긴장한다. 화장실에서 나 때문에 깜짝 놀라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다. 내 미모 때문에만 놀라서 그런 거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다. 나는 남자 화장실을 쓴다.

나는 남성기가 있어서 남자 화장실을 쓴다. 내가 꾸미고 나온 모습 때문인지 화장실에 들어가려 하거나 들어가 있으면 밖에서 보고 "거기 남자 화장실이에요."라고 하는 여성분의 목소리도 가끔 들린다. 한 번은 내 모습을 보고 남자 화장실에 따라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여성분도 있었다. 조금 멀리서 보기에는 치마와 화장, 긴 머리 때문에 여성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보통은 화장실에 들어왔다가 나를 보고 되돌아 나가는 남성분을 보는 일이 많다. 나가서 남자 화장실이 맞는지 확인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들어온다. 옷차림이나 뒷모습이 아니라 얼굴만 보고도 그런 경우가 있다. 그게 아니면 내가 남자 화장실에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놀라는 남성분을 본다. 그럴 때면 얼른 소변기로 가서 (테니스치마 입을 때 빼고) 치마를 올리고 오줌을 눈다. 보통은 그러면 놀란 기가 좀 가라앉는다.

가끔은 당황하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싫기도 해서 "남자입니다."라고 한다. 근데, 그럴 때면 굉장히 속상하고 어색하다. 나는 트랜스젠더다. 그것도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제3의 성인 안드로진이다. 나는 여성과 남성 모두 있는데 그걸 굳이 지정 성별인 남성이라고 하려니 속상한 것이다.

여성으로 패싱되는 일이 가끔 있다 보니 여자 화장실에 갈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내가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고 긴머리를 했지만, 여성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것도 어색하다. 만약 그냥 들어갔다가 패싱 안 될 경우에 두려워하거나 혐오스러워할 여성분이 있을까 싶어 갈 수 없다.

화장실에 성 구분이 없는 1인 화장실이라면 이용하기 편한데, 대체로 성 구분이 있다. 그래도 1인 화장실이라면 화장실 안에서 마주칠 일이 없어 괜찮다. 하지만 대부분 화장실은 성별 이분법으로 구분되어 들어가서 칸이 나뉘는 화장실이다. 바이너리 트랜스젠더들은 패싱되는 겉모습에 따라 들어간다고 하는데, 나 같은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나처럼 치마를 즐겨 입는 지정 성별 남성 안드로진은 우리 집 화장실만 이용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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