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태그가 유행할 당시, 나는 별로 망설이지 않고 썼다. 나는 항상 성 평등을 바라서 작게나마 항상 행동하고 있었다. 일상이나 취미, 업무에서 “그”와 “그녀” 대신 “그”, “학부모” 대신 “보호자”같이 성별이 들어가는 단어를 성별 중립적인 단어로 사용하고, 좌변기만 있는 화장실에서는 좌변기에 앉아서 소변 누기 같이 개인적인 것부터 조심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곳의 소수자 혐오도 보기 힘들었기에 변화를 바라는 마음에 사용했다. 앰네스티의 편지 쓰기나 서명하기처럼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이 한다면 힘이 생길 것으로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어디의 차별을 지적하며 고치려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이 태그의 유행이 나 자신이든, 세상이든 혹은 또 다른 누구든 긍정적 영향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 서양음악사에서 “여성”음악가

자신 있게 쓸 수 있던 또 다른 이유는 직업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범대 음악교육과 출신의 음악 교사다. 수업과 생활 지도에 대한 고민이 많다. 내가 가진 직업윤리 중 하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차별과 혐오를 내면화시키지 않는 것이다. 옳은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내 문제를 알려고 노력하고 반성할 거리를 항상 고민한다. 지금처럼 직장 없이 공부만 할 때는 더욱더 학생들과의 경험을 계속 복기한다.

나는 수업 준비를 정말 열심히 -삽질하며 오래- 했다. 학생들이 내 수업을 지루하게 여기는 것이 싫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하고 논문도 필요한 만큼 찾는다. 내 수업을 통해 편견을 갖게 하는 것도 싫고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을 피하고, 강의식 수업이라도 생각하며 참여하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그래도 내가 준비했던 수업은 다 부끄럽다.

그중 가장 덜 부끄러운 수업은 <서양음악사에서 “여성”음악가>라는 수업이다. 보통 음악사와 감상은 교육과정에서 문화사로 접근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분량이 많아 교과서는 훑어 보게 하거나 음악가 위주로만 제시되어 있다. 그래서 흥미를 주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주제를 갖고 수업을 만든다. 그중 성차별을 주제로 만든 수업이 <서양음악사에서 “여성”음악가>이다.

이 수업은 학생들도 재미있어했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성 평등에 관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썩 만족스러운 편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평소에 장난치면서 하는 성차별적인 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라는 태그를 자신 있게 쓸 수 있었다.


- 남성의 페미니스트 선언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

그런데,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태그를 사용한 후에 남성이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는 데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봤다. 어떻게 남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이 아닌데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며 좀 더 각을 세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를 페미니스트로 자처하는 데 조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난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그냥 평등주의자? 인권운동가? 그것도 아닌데…

표현할 말을 고민하다 보니 한동안 내 과거의 행동이나 말을 돌아보았다. 어릴 때 나도 모르게 따라 했던 말, 저질렀던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말이나 행동, 이기심에 귀찮아했던 행동 등이 떠올랐다. 선생님 댁에 갔다가 여자 선배와 과일을 같이 깎는데, 나는 예쁘게 깎고, 선배는 별로 안 예쁘게 깎았다. 그때 다른 선배들이 어떻게 여자가 남자보다 예쁘게 못 깎냐고 했던 것도 떠올랐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까다롭고 섬세하냐고 타박하던 것도 떠올랐다.

난 성차별의 덕을 본 남성이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내면화했던 성차별 의식이나 주변의 모습에 괜찮다고 생각하여 누군가를 곤란하게 하기도 했다. 성차별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덕도 보고 가해자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배우면서 조금씩 예전의 행동과 말을 부끄러워하고 하지 않으려 노력하긴 했지만, 난 페미니스트라기에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이후에 반성과 더불어 페미니즘에 관한 공부를 했다. 책과 뉴스, 페미니즘과 관련한 캠페인 영상 등을 통해 조금씩 페미니즘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었다. 또한, 주변의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덕에 더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나의 각성이 때를 맞춘 건 아닌 것 같은데, 유독 작년에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이나 남성성과 여성성에 관한 이야기를 뉴스에서 많이 보았다. 뉴스나 댓글을 보면서 성 평등을 바라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성차별의 형태가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꼬여 있는 사람 역시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나는 치마를 입는다

그러던 중 치마를 입게 되었다. 스타일-이랄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바꾸어보고 싶어 바지 위에 랩스커트를 덧입으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래서 치마를 찾아보던 중 여성복이라고 판매하는 것 중에 예쁜 옷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도 남성 캐주얼이라고 나오는 것보다 저렴하고, 모양도 다양했다. 니트도 사고 싶어서, 뭘 사볼까 찾아보며 고민하던 중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졌다.

그때부터 몇몇 사람에게 말을 꺼내며 상담받았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변태로 보는 것은 아닐까? 트랜스젠더라고 생각할까? 난 내가 남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성전환 생각도 없고, 세상이 여성적이라고 하는 행위는 할 줄도 모르고 할 생각도 없는데. 들은 답은 딱 하나였다. 그냥 입고 싶으면 입으라고. 몇 명은 덧붙여서 이왕 입을 거면 바지 말고 레깅스나 스타킹에 치마를 입으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말들에 용기를 내서 치마를 주문한 후에도 걱정은 여전했다. 내가 크로스 드레서로 살려고 하는 것이었나?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먼저 바지 위에 치마를 입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만나는 사람도 “어차피 남인데” 신경 쓸 필요 있냐고 했다. 성별과 관계없이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싶은 건데, 신경 쓸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지랖과 호기심에 뭐라고 하면 한 마디로 대답할 말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유니섹스? 메트로섹슈얼? 이것도 좀 부족했다. 계속 찾다 보니 젠더 비순응, 젠더 블라인드라는 개념이 나왔다. 순간 유니버설 디자인이 떠올랐다. 그래 난 젠더를 안 보고 싶고, 젠더를 감추고 싶은 쪽에 가까워. 젠더에 관계없이, 몸 형태와 관계없이 뭐든 입을 수 있는 것 아냐?

입다 보니 더욱더 용기가 생기고 편안했다. 그렇게 레깅스에 치마를 입었다. 거기에 용기를 더 내고 무릎 정도 오는 플레어스커트, H라인 미니스커트 등을 사고 편안하게 입었다. 주변 다른 사람들은 잘 어울린다고 하거나 별로 신경을 안 썼다. (아니면 몸매가 되니까 입어도 어울린다는 소리는… 하아)


- 여러 가지가 바뀌었다

그렇게 치마를 즐겨 입게 되다 보니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다. 모두가 아무 말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등에서 “게이세요?”, “그쪽이었어요?”, “여자가 되려고요?”라는 소리가 나왔다. 어떤 데서는 “너무 앞서 나갔다.” 나는 성별과 관계없이 옷을 입으려는 건데, 너무 앞서 나간 건가? 답답했다. 앞서고 싶어서 앞선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앞에 있던 건데…

화장실에서 놀라는 사람도 자주 보게 되었다. 이거야 치마를 안 입어도 머리가 길 때부터 있던 일이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이나 겉모습에 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트랜스젠더는 화장실에서 불편한 시선을 어떻게 할까? 1인 화장실이면 좀 낫지 않을까?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편한 화장실의 비율로 한쪽만 줄을 길게 서는 일도 줄어들 테고, 화장실에서 불편함도 덜할 텐데.

화장실뿐 아니다. 많은 편견이 겉모습으로 생긴다. 젠더 자체를 당장 없앨 수는 없으니 젠더를 감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과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더 억압을 풀지 못하면 젠더를 감추어서 억압에 저항하면 어떨까? 내가 남성이기에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젠더 블라인드라는 말로 표현하면 어떨까?


- 젠더블라인드와 페미니즘

젠더 블라인드라는 말과 치마 입는 남성에 대한 반응을 직접 보고 싶어서 사람도서관 모임을 개설했다. 만남 자리에서 내가 치마 입는 이야기와 젠더 블라인드,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았다. 만남 자리에서 내가 지향하는 부분과 페미니즘 사이에 통하는 부분이 보였다. 내가 하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는 페미니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모임이 끝난 후에 모임에서 했던 이야기를 곱씹어보았다. 그래도 나는 이 사회에서 남성으로서 유리한 부분 때문에 못 보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테니 페미니즘과 관련한 책을 찾기도 하고, 추천받기도 하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오면서 잘못했던 부분을 곱씹어 안 하려고 노력하고,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 것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공부하며 고민하던 중 ‘한남’인 내가 페미니스트 선언에 동참한 이유』를 읽게 되었다. 잊고 있던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태그가 떠올랐다.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다시 생각해보았다. 치마 입는다고, 불편함을 더 알게 되었다고, 공부했다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선언을 통해 내가 자격이 있을지 다시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선언한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자격이 아직 덜 되었다면 갖추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여성이 될 수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나타날 지 모를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분을 피하면서 인차별하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부터 성차별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이렇게 선언을 통해 다시 다짐합니다.

  1. 풉!! 2016.08.12 16:54 신고

    보빨러 추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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