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귀향』의 문제

며칠 전 영화 『귀향』을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중간중간 눈을 뜨기 힘든 장면도 있었다. 그래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면서 계속 보았다. 같이 보자고 했던 여자친구는 나한테 미안해하고, 본인도 굉장히 힘들어했다. 내가 한동안 침울한 표정을 지었는지 내내 내 표정을 계속 신경 쓰며 본인을 탓했다. 나도 보려고 했던 영화라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계속 자신을 탓했다. 영화 자체의 문제인 건데…


- 문제1. 성폭력의 전시

영화를 보기 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과는 달리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두 이야기가 병렬로 진행하는 줄 알았다.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가 왜 굿당에 왔는지 이해할 수도 없기도 했고, 초혼을 통해 넋을 위로하기 위한 서사를 만들기 위한 것일 줄 알았다.

그런데, 현대의 소녀와 과거의 소녀가 끔찍한 폭력에 시달리는 장면이 등장했다. 현대에서는 칼로 더듬다 아버지를 찌르는 장면이었다. 일제강점기는 온몸을 후려치고 벗기는 장면, 단체 책임을 물어 강제로 옷을 벗게 만드는 장면, 강제로 섹스를 시도하는 장면, 초경도 않은 열네 살 처녀라고 실실대는 장면 등 끔찍한 장면을 너무 많이 등장시켰다. 최악은 카메라가 하늘로 올라가며 쪽방촌 전체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강간이었다. 스너프 필름을 모아서 동시에 전시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형태의 성폭력 전시는 무슨 의미로 한 것일까? 끔찍한 사건을 끔찍하게 묘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공분할 일이니 잘 보고 제대로 분노하라는 것일까? 왜 저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저런 연기를 해야 했던 것일까? 그 사람들은 정신적 상처를 입지 않을 자신이 있던 것일까? 아니면, 감독은 정신적 상처를 주지 않을 자신이 있던 것일까?


- 문제2. 군인이 끌고 가고 군인이 구출하는 서사

또 하나 끔찍했던 것은 일본 군인을 해치우고 소녀를 죽음으로부터 구출하는 장면이었다. 전투장면이 어찌나 유치하고 어설픈지 끔찍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장면의 끔찍함은 서사 구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본 군인이 납치해 가고 일본 군인이 관리하며, 일본 군인이 계속 이용하다 완전히 없애버리기 직전 구출하기 위해 나타나는 광복군(으로 추정)이라는 서사라는 생각이 든 순간 욕지기가 올라왔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인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서 구출하러 왔다는 대리 만족을 주기 위한 것인가? 그 와중에 소녀를 끝까지 죽이려는 일본군의 잔악함을 전시하며 구출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끔찍하게도 끔찍할 뿐이었다. 군인에게 당해 온 사람이 군인을 다시 만난다는 것 너무 폭력적이다. 이후 미군기지에 비슷한 기지촌을 묵인하고 한국을 부자로 만들자고 했던 군사정권 시절의 한국 정부를 생각하면 이 영화는 피해자를 농락하는 수준이다.


- 문제3. 굿의 과정과 결과

그래도 굿을 하며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내가 왜 마음을 다지는 노력을 하며 봐야 했는지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노력해서라도 피해자를 위한 마음으로 끝까지 보려고 했다.

영화를 보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굿도 우스웠다. 살아 있는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을 생각하면 살아있음 자체도 죄로 만드는 것 아닌가? 왜 하필 성폭력 피해자인 그를 신들리게 하여 성폭력 피해자의 혼을 씌운 것일까? 공통점이 있어서?


- 문제4. 아리랑과 민족주의

공통점을 굳이 따져보자면 강간을 당하다 아버지를 잃은 소녀는 강간당하고 나라 잃은 민족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개개인의 피해를 개개인의 처지로 다독이거나 구조적 문제로 나타나는 성폭력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뜬금없는 아리랑의 등장은 그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영화를 볼 때 들리는 아리랑은 그렇지 않아도 이제까지 듣던 아리랑 중 가장 역겨운 아리랑이었다. 민족주의적으로 그들의 아픔을 다룬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역겨웠다. 『디 워』의 아리랑은 부끄러워 미칠 것 같은 아리랑이었는데, 여기 아리랑은 아리랑과 민족을 역겹게 만드는 『디 워』보다 더 한 최악의 아리랑이었다.


- 성폭력을 다룬 다른 영화는 어떻게?

『귀향』을 본 다음 날, 오스카 이야기를 하다 다시 영화를 보게 되었다. 평소에 배우의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않아서 배우들 이름을 잘 모르는데, 몇몇 영화로 익숙한 마크 러팔로가 나오고 오스카 후보라고 해서 더 보고 싶었다. 마침 개봉했고 상영관이 있었다. 시놉시스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도 성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였다. 그 영화는 『스포트라이트』다.


맥과 아이폰을 사용하다 보니 검색 도구인 스포트라이트를 먼저 생각했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그게 아니라 “보스턴 글로브”라는 언론의 집중 취재팀 이름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이 집중 취재팀이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폭력 스캔들을 취재한 과정을 그린 실화 기반의 영화이다. 

전날 본 『귀향』과 다르게 한결 개운한 기분으로 나올 수 있었다. 찝찝하거나 불편한 구석이 별로 없었다. 피해자의 피해를 전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피해를 이야기할 때 괴로워하는 모습은 보여주되, 아동을 성추행하거나 강간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 않았다. 사건과 가장 직접 관련된 영상이라고 해봐야 경찰서에서 기소하지 않는 장면일 정도로 피해자의 피해장면을 고발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 도구로 쓰지 않았다.


『스포트라이트』는 취재과정을 그렸기 때문에 전시하지 않을 수 있는 충분한 배경이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2013년 작인 『한공주』를 살펴보면, 얼마든지 선정적으로 그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공주』는 성폭력 문제를 피해자를 둘러싼 사람 위주로 다룬다. 강간 장면이 등장하지만, 『귀향』처럼 피해자의 신체를 불필요하게 전시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고통을 보여주어 감정의 당위성을 드러내는 것 역시 얼굴과 흔들림 정도로만 묘사하여 최소한으로 비춘다.

『한공주』라는 영화를 언급하다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이 영화가 영화관에 정식 개봉했던 2014년 밀양시 교육지원청에서는 각 학교 관리자에게 과장되게 밀양을 욕보이는 영화라며 교사들이 보지 않을 수 있도록 협조 요청을 한 적이 있다. 영화에 실제 사건은 더 큰 피해가 있었으나 영화에서는 축소해서 이야기했다는 식의 자막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왔던 나는 실제 사건은 더 굉장했고, 영화제 때는 모르겠지만, 현재 그런 자막은 들어가 있지 않으며 잘못을 인정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관람하자고 하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서 『한공주』와 관련하여 보지 말자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 밀양시 전체에서 그 보지 말자는 말은 거의 무시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 그러면 『귀향』은 성폭력을 어떻게 다루어야 했나?

그러면 『귀향』은 위안소의 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했을까? 별거 없다. 민족주의 빼서 다루면 된다. 더불어 군인이 납치하고 군인이 구출하는 서사가 아니어야 한다. 또, 굿을 할 때 신들리는 이가 성폭력 피해자이며 현장에서 아버지가 죽는 이야기를 없애거나, 충분한 개연성을 줄 필요가 있다. 스너프 필름 전시하는 듯한 쪽방 위안소 전체 묘사를 빼고, 인물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영화 전체가 문제라서 싹 갈아엎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성폭력을 관찰하는 것이 성폭력에 대한 2차 가해라는 것을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찬양이 좀 없어지고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좋겠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 ㅉㅉㅉ 2016.08.12 16:53 신고

    이 생키는 시발 무슨 프로불편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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